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6구간] 황악산 르포

한반도의 한가운데 황악산을 넘다
우두령~황악산~눌의산~추풍령 18km 답사

백두대간의 지금 ‘오월의 신부’ 같다. 그 신부를 맞으러 가는 우리의 입시울, 귀에 걸린다. 이런 우리를 위해 백두대간은 순한 소처럼 허리를 낮추어 준다. 질매재(730m) 혹은 우두령이라 불리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풋기운이 가신 갈참나무, 오리나무, 떡버들의 그림자가 깊다.

생태이동통로 공사가 한창인 고갯마루 왼쪽 기슭으로 백두대간 등성마루에 오른다. 곧 헬기장이다. 캠프사이트로 더없이 좋을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 없이 헬기장을 등진다. 숲의 유혹에 빠진 두 다리는 벌써 작은골의 통제를 벗어나 버린 것 같다.

산등성이 양편으로 원추리와 둥굴레, 큰애기나리, 은방울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원추리는 아직 꽃을 피우고 있지 않지만 나머지는 꽃망울을 열기에 한창이다. 나는 그 꽃들을 ‘오월의 신부’가 든 부케라 생각한다.

▲ 우두령 초입, 참나무 숲을 지나 억새숲을 지나는 취재팀. 억새의 새순은 아직 지난 겨울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고개가 기울어진다. 은방울꽃 때문이다. 수줍은 듯 큰 잎 아래 오종종 매달린 그 꽃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가서면 비로소 꽃은 향기를 나누어준다. 이 꽃의 매력은 고혹과는 거리가 멀다. 교태가 없기 때문이다. 소박한 듯 은근하면서도 돋보이는 존재감.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런 게 아닐까. 향수화라는 별칭을 가진 이 꽃을 서양에서는 향수의 원료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꽃으로 만든 향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 향수를 샤워하듯 뿌려대는 사람(여성이기 쉽지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싫어하게 될 것 같다.

여기서 잠시 이 땅의 모든 ‘총각’들에게 긴급제안 하나. 자취방 창틀에 화분을 놓고서라도 이 꽃을 길러 미래의 신부를 위한 부케를 손수 만드는 것이 어떨는지. 다 아는 얘기지만 본디 부케는 결혼을 앞둔 신랑이 자연에서 얻은 꽃으로 다발을 만들어 신부에게 주었던 것이라 하지 않는가. 더욱이 꽃말도 ‘행운’이라고 하니 이보다 좋은 결혼 선물도 없지 싶다. 유럽에서는 ‘오월의 꽃’이라 부르며 5월1일에 선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여긴다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은 웬만한 들꽃은 꽃집에서도 구할 수 있다.

오랜만의 산상 산해진미

▲ 황악산 오름길의 참나무 숲을 지나는 취재팀. 한 알 도토리가 숲으로 변하는 거대한 자연의 보폭을 실감하게 한다.
꽃 타령을 하다 보니 어느 새 큰 봉우리(985.6m봉) 하나를 넘었다. 운행 시간은 1시간 남짓. 훤칠한 참나무숲 사이로 뒤늦게 꽃피운 철쭉이 곱다. 매무새를 다듬는, 가는 봄의 정갈한 뒷모습이다.

황사를 머금은 저녁 안개를 뚫고 산마루에 몸을 누이는 햇살이 힘겹다. 숲은 순식간에 지상의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린다. 새들도 깃을 접는 시간이다. 헤드램프를 켜고 잠자리를 찾아본다. 눈 쌓인 겨울 같았으면 적당한 곳 아무데서라도 눈을 다질 텐데, 트레일 말고는 온통 들꽃 천지여서 차마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겠다. 1030m봉을 우회하여 10분 남짓 걷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좀더 걸어서 무선통신시설과 버려진 군용 벙커를 둘러본 다음 헬기장으로 돌아와 텐트 플라이만으로 하룻밤 우리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봄~가을까지는 플라이만으로도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 무게를 줄여서 좋기도 하지만 공간이 넓어 주거성이 탁월하다).

취재팀들이 집을 짓는 동안 나는 걸어온 길은 되짚기 시작한다.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김종현씨(진주 진서산악회)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한 20분 정도 걸었을까. 집채 같은 몸집에 또 그만한 배낭을 메고 양손에 무언가를 든 김종현씨가 나타난다. 헤드램프도 켜지 않은 채다. 이미 세 번 종주를 한 터라 트레일이 발에 익은 모양이다. 밤길을 2시간이나 걷게 한 미안함 때문에 반가운 마음도 다 꺼내놓지 못한다.

뒤늦은 산상 만찬. 식은 밥도 달 것 같은 형편인데 뜻밖에도 식단이 화려하다. 홍천에서 농사를 짓는 취재팀의 이원영씨는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하나하나 곱게 종이에 싼 계란을 꺼내 놓는다. 진주에서 온 취재팀 김종현씨는 생선회를 꺼낸다. 새벽에 삼천포에서 사온 것이라 한다. 정성에 먼저 배가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진짜 포식을 했다.

사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가장 큰 애로 사항이 먹는 것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오로지 ‘밥심’과 빵과 같은 행동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라면도 물 때문에 결코 간단한 끼니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교적 짧은 구간(실거리 약 23.74km)이어서 마음먹고 먹는 사치를 한번 해보려고 작정을 했는데, 그야말로 산해진미로 그 동안의 포원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앞으로 나는 어떤 하루산행객의 화려한 도시락을 봐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역시 끝을 모르겠다. 잘 먹고 보니 차 한 잔이 생각나는데 누구도 차를 준비해 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밀감 껍질을 끊여 보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농약 걱정에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속에 들게 되면 그런 걱정 따위는 사소한 것이 돼 버린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되기야 할까’ 하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작정’ 커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갓 밝은 하늘 아래로 찬란한 소리의 폭포

▲ 황악산 정상에서 직지사로 내려서는 길 우측의 조망처에서 이웃한 산들을 눈길로 걷고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자연 훼손을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따른 손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간은 자연에 빚지지 않고는 한 순간도 목숨을 이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항구적인 자연친화적 삶의 길이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도 인간중심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적 사고나 태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오만이다.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

최선은 자연에 빚지는 일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산에 올라 자연과 일체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골프라는 운동이 우리의 자연 환경과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결코 나는 골프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산지가 75%인 우리 땅의 형편을 헤아려 가급적 덜 들기고 오염을 최소화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갓 밝은 하늘 아래로 찬란한 소리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산속의 모든 새가 우리의 잠자리 위로 모여든 것 같다. 도저히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너무도 ‘눈부신 소리’다. 옥빛 계곡물 위로 보석처럼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손으로 만지는 것 같다.

봄을 다투어 나무와 풀들이 꽃을 피워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들 보기에 좋으라고? 결코 그건 아니다. 2세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이맘때가 가장 왕성한 번식기인 것이다. 덮지도 춥지도 않고 먹을 것도 지천이다. 사랑을 하기에, 한 가족을 이루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

한편 요즈음의 숲은 조용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벌레들은 맹렬하게 나무와 풀잎을 갉아먹고, 새들은 그 벌레들을 쉴 새 없이 잡아먹는다. 그렇지만 아비규환의 절규나 포성은 들리지 않는다. 필요 이상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자연스런 생명의 순환이고 우주의 호흡이다. 자연계의 구성원들 중 자연스럽지 못한 건 인간밖에 없다. 자연 앞에서 오늘의 인류는 앞선 그 어느 때보다 더 겸손해져야 한다. 편리를 추구해온 문명과 행복의 역비례, 그 원인은 무엇인가. ‘탐욕의 극대화’ 때문이 아니던가. 우리는 좀더 작아져야 한다. 적어도 산의 품에 안긴 순간만이라도.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화려한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꾸린 시간은 오전 7시. 인간의 시계로는 분명 이른 시간이지만 나무와 꽃과 새들의 시계로는 열심히 일할 시간.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걷는 것. 다시 또 숲속으로.

버려진 군 시설물을 지나자말자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눈앞으로 형제봉과 뒤로 황악산이 우람하다. 비탈길의 끝은 바람재(810m). 예나 지금이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나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고갯마루 양쪽으로 거칠 것 없는 바람의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혹 이 고개가 택리지에서 말하는 황악산 남쪽의 무풍령(舞豊嶺)과 같은 곳이라면, 옛 사람들은 이곳의 세찬 바람을 ‘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의적 춤사위(舞豊)’로 여긴 게 아닐까 하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제법 그럴 듯한 것이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현재 바람재 동쪽 기슭은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으로 조성돼 있다.

황악산은 바다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

바람재에서부터 대간 길은 부드럽게 몸을 세우다가 신선봉 갈림길부터 경사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리 가파르진 않아서 황악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적당하다. 바람재에서 40분 정도. 지도에는 무명봉이지만 현재 대간 종주자들에게 황악산 앞 봉우리는 형제봉으로 불린다.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봉싯 솟았기 때문인 듯하다.

▲ 직지사 갈림길을 지나 여시골산으로 향하는 취재팀.

형제봉에서부터 황악산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부드럽다. 비록 ‘악(岳)’ 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다.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다. 악 자에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에 ‘황악산’으로 적혀 있는 걸 보면 황학산은 분명 오기인 듯하다.

그리고 굳이 ‘岳’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대간의 줄기가 속리산에서부터 이렇다 할 산을 솟구치지 못하던 차에(속리산에서 황악산 사이에 1,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다.) 1,111m나 되는 산을 만나고 보니 당연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이 산이름의 첫 글자인 황(黃)은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를 나타내는 색인데, 옛 사람들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명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악산은 삼면 바다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이 산은 정상이 서 보면 멀리서 볼 때와 같은 우람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역시 이 산은 먼 데서 바라봐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산인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산 동쪽 기슭에 깃든 ‘직지사’도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할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直指)’, ‘저 산에도 큰 절이 들어설 것’이라고 하여 이름이 비롯됐다 한다.

▲ 눌의산을 향해 크게 휘어 도는 대간 길의 표지기들. 대간꾼들이 바친 사랑의 표지들.

황악산에서부터 대간 등성마루는 백운봉(770m) 아래 산허리(안부)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급하게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백운봉을 살포시 일으켜 세우고는 또 다시 허리를 낮춰 운수암으로 길 하나를 갈래치고 운수봉(668m)을 거쳐 여시골산에 이르기까지 잦은 파랑을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또 지명 상의 혼동이 일어난다. 현재 대간꾼들 사이에 여시골산(620m)이라 불리는 산은 운수봉과 괘방령 사이의 대간 상에 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오른쪽 가지줄기의 385.4m을 여시골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여시골산이라는 이름은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듯한데, 과거 이 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간 등마루 위 오름길의 시작 부분에 여우굴 같은 동굴이 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둔다.

백두대간 곳곳에 엉터리 지명 투성이

여시골산(진위 여부는 둘째로 하고)에서 괘방령까지는 30분 남짓 날렵한 내리막이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이 고갯길은, 지금이야 한가로운 길이지만 한때는 꽤나 시끌벅적한 고개였다고 한다. 관로(官路)였던 추풍령과 달리 상로(商路)로 쓰였는데,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에 집착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하룻밤 보금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생선회로 만찬을 즐기는 취재팀.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감정도 없지만, 자꾸 국토지리정보원에 시비를 거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괘방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특별한 식단을 준비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 산행의 부제인 ‘먹는 사치’에 충실하기 위해서. 농가 한 귀퉁이에 자리를 풀고 냉메밀국수를 먹기로 했다. 산기슭에서 논으로 흘러드는 도랑물을 떠서 면발을 헹궈내자 제법 모양이 그럴싸하다. 맛도 오케이. ‘기갈이어서 감식’이 아니라 분명 공들인 만큼이다. 특히 이원영씨의 감춰진 섬세함은 이런 순간 취재팀의 활력이 된다.

잘 먹고 나자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물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가성산이나 눌의산에서 야영하기로 했지만 한여름 같은 날씨에 세끼분의 물을 지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괘방령에서 추풍령까지는 샘이 없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떨어져도 물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즉석 회의를 통해 무리를 해서라도 추풍령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무거운 짐을 빼내 농가 옆에 보관한다. 분실 우려? 그냥 믿는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조처는 없다.

▲ 중천에 달이 뜬 백두대간에서의 막영.

괘방령에서 가성산(657m)까지는 대단한 오르막이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살짝 내려섰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1리터 남짓 남은 물로 네 사람이 눈치껏 입을 축인다. 가성산을 지나 장군봉(624.8m)에 이를 쯤에는 거의 패잔병 같은 기분이 든다. 잘 먹은 것? 아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건 물이다. 야영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아주 현명했던 것 같다.

햇살이 길게 눕기 시작하자 눌의산 정상이다. 눈 아래 추풍령(210m)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보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갈증이 가신다. 비구름처럼 무거워진 몸을 벗어난 마음은 한달음에 추풍령 마루에 선다.


즐거운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제언(4)

배낭 속에 식물도감을

들꽃과 눈맞춤하며 걷는 산길은 즐겁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을 때의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고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낭패스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장기 종주 산행의 경우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럴 경우 차선책은 디카에 담기다. 나의 경우는 수첩에 특징적인 면만 그림으로 그린 다음 뚫어지게 바라보며 머리 속에 입력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에서든 디카에 담아와서든 책을 보고도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과의 변별 요소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역시 전문가에게 묻는 게 최고다. 나의 경우는 월간山 백두대간대장정의 ‘식생’ 문 필자인 현진오 박사가 기댈 언덕이다. 하나를 물으면 두셋은 더 가르쳐 준다. 독자 여러분들에도 권하고 싶다(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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