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1구간] 황장산 - 식생

그 많던 황장목 다 어디 갔나?
희귀식물 한라부추·좀고채목·회목나무 자라…미국쑥부쟁이·미국자리공도 침투

▲ 안산다리 마을에서 작은차갓재를 향해 올라가다 만난 억새 군락. 뒤쪽의 뾰족한 봉우리는 황장산 정상 북서쪽에 있는 백두대간의 묏등바위다.

우리나라 산들 가운데 이름이 식물과 관련 있는 산은 거의 없다. 동네뒷산이라면 그곳에 어떤 식물이 많이 날 경우에 그 식물이름을 붙여서 ‘엄나무산’, ‘느티나무산’, ‘피나무산’, ‘뽕나무산’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규모가 있는 큰 산 이름이 식물이름에서 유래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황장산이라는 산 이름은 식물과 관련이 있다. 황장목(黃腸木)이 많이 나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 황장목이란 속이 노란 소나무를 말한다. 소나무나 소나무의 변종인 금강소나무는 300년 이상 되면 속, 즉 심재(心材)가 노랗게 변하는데, 이것을 창자에 비유해 황장목이라 일컫는다.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황장목’ 자라던 산

꼬리 진달래 충북, 경북, 강원 및 평북에 자라는 떨기 나무로, 참꽃나무겨우살이라고도 부르며, 꽃은 6~7월에 핀다.
세종실록(1440년)에는 ‘천자의 곽은 황장으로 하는데, 황장은 소나무의 속이다. 흰 재목은 습한 것을 견디지 못해 속히 썩는다’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황장목은 임금님의 관이나 궁궐의 목재로서 사용되었는데, 결이 곧고 단단하여 뒤틀리지 않으며 잘 썩지 않는 최고의 목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목재였기 때문에 이 나무가 많이 나는 산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벌채를 금지했다. 조선 후기의 법전인 속대전(1746년)에 의하면 당시에는 경상도에 7곳, 전라도에 3곳, 강원도에 22곳의 황장봉산이 있었다고 한다. 황장산은 숙종 6년(1680)에 봉산으로 지정되었다.

황장목 보호를 위해 지정된 이런 산들에서는 벌채를 금지한다는 표지가 세워졌는데, 치악산 구룡사 입구의 자연석에 새겨진 ‘황장금표(黃腸禁標)’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금표와 관련하여서도 황장산은 아주 특별하다. ‘봉산(封山)’ 표석이 현존하는 유일한 산이기 때문이다. 이 봉산 표석은 화강암을 다듬어 비석을 만들고 ‘封山’이라 음각하였는데, 황장산 자락인 동로면 명전리의 논 속에 묻혀 있다가 1976년에 발견되어 다시 세워졌다.

개쑥부쟁이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수십 개의 꽃이 모여서 한 송이처럼 보이는 머리모양꽃이 된다.
황장봉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황장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이전부터 이 산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에는 모두 작성산(鵲城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황장산보다 먼저 불리던 이름이다. 산 동쪽의 골짜기인 문안골 초입에 있는 ‘작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작성(鵲城)은 고구려 변방의 성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는데, 문안골 초입에 있는 성문 부분은 문만 없을 뿐이지 문을 달았던 돌기둥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이 성문 안쪽 골짜기라는 뜻으로 ‘문안골’이라는 이름도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황장목으로 이름 높은 산, 황장산 식물탐사는 황장목이 지금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시작된다. 울진의 소광리 숲에서와 같은 큰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까?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의 안산다리(안생달) 마을. ‘안쪽에 있는 산다리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은 바깥산다리(바깥생달) 마을의 안쪽 깊숙한 곳, 백두대간 차갓재 남쪽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황장산 식물탐사를 시작했다.

미국가막사리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작은차갓재 부근의 헬기장과 정상 등에 올라와서 자라고 있다.
안산다리 마을을 벗어나서 백두대간의 작은차갓재를 향해 나서자마자 가을들녘을 대표하는 토종꽃인 산국이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반긴다. 계곡 주변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잎과 꽃에서 나는 향기가 일품인데, 국화향기 바로 그것이다. 곧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구절초 등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자주색 꽃을 피운 꽃향유와는 달리 작고 희미한 색깔의 꽃을 피워 주목을 끌지 못하는 향유가 꽃향유와 함께 자라고 있다.

토종 쑥부쟁이들을 밀어내며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미국쑥부쟁이도 등산로 가에서 세를 과시하고 있다. 마을 부근이어서 밭을 일구는 등 자연성을 찾아볼 수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지만, 간간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게 이채롭다. 예전에 탄광이 있던 곳까지는 꽤 넓은 우마차로가 나 있다. 탄광 자리에는 빈터가 있고, 이곳에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는 억새 너머로 황장산 정상 부근의 한 봉우리가 올려다보인다.

배초향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집에서 `방이풀`이라 부르며 재배하여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위적인 간섭이 많았던 곳이라는 것은 칡이나 미국자리공이 자라는 것을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국 옆에서 늦은 꽃을 피운 배초향이 남아 있다. 잎에서 강한 향기가 나므로 이것을 추어탕 등의 음식에 넣어 먹는데, 여러 지역에서 방아풀이라 부른다. 분류학적으로 방아풀이라는 다른 식물이 있기 때문에 가끔 둘을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진쑥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더위지기가 꽃을 피우고 있지만, 쑥 종류여서 꽃은 그리 예쁘지 않다. 잎에서 누린내가 나는 누리장나무가 열매를 익히고 있는데, 열매와 꽃 모두 곱다. 흰 꽃이 핀 정령엉겅퀴도 몇 포기 자라고 있다.

억새,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산국 등 꽃이 크고 화려하거나 키가 커서 눈에 잘 띄는 식물들을 한참 관찰하고나서 발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귀한 식물 하나가 발견되었다. 전국적으로 분포하기는 하지만 석회암 지역 외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자주쓴풀이다. 오직 한 포기만이 자라고 있었는데, 키가 40cm에 이를 정도로 크고 많은 꽃을 단 채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탄광 자리를 벗어나자 길은 곧 등산로답게 작아진다. 오른쪽에는 작은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계곡 주변에는 산뽕나무, 당단풍나무, 함박꽃나무, 물푸레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같은 큰키나무와 그 아래에 생강나무, 고추나무, 노린재나무 등의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들 나무를 감고 올라간 오미자는 붉은 열매를 익히고 있다. 숲 바닥에는 홀아비꽃대, 투구꽃, 노랑갈퀴, 병조희풀 등이 자라고 있다. 홀아비꽃대가 많이 보이는데, 이 지역에서는 봄철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산국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풀이다. `들국화`라고 부를 만한 식물 가운데 하나다.
계곡의 나무들과는 달리 사면쪽으로는 일본이깔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이 조림지는 백두대간의 작은차갓재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조림할 때 함께 들어온 줄딸기 등이 조림지 바닥에 자라고 있을 뿐 다른 큰키나무나 떨기나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떤 곳에서는 조림지 바닥을 주름조개풀이 완전히 덮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주름조개풀의 열매가 한창 익을 때여서 그 밑을 지난 후에는 바지에 온통 끈적끈적한 열매가 달라붙기 일쑤다.

안산다리에서 1시간여만에 올라선 백두대간 작은차갓재에서는 해발 866m의 높이를 느낄 수 없었다. 잣나무가 간간이 섞인 일본이깔나무 조림지이고,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을 뿐이며, 바위가 없이 흙으로만 이루어져 경관으로도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차갓재 바로 위쪽에는 헬기장이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졸참나무가 헬기장을 둘러싸고 있고, 억새도 자라고 있다. 고사리, 달맞이꽃, 망초 등 저지대에서 올라온 식물들과 함께 미역취, 참산부추, 용담 등도 몇 포기 자라고 있다. 참산부추는 산부추와 비슷하지만 잎의 단면이 삼각형이 아니라 납작하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산부추에 비해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다. 용담은 이곳 헬기장의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귀한 자생식물이라 할 수 있는데, 헬기장을 만들며 훼손된 곳에서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부 바위지대에 한라부추 등 희귀식물 자라

산수유 황장산 자락의 동로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11월 초순 잎이 지고 난 후까지 열매가 나무에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헬기장을 지나자 바로 잣나무 조림지다. 수령 10년쯤 되어 보이는 잣나무들이 빽빽하게 심겨져 있는데, 이 때문에 대낮에도 컴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숲 바닥에서 자라는 풀은 찾아볼 수 없다. 침엽수인 잣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에서 내뿜는 물질이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데다가 해까지 들지 못하니 숲 바닥에서 풀이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이 잣나무 조림지를 벗어난 지역부터 정상쪽으로는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진 자연림이다. 수령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지만 인공조림이 아니라 벌채 이후 자연적인 상태에서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룬 곳이다.

헬기장을 지난 후부터 백두대간 능선은 곳곳에 바위들을 드러낸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꼬리진달래가 자라고 있다. 꽃은 이미 지고 열매는 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꽃나무겨우살이라고도 부르는 이 떨기나무는 높이 2m에 이르며, 몇몇 잎은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 경북, 충북, 강원도 및 평북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외국에는 만주, 중국, 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오미자 전국의 산에 자라는 덩굴나무로, 꽃은 5~6월에 암수딴그루에 피며, 10월에 열매가 붉게 익는다.
정상쪽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만난 나무들 가운데 회목나무도 특기할 만한 식물이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하기는 하지만, 높은 산 능선에서 드물게 자라므로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여름에 피는 꽃이 특이한데, 꽃대가 잎 앞면의 중앙에 있는 잎줄과 나란하게 달리고 색깔도 흔치 않은 적갈색이다.

고도를 높여 정상부 능선에 다다르자 전망이 트이는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 겉에는 석이버섯이 많이 붙어 있다. 묏등바위라고 부르는 이 바위 위에 올라서자 지척에 정상의 암봉들이 보이고, 서쪽 멀리로는 대미산을 비롯한 백두대간 연봉들이 아스라하다. 대간에서 살짝 비켜 앉은 월악산은 바위로 이루어진 특이한 정상 모습 때문에 쉽게 가늠된다.

이 묏등바위 부근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고, 구절초가 꽃을 피우고 있다. 키가 작고 잎도 매우 작아서 사스래나무의 변종으로 취급되는 좀고채목이 열매를 달고 있었다. 10여 년 전에 황장산을 찾았을 때는 이곳에 자라는 것을 모두 사스래나무라고 보았는데, 이번 취재에서 좀고채목도 섞여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살나무 전국의 산에 자라는 마편초과의 떨기나무로, 키 2~3cm이며, 꽃은 7~8월에 피고,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아슬아슬한 바위지대를 올라가야 한다. 로프가 설치되지 않았다면 통과하기 아주 까다로운 구간도 여러 곳이다. 이들 바위지대에는 구실사리가 바위에 붙어 자라고 있다. 작은 양치식물인데, 바위 전체를 덮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특산식물 가운데 하나인 산앵도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간간이 빨간 열매가 달려 있어서 갈증을 달래기에 좋았다. 자생하는 잣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었는데, 고도가 낮은 곳의 조림한 것들과 구분하여 특별히 기록해 둘 필요가 있는 듯하였다.

이 바위지대에서 특별한 식물이 하나 발견되었다. 한라부추라는 백합과의 식물인데, 막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라산에 많이 자라고 있어서 한라부추라는 우리말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지리산, 덕유산 및 북부 지방에도 분포한다. 필자는 이곳 황장산과 지척에 있는 월악산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다. 이곳 황장산에서 분포를 확인한 것은 이번 취재의 수확 가운데 하나다.

정상부 바위지대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속리산부터 보아온 소나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큰 군락을 이루었거나 큰 개체들이 나타나거나 하는 특징이 없다. 전망이 트이는 바위에서 바라본 황장산 자락의 소나무 현황도 비슷하였다. 과거 ‘황장목의 산’이라는 영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오히려 이웃한 조령산이나 속리산 일대의 소나무숲에도 비하지 못할 정도로 빈약하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회목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떨기나무로, 꽃은 6~7월에 핀다. 황장산 능선에서 몇 그루 발견되었다.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올라선 정상은 주변의 험한 바위들과는 달리 흙으로 된 펑퍼짐하고 넓었다. 정상표지석이 있고, 주변에는 용담, 미국가막사리 등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벌재쪽으로 방향을 잡아 백두대간 능선을 타자 급한 경사길이 이어지고, 곳곳에 바위도 많다. 꼬리진달래, 산앵도나무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죽대, 개쑥부쟁이, 바위채송화, 돌양지꽃 등이 자라고 있다.

30여 분만에 해발 985m의 황장재에 도착했다. ‘문안골 2시간20분, 벌재 2시간40분’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버리고 동북쪽 계곡인 문안골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문안골로 내려서자 골짜기에 말채나무, 가침박달, 서어나무, 졸참나무, 물박달나무, 쪽동백나무, 산뽕나무 등의 큰키나무가 자라고 있다. 떨기나무로는 참회나무, 노린재나무, 말발도리, 붉은병꽃나무, 작살나무 등이 눈에 띄고, 숲 아래에는 단충취, 십자고사리, 관중, 참나물, 파리풀, 눈빛승마, 대사초 등이 자라고 있다.

축성 당시 식물은 사라진 채 성벽만 남아

문안골은 고개에서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긴 계곡이지만 군데군데 인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를 베고 실어 나르던 산판길 흔적이 뚜렷하고, 당시인지 아니면 이후인지 화전민들이 살던 흔적도 발견된다. 식물로도 여실히 증명되었는데, 깊은 골짜기 안에 찔레꽃, 곰딸기 등 마을 근처에서 사는 식물들이 들어와 있다.

문안골을 빠져나오기 30여 분 전에 만나는 작성은 고구려 때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성이다. 계곡 옆에 성벽이 뚜렷이 남아 있고, 성벽 가운데에 문을 단 흔적도 그대로다. 등산로는 성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협곡에 막은 성이어서 성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드나들 수 없다. 이 성을 쌓았을 때 황장산에 살고 있었던 식물들과 숲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변화되었는데, 성벽만이 그대로인 것이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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