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4구간] 선달산 식생

조림지가 대간의 낙락장송 밀어낸다
자연성 앗아간 일본이깔나무와 잣나무 조림의 생채기들


▲ 고려엉겅퀴. 한국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가을에 피고,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 백두대간 능선의 신갈나무숲 속에 키가 1m 이상 자라는 것들이 있었다.

백두대간을 따라 형성된 소백산과 태백산의 두 산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지역에 선달산(1,236m)이 있다. 소백산을 벗어나며 잠시 낮아진 고도가 태백산을 향해 가면서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하는 지점, 바로 그곳에 선달산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백두대간은 선달산에서 동쪽으로 꺾여 박달령, 옥돌봉(1,242m)을 거쳐 도래기재에 이르는데, 위도가 거의 높아지지 않고 변함이 없다.

한편, 선달산에서 정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은 백두대간의 늦은목이, 갈곶산을 거친 후 대간을 벗어나서 2km쯤 계속 남진해 봉황산(819m)을 세우는데, 그 산자락 한 귀퉁이를 고찰 부석사에게 내주고 있다.

선달산 남쪽 수계의 중심에 앉은 생달 마을

[가시여뀌]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습한 응달에 자라는 한해살이풀로 전체에 가시 같은 털과 붉은 샘털이 많다.
선달산의 식물을 둘러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생달 마을로 들어선다. 지척에 우리나라 최고의 약수라 일컬어지는 오전약수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생달 마을은 선달산에서 발원한 큰터골, 왕바우골의 물을 받아 흐르는 하천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개쑥부쟁이 꽃을 보며 마을로 들어서면 포도, 오갈피 등을 재배하는 밭이 눈길을 끈다. 큰터골을 거슬러 늦은목이에 오른 다음 선달산을 거쳐 왕바우골로 하산하며 식물을 관찰하려면 마을길을 따라서 계속 올라가야 한다.

골짜기 위쪽으로 민가가 띄엄띄엄 보인다. 까실쑥부쟁이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고, 계곡가 덤불을 타고 오른 개머루는 까만 열매를 익히고 있다. 산쪽 사면은 여느 산과 다름없이 일본이깔나무 조림지다. 조림한 숲 가장자리에 도둑놈의갈고리, 파리풀이 자라고 있다.

[개시호] 전국의 깊은 산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여름에 피며, 줄기에 난 잎의 아래쪽이 줄기를 감싼다.
조림한 이후 식생이 단순해진 산쪽 사면과는 달리 계곡 주변에는 물푸레나무, 단단풍나무 등의 큰키나무 몇 그루뿐만 아니라 생강나무, 쪽동백나무 같은 떨기나무도 남아서 예전에 좋았던 식생을 대변하는 듯하다. 계곡쪽에는 눈괴불주머니, 물봉선, 궁궁이, 미역취, 참취 같은 가을꽃들이 한창이다.

콘크리트로 포장은 되었지만 길이 더욱 좁아져서 이제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듯하다. 길가에는 사람의 간섭이 있는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가시여뀌, 나도송이풀, 산국이 피어 있다. 일본이깔나무 조림지 대신에 졸참나무, 소나무, 쪽동백나무, 신나무, 고추나무, 박달나무 등이 섞여 있는 2차림이 나타나고, 그 밑에서 눈빛승마나 투구꽃처럼 깊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이 있어서, 사람 사는 마을은 이제 끝인가 보다 생각된다.

[궁궁이] 깊은 산골짜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피며, 높이 1m쯤이고,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길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게 수상쩍더니 현대식으로 지은 번듯한 집이 앞을 막아선다. 집과 정원을 꾸민 모습으로 보아 원래 이곳 주민은 아닌 것 같고, 산속에 사는 게 좋아서 들어와 사는 사람인 듯하다. 집 뒤에 서있는 상수리나무 노거수가 인상적이다.

이 집을 지나서도 길은 비포장으로 계속 이어진다. 조림지가 끝났다고 여기고 나서 잠깐, 다시 조림지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잣나무 조림지다. 일본이깔나무숲이나 소나무숲에 비해서 더욱 짙푸른 빛깔을 띠므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조림지 가장자리에 원래 자라던 나무들이 몇 그루 남아 있는데, 층층나무, 소태나무 등이 그것이다.

대간 남쪽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귀화식물들

[노루삼] 숲 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5~6월에 흰 색으로 피며, 열매는 가을에 검게 익는다.
길가에는 고마리, 향유, 신감채 같은 토종 가을꽃들이 다소곳하게 피어 있는가 하면 이에 비해 꽃이 크고 색깔도 진해서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 달맞이꽃, 원추천인국, 망초, 미국쑥부쟁이 같은 귀화식물들도 피어 있다. 미국쑥부쟁이는 근래 들어 전국에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귀화식물로 이곳까지 침투해 세력을 넓히고 있다.

화단에 심기 위해 들여온 원예식물인 원추천인국도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는데, 루드베키아라고도 부르는 북미 원산의 한해살이풀로서, 토착화하여 세대를 이어가기도 하므로 귀화식물 범주에 넣는다. 조금 더 올라가서 만나는 용운사라는 절집 앞에서부터 줄을 맞춰 심겨진 것을 보면 절에서 조경용으로 길가에 심었다가 번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누린내풀]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7~8월에 피며, 전체에서 누린내가 강하게 난다.
용운사 앞에서 왼쪽 계곡쪽으로 들어서야 늦은목이로 갈 수 있다. 생달 마을 길을 따라 이어지는 이 골짜기가 큰터골이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버리고 왼쪽의 숲길로 들어서면 바로 큰터골 상부계곡이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계곡 주변의 습기가 많은 곳에는 개면마, 촛대승마, 진교, 애기괭이눈, 흰털괭이눈, 선괭이눈, 노루오줌, 벌깨덩굴 등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 일대도 조림된 일본이깔나무숲과 잣나무숲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계곡 부근에 고광나무, 노랑물봉선, 물봉선이 자라고 있다.

계곡을 한 번 건너면 잣나무 조림지가 넓게 펼쳐진다. 잣나무숲 속에는 투구꽃, 잔털제비꽃, 졸방제비꽃, 남산제비꽃, 멸가치, 둥굴레 등이 자라고 있다. 잣나무를 조림하면서 냈던 산판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어린 신갈나무 몇 그루가 보이는가 싶지만, 이들 사이에 조림된 어린 잣나무가 더 확연히 보인다. 아래쪽의 큰 잣나무들은 오래 전에 심은 것 같지만, 이곳의 것은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어서 최근까지 조림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둥근바위솔] 전국의 산과 바닷가 바위 겉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피며, 꽃이 핀 후 죽는다.
동자꽃, 나비나물, 은대난초를 보며 올라가면 곧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이른다. 물이 졸졸 흐르는 샘이 있는 이곳 주변은 습기가 많아 풀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개면마, 관중, 가시여뀌, 짚신나물, 바디나물, 파리풀, 물봉선, 곰취, 서덜취, 멸가치 등이 발견된다. 일대에는 잣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이곳에서 20여m 위는 잘록한 고개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백두대간 늦은목이다. 늦은목이에 올라서면 소백산 국립공원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해발 800m로서 높이 1,200m가 넘는 선달산 정상까지는 1.9km의 거리를 올라가야 한다.

고개 너머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쪽으로도 백두대간까지 일본이깔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남쪽은 잣나무 조림지, 북쪽은 일본이깔나무 조림지로 백두대간이 완전히 포위된 형국이다. 일본이깔나무숲 속에는 줄딸기 등 백두대간 능선에 자생적으로는 결코 생육하지 않는 식물들이 조림 과정에서 따라 올라와서 살고 있다. 조림지 속에 자리 잡은 나리난초 군락이 예전의 좋았던 생태를 짐작케 할 뿐이다.

1,000m대까지 일본이깔나무 조림

[만주우드풀] 산속 바위틈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양치식물로, 선달산 구간의 백두대간 능선 바위에 자라고 있었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선달산을 향하면 오른쪽은 잣나무 조림지가 이어진다. 하지만 왼쪽으로는 어린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박달나무도 몇 그루 보인다. 간간이 섞여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은 한 아름이 넘는 노송들이어서, 백두대간이 춘양목의 고장에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노송들은 후세대를 잇지 못하고 있다. 어린 소나무나 발아 중인 소나무 씨앗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대간 남쪽에 조림한 잣나무들이 환경에 적응하여 어린 개체들을 재생산하고 있는 모습을 오히려 쉽게 볼 수 있어서, 앞으로 이곳에서는 소나무나 신갈나무 같은 원래 식생은 사라지고 새로 침입한 잣나무가 주종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가끔씩 아주 오래 된 일본이깔나무가 능선에 올라와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서덜취] 깊은 산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며,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
숲 바닥에는 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산거울이 대군락을 이루어 펼쳐지기도 한다. 큰 소나무들이 숫자가 많아지는 듯하다 다시 어린 신갈나무들이 우점하는 숲으로 바뀌고, 철쭉나무가 터널을 이룰 정도로 무리지어 자라는 곳도 있다.

고도를 더욱 높이면 신갈나무숲이 나타난다. 수령 20~30년쯤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가끔씩 한 아름이 넘는 신갈나무들도 자라고 있어서 세대를 바꿔가며 신갈나무가 이곳의 우점종이 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숲 바닥에는 조록싸리, 나비나물, 고령엉겅퀴, 수리취, 일월비비추, 은대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선달산 정상 부근에 이르면 어른 손목 굵기 정도의 줄기를 가진 신갈나무가 순군락에 가깝게 무리를 짓는다. 가끔 물푸레나무와 거제수나무가 섞이기는 했지만, 나이가 비슷한 어린 신갈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숲 바닥에서는 애기나리, 수리취 등이 보인다.

[수리취]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연한 잎을 떡에 섞어 먹으므로 '떡취'라고 부르며, 잎을 말려서 부싯깃으로 쓴다.
더욱 정상 가까이 다가가면 어린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덩굴지어 자라는 미역줄나무가 보이고, 투구꽃, 개시호, 산꼬리풀, 고려엉겅퀴, 미역취 등이 꽃을 피우고 있다.

선달산 정상은 표지석이 있을 뿐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전망은 그리 훌륭하지 않다. 어린 물푸레나무와 신갈나무가 자라고 있고, 질경이, 짚신나무, 개시호, 오이풀, 쉽싸리, 싱아, 바디나물, 고려엉겅퀴 등이 관찰된다.

정상을 지나 습기가 많은 안부에는 희귀식물 냉초가 자라고 있다. 황악산 구간에서만큼 많지는 않지만, 소백산 정상 부근에 이어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일대에는 당분취와 흰진교도 자라고 있다.

정상을 지난 이후 커다란 신갈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어느 정도 자연성을 회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동자꽃, 어수리, 참이질풀, 속단, 개시호, 여로 등 깊은 산에서 자라는 풀꽃들이 나타난다. 떨기나무인 노린재나무가 숲의 중간층을 이루고 있다.

능선 바위에 만주우드풀, 둥근바위솔 자라

이곳 백두대간 능선에는 부드러운 흙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몇몇 곳에서는 크고 작은 바위들을 드러내 보인다. 이들 습한 바위에는 산일엽초, 바위떡풀, 새끼꿩의비름 등 바위를 좋아하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눈여겨 관찰할 만하다. 이뿐만 아니라 갈라진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박고 사는 만주우드풀, 바위 겉에 살짝 뿌리를 얹고 사는 둥근바위솔도 볼 수 있다. 숲 바닥에서는 큰산장대, 산꼬리풀, 쥐털이슬, 단풍취 등이 보인다.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풀솜대는 빨간 열매를 익히고 있다.

[참이질풀] 중부 및 북부 지방의 산과 들에 자라는 한국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핀다.
정상과 높이가 비슷한 펑퍼짐한 봉우리를 넘으면 곧 남쪽으로 내려서는 길과 마주친다. 이 길이 왕바우골을 거쳐 생달 마을로 다시 내려서는 길이다. 하산을 시작해서 능선으로 난 길을 1시간쯤 따라가면 큰 계곡에 이른다. 능선길 사면에는 참나물, 서덜취, 퉁둥굴레 등이 자라고 있다. 계곡이 제법 커지면 궁궁이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계곡 부근에서 참나물, 서덜취, 투구꽃 등도 꽃을 피우고 있다.

큰개현삼, 눈빛승마, 병조희풀, 물참대 등을 보며 고도를 계속 낮추다보면 어느새 계곡부의 활엽수 종류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주종을 이루던 신갈나무 대신에 당단풍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당단풍나무숲에 층층나무, 산뽕나무, 쪽동백나무 등이 섞여 자라고 있고, 중간층을 고추나무, 다래나무 등이 담당하고 있다. 가을철에 볼 수 있는 하층식생은 별로 뚜렷하지 않은데, 눈괴불주머니, 눈빛승마, 투구꽃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조릿대도 가끔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세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

화전터가 나타나면서 참반디, 개쑥부쟁이, 물봉선, 노랑물봉선, 파리풀, 짚신나물, 가시여뀌, 까실쑥부쟁이, 신감채, 두릅나무 등이 보인다. 오른쪽 계곡이 합쳐지는 지점에서는 뫼제비꽃, 민눈양지꽃, 서덜취 등의 풀과 함박꽃나무, 박쥐나무 등이 보인다. 숲의 상층을 이루는 활엽수로 까치박달이 추가되는 것도 이 부근이다.

[풀솜대]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5~6월에 흰 꽃이 피며, 열매는 가을에 익고,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화전과 산판 흔적이 더욱 뚜렷해지는가 싶으면 이내 잣나무 조림지에 닿는다. 간간이 노루삼, 홀아비꽃대, 누린내풀, 솜나물 등이 보인다. 더 내려가면 일본이깔나무 조림지도 나온다. 심어 놓은 밤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길가에는 개미취, 나도송이풀이 자란다. 무덤, 빈 농가를 차례로 지나면 으아리, 고마리와 등과 함께 귀화식물인 털별꽃아재비가 나타나서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워진 것을 알린다. 이내 생달 마을 윗동네다.

백두대간 고치~도래기재 구간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화군 물야면과 함께 춘양목으로 유명한 봉화군 춘양면을 지난다. 춘양목은 바로 이 춘양에서 나는 질이 좋은 소나무를 일컫는다. 춘양목의 고장을 지나는 백두대간에서 본 현실은 조림한 잣나무와 일본이깔나무가 소나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2005년 9월24일 취재).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