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 르포

천지와 합일되는 충만감에 전율하다
도래기재~태백산~화방령~함백산~싸리재~매봉산~피재 구간


▲ 함백산 오르는길. 눈 내린 다음, 하늘과 땅 사이는 큰 바람의 길. 그 가운데서 나무도 돌도 나도 `오직 홀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홀로는, 군중 속의 홀로 같은 배타적 고립이 아니다. 천지와 합일된 듯한 충일감을 안겨 주는 홀로다. 그래서 겨울산은 역설적으로 따뜻하다.

봄이 들어서는 날(立春), 백두대간에 섰다. 그러나 봄은 거꾸로 선 듯했다. 본시 24절기라는 것이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우리 몸에는 철 이른 옷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입춘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기대감이 속절없이 무너질 때, 몸은 당혹한다. 그래서 몸은 이렇게 말한다. ‘2월 추위에 장독 터지고’, ‘2월 바람에 검은 쇠뿔 오그라든다’고.

▲ 도래지개에서 구룡산 가는 길.
도래기재. 강원도 정선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잇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다. 이번 종주 구간은 이곳에서부터 태백시와 삼척군 하장면을 잇는 고갯마루인 피재까지다. 실거리 약 45.5Km로 겨울철이 아니어도 3박4일은 잡아야 무리 없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대부분 구간 종주자는 도래기재~화방재, 화방재~피재까지로 끊는다.

그런데도 취재팀이 도래기재~피재까지를 한 섹션으로 잡은 건 종주 트레일이 서~동, 남~북, 서~동으로 휘돌아서 부록으로 제공하는 지도 한 장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번 구간은 실제 종주보다는 제작 편의를 위해 구획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한국의 헨리 소로가 안 나오는 까닭은?

▲ 도래지개에서 구룡산 가는 길.

도래기재에서 철계단을 밟으며 대간을 오른다. 참나무가 우점한 상태인데 인공조림한 잣나무 사이로 금강소나무의 자태가 돋보인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광채가 눈 위에 푸릇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시작부터 된비알이다. 숨결은 트레일의 기울기보다 더 가팔라진다. 참나무숲의 완고한 표정에 하얀 입김이 겹쳐진다. 백두대간에 우리 몸이 스며들고 있는 모습이다.

눈 가뭄을 걱정했던 지난 번 종주 때와 달리 눈이 제법 쌓여있다. 걸음을 무겁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조금씩 미끄러지면서 균형이 흔들린다. 하루 이상 줄곧 걸어야 하는 종주산행에서는 이런 미세한 군동작도 엄청난 피로로 누적된다. 체력이 국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덕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적어도 산에서 만큼은. 내 몸 가누기도 힘든 사람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노숙자에게 적선을 바라는 것이나 비슷하다.

▲ 올 겨울 들어 경북과 강원 지역의 대간에서는 처음으로 눈 같은 눈을 만났다.

한 시간쯤 지나 산의 리듬에 몸이 적응할 즈음, 임도 하나가 나타난다. 힘이 넘쳐나도 쉬어 가지 않으면 안 될 곳이다. 해발 900m대의 고도가 성큼 눈앞으로 구룡산을 데려다 놓는다. 길가에는 벤치까지 놓아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구룡산(1,345.7m)의 형국은 그 이름의 내력을 스스로 말해 준다.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용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산을 통해 대신 이루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임도를 떠나 두 개의 헬기장을 지나면 다시 대간 마루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온다. 이곳에는 작은 정자까지 갖추어져 있다. 대간 종주자를 위한 국유림관리소의 배려로 보인다. 주말산행처럼 대간 종주도 이제는 우리네 생활의 일부로 깊숙이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을 생각한다. 소로가 2년 2개월 동안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살았던 매사추세츠주 콩고드의 월든 호수는 둘레가 3km밖에 안 되는 작은 호수였다.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의 아버지가 된 소로는 엄청난 높이와 넓이의 자연에서 생태적 삶의 모범을 보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국토의 75% 정도가 산지인 나라에서, 대부분 성인들의 대표적인(아니 거의 유일한) 여가생활인 등산마저 갖가지 이유로 제약 당한다.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관리방식이 너무 권위적이고 기계적이다. 좁은 국토와 낮은 산에 대한 집단적 열등감을 부추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구룡산에서 바라본 태백산 능선의 은근한 풍모. 겨울 나뭇가지 위의 설화가 쨍쨍하다.

김밥만 들고 가서 하루 산행만 하라는 식으로는 이 땅에서 소로는 나오기 힘들다. 가능하면 원시의 자연과 만나게 할 수 있는 고급한 관리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민들의 산행문화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산림청) 차원에서 지역 산악회와 연계하여 백두대간의 주요지점에 무인대피소(산불감시초소로 병용할 수도 있다)를 세우는 것도 자연과 밀착된 산행문화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산을 훼손하지 않고도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며칠이고 산에 머무를 수 있지 않겠는가.

▲ 부소봉에서 바라본 태백산 천제단.

자연친화적인 삶이 결과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현실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눈 가리고 아옹식의 규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괸리가 필요하다. 경사가 급한 곳이나 훼손이 심한 트레일에는 당연히 목재 계단이나 데크를 설치해야 한다. 이것이 자연과 공생하는 길이다. 이것마저 반대하는 환경보호론은 위선이거나 허구다. 구름을 타고 다니며 이슬만 받아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우리는 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을 익혀야 한다.


▲ 구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동북쪽으로 첩첩이 휘어돈다. 화면 상단 좌측이 태백산 일대다.

술 욕심도 오그라들게 하는 추위

두 번째 임도에서 다시 계단을 밟고 절개면 위에 트레일로 오른다. 상당히 가파른 1256m봉을 우회하자 구룡산이 지척이다. 구룡산 정상(헬기장)은 사방 거칠 것 없는 조망을 선물한다. 태백산의 군더더기 없는 우람한 능선과, 뒤로 함백산 정상의 방송 중계시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 아래로 펼쳐진 한미합동 공군훈련장 시설만 지나면 한달음에 태백산에 닿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동쪽으로 신선봉을 거쳐 깃대배기봉으로 길게 돌아 올라야 한다. 족히 하루를 삼키는 거리다.

구룡산에서 바라보는 태백산은 꽉 찬 달 같다. 깃대배기봉에서 부소봉(1,546.5m), 장군봉(1,566.7m)으로 이어지는 등성마루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봉우리다. 눈 덮인 등성마루 위의 나무들은 빛살 같다. 태백산은 분명 ‘크게 밝은 산’이다.

▲ 태백산 천제단.
구룡산을 내려서자 트레일이 한층 선명해진다. 방화선으로 벌목을 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방화선은 신선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1시간 반 정도 길고 지루한 내리막길 끝에서 고개를 만난다. 곰넘이재다. 이 고개 남쪽 마을이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다. 강원도와 경북 내륙 산간 마을을 잇는 고개인 셈이지만 일상적 이동통로는 아니었다. 태백문화원에서 발행한 <태백의 지명 유래>라는 책을 보면, 곰은 검에서 온 말로, 검은 곧 신(神)이니, 신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여서 곰넘이재라는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낼 때 경북 내륙 산간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는 얘기다.

곰넘이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어둠과 추위다. 눈 때문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탓이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지난 달 히말라야를 다녀온 김종현 형이 21살이나 먹은 발렌타인을 꺼내 놓는다. 모두들 환호한다. 투표권을 가지는 나이를 훌쩍 넘긴 발렌타인은 자주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병을 다 비우지 못한다. 추위는 술 욕심도 오그라들게 하는 모양이다.

얼어붙은 대기 위로 별빛이 쨍쨍하다. 한 동안 내 넋은 밤하늘의 것이 되고 만다. 좁은 텐트 안에서 온갖 궁상을 다 떨면서,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 왔는가’ 하고 자문해본 의심덩어리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갓 밝은 세상을 걸어서 신선봉을 오른다. 아주 가파른 직전의 분위기와 달리 무덤이 한 켠을 차지한 정상은 두루뭉실하다. 사방은 10~20년 정도 자란 참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트레일은 동남쪽으로 급하게 허리를 튼다. 실제로 1141m봉까지는 태백산과 멀어지는 길이다. 하지만 태백의 오지랖 속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키를 넘기는 조릿대 사이로 드문드문 눈에 띄는 주목이 그것을 말해준다.

▲ 태백산 천제단으로 오르는 취재팀. 모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염치마저 내팽개치는 집단문화

깃대배기봉에 도착하자 해는 정수리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조릿대밭 사이로 참나무를 세워둔 깃대배기봉은 봉우리라고 할 만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이곳에서부터 천제단 직전까지는 기복이 거의 없는 구릉 지대 같다. 일설에 의하면 측량용 깃대 때문에 이름이 유래됐다 하는데, 독립된 봉우리라기보다는 길고 둥두렷한 태백산 정상부의 남쪽 들머리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깃대배기봉부터 백두대간은 남한 구간이 끝날 때까지 강원도 땅을 지나게 된다.

깃대배기봉에서 장군봉(1,566.7m)까지 약 4Km의 대간 길은 산책로라 불러도 좋을 호젓한 분위기다. 하지만 동네 뒷산의 산책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부소봉까지 끊임없이 펼쳐지는 조릿대밭 사이로 참나무들은 자연의 손만이 빚을 수 있는 눈꽃을 피워 올려놓고 있다. 해발 1,500m를 넘나드는 하늘길은 특별하다.

부소봉 마루의 서쪽을 비껴가면서부터는 주목의 시린 기운이 고산 특유의 고적감을 안겨 준다. 주목 사이로는 철쭉이 무리지어 있다. 철쭉의 앙가슴에서 봄을 예감해 본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눈꽃 터널.
그러나 부소봉을 내려서면서부터 나의 행복감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천제단에서 하단으로 내려서는 사람들의 무례하고도 난폭한 행태 때문이다. 대부분 관광객으로 보이는 그들에게서 내리막을 걷는 사람의 양보 같은 것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등산로치고는 넓은 길의 가운데를 차지하고는 거의 폭력 수준으로 나를 밀쳐낸다.

그 가운데서 나는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 혼자서, 혹은 부부끼리 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로 단체로 온 사람들이 그랬다. 그런데도 옷들은 하나같이 전문 클라이머 뺨치는 수준이다. 제대로 갖춰 입은 외양과는 저 아득한 거리의 가난한 산행문화는 언제나 고쳐질까. 아니 이건 산행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떼거리만 지으면 예의는 두고라도 염치마저 내팽개치는 집단문화의 문제다.

천제단 일대는 장터보다 더 북적댄다. 천제단에서는 돼지머리를 놓고 ‘하늘을 팔고’ 있다. 돈을 놓고 절을 하게 하는 솜씨는 가히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다. 차마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로또 당첨이든 가족의 건강이든, 돼지 머리에라도 빌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너무 애절해 보여서다. 그들을 비난하기도, 동정하기도, 따라하기도 다 힘들다.

신라 때부터 태백산(북악)은 토암산(동악)·계룡산(서악)·지리산(남악)·부악(중악, 팔공산)과 함께 오악의 하나로 기림을 받았고, 고래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이런 곳이 싸구려 장사의 수단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고려 때의 사람인 최선(崔詵)의 예안 용수사기(龍壽寺記)를 인용하여 ‘천하의 명산은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에 가장 뛰어나다. 동남에서는 태백이 가장 뛰어나다’고 적고 있다.

태백산이 영산으로 기림을 받는 것은, 환인(桓因)의 서자이자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운 곳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의 기이편을 보면,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일연 스님은 분명히 태백산 옆에 ‘지금의 묘향산’이라 병기했고, 지리적·역사적 의미로 봤을 때는 ‘백두산’이 바로 그곳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견해다.

▲ 눈 덮인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 겨울은, 푹 쉬어가는 계절이다.
간단히 정리하여,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로서의 태백산은 보통명사에 가깝고, 단군신화의 무대로서의 태백산은 백두산이며, 오늘의 태백산은 신시(神市)의 상징성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라고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을 성싶다.

천제단을 지나서 간식으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화방재를 향한다. 두어 시간이 소요되는 긴 내리막이다. 화방재를 10여 분 남겨 놓은 곳에 산령각이 있는데, 태백산 산령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사후에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단종의 신위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화방재는 어평재라고도 불리는데, 고갯마루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 한다.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어평에 이르러 ‘이곳부터 내 땅(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한편 <태백의 지명유래>라는 책에는 고갯마루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서 화방재라 불렸다고 적고 있고, 혹자는 ‘꽃방석고개’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산행기를 남긴 고 김장오 선생의 글에는 일제 강점기 때 설치된 ‘방화선’의 한 부분이어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쓰고 있다. 나는 김장오 선생쪽에 더 신뢰가 간다.

화방재에 도착하자 어둑살이 돋기 시작한다. 계획보다 한나절쯤 지연이 된 것이다. 올 겨울 제대로 눈을 밟아보지 않아서 상황을 만만하게 본 결과다. 계획대로라면 함백산 아래 만항재에서 야영해야 한다.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체력도 바닥에 가까운 상태다. 계속 밀어붙였다가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목적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미련 없이 계획을 수정했다. ‘집’으로.

▲ 함백산 오름길. 한밝은 세계로 오르는 길.

가끔은 허리 넘는 눈밭을 허우적거리며

이틀 뒤 눈발을 해치며 다시 화방재에 섰다.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눈은 더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데 바람까지 거칠게 등성마루로 눈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또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간 종주자들이 붙여 놓은 표지기들이 유혹적으로 흔들린다.

화방재(930m)에서 함백을 향하는 대간 트레일은 도로 절개면 동쪽의 민가 사이로 나 있다. 폐가가 된 한 집의 마루에 빈 소주병과 종이컵이 산마을의 오늘을 대변하는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낙엽송숲을 지나는 초입은 평화롭다. 조금 전의 스산했던 마음을 다 내려놓게 할 만큼. 10분쯤 지나 묘 한 기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수리봉(1,214m)까지는 된비알이다. 이곳에서부터 창옥봉(1,238m)을 지나 만항재까지는 까탈스럽지 않다. 만항재(1,341m)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는 우리나라 최고 높이다.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을 잇는 고개로 414번 지방도가 지난다.

한때 이곳은 ‘검은 불’의 땅이었다. 이 일대 대부분이 탄광이었던 것이다. 산경표에는 함백산을 대박산(大朴山)으로 적고 있는데,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이겠다. 산업화 초기 ‘대박’의 꿈을 안고 전국에서 모인 광부들로 하여 태백·고한·사북은 또한 불야성을 이루었으니, 대박산은 예언성 지명이었을까. 석탄 산업이 막을 내리면서 도시 자체가 빛을 잃어 가다가 카지노가 들어서고부터는 ‘잭팟’이라는 대박을 노린 전국의 꾼들이 모여들고 있다. 참으로 끈질긴 대박의 꿈이다.

만항재에서 대한체육회 선수촌으로 가는 도로를 만나기까지의 대간길은 (눈만 아니라면) 편안하다. 하지만 눈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최후의 걸음처럼 만들어 놓는다. 사실 무릎을 살짝 넘는 깊이가 걸을 수 있는 상한이다. 허리까지 묻힐 정도가 되면 운행은 불가능하다. 평소 한 시간 거리에 한나절이 소요되니까.

가끔 허리를 넘는 눈에 묻혀 허우적거린다. 바람의 장난이다. 움푹 들어간 부분을 눈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무릎 정도다. 걸을 만하다는 얘기다. 신설이어서 정강이를 팍팍 때리지 않는 것만도 고맙다. 함백산 정상 직전은 코에 눈이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러나 갓 피어오른 눈꽃을 따먹는 즐거움은 최면제이자 진통제이다.

함백산(1,572.9m) 정상은 큰 바윗덩어리를 얼기설기 쌓아놓은 형국이다. 불끈 솟은 그 기운은 남으로 태백, 북으로 매봉·두타·청옥의 기운을 응축시켜놓은 듯하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중함백은 이내 속에 잠겨 있다. KBS와 MBC의 중계시설을 뒤로 하고 철조망이 둘러쳐진 주목 군락과 함께 평탄한 길이 계속되다가 불쑥 솟구치면 중함백이다. 중함백에서부터도 그리 큰 기복 없이 오르내리면서 전체적으로 200m 정도 고도를 낮추었다가 은대봉(상함백·1,442.3m) 전에서부터 허리를 높인다.

▲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는 취재팀. 풍력 발전기가 대지의 수평성을 더 확장시키고 있다.
은대봉에서 허리를 낮춘 대간이 금대봉으로 솟구쳐 오르기 전 잠시 쉬어가려는 듯 길을 열어두고 있다. 두문동재(1,268m)다.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지나고 있어 길로서의 구실은 미약해졌다. 만항재와 달리 제설도 되지 않은 상태다. 이 고개의 서쪽 기슭에 있는 두문동에 얽힌 비극적 전설의 분위기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본디 두문동은 북녘 땅 개풍군 광덕산 자락에 있던 마을로, 72명의 고려 문신과 48명의 무신들이 조선에 반대하여 은거하던 곳이다. 이들은 조선조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두문불출’했고, 인내의 한계에 이른 이성계가 불을 질렀다. 그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흘러들어온 곳이 바로 고한의 두문동이라 한다.

금대봉(1,418.1m) 정상의 헬기장 눈 속에 하루를 묻는다. 요즘 들어 금대봉은 양강 발원봉이라고도 불린다. 한강과 낙동강의 젖샘 중 하구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한강 발원의 상징인 검룡소는 금대봉의 북동쪽 계곡 끝자락에 있다.

금대봉에서 북동쪽으로 휘어지는 대간은 길게 허리를 낮춘다. 잔잔하게 오르내리던 대간은 비단봉을 이루기 전 또 고개 하나를 만난다. 수화밭령이다. 태백시의 화전과 창죽을 잇는 고개로 쑤아밭골로 통하는 고개다. 그런데 이 특이한 이름의 내력은 한자로 적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水禾田(수화전). 벼를 키우는 밭이라는 얘기다. 산비탈에 간신히 밭을 일구던 곳에서 논작물인 벼를 키우게 된 일은 동네 이름으로 삼을 만큼 기념할 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비단봉 오름길은 숨이 턱에 닿게 하는 오르막이다. 정상의 조망은 흐릿하지만 태백시가지와 금대봉, 함백산, 태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단봉에서 살짝 내려서면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으로 연결된다. 밭과 경계를 이루는 주능선으로 가든, 밭을 가로지르든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매봉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유선 방송 안테나가 서 있다. 정상의 형국은 볼품이 없으나 조망은 좋다. 특히 매봉산과 피재 사이의 1145m봉은 낙동정맥이 갈래 치는 곳임을 기억해 둘 만하다.

매봉산에서 피재까지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갈 수 있다. 주능선을 고집할 수도 있고 밭을 가로지르거나 농로를 따라가도 된다. 능선상의 트레일이 아니라고 해서 대간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은 편협한 문자주의(文字主義)다. 우리는 다섯 대의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광활한 눈밭에 백두대간이라는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그리고 농로를 따라 피재에 선 다음, 어둠이 깔리는 검룡소에서 한강의 첫물을 마셨다. 대간이 뱃속으로 들어왔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사진 허재성 기자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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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식생

고산지형 특성 반영한 특별한 식물들
한계령풀, 찝빵나무 등 희귀식물의 남방한계선 이뤄

▲ 태백산의 한계령풀. 중국, 러시아, 한반도의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과 금대봉에서 큰 무리를 지어 자라며, 꽃은 4월에 핀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솟은 소백산을 지나 북으로 달리던 백두대간은 선달산(1,236m) 부근에서 잠깐 동안 경상북도와 강원도 땅을 경계 지은 후 박달령부터 옥돌봉(1,242m), 도래기재를 거쳐 구룡산(1,346m)까지는 경상북도의 품에 안긴다. 구룡산부터는 다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북진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 가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태백산 영역에 이르면서 온전히 강원도로 접어든다. 백두대간이 태백산 정상에서 1km쯤 남쪽에 있는 부소봉(1,547m)에 이르러 경상도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강원도에 들어선 백두대간은 고도를 불끈 높임으로써 위세를 과세한다. 높이 면에서 이전 구간과는 완전히 달라져 함백산(1,573m)을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 태백산(1,567m), 북쪽으로 금대봉(1,418m)이 버티고 서 있는 형국이다. 태백과 함백 사이에 화방재, 함백과 금대 사이에 싸리재, 금대봉 북쪽에 낙동정맥이 갈래를 치는 피재가 있어 이들 높은 산봉을 백두대간으로 이어주고 있는데, 고산지역으로 이루어진 태백산에서 피재까지는 그 거리가 25km쯤 된다.

남한 백두대간의 5개 고산지역 가운데 하나

[대성쓴풀] 남북한을 통틀어 오직 금대봉에만 자라는 한해살이 북방계 식물로, 이런 분포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꽃은 5월에 핀다.
이 구간 남쪽의 백두대간 고도가 1,200m대 전후이고, 북쪽도 두타산(1,353m)에 이를 때까지 평균고도가 1,000m가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웃하는 구간들에 비해서 꽤나 높은 고도를 유지하는 셈이다. 금대봉~함백산~태백산 일대는 남한 백두대간의 주요 고산지역 가운데 하나로서 설악산 지역, 오대산 지역, 소백산 지역, 덕유산 지역, 지리산 지역과 견줄 만한 곳이다. 지리산에서 내륙을 관통해 북동진하며 달려온 백두대간이 숨을 고르는 곳, 백두산에서 남쪽을 향해 달려온 백두대간이 낙동정맥을 분기한 직후 남은 힘을 모아 높이 솟아 오른 지역. 이곳이 바로 태백산-함백산-금대봉 지역인 것이다.

이런 지형적 특징은 식물학적으로도 큰 사건들이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북방계 식물들 가운데 특별히 귀한 것들이 바로 이 지역에서 분포의 남방한계선을 이루고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백두대간의 어느 산이나 한두 종의 북방계 식물이 남방한계선을 이루지 않는 곳이 있지만, 이곳처럼 많은 종이, 그것도 특별한 종이 생육하는 곳은 드물다. 금대봉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대성쓴풀과 개병풍, 함백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분홍바늘꽃과 노랑투구꽃, 태백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좀미역고사리, 찝빵나무, 숲바람꽃, 한계령풀 등이 분포의 남방한계를 이루는 식물들이다.

[분홍바늘꽃]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최근 함백산에서도 발견됐으며, 꽃은 6~7월에 핀다.
대성쓴풀은 금대봉 북쪽 해발 900m쯤 되는 계곡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용담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 몽골, 러시아, 중국 등지에 자라는 북방계 식물로서 북한에도 자생하지 않을 정도로 고위도 지방에 분포한다. 이런 식물이 이곳에 분포하는 것은 식물지리학적으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대성쓴풀이 금대봉에서 발견되어 알려진 것은 1984년으로, 환경부가 이 지역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학술조사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식물학자가 미기록 식물을 발견하고 우리말 이름을 ‘대성쓴풀’이라 지었다. ‘대성’은 금대봉을 대성산으로 잘못 부른 데서 비롯됐다. 환경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할 때도 ‘대성산, 대덕산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이었다.

태백 주민들이 대성산이라는 산은 없고, 그 산은 금대봉이라고 항의하면서 생태계보전지역 이름은 바로잡히게 됐다. 하지만, 대성산에서 유래한 대성쓴풀이라는 식물 이름은 그대로 굳어져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처음부터 금대봉을 인식했다면 ‘금대쓴풀’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에도 없는 북방계 대성쓴풀 금대봉에 자생

[노랑투구꽃] 숲속에 자라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 남한에서는 금대봉과 함백산 일대에만 분포하며, 꽃은 8~9월에 핀다.
금대봉에서 자라는 개병풍이라는 희귀식물도 이곳이 분포의 남쪽 한계에 해당한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할 만큼 희귀한 이 식물은 남한에서 자생지가 몇 곳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 자생지가 금대봉인 것이다. 개병풍은 범의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잎의 지름이 1m가 넘는 것이 있을 만큼 큰 식물이다.

함백산의 분홍바늘꽃도 이곳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과거에는 설악산과 대관령에서만 그 분포가 알려져 왔는데, 최근에 이곳에서도 발견됐다. 역시 최근에 필자에 의해 방태산에서도 발견됐지만, 방태산은 함백산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남방한계선은 변함없이 함백산이 된다.

[나도양지꽃] 중부지방의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의 백두대간 능선에서 볼 수 있다.
노랑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금대봉과 함백산 일대에서 발견된다. 남한에서는 이 일대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희귀식물이며, 금대봉의 경우에 해발 900m 지역에서부터 1,200m 지역에 걸쳐 자라고 있다. 함백산에서는 만항재 부근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좀미역고사리는 북방계 상록성 양치식물로 남한에는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태백산에서도 발견됐다. 개체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전해야 할 식물이다.

찝빵나무는 눈측백이라고도 하는 고산성 떨기나무로, 만주 지역부터 태백산에 이르는 지역에서 자란다. 남한에서는 설악산에서도 볼 수 있으며,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주로 너덜이 발달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숲바람꽃] 경기도와 강원도 몇몇 곳에서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며, 꽃은 4월에 핀다.
숲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고산 지역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한에서는 가리왕산, 명지산, 화야산 등지에서 드물게 자란다. 태백산에서는 해발 1,300m 지역의 숲속에 자라고 있지만, 개체수가 많지 않다.

금대봉과 태백산에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한계령풀은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러시아, 중국 등지에도 드물게 자라는 세계적인 희귀식물로서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가리왕산, 점봉산 등 몇몇 곳의 자생지가 더 있을 뿐이다.

기생꽃 등 법정보호식물 4종 분포

[기생꽃] 지리산, 가야산, 설악산, 대암산, 태백산 등에만 드물게 자라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로 꽃은 5~6월에 핀다.
이밖에도 태백산~함백산~금대봉 고산지대에는 여러 종류의 북방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만병초, 기생꽃, 땃두릅나무, 자주솜대, 날개하늘나리 등을 중요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이곳보다 남쪽 지역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남한에서 자라는 곳이 한두 곳밖에 되지 않는 것들이다.

만병초는 강원도 높은 산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상록성 떨기나무로, 태백산 남쪽에서는 지리산과 울릉도에만 자란다. 기생꽃은 태백산 북쪽에는 대암산과 설악산에도 자라지만, 남쪽으로는 지리산과 가야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이다.

땃두릅나무는 강원도 지역에는 몇몇 곳에서 볼 수 있지만, 태백산 남쪽에서는 지리산에만 자란다. 날개하늘나리는 남한 전체에서 금대봉 일대와 덕유산에만 분포한다. 자주솜대는 강원도의 높은 산 몇몇 곳에 자라고 있고, 태백산 이남에서는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에 자라고 있을 뿐이다.

[노루귀] 남부지방을 제외한 전국의 산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색깔이 다양하며 4~5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태백산은 여느 국립공원에 못지않은 생태계를 간직한 곳이다. 현재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몇 해 전 환경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고 했을 만큼 생태적으로 우수한 지역이다. 국립공원 지정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이루어지지 못했다.

좀미역고사리, 찝방나무, 한계령풀처럼 분포상 남방한계선이 되는 식물들은 물론이고 이밖에도 기생꽃, 만병초, 땃두릅나무, 털쥐손이, 자주솜대, 두루미꽃, 산마늘 등 많은 북방계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에 자생하는 식물 가운데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기생꽃, 한계령풀, 노랑무늬붓꽃, 자수솜대 등 4종이 그것이다.

기생꽃은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북방계 식물로서 백두산 등 북부 지방에서는 비교적 흔하지만, 남한에서는 대암산, 설악산, 태백산, 가야산, 지리산 등 단 5곳의 자생지만이 알려져 있다. 태백산에서는 6월 초순에 꽃을 볼 수 있다. 해발 1,300m대에 50여 개체가 자라고 있지만 종교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철책이 설치되는 등 매우 큰 훼손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꽃이 핀 모습이 기생처럼 예쁜 꽃이라는 데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나도바람꽃] 전국의 높은 산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4~5월에 핀다.
노랑무늬붓꽃은 높은 산 숲속, 또는 풀밭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오대산에서 발견되어 신종으로 기록됐으며,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여겨져 오다 최근에는 중국에도 자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대산을 비롯해 주왕산, 소백산, 가리왕산, 보현산 등 많은 자생지가 알려져 있다. 5월부터 꽃을 볼 수 있지만 고도가 높은 태백산에서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볼 수 있다.

자주솜대는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과거에는 북부 지방과 지리산 반야봉 부근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90년대 중반 이후에 설악산,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방태산, 점봉산 등지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6월에 피는 꽃은 처음에는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지만 핀 후에 차츰 자주색으로 바뀐다.

[태백바람꽃] 몇 해 전 태백산에서 발견된 한국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최근 청태산에서도 확인됐으며, 꽃은 4~5월에 핀다.
이밖에도 태백산 숲속에는 모데미풀이나 태백바람꽃 같은 특별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모데미풀은 설악산 이남의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태백산에서는 해발 1,300m 부근의 물가에 자라고 있다.

태백바람꽃은 최근에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발표된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태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태백산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 신종으로 발표한 식물학자는 발표 당시에 태백바람꽃을 회리바람꽃과 숲바람꽃의 교잡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태백산의 나무들도 풀들만큼이나 특별한데, 북방계 고산식물인 찝빵나무, 만병초, 땃두릅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 외에도 3천여 그루나 되는 주목이 자라고 있어 이채롭다. 백두대간을 따라 난 등산로 가에도 몇 아름이나 되는 늙은 주목들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원산지가 검증되지 않은 어린 주목들을 이곳 백두대간 능선에 식재함으로써 태백산과 백두대간의 자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홀아비바람꽃]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식물이며, 꽃은 4~5월에 핀다.
태백산에는 주목 외에도 분비나무, 잣나무 등 고산성 침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이런 침엽수들은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주로 자라고 있는데,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이런 침엽수 사이에는 사스래나무, 신갈나무, 마가목, 함박꽃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있다. 5월 중순쯤 이곳에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면 신록 사이에 검푸른 침엽수들이 대비를 이루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숲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떨기나무로는 까치밥나무, 민둥인가목, 매발톱나무, 철쭉나무, 털진달래, 만병초 등이 있다. 이 고산지역 숲의 밑바닥에는 만년석송, 뱀톱, 꿩의다리아재비, 꿩의바람꽃, 큰산장대, 노랑갈퀴, 나도양지꽃, 눈개승마 등이 자라고 있다.

태백산은 상봉인 장군봉(1,567m) 외에도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1m), 부소봉(1,547m), 문수봉(1,517m) 등 해발 1,500m가 넘는 여러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봉우리의 정상부에는 떨기나무가 자라거나 초원을 이루고 있으며, 문수봉 정상부처럼 너덜지대로 이루어져 식생이 발달하지 않은 곳도 있다.

정상부는 초원 이루고 작은 나무들 자라

[피나물] 중부 이북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를 자르면 붉은 즙이 나오며, 잎과 줄기에는 독이 있고, 꽃은 4~5월에 핀다.
태백산 정상부에는 바람이 많은 탓에 다른 곳에서는 큰키나무로서 크게 자라는 신갈나무가 사람 키만한 높이로 자라고 있고, 크게 자란 나무들은 가지가 한쪽으로만 뻗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철쭉나무, 털진달래, 붉은병꽃나무, 미역줄나무, 꽃개회나무 같은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군봉과 영봉 사이의 몇몇 곳에는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의 고산초원이 발달해 있는데, 이곳에 법정보호종인 노랑무늬붓꽃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이곳의 노랑무늬붓꽃들 가운데는 화피 안쪽에 노란 무늬가 없이 꽃 전체가 흰색인 개체도 더러 발견된다.

태백산의 해발 900~1,400m 지역에는 소나무, 거제수나무, 산벚나무, 함박꽃나무, 신갈나무, 귀룽나무 등 큰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중간층으로는 물참대, 말발도리, 고광나무, 노린재나무, 괴불나무, 백당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풀로는 덩굴개별꽃, 족도리풀,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모데미풀, 노루삼, 동의나물, 피나물, 선괭이눈 등이 분포한다. 이 고도의 일부 지역에는 일본이깔나무가 조림되어 자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도 하다.

태백산 서쪽 일대는 군사시설로 인해 일반인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기 때문에, 군사시설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생태계가 잘 보전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백산 생태계가 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출입이 금지된 이곳에서나마 귀한 식물들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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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 문화

장중함과 온후함 겸비해 地德이 충만
겨레얼의 본향, 국토의 중요지점, 민족의 시원지로 표상화

▲ 태백산 주변의 백두대간 산군.

태백산이 겨레의 정신사와 문화사적 지도(地圖)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참 크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자리매김에 걸맞게 태백산은 정신적으로 겨레 얼의 본향이자, 장소적으로 국토의 중요한 지점이며, 역사적으로 민족의 시원지로 인식됐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유적이고, 당골이라는 지명과 석장승의 옛 유적이 말해주듯 무속과 민속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태백산 자락의 정암사(淨岩寺)는 자장율사가 조성한 수마노탑이 있는 곳으로, 신라 호국사찰 중 하나이기도 하며, 태백산 황지와 검룡소는 각각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로 중요시된다.

더구나 태백산은 한국의 여느 산보다도 장중함과 온후함을 겸비해 지덕(地德)이 충만한 엄뫼(母山)의 성정과 자태를 지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르기를, “금강, 설악, 두타, 태백산이 있는데, 산과 바다 사이에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가 많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물과 돌이 맑고 조촐하다. 간혹 선인의 이상한 유적이 전해 온다”고도 했다.

영동과 영서의 문화적 차이

▲ 천제단.

백두대간에서도 태백산은 허리일 뿐만 아니라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결절점 지역이라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다. 여암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산수고라는 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열두 개의 산을 삼각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육십치, 지리산으로 꼽았는데, 그 중 대부분의 산들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결절점이 되는 산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백두산은 백두대간의 시작이고, 낭림산은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의 가지가 비롯하는 곳이며, 두류산은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출발하는 곳이고, 분수령은 한북정맥의 가지가 뻗는 곳이며, 태백산은 낙동정맥의 출발점이고, 속리산은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 및 금북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며, 육십치는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이 비롯되고, 지리산은 백두대간이 끝맺는 곳인 동시에 낙남정맥의 줄기가 뻗어나가는 지점이다.

알다시피 산맥은 전근대시대에서 문화권역을 구분 짓는 지형적 기준선이 되고, 그 산맥 줄기가 나뉘는 결절지(結節地)는 문화와 역사가 비롯하고 접촉, 접변하며 융합되는 곳이 된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권 중에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결절지인 태백산 권역을 기점으로 하여 영동과 영서, 그리고 영남의 권역과 문화권이 나눠지고 수렴되게 되는 것이다. 강의 유역권이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낙동강 유역권과 한강 유역권으로 크게 나뉘고, 그밖에 영동의 동해안 지역으로 생활공간이 크게 나뉜다.

백두대간을 기준선으로 영동과 영서 문화가 나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방언)만 보더라도 영서지방은 경기도와 인접하기 때문에 표준어에 가깝지만, 영동지방은 전혀 다른 말을 쓰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누룽지를 영서에서는 누룽지, 누렁지, 누룽기라고 쓰는 데 비해 영동지방에서는 소쩽이, 소꼴기, 소디끼, 소데끼라고 한다. 우물이나 상추 역시 표준말과 영서지방은 같은 데 반해 영동지방은 각각 우물을 용굴로, 상추를 불기라는 다른 말을 썼다.

그리고 강원도의 민요와 농악 역시 백두대간을 기준선으로 영동권과 영서권으로 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동 농악은 강원, 함경, 경북의 동해안 권역이고, 영서 농악은 웃다리농악이라고 불러 강원도 영서와 경기도, 충청 혹은 충북 권역으로 구분된다.

이렇듯 지리적으로 영서지방은 경기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아 문화 전파와 교류가 용이한 반면 영동지방은 백두대간의 장벽으로 말미암아 고유한 지역적 문화특성이 형성됐던 것이다.

중부 이북에 백(白) 자 계열 산 많아

태백산의 산이름에 관해 살펴보면 백두산, 소백산과 함께 백(白) 자 계열의 산에 속하며 옛 우리말로는 ??뫼라고 일컬을 수 있다.

백산의 우두머리인 백두산에 대해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전도에서, ‘조선은 땅이 동방의 끝에 있어 해가 남달리 밝기 때문이라고 하거니와 산경(山經)에 말하기를 곤륜의 한 가닥이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맥의 할아비다’고 했다.

▲ 천제단 가는 길.

백두산은 불함산이라고도 불렀는데, 불함이라는 말은 ‘밝은’의 역음으로 광명 또는 신명이라고 볼 수 있고, ‘불(不-火-빛)’, ‘함(간-임금)’이라고 풀이해 빛의 천산(天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최남선은 ‘백(白) 자는 신명(神明)을 의미하는 고어 ? 의 사음자(寫音字)로서 무릇 이 명칭을 가진 산은 고신도(古神道) 시대에 신앙 대상이 되던 산악(백운, 백화, 백악, 백마, 백록)이며, ?은 박, 발, 부루, 비로, 부노, 배래, 풍류 등으로 차자(借字)한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태백산, 장백산, 함백산, 백운산 등과 같이 백 자 돌림의 산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그 분포 상태를 보면 중부 이남보다 이북의 백두대간으로 갈수록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태백이라는 이름에 관해 미수(眉 ) 허목(許穆·1595-1682)은 <미수기언>에서 말하기를, ‘태백산은 문수봉이 가장 높고 큰데, 문수봉의 봉우리 끝이 모두 흰 자갈이어서 바라보면 마치 눈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태백이라는 산이름이 있다고 한다(太白 文殊最高大 文殊絶頂 皆白礫 望之如積雪 山有太白之名 以此云)’고도 했다.

▲ 정암사 수마노탑.
태백산과 황지는 예부터 겨레의 섬김을 받았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의하면, ‘태백산(太伯山)은 부(府)의 서남쪽에 있다. 신라에서 오악(五嶽)을 정할 때 북악(北岳)으로 하였다. 사당이 있는데, 이름을 태백대왕당(太伯大王堂)이라 하였다. 여러 고을 사람들이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황지(黃池)에 관해서도, ‘부의 서쪽에 있는데, 제전(祭田)을 두고, 소재관(所在官)이 제사를 지낸다. 하류로 30여 리쯤 되는 부의 서쪽에 이르러 작은 산을 뚫고 북쪽에서 산 남쪽으로 흘러 나가므로, 천천(穿川)이라 하니, 곧 경상도 낙동강의 근원’이라고 했다.

태백산에 대한 제의와 신앙은 오늘날에도 전승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산제를 지낼 뿐만 아니라, 민중들은 태백산에 대해 바람을 기원하기도 했으니 다음과 같은 자손 기원 기도문이 전해진다. ‘태백산 산신님요 명을 주고 복을 주고, 자손이 나거들랑 수명장수 부귀공명하고, 백대천손 가득하고 창성하며, 금동자 옥동자 귀출같이 길러내어, 백수를 흩날리고 좋도록 점지하여 주옵소서.’

태백산에서도 정상의 천제단은 기원과 유래는 알 수 없으되 고대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으로, 신라에서는 삼산오악 중에 북악(北岳)으로 지정하여 제사를 올리던 유적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옛 기록에 이르기를 환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位太伯)을 내려다보니 과연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었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서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는데, 이를 신시라고 부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었다’고 한 대목에서 태백이라는 이름이 나오며, 일연은 태백이 황해도 묘향산이라는 주를 단 바 있다.

그렇지만 현재 천제단의 중심 위패석에는 한배검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미 민간에서는 이 돌이 서 있는 자리는 겨레의 시조인 단군의 장소임을 상징한다. 태백산 정상부의 천제단은 3개가 있는데, 가운데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 300m 지점에는 장군단이 있고, 남쪽 300m 지점에는 하단(下壇)이 있다. 천왕단은 자연석으로 타원형의 제단을 아홉 단으로 쌓아 9단탑이라고도 부른다. 모두 겨레의 숫자인 3의 비례 질서를 가지고 배치되고 조경된 의미 구조가 흥미롭다.

‘사면의 뭇 산들은 눈앞에 떨어지네’

▲ 태백산 석장승.
태백산의 황지는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옥석 마냥 맑고 투명한 거울로 하늘을 비추고 있다. 황지 물가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태백산의 입김처럼 향연처럼 신비스럽다. 황지라는 지명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황씨 성을 가진 부자가 많은 재산으로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의 표본이요 노랭이였다. 하루는 황씨가 마굿간을 청소하는데 태백산의 한 노승이 시주하기를 청했다. 주인이 꾸짖으며 백미 대신 소똥을 가래에 퍼 던져 주며 “이거나 받아 가라”고 하였다. 노승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받아 가는 것을 보고 있던 그 집 며느리가 민망스럽게 여겨 백미 한 되를 떠서 시부모 모르게 뒤쫓아 가서 노승에게 주며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했다.

노승이 며느리 보고 말하기를 “이미 이 집의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르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하더니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서 구사리 산마루까지 갔을 때 천지가 진동하고 큰 우뢰 소리 같은 것이 나기 때문에 깜짝 놀라 집쪽을 돌아다보니 자기 시가는 둘러빠지고 큰 못이 되었다. 며느리는 시부모와 가족을 생각하고 울며 되돌아가려고 하다가 즉석에서 석불이 되고 말았다. 이 못이 황지의 세 못이며, 미륵불은 지금의 구사리 산마루에 있는데, 높이 9자에 아기를 업고 뒤를 돌아다보는 모양을 하고 길가 숲속에 우뚝 서 있다.

태백산 천제단을 오르던 날, 태백산은 그 이름처럼 고결한 흰 옷을 입고 거룩한 성자처럼 거기에 그렇게 있었다. 그 날 산길을 오르던 모든 사람들은 흰 산(白山)이 방광하는 빛의 미학에 감싸인 축복받은 순례자들이었다.



긴 허공을 바로 지나 자연에 들어서 | 直過長空入紫煙

그제야 알고 보니 절정에 올랐구나 | 始知登了最高

한 덩이 흰 해는 머리 위에 나직하고 | 一丸白日低頭上

사면의 뭇 산들은 눈앞에 떨어지네 | 四面群山落眼前

몸이 구름 쫓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 | 身逐飛雲疑駕鶴

-‘태백산을 오르다(登太白山)’, 안축(安軸·1282-1348)

최원석 경상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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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 풍수

산이 많아 龍도 많은 금수강산
한강·낙동강·오십천 물이 갈리는 삼수령(三水嶺)

▲ 낙동강의 천삼백 리 물길의 발원지인 황지.

풍수지리에서는 산줄기가 살아있는 용처럼 생겨야 된다고 하여 ‘산룡(山龍)’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흐르는 물도 마치 용처럼 굽이치며 흘러야 제격이라고 하여 ‘수룡(水龍)’이라는 풍수용어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 풍수지리계에서는 수룡(水龍)이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에 대해 생소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이 많고 수백 리의 평야지대가 없으므로 수룡풍수이론을 적용할 지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수룡에 대한 풍수지리적 개념이 부족하다.

산에도 용이 있고 물에도 용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는 열차를 타고 몇 시간을 지나면서 보아도 산봉우리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가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존의 산룡법 풍수지리를 평지에서는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수룡법 이론을 활용해야 한다.

수룡풍수법에 관한 이론은 청나라 초기의 명사인 장대홍(蔣大鴻) 선생이 남긴 <비전수룡경(秘傳水龍經)>을 통해 이론이 정립됐다. 장대홍 선생은 평생 풍수지리를 연구한 당대 최고 풍수가였으며, 특히 당대(唐代)의 양균송 선생의 풍수서적을 모아 주석한 <지리변정(地理辨正)>이란 명저를 비롯해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현공풍수에 관한 많은 서적을 남겨 현공풍수의 근대 종사(宗師)로 잘 알려져 있다.

장대홍 선생은 출생지는 상해이며, 상해 근교에서 풍수 연구로 일평생을 보냈는데, 상해 근교는 평지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룡에 관해 연구하게 됐으며, 그 연구 결과물이 바로 <비전수룡경>이다.

풍수고서에 이르기를 ‘수주재록산인정(水主財祿山人丁)’이라 하여 본래 물은 재록(財祿)을 의미하고 산은 인정(人丁)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풍수지리 초보자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의 검룡수.

그렇다면 산이 없는 지역에서는 재물은 있을지라도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오해할 소지가 많은데, 중국 풍수고전 중 유명한 <청낭서(靑囊序)>에 이르기를 ‘부귀빈천재수신(富貴貧賤在水神)’이라 하여 ‘부귀와 빈천이 물에 달려 있다’고 하여 산이 없는 지역일지라도 물이 좋으면 물이 산의 의미인 인정(人丁)의 역할도 한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형 상 수룡법 이론을 적용할 지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이론은 거의 쓸모가 없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홍콩의 풍수지리가들은 도심지에서는 도로를 물로 간주해 본다는 사실을 이용해 즉 수룡법 이론을 도심지에서 양택 이론에 적용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물이란 묘지나 주택을 기준으로 낮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강물이나 연못의 물은 당연히 물이지만 도로나 골목길도 차량이나 사람이 통행하면 동상(動象)이 되므로 물로 간주하여 본다. 다만 도로는 실제적인 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수(假水)’라 부르며, 밤낮없이 흐르는 실제 물에 비해 역량이 적다.

▲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는 태백시내에 있다.

‘龍’ 자로 된 지명은 풍수와 관련된 지명

우리나라는 지명 중에는 풍수지리적 영향과 산이 많기 때문에 용(龍) 자가 들어간 지명이 아주 많이 있다. 예들 들면, 가룡(駕龍·전남 신안군 압해면), 가룡(佳龍·충남 천안시 성환읍), 갈룡(葛龍·전북 진안군 정천면), 개룡(開龍·전남 광양시 보강면), 거룡(巨龍·전북 부안군 백산면), 거룡(巨龍·전북 정읍시 북면), 계룡(鷄龍·전북 김제시 금산면), 고룡(古龍·경남 하동군 진교면), 고모룡(顧母龍·충남 홍성군 홍성읍), 곡룡(曲龍·경남 고성군 고성읍), 골룡(骨龍·경남 창령군 영산면), 광룡(狂龍·경북 성주군 가천면), 구룡(九龍·충남 당진군 당진읍 외 다수), 국룡(國龍·광주시 광산구 송학동), 군마룡(軍馬龍·전북 익산시 여산면), 금룡(金龍·경남 밀양시 상남면), 기룡(己龍, 起龍, 騎龍·전남 나주군 노안면), 기룡(奇龍·경남 양산군 장안면), 기룡(起龍·전북 김제시 금산면), 뇌룡(磊龍·경남 함양군 함양읍), 대룡(臺龍·경남 밀양시 단장면), 대룡(大龍·경남 양산군 장안면), 덕룡(德龍·경북 김천시 어모면), 도룡(道龍·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도룡(倒龍·전남 순천시 송광면), 도룡(渡龍·충북 진천군 문백면), 등룡(登龍·전북 김제시 봉남면), 마룡(馬龍·경남 양산시 동면), 망룡(望龍·전남 순천시 월등면), 명룡(鳴龍·충남 공주시 이인면), 목룡(木龍·경남 함양군 휴천면), 무룡(舞龍·전남 순천시 해룡면), 문룡(文龍·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미룡(尾龍·경남 삼천포시 노룡동), 미룡(美龍·경북 영천시 고경면), 반룡(蟠龍·경북 의성군 다인면), 반룡(盤龍·전북 고창군 부안면 외 다수), 백룡(白龍·전남 나주시 문평면), 복룡(伏龍·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 다수), 복룡(福龍·충북 청원군 남이면), 비룡(飛龍·충남 연기군 금남면) 등이 있다.

삼룡(三龍·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룡(上龍·경북 고령군 성산면), 생룡(生龍·광주시 북구 생룡동), 세룡(細龍·전북 순창군 인계면), 소룡(巢龍·경남 거창군 신원면), 소룡(沼龍·경북 김천시 감천면), 소룡(少龍·전북 군산시 소룡동), 송룡(松龍·전남 강진군 옴천면), 수룡(水龍·경북 경주시 건천읍), 승룡(昇龍·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룡(新龍·경남 김해시 진영읍), 쌍룡(雙龍·경북 문경군 농암면), 야룡(野龍·전북 부안군 행안면), 양룡(陽龍·충남 부여군 장암면), 어룡(魚龍·충남 천안시 성환읍 외 다수), 영룡(永龍·전남 나주시 문평면), 오룡(五龍·경남 남해군 창선면 외 다수), 옥룡(玉龍·전남 고흥군 금산면), 와룡(臥龍·전북 정읍시 소성면 외 다수), 외룡(外龍·경남 창녕군 대합면), 운룡(雲龍·전북 정읍시 고부면), 월룡(月龍·충남 연기군 남면), 자룡(自龍·충남 연기군 서면), 자룡(紫龍·전북 고창군 상하면), 장룡(長龍·전북 고창군 상하면), 주룡(舟龍·광주시 북구 운정동), 중룡(中龍·전북 익산시 여산면), 천룡(天龍·경북 경주시 내남면), 청룡(靑龍·경북 예천군 하리면 외 다수), 칠룡(七龍·강원 영월군 하동면), 평룡(平龍·전남 무안군 현경면), 하룡(下龍·경남 의령군 용덕면), 해룡(海龍·전북 고창군 신림면), 화룡(化龍·전북 김제시 용지면), 황룡(黃龍·경북 의성군 점곡면), 회룡(回龍·전남 고흥군 도양읍 외 다수), 횡룡(橫龍·전북 정읍시 감곡면), 흥룡(興龍·경남 하동군 하동읍) 등이 있다.

이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지명 중에는 풍수와 관련된 지명이 아주 많지만, 수룡(水龍)과 관련된 지명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강의 발원지는 금대산 아래 검룡소

▲ 백두대간의 삼수령 안내판.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검룡소(儉龍沼)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금대봉(金臺峰·1,418m) 산자락의 여러 계곡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던 물이 다시 솟은 곳인데, 바로 이곳이 한강 514km의 발원지이다.

과거에는 오대산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대천의 우통수와 창죽천의 검룡소의 합수지점인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두 지점을 실측한 결과 창죽천의 검룡소가 오대천의 우통수보다 약 32km나 더 길다는 것이 밝혀졌다.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 2천 톤 가량 용출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발원한 물은 바로 아래의 20여m의 급경사진 물길을 따라 용트림하며 내려가는 모습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수룡의 모습이다.

검룡소의 계곡물은 사계절 9℃ 정도로 겨울에도 주위 암반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어 신비한 모습을 더해주고 있다. 용이 살고 있다고 해서 검룡소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는데, 풍수지리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기 때문에 강룡(强龍)에 해당된다.

금강의 발원지는 뜬봉샘(飛鳳泉),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儉龍沼),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黃池)라고 하는데, 이렇게 같은 발원지인데도 규모에 따라 각기 명칭이 다르다. 샘[천(泉)]은 물이 솟는 규모가 작고, 소(沼)는 웅덩이의 물이 깊고, 지(池)는 저수지처럼 물의 양이 많은 곳을 지칭한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정선군 임계면의 임계천, 정선읍의 조양강, 영월군의 동강, 그리고 남한강에 이어 한강이 되고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덕항산(德項山·1,070m)과 천의봉(天儀峰·1,303m. 일명 매봉산) 사이에 있는 삼수령(三水嶺·일명 큰피재·해발 920m)은 낙동강, 한강, 오십천 세 물의 발원지가 되어 그렇게 이름이 붙었는데,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태백시에 있는 황지(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고, 오십천의 발원지인 소재한이 있다.

▲ 검룡소 안내석.
삼수령에서 주변의 산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강산이다. 우리나라 풍수고서에 이르기를 ‘아동 산고수려 고왈고려 조일선명 고왈조선 차내문명지상야(我東 山高水麗 故曰高麗 朝日鮮明 故曰朝鮮 此乃文明之象也·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수려하여 ‘고려’라고 하였고, 아침 해가 곱고 밝아 ‘조선’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명의 상이다)‘라고 했는데, 풍수지리를 논외로 하더라도 역시 우리나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금수강산임에 틀림이 없는 고려이며 조선이며 한국이다.

한편 이 지역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는 태백시내에 있는 황지는 523km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는 땅이다. 금대봉 남쪽 기슭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태백시 화전동 용수골의 용소에서 솟아나와 낙동강의 시발점에 되므로 용소가 실질적으로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소에서 약 6km 정도 내려와 시내 중심에 황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이 낙동강 발원지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곳이다. 황부자의 전설로 유명한 이 연못은 상지(上池), 중지(中池), 하지(下池) 3개의 연못으로 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천황(天潢)이라 부르던 곳이다.

천황은 백두산 천지처럼 ‘첫 물웅덩이’라는 의미다. 황지는 우리나라의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고, 각종 고문헌에도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상징적인 의미로서 낙동강의 발원지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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