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五臺山·1,563.4m)은 백두대간 상의 진고개에서 구룡령에 이르는 구간 일대의 주산으로, 신라시대부터 5만 보살의 진신(眞身=靈)이 상주한다고 전하는 한국의 불교 영산이다.[백두대간 대장정 제22구간 / 갈전곡봉] 문헌고찰
5만 보살의 진신(靈)이 상주하는 영산
삼국유사가 우통수 한강 발원지 설의 원조
특히 5대의 중심봉인 중대에는 고대시절부터 비로자나불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으며, 때때로 근처 상원사 일대에 문수대성이 36가지 형상으로 변해 그 모습을 나투기도 한다는 문수성지로 일컬어져온다.
또한 금강산 보개산(寶蓋山)과 함께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한국 3대 불교 명산의 하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산 안에는 신라시대 이래로 많은 불교문화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동대봉 기슭에 자리한 월정사는 우리나라 31본산의 하나인 대찰로서,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개산한 이후 조선 세조 때 크게 중창됐으며, 경내에는 팔각구층석탑과 약왕보살이라 전하는 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중대봉 기슭에 자리한 상원사는 신라의 보천(寶川) 태자 형제가 개산한 이후 성덕왕 때 중창된 신라 명찰로, 경내에 동종, 목조문수동자상, 중창권선문 등의 귀중한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오대산은 또 조선시대에 선가(仙家)의 수행자들이 선도를 수행하던 명산승지였던 곳으로 보인다. 곧 택리지 산수조에 ‘오대산은 흙산으로 많은 바위와 골짜기가 겹겹으로 싸여 깊숙하게 막혀져 있다···상당(上黨) 한무외(韓無畏·?-1610)는 이곳에서 도를 얻어 혼백이 육신을 떠나 신선으로 화해 갔으므로 수단복지(修丹福地)로 일컫기를 이 산을 제일로 삼는다’고 했다.
또 조선 중기에 조여적(趙汝籍)이 저술한 선가서(仙家書) 청학집(靑鶴集)에도 그의 스승 편운자(片雲子) 이사연(李思淵·1559-?)이 남대 기린봉에서 금선자(金蟬子) 등의 선인들을 만나 선도에 입문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오대산의 혈이 맺혀 있는 최고의 명당처는 곧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으로, 상봉인 비로봉 동쪽 중대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개산한 것이라 전한다. 이 곳은 풍수지리적 견해에 의하면 나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인 비룡함주형(飛龍含珠形)으로 일컬어진다.
이 중대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동대·서대·남대·북대가 중대를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으면서 누대처럼 전망 좋은 오대를 형성하고 있는 산이 오대산이다. 1975년에 진고개 동북쪽 일원의 청학동 소금강을 아울러 우리나라 대표적 명산의 하나인 산악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오대산의 오대 봉이름
현재 오대산 남부의 봉우리들 중에는 이름이 붙은 봉우리가 하나도 없으므로 남대는 오대 중에서도 그 이름과 위치가 가장 분명치 않다. 미수의 오대산기에 ‘장령봉 동남쪽이 기린봉(산)이고, 그 정상이 남대다. 그 남쪽 기슭에 영감사(靈鑑寺)가 있고, 이곳에 사서(史書=조선왕조실록)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현재 영감사와 사각을 재건한 사고지의 배후봉인 1301.2m봉이었음을 살필 수 있다. 남대가 서대 남쪽에 있는 것으로 현재의 호령봉 정남쪽에 위치한 1368.5m봉이나 1336.8m봉을 지칭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으나, 정확하게는 서대 동남쪽에 자리한 영감사의 배후봉임을 알 수 있다. 영감사는 조선 선조 39년(1673)에 사명대사가 바람과 물과 불의 3재를 막을 수 있는 길지라 하여 그 곁에 사고를 건립한 이후 일명 사고사로도 불렸다. 때문에 이 절을 사고의 수직승려나 머물던 암자 따위로 오해할 소지도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본사인 월정사와 함께 수행처로서 개창한 것으로 전하는, 역사가 매우 오래된 사찰이다. 이곳 오대산사고는 조선 후기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보략(璿源譜略)을 보관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의 화를 면한 전주사고본 3부를 재인(再印)하여 춘추관·태백산·마리산[摩尼山]에 보관하고, 그 교정본을 이곳 오대산사고에 소장했다. 그러나 일제 때 일본인들이 이를 가지고 가서 동경대학에 이관했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상당수가 소실되고 당시 교수 등에게 대출해준 책들만 남았다. 금년에 일본에서 이를 서울대에 반환(기증 방식으로)했는데, 오대산 월정사에서는 이를 본래의 소장처였던 이곳 사고지로 옮겨 관리하고자 추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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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발원샘 우통수
위의 내용을 현대적 시각으로 종합해 보면 우통수는 한강의 발원샘이고, 금강연은 낙동강 발원지 황지와 같은 한강의 발원지(發源池·발원소)이고, 우통수가 있는 산봉우리 서대 장령봉은 한강의 발원지역(산)이라 하겠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이어온, 위와 같은 전통적 한강 발원설은 1981년 이형석(한국하천연구소장)에 의해 한강의 최상 발원지역이 태백시 골지천 상류의 금대산 지역으로 문제가 제기된 후(월간山 1981년 5월호 참조) 김강산(태백문화원)과 전상호 교수(강원대) 등에 의해 좀더 발전적으로 조사 연구되어 지금은 발원지역을 태백시 백두대간 상에 자리한 금대산(금대봉·1,418m)으로, 발원샘을 금대산의 1351m봉에 자리한 제당굼샘으로, 발원지(발원소)를 태백시 창죽동의 창죽천 상류, 금대산 북쪽 금대봉골에 지리한 검룡소(儉龍沼)로 보고 있다(<한강의 발원지와 강원도> 강원개발연구원, 2000년 참조). 특히 태백시는 유로(流路)가 끊기는 제당굼샘, 또는 고목나무샘과 같은 발원샘 보다는 둘레 20여m에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오면서 하루 5천여 톤 가량의 지하수를 용출하고 있는 검룡소를 황지와 같은 한강의 공식 발원지로 주장하고 있다. 김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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