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3구간 / 점봉산] 지명
점봉산(點鳳山)의 원이름은 덤붕산
산이름에 많은 덤과 둠은 둥금(圓)의 뜻

비슷한 음의 말들을 한데 모아 보면 그 말들이 한 뿌리에 근거한 것임을 짐작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말들의 친족 관계를 깊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말이 옛날엔 지금과 같이 그리 많지 않은 낱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한다.
한 예로, 지금 말의 마루, 머리, 맏(宗), 모리(모이·뫼)를 모아 놓고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이 뜻으로 보아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졌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고, 이들이 원래는 한 낱말에서 출발한 가까운 친족 관계의 낱말임을 알게 해 준다.


덤, 둠, 줌도 친척말

도막, 동아리(모임)나 덩이, 덩치들도 서로 친척 관계에 있는 말무리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용사나 동사의 둥글다, 덩그렇다, 동이다, 뒹굴다 등의 말도 둠을 뿌리로 하는 가까운 친척말이다.

묶어서 한 덩이로 만든 묶음이나 수효, 또는 사물과 사물을 잇는 마디, 언제서 언제까지의 동안 등을 나타내는 동도 돔이 그 원천일 것으로 보인다. 동안(間)도 돔과 안(內)이 합쳐진 돔안이 변한 말로 보고 있다. 집 주위를 흙이나 돌로 쌓은 울타리를 담이라 하는데, 이것도 돔, 둠과 같은 말로, 둥글다는 뜻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둠, 듬은 또 뜸이 되면서 사이의 뜻을 지니게 갖게 한 듯도 하다.

둠은 돔, 담과 함께 쓴 말로, 이들은 원래 둥금(圓), 덩이 등의 뜻을 지닌 말로 보인다. 한라산을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산봉우리가 둥글어 나온 이름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라산도 둠미(두무미)인 것이다. 하자들은 제주도의 옛이름 탐라도 섬이 둥글기 때문에 나온 이름인 담나(둠나)가 원이름일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보면 또 다른 이름 탐모라(耽毛羅)의 탐모도 두무(두모)의 음과 너무 가까워 같은 뜻을 지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간다.

둠, 듬은 뜸이 되어 마을에서 위치 개념의 집무리를 뜻하기도 해서 위뜸, 아래뜸 같은 말이 나오기도 했다. 둥지, 두멍, 둠벙, 둥구럭(圓籠) 등의 말도 둠이 그 바탕일 것이다.

▲ 충남과 전북에 걸쳐 솟은 대둔산. 대둔은 '크게 둥근'이라는 뜻이다.

대둔은 ‘크고 둥근’의 뜻

충남 논산-금산과 전북 완주 사이(878m봉), 경기 연천과 개풍 사이(767m봉), 경북 영덕과 청송 사이(799m봉), 전남 해남 현산면과 북평면 사이(762m봉) 등에 있는 대둔산(大屯山·大芚山)도 둠 계통의 대표적 이름이다.

갈재(蘆嶺) 산줄기가 김제 만경평야를 향하다가 운장산 못미처 금산땅에서 서쪽으로 떨어져나와 하나의 커다란 뫼무리를 이룬 완주의 대둔산은 마천대(摩天臺)를 정상으로 하고 사방으로 능선을 뻗쳐 기암괴석과 수목을 섞으며 수려한 산세를 펼쳐 남한의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대둔에서의 둔은 둠이다. 이 둠은 둥글다의 뿌리말이니 둔산(屯山)은 둠뫼로 둥근 산의 뜻이 된다. 그러니, 대둔산(大屯山)은 큰둠뫼(한둠뫼)인 것이다. 제주의 한라산도 원래 둠아뫼(頭無岳·頭毛岳·두무뫼)로, 이 역시 둥근 산의 뜻에서 나온 듯하다.

-진산은 한라산이며 고을 남쪽에 있다. 두무악 또는 원산이라고도 한다(鎭山漢拏在州南, 一曰 頭無岳, 又云 圓山) <세종실록지지 제주목>
-또 두무악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봉마다 평평하기 때문이며, 또 원산이라고도 하는데…(’一云 頭無岳 以峰峰皆也 一云 圓山) <동국여지승람 한라산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도 한라산의 별칭 원산을 봉우리의 꼭대기가 평평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적고 있다. 탐라나 탐모라는 둠나라(圓地)의 뜻이다.

한라산이 원형인 데다가 바다로 둥글게 둘러싸인 섬이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둠뫼, 두무뫼의 뿌리말인 둠은 단순히 둥글다는 뜻만 아니라 뭉침(團), 덩이(體), 둘림(周) 등의 뜻을 포함한 말이기도 해서 더미(덤+이), 덩지(덤+지), 덩어리(덤+어리), 동아리(돔+아리·같은 목적으로 한 패를 이룬 무리), 둥지, 둥우리(둠+우리·둥주리), 두멍(크고 둥근 가마), 도막, 동그라미, 두메, 뜸(한 동네 안에서 따로따로 몇 집씩이 모여 있는 구역), 담, 둠벙(溜水池), 동이다, 뒹굴다 등의 말을 낳았다.

둠은 두르다의 명사형 두름이 줄어 된 말이기도 해서 둘레, 두름(물고기 엮음), 들러리, 돌리다, 구르다(두르다), 도로(反·復), 도리어(反하여) 등의 말들과도 서로 먼 친족 관계를 이루고 있다. 둠(담)은 일본으로도 건너가 다마(タマ·玉·珠), 아다마(アタマ·頭), 다무로(タムロ·屯), 쓰부라(ツブラ·圓) 등의 말을 이루게도 했다.


둠뫼가 두무산, 두모산으로

둔지미(屯山·芚山·屯芝山)라는 작은 산이 충남 예산 덕산면, 전북 완주 봉동읍, 대구 동구에 각각 있는데, 원래 둠재에 뫼가 덧들어가 둠재뫼로 되었다가 굳혀진 이름으로 보인다.
-둠+재(山)=둠재
-둠재+뫼=둠재뫼 > 둠지뫼 > 둔지미
이 산이름으로 해서 예산, 완주, 대구에 각각 둔리(屯里), 둔산리(芚山里), 둔산동(屯山洞)이란 행정지명이 생겼다. 대구에도 돈지봉(敦志峰·131m)이라고 표기되는 둔지미가 있다. 북제주군 구좌읍에는 둔지오름(屯地峰·287m)이 있다. 둠은 두무, 두모, 두미로 연철되어 두무악 외에도 많은 땅이름을 낳았다.

-두무덕(斗武德) 함남 북청 가회면 / 두무산(斗霧山) 경남 거창-산청-합천, 1,038m / 두무산(杜武山) 황해도 곡산, 1,186m / 두모산(頭모山) 함남 안변 근처 / 두미산(頭尾山) 평북 안주 동면

경기도 개풍의 덕물산(德勿山), 덕유산 북서쪽의 두문산(斗文山), 강원도 통천의 두문령(杜門嶺)도 각각 두물뫼, 둠뫼, 둠재의 한자식 표기다. 둠은 덤, 돔으로도 되어 도마, 도매, 도미로 되면서, 강원도 화천과 경기도 가평 사이의 도마치(道馬峙), 평북 자성의 도매봉(桃梅峰), 선천의 도미라산(都彌羅山) 등의 이름을 만들었다.

또, 덤은 더미로 되었다가 모음동화로 데미(대미)가 되기도 했다. 대미산(大美山) 강원도 평창 방림면, 충북 제천 덕산면, 전남 여수 돌산읍 / 대미산(大眉山) 충북 충주 살미면, 684m.

또, 대마, 대모로도 되어 충북 음성과 경북 봉화의 대마산(大馬山), 인천 강화의 대모산(大母山)이란 이름을 낳았다. 경남 거창의 흰대미산(흰독더미산·白磊山)과 마금대미(막은데미산), 경북 칠곡의 숲데미산(石積山), 경남 거창-전북 무주의 대마산(大馬山), 경북 경산-영천의 대마산(大馬山), 경주-영일의 두마니 등도 모두 둠(덤) 관계의 산이름들이다.

데미는 태미, 퇴미로 되어 강화도에는 퇴미산(退眉山·退嵋山)으로 표기되는 태미가 있고, 같은 섬에 퇴미(退嵋), 퇴미재 등의 이름도 깔리게 했다. 퇴미산, 퇴밋재는 충남 청양과 전남 강진 옥천면 등에도 있다. 전남 신안 장산면, 황해 연백 유곡-도천면에 있는 토미산(兎尾山), 경남 함양 안의면의 투무산, 강원도 회양 상북면의 연토미(淵吐美)도 퇴미(더미)를 바탕으로 한 이름들이다.

둠 지명은 옛 백제 땅에 많아

읍을 일러 담로라 하는데, 중국말의 군현과 같다.
-그 나라에 22개 담로가 있는데, 모두 아들이나 그 겨레붙이가 이를 맡아 다스리고 있다(謂邑曰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第宗族分據之)<양서 백제조>
-송양왕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여 왕은 그 땅을 다물이라 하고, 고구려 말에 복구한 땅을 다물이라 말하는 까닭으로 이와 같이 이름한 것이다(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麗語謂復舊土爲多勿.故以 名焉)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2년조>

삼국사기엔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고, 열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와 백제를 건국한 듯이 기록했으니, 이들이 가는 곳은 모두 다물(多勿)이 되는 셈이다. 다물은 담(둠)에서 나온 말로 여겨지는데, 이것의 관련지명이 황해도와 경기만 일대에 많이 깔려 있음은 매우 흥미롭다.

산이름에서만도 앞에서 든 두물뫼(개풍), 태미(강화), 퇴미(강화), 토미(연백) 외에 다모뫼(大母山·강화) 등이 있고, 섬이름에서도 두물섬(德勿島)>덕적도(德積島·옹진), 대물섬(大阜島·옹진), 떼무리(舞島·옹진), 두문섬(注文島·옹진), 대미섬(大梅島·황해도 은율) 등이 있다. 인천의 옛 이름 제물포(濟物浦)도 데물(데물개)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고 있다.

또, 두무(杜門洞·개풍 광덕면), 두뭇개(斗武浦·옹진군 용전면)란 마을이름도 있다. 황해도는 두무(杜茂·杜霧)라는 지명이 서흥, 곡산, 평산에 있다. 삼국시대의 둠 계통 지명은 황해와 경기 일원에 특히 많은데, 둠나골(冬音奈忽·강화 일부), 돔골(冬忽·황주), 둠골(冬音忽·연백), 두물골(德勿縣·개풍 일부), 두밋골(冬比忽·개성) 등을 들 수 있다. 삼국 정립 이전의 황해도 이름 대방(帶方)도 대모의 표기로, 역시 둠 계통의 지명으로 보고 있다.

철원의 고구려 때 지명은 모을동비(毛乙冬非)로 털두미로 유추되는데, 나무가 많은 산의 뜻으로 붙여진 듯하며, 털두미가 철두미로 되었다가 한자의 철원(鐵圓-鐵原)으로 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두잉지(豆仍只·연기), 두내산(豆乃山·김제 만경), 동음(冬音·강진 일부), 도무(道武·해남 일부), 두부지(豆夫只·화순 동복면), 둔지(遁支·순천 일부) 등은 각각 등재, 둔매, 둠골, 두무, 둠재, 둔재로 유추되고 있다. 하동의 삼국시대 지명은 한다사(韓多沙)로 한다몰일 것이고, 그 영현의 소다사(小多沙)는 앗아몰일 것이다.


▲ '덤붕산'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둥그렇게 솟아오른 점봉산.

덤붕은 한자로 점봉이 되고

백두대간에는 둠 계통의 산이름이 많지 않다. 이것은 백두대간에 걸친 산들 중에는 꼭대기가 평탄하거나 둥그스름한 산이 많지 않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인제 기림면 지동리, 인제읍 귀둔리와 양양 서면 오가리 경계에는 덤붕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한계령 남쪽 줄기에 위치한 이 산은 높이 1,424m로, 설악산 대청봉과 남북으로 마주보며 설악산 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조선시대에 산골짜기에서 어떤 사람이 몰래 엽전을 만들다가 들켰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근처에서는 꽹과리 소리를 가리켜 ‘덤붕산 돈 닷 돈, 덤붕산 돈 닷 돈’ 한다고 한다.

이 산을 한자로는 점봉산(點峰山)이라고 하지만, 원래 둠 계통의 산이름인 덤붕이다. 아마도 다른 산에 비해 그리 험하지 않고 산머리가 둥글게 보여 이런 이름이 나왔으리라고 본다. 즉, 점봉산은 둥금(圓)의 뜻인 둠을 취했음을 그 산세를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선인지 덤붕산이나 둠붕산이란 이름이 그 산모습에 아주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말했다. “설악이 화려한 재주와 마력을 두루 갖춘 대부쯤 된다고 보면 점봉은 속 깊고 온화한 여인의 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굳이 국어 학자가 아니라도 덤붕산이 한자로 점봉산으로 소리옮김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

덤+붕(蜂) = 덤붕 > 점붕(+산) → 점봉산
ㄷ의 음은 ㅈ으로 잘 변한다. 말에서뿐만 아니라 지명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구개음화(口蓋音化)에 의한 것이다. 덤붕산의 남서쪽 비탈 기슭에 있는 마을인 인제읍 귀둔리 역시 둠 계열의 이름이다. 그 서쪽 하추리의 더디밋재 역시 같은 계열의 땅이름이다.

더+둠(이)+재=더둠잇재>더두밋재>더디밋재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1:50,000 지도에는 이곳의 마을 이름을 더뒤미로 표기해 놓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 내린천이 크게 곡류하는데, 냇줄기 방향에서 보아도 마을 뒤의 산마루가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 둥그스럼하게 보인다. 더디미(더뒤미)는 둠(둥근 산) 옆으로 냇줄기가 돌아흘러 ‘돌둠이’였던 것이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