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2구간 / 갈전곡봉] 르포

고만고만한 오르내림의 반복에 어느덧 조침령
구룡령~갈전곡봉~조침령 구간

구룡령(1,013m)의 밤하늘은 낮고 희붐하다.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지만, 보름을 하루 지난 달빛을 다 삼키지는 못한다. 가끔씩 고개를 넘는 바람이 구름을 흔들면, 바람과 함께 흐르는 달이 구름 사이로 환하게 웃는다. 안개는 대간 마루를 지웠다 되살리기를 반복한다.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예보’에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1,000m가 넘는 구룡령 마루는 겨울을 무색케 한다. 혹시나 싶어서 준비해온 재킷을 입고도 한기를 이겨내기 힘들다. 지금은 구실을 잃어버린 산림문화관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한기가 가신다. 새벽녘 선잠 사이로 빗소리가 끼어든다. 예감이 좋지 않다.

▲ 비 지난 뒤 숲속은 청신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절정의 초롱꽃이 여름의 뒷모습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오전 9시쯤 되자 빗줄기가 굵어진다. 한여름 같으면 즐거이 맞을 만한 수준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욱이 시계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서 사진 취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음 날 출발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관광 버전’으로 하루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는 양양 시내로 차를 몰았다. 일단 이틀 동안 혹사당할 몸뚱이에 아부를 하기로 했다. 양양의 명물 중 하나인 뚜거리탕(양양 사람들이 즐기는 민물고기 매운탕 비슷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낙산사 의상대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뚜거리탕을 다 먹고 나자 비는 그치고, 창밖으로 보이는 설악 일대의 산들이 씻은 듯이 맑다. 역시 사람의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다. 이왕 한뎃잠 자는 거라면 산으로 가지는 의견이 감성과 이성 두 쪽을 동시에 점령해 버린다. 1시간 전 우리의 굳은(?) 결의는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산릉보다 낮은 대간의 산세

다시 구룡령으로 돌아와 대간에 선 시간은 오후 1시. 양양쪽과 달리 구룡령 일대는 구름이 걸터앉아 있다. 그래도 비는 더 올 것 같지 않다. 생태이동통로가 이어지는 초입부터 숲이 무성하다. 나무와 풀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는데도 산색은 지난 달에 비해 훨씬 수굿하다. 맹렬히 타오르던 푸른 기운은 이미 가야할 곳을 알아버린 표정이다. 작은 일에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의 표정과는 천지현격이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꾸준히 오른다. 1,000m가 넘는 봉우리 두 개를 넘는 동안 오르내르기를 반복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꾸준히 오른다. 1100.3m봉과 1121m봉 일대는 혼효림 조성을 위해 인공으로 조림한 지역이다. 2002년에 전나무와 종비나무 각 200그루씩을 심었다는데, 썩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무성한 활엽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맹렬히 타오르던 짙푸른 숲은 어느새 수굿해졌다. 그 푸른 기운은 이제 하늘을 푸르게 하고, 땅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갈전곡봉(1,240m)은 이번 구간을 대표하는 봉우리지만 우뚝한 느낌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숲으로 가려져 전망이 좋지 않고, 서쪽으로 1,200~1,400m대의 우람한 가지줄기가 뻗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쪽으로 뻗은 가지 줄기는 갈전곡봉보다 더 알려진 산들인데, 가칠봉(1,240.4m), 응봉산(1,155.6m), 구룡덕봉(1,388.4m), 방태산(1,443.7m)이 연이어 있다.

이들 봉우리들은 모두 주목 받을 만하다. 삼봉약수와 달둔, 월둔, 살둔이 모두 이들 산이 빚어놓은 계곡을 기대고 있다. 달둔, 월둔, 살둔을 일러 3둔이라 하는데, 이들 모두는 갈전곡봉에서 방태산에 이르는 줄기의 남쪽에 있고, 북쪽으로는 4가리라 이르는 적가리,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가 있다. 모두 계곡가의 따비밭을 이르는 이름인데, ‘가리’란 곧 ‘갈이’의 연음(連音)이다. 대표적 오지마을의 하나인 조경동은 아침가리의 한자말이다. 산이 워낙 깊어 아침에 잠깐 드는 볕에 받을 간다 해서 ‘조경(朝耕)’인 것이다.

갈전곡봉을 우리말로 풀면 ‘칡밭골 봉우리’가 될 텐데, 지금은 칡보다는 참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두루뭉술한 봉우리에 칡넝쿨이 우거져 있을 때는 말 그대로 칡밭으로 보였을 법도 하다.

하지만 갈전곡봉에서 북진하는 대간은 제법 가파른 내리막이다. 왼쪽으로 아침가리골을 끼고 길게 내려서다가 968.7m봉으로 올라선다. 사실 조금 지루하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점봉산과 설악산을 볼 수 있지만 숲과 구름이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눈길을 발 아래로 돌리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북쪽이자 고지대여서 그런지 여름 들꽃들이 지천이다. 초롱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고, 투구꽃과 물봉선, 참취, 곤드레나물도 2세 준비에 한창이다.

평해손씨 묘를 지나자 조그마한 캠프사이트가 나타난다. 여기서 좀더 키를 높이자 968.1m봉이다. 시계청소를 해 놓아서 사방이 열려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다만 동쪽으로 구룡령을 오르는 56번 국도는 눈 아래로 걸린다. 968.1m봉을 내려서면서부터는 고만고만한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내리막이 오히려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1년에 한두 번씩 말썽을 부리는 무릎이 시큰거린다. 오늘 저녁 야영지로 택한 연가리골 샘터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 도무지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 날씨가 덥지 않아서 물을 많이 마시지 않은 덕분에 샘터까지 가지 않아도 물 걱정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연가리골 샘터를 1시간 정도 앞둔 산허리에 맞춤한 캠프사이트가 나타난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자 하늘이 말끔해진다. 숲속으로 내려앉는 달빛이 서늘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텐트 플라이를 가져오지 않은 탓에 레인 재킷까지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바람이 거세다.

혼곤한 잠 사이로 바람 소리가 수시로 끼어든다. 아직 잎이 무성한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든다. 엄청나게 높은 폭포 소리 같기도 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리는 금방이라도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인데, 실제로는 텐트를 그리 흔들지 않는다. 숲에 바람이 부서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간의 주요 지점에 공식 야영장 마련돼야

▲ 끝없이 이어지는 숲의 바다를 유영하듯 걸을 수 있다는 것. 대간 종주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산 속의 기후는 곧잘 달력을 비웃는다.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리는데 손이 시릴 정도다. 어제 내린 비가 급격히 기온을 끌어내린 것 같다. 레인 재킷을 입은 채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연가리골 샘터에 이르자 차가운 기운이 사라진다.
연가리골 샘터의 물은 사실 평소에도 내가 먹고 있는 물이다. 이 물은 진동리를 가로지르는 방태천으로 흘러들어 내린천과 소양강을 거쳐 결국은 한강에 이를 것이다. 과거 우리네 전통 사회는 같은 물을 먹는 단위로 공동체를 형성했다. 같은 우물물을 먹는 마을 공동체는 결속력이 더 강했다. 놀부의 패악 목록 가운데 ‘우물에 침 뱉기’가 들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도시의 식수 문화는 수돗물 문화에서 이제는 정수기나 생수 문화로 바뀌었다. 같은 물을 마시는 생명의 공동체라는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사회의 단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는 건, 생명의 근원이라 해도 좋을 물의 뿌리에 대한 의식의 공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여름에 모든 서울 시민을 한강가로 불러내어 1시간만 뙤약볕 아래 세워 두어도 한강물은 훨씬 맑아질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956m봉을 지나 단풍나무가 많은 곳을 지나면서부터 단체로 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보송보송한 솜털에 잔뜩 땀방울을 매달고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한 학생에게 학교를 물어 보았다. 평소 내가 알고 있던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 대안 중고등학교 아이들이었다. 한국 교육의 모순을 몸으로 보여 주는 아이들이다. 제도 교육에서는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을 하고 있는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부러워할 일이지만,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이 아이들에게는 분명 대안이겠지만 그것이 한국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나는 지금 대안 학교도 또 다른 형태의 교육 불평등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대안 학교의 의미 있는 실험이 어느 정도는 제도권에 전염돼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런 상호 작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안 학교도 또 다른 형태의 특수학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전문가의 기우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한편, 대간 종주를 하는 그 아이들이 ‘극기 훈련’ 따위의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공동체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힘든 일이다. 숨차고, 다리 아프고, 배고픈 게 전부이기가 쉽다. 하지만, 끝난 이후라도 백두대간의 사전적 의미 외에 산과 물, 대지, 그리고 인간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풍나무가 밀집된 곳에서 30분쯤 내려서자 제법 큰 공터가 나타난다. 흔히 대간꾼들이 대야영장이라고 말하는 곳이다. 이 일대도 가을이면 장관을 이룰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지정된 곳 외에 산에서 취사야영이 금지된 나라에서 대야영터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난감하다. 버젓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런데 산림청이나 지자체에서는 트레일을 정비하고 이정표를 세우는 등 대간 종주를 지원한다.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모순인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주요 지점에 데크를 설치한 공식 야영장을 만드는 식의 합리적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옛 조침령길을 취재하기 위해 쇠나드리 마을로 내려서는 길.
대야영장에서 1시간30분쯤 지나자 옛 조침령이라고 쓴 안내판이 나온다. 현재의 조침령으로 찻길이 열리기 전 진동리 사람들이 양양이나 속초쪽으로 나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을 것이다.

옛 조침령 서쪽은 쇠나드리다. 5~6월에 동해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이 어찌나 센지 황소가 날아갈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라 한다. 쇠나드리에서 찻길을 따라 오르면 설피 마을이다. 더 이상 찻길은 없다. 걸어서 대간의 고개인 단목령을 넘으면 한계령 아랫마을인 오색리에 닿는다.

옛조침령(약 700m)에서 조침령(760m)까지는 1시간 남짓 거리다. 고도 차이도 거의 없다. 끝없이 배낭을 당기는 수풀을 헤치면 조침령을 오르는 도로 절개지 옆 난간을 따라 조침령 표석이 있는 곳에 닿는다.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을 잇는 고개로 1984년에 열렸다. 현재는 아래로 터널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이 길도 곧 교통로로서의 구실은 사라질 것이다. 대간꾼들에게는 계속 요긴하게 쓰이겠지만.

북암령과 단목령으로 이어지는 대간은 표석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야 한다. 안내판과 전망대를 세워둔 곳으로 연결된다.

산경표에는 조침령의 한자 표기가 曹枕嶺이다. 우리말로 풀어 보자면 ‘무리를 지어 자고 넘는 고개’쯤이 되겠다. 그런데 현재 신문을 비롯한 글들을 보면 鳥寢嶺이라 하여 ‘새들도 자고 넘어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얘기인 것 같다. 굳이 시비할 것까지야 없지만 전혀 개성이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리 가파른 고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맞장구쳐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백두대간 고샅의 명소

# 곰배령

봄이면 들꽃으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는 곰배령은 일부러라도 가볼 만한 곳이지만 대간 주능선에는 들지 않는 고개다.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포함되며 점봉산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다. 대간 종주길에 이곳을 지나려면 조침령~북암령~단복령~점봉산을 포기하고, 곰배령에서 작은점봉산~점봉산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기계적인 대간 종주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겠다. 이런 방법이 께림칙하면 2~3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빈 몸으로 곰배령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방법도 있겠다.

굳이 대간 종주가 아니더라도 단풍 좋은 계절엔 진동리에서부터 곰배령까지 걷는 것도 멋지다. 가족 여행 코스로 잡아도 좋을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의 하나로 꼽힌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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