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3구간] 소백산 - 지명

백산과 밝산은 같은 이름
소백산·태백산·장백산·함박산 등의 백과 박도 한 뿌리

▲ 소백산 주능선. 우리 조상은 소백산을 태백산과 함께 이백(二百)으로 묶어 하나의 커다란 산무리로 보았다.

태백산 소백산이 산세도 장하구나

달리던 용의 머리 여기에서 수그려

북쪽으로 통한 시내 황간으로 달려가고

서쪽으로 뻗은 산은 적상산을 에워쌌네

봉마다 우뚝우뚝 성벽은 쌓았다만

이 재가 요새란 걸 어느 누가 안단 말고

청주 고을 큰 들판 천리에 트였으니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

二白飛騰脊勢强

神龍於此地中藏

溪通北地趨黃澗

山出西枝繞赤裳

每向高峯增塹壘

誰知平陸是關防

淸州大野開千里

一據秋風便·

-<다산시문집>

소백산과 태백산을 이백(二白)으로 풀어

옛 사람들은 소백산과 태백산을 한 형제 산으로 본 듯하다. 아니, 두 덩어리를 묶어 ‘이백(二白)’이라 하여 하나의 커다란 산무리로 본 것도 같다.

이백은 동남방으로 달려가 있어

형세가 자루 연한 쇠뇌 같으며

二白馳巽維

勢若連臂弩

-<다산시문집> 귀전시초(歸田詩草) 일부

이백의 산세가 강하다는 뜻의, 다산의 이 싯구는 소백과 태백을 별개의 산무리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1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경여(李敬輿)가 상소하기를, ‘문경 북쪽 새재 동편에 이름이 어류(御留)라는 산성이 하나 있는데 혹자의 말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규모는 남한산성의 10분의 9 정도이나 험준하기로는 남한산성과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 속에는 인구 4~5만 또는 가구수 1·2만 호가 들어설 수 있고, 동으로는 태백산과 소백산과 연결되고, 북으로는 월악산, 서쪽으로는 화산(華山),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과 연접해 있어 성을 쌓고 관방(關防)으로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도신(道臣)과 비국(備局)에 명하여 승군을 모집해 절을 짓게 하고 서서히 성 쌓을 대책을 논의하여 정하게 하소서’ 하였다.”(국조보감 제36권 인조조)

옛 문헌들을 보면 이처럼 태백산이 나오는 곳에 소백산이 따라 나오고, 반대로 소백산이 나오는 곳에 태백산이 따라 나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동문선 제69권 백문보(白文寶)에도 태백산과 소백산을 묶어서 서술한 부분이 보인다.

‘신축년(공민왕 10년) 11월에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복주(福州)에 이르렀다. 처음 충광(忠廣)에서 고개를 넘었는데, 관리와 백성들이 난리를 당해 갈팡질팡하여 놀란 노루와 엎드린 토끼처럼 어찌할 줄 몰라 명령하여도 정돈되지 않으니, 임금이 마음속으로 걱정하였다. 고개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푸르고 아득하여 하늘과 땅 사이를 가로지른 것 같은 것이 경상도 일대이며, 고개에서 북쪽으로 태백산과 소백산이 높이 솟고, 그 남쪽으로 둘러 있는 것이 10여 주가 있는데, 복주가 큰 진영이었다.’

특히, 정약용은 자신의 글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을 따로 떼어 이야기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영남성-황서성이란 지금의 경상도다. 이 도에 황수(潢水·낙동강)가 있어 남쪽으로 흐르는데, 물의 근원 가운데 하나는 태백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소백산에서 나온다. 소백산을 따라 내려오면서 황수 동쪽에 있는 것을 영남성으로 하고, 황수 서편에 있는 것을 황서성이라 했다.’(경세유표 제3권)

‘영남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한 데로 모이고 구역은 딴 판국으로 생겼다. 대소백(大小白)으로부터 남쪽 두류산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한계를 이루어 놓았으니, 하늘 뜻이 우리나라 보장(保障)을 이렇게 정해 준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성호사설 경사문)
즉, 소백산과 태백산은 함께 백산(백산)으로 묶어 말할 수 있으며, 앞음절 태(太)와 소(小)는 단순히 크기에 따라 구분해 붙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백산이 겨울이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백(白)을 무조건 희다는 뜻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땅이름(특히 산이름)에서는 그런 뜻으로 붙여진 것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白이라는 글자의 상형문자 형태로 보게 되면, 이 글자는 엄지손가락에 도달하게 된다. 엄지는 바로 으뜸을 말하며, 이것은 바로 높음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백은 지명에서 으뜸(주산)이나 높음의 뜻을 갖춘 것이 많고, 백산(白山)이란 의미도 그런 면으로 주로 이해하게 된다. 많은 학자들은 白이 밝음의 ‘밝(?)’의 음차로 많은 이용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 태백산 천제단. 소백이나 태백은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자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백(白) 자가 들어간 산은 대개 `?`의 음차로 이용된 것이다.

동명(東明)은 ‘새밝’의 뜻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마을 남녀들이 밤에 모여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중행사(國中行事)를 벌였는데, 그 이름을 동맹(東盟)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후한서 동이전에도 ‘10월에 제천의식을 갖는데, 밤에 남녀가 모여 창악(唱樂)을 하였고, 귀신, 영성, 사직에 제사하기를 즐겼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하더라’고 하였다.

상고시대 부족들의 종교와 예술을 종합한 제정일치의 한 본보기인 이 제천의식은 고려시대에 계승되어 팔관회의 의식이 되었다. 동맹은 동명(東明)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나라 일을 의논하고, 그들의 시조인 주몽신, 즉 동명신과 그의 생모인 하백녀를 제사지내는 큰 제천행사였다. 또, 이 의식은 풍년을 기원하고,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농제(農祭)의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제사를 행하는 날에는 남녀노소가 한 곳에 모여 술을 마시고 춤추는 것으로 날 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니, 얼마나 큰 잔치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맹이라는 행사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서 나온 말로 보이는데, ?(새)는 동쪽을 뜻하여 동(東), ?은 밝음을 뜻하여 맹(盟)을 취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제천행사의 지향인 동명성왕의 동명도 그 이름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학자들은 동맹에서 이어져내린 팔관회란 이름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팔관회는 불교의 팔관과 일치되었지만, 그 원뜻은 ??으로, 밝다의 뿌리말인 ?(?)에서 나온 말이며, ??과 그 연원을 같이 하고 있다고 양주동 학자도 말했다. 즉, 팔관은 발간(??)에서 음을 따온 이름이라는 것이다.

‘??기예 나귀 타 나아’ (새벽에 나귀타고 나가)-두시언해(8:32)

여기서 ‘??기’는 ‘갓 밝이’로, 바로 갓(新) 밝은 때임을 가리킨다. 새벽이란 말도 원래는 새로 밝음의 뜻인 ??에서 나온 말이고 보면 결국은 같은 뜻에서 출발한 말인 것이다.

<삼국유사> 제4권 원효(元曉)조에 보면, 원효가 새밝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임을 알게 된다. ‘원효가 태어난 곳의 이름이 불지(佛地)이며, 절을 초개(初開)라 하고 자칭 원효라 한 것도 모두 불일(佛日)을 처음으로 빛나게 하였다는 뜻이다. 원효라는 뜻이 또한 우리말이니, 당시 사람이 해가 돋는다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삼국유사(제4권 원효조).

원(元)은 시작, 처음임을 나타내고, 효(曉)는 밝음을 나타내니, 원효는 새밝의 뜻이다. 이 새밝은 그가 태어난 불지와 무관하지 않음을 <삼국유사>에는 잘 나타내고 있다.

‘잉피공(仍皮公)의 아들 담내내말(談·乃末)은 압량군 남쪽 불지촌 북쪽의 율곡 사라수 밑에서 아기(원효)를 낳았다. 그 마을 이름이 불지인데, 혹은 발지촌(發智村. 弗等乙村)이라 한다.’(삼국유사 제4권 원효조) 양주동은 불지나 발지가 밝이의 뜻인 ?기인 원음 ?디의 한자 표기로 보았다.

삼국유사에는 원효 외에도 해밝이에 해당하는 희명(希明), 달밝이에 해당하는 월명(月明) 등 밝이와 관련된 이름이 나온다. 또, 삼국사기에도 밝이를 한자로 취음한 발기(拔奇)라는 이름이 있다.

??? ?긔 ?래 밤 드리 노니다가(서울의 밝은 달 아래 밤 늦도록 놀며 다니다가)<처용가(處容歌)>

여기서 ?긔?(明期月)은 바로 밝은 달을 뜻하며, 밝이가 옛노래에서도 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박과 백은 밝의 음차인 경우 많아

밝이의 뿌리말인 ?은 광명이나 나라땅의 의미로 씌여 곳곳에 많은 지명을 낳았다. 부리, 부루, 비로, 비, 복, 발, 바라, 보름 등의 음이 들어간 지명 중에는 이 ?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무척 많다. ?고개(赤峴)에서 변한 배오개(梨峴), ?내(列水)에서 변한 배내[뱃내·浿水] 한?에서 나온 한배(長背·長非) 등도 모두 같은 계열의 지명이다.

?은 밝다는 의미로 주로 씌었지만, 붉다(옛날에는 밝다와 붉다의 구분이 없었음)의 어원이기도 하다. 불(火)도 원래말이 ?이며, 발가벗다의 발가, 불알(睾丸)의 불, 박쥐(옛말은 ?쥐, 한자로는 伏翼)의 박 등이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게(正)도 옛말이 ?리이니 이것도 ?다(밝다)는 말의 친족어임을 알 수 있다.

이 ?이 지명이나 인명으로 이용될 때는 어쩔 수 없이 한자의 음을 빌어야 했는데, 발(發), 벌(伐), 불(弗, 佛, 不), 부리(夫里), 부여(夫餘), 부루(夫婁), 비류(沸流) 등 그 음에 가까운 것을 주로 이용하였다. 인명에서 많이 쓰인 박(朴, 泊), 복(卜), 지명에서 많이 쓰인 백(白, 百), 맥(貊) 등도 이 계통이다.

밝다의 훈을 갖는 한자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혁(赫), 소(昭), 명(明) 등이 그 예이다. 또, ?은 불과 음이 비슷하여 이 뜻을 갖는 화(火) 자가 쓰이는가 하면, 벌과도 음이 닮아 원(原), 평(平, 坪) 등의 한자를 빌어 지명과 인명 등에 나타내기도 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도 이 ?에 뿌리를 둔 이름이라 하여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대체로 박(朴)은 ?의 음차(音借), 혁(赫)은 그의 훈차(訓借)로 보고, 거세는 거서간(居西干)과 같은 ?한(?은 새로, 처음, 그리고 한은 우두머리의 뜻으로 시조왕의 뜻)으로 보아, ‘밝은 누리의 첫 임금’으로 새기고 있다. 또, 삼국유사에 그를 불거내왕(弗矩內王)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뉘의 음차로, 밝은 누리나 혁거세(赫居世)와 그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박혁거세뿐 아니라, 박제상(朴堤上)의 박, 복지겸(卜智謙), 복길(福吉, 卜吉), 복규(卜奎) 등의 복도 ?의 뜻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있었을 당시는 성(姓)이 정립되기 이전이어서, 박, 복을 성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옛 백제땅 나주 근처의 복룡(伏龍)은 밝은 산의 뜻인 밝모리로 유추되고 있다. 복은 밝의 음차, 용은 옛말이 미르(미리)이므로 모리(山)의 뜻으로 붙여졌으리라는 짐작 때문이다.

지금 보성땅의 옛 지명 복홀(伏忽)도 밝골로 보고 있고, 공주땅의 옛 지명 소비포(所比浦. 所北浦)나 적오(赤烏)도 새밝골(새붉골)로 유추되고 있다. 부여의 옛이름 소부리(所夫里)나 사비(泗?)도 새밝으로 보기도 한다. 사비근을(沙非斤乙)은 강원도 회양 근처의 삼국시대 지명인데, 이곳의 다른 이름인 적목(赤木), 단송(丹松) 등의 적(赤), 단(丹)으로 보아 새밝은골 또는 밝으너미로 유추된다.

▲ 백두산, 일명 태백산으로도 불리는 한반도 최고봉도 ?에서 비롯됐다.

밝 계통의 산이름들

그렇다면, 이 인명과 지명 등에서 많이 쓰인 ?은 산이름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우리나라의 산들 중 대개 명산이거나 큰 산들에 백(白) 자나 박(朴) 자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들의 대부분이 ?에서 연유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우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百頭山·일명 태백산)을 비롯하여, 장백산, 소백산, 함백산, 박달산, 백산, 북수백산, 간백산, 동백산, 백사봉, 백운산, 박산 등 이 계통의 이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은 한자로 취음될 때 주로 백(白)이 되었지만, 박(朴, 博)이나 벌(伐. 罰)로도 된다. 밝은 땅(陽地)이라는 뜻의 ?달(??, ???)은 배달(倍達)로도 되고, 박달로도 되었다. 지금의 새재(鳥嶺)가 박달재(朴達峙)로도 불린 것이라든가, 충주와 제천 사이의 고개에도 박달치라는 지명이 붙은 것은 그 예다.

백(白)은 밝의 음차이고, 또 희다는 뜻을 가지고도 있어 밝다와 통하므로, 많은 산에 이 이름들이 붙어 있다. 실제, 이 이름을 가진 산들 중에는 현지 토박이들이 아직도 백보다 박으로 많이 발음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백산이 박산이며, 그 원뜻이 밝뫼임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백산(白山)은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화천군 화천읍, 전북 부안군, 평남 양덕군과 고원군 사이, 평북 강계군과 회천군 사이, 함남 문천군과 평남 영원군 사이, 함남 신흥군과 풍산군 사이, 풍산군 웅이면 등에 있다.

산이 높아 늘 구름이 머물러 있어 ‘흰구름산’이라는 뜻에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보통 말해 오는 백운산(白雲山)도 같은 계열의 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발은봉(發銀峰·강원도 남부), 발은치(發銀峙·강원도 북서쪽), 발온치(發溫峙·충남 서부), 발이악(發伊岳·제주도), 발리봉(發梨峰·경기도 중남부), 발봉(發峰·낭림산맥 남부) 등도 밝은, 밝이, 밝 등의 음차로 보고 있다.

대관령 남서쪽 평창군에는 높이 1,458m의 발왕산(發旺山)는 바랑뫼일 것인데, 이 이름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앗(곳의 옛말)+뫼 > ?앗뫼 > 바랏뫼 > 바랑뫼(바랑산)

즉, 양지쪽 산 ‘밝은 산’의 뜻인 발앗뫼가 바랑뫼가 되고 바랑산이 되어 한자로 발왕산이 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이 산 기슭에 바랑고개(바랑재)와 바랑골이라는 마을도 있다.

수호신 산을 밝으로

?은 산이름에 백(白)이나 박(朴)으로 주로 들어가 있음을 보았다. 위에 든 산이름 외에도 백운대(白雲臺·서울 북한산), 백양산(白楊山·부산), 백석봉(白石峰·충북 진천), 백모덕(白茅德·함남 개마고원), 백마산(白馬山·충북 음성), 백사봉(白沙峰·함북 회령), 박골령(朴骨嶺·낭림산맥 남부), 박달봉(朴達峰·경기 포천 이동면), 박리산(朴李山·평북 국경 근처), 배산(盃山·경남 남동부), 백봉(白峰·경기 미금시 동쪽), 백설산(白雪山·함흥시 북서쪽), 백암산(白庵山·금강산 서쪽), 백우산(白羽山·강원도 홍천 내촌면), 백적산(白積山·강원도 평창 진부면), 백하산(白霞山·전북 무주 최북단), 백화산(白華山·소백산맥 추풍령 북쪽), 발교산(髮校山·강원도 횡성 최북단) 등도 거의 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산(박산. 밝산)이 그 원뿌리인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장백산(長白山), 함백산(咸白山), 대박산(大朴山)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산 이름에 왜 밝이 이토록 취해졌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옛 사람들이 산을 인간 세계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여 그 이름까지에도 상당한 조심성을 기해 붙인 것으로 보여진다. 고을마다 주산(主山)을 정한 것이라든가, 산 위에 제단을 만들어 수시로 제천의식을 행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산 자체를 고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온 우리 조상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고장마다 있는 산신령의 전설도 이러한 조상들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고을에 빛(안녕과 평화)을 주는 터전이라 해서 밝에 연유하는 이름들이 많이 붙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한자로 표기될 때, 그 음에 가깝고 뜻에도 잘 통하는 백(白)이 많이 씌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백(白)은 밝을 소리대로 표기하는데 무리도 없거니와 밝다와도 통하는 희다의 뜻을 갖는 글자여서 이 계통의 산이름들에 많이 취해졌을 것이다. 희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깨끗하다, 정결하다, 숨김이 없다, 환하다(밝다)의 뜻을 가지므로, 위에 열거한 산이름들과 같이 백(白) 자가 많이 씌었을 것이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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