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이 반포된 직후, 김수온(金守溫)이 지은 내불당낙성기(內佛堂落成記)인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에 보면 47개의 인명이 성씨와 함께 기록돼 있다. 특히, 고유어 인명을 한글로 적고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름에 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읽어 볼 수 있다.[백두대간 대장정 제22구간 / 갈전곡봉] 지명
돋달(양양) 고을 변두리의 치밧골(갈전곡) 봉우리
인제의 옛이름 저족(猪足)은 높은 산지의 뜻
막동, 타내, 올마대, 오마디, 오마대, 오망디, 오미디, 쟈가둥, 마딘, 도티, 고소미, 매뇌, ?리대, 올미, 더믈, 샹재, 검불, 망오지, ?구디, 수새, 쇳디, 랑관, 터대, ?둥, 우루미, 어리딩, 돌히, 눅대, 아가지, 실구디, 검둥, 거매, 쟈근대, 북쇠, 은뫼, 망쇠, 모리쇠, 강쇠, 곰쇠….
어떤 것은 외래어나 외국어 같은 것도 있고, 우리식 이름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이상한 것도 많다. 지금으로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름도 꽤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이름들은 모두 우리말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이다.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란 뜻의 검불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가 하면, 끝에 낳았다는 뜻이 들어간 막동이 있고, 늑대라는 짐승의 이름을 딴 듯한 눅대도 있다. 망아지(말 새끼)란 뜻의 망오지(망아지), 돼지란 뜻의 도티, 검은 사람의 뜻인 검둥이나 거매, 망할 놈의 뜻의 망쇠, 똥구덩이란 뜻의 ?구디처럼 무척 천박스러운 뜻을 가진 것도 있어 더 눈길을 끈다.
똥이나 쇠 자와 같은 천스럽게 들리는 말을 써가면서까지 이와 같은 천명(賤名)을 쓴 것은 그들의 신분이 천하거나 자식이 아무렇게나 자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지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임으로써 복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은 한자로 적고 이름을 한글로 적었는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름들을 한자로는 모두 표기하기가 어렵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수산에서 내려다본 구룡령 도로와 양양쪽 산줄기들. 갈천리 깊숙한 곳으로 후천 골짜기가 들어오고, 그 왼쪽에 백두대간, 오른쪽에 조봉 능선이 높다랗게 솟았다.
돼지의 원이름은 돝 또는 도티
우리네는 집짐승 중 좋은 꿈을 꾸라고 하면 개나 닭 같은 동물을 들지 않고 대개 돼지를 든다. 돼지는 잘 먹고 잘 크기 때문일까? 지저분하고 잘 생기지 않은 짐승임에도 잘 먹고 잘 자라서 그랬던지 우리네는 돼지를 부(富), 나아가서는 행복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그 흐름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멧돝(멧돼지) 잡으려다 집돝(집돼지)까지 잃는다는 속담은 부를 추구하되 지나친 욕심은 자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역시 돼지를 돈(재산)과 관련지은 것이다. 그런데다가 돼지가 한자로 돈(豚)이어서 금전을 뜻하는 우리말인 돈과 음이 같아 돼지=돈이라는 인식을 머리에 뿌리박게 만들었다.
도티의 뿌리말은 돝(돋) 또는 도티이다.
·현무문(玄武門) 두 도티 한 사래 마?니 (용비어천가 43)
·돋 시(豕) (훈몽자회 상19)
·돋? 고기? 사다가 (소학언해 4-5)
·쇼와 양과 돋티라 (소학언해 2-33)
옛사람들 이름에 도야지 또는 대아지, 도지, 도치(도티) 등의 이름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돼지라는 뜻을 지닌다. 집짐승 이름들을 보면 말, 소, 개, 닭, 양처럼 한 음절 이름이 많다. 그런데, 돼지만은 두 음절이다. 그러나, 돼지란 말도 원래 돝(돋)이라는 한 음절이었다. 옛날에는 집짐승을 나타내는 외자 낱말에 ?지(아지)라는 말을 덧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새로 태어난 것(새끼)에 그런 일이 더 많았다.
·쇼(소)+?지>쇼?지(소?지)>송아지
·말+?지>마?지>망아지
·가(개)>가?지>강아지
·돝+아지>돝아지>도야지(돼지)
그렇다고 보면, 지금의 돼지(도야지)란 말은 돼지의 새끼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돝이 아닌 돝아지(도야지) 자체가 돼지란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돝이란 음 자체가 조금 힘들어 나온 현상으로도 보인다.
땅이름에서도 돝(돋)이란 음을 많이 사용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중엔 돼지와 관련하여 나온 것이 많지만, 오랜 옛날에는 지형적인 의미로 붙여진 것이 더 많았다. 즉, 돝(돋)을 돼지가 아닌 돋음(솟아오름)의 의미로 새겨 한자의 도(刀)나 동(冬)으로 음역하여 붙인 것이다. 지금의 경북 영천시 일부였던 곳의 삼국시대 지명은 돋??로 유추되는 도동화(刀冬火)이고, 경기 과천시의 삼국시대 별칭은 돗?홀(돗골, 돋골)로 유추되는 동사힐(冬斯?)이다.
일부에서는 도(刀)나 동(冬)으로 취한 돋(돗)을 일출(日出)의 의미로도 보고 있으나, 대개의 땅이름이 지형적인 면을 고려하여 붙인 것임을 생각할 때 돋아오른(두드러져 오른), 즉 높은 의미로 새기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높은 산의 고장 인제 고을의 돋달▲ 인제 진동리에서 양양 서림으로 넘어가는 조침령
백두대간 중에서 강원도 구룡령과 조침령 사이의 구간은 근처 다른 구간에 비하여 조금 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산지는 엄첨나게 넓어 주위가 온통 산이다. 한계산(漢溪山) 이남의 광활한 산지는 북한강 지류들과 남대천 지류들의 분수령을 만들어 놓고, 양양과 인제라는 큰 산고을을 갈라놓는다.
이러한 산지 고을임에도 이 근처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터박아 살아왔다. 산지 지역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이긴 하지만,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서는 한반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어 이 지역에서 인간이 오래 전부터 거주해왔음을 알 수 있다.
양양 일대는 삼국시대 이전에 예(濊)나라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 영역이었던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이문현(伊文縣) 또는 익현현(翼峴縣)이었다. 이문(伊文)의 음운반절(音韻反切)은 ‘일’로, 그 뿌리말은 ‘읻’일 것이며, 익현(翼現)의 익(翼)도 ‘읻’의 음차로 보인다. 이 ‘읻’은 지금의 우리말 얕다의 ‘얕(얃)’에 대응되는 말로 보인다.
익현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시대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5도양계제(五道兩界制) 실시에 따라 현령이 파견되고 동계(東界)에 속했던 그 당시에 동산현(洞山縣)을 속현으로 병합했다. 1221년(고종 8)에 양주(襄州)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양양(襄陽)이라는 이름의 바탕이 된다.
양양의 양(襄)도 ‘얃'을 근거로 한 이름으로 보인다. 양양은 낮은 산의 고을의 뜻인 얃골일 것이다. 지금의 양양 고을은 고구려 때의 이문(익현) 지역만이 아니며, 고을 땅의 남서쪽(백두대간 서쪽) 일대는 대부분 큰 산골짜기임을 뜻하는 혈산(穴山) 또는 동산현(洞山縣) 지역이었다.
백두대간 동쪽의 양양 지역이 오랜 옛 지명으로는 낮다는 뜻으로 나오는 데 반하여 서쪽 지역은 높다는 뜻으로 나온다. 그 대표적 지명이 바로 저족(猪足)이다. 저족을 한자 뜻대로 풀이하면 돼지 다리가 되지만, 이 뜻으로 되었을 리는 거의 없다. 그리고, 삼국시대 무렵엔 실제 돼지란 말을 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돼지의 옛말은 돝(돋)이다. 따라서, 다리의 뿌리말 달이 돝이란 말 뒤에 붙어 돝달이 이 고을의 이름으로 자리 잡아 갔을 가능성이 짙다. 즉, 돝달이 돝다리가 되고, 이것이 한자의 저족(猪足)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언어학자 고 신태현(辛兌鉉)님도 저(猪)의 훈이 돋이고, 족(足)은 다리로 산(山)의 뜻인 달의 훈차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제 고을의 옛 토박이 이름은 돋달이며, 이것은 바로 일출산(日出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돝달이 저족이란 한자 이름으로 갔을 것이라는 것은 동감하나 이를 해 돋는 산을 뜻한다는 것에는 의문이 생긴다. 고대의 땅이름에서는 돋이 대개 두드러져 오른 곳 즉 높은 지대를 일컬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달은 산의 옛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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