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1구간] 황장산 - 월악산 지형지질

넘쳐나는 저 바위들의 정체는?
9천만 년 전 백악기에 관입한 불국사화강암으로 조령산과 동시대

▲ 신라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망국의 한이 서려있어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월악산은 속리산, 조령산과 더불어 국토 중앙에 대표적인 암산을 이룬다.

백두대간의 줄기가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쳐 남쪽의 조령산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하늘재에서 방향을 북으로 틀어 내달리는 지맥 끝자락에 이 땅에 또 하나의 명산이 한반도 중심부인 중원땅을 가르며 힘차게 솟아올랐다. 월악산이 바로 그것이다.

월악산은 주봉인 영봉(1,097m)을 비롯해 중봉, 하봉 등 3개의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맹호처럼 솟아올라 성채를 이루는 정상부를 위시해 깎아지른 육중한 암봉들이 산줄기를 타고 줄기차게 이어지고, 그 암봉들 사이로 움튼 청송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충주호의 잔잔한 물결과 그 수면에 드리운 산야의 풍광은 속세의 때를 모조리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월악산은 일찍이 산세가 깊고 험준하여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알려졌다. 비결잡록(秘結雜錄)에 적힌 '충주월악산하송계 불입병화보신산수(忠州月岳山下送溪 不入兵火保身山水)'라는 기록이 말해 주듯이, 산세가 깊고 험하여 난리가 미치지 않을 만큼 숨어 살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깊은 산중을 이루는 월악산의 멋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릉을 비롯하여 계곡에 이르기까지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암산(巖山)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포암산~만수봉~월악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비롯하여 거대한 암봉들이 이웃하며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이어져 남성적인 힘찬 맥동을 느끼게 한다.

또한 월악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송계팔경과 용하구곡이 쌍벽을 이루며, 상·중·하선암으로 이어지는 선암계곡을 품고 있는 도락산, 남한강을 끼고 호반의 푸른 물과 조화를 이룬 구담·옥순·제비봉, 그리고 충주호를 건너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라 해서 이름한 금수산에 이르기까지 월악산과 맥을 같이 하는 산줄기는 온통 바위가 만들어내는 수려하고도 장대한 산악 경관을 이룬다.

한편 월악산 동편으로 하설산~매두막~문수봉~대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완만한 산세를 이루고 있어 인근 소백산과 같은 포근한 육산(肉山)의 모습도 함께 지니고 있다.

산사람들이 월악산을 두고 설악산의 동적인 화려한 아름다움과 지리산의 정적인 장엄함을 고루 지닌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월악산이 이와 같이 암산과 육산의 산세를 두루 갖춘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위들의 정체는 9천만 년 전 관입한 화강암

▲ 월악산 일대의 화강암들은 9천만 년 전 관입한 화강암으로 남쪽의 조령산, 속리산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월악산 산세를 이해하려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이 그러하듯이 한반도 땅덩어리가 불의 시대를 맞고 있었던 중생대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중생대는 대규모 지각변동과 더불어 여러 차례에 걸쳐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마그마가 분출하는 화산활동이 있었다. 이때 마그마가 지상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지하 깊은 곳에서 냉각·고화되어 형성된 암석이 바로 화강암이다. 월악산 일대를 이루는 화강암은 백악기 약 9천만 년 전에 관입한 불국사화강암으로, 남쪽의 속리산과 조령산을 이루는 화강암과 동시대에 형성된 것이다.

월악산 일대에 관입한 화강암은 포암산~만수봉~월악산, 조령산~마패봉~신선봉~부봉~주흘산, 금수산~옥순·구담봉~제비봉~도락산~황정산에 이르기까지 제천~단양~문경에 걸친 면적 486㎢에 달하는 광범위한 저반상의 화강암체를 이루는데, 이를 묶어 월악산화강암체라 말한다.

화강암의 관입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며 지표의 표토들이 깎여나가게 되자 지하 깊은 곳에 있던 화강암체가 압력의 하중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면서 지표로 올라오게 됐다. 이때 화강암은 체적 팽창으로 암체에 금이 갈라지는 균열, 즉 절리가 발생했다.

이후 갈라진 절리면을 따라 수분이 침투하면서 침식과 풍화가 이루어져 점차 화강암체는 다양한 형태의 암괴로 분리됐다. 이후 빗물과 바람에 의해 계속적인 침식과 삭박이 진행되어 암괴를 덮고 있던 피복물질들이 모두 씻겨나가게 되자 지하에 있던 다양한 형태의 화강암체들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월악산의 산릉과 계곡에 발달한 다양한 화강암 지형은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생성된 것들이다.

돔 모양 암봉들은 수평절리가 탁월하게 발달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관입한 백악기 불국사의 화강암은 대략 지하 3~4km의 깊이에서 관입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 월악산 일대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들은 약 9천만 년 전 관입 이후 3~4km의 표토가 깎여나가 지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인간의 시간관념으로는 도저히 헤아리기 어려울 따름이다.

월악산 정상에서 눈에 들어오는 만수봉~포암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 상의 고봉들의 모습은 대부분 기복이 심한 돔(dome)형으로 옹립되어 있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금강산의 만물상 코스에서 볼 수 있는 칼날 같이 뾰쪽하게 솟아오른 암괴들이 적은 반면, 북한산의 인수봉과 같은 커다란 하나의 암체로 이루어진 육중한 암봉들이 주능선 자락을 타고 낙타등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암체에 발달한 절리 가운데 지표와 평행하게 발달한 수평절리를 따라 침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암체에 발달한 수평절리가 탁월하게 발달하면 수분이 수직으로 침투하기 어려워 수평면을 따라 침식력이 집중되어 암석이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침식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송계계곡과 용하구곡에 폭포, 소(沼), 담(潭), 그리고 넓은 하상암반인 대(臺)의 발달이 두드러진 이유 또한 하천이 흘러가면서 수평으로 발달한 절리면을 따라 침식이 집중되어 암괴가 한 겹 한 겹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월악산화강암체와 지질이 다른 영봉

▲ 월악산의 정상 영봉은 중생대 월악산화강암체와 달리 고생대에 바다에서 퇴적된 석회암이 변성된 석회규산염암이다.
월악산 정상은 150m에 달하는 수직 단애를 이루는 영봉을 비롯해 중봉, 하봉 등 둘레 4km에 달하는 크기의 웅장한 3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영봉은 높은 수직절벽으로 병풍처럼 위용을 드러내며 마치 성곽과도 같은 요새를 이루고 있어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봉을 포함한 정상부 일대는 산 전체가 거의 매끈한 담홍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월악산과는 달리 회색빛을 띠며 바위의 결을 따라 조각이 많이 나 있어 독특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는 월악산 정상부의 암질이 화강암이 아닌 석회규산염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원래 월악산 일대는 고생대 당시 바다에서 퇴적된 석회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에 이르러 화강암이 석회암층의 약대를 뚫고 관입하면서 접촉부에 있던 석회암은 열과 압에 의해 변성을 받아 석회규산염암으로 변했다.

▲ 예로부터 난리가 미치지 않을 만큼 곡이 깊은 곳으로 알려진 월악산의 송계계곡과 용하구곡은 월악산 절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석회암이 변성을 받으면 보다 더욱 치밀하고 견고해져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는 특성이 있다. 월악산 정상부는 바로 화강암의 관입되는 그 접촉부에 있었던 부분으로 화강암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암질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침식과 풍화에 약한 화강암이 쉽게 깎여나가는 동안 보다 강한 변성암질을 가진 정상부는 우뚝 솟아남아 성채와도 같은 정상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정상부 3개 봉우리는 원래 하나의 돔형의 암체를 이루고 있었으나 암체에 발달한 절리면을 따라 침식과 풍화를 받아 셋으로 분리된 것이다. 수박을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으로 150m의 높은 절벽을 이루는 영봉은 그 낭떠러지 아래로 암체에서 떨어져 나간 암설(巖屑)들이 쌓여 긴 너덜겅(애추, talus)이 형성되어 있다. 지금도 태양열과 빗물의 침투로 팽창과 압축을 반복하며 침식과 풍화가 진행되어 암벽면에서 암설들이 계속적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

한편 월악산 동쪽으로 골이 깊어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산을 시작으로 매두막~문수봉~대미산 등으로 밋밋하게 이어지는 산세는 화강암으로 넘쳐나 암산을 이루는 월악산 일대와는 전혀 다른 육산(肉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이곳 일대의 지질이 화강암보다 침식과 풍화에 강한 변성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른 곳에 비해 침식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단층선 따라 침식력 집중되어 비경 계곡 생성

포암산에서 월악산 정상인 영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분수령으로 하여 서쪽으로 동달천 물길을 따라 송계계곡이, 그리고 동쪽으로 광천 물길을 따라 용하구곡이 쌍벽을 이루며 심산유곡의 비경을 자아낸다. 이 두 물길은 모두 북쪽으로 흘러 남한강 충주호에 합류된다.

송계계곡은 월악산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계곡으로 노송이 우거진 장장 8km의 깊은 V자형의 협곡을 이룬다. 미륵사지에서 송계 방향으로 계곡부의 화강암을 깎아내어 팔랑소, 와룡대, 망폭대, 수경대, 학소대, 월광폭포 등 송계팔경 비경을 이루고 있다.

이 송계계곡을 따라 나란히 놓인 길은 과거 하늘재를 넘어 영남지방과 한양으로 가는 뱃길에 오르는 남한강 한수나루를 이어주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송계계곡의 반대편에 위치한 16km의 깊은 계곡 용하구곡 또한 송계계곡 못지않은 비경이 숨겨져 있다. 대미산, 문수봉, 매두막에서 흘러든 물길이 흘러가며 활래담, 수용담 등과 같은 소와 담을, 선미대, 청벽대, 용하선대, 관폭대 등의 하상암반을, 그리고 수문동폭포, 병풍폭포 등의 비경을 만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월악산 주능선과 나란히 달리며 맑은 물과 울창한 산림이 어우러져 한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깊은 계곡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약 9천만 년 전 북동~남서 방향으로 월악산화강암체가 관입하면서 지각이 승강과 침강을 반복하며 곳곳에 균열이 가면서 단층선이 생겨났다.

이때 단층선의 방향 또한 북동~남서 방향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 단층선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지표는 서서히 깎여나갔다. 그런데 2천3백만 년 전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우리나라의 등줄산맥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생겨나면서 지반이 높게 융기했다. 이로 인해 하천의 물길이 보다 높아짐에 따라 침식력 또한 커져 이전 보다 곡을 깊게 깎아나가면서 지금의 깊은 곡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우평 백령종합고교 교사

온달장군 공깃돌바위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려 있는 미륵사지의 미륵입상과 오층석탑 바로 옆으로 나 있는 개울가에는 축구공 모양의 동그란 바위 하나가 턱하니 암반 위에 올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고구려의 명장 온달 장군이 힘자랑을 했다는 전설이 서린 공깃돌바위다.

공깃돌바위는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상승하면서 냉각·고화된 것이다. 이후 화강암반을 덮고 있던 표토 물질들이 모두 제거되어 지하 깊은 곳에 있던 화강암체가 지표로 상승하게 되면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체적의 팽창으로 암체에 균열, 즉 절리가 발생한다.

이후 이 절리면을 따라 수분이 침투하면서 암석이 점차 침식과 풍화를 받게 되는데, 수평과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가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 침식과 풍화가 집중된다. 따라서 모서리 부분이 보다 빠르게 깎여 나가면서 점차 공 모양의 동그란 암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침식과 풍화의 형태를 구상(球狀)풍화라고 한다. 이후 표토 물질들이 빗물과 바람에 의해 모두 씻겨 내려가면 지하에 있던 둥근 모양의 암괴인 핵석(核石)이 지표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공깃돌바위는 이와 같이 구상풍화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설악산 울산바위 아래 있는 흔들바위 또한 구상풍화의 산물이다. 이 공깃돌바위는 설악산 흔들바위보다 더 동그란 완벽한 공의 형태를 하고 있어 그 신기함이 한층 더한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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