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2구간] 도솔봉 - 르포

아껴 걷지 않을 수 없는 능선길
저수령~시루봉~묘적령~도솔봉~죽령 구간

▲ 비워서 아름다운 숲. 초겨울 햇살이 이파리마냥 나뭇가지 매달려 있다. 저수령에서 죽령까지의 대간 길은 아기자기하다. 1천 미터가 넘는 능선이 크지 않은 파랑을 일으키며 도솔봉 같은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를 빚어놓고 있다.

초겨울 산을 넘는 바람은 파도 소리를 싣고 온다. 시베리아가 고향인 북서 계절풍이 중국 대륙을 지나 서해를 건넌다는 사실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산을 넘는 그 소리는 대양처럼 웅웅거리고, 포효하듯 대지를 흔들고, 포말처럼 대기로 사라지기도 한다.

산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계절마다 다르다. 바람과 나무의 대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과 그 반대인 겨울의 바람 소리가 다른 건 당연하다. 같은 계절이라 할지라도 소나무숲을 지나는 바람과 참나무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는 다르다. 지금은 겨울의 입구. 앙상한 나무와 아직 잎을 다 내려놓지 않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그 바람 소리들로 하여, 우리네 귀는 소리의 만화경이 된다.

비 내려 묘적령에서 끊고 느긋하게 1박2일 산행

▲ 저수령에서 촛대봉으로 향하는 취재팀. 비가 막 그친 숲으로 흐르는 안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은밀하게 만든다.
땅거미가 질 무렵 저수령 마루에 선다. 안개가 우리보다 먼저 와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하늘이 무겁다. 첫날은 산행을 하지 않고 야영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비록 하루 이틀이지만 편안한 잠자리를 마다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 아니던가.

비 올 확률 80%, 예상 강우량 5~10mm 정도라는 기상예보도 큰 걱정거리는 못된다. 예상량의 비가 밤새 내리고, 내일 아침은 말끔하게 갤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를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

저수령 표석 옆 공터에 텐트를 친다. 저녁밥의 뜸이 다 들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공터 옆의 정자로 자리를 옮긴다. 비! 밤새도록 내리고 싶을 만큼 마음껏 내려라.

예기치 못했던 복병이 나타난다. 취재팀 이원영씨의 가족이 함께했는데, 아들 상우(3살)녀석이 자꾸 손을 잡아끈다. 우산 펴는 데 재미를 붙이고는 한시도 그냥 있질 못하는 것이다. 이 무구한 독재자한테 무슨 방법으로 항거를 할 것인가. 더욱이 이 친구를 최연소(?) 구간 종주자로 참가시키고픈 속셈이 있는 터라 최대한 비위를 맞추어 주는 수밖에 없다.

밤 10시쯤 우리들의 임시 빌라로 스스럼없이 한 줄기 불빛이 달려든다. 취재팀의 진주 일행들이다. 북쪽으로 나아갈수록 이들의 걸음은 멀어진다. 반가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은 거리에 비례 상승한다. 만약, 남녀의 관계도 이럴 수 있다면 연애와 결혼은 거의 등식 관계를 이룰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암컷과 수컷의 관계와 같지 않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 저수령 북쪽 운수봉 자락의 소백산 관광 목장. 소나무와 낙엽송의 대비가 계절의 순환과 조화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대가족을 이룬 우리들은 결코 내일 산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건배를 거듭한 후에야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 텐트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침낭 속의 온도를 높여준다.

▲ 뱀재 위 헬기장에서 솔봉을 향하는 취재팀.
심란한 아침이다. 어젯밤보다 빗방울이 훨씬 굵다. 어젯밤의 낙관은 꼬리를 내린 지 오래다. 사실 이 정도 비는 산행에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취재 산행’이라는 데 있다. ‘취재’라는 짐은, 오관을 100% 이상 가동시켜 준다는 점에서는 고마운 무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에게만 해당된다. 카메라에 기준을 두면 그것의 광학적 기능이 곧 우리의 한계다.

승합차에서 내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수령휴게소 위를 서성이고 있다. 행색으로 보아선 대간 종주자임이 분명한데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참 뒤 재킷 위로 비닐 우의까지 입은 이들이 우리 앞을 지난다. 하나 같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비옷 자락을 허리춤에 묶은 모습이다. 약간의 비장감마저 도는 그들 눈에는 우리가 마마보이쯤으로 비칠는지도 모르겠다. 속절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애초에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하루에 끝내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도상 거리 20km 정도로 운행 속도에 따라서 8~11시간 정도면 주파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낮 시간이 짧은 동절기에는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번 구간의 클라이맥스인 도솔봉에서 일몰을 맞을 경우 그 이후는 야간 산행을 해야 한다. 우리들의 산행 스타일과 배치되기도 한다. 오전 산행을 접기로 하고 이번 구간의 60%쯤 되는 묘적령에서 끊기로 했다.

적절한 포기는 정신 건강에 좋다. 더 이상 갈등은 없다. 일기 예보도 그렇지만 경험칙상 오후에는 갤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남는 시간 동안 중간 탈출로인 묘적령 아래 옥녀봉 자연 휴양림까지 자동차를 옮겨 놓기로 했다.

‘낙엽송을 위한 변명’

차를 옮겨 놓기 위해 저수령에서 예천쪽으로 내려서는 길가 산기슭에는 가을의 마지막 선물인 양 절정의 낙엽송 단풍이 물들어 있다. 예천읍에서 풍기쪽으로 방향을 틀어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를 지나면서 세금 내는 소나무로 널리 알려진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을 만난다. 산행을 포기하게 만든 비가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다. 당장 먹을 수 없다 하여 ‘신포도’로 단정 짓는 일은 여우나 할 일이지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 묘적령에서 트레일 정비와 벤치 설치 작업을 하는 분을 만났다. 호기심에 한 번 져 봤지만 균형 잡기도 만만치 않다.

정확히 12시에 저수령에서 촛대봉을 향한다. 비는 완전히 멎었다. 우리의 어린 친구 상우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오전에 비를 맞으며 걷지 않은 건 잘 한 일 같다.

20분쯤 낙엽송과 참나무가 적절히 섞긴 오르막을 오르자 촛대봉(1,080.6m)이다. 다리의 근육과 호흡이 산길에 적응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몸을 돌려 세우자 저수령으로 허리를 낮춘 운수봉 기슭의 소백산 농장이 수채화처럼 눈앞에 걸린다. 갈색의 화폭 위로 소나무와 황토빛 단풍이 든 낙엽송의 대조가 돋보인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다. 정(正)과 반(反)이, 배제가 아니라 합일에 이르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은 옳다.

‘낙엽송을 위한 변명’을 좀 할까 한다. 이 나무는 백두산이 고향인 우리 고유의 잎갈나무와는 다른 ‘일본잎갈나무’다. 침엽수이면서도 가을이면 잎이 지고 봄에 새로 돋는, 다시 말해 잎을 가는 나무다. 그래서 잎갈나무이고, 달리 낙엽송이라고 불린다. 한때 이 나무는 ‘산림녹화’라는 구호의 상징이기도 했고 전봇대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 도솔봉 직전의 암릉. 위험 구간은 모두 계단이 놓아져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인건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목재 값이 싸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더욱이 ‘일본’이 원산지이다. 어떤 동네에서는 ‘박정희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군사독재, 산업화, 그리고 민족주의가 뒤엉킨 이 나무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나무에 드리운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변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무가 마지막 가을을 장엄하는 절정의 순간이 주는 심미적 아름다움에 한번쯤 눈길을 주자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박찬호의 투구 속도로 달리는 중에도 나는, 없는 듯 있다가도 이맘때면 처절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낙엽송을 자연의 이름으로 찬탄한다. 그 황토빛 단풍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릴 적 새들어 살던 주인집 마당의 고운 황토와 그 위에서 햇볕을 쬐던 벼가 생각난다. 장작불이 최고 온도가 되어 흰 불꽃을 보이기 직전의 노란 불꽃을 떠올리기도 한다. 봄이면 새싹은 또 얼마나 고운가. 나는 이 나무를 미워할 수 없다.

▲ 묘적봉과 도솔봉 사이의 참나무 숲길.
자연 앞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심미적 반응은 비슷하다. 사진기자는 낙엽송 단풍을 찍느라 필름 바꾸기에 바쁘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자 꽃잎처럼 떨어지는 잎들이 어깨 위에 앉는다.

촛대봉에서 한 10분쯤 나아가서 어른 키보다 큰 싸리밭을 지나자 투구봉(1,076.5m)이다. 앞서 도착한 정인숙씨가 “야~, 멋있다” 하고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지른다. 순전히 ‘뻥’이다. 시야를 가로막는 안개에 대한 반항이다. 모두들 그녀의 반항에 동참한다. “야~, 멋있다.”

바람을 따라서 안개가 오락가락한다. 안개만 아니라면 촛대봉부터서는 북쪽으로 시야가 열리는 봉우리에 올라서기만 하면 소백산이 조망된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를 휘감는 안개도 산 아래서 보면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관측지점에 따라서, 즉 인간을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구름을 밟고’ 간다. 동양화 속 구름을 타고 가는 신선은 절대 상상의 인물이 아니다.

투구봉에서 헬기장을 지나 30~40분 정도 오르자 시루봉(1,110m)이다. 다시 20분쯤 진행하자 배재다. 햇살이 언뜻 고개를 내민다. 고도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간간히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써야 할 정도로 바람살이 맵다.

기슭으로는 안개가 자욱했다가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 배재에서 1시간 못미처서 흙목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옆을 지나는 봉우리(1,033.5m)가 나타난다. 반 시간쯤 후 송전탑을 지나 뱀재로 내려선 다음 조금 키를 높이자 널따란 헬기장이다. 바람이 자는 귀퉁이에서 컵라면에 빵을 곁들여 점심을 해결한다.

▲ 도솔봉 기슭 암릉에서 조망을 즐기는 취재팀.
뱀재 위 헬기장에서 오늘 산행을 마치기로 한 묘적령까지는 1시간 남짓으로 솔봉(1,102.8m)만 넘으면 편안한 길이다. 묘적령에서 탈출로로 선택한 고항치로 내려서는 길은 옥녀봉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이기도 하다. 묘적령에서 고항치까지는 40분 정도. 고항치에서 미리 차를 옮겨둔 옥녀봉 자연휴양림(영주시에서 운영)까지는 임도가 잘 닦여 있다. 임도로 가지 않고 1km 정도 샛길을 이용하면 더 빨리 휴양림으로 갈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곳으로 탈출한 경우는 풍기 택시(054-636-2828)를 부르거나 고항치 남쪽에 있는 원골산장(054-653-5828)을 이용하면 된다.

예상치 못했던 포상 휴가를 받은 군인처럼 희희덕거리며 풍기로 나와서 인삼 튀김을 곁들인 만찬을 즐긴다. 진주팀과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다시 대간 기슭으로 돌아온다. 소백산 자락, 죽령의 풍기쪽 들목인 희방사 입구에서 호사스런 잠자리(모텔)를 얻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내일 전국적으로 황사가 낄 것이라는 우울한 뉴스가 들려온다.


다시 고항치에 선 시간은 아침 9시. 산기슭이어선지 황사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항치에서 대간 등성이인 묘적령까지는 에누리 없이 1시간이 걸린다. 묘적령에서부터는 오른쪽(동쪽)은 경북 예천에서 영주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오른쪽은 단양이다. 소백산 국립공원의 경내로 들어서는 지점이기도 하다.
죽령 때문에 독립성이 도드라진 도솔봉

▲ 죽령으로 내려서는 길. 1280m봉 정상을 우회하여 조릿대 밭을 지나면 산책로 같은 길이 죽령까지 이어진다.
묘적령에서 지게에 벤치를 지고 가는 두 노인을 만났다. 공원에서나 어울릴 벤치가 너무 이질적으로 보여 절로 웃음이 나온다. 길이도 상당히 길어서 게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사연을 물으니 단양군 대강면 사동 유원지에서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정비하고 벤치를 놓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중부지방산림청과 단양 국유림관리소에서 발주하고, 산림조합중앙회 충청북도지회에서 시행하는 사업이다. 백두대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애정이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벤치는 좀 어색해 보인다. 전시행정이라고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자연 풍광에 어울리게 통나무만 잘라 세워놓아도 좋은 의자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묘적봉을 오르기 전 산허리에서 나무계단용 자재를 운반하는 분들로부터 막걸리를 한 잔 얻어 마신다. 우리는 간식을 나누어 드린다. 기분 좋은 물물교환이다.

묘적봉(1,148m)에서 하늘을 우러른다. 눈이 시리다. 하지만 먼 산은 부옇다. 대기 중에 떠 있는 고비 사막이다. 기묘한 동시성. 자연의 호흡은 국경 따위를 아랑곳 않는다.

묘적봉에서 바라본 도솔봉(1,315.6m)은 미륵불이 머무르고 있다는 도솔천을 연상시킬 정도로 수직성이 돋보인다. 소백산을 비롯한 이 일대의 산들이 대부분 부드러운 형상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품에 안겨 보면 성큼 다가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접근은 어렵지 않다. 묘적봉에서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정상 일대는 까다로운 암릉이지만 철재 계단이 놓여 있어 위험 요소는 거의 없다.

도솔봉에는 두 개의 정상표석이 있다. 하나는 헬기장 옆에 있고, 다른 하나는 헬기장보다 조금 높은 지점에 서 있다. 헬기장은 정상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어서 상징적으로 표석을 하나 더 세운 것 같다. 실제로 헬기장에서 바라본 소백산이 더 근사하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전체와 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먼눈으로 바라본 웅장한 자태는 그야말로 군자의 풍모고, 산 주름은 손금처럼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읽혀진다.

도솔봉은 죽령 때문에 독립성이 도드라진다. 이 봉우리를 목표로 하루 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에서 올라 죽령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죽령에서 시작하여 옥녀봉 자연휴양림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묘적봉을 포함하여 도솔봉 일대 전체를 소백산의 봉우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름만 봐도 소백산과 연관성이 짙다. 촛대봉, 묘적봉, 도솔봉 등 이름부터가 불교적인데,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즉 비로자나부처의 품 안임을 일러준다.

도솔봉 기슭 바람이 자는 곳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죽령을 향한다. 도솔봉에서 삼형제봉을 지나 1280m봉까지는 조금 지루하다. 하지만 1280m봉 정상을 우회하면서부터는 순하고도 긴 내리막길이 죽령까지 계속된다.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듯한 이 길은 샘터(석간수)를 지나면서 아주 예쁜 풍광을 선물해 준다. 낙엽송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는 마침 낙엽송 잎들이 소복이 쌓여 있다. 마치 그곳으로만 햇살이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열린 길을 번갈아보게 만든다. 아껴 걷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죽령(697m) 마루에 선다.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열린 길이다. 하늘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고갯길이다. 경북 내륙과 충주 일대를 잇는 고개로 상당히 바쁜 고개였으나, 지금은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 중앙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쇠락한 고개의 운명을 상징하듯 낙엽들이 뒹구는 고갯마루에서 소백산을 바라본다. 장쾌한 능선과 한여름에도 얼굴을 얼얼하게 하는 바람이 벌써 다음 산행을 설레게 한다.

즐거운 백두대간을 위한 제언 (10)

석송령

조금만 여유 가지면 들여다볼 수 있는 국토의 고샅

석송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 중 하나다. 세금을 내는 나무라 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사연인즉,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이수목이라는 분이 세상을 뜨면서 자신의 땅을 이 나무에 물려주자, 마을 사람들이 그의 뜻을 기려 등기를 함으로써 재산가가 된 것이다.

높이 10m, 줄기둘레 4.2m, 펼쳐진 가지 넓이가 동서 32m, 남북 22m로 그늘 면적만 300평이 넘는 이 나무는, 600여 년 동안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평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있는 석평 마을은 이번 구간의 기점인 저수령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예천온천쪽으로 가다 보면 길가에 있다. 일삼아 가보고 싶은 나무이긴 해도 그것만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대간 종주는 우리 국토의 고샅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천연기념물 제294호).

윤제학 / 허재성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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