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2구간] 도솔봉 - 식생

고도에 맞추어 식물도 변하기 시작한다
바위지대에 등대시호·솔나리 자라고 왜솜다리는 최대 군락으로 추정

▲ 개옻나무. 숲속에 자라는 작은키나무로, 높이 7m에 이르며, 꽃은 6~7월에 암수딴그루에 핀다. 단풍이 아름답다.

문봉재~저수재를 거쳐서 죽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구간은 백두대간의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산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최고봉인 도솔봉이 해발 1,314m의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다. 이렇게 해발 1,300m대를 넘어선 이후 백두대간은 소백산 산군으로 들어서서 1,300~1,400m대를 유지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위세를 보인다.

도솔봉 구간은 높이에 있어서 덕유산 산군 이후 처음으로 백두대간이 1,300m를 넘어서는 곳이다. 1,500~1,600m대를 자랑하는 덕유산 산군의 지봉(1,302m) 이후에 전북과 충북, 경북을 다 지나오는 동안 백두대간은 높이 면에서는 이렇다 할 높은 산을 세우지 못한다. 200km에 이르는 이 구간에서 800~1,000m대의 고만고만한 산들만을 거느리면서 겨우 대간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할 뿐이고, 삼도봉(1,172m), 황학산(1,111m) 같은 곳에서 높아보았자 1,100m급이 고작이며, 이 구간의 유일한 국립공원이자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속리산조차 1,057m로서 1,100m에도 이르지 못한다.

솔나리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솔잎처럼 가는 잎을 가져서 이름이 붙여졌으며, 법정보호식물이다.
높은 산들이 없으니 그 기운은 속리산, 희양산(998m), 조령산(1,026m), 황장산(1,077m) 등에서 바위로서 표출된 듯하다. 높지 않은 산들에서 넘치는 열기를 바위로 형상화해낸 이곳 백두대간의 특이한 경관에는 땅의 기운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땅을 모태로 살아가는 식물들도 이처럼 열기 넘치는 곳들에서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평범한 곳에서 살 수 없는 그런 식물들이 높지는 않되 색다른 바위지대에서 터를 잡은 것인데, 이런 식물들 가운데는 고산식물이 많다.

고산식물들이 위도가 낮고 고도도 낮은 이곳 산들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이곳 백두대간 능선의 바위지대가 식물 생육에 있어서 고위도 지방의 환경과 비슷하기 때문이 것으로 여겨진다. 숲이 있는 능선보다 바위가 있는 능선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우며, 직사광선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는 등 고위도 지방의 환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200km만에 식물 모습도 달라져

등대시호 덕유산 이북의 높은 산 능선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남한에서는 백두대간의 몇몇 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이다.
백두대간에 터를 잡아 살아가고 있는 이들 고산식물은 과거 빙하기 때 한반도가 추워지자 아래쪽으로 내려와 살던 북방계 식물들이다. 북방계 식물들은 빙하기가 지나서 차츰 지구 온도가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 남쪽에서 살 수 없게 됐고, 일부만이 백두대간 산꼭대기로 쫓겨 올라가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북방계 식물들이 피신처를 찾아 이동할 때, 한라산,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 설악산 등 높은 산에서는 그나마 덜 가혹한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덕유산~소백산 구간의 저산지대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바위지대가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저산지대의 바위지대에 살아남은 북방계 식물로 대표적인 것이 솔나리, 등대시호, 왜솜다리 등이고, 이밖에 바위떡풀이나 잣나무 같은 것들도 이런 식물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 도솔봉 구간에서도 이런 식물들이 없을 리 없다. 바위지대라는 것을 만들어 겨우 북방계 식물들을 키워내는 덕유산 이후 지금까지의 구간보다 높이 면에서 월등히 높은 산이기 때문이다.

꽃향유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꿀풀과의 한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한쪽을 향해서 피며, 꿀이 많아 곤충이 많이 찾아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리 높은 것은 아니어서 아무 숲이나 아무 능선에서 이들 식물들을 키워내지는 못한다. 여전히 귀하디귀한 식물로서 특별한 곳에서만 이들을 품어 보듬고 있다. 덕유산~소백산 구간의 저산지대 산들과 같은 방식으로 바위지대를 발달시키고 그곳에서 이들을 키우고 있다.

도솔봉 정상은 단지 고도만이 1,300m를 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온통 바위의 성으로 만들고 있다. 이곳에 북방계 식물인 솔나리와 등대시호가 자라고 있다. 솔나리는 만주와 우수리에서부터 한반도까지 분포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야산, 남덕유산, 구미 금오산 등을 남쪽 경계로 하여 경북, 충북, 경기도, 강원도 지역의 높은 산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꽃은 6~8월에 줄기 끝에서 밑을 향해 피며 밝은 홍자색이고 지름 6~10cm이다.

달맞이꽃 남미 원산의 두해살이 귀화식물로, 전국에 퍼져 자라고 있으며, 꽃은 7~10월에 피는데, 저녁에 피었다 아침에 시든다.
잎이 소나무 잎처럼 가늘어서 ‘솔나리’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으며, 이 특징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나리 종류들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좁은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희귀식물이며, 꽃이 아름다워 함부로 캐기 때문에 절멸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서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을 출발한 이후, 덕유산, 속리산, 조령산 등지에서 자라고 있었고, 앞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바위지대가 발달한 여러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등대시호는 세계적인 분포가 솔나리와 비슷한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만주와 우수리, 그리고 한반도에만 자라므로 세계적으로 볼 때 분포지역이 매우 좁다. 백두산에서는 해발 2,000~2,500m 지역에 분포하는데, 수목한계선 부근의 고산초원에서는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뿌리줄기가 발달해 굵게 자라며, 가지가 갈라진다. 줄기는 높이 20~70cm인데, 남한에서는 70cm까지 크게 자라는 경우를 잘 볼 수 없다. 꽃은 8~9월에 노란 색으로 피고,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도솔봉의 등대시호는 백두대간을 따라 설악산에 이를 때까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더한다. 남한에서 분포지가 매우 한정된 희귀식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곳은 설악산, 도솔봉, 속리산, 남덕유산뿐이다.

바위지대 정상 부근은 북방계 식물 보금자리

물레나물 산속의 양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6~8월에 피며 지름 4~6cm이고, 낫처럼 생긴 꽃잎이 물레 모양으로 늘어선다.
그런데 이곳의 솔나리와 등대시호는 지리산에서 대간을 따라오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자생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장소에 비해서 개체수가 많은 것이다. 등대시호의 경우 속리산에서 십여 개체가 생육상태도 안 좋은 채로 풍전등화 같은 운명에 처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백여 개체가 백두산의 자생지에서처럼 잘 자라고 있다. 솔나리도 최근 개체수가 감소 추세에 있기는 하지만, 지리산부터 지금까지 나타났던 개체들에 비하면 숫자가 풍부해졌음을 알 수 있다.

묘적봉(,1148m)에서 대간을 따라 도솔봉쪽으로 오노라면 그 전주곡쯤에 해당하는 식물을 만날 수 있는데,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왜솜다리가 그것이다. 대야산 정상부와 조령산 구간에서 몇몇 개체를 만났던 그 왜솜다리가 큰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 등 강원도의 높은 산에도 자라고 있지만, 이곳처럼 많은 개체가 자라는 곳은 매우 드물다.

산앵도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능선에 자라는 한국특산의 떨기나무로, 가을에 익는 열매는 갈증을 달래기에 좋다.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식물상이나 식생의 모습이 또 있다. 속리산부터 황장산에 이르는 긴 구간의 주요 식물 가운데 하나였던 꼬리진달래가 이 구간부터는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간에서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태백산에 이를 때까지 오래도록 백두대간을 따라 나타난다.

하지만, 생육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아니라 계곡이나 마을쪽으로 뻗은 가지능선으로서, 이런 곳의 고도는 도솔봉의 경우 800~1,000m 정도이고, 백두대간이 북쪽으로 가며 위도가 높아질수록 그 고도는 더욱 낮아진다.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소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능선에서 소나무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간간이 보이기는 하지만, 황학산 이후 저지대 산지의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주를 이루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마을 근처에서부터 대간 가까이에 이를 때까지 여전히 많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간 주능선에서 소나무를 대신해 숲을 이루는 식물은 대부분의 경우 신갈나무다.

야광나무 속리산 이북의 산속 물가에 자라는 장미과의 작은키나무로, 높이 3~6m이며, 꽃은 5~6월에 피고 꽃잎이 5장이다.
백두대간은 도솔봉에 비해서 고도도 더욱 높고 덩치도 큰 소백산에 이르면 틀림없이 북방계 고산식물들을 위한 더욱 훌륭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소백산의 문턱격인 도솔봉을 지나면서 조금 보여주었던 북방계 식물들을 더욱 많이,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보여줄 것이다. 고산식물의 종류 자체도 많아질 것이며, 각 식물의 개체수도 많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높이가 달라지면 북방계 고산식물처럼 특별한 종류의 식물들은 그 종류와 사는 모습이 당연히 바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도솔봉 구간은 주능선의 높이에 걸맞게 동쪽과 서쪽으로 여러 골짜기와 능선들을 빚어 놓고 있는 품이 큰 산이다.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뻗어가며 솔봉(1,103m),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을 세워 놓고, 이 산줄기를 경계로 동쪽의 경북 예천시 상리면, 영주시 봉현면과 풍기읍, 서쪽의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가르고 있다.

좀담배풀 숲속에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아래를 향해 피며, 열매는 점성이 있어서 잘 달라붙는다.
동쪽 경북 지역으로는 깊숙한 곳까지 마을들이 발달해 있는 반면에 서쪽 충북 지역으로는 발달한 마을은 작고 유역은 더욱 커서 자연성이 높은 편이다. 특히 도솔봉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죽령쪽으로 2km쯤 가다 만나는 삼형제봉에서 서쪽을 향해 뻗은 가지 능선은 해발고도 1,000m를 유지한 채로 10여km를 뻗어나간다. 이곳에서 발달한 수계는 대강면의 남조천을 거쳐서 충주호로 유입된다. 도솔봉 정상 일대에서 남서쪽 대강면쪽으로 4~5km나 흘러내리는 길내골은 산자락 사동리에 사동유원지를 발달하게 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골이 깊다.

이처럼 너른 산세와 수계를 가진 도솔봉 일대는 묘적봉 아래의 묘적령을 경계로 하여 소백산 국립공원의 남쪽 끝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죽령을 경계로 소백산과는 다른 산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국립공원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좀바위솔 높은 산의 바위 겉에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 8~10cm이며, 만주와 한반도에만 분포한다.
도솔봉 서쪽의 사동리 일대에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느릅나무, 야광나무, 물푸레나무 같은 활엽수들과 침엽수인 소나무가 숲을 이룬 가운데 고추나무, 붉나무, 산초나무, 조팝나무, 소태나무, 광대싸리, 조록싸리 등의 떨기나무가 중간층을 이루고 있다. 숲 바닥과 가장자리에는 남산제비꽃, 나도송이풀, 꽃향유 등이 자라고 있다.

또한 마을 근처에는 일본이깔나무 조림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며, 인위적인 간섭에 의해 침투한 산딸기나무, 곰딸기, 칡 등이 자라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산 속으로 들어서도 백두대간 능선까지 여전히 일본이깔나무의 조림지를 만날 수 있다. 사동리쪽에서 백두대간쪽으로는 임도도 8km 이상이나 놓여 있는데, 곳곳에서 산사태를 일으키고 있으며, 1,000m가 넘는 곳의 임도 주변까지 산 아래에나 자라는 산딸기나무, 질경이, 꿀풀, 큰뱀무 등의 자생식물과 달맞이꽃, 미국쑥부쟁이, 개망초 같은 귀화식물들이 유입되고 있다.

참산부추 산 능선과 사면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피며, 잎이 납작하므로 산부추와 구분할 수 있다.
마을과 백두대간 사이 중간 지역 중에서 일본이깔나무나 잣나무 조림지 이외의 곳에는 굴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물박달나무, 물오리나무, 졸참나무, 산벚나무, 팥배나무, 당단풍나무 등이 큰키나무로서 숲을 이루고 있고, 생강나무, 오미자, 산수국, 고광나무, 병꽃나무, 국수나무, 노린재나무, 진달래, 철쭉나무, 고추나무, 쇠물푸레 등이 중간층을 이루고 있다. 중간 지역 능선의 굴참나무나 졸참나무 숲에서는 중간층을 이루는 떨기나무인 꼬리진달래가 큰 군락을 지어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가까워지면 자연성이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 군락이 발달한다. 특히 도솔봉 정상에서 사동리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일대는 수령이 오래된 신갈나무가 천연림에 가까운 모습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아름드리 신갈나무숲 속에 투구꽃, 노루오줌, 개시호, 오리방풀, 속단, 수리취, 단풍취 같은 깊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들이 자라고 있다. 도솔봉 일대의 자연성이 회복되면 어떤 숲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대간엔 신갈나무숲, 중간층엔 굴참나무숲이 발달

새끼꿩의비름 산속의 바위 근처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피며, 꽃과 함께 살눈이 생겨서 번식한다.
백두대간 능선의 숲에는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면서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소나무 등의 큰키나무가 섞여 자라고 있다. 떨기나무로는 산앵도나무, 철쭉나무, 개옻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곳이 많다. 숲 바닥에는 산꿩의다리, 투구꽃, 새끼꿩의비름, 큰참나물, 고본, 수리취, 단풍취, 미역취, 가야산은분취, 죽대, 일월비비추 등의 풀이 자라고 있다. 또한 능선의 바위지대에는 구실사리, 만주우드풀, 물통이, 바위떡풀, 좀바위솔 등이 분포한다.

정상부의 바위지대에서는 신갈나무가 키가 작아져서 떨기나무처럼 자라고 있으며, 뽕잎피나무, 쇠물푸레 등도 섞여 있고, 풀로는 구실사리, 돌양지꽃, 등대시호, 개쑥부쟁이, 구절초, 왜솜다리, 솔나리, 대사초 등이 자라고 있다. 도솔봉 정상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주변에서 질경이, 개쑥부쟁이, 구절초, 개솔새 등이 보인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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