[제21구간] 피재~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황장산~댓재

매표소에서 골말로 올라가면서 바라본 촛대바위(가운데)와 지각산(우측, 1,079m) (16)


[제38소구간 : 피재~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

2004. 7. 10(토요일) /날씨 : 맑음/등산시간 : 6시간 50분

구 간 명

도 착

출 발

소요시간

휴 식

비 고

피재

09:10

컵라면으로 조식

945봉

09:54

44분

안부사거리

10:16

22분

960봉

10:52

11:02

36분

10분

임도(가짜 건의령)

11:24

22분

↓피재 5.5km, ↑건의령 500m

건의령

11:40

11:55

16분

15분

푯대봉 갈림길

12:18

23분

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도계-2

951봉

12:53

13:03

35분

10분

무명봉

13:23

20분

997봉

13:35

12분

안부갈림길

13:52

13:57

29분

5분

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도계-3

1,017봉

14:10

13분

1,055봉

14:44

14:54

34분

10분

안부갈림길

15:02

8분

좌측-외나무골, 우측-구부시령

구부시령

15:10

15:20

8분

10분

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좌측-외나무골

예수원

15:44

24분

35번 국도

16:00

16분

산 행시 간

5시간50분

1시간


백두대간 제21구간은 피재에서 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큰재~황장산~댓재까지 계획되어 있으며 대간거리는 약 26km에 예상 종주시간은 약 12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이 구간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 하루에 종주를 마칠 수가 있는데 운영자는 이 구간을 두 개 소구간으로 나누어서 종주하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지난주 금대봉 탈출한 것을 땜방도 해야 하기에 실제로는(두문동재에서 구부시령까지) 10시간 이상을 종주해야한다. 그래서 피재에서 구부시령, 구부시령에서 댓재까지 나누어서 종주하기로 하였는데 구부시령에서 댓재까지 종주할 때는 대이리에서 시작하여 환선굴과 덕항산을 산행한후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로 하였다.

지난 주 금대봉에서 탈출한 것을 이번에 땜방하기로 하고 두문동재에서 피재까지 종주한후 피재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잠시 쉬다가 피재에서 구부시령까지 종주에 나섰다. 피재는 태백과 하장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며 삼수령비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발원한다. 피재에서 덕항산방면으로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가 좋고 넓은 공터가 있어 차량을 이용할 때는 주차하기가 좋다. 쉼터에는 장승과 팔각정이 있고 빗물의 운명에 대한 조형탑이 세워져 있다. 빗물 한가족이 삼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강으로 헤어지는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피재(삼수령) (1)

-09:10 피재에서 출발
-09:54 945봉
-10:16 안부사거리

피재에서 올라가는 길은 두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주릉으로 가는 길이다.이왕이면 주릉을 따르기로 하고 빗물의 운명 조형탑 옆 숲길로 들어서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5분쯤 가면 시멘트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내려 가다가 좌측 산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무심코 가다보니 도로로 계속 내려가게 되었다. 피재에서 10분쯤 가면 노루메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산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 길을 놓쳐 도로로 계속 내려가게 되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우측으로 961봉의 뾰족한 봉우리가 올려다보여 길을 지나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피재쪽으로 뒤돌아 가다가 채소밭으로 올라가는 임도에서 우측 능선으로 치고올라가니 백두대간 표지기가 있는 능선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런데 표지기 하나가 "구름나그네"였는데 이분은 대전에 사시는 소방공무원이며 2년전 종주할 때 두 번이나 대간길에서 만나던 분이다. 반가운 표지기를 뒤로 하고 올라가면 잡목숲이 이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이곳이 945봉 인 것같았다. 945봉에서 내려가면 좌측으로 35번 국도가 내려다보이면서 차량소리도 크게 들어오곤하였다. 완만한 능선길에는 철사로 친 울타리가 계속 이어지고 한참을 내려가면 안부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뚜렷한 사거리 길이 있는 안부에 닿는다. 그런데 이 능선길에는소로길이 많아 독도에 주의해야 하며 표지기를 잘 보고 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것같다. 안부 사거리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한참을 올라가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오고 곧이어 삼각점이 있는 960봉에 닿는다.

건의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태백시 상사미동 일대 (5)

-10:52 960봉
-11:02 960봉에서 출발
-11:24 임도(가짜 건의령, ↓피재 5.5km, ↑건의령 500m)
-11:40 건의령(비포장도로)
-11:55 건의령에서 출발
-12:04 902봉
-12:18 푯대봉갈림길(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도계-2)

전망이 없는 960봉을 지나 11분을 올라가면 무명봉우리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대간길은 90도 휘어지면서 동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완만한 내리막에는 낙엽송숲이 울창하고 10분쯤 내려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 임도에 닿는다. 처음에는 이곳이 건의령인줄 알았는데 팻말에는 가짜 건의령이라 적혀 있고 500m를 더 가야 건의령이 나온다는 팻말이 있다. 공터를 지나 올라가면 처음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전망대가 나오는데 태백시 상사미동일대가 그림같이 내려다보인다. 전망대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올라가면 옛 성터 자리인지 등로에 돌무더기가 많이 있고 곧이어 비포장도로가 지나는 건의령에 닿는다. 건의령은 태백시 상사미동과 삼척시 도계읍 점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며, 차량 2대가 주차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대간 종주자 차량인 것같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20m 정도 가면 35번 국도가 내려다보인다. 건의령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9분을 올라가면 전망이 없는 902봉에 이르고, 이곳에서 다시 올라가면 우측으로 급경사 낭떠러지 구간이이어진다. 푯대봉 갈림길에는 "조난자위치 추척표지판(도계-2)"이 있고 푯대봉 정상은 대간에서 좌측으로 30m 정도 비켜나 있다. 여기서 대간길은 북동쪽으로 크게 휘어지면서 내려가게 된다. 완만한 내리막에는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능선 곳곳에는 수령이 오래된 노송들이 많이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에 올라서면 수령이 수백년된 노송 한그루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다. 이곳을 지나면 나뭇가지사이로 푯대봉이 올려다보이고 넓은 공터를 지나 올라가면 조그마한 공터가 있는 951봉에 닿는다.

너와 집 (10)

-12:53 951봉
-13:03 951봉에서 출발
-13:23 무명봉
-13:35 997봉
-13:52 안부갈림길(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도계-3)
-13:57 갈림길에서 출발
-14:10 1,017봉
-14:44 1,055봉
-14:54 1,055봉에서 출발
-15:02 안부갈림길(좌측-외나무골, 우측-구부시령)
-15:10 구부시령(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

잡목이 우거져 전망이 없는 951봉에서 동쪽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철사로 울타리 친 곳이 나온다. 이곳은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가 좋고 앞을 올려다보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한참을 땀좀 흘리면서 올라가야한다. 힘들게 올라서면 전망은 없지만 넓은 공터가 있는 무명봉에 서게된다. 이곳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내려가다가 올라서면 넓은 공터가 있는 997봉에 닿는다. 997봉을 지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면 안부 갈림길에 이르는데 "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도계-3)"이 있다. 여기서 우측 완만한 길로 내려가다가 안부에서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1,017봉에 다다른다. 1,017봉은 전망은 없지만 넓은 공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가 좋다. 다시급한 길로 내려가서 가파른 오르막으로 올라서면 돌이 있는1,055봉에 닿는다. 이곳도 전망은 없지만 넓은 공터가 있다. 1,055봉을 지나 내려가면 나뭇가지사이로 덕항산이 올려다보이고, 8분을 내려가면 안부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외나무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 대간길을 따라 낮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돌무더기와 "조난자 위치 추척표지판"이 있는 구부시령에 닿는다. 구부시령이란 지명은 옛날 대기리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이 지아비들이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아홉명의 지아비를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구부시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구부시령에서 20분 정도만 올라가면 덕항산 정상인데 너무나 힘이 들어 이곳에서 종주를 마치고 외나무골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삼척 대이리 통방아 (중요민속자료 제222호)

-15:20 구부시령에서 출발
-15:44 예수원(기도원)
-16:00 35번 국도

구부시령에서 20분쯤 내려가면 삼거리 임도가 나오면서 계곡과 만난다. 임도 우측은 덕항산 정상에서 북서쪽 아래에 있는 철계단 사거리에서 내려오는 길인 것 같다. 계곡에는 수량이 많아 여기서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임도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좌측으로 산판길이 나오는데 표지기가 많이 붙여있다. 단체 산악회에서는 이 산판길을 따라 구부시령으로 올라가는 것같다. 다시 임도따라 몇분을 내려가면 외나무골에 이르는데 예수원(기도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고랭지 채소밭이 나오고 곧이어 35번 국도가 지나는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구부시령에서 35번 국도가 지나는 버스정류장까지는 40분 거리다. 여기서 마침 태백 나가는 봉고차가 있어 이 차를 얻어타고 태백역으로 나왔는데, 16시 27분에 출발하는 청량리열차를 몇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타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백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16시 50분에 영월과 제천을 경유하여 동서울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제39소구간 : 구부시령~덕항산~지각산~큰재~황장산~댓재]

2004. 7. 20 (화요일) /날씨 : 흐린후 갬/등산시간 : 7시간 50분

구 간 명

도 착

출 발

소요시간

휴 식

비 고

대이리 주차장

07:00

골말식당 앞 갈림길

07:10

10분

좌측 철다리 건넘

지능선 갈림길

07:20

10분

↓골말, →동산고뎅이

전망대

07:50

07:55

30분

5분

동산고뎅이

08:12

17분

↑장암목 0.5km, ↓골말 0.4km

장암목(926 철계단)

08:48

36분

↑덕항산 1.0km, ↓동산고뎅이 0.5km

사거리안부 쉼터

09:17

09:27

29분

10분

←덕항산 0.4km, →지각산 1.4km

덕항산 정상

09:35

09:40

8분

5분

↓황장산 4시간, ↑피재 7시간

사거리안부 쉼터

09:46

6분

←예수원 1.5km, →골말 1.9km

지각산

10:22

10:32

36분

10분

↑자암재 1.8km, ↓덕항산 1.6km

헬기장

10:48

16분

자암재

11:06

11:11

18분

5분

↓지각산 1.6km, →약수터 0.5km

1,036봉

11:23

12분

고랭지 채소밭 임도

11:50

27분

1,059봉

12:15

25분

높은 안테나 있음

큰재

12:37

12:47

22분

10분

1,062봉

13:06

19분

1,159봉

13:28

22분

무명봉우리

13:47

13:57

19분

10분

1,106봉

14:11

14분

황장산

14:30

14:35

19분

5분

↑댓재 20분, ↓덕항산 4시간

댓재

14:50

15분

산 행시 간

6시간50분

1시간


지난 주 백두대간 제21구간을 종주하면서 구부시령에서 외나무골(하장면 하사미동)로 하산하였기에 이번에는 그 나머지 구간 구부시령에서 덕항산~지각산~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까지 종주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하장면 하사미동에서 구부시령으로 올라가 종주를 하여야 하는데 종주시간이 짧기에 동굴지대인 대이리에서 시작하여 덕항산 정상으로 올라가 종주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백두대간과 덕항산 산행을 동시에 하기로 함)

-23:30 청량리역에서 출발
-06:07 신기역 도착
-06:33 신기버스터미널 옆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탑승 (대이리 환선굴 8.7km)
-06:45 대이리 버스종점에 도착

청량리역에서 23시 30분에 출발하는 강릉행 야간열차를 타고 통리역에 이를 쯤에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통리역을 지나 흥전역에서 나한정역까지 스위치백구간을 구경할 수가 있었고 신기역에는 6시 7분쯤에 도착하였다. 신기역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신기버스터미널이 나오고 터미널 옆 삼거리에는 대이리로 들어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6시 33분에 삼척에서 대이리간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대이리 버스종점에는 6시 45분쯤에 도착하였다. 이 버스는 삼척터미널에서 6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인데 타는 손님들이 없어 앞으로 첫차는 8시 20분으로 변경된다고 한다.

삼척 대이리 굴피집 (중요민속자료 제223호)

-07:00 대이리 주차장에서 출발
-07:05 물골1교
-07:10 골말식당 앞 갈림길(좌측 철다리 건넘)
-07:20 지능선 갈림길(↓골말, →동산고뎅이)
-07:50 전망대
대이리 환선굴 매표소 옆에는 너와 집과 굴피집이 있는데 잘 보전이 되어 있다. 매표소를 지나 도로를 따라 5분을 올라가면 물골1교가 나오고 도로 옆으로는 대이리계곡이 이어지는데 수량이 풍부하며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보기만해도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5분을 더 올라가면 골말식당 앞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는 나무껍질로 지붕을 한 굴피집이 있는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촛대바위가 지척에서 올려다보이고 협곡 가운데로 우뚝 솟아 있는 지각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말식당 앞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환선굴을 거쳐 자암재로 올라가는 길이고, 좌측 철다리를 건너서 오르는 길은 동산고뎅이와 장암목을 거쳐 덕항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험로이다. 운영자는 백두대간도 종주해야 하기에 동산고뎅이로 오르기로 하였다. 갈림길에서 철다리를 건너면 화장실 옆으로 철문이 있는데 산불방지기간 동안은 철문을 닫아 등산로가 통제된다. 철문을 통과하면 가파른 오르막에 낙엽송숲이 울창하고 조금 올라가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10분 정도 올라가면 지능선 갈림길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조금 올라가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주능선 사거리 쉼터까지 로프와 철난간, 철계단 등 안전시설이 계속 이어진다. 급경사에 로프가 길게 설치되어 있지만 힘이 많이 들고 바위길과 흙길을 반복해서 30분쯤 올라가면 전망 좋은 바위에 이른다. 이곳에 서면 지각산이 올려다보이고, 협곡 아래로는 환선굴 입구가 내려다보이는데 전망이 매우 좋다.

골말에서 장암목으로 올라가면서 바라본 백두대간 마루금과 협곡. (18)

-07:55 전망대에서 출발
-08:12 동산고뎅이(↑장암목 0.5km, ↓골말 0.4km)
-08:48 장암목(↑덕항산 1.0km, ↓동산고뎅이 0.5km) 926 철계단 시작됨
-09:17 사거리안부 쉼터(←덕항산 0.4km, →지각산 1.4km, ↑예수원 1.5km, ↓골말 1.9km)
-09:27 쉼터에서 출발
-09:35 덕항산 정상(↓황장산 4시간, ↑피재 7시간)
전망대를 지나면 로프가 계속 이어지고 등로 좌우로 낭떠러지라 등산로를 벗어나면 위험하므로 주의를 해야한다. 로프 설치 된곳이 끝나고 된비알에 설치된 철난간을 잡고 올라가면 노송 한그루가 있는 동산고뎅이 전망대에 닿는다. 주위에는 철난간이 빙둘러져 있는데 전망이 좋다. 동산고뎅이에는 "장암목 0.5km"란 이정표가 있고 계속되는 된비알을 올라가면 조그마한 공터가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봉우리를 넘어서면 철난간이 계속 이어져 있고, 날등길에 연속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철계단으로 올라가면 장암목이란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장암목에서 주능선 사거리 쉼터까지 된비알 구간에 926개의 철계단이 설치 되어 있다. 철계단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지각산과 협곡이 바라보이고 고랭지 채소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철계단 길을 힘들게 올라서면 주능선 안부 쉼터에 이르는데, 넓은 공터가 있는 사거리 쉼터에서는 서쪽으로 예수원 기도원을 거쳐 하장면 하사미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지난주 구부시령에서 하사미동으로 하산하였다. 쉼터에서 좌측(남동쪽)은 덕항산, 우측(북서쪽)은 지각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좌측 완만한 능선길로 올라가면 날등길이 나오는데 동쪽면은 절벽을 이루고 있고, 덕항산 정상 직전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매표소와 주차장일대가 한폭의 그림같이 내려다보인다. 사거리 쉼터에서 덕항산 정상까지는 8분 거리이며 덕항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고 청타산악회에서 세운 조그마한 표석이 있다. 그리고 덕항산 정상은 정상같은 느낌은 전혀없고 그냥지나가는 능선에 불과하며 전망도 없다.

장암목에서 926철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북쪽으로 바라본 지각산(1079m). (23)

-09:40 덕항산 정상에서 출발 (백두대간 제21-2(제39소구간)구간 종주)
-09:46 사거리 안부 쉼터(↓덕항산 0.4km, ↑지각산 1.4km, ←예수원 1.5km, →골말 1.9km)
-10:22 지각산(↑자암재 1.8km, ↑골말 4.1km, ↓덕항산 1.6km, ↓골말 3.3km)
-10:32 지각산에서 출발
-10:48 넓은공터(헬기장)
-11:06 자암재(↓지각산 1.6km, ↓헬기장 0.9km, →약수터 0.5km, →골말 2.5km)

덕항산 정상에서 구부시령으로 내려가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야 하는데 구부시령으로 내려가는 것을 생략하기로 하였다. 구부시령에서 덕항산 정상까지는 약 20분 거리이고 특이한 것이 없는 완만한 능선 길이다. 덕항산 정상에서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사거리 안부로 내려왔다. 사거리 쉼터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면 동쪽면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잡목숲을 한참 헤쳐나가면 조그마한 공터에 이르는데, 대이리 주차장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공터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 지각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동쪽 날등길로 15m 정도 내려가면 절벽 위에 서게 되는데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으로 대이리계곡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고랭지채소밭이 바라보인다. 덕항산 정상보다 8m가 더 높은 지각산이 수려한 산세를 이루고 있고 지각산 동쪽 깍아지른 절벽에는 설패바위, 촛대바위, 금강문 등 수많은 기암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지각산 정상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한참을 내려가면 낙엽송숲이 나오고 16분을 내려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 헬기장에 닿는다. 헬기장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올라 무명봉우리를 넘어서 내려가면 사거리 길이 뚜렷한 자암재에 닿는다. 자암재에서 좌측(서쪽)은 귀네미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동쪽)은 약수터를 거쳐 환선동굴로 내려가는 길이다. 대간은 직진 오르막 길이다.

자암재를 지나 올라가면 광동댐 이주단지와 고랭지 채소단지가 나온다. (30)

-11:11 자암재에서 출발
-11:23 1,036봉
-11:30 고랭지채소단지
-11:50 임도
-12:15 1,059봉(높은 안테나 있음)
-12:37 큰재
-12:47 큰재에서 출발
-13:06 1,062봉
-13:28 1,159봉

자암재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12분을 올라가면 1,036봉에 이르고 다시 7분을 더 가면 고랭지 채소밭에 닿는데, 채소밭 아래로 광동댐 이주단지가 내려다보인다. 채소밭 우측 능선길로 20분정도 오르내리락하면서 가면 채소밭 임도에 이르는데, 채소밭 가운데 임도따라 내려가면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1,059봉에 높은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대간길은 높은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우측 밭과 숲 경계선으로 내려가면 되고, 또 하나는 1,059봉 아래 시멘트 도로를 따라 봉우리를 넘어서 가도 된다. 운영자는 이곳에서 독도 착오로 약 10분간 시멘트 도로에서 헤메게 되었다. 높은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밭과 숲 경계선으로 내려가면 임도가 나오고 여기서 우측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큰재에 닿는다. 큰재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잡목숲이 한참 이어지고 19분을 올라가면 1,062봉에 닿는데 전망은 없다. 1,062봉을 넘어서도 잡목숲은 계속되고 한참을 가다 억새밭을 올라가면 1,159봉 직전에서 삼척시내와 동해시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1,159봉도 전망이 없고 완만한 능선길로 내려가다 낮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 무명봉우리에 닿는다.

황장산 정상 직전에 서면 동해시 일대와 댓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33)

-13:47 무명봉우리
-13:57 무명봉우리에서 출발
-14:11 1,106봉
-14:30 황장산(↑댓재 20분, ↓덕항산 4시간)
-14:35 황장산에서 출발
-14:50 댓재

무명봉우리에 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두타산과 청옥산이 바라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내려가면 동쪽면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산죽군락지로 올라가면 조그마한 공터가 있는 1,106봉에 닿는데 이곳도 전망은 없다. 1106봉에서 완만한 능선길로 한참을 내려가다 올라가면 황장산 정상 직전 봉우리에 닿는데 이곳에 서면 동해시와 삼척시 멀리 동해바다까지 한눈에 바라보인다. 그리고 댓재로 올라오는 꾸불꾸불한 도로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황장산 정상에는 청타산악회에 세운 조그마한 표석이 있는데, 황장목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황장산 정상에서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려가면 키가 작은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곧이어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을 잇는 댓재에 닿는다. 댓재에는 댓재기념 표시석과 동굴관광도시 삼척 조형탑이 세워져 있다. 도로 건너에는 두타산-청옥산 등산안내도가 있고, 대간 초입에는 산신각이 있다. 그리고 댓재휴게소가 있는데 휴게소에서 민박도 하고 있다. 댓재에는 하장면과 삼척간을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하루 3회씩 운행되고 있다. 삼척에서 첫차는 07:30분에 있고, 하장면에서는 첫차가 08:30에 있다. 댓재에서 15시에 하장면에서 올라온 시외버스를 타고 삼척으로 나왔다.

댓재에 있는 동굴관광도시 삼척 조형탑. (34)

삼척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후 강릉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동서울행 무정차 직행버스를 타고 돌아왔는데, 삼척 목욕탕에서 시계를 놓고 나와 서울로 돌아온후 114안내전화로 목욕탕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을 하니 주인이 보관을 하고 있었다. 주인이 택배로 보내주어 시계를 찾았는데 이글을 통해 목욕탕(대양탕) 주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대중교통

◇ 서울 - 태백

*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5회 운행하는 무정차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07:00, 08:30, 11:30, 14:30, 17:30, 4시간 30분 소요)

* 청량리역에서 23:00시 출발하는 강릉행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태백에서 하차한다.
(03:26시에 태백에 도착)

◇ 태백 - 피재(삼수령)

* 태백에서 피재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요금 6,000원)

*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장방면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피재에서 하차한다.
(피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약 1시간 간격으로 시외버스가 다님)

◇ 태백 - 서울

*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서울행 무정차 직행버스는 1일 5회 운행한다.
(09:00, 12:00, 13:30, 15:00, 18:00)

* 태백역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이용한다.

◇ 댓재 - 삼척

* 하장면에서 댓재경유 삼척행 시외버스는 1일 3회 운행한다.
(댓재 경유시간 : 09:00, 14:50, 18:50) (하장면에서 첫차는 08:30에 있음)

◇ 하장 - 댓재 - 삼척

* 하장면에서 댓재경유 삼척행 시외버스는 1일 3회 운행한다.
(08:30, 14:20, 18:20, 10분 소요)

◇ 삼척 - 댓재 - 하장

* 삼척에서 댓재경유 하장면행 시외버스는 1일 3회 운행한다.
(07:30, 13:30, 16:30, 40분 소요)

편의시설

* 피재에는 숙박시설이 없으므로 태백시내 시설을 이용한다.
* 댓재에는 댓재휴게실에서 민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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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대장정 제7구간] 백학산 - 식생

식물생태계도 대간처럼 아슬아슬 이어진다
벌개미취·백미꽃 자라고, 정금나무의 북방한계선 추정

백두대간은 한반도 산지의 중추로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주변 산지에 비해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힘차게 뻗어 있다. 이렇게 자리 잡은 대간과 대간 자락들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 자생지로서의 역할도 함께 함으로써 높고 넓은 산세를 가진 산지는 그곳에서 키워내는 식물종도 산세만큼이나 풍부하다는 사실을 방증해 주고 있다.

▲ 골풀. 전국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백학산 자락의 묵논이나 도랑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남한 백두대간 가운데 추풍령~화방재 구간은 한반도 최고 산지로서의 백두대간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구간이다. 지리산, 덕유산 고산지대와 속리산 고산지대를 잇는 중간 위치에 놓여 있는 이 일대는 고도에 관한 한 부끄러운 형국이다. 백두산에서 출발해 남쪽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백두대간이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모아 지리산을 솟구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하다.

▲ 도깨비사초. 전국의 습지에 흔하게 자라는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도깨비방망이 같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북쪽으로 이웃한 속리산과 주흘산이나, 남으로 연결되는 황악산, 삼도봉, 덕유산 일대가 해발 1,000m가 넘는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 데 비해 추풍령~화방재 구간은 가장 높은 봉우리라 해도 고도 700m 남짓일 뿐이다. 이 때문에 백두대간이 구획하는 행정구역도 다른 곳들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곳에서 백두대간은 도를 가르는 경계가 되고, 적어도 군을 구분하는 울타리가 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곳 추풍령~화방재 구간에서는 추풍령 일대에서 잠깐 동안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룰 따름이고, 이후에는 줄곧 경북 상주시에 속한다. 더욱이 경북과 충북의 경계선이 끝나는 국수봉부터는 면 단위의 경계 역할조차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높은 산과 큰 강 등 자연 환경에 의해 구분되는 행정구역에 따라서 지역간의 문화도 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이 일대의 백두대간은 고도가 낮음으로 해서 행정구역은 물론 문화의 차이도 가르지 않은 채 두루뭉수리 놓여 있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개가 수없이 발달한 것은 물론이고, 대간 바로 위에 논이 있으며, 심지어 학교가 있는 곳까지 있다.

덕유산과 속리산 사이의 고도 낮은 산지

▲ 매화노루발. 전국의 산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백두대간 능선과 효곡리쪽 숲속에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었다.
추풍령~화방재 구간에서 식물이 가장 풍부한 산은 어디일까? 어느 곳을 현장 취재해야 이 구간 식물의 전모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을까? 먼저 월간山이 발행한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펼쳐 놓고 산과 고개, 골짜기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구간 식물 취재를 시작했다.

추풍령에서 화방재쪽으로 가면서 놓여 있는 사기점고개, 작점고개, 큰재, 회룡재, 개터재, 개머리재, 지기재, 신의터재 등 여러 고개 사이에 금산, 용문산, 국수봉, 큰재, 백학산, 윤지미산 등을 찾을 수 있다. 최고봉은 경북 김천시 어모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 걸쳐 놓여 있는 용문산으로 해발 710m다. 다음은 경북 상주시 공성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는 국수봉으로 지도상에 정확한 높이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등고선으로 보아 700m 남짓한 산으로 가늠된다. 세번째 높은 산은 모동면, 공성면, 모서면의 경계에 있는 백학산으로 해발 615m다.

용문산이나 국수봉은 지난 구간의 황악산 가까운 곳에 놓여 있어, 식물에 관한 한 특별히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됐다. 반면 백학산은 이번 구간에서 높이로는 세번째지만 공성면 효곡리와 모서면 덕곡리쪽으로 비교적 큰 계곡이 발달했고, 추풍령~화방재 구간의 중앙부에 해당해 취재 대상지로 꼽을 만했다. 특히 백학산 남쪽의 효곡리쪽에는 2개의 큰 골짜기가 정상에서부터 형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에 상판저수지가 있는 만큼 수량도 풍부할 것으로 여겨졌다.

▲ 백미꽃. 전국의 산에 드물게 자라는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백학산 정상 부근의 백두대간 능선에서 몇몇 개체가 발견됐다.
예전 같으면 으레 경부고속도로 영동이나 추풍령 인터체인지를 통해 찾아갈 효곡리였지만, 근래 개통되어 한결 한적한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찾아가 보았다. 상주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공성면 소재지인 옥산에서 68번 지방도를 따랐다. 곧이어 나타난 야트막한 고개가 큰재였다.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백두대간 고개 가운데 하나인데, 고개 직전에 논이 있고 고개 정상부에는 폐교된 옥산초교 인성분교와 논들이 있다. 도로를 따라 상판저수지쪽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자락에는 논과 마을이 연이어 나타났다. 백두대간 큰재를 중심으로 서쪽은 동쪽에 비해서 수계가 발달해 마을이 대간 마루금까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상판저수지를 지나고, 길가 약수터를 지나 ‘범죄 없는 마을’ 효곡리에 들어섰다. 효곡리에서 백학산 정상을 바라보고 서서 왼쪽의 큰 골짜기를 따라 정상에 오른 후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며 식물을 관찰하기로 했다. 지도상에서 큰 계곡으로 표기되었던 그곳에는 논과 사과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논두렁에는 수염가래꽃, 골풀 같은 습지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산자락에는 아까시나무, 졸참나무,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 생강나무, 쥐똥나무, 진달래, 철쭉나무, 조록싸리, 산딸기 같은 떨기나무와 엉겅퀴, 가는기린초, 큰까치수영, 물봉선 등의 풀이 자라고 있다.

계곡 부근에 자라고 있는 호랑버들, 인동덩굴도 눈에 들어온다. 피어날 때는 흰 색이지만, 꽃가루받이와 정받이가 끝나면 노란 빛으로 변하는 꽃을 가진 인동덩굴은 흰 꽃과 노란 꽃을 모두 달고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개망초, 족제비싸리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후 토착화한 귀화식물들도 보인다.

특산종 벌개미취의 자생여부는 관심거리

▲ 인동덩굴. 전국의 들에 흔하게 자라는 인동과의 덩굴나무로, 꽃은 처음에 흰 색이지만 나중에 노랗게 변한다.
농경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의 논두렁에 자라고 있는 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꽃은 없고, 뿌리에서 난 잎만이 달린 상태였는데 벌개미취로 생각됐다. 흔하게 심는 식물이므로 어릴 때부터 관찰한 적이 있어서 꽃이 없는 상태에서도 구분이 가능한데, 강원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개미취에 비해서 뿌리잎이 가늘고 작다는 특징도 알고 있는 터여서 벌개미취로 여겨졌다. 이 식물은 취재 때 하산했던 백학산의 이웃한 골짜기에서도 발견됐다.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인 벌개미취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가로변 화단 등에 대량으로 심고 있는 친숙한 식물이다. 도시의 화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정작 자생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식물이 바로 벌개미취다. 이런 면에서 백학산 두 골짜기의 이 식물이 벌개미취로 판명된다면 학술적 의의도 클 것이다.

골짜기 왼쪽으로는 임도가 이어졌다. 임도 주변에는 소나무, 밤나무, 신갈나무, 물오리나무, 산벚나무 같은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숲 가장자리에는 땅비싸리, 찔레꽃, 개옻나무, 광대싸리, 산초나무, 칡, 할미밀망 등의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덩굴식물인 으아리는 흰 꽃을 피우고 있고, 조록싸리도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름철이면 물레를 닮은 커다란 노란 꽃을 피울 물레나물도 여러 포기 보인다.

▲ 정금나무. 남부 지방의 산에 자라는 진달래과의 떨기나무로, 내륙쪽으로는 이 부근이 분포의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골짜기 위쪽의 논은 농사를 그만둔 지 오래되어 묵논이 되어 있었다. 묵논 가장자리에는 좁쌀풀이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고, 논 안에는 골풀과 도깨비사초가 벼를 대신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정상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계속 따라가기 위해 임도에서 벗어나 오른쪽 숲속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정상 500여m 전에서 골짜기가 끝날 때가지 희미하게 이어지다 없어진다. 숲속에 들어서자 희고 작은 꽃을 앙증맞게 피운 매화노루발이 반긴다. 키가 작아서 처음에는 몇 포기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일대에 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같은 속(屬)에 속하는 노루발이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꽃이 이미 지고 없는 은대난초도 여러 포기가 보이고, 꽃봉오리를 달고 있는 나리난초도 발견된다. 매화노루발과 난초들은 기대하지 못했던 귀한 식물들이었다.

이곳 숲은 신갈나무가 우점종으로서 가장 많았고, 소나무, 물오리나무, 졸참나무, 밤나무 등이 간간이 섞여 자라고 있다. 숲의 중간을 이루는 나무로는 철쭉나무가 가장 많고, 이밖에 생강나무, 국수나무, 개암나무, 병꽃나무, 싸리나무, 쇠물푸레 등도 자라고 있다. 숲 바닥의 풀들은 빈약한 상태였는데, 고비, 고깔제비꽃, 고사리, 세잎양지꽃, 산박하, 참취, 산거울, 투구꽃, 은분취, 고삼 등이 보였다.

▲ 조록싸리. 전국의 산에 흔하게 자라는 콩과의 떨기나무로, 잎 끝이 뾰족하며, 꽃에 벌과 나비가 몰려든다.
계곡 끝부분에 이르자 희미하던 길이 아예 없어진다. 이곳에는 산초나무, 원추리, 개옻나무, 큰까치수영, 단풍취, 속단, 노루오줌, 터리풀, 조록싸리, 땅비싸리, 진달래, 남산제비꽃, 노간주나무, 작살나무, 큰골무꽃, 대사초, 초롱꽃, 꿩의다리, 속단, 줄딸기, 누리장나무, 다래나무, 광대싸리, 산딸기, 억새, 명감나무, 주름조개풀, 왕머루, 덩굴꽃마리, 넓은잎외잎쑥, 둥굴레 등이 자라고 있다.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속단과 터리풀이 눈길을 끌었는데, 터리풀은 흰 꽃이 한창이다.

정상쪽으로 경사가 조금 급한 사면을 올라가면서 봄꽃인 애기풀과 은방울꽃, 가을꽃인 시호와 구절초 등이 눈에 띈다. 노란 꽃을 피운 가는기린초 옆에서 털중나리가 한껏 부푼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졸참나무와 신갈나무가 섞여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 철쭉나무가 많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길 없는 사면을 5분쯤 올라가니 백학산 정상이다.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이 서 있다. 주변에는 떡갈나무, 굴참나무, 굴피나무, 붉나무, 산초나무, 진달래, 쇠물푸레, 산딸기, 소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이곳에는 수령이 10년 남짓해 보이는 일본이깔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어, 자연림이 아니라 인공적인 조림도 이루어진 2차림임을 알 수 있다. 정상부에 자라고 있는 풀 종류로는 구절초, 세잎양지꽃, 큰까치수영 등이 있었다.

정금나무는 백두대간 어디까지 자랄까?

▲ 큰골무꽃. 전국의 산 숲 속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효곡리쪽 계곡 상부에서 발견됐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섰다. 효곡리쪽 큰 골짜기 2개 가운데 나머지 한 골짜기로 하산하기 위해서였다. 백두대간 능선에는 은방울꽃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데, 이미 꽃이 져버린 상태여서 아쉽다. 정상 바로 아래쪽에는 늙은 떡갈나무들이 들어서 있어서 인상적인데, 예전의 이곳 숲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부근에는 굴참나무도 자라고 있어, 백학산에는 참나무속 식물이 여러 종류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는기린초가 꽃을 피우고 있는 숲속에서 귀한 식물을 하나 발견했다. 전국에 자라기는 하지만 드물게 발견되는 백미꽃이었는데, 보통 여러 송이 꽃이 줄기 끝부분에 피는데 이곳 백미꽃은 단 한 송이 꽃만이 달려 있어 특이했다. 능선에 자라고 있는 비목나무도 몇 그루 보였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소나무숲이 잠깐 동안 나타나고, 이어서 리기다소나무 조림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마을 뒷산, 뒷동산, 야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처럼 자연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정금나무를 만난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처음에 한 그루가 보여서 의아해 했는데, 수십 그루가 능선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그늘에서 자라는 것은 아직 꽃이 한창이었고, 양지의 것은 이미 열매를 달고 있었다.

▲ 터리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종이다.
정금나무는 서해안을 따라서는 태안반도 위쪽까지 올라오지만 내륙으로는 그리 높이 올라오지 않는 떨기나무다. 주로 제주도와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데, 내가 내륙쪽의 가장 북쪽에서 본 것은 계룡산에서였다. 이곳 백학산은 위도 상으로 계룡산과 비슷한 위치지만, 백두대간이 지나는 한반도 중심 지역이므로, 서해안에 치우쳐 있는 계룡산 자생지에 비해 더욱 큰 의의를 지닐 것으로 생각된다.

백두대간을 따라 꽃을 취재하면서 즐거운 숙제가 또 하나 늘어난 셈인데, 과연 이 정금나무가 백두대간을 따라 어디까지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으로서, 정금나무의 내륙쪽 북방한계선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도상에서는 효곡리쪽 골짜기가 백학산 정상과 남쪽 능선의 모든 물을 받으며 형성되어 있어서 오른쪽으로 금방 내려서는 길이 나서줄 것 같았다. 하지만 백두대간 능선을 1.5km 이상 타고 내려간 후에야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나왔다. 이 길을 따라 효곡리쪽으로 내려서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골짜기 아래쪽에는 포도와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과 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꽃은 피지 않았지만 쉽사리 줄딸기, 보리수, 고마리, 신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확인하고, 노박덩굴, 수염가래꽃, 인동덩굴의 꽃을 관찰하며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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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대장정 제7구간] 백학산 - 풍수

신의터재에 쓴 묘는 흉상 운 가진 묘
대명당은 주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에서 단 한 곳뿐

▲ 신의터재(해발 280m).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으로 작은 쉼터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산이 모양을 변화하는 과정에서 산줄기의 폭이 좁아지고 낮아진 곳을 고개라고 부른다. 백두대간 중 추풍령과 화령재 사이의 구간을 살펴보면 추풍령~묘함산~작점고개~용문산~회룡재~백학산~소정재~금은봉~신의터재~장자봉~화령재로 이어지는데, 산(또는 봉)과 영(또는 고개, 재)이 계속 반복되면서 백두대간은 대장정을 하다가 ‘계수즉지(界水則止)’한다. 계수즉지는 풍수지리 고전인 장경(葬經)에 나오는 구절로 ‘(地氣가)용맥을 따라 가다가 물을 만나면 그치면서 혈이 생긴다’는 의미다.

고개나 재를 한자말로 령(嶺), 현(峴), 치(峙) 등으로 부르지만 의미는 거의 비슷해 혼용되고 있다. 고개에 해당되는 말을 풍수지리에서는 과협(過峽)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한다. 이 과협은 위치와 모양에 따라 세분한다. 낮은 지대의 과협은 ‘초사(草蛇)’와 ‘회선(灰線)’이 있고, 산룡(山龍) 지대의 과협은 ‘봉요(蜂腰)’와 ‘학슬(鶴膝)’이 있다.

초사는 용맥이 마치 풀속에 있는 뱀처럼 찾으려해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회선이란 용어도 잿속에 실처럼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는 의미를 강조한 풍수지리 용어다. 봉요는 산줄기가 벌의 허리처럼 잘록한 모양으로 고개에 해당되는 용어이고, 학슬은 봉요와 반대개념으로서 학의 무릎처럼 뭉툭한 모양이 반복되며 산줄기가 이어져간다는 의미다.

결인을 이룬 다음에 혈이 생긴다

산줄기에는 곳곳에 여러 개의 과협이 있는데, 여러 개의 과협 중에서도 마지막의 과협은 특별히 ‘결인(結咽)‘이라고 한다. 결인을 이룬 다음에는 풍수지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혈이 생기게 때문에 풍수지리에서는 과협이나 결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혈을 찾기 전에 과협의 유무를 살피는데, 과협이 있으면 자연적으로 혈이 있기 때문이다.

결인이란 사람의 목처럼 잘록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또한 결인은 일명 속기(束氣)라고도 부르는데, 지기(地氣)의 기운을 묶어준다는 의미다.

또한 두 용어를 합쳐 결인속기라고도 하는데, 결인속기를 중요하게 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현악기는 줄이 굵을수록 낮은 소리가 나고 가는 줄일수록 고음이 나며, 관악기는 취구(吹口)가 작을수록 강한 소리를 내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결인은 혈의 유무에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일의 경우에도 결인에 해당되는 작은 꼬투리에 매달려 있는 큰 과일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지 않는가!

풍수지리에서 혈이 생성하는 단계를 사람이 출생하는 과정에 비유해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처음에 조산(祖山)에서 시작해 산줄기가 내려오다가 혈을 만들기 위해 태식잉육(胎息孕育)의 4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혈이 탄생된다.

처음에 발맥(發脈)을 하는 부모산(父母山)은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태(胎)가 되고, 결인속기하는 곳은 혈을 만들기 위해 잠시 운기조식(運氣調息)한다는 의미에서 식(息)이 되고, 그리고 입수(入首·혈 바로 뒤에 도도록한 부분) 지점을 지기를 품고 있다는 의미의 잉(孕)이라고 하고, 다음에 가장 중요한 혈처(穴處)는 낳는다는 의미의 육(育)이라고 한다. 즉 혈이 생기는 단계 중 결인은 잉육의 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혈이 형성되는 과정을 얼굴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용맥이 머리에서 내려오다가 산근(山根·눈과 눈 사이)은 과협이 되고, 다음에 코는 혈이 되고, 입은 물이 되고, 턱은 안산이 되고, 광대뼈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된다. 풍수지리에서는 아무렇게나 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태식잉육의 과정 속에 생성되는 법이다.

그런데 고개는 과협 중에서도 봉요(蜂腰)에 해당되어 쉽게 이해가 가지만, 산줄기 도중에 학의 무릎처럼 생긴 소위 학슬(鶴膝) 모양은 지세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이 학슬은 대나무의 마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나무가 휘지 않고 높이 치솟으며 자라는 이유가 바로 마디에 있다. 대나무에 마디가 없다면 곧게 높이 자랄 수가 있을까.

고난의 마디가 있어야 크게 자랄 수 있어

▲ 상석에 좌향은 손좌(巽坐)이고, 용사시기는 2001년이라고 적혀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인체에는 마디가 있다. 즉 뼈와 뼈 사이에는 관절(關節)이 있다. 관절이 없으면 인체는 움직일 수가 없다. 동식물과 산세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마디가 있기 마련이다. 순탄한 인생역정에서 종종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데, 이 어려움이 바로 마디에 해당되며, 마디라는 과정에서 인간은 오히려 고난을 통해 성숙된다. 이 어려운 과정을 잘 극복해 나가면 나뭇가지가 다시 뻗어 가는데, 어쩌면 세상살이도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고난의 마디가 있는 인생이 값지고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산봉우리가 기복하면서 봉(峰)을 만드는데, 봉과 봉 사이를 절(節)이라고 표현한다.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해오는 도선국사유산록 전남 영광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건해삼절(乾亥三節) 결인(結咽)하고 해좌(亥坐)에 손파(巽破)로다. 대소과(大小科)도 많거니와 사대왕비(四代王女北) 이대상서(二代尙書)’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줄기가 여러 번 기복하고 결인한 다음에 혈이 맺히게 되는 과정를 순서대로 표현했다.

풍수지리의 가장 핵심되는 원리는 내룡(來龍)이 행(行)하다가 지(止·멈춤)하면, 그곳이 바로 혈(穴)이다. 양균송의 제자인 증공안 선생이 지은 청낭서(靑囊序)라는 풍수고서에 ‘선간금룡동부동(先看金龍動不動)’이라 하여 ‘먼저 용맥의 움직임과 멈춤을 보아야 한다’고 형기풍수의 핵심을 한 마디로 설파했다. 어렵다는 풍수지리의 원리가 불과 한 마디의 말만 이해하면 끝나는데, 사실은 불과 간단한 한 마디의 말이기 때문에 실제에서는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마디마디에 오이가 열리듯이 마디마다 혈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비교적 소명당에 불과하다. 역시 대기만성이라고 하듯이 대명당은 주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에서 한 자리뿐이다. 천리행룡 일석지지(千里行龍 一席之地)라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생긴 말이며 동시에 명당 찾기의 어려움과 명당의 희귀성을 표현한 말이다.

풍수지리 여전히 미신 취급 안타까운 일

▲ 재의 민묘.
신의터재는 해발 280m로 금은봉과 장자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고개는 산줄기가 일시적으로 가볍게 멈추는 곳으로 산사람도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은 사람도 재 주변에 유택(幽宅)을 마련하고 지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단순히 묘지 관리의 편리성 때문이 아니라 용맥이 쉬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고개 근처에는 항상 묘가 있다.

이 신의터재 근처에도 역시 여러 기의 묘가 산재하고 있다. 이중에서 최근에 쓴 묘가 있는데, 마침 상석 옆면에는 용사(用事)시기인 신사년(辛巳年=2001년) 윤사월과 손좌(巽坐)라고 적혀 있어 현공풍수로 길흉 감정이 가능하다.

묘를 쓴 시기인 2001년은 7운(1984∼2004년)에서도 18년째 되는 해이고, 7운에 손좌건향(巽坐乾向=정북서향)은 현공풍수로 감정을 해보면 애석하게도 소위 상산하수(上山下水)에 걸려 8운 직전까지 3년간은 흉상(凶象)이 되는 운을 가진 묘가 된다. 당시에 지관을 초청해 길지를 찾아 안장했을 터이지만, 땅은 속성상 어머니처럼 잘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땅의 길흉법칙은 냉정하기만 하다.

그래서 일찍이 청낭서(靑囊序)에도 ‘청험일가구일분 십분매하구분빈(請驗一家舊日墳 十墳埋下九墳貧)한 집안의 옛 묘를 보자면 10개 중 9개는 가난하게 될 곳에 있다’라고 하여 개탄했는데, 천 년이 지난 지금도 풍수지리는 아직도 미신 취급을 받기도 하고 믿지 않으려고 하여 안타까운 일이다.

▲ 풍수지리를 관상에 비유해 용맥과 혈을 설명한 그림.
다음은 몇 년 전 조성모라는 가수가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는데, 유행가 가사치고는 제법 의미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 중에‘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다’는 말은 내 마음속에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당신이 쉴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풍수지리로 명당을 찾기 전에 과연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와 어산리 사이에 있으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신의터재에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젊은 나이에 오직 나라를 위해 장열하게 순국한 의사 김준신(金俊臣)의 유적비가 있다. 산줄기도 멈춰가는 과협처 신의터재에는 비록 작지만 휴식공간을 마련해 지나가는 길손들을 아낌없이 맞이하고 있다. 나는 나라나 남을 위해 ‘쉼터’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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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6구간] 황악산 르포

한반도의 한가운데 황악산을 넘다
우두령~황악산~눌의산~추풍령 18km 답사

백두대간의 지금 ‘오월의 신부’ 같다. 그 신부를 맞으러 가는 우리의 입시울, 귀에 걸린다. 이런 우리를 위해 백두대간은 순한 소처럼 허리를 낮추어 준다. 질매재(730m) 혹은 우두령이라 불리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풋기운이 가신 갈참나무, 오리나무, 떡버들의 그림자가 깊다.

생태이동통로 공사가 한창인 고갯마루 왼쪽 기슭으로 백두대간 등성마루에 오른다. 곧 헬기장이다. 캠프사이트로 더없이 좋을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 없이 헬기장을 등진다. 숲의 유혹에 빠진 두 다리는 벌써 작은골의 통제를 벗어나 버린 것 같다.

산등성이 양편으로 원추리와 둥굴레, 큰애기나리, 은방울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원추리는 아직 꽃을 피우고 있지 않지만 나머지는 꽃망울을 열기에 한창이다. 나는 그 꽃들을 ‘오월의 신부’가 든 부케라 생각한다.

▲ 우두령 초입, 참나무 숲을 지나 억새숲을 지나는 취재팀. 억새의 새순은 아직 지난 겨울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고개가 기울어진다. 은방울꽃 때문이다. 수줍은 듯 큰 잎 아래 오종종 매달린 그 꽃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가서면 비로소 꽃은 향기를 나누어준다. 이 꽃의 매력은 고혹과는 거리가 멀다. 교태가 없기 때문이다. 소박한 듯 은근하면서도 돋보이는 존재감.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런 게 아닐까. 향수화라는 별칭을 가진 이 꽃을 서양에서는 향수의 원료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꽃으로 만든 향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 향수를 샤워하듯 뿌려대는 사람(여성이기 쉽지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싫어하게 될 것 같다.

여기서 잠시 이 땅의 모든 ‘총각’들에게 긴급제안 하나. 자취방 창틀에 화분을 놓고서라도 이 꽃을 길러 미래의 신부를 위한 부케를 손수 만드는 것이 어떨는지. 다 아는 얘기지만 본디 부케는 결혼을 앞둔 신랑이 자연에서 얻은 꽃으로 다발을 만들어 신부에게 주었던 것이라 하지 않는가. 더욱이 꽃말도 ‘행운’이라고 하니 이보다 좋은 결혼 선물도 없지 싶다. 유럽에서는 ‘오월의 꽃’이라 부르며 5월1일에 선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여긴다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은 웬만한 들꽃은 꽃집에서도 구할 수 있다.

오랜만의 산상 산해진미

▲ 황악산 오름길의 참나무 숲을 지나는 취재팀. 한 알 도토리가 숲으로 변하는 거대한 자연의 보폭을 실감하게 한다.
꽃 타령을 하다 보니 어느 새 큰 봉우리(985.6m봉) 하나를 넘었다. 운행 시간은 1시간 남짓. 훤칠한 참나무숲 사이로 뒤늦게 꽃피운 철쭉이 곱다. 매무새를 다듬는, 가는 봄의 정갈한 뒷모습이다.

황사를 머금은 저녁 안개를 뚫고 산마루에 몸을 누이는 햇살이 힘겹다. 숲은 순식간에 지상의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린다. 새들도 깃을 접는 시간이다. 헤드램프를 켜고 잠자리를 찾아본다. 눈 쌓인 겨울 같았으면 적당한 곳 아무데서라도 눈을 다질 텐데, 트레일 말고는 온통 들꽃 천지여서 차마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겠다. 1030m봉을 우회하여 10분 남짓 걷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좀더 걸어서 무선통신시설과 버려진 군용 벙커를 둘러본 다음 헬기장으로 돌아와 텐트 플라이만으로 하룻밤 우리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봄~가을까지는 플라이만으로도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 무게를 줄여서 좋기도 하지만 공간이 넓어 주거성이 탁월하다).

취재팀들이 집을 짓는 동안 나는 걸어온 길은 되짚기 시작한다.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김종현씨(진주 진서산악회)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한 20분 정도 걸었을까. 집채 같은 몸집에 또 그만한 배낭을 메고 양손에 무언가를 든 김종현씨가 나타난다. 헤드램프도 켜지 않은 채다. 이미 세 번 종주를 한 터라 트레일이 발에 익은 모양이다. 밤길을 2시간이나 걷게 한 미안함 때문에 반가운 마음도 다 꺼내놓지 못한다.

뒤늦은 산상 만찬. 식은 밥도 달 것 같은 형편인데 뜻밖에도 식단이 화려하다. 홍천에서 농사를 짓는 취재팀의 이원영씨는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하나하나 곱게 종이에 싼 계란을 꺼내 놓는다. 진주에서 온 취재팀 김종현씨는 생선회를 꺼낸다. 새벽에 삼천포에서 사온 것이라 한다. 정성에 먼저 배가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진짜 포식을 했다.

사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가장 큰 애로 사항이 먹는 것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오로지 ‘밥심’과 빵과 같은 행동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라면도 물 때문에 결코 간단한 끼니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교적 짧은 구간(실거리 약 23.74km)이어서 마음먹고 먹는 사치를 한번 해보려고 작정을 했는데, 그야말로 산해진미로 그 동안의 포원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앞으로 나는 어떤 하루산행객의 화려한 도시락을 봐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역시 끝을 모르겠다. 잘 먹고 보니 차 한 잔이 생각나는데 누구도 차를 준비해 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밀감 껍질을 끊여 보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농약 걱정에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속에 들게 되면 그런 걱정 따위는 사소한 것이 돼 버린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되기야 할까’ 하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작정’ 커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갓 밝은 하늘 아래로 찬란한 소리의 폭포

▲ 황악산 정상에서 직지사로 내려서는 길 우측의 조망처에서 이웃한 산들을 눈길로 걷고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자연 훼손을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따른 손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간은 자연에 빚지지 않고는 한 순간도 목숨을 이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항구적인 자연친화적 삶의 길이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도 인간중심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적 사고나 태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오만이다.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

최선은 자연에 빚지는 일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산에 올라 자연과 일체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골프라는 운동이 우리의 자연 환경과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결코 나는 골프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산지가 75%인 우리 땅의 형편을 헤아려 가급적 덜 들기고 오염을 최소화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갓 밝은 하늘 아래로 찬란한 소리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산속의 모든 새가 우리의 잠자리 위로 모여든 것 같다. 도저히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너무도 ‘눈부신 소리’다. 옥빛 계곡물 위로 보석처럼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손으로 만지는 것 같다.

봄을 다투어 나무와 풀들이 꽃을 피워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들 보기에 좋으라고? 결코 그건 아니다. 2세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이맘때가 가장 왕성한 번식기인 것이다. 덮지도 춥지도 않고 먹을 것도 지천이다. 사랑을 하기에, 한 가족을 이루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

한편 요즈음의 숲은 조용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벌레들은 맹렬하게 나무와 풀잎을 갉아먹고, 새들은 그 벌레들을 쉴 새 없이 잡아먹는다. 그렇지만 아비규환의 절규나 포성은 들리지 않는다. 필요 이상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자연스런 생명의 순환이고 우주의 호흡이다. 자연계의 구성원들 중 자연스럽지 못한 건 인간밖에 없다. 자연 앞에서 오늘의 인류는 앞선 그 어느 때보다 더 겸손해져야 한다. 편리를 추구해온 문명과 행복의 역비례, 그 원인은 무엇인가. ‘탐욕의 극대화’ 때문이 아니던가. 우리는 좀더 작아져야 한다. 적어도 산의 품에 안긴 순간만이라도.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화려한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꾸린 시간은 오전 7시. 인간의 시계로는 분명 이른 시간이지만 나무와 꽃과 새들의 시계로는 열심히 일할 시간.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걷는 것. 다시 또 숲속으로.

버려진 군 시설물을 지나자말자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눈앞으로 형제봉과 뒤로 황악산이 우람하다. 비탈길의 끝은 바람재(810m). 예나 지금이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나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고갯마루 양쪽으로 거칠 것 없는 바람의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혹 이 고개가 택리지에서 말하는 황악산 남쪽의 무풍령(舞豊嶺)과 같은 곳이라면, 옛 사람들은 이곳의 세찬 바람을 ‘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의적 춤사위(舞豊)’로 여긴 게 아닐까 하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제법 그럴 듯한 것이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현재 바람재 동쪽 기슭은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으로 조성돼 있다.

황악산은 바다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

바람재에서부터 대간 길은 부드럽게 몸을 세우다가 신선봉 갈림길부터 경사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리 가파르진 않아서 황악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적당하다. 바람재에서 40분 정도. 지도에는 무명봉이지만 현재 대간 종주자들에게 황악산 앞 봉우리는 형제봉으로 불린다.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봉싯 솟았기 때문인 듯하다.

▲ 직지사 갈림길을 지나 여시골산으로 향하는 취재팀.

형제봉에서부터 황악산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부드럽다. 비록 ‘악(岳)’ 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다.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다. 악 자에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에 ‘황악산’으로 적혀 있는 걸 보면 황학산은 분명 오기인 듯하다.

그리고 굳이 ‘岳’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대간의 줄기가 속리산에서부터 이렇다 할 산을 솟구치지 못하던 차에(속리산에서 황악산 사이에 1,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다.) 1,111m나 되는 산을 만나고 보니 당연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이 산이름의 첫 글자인 황(黃)은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를 나타내는 색인데, 옛 사람들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명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악산은 삼면 바다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이 산은 정상이 서 보면 멀리서 볼 때와 같은 우람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역시 이 산은 먼 데서 바라봐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산인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산 동쪽 기슭에 깃든 ‘직지사’도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할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直指)’, ‘저 산에도 큰 절이 들어설 것’이라고 하여 이름이 비롯됐다 한다.

▲ 눌의산을 향해 크게 휘어 도는 대간 길의 표지기들. 대간꾼들이 바친 사랑의 표지들.

황악산에서부터 대간 등성마루는 백운봉(770m) 아래 산허리(안부)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급하게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백운봉을 살포시 일으켜 세우고는 또 다시 허리를 낮춰 운수암으로 길 하나를 갈래치고 운수봉(668m)을 거쳐 여시골산에 이르기까지 잦은 파랑을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또 지명 상의 혼동이 일어난다. 현재 대간꾼들 사이에 여시골산(620m)이라 불리는 산은 운수봉과 괘방령 사이의 대간 상에 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오른쪽 가지줄기의 385.4m을 여시골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여시골산이라는 이름은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듯한데, 과거 이 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간 등마루 위 오름길의 시작 부분에 여우굴 같은 동굴이 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둔다.

백두대간 곳곳에 엉터리 지명 투성이

여시골산(진위 여부는 둘째로 하고)에서 괘방령까지는 30분 남짓 날렵한 내리막이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이 고갯길은, 지금이야 한가로운 길이지만 한때는 꽤나 시끌벅적한 고개였다고 한다. 관로(官路)였던 추풍령과 달리 상로(商路)로 쓰였는데,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에 집착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하룻밤 보금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생선회로 만찬을 즐기는 취재팀.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감정도 없지만, 자꾸 국토지리정보원에 시비를 거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괘방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특별한 식단을 준비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 산행의 부제인 ‘먹는 사치’에 충실하기 위해서. 농가 한 귀퉁이에 자리를 풀고 냉메밀국수를 먹기로 했다. 산기슭에서 논으로 흘러드는 도랑물을 떠서 면발을 헹궈내자 제법 모양이 그럴싸하다. 맛도 오케이. ‘기갈이어서 감식’이 아니라 분명 공들인 만큼이다. 특히 이원영씨의 감춰진 섬세함은 이런 순간 취재팀의 활력이 된다.

잘 먹고 나자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물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가성산이나 눌의산에서 야영하기로 했지만 한여름 같은 날씨에 세끼분의 물을 지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괘방령에서 추풍령까지는 샘이 없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떨어져도 물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즉석 회의를 통해 무리를 해서라도 추풍령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무거운 짐을 빼내 농가 옆에 보관한다. 분실 우려? 그냥 믿는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조처는 없다.

▲ 중천에 달이 뜬 백두대간에서의 막영.

괘방령에서 가성산(657m)까지는 대단한 오르막이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살짝 내려섰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1리터 남짓 남은 물로 네 사람이 눈치껏 입을 축인다. 가성산을 지나 장군봉(624.8m)에 이를 쯤에는 거의 패잔병 같은 기분이 든다. 잘 먹은 것? 아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건 물이다. 야영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아주 현명했던 것 같다.

햇살이 길게 눕기 시작하자 눌의산 정상이다. 눈 아래 추풍령(210m)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보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갈증이 가신다. 비구름처럼 무거워진 몸을 벗어난 마음은 한달음에 추풍령 마루에 선다.


즐거운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제언(4)

배낭 속에 식물도감을

들꽃과 눈맞춤하며 걷는 산길은 즐겁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을 때의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고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낭패스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장기 종주 산행의 경우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럴 경우 차선책은 디카에 담기다. 나의 경우는 수첩에 특징적인 면만 그림으로 그린 다음 뚫어지게 바라보며 머리 속에 입력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에서든 디카에 담아와서든 책을 보고도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과의 변별 요소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역시 전문가에게 묻는 게 최고다. 나의 경우는 월간山 백두대간대장정의 ‘식생’ 문 필자인 현진오 박사가 기댈 언덕이다. 하나를 물으면 두셋은 더 가르쳐 준다. 독자 여러분들에도 권하고 싶다(koreanplant.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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