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식생

고산지형 특성 반영한 특별한 식물들
한계령풀, 찝빵나무 등 희귀식물의 남방한계선 이뤄

▲ 태백산의 한계령풀. 중국, 러시아, 한반도의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과 금대봉에서 큰 무리를 지어 자라며, 꽃은 4월에 핀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솟은 소백산을 지나 북으로 달리던 백두대간은 선달산(1,236m) 부근에서 잠깐 동안 경상북도와 강원도 땅을 경계 지은 후 박달령부터 옥돌봉(1,242m), 도래기재를 거쳐 구룡산(1,346m)까지는 경상북도의 품에 안긴다. 구룡산부터는 다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북진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 가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태백산 영역에 이르면서 온전히 강원도로 접어든다. 백두대간이 태백산 정상에서 1km쯤 남쪽에 있는 부소봉(1,547m)에 이르러 경상도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강원도에 들어선 백두대간은 고도를 불끈 높임으로써 위세를 과세한다. 높이 면에서 이전 구간과는 완전히 달라져 함백산(1,573m)을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 태백산(1,567m), 북쪽으로 금대봉(1,418m)이 버티고 서 있는 형국이다. 태백과 함백 사이에 화방재, 함백과 금대 사이에 싸리재, 금대봉 북쪽에 낙동정맥이 갈래를 치는 피재가 있어 이들 높은 산봉을 백두대간으로 이어주고 있는데, 고산지역으로 이루어진 태백산에서 피재까지는 그 거리가 25km쯤 된다.

남한 백두대간의 5개 고산지역 가운데 하나

[대성쓴풀] 남북한을 통틀어 오직 금대봉에만 자라는 한해살이 북방계 식물로, 이런 분포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꽃은 5월에 핀다.
이 구간 남쪽의 백두대간 고도가 1,200m대 전후이고, 북쪽도 두타산(1,353m)에 이를 때까지 평균고도가 1,000m가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웃하는 구간들에 비해서 꽤나 높은 고도를 유지하는 셈이다. 금대봉~함백산~태백산 일대는 남한 백두대간의 주요 고산지역 가운데 하나로서 설악산 지역, 오대산 지역, 소백산 지역, 덕유산 지역, 지리산 지역과 견줄 만한 곳이다. 지리산에서 내륙을 관통해 북동진하며 달려온 백두대간이 숨을 고르는 곳, 백두산에서 남쪽을 향해 달려온 백두대간이 낙동정맥을 분기한 직후 남은 힘을 모아 높이 솟아 오른 지역. 이곳이 바로 태백산-함백산-금대봉 지역인 것이다.

이런 지형적 특징은 식물학적으로도 큰 사건들이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북방계 식물들 가운데 특별히 귀한 것들이 바로 이 지역에서 분포의 남방한계선을 이루고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백두대간의 어느 산이나 한두 종의 북방계 식물이 남방한계선을 이루지 않는 곳이 있지만, 이곳처럼 많은 종이, 그것도 특별한 종이 생육하는 곳은 드물다. 금대봉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대성쓴풀과 개병풍, 함백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분홍바늘꽃과 노랑투구꽃, 태백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좀미역고사리, 찝빵나무, 숲바람꽃, 한계령풀 등이 분포의 남방한계를 이루는 식물들이다.

[분홍바늘꽃]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최근 함백산에서도 발견됐으며, 꽃은 6~7월에 핀다.
대성쓴풀은 금대봉 북쪽 해발 900m쯤 되는 계곡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용담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 몽골, 러시아, 중국 등지에 자라는 북방계 식물로서 북한에도 자생하지 않을 정도로 고위도 지방에 분포한다. 이런 식물이 이곳에 분포하는 것은 식물지리학적으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대성쓴풀이 금대봉에서 발견되어 알려진 것은 1984년으로, 환경부가 이 지역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학술조사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식물학자가 미기록 식물을 발견하고 우리말 이름을 ‘대성쓴풀’이라 지었다. ‘대성’은 금대봉을 대성산으로 잘못 부른 데서 비롯됐다. 환경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할 때도 ‘대성산, 대덕산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이었다.

태백 주민들이 대성산이라는 산은 없고, 그 산은 금대봉이라고 항의하면서 생태계보전지역 이름은 바로잡히게 됐다. 하지만, 대성산에서 유래한 대성쓴풀이라는 식물 이름은 그대로 굳어져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처음부터 금대봉을 인식했다면 ‘금대쓴풀’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에도 없는 북방계 대성쓴풀 금대봉에 자생

[노랑투구꽃] 숲속에 자라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 남한에서는 금대봉과 함백산 일대에만 분포하며, 꽃은 8~9월에 핀다.
금대봉에서 자라는 개병풍이라는 희귀식물도 이곳이 분포의 남쪽 한계에 해당한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할 만큼 희귀한 이 식물은 남한에서 자생지가 몇 곳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 자생지가 금대봉인 것이다. 개병풍은 범의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잎의 지름이 1m가 넘는 것이 있을 만큼 큰 식물이다.

함백산의 분홍바늘꽃도 이곳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과거에는 설악산과 대관령에서만 그 분포가 알려져 왔는데, 최근에 이곳에서도 발견됐다. 역시 최근에 필자에 의해 방태산에서도 발견됐지만, 방태산은 함백산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남방한계선은 변함없이 함백산이 된다.

[나도양지꽃] 중부지방의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의 백두대간 능선에서 볼 수 있다.
노랑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금대봉과 함백산 일대에서 발견된다. 남한에서는 이 일대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희귀식물이며, 금대봉의 경우에 해발 900m 지역에서부터 1,200m 지역에 걸쳐 자라고 있다. 함백산에서는 만항재 부근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좀미역고사리는 북방계 상록성 양치식물로 남한에는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태백산에서도 발견됐다. 개체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전해야 할 식물이다.

찝빵나무는 눈측백이라고도 하는 고산성 떨기나무로, 만주 지역부터 태백산에 이르는 지역에서 자란다. 남한에서는 설악산에서도 볼 수 있으며,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주로 너덜이 발달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숲바람꽃] 경기도와 강원도 몇몇 곳에서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며, 꽃은 4월에 핀다.
숲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고산 지역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한에서는 가리왕산, 명지산, 화야산 등지에서 드물게 자란다. 태백산에서는 해발 1,300m 지역의 숲속에 자라고 있지만, 개체수가 많지 않다.

금대봉과 태백산에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한계령풀은 태백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러시아, 중국 등지에도 드물게 자라는 세계적인 희귀식물로서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가리왕산, 점봉산 등 몇몇 곳의 자생지가 더 있을 뿐이다.

기생꽃 등 법정보호식물 4종 분포

[기생꽃] 지리산, 가야산, 설악산, 대암산, 태백산 등에만 드물게 자라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로 꽃은 5~6월에 핀다.
이밖에도 태백산~함백산~금대봉 고산지대에는 여러 종류의 북방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만병초, 기생꽃, 땃두릅나무, 자주솜대, 날개하늘나리 등을 중요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이곳보다 남쪽 지역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남한에서 자라는 곳이 한두 곳밖에 되지 않는 것들이다.

만병초는 강원도 높은 산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상록성 떨기나무로, 태백산 남쪽에서는 지리산과 울릉도에만 자란다. 기생꽃은 태백산 북쪽에는 대암산과 설악산에도 자라지만, 남쪽으로는 지리산과 가야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이다.

땃두릅나무는 강원도 지역에는 몇몇 곳에서 볼 수 있지만, 태백산 남쪽에서는 지리산에만 자란다. 날개하늘나리는 남한 전체에서 금대봉 일대와 덕유산에만 분포한다. 자주솜대는 강원도의 높은 산 몇몇 곳에 자라고 있고, 태백산 이남에서는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에 자라고 있을 뿐이다.

[노루귀] 남부지방을 제외한 전국의 산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색깔이 다양하며 4~5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태백산은 여느 국립공원에 못지않은 생태계를 간직한 곳이다. 현재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몇 해 전 환경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고 했을 만큼 생태적으로 우수한 지역이다. 국립공원 지정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이루어지지 못했다.

좀미역고사리, 찝방나무, 한계령풀처럼 분포상 남방한계선이 되는 식물들은 물론이고 이밖에도 기생꽃, 만병초, 땃두릅나무, 털쥐손이, 자주솜대, 두루미꽃, 산마늘 등 많은 북방계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에 자생하는 식물 가운데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기생꽃, 한계령풀, 노랑무늬붓꽃, 자수솜대 등 4종이 그것이다.

기생꽃은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북방계 식물로서 백두산 등 북부 지방에서는 비교적 흔하지만, 남한에서는 대암산, 설악산, 태백산, 가야산, 지리산 등 단 5곳의 자생지만이 알려져 있다. 태백산에서는 6월 초순에 꽃을 볼 수 있다. 해발 1,300m대에 50여 개체가 자라고 있지만 종교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철책이 설치되는 등 매우 큰 훼손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꽃이 핀 모습이 기생처럼 예쁜 꽃이라는 데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나도바람꽃] 전국의 높은 산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4~5월에 핀다.
노랑무늬붓꽃은 높은 산 숲속, 또는 풀밭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오대산에서 발견되어 신종으로 기록됐으며,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여겨져 오다 최근에는 중국에도 자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대산을 비롯해 주왕산, 소백산, 가리왕산, 보현산 등 많은 자생지가 알려져 있다. 5월부터 꽃을 볼 수 있지만 고도가 높은 태백산에서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볼 수 있다.

자주솜대는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과거에는 북부 지방과 지리산 반야봉 부근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90년대 중반 이후에 설악산,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방태산, 점봉산 등지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6월에 피는 꽃은 처음에는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지만 핀 후에 차츰 자주색으로 바뀐다.

[태백바람꽃] 몇 해 전 태백산에서 발견된 한국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최근 청태산에서도 확인됐으며, 꽃은 4~5월에 핀다.
이밖에도 태백산 숲속에는 모데미풀이나 태백바람꽃 같은 특별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모데미풀은 설악산 이남의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태백산에서는 해발 1,300m 부근의 물가에 자라고 있다.

태백바람꽃은 최근에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발표된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태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태백산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 신종으로 발표한 식물학자는 발표 당시에 태백바람꽃을 회리바람꽃과 숲바람꽃의 교잡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태백산의 나무들도 풀들만큼이나 특별한데, 북방계 고산식물인 찝빵나무, 만병초, 땃두릅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 외에도 3천여 그루나 되는 주목이 자라고 있어 이채롭다. 백두대간을 따라 난 등산로 가에도 몇 아름이나 되는 늙은 주목들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원산지가 검증되지 않은 어린 주목들을 이곳 백두대간 능선에 식재함으로써 태백산과 백두대간의 자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홀아비바람꽃]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식물이며, 꽃은 4~5월에 핀다.
태백산에는 주목 외에도 분비나무, 잣나무 등 고산성 침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이런 침엽수들은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주로 자라고 있는데,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이런 침엽수 사이에는 사스래나무, 신갈나무, 마가목, 함박꽃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있다. 5월 중순쯤 이곳에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면 신록 사이에 검푸른 침엽수들이 대비를 이루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숲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떨기나무로는 까치밥나무, 민둥인가목, 매발톱나무, 철쭉나무, 털진달래, 만병초 등이 있다. 이 고산지역 숲의 밑바닥에는 만년석송, 뱀톱, 꿩의다리아재비, 꿩의바람꽃, 큰산장대, 노랑갈퀴, 나도양지꽃, 눈개승마 등이 자라고 있다.

태백산은 상봉인 장군봉(1,567m) 외에도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1m), 부소봉(1,547m), 문수봉(1,517m) 등 해발 1,500m가 넘는 여러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봉우리의 정상부에는 떨기나무가 자라거나 초원을 이루고 있으며, 문수봉 정상부처럼 너덜지대로 이루어져 식생이 발달하지 않은 곳도 있다.

정상부는 초원 이루고 작은 나무들 자라

[피나물] 중부 이북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를 자르면 붉은 즙이 나오며, 잎과 줄기에는 독이 있고, 꽃은 4~5월에 핀다.
태백산 정상부에는 바람이 많은 탓에 다른 곳에서는 큰키나무로서 크게 자라는 신갈나무가 사람 키만한 높이로 자라고 있고, 크게 자란 나무들은 가지가 한쪽으로만 뻗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철쭉나무, 털진달래, 붉은병꽃나무, 미역줄나무, 꽃개회나무 같은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군봉과 영봉 사이의 몇몇 곳에는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의 고산초원이 발달해 있는데, 이곳에 법정보호종인 노랑무늬붓꽃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이곳의 노랑무늬붓꽃들 가운데는 화피 안쪽에 노란 무늬가 없이 꽃 전체가 흰색인 개체도 더러 발견된다.

태백산의 해발 900~1,400m 지역에는 소나무, 거제수나무, 산벚나무, 함박꽃나무, 신갈나무, 귀룽나무 등 큰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중간층으로는 물참대, 말발도리, 고광나무, 노린재나무, 괴불나무, 백당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풀로는 덩굴개별꽃, 족도리풀,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모데미풀, 노루삼, 동의나물, 피나물, 선괭이눈 등이 분포한다. 이 고도의 일부 지역에는 일본이깔나무가 조림되어 자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도 하다.

태백산 서쪽 일대는 군사시설로 인해 일반인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기 때문에, 군사시설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생태계가 잘 보전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백산 생태계가 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출입이 금지된 이곳에서나마 귀한 식물들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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