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5구간] 삼도봉 르포

‘실종된 봄’ 찾아 삼봉산 싸리숲 허위허위
빼재~삼봉산~대덕산~삼도봉~화주봉~우두령 답사

봄!

산은 온 만신이 간지러운 것이다.
간질간질 가려운 것이다.
옆구리가, 뒷덜미가,
엉덩이가―
아지랑이에 눈도 매운 것이다.
그래 헛치고
그만 웃음이 하마나 터틀려지것다.
―유치환, ‘단장 72’

▲ 삼도봉 정상에서 대덕산을 바라본 모습. 모난데라고는 없는 부드러운 능선이지만 그 사이로 깊은 골짜기를 안고 있다.

어느 계절이 ‘봄’만큼 오관을 골고루 어루만질 수 있을까?

봄의 눈부심은 벚꽃의 흐벅진 육덕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도심 천변에서도 천연스레 고운 양지꽃, 두엄자리 곁에서도 용케 밟히지 않고 피어난 꽃다지, 콘크리트 담장 아래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민들레로 하여 봄은 정녕 눈부시다.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은 또 어떤가. 종다리는 하늘 높이서 사랑 노래를 부르고, 라일락은 주인집 마당보다 골목에 더 푸짐한 향기를 내어 놓는다. 밥상 위에는 냉이와 쑥향이 싱그럽고, 옷깃으로 스미는 바람은 모공을 열고 폐부로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은 “그만 웃음이 하마나 터틀려지것다” 하고 노래한 것일 게다.

이번 대간 종주 구간은 빼재(신풍령)에서 질매재(우두령)까지. 도상 거리 약 38km로 겨울 같았으면 엄두도 나지 않을 거리다. 하지만 지금은 봄, 나들이라도 나선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중랑천이 청계천을 품에 안고 한강으로 흘러드는 어름에 놓인 ‘살곶이다리(사적 제160호)’ 옆 산기슭은 개나리 천지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백두대간의 산허리에는 진달래가 그렇게 만발이겠지, 하는 행복 예감을 하며 한강을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몸을 싣는다.

산 아래는 봄이 가득한데 여기 대간 능선은 아직 겨울

▲ 소사 마을에서 대덕산을 오르는 초입의 호밀밭을 지나는 취재팀.
무주에서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하늘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일부러라도 맞고 싶을 봄비가 아닌가.

빼재(930m)에서 산행 채비를 마치는 순간 예상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봄비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아리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고도는 완강하게 봄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우리는 빼재휴게소 마당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휴게소 주인의 호의로 주유소 건물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예약한다.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를 잇는 726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인 빼재는 이름이 여럿이다. 빼재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 사냥꾼과 도적들이 많아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의 뼈가 가득하였다 해서 붙은 것이라 한다. 뼈의 경상도 사투리가 ‘빼’인 때문이겠다. 무주쪽에서는 고개 아래 동네인 상오정 마을 이름을 따서 상오정고개라 불렀다 한다. 그러다가 다시 신풍령(新風嶺)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농촌 개발이 한창인 시절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제는 ‘수령(秀嶺)’이라는 표지석까지 세워져 있다. ‘뼈’ 가득한 재가 ‘빼어난 재’로 바뀐 것이다. 괜한 시비를 하자면 상징 조작인 셈인데,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한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새벽 같이 밥을 지어 먹고 신발 끈을 조인다. 비 개인 아침 숲의 표정이 해맑다. 포르르 산새라도 날아오르면 생동감이 더할 텐데, 아무 기척도 없다. 그들도 시끄러운 고갯마루는 싫은 모양이다.

도로에 헐린 산허리를 밟고 대간 마루에 선다. 아직 이곳 대간의 등마루는 겨울잠에서 다 깨어나지 않고 있다. 봄의 북상 속도가 고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 산의 대부분이 나지막해서 만만해 보여도 1,000m 이상의 고도는 결코 가벼운 높이가 아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 산의 평균고도는 482m로 아시아의 평균 고도인 960m에 비해 아주 낮은 편이다(한국인의 산악관 고찰―오악과 진산을 중심으로―, 이형석). 하지만 아시아의 평균을 히말라야의 산군들이 높여 놓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000란 높이는 그리 녹록치 않다. 참고로 미국인들이 우리의 백두대간처럼 여기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평균고도도 1,000m 정도다.

▲ 삼봉산 기슭 소사 마을 위 낙엽송숲 앞에서 잠시 들꽃에 넋을 놓고 있다.
잠시 이번 구간 주요 산들의 높이를 미리 살펴보자. 삼봉산 1,264m, 대덕산 1,290m, 민주지산 1,241.7m, 삼도봉 1,177m인데 그 사이사이에도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예닐곱은 된다. 이번 취재에 동행, 처음으로 백두대간 트레일을 걸어본다는 한 사람은 첫날 산행 후 "이 정도 강도면 지리산 종주를 서너 번 하겠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절대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지리산만큼 트레일이 말끔하지 않고, 대피소를 이용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계속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기복으로 오르내림을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산 아래는 봄이 충만한데 겨울에 가까운 등성마루를 걷는 심정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특히 독자들에게 뭔가를 전해야 하는 의무를 진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죄스럽기조차 하다. ‘집 나간 봄을 찾습니다’ 하고 실종 신고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다.

소사고개 향하면서 낭떠러지처럼 급전직하

▲ 삼도봉 오름길. 키작은 참나무와 억새숲 사이로 편안한 길이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하는 가풀막이다.
앙상한 참나무 사이로 살결 고운 철쭉이 무더기로 서 있다. 하나 같이 싹을 내밀지 않고 있다. 30분쯤 걷자 조록싸리와 억새 군락이 나타난다. 무표정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억새 군락을 지나자마자 드문드문 낙엽송이 연초록 잎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그 여리고 고운 싹을 ‘꽃’이라 불러 본다. 다가가 눈 맞추는 것도 모자라 냉큼 배낭을 벗고 디지털 카메라에 담는다. 역시 봄은 봄이다.

해가 산마루 위로 고개를 들자 오히려 시야는 흐려진다. 우리네 봄의 불청객, 황사 때문이다. 1시간쯤 더 진행하자 또 조록싸리와 억새군락이 나타난다. 끝없이 배낭을 잡아당기는 싸리숲을 지나 서서히 키를 높이자 삼봉산이다. 출근을 한 직장인들이 아침 커피를 마실 시간이다. 나는 폐부 가득 바람을 들이킨다.
삼봉산(1,264m)의 정상 표지석에는 ‘덕유삼봉산’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봉우리까지를 덕유산군에 포함시킨 발상인 것 같다. 산경표에도 덕유산 옆에 삼봉이라 병기돼 있다. 향적봉에서 바라봤을 때 이 산의 세 봉우리가 가장 선명한 메 ‘山’ 자 형상으로 보일 것도 같다.

삼봉산을 지나면서 조금씩 키를 낮추는 대간의 등성마루는 동쪽으로 크게 돌아 소사고개를 향하면서부터는 낭떠러지에 가까울 정도로 급전직하한다. 등성마루 가까이는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을 벗어나자 더 미끄러운 진창이다. 이른 봄산행의 통과의례다.

그런데 이런 구간을 여럿이 지나고 보면 산행 경력과 체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바짓가랑이 아래에 묻은 흙의 정도가 그 증표다. 이런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나는 최대한 속도를 줄여 바지의 청결 상태 유지에 온힘을 기울인다(독자 여러분, 부디 ‘잔머리’라고 오해 마시길. 나는 그저 백두대간 종주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고 싶을 뿐입니다).

가파른 기울기가 거의 누그러지자 사람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대간의 정상적인 트레일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고, ‘사유지이므로 출입을 금함’이라는 야박한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옆에는 ‘백두대간 보존법 결사반대’라고 적은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구호에 지나지 않는 말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느슨한 잣대로 보면 ‘편리공생(片利共生)’이고, 엄격히 보면 기생의 관계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착잡한 심정은 거둘 길 없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이 법의 취지가 농촌 사람들의 삶을 옭죄는 데 있는 건 아닐 텐데, 입법과 시행의 과정에서 정부는 왜 세련된 설득의 기술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트레일을 가로지른 철조망 곁의 묵정밭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닝빵에 햄, 치즈, 피망을 곁들인 즉석 햄버거와 커피. 그런데 일행 중 덩치가 크고 뱃구레가 큰 상우 아빠(절대 실명은 밝힐 수 없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 취재에 동행한 이연수씨가 생강나무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말도 안 돼. 한 입도 안 되는 빵조각으로 대간 종주를 하라고? 난 못해, 절대!”

그는 식단을 짠 나에게 농 반 진 반의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무게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싶지 않은 나의 선택은 ‘덜 먹기’밖에 없으니까. 아마 다음 산행에서 그의 배낭은 갖가지 화려한 먹을거리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립서비스를 아낄 이유가 없다.

“상우 아빠, 내려가면 짜장면 곱빼기 사 줄게.”

왕조의 절대 권위보다 더 큰 산의 영향력

점심을 마치고 청보리밭을 가로질러 소사 마을로 내려선다. 보리 수확 후는 여름 배추로 가득할 밭이다. 고랭지 채소농사로 이름 난 곳이다. 보리 밭 옆에 호식총(虎食塚)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보인다. 시루가 얹혀 있는 것으로 보아 호환을 당한 사람의 무덤인 것 같다. 민속학에서는 호식총 위의 시루를 하늘의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시루의 구멍에 물레에서 쓰는 쇠고챙이를 끼워 창귀(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의 귀신)를 누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 이해하고 싶다. 떡시루로 포식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만약 이 돌무덤이 호식총이 아니라면 ‘산멕이’일 것이다. ‘산을 먹인다’는 뜻의 산멕이는 산악신앙의 하나로 산제의 한 형태다. 실제로 강원도 양양의 산골마을에서는 호랑이에게 떡을 해서 먹이는 산제를 행한다고 한다.

소사고개를 지나는 대간 종주자들이라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구멍가게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는 동네 사람에게 귀동냥을 한다. 경남 거창군 고제면 탑선 마을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가 이웃하고 사는 이 동네는 말씨도 한 가지란다. 전북의 무풍면 사람들도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다.

▲ 초점산(삼도봉)과 대덕산 사이 억새능선을 지나는 취재팀.
그러다가 나제통문을 넘어서면서 확연히 전라도 말로 바뀐다고 한다. 그 까닭은 이렇다. 신라 땅이었던 무풍은 본디 무산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무풍현으로 고쳐져서 지금의 김천인 개령군에 속하게 됐다고 한다. 그 뒤 1414년(조선 태종 14)에 무주현으로 편입됐고, 1914년부터 무주군 무풍면이 됐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도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인위적인 행정 구역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산줄기로 갈라지지 않은 한에는 한 마을 정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왕조의 절대 권위보다 더 큰 산의 영향력이다. 이것이 백두대간의 진실이다.

소사고개에서 대덕산(1,290m)을 오르기 위해서는 초점산(1,210m)을 거쳐야 한다. 초점산은 삼도봉으로도 불리는데, 경북 김천, 경남 거창, 전북 무주의 경계를 이룬다. 느긋한 걸음이라면 초점산(삼도봉)까지 2시간, 초점산에서 대덕산까지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초점산에서 대덕산까지의 능선은 부드럽게 허리를 낮추었다가 올라서는 길인데, 키 작은 참나무와 조록싸리, 조릿대,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참나무도 고산의 그것처럼 키가 작은데, 마치 관목처럼 뿌리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것이 이채롭다. 세찬 바람에 맞선 생존 전략인 것 같다.

대덕산은 말 그대로 대덕의 풍모를 지니고 있는 산이다. 산의 덕스러움은 모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 좋기로 이름난 김천의 대표적 물줄기인 감천의 발원지가 바로 이 산이다. 정상부에는 헬기장도 두 개나 있다. 그만큼 너름새가 크다는 얘기가 되겠다.

대덕산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서면 얼음골 약수터가 나타난다. 더 내려가서 덕산재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지만, 맛있는 물을 원한다면 이곳에서 수통을 채우는 것이 좋다. 얼음골 약수터에서 천천히 걸어도 50분쯤이면 덕산재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을 걸을 때는 필히 가끔씩 뒤를 돌아다보아야 한다. 그 때가 마침 석양 무렵이라면 이우는 해에 실루엣을 드러내는 대덕산의 진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삼도봉 화합탑은 외려 지역감정 일깨우는 듯

대덕산이 허리를 낮추어 고개를 하나 여니, 그곳이 바로 덕산재(640m)다. 김천시 대덕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잇는 고갯마루로 30번 국도가 지나는 날씬한 포장도로다. 하지만 교통량은 극히 드물어 주유소도 휴게소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휴게소에는 산삼 판매소라는 안내문을 달고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 그래도 화장실은 개방돼 있어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대간 종주자를 위한 집 주인의 배려인 것 같다.

덕산재에서 30분쯤 진행하면 폐광터가 나온다. 캠프사이트로 더없이 좋긴 한데 광산 폐쇄 후 식생 복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상당히 을씨년스럽다. 계속 방치하면 산사태가 가속화될 것 같다.

▲ 삼봉산에서 내려와 소사 마을로 가는 길.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낸 청보리밭의 푸르름. 바라보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초록.

폐광터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부항령(690m)을 향한다.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잇는 고갯마루였던 부항령. 백두대간의 오래된 고갯마루인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부항현’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의 구실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래로 삼도봉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일대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부항령에서 삼도봉을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두 개나 거푸 넘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제와 달리 기온이 높기 때문이다. 눈은 겨울, 몸은 봄, 발은 여름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사이에 산색이 바뀐 것도 같다. 산허리 곳곳엔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다 내놓고 있고, 찔레도 손을 내밀어 햇빛을 모으기에 바쁘다. 부항령에서 삼도봉까지는 3시간 남짓 거리다. 느긋한 걸음에 중간에 한 끼 해결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 삼도봉 정상에 선 취재팀. 왼쪽부터 이연수, 이원영, 구인모, 윤제학(필자), 김성우 제씨.

드디어 삼도봉(1,177m). 민주지산의 봉우리로 백두대간의 줄기를 이루는 삼도봉은 경북(김천), 전북(무주), 충북(영동)에 걸쳐 있다. 지리산의 삼도봉(날나리봉)이 전남?북과 경남, 대덕산 전의 삼도봉(초점산)이 경남·북과 전북으로 불완전한 삼도인 것에 비해 온전한 삼도봉이다. 정상에 삼도봉 화합탑이 서 있는데, 오히려 지역감정을 일깨우는 것 같아 영 보기에 거북하다.

삼도봉에서 양껏 해바라기를 하며 충분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 걸음을 옮긴다. 10분쯤 내려서면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5분쯤 내려가서 샘물 같은 계곡물을 가득 채워 다시 대간 위에 선다. 40분 가량 진행하자 지도에 1,123.9m라고 표기된 봉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내려서자 밀목재를 알려주는 팻말이 보인다. 밀목재를 지나쳐 1,089.3m봉 아래서 배낭을 부린다. 허기진 배가 더 이상 다리를 움직여 주지 않는다.

▲ 경북(김천), 전북(무주), 충북(영동) 삼도에 걸친 삼도봉 정상에 선 삼도봉 화합탑.

잔뜩 구름 낀 하늘이 아침을 재촉한다. 또 비가 올 것 같다. 날씨도 초겨울로 돌변한다. 미역국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다음 서둘러 짐을 꾸린다. 조끼를 입고도 모자라 재킷까지 꺼낸다. 모자까지 단단히 썼는데도 오한이 들 정도다. 마지막 산행 날이 늘 그렇듯이 바닥난 체력과 무관하게 발걸음이 가볍다. 거기다가 트레일도 좋고 오르내림도 가볍다. 이번 종주 중 가장 편안한 구간이다.

2시간쯤 걸었을까. 성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농사에도 산불 방지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 주는 여유다.

▲ 꽃 같은 신록이든, 한여름 거칠 것 없는 녹음이든, 그 시작은 작디작은 새싹이다. 이슬을 매달고 있는 소나무 새순, 노란 꽃을 달고 있는 생강나무, 버들꽃.

드디어 질매재(730m).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인 양 둘 다 표기돼 있다.

고갯마루 아래의 산허리엔 진달래 꽃불이 환하다. 나는 그 꽃불 하나 가득 담아서 길마 위에 올라앉는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사진 손재식 사진작가

즐거운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제언(3)

-현지 서비스를 최대한 활용하라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으뜸 산줄기라는 말은, 대부분의 명산이 그 안에 포함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비산비야의 형국이 있는가 하면 이름만 들으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산도 많다. 특히 이번 구간처럼 경상, 충청 내륙의 산들은 어쩌면 섬보다 더 접근이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종주자들은 대중교통수단이 닿는 곳까지 와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는데, 더 번거로운 것은 하산 후 차를 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데 있다. 여관이나 민박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대간 종주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어려움은 상당히 해소되었다. 대간 종주자만을 위한 민박집이 생겨났는가 하면 출발점까지 차량 제공을 하거나 하산 지점까지 승용차를 옮겨 주기도 한다. 말만 잘하면 마을 경로당도 잠자리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사람을 생각하여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것.
이번 산행의 기점인 빼재의 경우 휴게소(055-942-5244, 011-8388-5244)에서 차량 이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요금은 기름값+α. 전문적인 영업행위가 아니므로 말본새에 따라서 실비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휴업 중인 주유소 건물을 전문 민박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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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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