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3구간] 소백산 - 지형지질

중부 내륙 육산의 맹주
거대한 육산의 비밀은 편마암의 수평절리 영향

▲ 소백산 주능선 고위평탄면 전경. 신생대 제3기 중엽 한반도에 발달한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백두대간이 형성되면서 대간을 따라 소백산 주능선과 같은 고위평탄면들이 곳곳에 형성되었다.<사진=김영훈 차장. 헬기 조종=박동하 산림청 산림항공관리소 원주지소 기장>

한반도의 등뼈와 같은 태백산맥의 줄기가 태백산에서 분기하여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산줄기인 소백산맥 첫머리에 힘차게 솟구쳐 올라 이 땅 한반도를 남북으로 크게 구분 짓는 산이 바로 소백산맥의 모산(母山) 소백산이다.

소백산은 백두대간이 거느린 명산 가운데 하나로 예로부터 백두산, 태백산과 더불어 신성시되어온 산이다. 죽령 남쪽의 도솔봉을 시작으로 연화봉~비로봉을 거쳐 국망봉 등 1,000m 이상의 고봉으로 이어지는 약 24km에 달하는 소백산의 산줄기는 장엄하고도 웅자한 산세를 드러낸다. 장쾌하고도 유려한 주능선을 따라 삼봉이라 일컫는 비로봉, 연화봉, 국망봉에서 지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굽이들이 앞뒤를 다투며 거대한 산해(山海)를 이루는 비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준다.

면적 320.5㎢에 달하는 소백산은 웅장한 산세와 더불어 천동계곡, 죽계구곡 등 골짜기마다 깊은 계곡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산자락 전체에 빽빽하게 들어선 삼림과 곳곳에 문화유적과 사찰 등이 산재해 있고, 사시사철 모습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소백산은 태백산과 연이어 있는 산으로 태백산보다 100m쯤 낮은 산이라 해서 소백(小白)이라 명명된 듯하다. 그러나 고봉들이 줄지어 있는 산세는 그 규모와 장대함에 있어 오히려 태백산을 뛰어넘는다. 곡의 깊음 또한 길고 그윽하여 수려한 맛이 태백산보다 훨씬 더 묻어나는 산이다.

소백산이 설악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설경 제일의 명산으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는 이 산이 위치한 지세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북서계절풍이 불어온다. 이때 내륙 깊숙이 진입한 대기는 소백산맥의 높은 장벽에 부딪쳐 강제 상승하게 된다. 이때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는 산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단열팽창으로 냉각되면서 눈으로 변하여 내린다. 바로 동서로 길게 가로놓인 소백산 줄기가 바람을 가로 막으며 커다란 장벽과도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곳 소백산 일대는 눈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속리산~월악산의 암산에서 육산으로 모습 바꿔

한반도의 산들 가운데 육산(肉山)을 대표하는 백두대간의 남단 지리산을 출발해 덕유산까지 온유한 산세를 유지하며 달려온 백두대간이 속리산~조령산~월악산 자락을 거치며 격동적인 암산(巖山)으로 그 형태를 바꾸더니 소백산에 이르러 이내 다시 그 모습을 육산으로 바꾼다.

따라서 산이 크고 골짜기가 깊은 육산을 이루는 소백산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지리산의 세석평전과 덕유산의 덕유평전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릉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소백산이 이와 같이 중부권을 대표하는 토산(土山)을 이루는 것은 이곳 일대의 대부분의 지질을 차지하고 있는 화강암질 편마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백산 일대를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질 편마암은 영남지괴(소백산육괴)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 형성시기가 약 20억 년 전에 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소백산 일대에 분포하는 화강암질 편마암은 화강암과 거의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화강암으로 착각하기 쉽다.

소백산 일대의 화강암은 약 2억 년 전 중생대 쥐라기 중엽에 관입한 풍기분지 일대의 대보화강암과, 죽령과 도솔봉 서편으로 도락산, 황정산 등지 일대에 약 9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에 관입한 불국사화강암이 분포하고 있다.

소백산의 주를 이루는 화강암질 편마암은 지층과 암석에 발달한 절리면을 따라 오랜 기간 침식과 풍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암석의 수평절리가 탁월하게 발달했기 때문에 지층의 수평절리면을 따라 침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침식량 또한 수평적으로 거의 균일했다. 이로 인해 높낮이에 큰 차이가 없는 거의 비슷한 표고를 이루는 능선자락들이 연이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표층에서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 사면에 걸쳐 두꺼운 피복물이 쌓일 수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기반암의 노출이 적은 평탄한 구릉을 이루는 거대한 육산을 이루게 된 것이다. 소백산에서 북한산이나 월출산 등에서와 같은 걸출하고 육중한 암봉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악경관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소백산의 주를 이루는 편마암이 수평절리에 의한 침식을 오래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식과정에서 견고하고도 치밀한 암질을 이루는 암석들의 일부가 덜 깎여나간 채 남게 되었는데, 바로 주능선을 따라 간간히 이어지는 암석 구릉지대가 바로 그것들이다. 신라 말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래려고 자주 올랐다는 전설이 전하는 국망봉 산정에는 소백산 주능선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많은 암석들이 돌탑군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이는 편마암의 차별적인 침식과 풍화에 따른 결과로, 소백산의 전체적인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인근 태백산과 남단의 지리산이 소백산과 비슷한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위주의 육산을 이루게 된 것 또한 소백산과 궤를 같이 하는 편마암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소백산에 발달한 계곡과 능선들은 이 일대의 지반 융기에 따른 단층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을 따라 장기간 침식이 이루어진 결과로 북서~남동 방향의 방향성을 띠고 있다.<사진=김영훈 차장. 헬기 조종=박동하 산림청 산림항공관리소 원주지소 기장>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서서히 솟아올라

소백산 제1연화봉에서 서쪽의 비로봉, 혹은 정상 비로봉에서 동쪽의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바라보면 양쪽 모두 마치 여인네의 몸매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평탄한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구릉으로 이어지는 평탄지형을 두고 지형학 용어로는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소백산 주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와 같은 고위평탄면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다양하고도 복잡한 지질대로 구성되어 있는 이 땅 한반도는 커다란 지각변동 없이 안정된 가운데 고생대(약 5억3천만~2억7천만 년 전)라는 긴 지질시대를 거쳤다. 그러나 중생대(약 2억7천만~6천5백만 년 전)에 이르러 몇 차례 전국적인 규모의 화산과 지진활동을 수반한 가운데 습곡과 단층운동 등의 복잡한 지각변동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국토의 모습이 이전 고생대 당시 보다 더 굴곡이 심한 파동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됐다. 이후 이러한 틀을 유지한 가운데 또다시 신생대(약 6천5백만 년 전~현세)를 거치며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가 이루어져 지표가 심하게 깎여나갔다.

그런데 신생대 제3기 중엽 약 2천3백만 년 전 일본지각판이 한국지각판을 밀어붙이는 지구조적 변동에 의해 한반도 땅덩어리가 크게 융기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동쪽이 서쪽에 비해 크게 융기하는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한반도와 같은 방향을 이루는 낭림산맥, 마천령산맥, 태백산맥, 그리고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남으로 내달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맥이 형성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며 침식을 받아 저평화된 구릉성 평지들의 일부가 커다란 지각변동 없이 지반 융기와 함께 그대로 솟아올라 지금의 높은 고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백산 주능선 상의 구릉성 고원지대, 즉 고위평탄면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 소백산의 고원성 평탄지형은 한반도가 융기하기 이전 다시 말해 소백산맥이 형성되기 이전의 지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화석지형으로 간주된다. 강원도 대관령~선자령을 비롯해 오대산, 태백산, 매봉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등 백두대간을 타고 나타나는 고원성 평탄지형들은 모두 한반도가 신생대 약 2천3백만 년 전 융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지형들인 것이다.

한편 소백산의 경우 주능선을 경계로 북서쪽 단양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반면, 남동쪽 풍기쪽은 급경사를 이루는데, 이는 소백산맥을 따라 전 구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지반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동쪽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크게 작용한 습곡운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맥 또한 동쪽 사면이 서쪽 사면보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백두대간 전 구간에 걸쳐 같은 방향의 지질적인 압력과 힘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산자락으로 지질을 달리하며 발달한 석회동굴

비로봉에서 북쪽 단양의 다리안 국민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천동계곡의 끝자락 천동리에는 석회동(石灰洞)인 천동동굴이 발달해 있어 소백산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보게 한다. 천동동굴은 470m 길이밖에 안 되는 작은 동굴이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석순과 종유석 등의 동굴 생성물이 넘쳐나 밋밋하게만 이어지던 소백산의 부족함(?)을 메워 주려는 듯 마치 지하 세계에 궁전과도 같은 별천지의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더 아래로 고수리에는 우리나라 석회동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 그 옆 노동리에는 노동동굴(천연기념물 제262호)이 있으며, 구인사 쪽 영춘면에는 온달동굴(천연기념물 제261호)이 있어 소백산 북쪽 산자락에는 석회동굴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석회동굴은 왜 소백산 남쪽이 아닌 북쪽 단양쪽에만 분포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석회동굴을 배태할 수 있는 기반암인 석회암이 남한강을 끼고 있는 북쪽 단양쪽에만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분포하는 석회암층은 고생대 약 5억년 전~4억 년 전 사이 우리나라가 적도 이남에 위치할 당시 얕은 바다에 살던 산호, 조류, 패류들의 껍질이나 골격 등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CaCO3)은 빗물이나 물에 잘 녹는다. 지하의 석회암층에 발달한 절리면이나 암석의 틈을 따라 지하수가 침투해 점차 석회암층을 녹여가면서 깎아낸다. 석회암의 용식과 더불어 지하수의 물길은 점차 아래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그 이전에 흐르던 상부의 물길은 빗물이나 지하수의 유입과 흐름이 차단되어 속이 텅빈 공동(空洞, cave)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흑운모 화강암질 편마암이 주를 이루는 소백산산체의 말단부가 석회암과 접하는 곳에 발달한 천동동굴을 비롯한 석회동굴들은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들이다. 그리고 석회동굴들은 그 형성시기가 대략 30만~10만 년 전 사이일 것이라는 것이 동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 천동동굴. 소백산 북쪽 자락에 분포하는 석회동굴들은 소백산 일대 말단부의 편마암과 석회암이 접하는 곳에서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사진=최용근 동굴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단층선 방향을 따라 소백산 계곡과 죽령 들어서

북동 방향의 종주능선을 따라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의 삼봉에서 갈라진 여러 지맥들이 북으로는 북서 방향, 남으로는 남동 방향으로 뻗어 내리며 그 사이에 주봉인 비로봉에서 천동동굴로 이어지는 천동계곡, 국망봉에서 어의곡리로 이어지는 어의계곡, 제1연화봉에서 희방사로 이어지는 희방계곡,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이어지는 비로계곡, 국망봉에서 초암사로 이어지는 죽계구곡 등의 여러 계곡들을 앉혀 놓았다.

그런데 그 계곡들이 하나같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각변동사에 있어 가장 격동이 심했던 중생대 쥐라기 대보조산운동과 신생대 제3기 한반도 지반이 융기하는 과정, 즉 소백산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과 구조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로 해석된다.

소백산이 융기한 이후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과 구조선을 따라 오랜 세월에 걸쳐 하천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곡을 깊게 깎아냈기 때문에 지금의 깊은 계곡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소백산 언저리에 움을 트고 살았던 북쪽의 단양 사람들과 남쪽의 영주 사람들은 서로간에 큰 장벽과도 같았던 소백산의 가장 낮은 산마루에 고갯길을 뚫어 서로를 오갔다. 소백산 줄기 가운데 가장 낮은 구간을 이루는 도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가장 낮은 산마루를 통과하는 고갯길 죽령(竹嶺·689m)이 바로 그 길이다.

문경새재(조령),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3대 관문의 하나였던 죽령 또한 소백산을 반으로 가르며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을 따라 남북 양쪽 방향으로 침식이 크게 이루어진 결과로 낮은 저지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죽령은 이곳 양쪽의 저지대인 곡을 따라 나란하게 길을 낸 고개다.

신라시대 이래로 무려 1,9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충청도와 경상도 땅덩어리를 이어주던 고갯길 죽령, 그러나 선조들의 애환이 굽이굽이 배어있는 죽령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죽령이 아니다. 바로 2001년 소백산 밑으로 4.6km의 죽령터널을 뚫는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가 완공 개통되면서부터 고개로서의 생명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지금은 과거 고갯길의 운치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죽령에서부터 소백산을 타기 위한 일부 등산객들에 의해 간간히 고갯길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십승지의 제1지 풍기분지는 화강암의 차별침식 결과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움푹 파인 영주시의 풍기분지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풍기(豊基)는 말뜻 그대로 ‘풍요로운 터전’이란 의미로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 소백산맥 자락에 평지를 이루고 있어 능히 이곳이 ‘사람이 살 만한 땅’임을 말해준다.

소백산이 품어낸 풍기땅은 일찍이 토양이 비옥하고 물이 잘 빠져 황해도 개성, 충남 금산과 더불어 인삼의 대표적 산지로 이름이 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언서인 정감록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땅은 ‘난세에 재앙을 피해 몸을 보전할 만한 명당’에 속하는 열 곳, 즉 십승지 가운데 제1지로 알려질 만큼 아늑하고 깊은 산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풍기땅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이 땅을 이루고 있는 지질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이는 소백산과 풍기땅의 지질대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소백산 자락에 둘러싸여 움푹 파인 분지를 이루고 있는 풍기땅은 중생대 쥐라기 약 1억6천만 년 전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반면, 풍기분지를 둘러싼 산지는 변성작용을 받은 약 20억 년 전의 소백산 복합 편마암체로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변성작용을 받은 편마암에 비해 침식과 풍화에 약한 특성이 있다. 따라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풍기분지 일대가 주변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소백산지에 비해 보다 빠르게 깎여나감으로써 오늘날 깊게 파인 분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따라서 풍기분지의 형성은 화강암과 편마암의 차별침식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풍기분지 가운데 소백산 언저리에 위치한 금계리는 뒤로 보이는 북쪽의 소백산을 진산으로 하여 마치 금닭이 웅크리고 알을 품는 형상을 이룬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풍수적 길지를 이룬다고 한다. 원적봉~비로봉~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산세 한가운데로 금선정 계곡수가 흐르며 깊은 계곡을 파놓았다. 그 말단부에 금계저수지(금계호)가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 보면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협곡이 과히 제1의 십승지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는 소백산지 말단부의 편마암과 풍기읍 화강암이 만나는 접촉부에서 침식에 약한 화강암이 보다 크게 깎여나감으로써 급경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정상 비로봉과 이웃한 산사면에서 모여들어 흘러내리는 금선정계곡의 풍부한 물이 오랜 세월 곡을 깊이 깎아냈기 때문에 가운데가 움푹 파인 깊은 협곡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금계리의 깊은 협곡 안으로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계곡 물길 하나밖에 없는, 그야말로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갖게 하는 산세를 이룬다.

주능선을 경계로 남북간 뚜렷한 지역차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정상 비로봉에 올라서면, 이곳이 소백산 정상임을 알리는 ‘비로봉’이라 적힌 커다란 돌비석이 나타난다. 돌비석 뒤로는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라고 적힌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지은 시 한 수가 나타난다.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소백산이 이 지역 일대를 경계 짓는 장애물로서의 기능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국망봉에서 도솔봉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진 약 60리의 소백산줄기는 자연적으로 북쪽의 중부 지방과 남쪽의 영남 지방의 경계를 이루게 되면서 두 지역 간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났다.

주능선을 경계로 북으로 충청도쪽의 골짜기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으로 경상도쪽의 골짜기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물길의 운명이 서로 갈렸다. 겨울철 1월 평균기온을 보면 북쪽의 단양이 -5.3℃(제천기상관측소, 2004년)인 반면, 남쪽의 영주는 -3.4℃(풍기기상관측소, 2004년)로서 남쪽의 영주가 더 기온이 높다.

소백산 일대는 대관령~선자령 일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바람이 강한 곳으로 이름 난 곳이다. 차가운 삭풍이 불 경우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로 소백산맥이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푄(fo¨hn) 현상에 의해 남쪽의 영주 지방이 더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여름철(8월)의 경우는 양쪽 모두 22.5~23.0℃로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의 경우는 여름철 8월 강수량은 양쪽 지역 모두 약 345mm로 비슷하다. 연평균강수량을 보면 단양이 1,876mm, 영주가 2,018mm로 양쪽 모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보아 산이 깊고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두 지역 간에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말의 어투에서부터 음식 문화, 생활 습관, 농업 경작 양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우평 백령종합고교 교사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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