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2006)...........'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06.06.18 영원한 사랑의 도시..피렌체
  2. 2006.06.18 이태리의 대표요리 파스타
  3. 2006.06.18 폼페이에서의 한 시간
  4. 2006.06.18 알프스의 지붕~~융프라우!

영원한 사랑의 도시..피렌체
작성자 : 양중근작성일 : 2006.05.08조회수 : 88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그리고 피렌체

피렌체에있는 대성당은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사랑을 맹세하는곳.
서른번째 생일날, 나와 함께 거기 가줄꺼지?

“냉정과 열정사이”중에서


1997년 일본의 대표적인 두 남녀 베스트셀러작가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가 각자 남자와 여자 두 주인공의 시선으로 마치 일기를 쓰듯이 작품을 써 베스트셀러가 된 후 2001년 일본에서 영화화된 후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도에 개봉된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를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간이 멈춰진 거리 피렌체,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혼란의 거리 밀라노, 과거는 모두 버리고, 미래로만 달려가는 거리 도쿄를 배경으로 사랑의 세가지 색깔을 그려내고 있다.


피렌체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듯한 준세이를 닮아있고 밀라노는 현재의 사랑과 과거의 기억 속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오이를 닮아있으며 도쿄는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닮아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대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3개의 도시를 무대로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보여준다. 특히 피렌체는 회화복원사라는 그의 직업이 말해주듯 옛사랑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하며 과거에 머물러있는 듯한 준세이를 닮아있고, 밀라노는 현재의 사랑과 과거의 기억 속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오이를 닮아있으며, 도쿄는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닮아있다.

베키오 다리, 두오모 성당, 아르노 강 그리고 영화속 남자 주인공이 자전거를 달리던 피렌체의 좁은 골목길 등 영화 속 공간에 푹 빠져있다보면, 남녀 주인공의 10년에 걸친 엇갈린 인연과 애절한 사랑을 함께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원작을 영화로 옮긴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에 대해, 혹은 영화 속 공간과 배경에 대해 독자 각자가 가진 상상력을 모두다 보여줄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타케노우치 유타카와 진혜림의 연기로 소설만큼 아름다운 영화로 탄생했다. 특히 원작의 감동을 생생하게 증폭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의 정경들이었다.


피렌체 그리고 두오모(Santa Maria del Fiore)



1532년 메디치가의 세습체제가 확립되어 피렌체는 토스카나 공국(公國)의 수도가 되었다. 이 무렵부터 질병이 유행하고 인구가 감소되어 이탈리아의 다른 여러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경제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까지 인구는 10만 이하에 머물렀다. 1859년 토스카나 공국은 사르데냐 왕국(뒤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고 1865년부터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격심한 연합군의 공습을 받았으며, 1944년 8월에는 영국·독일 치열한 공방전의 무대로 참화를 입었다. 그러나 이러한 쓰라린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오모를 비롯한 피렌체의 주요 역사유적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꽃의 대성당'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징으로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 연인이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에 만나기로 한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의 대성당과는 사뭇 다르게 친근한 인상을 가져다 준다.

4세기 산타 레페라타 교회 위에, 당시 피렌체의 융성함에 어울리게 '되도록 장엄하게'라는 모토아래, 1296년부터 175년간의 세월이 걸려 완성되었다. 언덕과 같다라고 당시 형용되던 아오이와 준세이의 감동적인 재회의 장소 쿠포라(붉은 지붕)은 부루네레스의 설계이다.

꽃성모 대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피렌체의 두오모는 녹색, 흰색, 핑크의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쿠포라를 오르기위한 463개의 계단을 오를 시간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렌체 골목골목 구석구석에서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건너뛰어주게 한 것은 바로 시간이 멈춘 영원의 도시 피렌체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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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대표요리 파스타.....
작성자 : 김은하작성일 : 2006.05.11조회수 : 82

11세기가 지나면서 나폴리에서는 눌린 빵의 형태가 좀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나폴리에서는 빵을 눌러 구운 후에 길게 자른 라가노(lagano)라고 하는 파스타(pasta)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오늘날에는 '스파게티(spagetti)'라고 한다. 이 명칭은 라틴어의 라가눔(laganum), 그리스어의 라가논(laganon)에서 유래되었다.
프라이팬에 라가노와 콩과 식물, 다른 종류의 재료를 함께 넣어 요리했는데, 이것이 탈리아텔레(tagliatelle)의 기원이 되었다. 과거의 시실리 왕국의 영토였던 지역들에서는 오늘날에도 탈리아텔레를 지칭하는 말로서 라가넬라(laganella) 또는 라가나투로(laganaturo)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같은 시기 나폴리에서는 길게 자르지 않은 둥근 형태의 모레툼으로서 화덕에 넣어지기 전에 색색의 다른 음식물들이 첨가된 요리가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피체아(picea), 후에는 피자(pizza)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오늘날의 피자는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에서 고전 스타일의 피자, 둥글고 납작하게 눌린 반죽 위에 양념을 하고 화덕에 넣어 요리한 것과 이 가득 찬 파스타, 즉 칼초네(calzone)를 함께 지칭한다.




파스타의 기원이 로마 이전에 움브리아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던 에트루리아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으며,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점령 시기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가장 타당성 있는 학설은 마르코 폴로가 이미 수세기 전부터 중국인의 식품으로 사용되고 있던 국수를 직접 가지고 왔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수입했었으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중국 국수가 당시 이탈리아의 토르타나 여러 종류의 빵들에 비해서 혁신적인 발전을 의미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 파스타가 소개된 시기는 대략 1세기로 추측된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일단 소개된 이후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의 무역 활동에서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되었으며, 점차 포로로 잡힌 몽골계 또는 타타르족의 하인드을 통해서 이탈리아의 여러 가문의 식탁에 자주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의 흔적은 시칠리아 섬 이외에 리구리아(liguria)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노바의 상인들은 이미 12세기부터 파스타를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3세기부터는 리구리나와 토스카나 북부 지역에서도 파스타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14세기의 요리책에서 트리아(tria)의 요리법들을 '제노베지(genovesi)-제노바 사람들'라고 부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5세기에는 풀리아(puglia)도 파스타의 새로운 생산지로 등장했다. 건조 파스타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중북부 지역인 에밀리아(emilia)와 룸바르디아(lombardia)의 주부들 사이에서도 생 파스타 요리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중세 말의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지칭하는 명칭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마카로니(macaroni)로서, 오늘날의 길이가 짧고 둥글며 구멍이 뚫린 원통 모양의 마케로니와는 차이가 있었다.

16세기 수도승인 테오필로 폴렌고(teofilo folengo)의 묘사에 따르면, 이 당시의 마카로니는 어느 정도의 편견이 없지는 않지만-어째든 '밀가루와 치즈와 버터로 만든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음식' 이었다고 한다. 파스타의 음식문화적인 개념 정의와 소비의 사회적 주체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15세기까지도 물에 익힌 파스타, 기름에 튀긴 파스타, 소금에 절인 파스타, 단맛의 파스타, 단순하거나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첨가하여 요리한파스타를 아무런 구분 없이 모두 '파스타'라는 이름으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한편 선원과 같이 식량을 오랫동안 보관할 필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대중적인 음식으로 시작되었다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건조 파스타의 경우), 이와는 반대로 파스타가 부자들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생 파스타의 경우).

1800년대 말에는 이탈리아인들의 파스타에 대한 선호도가 급속하게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나폴리에서는 파스타를 길거리의 가두 판매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진정한 '붉은 파스타 혁명'은 대략 1830년경에 미국 대륙으로부터 토마토가 수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이후로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소스의 유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되는데, 버터나 치즈 같은 백색의 재료만 양념하는 후자의 파스타를 비안코(bianco)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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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에서의 한 시간
작성자 : 원성필작성일 : 2006.05.11조회수 : 82

아침 5시에 눈을 뜬 우리들은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일정과 기대를 한껏 온몸에 두른 채 버스에 올랐다. 월요일 아침 여느 때 같았으면 도로가 온통 출근하는 버스들로 붐볐겠지만 5월 1일 노동절 휴일인 관계로 여유있는 나들이를 나설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3시간쯤 달린 후 도착한 폼페이 하지만 폼페이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벌써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의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연휴에 관광지는 마찬가지인가보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이탈리아인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입장한 폼 페 이.

우리가 들어선 곳은 관광지가 아닌 서기 79년에 화산재가 삼켜버리기 전의 그 번성하고 화려했던 로마시대의 항구도시였다. 바로 2000년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은 것이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도로. 커다란 돌로 길바닥을 만들어 비가오거나 건조해도 마차가 다니거나 사람들이 통행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는 마차도로와 건널목. 그리고 길바닥을 수놓고 있는 하얀색 대리석 가로등-달빛에 반사되어 가로등 역할을 했다고 함.-
폼페이 유적지의 목욕탕 내부 전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그것과 전혀 다름이 없는 목욕탕의 구조와 시설들. 오히려 당시에는 지금 보다 훨씬 장식적이고 화려한 내부 장식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정말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당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 2000년전의 상하수도 시설이라... 믿어야 할까? 가이드가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이탈리아정부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교묘한 계락은 아닐까?

연이어 나타나는 길가에 즐비한 상점들- 목욕 후 갈증을 달래주려 포도주와 음료수를 팔던 술집, 밀을 갈던 방아와 그 밀가루로 빵을 만들던 오븐이 아직도 있는 빵집, 그리고 선원들과 남자들을 위해 존재했던 유곽....

그리고 주민들과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여가를 위해 만들어진 원형극장-그 곳의 구조는 매우 완벽해서 무대에서 연극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낭송하거나 할 때 그 음향이 극장의 곳곳으로 퍼져나간단다.

영화에서 보았던 검투사들의 연습장-보통은 노예의 신분인자들이 많았으며 그 경기에서이기는 사람들은 종종 좋은 대접을 받기도 했다고 함. 하지만 그들은 사람대접을 받았다기보다는 하나의 소모품으로 존재했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폼페이유적의 원형극장전경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 속에는 감추어져 있는 도시의 다른 역사가 있다.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비극” “최후”라는 단어. 79년 당시 화산에서 분출되어 나온 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시체들의 모습들- 코를 막고 앉은 채 죽은 사람, 쓰러져 죽은 이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져있는 여인과 불룩 나온 그녀의 배에서 자라고 있던 아기... 정말로 놀랍고도 슬픈 것은 그들 모두가 노예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혹은 어떠한 사연에서건 노예로써 고단한 삶을 살았건만 죽음도 그처럼 비극적이었다는 것은, 그리고 이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그들의 주인들은 이미 멀리 도망쳐버렸다는 건 과연 이 도시가 환락과 퇴폐의 대명사인 소돔과 고모라와 되어야 할까? 그건 너무도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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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지붕~~융프라우!
작성자 : 백성준작성일 : 2006.05.17조회수 : 107

11시간의 비행끝에 도착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국제공항! 왠지 한산하다..독일 월드컵때문에 세관검색이 더 까다로울것이라는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예상보다 빨리 입국수속을 하고 나와 피로에 지친 고객님들을 달래며 버스에 오르니 기사가 지리를잘 모른다..우린 며칠을 그렇게 길을 물어서가며 투어를 했다..담당자분께 연락을 하여 기사 빨리 바꾸어 달라는말에 로마까지는 와야 한단다..기사의 미숙함과 나의 부족함에 죄송하다는 말밖에..그래도 투어를 진행하면서 버스운은 없었지만 날씨운은 정말 좋았다..특히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융프라우는 여름에도 눈과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날씨가 쌀쌀하고흐린날이 많으며 또한 고지대이니 만큼 기상변화가 심해 간혹 눈보라가 치고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의 날씨를 보이기도 한다. 산 아래 도시인 ! 인터라켄과도 기온차이가 많이난다..
융프라우는 해발고도 4,158m로 알프스 산맥의 하나로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으며 몇천년전에 만들어진 빙하를 볼 수 있다.
인터라겐역(567m)에 도착하니한국분들이 참 많이 보인다. 우리는산악열차와 톱니바퀴 열차를 갈아 타면서 주위에 펼쳐지는 만년설의 모습들을 볼수 있었고 융프라우를 오르면서 보는 설산의 위엄은 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고객님들 연신 감탄한다..지난달까지만 해도 스키어들로 넘쳐났었는데 좌 우로 펼처지는 산 전체가 자연 스키장때문이리라..지금은 스키어들은 온데간데없고 관광객뿐이다..온통 한국사람뿐..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 역까지는 꽤나 긴 터널을 통과하는데 이 터널을 만드는데 17년이 걸렸다.
정상까지 오르면서 터널 속에서 중간 중간에 내려 좌우로 난 전망대를 통해 빙하의 흔적도 구경한다.
특이한 것으로는 얼음궁전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천정부터 바닥까지 얼음을 이용한 얼음동굴로 곳곳에 얼음으로 만든 조각들이 있어 독특한 맛을 낸다..
얼음궁전관람후 우린전망대 밖으로 나와 손에 잡힐듯 솟아있는융프라우 영봉과 만년설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었다..3454m에 스핑크스 전망대..스위스 알프스라고 하면 산악 열차를 타고 이동 하여야하고 가장 높은곳 까지 오를수 있는 기차역이 있어 스핑크스 전망대를 유럽의 지붕이라고 하나보다..
10일간의 짧지않은 여행이었고 기사덕분에(?) 버스도 더많이 탔지만 불평없이 함께 투어를 마쳐주신 34분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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