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중국 - 실크로드

☞ 천년을 거슬러 동서양 교류의 흔적을 되새기다

-산위의 눈녹아 흐르는 시원한 지하수, 푸른 포도밭 일궈
-다양한 문화 막고굴의 채색 조각상과 사방의 벽화가 백미

실크로드(Silk Road)는 비단무역으로 대표되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통을 지닌 무역로 중 하나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이 길은 오늘날의 시안(서안) 즉 중국의 옛 도읍인 장안에서 시작돼 지중해 연안까지 약 7천여 Km를 잇는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수많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번성했고 이 길을 통해 수많은 상인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국의 특산물들을 날랐다. 비단 물자 뿐 아니라 또한 종교와 문화가 또한 오갔다.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 교류의 가장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전혀 다른 문명의 조우와 험난한 여정으로 실크로드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이 책이 유럽에 출판된 후로는 상인들 외에도 수많은 여행가들이 모험을 꿈꾸며 이 여정에 기꺼이 동참했다. 현장법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얻어오는 이야기인 ‘서유기’ 역시 무한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실크로드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과 동경을 보여준다.


■ 사막 한가운데 꽃 핀 문명

둔황은 실크로드의 흥성과 함께 번영한 대표적인 도시이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평범한 오아시스 마을이었던 이곳은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이름의 뜻처럼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했었다. 세월이 흘러 전성기의 둔황고성은 이미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막고굴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등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막고굴은 둔황시 동남쪽에 위치한 명사산 동쪽 기슭에 세워져 있다. 외부는 중국의 전통 건물의 모습이고 유물들은 동굴 안에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또 다른 형태로 수많은 불상들과 불교와 관련된 벽화 등이 남아 있어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자료에 따르면 1600m에 달하는 동굴은 5층 구조로 돼 있으며, 진나라 때 처음 창건돼 원나라 때까지 끊임없이 작업이 진행된 천여년의 문화와 예술이 집약된 산물이다. 둔황이 실크로드를 통해 여러 지역 문화의 교류의 장이었던 만큼 한족 문화 뿐 아니라 티베트, 서역 등 다양한 배경의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둔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둔황학’이라는 전문분야로 분류되기도 한다.

492개의 동굴 안에 2415개의 조각상과 사방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다름 아닌 벽화이다. 규모에서 전해지는 웅장함과 섬세한 묘사와 아름다운 색채감 등은 그 자체로써 동양회화를 대변한다. 후레쉬를 터뜨리거나 할 경우 벽화 등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관람 규정이 까다롭게 지켜지고 있다. 관광객들은 입장 전에 반드시 카메라, 캠코더 등을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 푸른 포도밭 길 따라 산책

마찬가지로 실크로드 여정에서 주요 도시였던 투루판은 중국에서 포도와 포도주가 유명하다. 대구와 같은 분지 지형이어서 여름이면 50도에 육박하는 불볕 더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기가 매우 건조한 까닭에 일단 그늘에만 들어가면 더위가 사뭇 덜하다.

또 사막에 가까운 척박한 땅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푸른 포도밭을 만나면 청량한 기분마저 든다. 대표적인 곳으로 화염산 기슭에 위치한 포도구를 방문해 볼만 하다. 4km에 걸쳐 포도밭이 이어지는데 포도넝쿨로 이뤄진 긴 회랑을 따라 시원한 산책을 즐긴다. 이곳에서 포도박물관과 포도주 공장 등도 방문하고 즉석에서 딴 청포도를 시식할 수도 있다.

당도가 높고 맛있는 포도가 유럽의 건조한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지만, 사막에 가까운 척박한 땅에 펼쳐진 푸른 포도밭이 신기하다. 이들 포도밭은 감아정이라는 독특한 수리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한다. 산 정상에서 밭까지 이르는 길에 일정한 간격에 지하 우물을 만드는 한편 그 바닥은 서로 이어지도록 한다. 높은 산 위에 쌓인 눈이 녹아 한 여름에도 지하의 감아정에는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른다.

투루판은 또한 고창고성과 아스타나 고분이 유명하다. 고창고성은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번영했던 고창국의 유적으로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담벼락만 남아 있다. 현장법사도 서역에 가는 도중 고창국에 들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아스타나고분은 고창국의 공동묘지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창고성과 대조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실크, 도자기, 벽화, 미라 등이 출토돼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모두 이 지역의 건조한 기후와 토양 덕분일 것이나 대부분의 유물들은 20세기 초에 영국인 스타인 등에 의해 해외로 밀반출 됐다.

■ 중국 서쪽 끝의 또 다른 천지

우루무치는 신지양(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구도이다. 한 때 방목장이었으나 이제는 신지양의 중심지로써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다. 평균 해발고도가 900여m로 고지대여서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편이고 날씨도 쾌청해 여행하기 더 없이 좋다.

중국의 성도나 구도를 방문하게 될 경우 박물관에 꼭 들려보길 권한다.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발전한 중국에서는 어느 지역을 가나 풍부한 유물들이 전해져 내려오며, 해당 성의 유적들이 집결되는 곳이 바로 성박물관 및 자치구 박물관인 까닭이다. 신지양자치구 박물관 역시 신지양의 역사 및 12개 민족의 생활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5만여점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천산천지는 우루무치 최고의 관광코스로 꼽힌다. 해발고도 5445m의 이곳은 한 여름에도 눈덮인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으며 긴팔 옷을 챙겨야 할 만큼 기온이 낮다. 천지는 이 눈이 녹아내린 물이 모여 이뤄진 호수인데, 물이 매우 맑아서 거울처럼 주위의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중국 실크로드 글·사진=이병기 전무
취재협조=에어차이나 02-774-6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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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실크로드 下 - 우루무치

-중국의 또 다른 얼굴 우루무치
-기차로 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아침에 일어나니 기차는 어느덧 신강위구르 자치구에 들어와 있다. 마침 중국의 유명한 위구르음악의 대가 왕루오빈이 노래한 ‘다반청 꾸냥’의 그 다반청(達板城)에 설치된 아시아에서 최고로 큰 ‘다반청 풍력 발전소‘를 지나고 있다. 사막같은 거친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지는 철로변에 우뚝 솟아있는 풍력 발전기의 웅장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큰 날개 3개를 돌리려면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불어야 할까. 바로 그 바람이 풍력 발전기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황사까지 선물하니 그 바람을 고마워해야할지 미워해야할지….

동양 최대의 풍력 발전소 뒤편으로는 만년설로 뒤덮인 천산(天山)산맥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 여행신문


-세계에서 바다와 제일 먼 도시

여행 여느 때처럼 그렇게 이어지던 사막화 되어가는 땅을 지나다가 물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여행의 종착역 우루무치에 도착하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무원이 내릴 준비를 하라고 알려준다.

우루무치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넘었지만 날씨는 한국보다 훨씬 따뜻했다.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세계에서 바다와 거리가 제일 먼 도시로, 과거에는 유목생활을 바탕으로 한 곳이다. 지금은 중국 서쪽 지방에서 가장 발전한 현대적인 도시.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는 물론 이미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됐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 여러 나라와 항공로가 개설돼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곳이 우리가 알던 중국과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사람들의 생김새와 베이징 시간보다 2시간 늦게 가는 우루무치 시간을 듣고 나서였다. 이곳에는 위구르족 말고도 카자흐족, 타지크족, 회족, 한족, 몽골족 등 13개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우루무치 시내에서는 소수민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전 국토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신강 위구르자치구에는 중국 정부의 한족이주 정책에 따라 인구의 90%가 한족이며 소수민족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채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이곳에도 백두산 천지와 같은 천산(天山) 천지(天池)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는 길. 우루무치 시내에서 1시간 반 걸려 도착한 천산. 매표소에서도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멋진 장관을 보며 30분쯤 더 가서 도착한 천지에는 아직도 얼음이 얼어있다. 5월이 되면 유람선도 떠다니고 침엽수림인 우뚝 솟아있는 주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천막집인 파오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여름이면 천지 이곳저곳에 카자흐족 전통복장을 하고 사진도우미를 하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곳에 멋진 전설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 불로의 천사 서왕모(西王母)가 목욕하던 곳이란 설명을 듣자마자 그럼 천지가 꽁꽁 얼어있는 겨울엔 어디에 가서 목욕을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에 살풋 웃음이 삐져나온다. 내려오는 길에 조그만 연못이 있어 물어보니 이곳은 서왕모가 발을 씻던 곳인 ‘소천지(小天池)’란다.


ⓒ 여행신문


-우루무치에 와서 꼭 가봐야 할 바자르

막연한 상상과 설렘을 품고 떠난 실크로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우루무치.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들, 그리고 한족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커다란 눈동자의 소수민족들, 그들만의 독특한 복장과 거리 곳곳에서 풍기는 양고기 냄새.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살아가는 우루무치, 그곳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과거 실크로드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우루무치 시내 곳곳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소수민족이 많은 도시답게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농산품이며 생필품, 그리고 우루무치 특산품을 판매하는 대규모 바자르를 구경하는 것은 관광지를 가는 것 못지않은 생생한 경험이다. 현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어보고, 그들과 나눠보는 한두 마디에 여행은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다. 다만, 그들의 바가지만 없다면 더욱 즐겁겠지만, 상인이 있는 곳에 바가지가 없을 수 없으니 그쯤은 웃어넘겨도 좋으리라.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내내 황사 먼지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황토빛 얼굴에서 배어 나오는 환한 웃음을 보며, 웃음은 그런 황무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오아시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시황 병마용에서 만난 병마용 병사의 얼굴이 서안 사람들의 얼굴에 오버랩되고, 돈황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돈황에 사는 어린이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6.25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던 둔황에 사는 이슬람족 할아버지, 돈을 벌기 위해 란저우에서 돈황 명사산까지 와서 돈을 버는 한족 연 아저씨, 우루무치에서 월급 800위안에 청소부 일을 하는 우즈베크족 아줌마, 돈황에서 한국어 가이드를 하는 한족 청년…. 과거는 현재와 멀리 있지 않았고, 미래 또한 현재 속에 있음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깨달으며 돌아가는 짐을 꾸린다. 내 배낭에 실려진 것은 흙먼지만은 아닐 것 같다. 실크로드에 다녀온 후, 중국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황사에서 반가운 그들을 만난 듯 내심 반가움이 느껴진다.

-중국을 기차로 여행할 때

이제 슬슬 중국 열차를 타고 우리 여행의 종착지 우루무치로 떠난다. 중국은 워낙 국토면적이 넓다보니 기차 안에는 침대칸이 있다. 보통 중국 기차는 앉아서 가는 의자칸(잉쭈오)과 누워서 가는 침대칸으로 나뉘는데 침대칸은 일반 침대칸(잉우오)과 고급 침대칸(루안우오)으로 나뉜다. 물론 가격차이 만큼 편안함도 다르다.

일반 침대칸은 한 칸에 6명이 함께 누워가며 칸막이가 없는 대신 고급 침대칸은 한 칸에 4명이 함께 가며 칸마다 문이 달려있어 안에서 잠글 수도 있다. 시설적인 면에서도 훨씬 고급스럽다. 보통 외국인 관광객들이 4인용 고급 침대칸을 많이 이용한다.

기차에는 간단히 씻을 수 있는 세면실과 화장실 그리고 따뜻한 물이 24시간 공급되고 식당칸이 따로 있으므로, 오랜 시간을 가더라도 그다지 불편함은 없다. 가는 내내 황량한 사막화 되어가는 이국적인 땅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경이로운 경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차여행의 매력이리라.


글·사진=Travie writer 박임자 freebelt@naver.com
취재협조=상해항공 02-317-8899
테마중국여행 02-736-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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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실크로드 中 - 어머니의 강 따라 흐르는 란저우(蘭州)

상해항공 비행기를 타고 란저우로 간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 황무지산에는 간간히 작은 나무와 풀들만이 보인다. 자연지형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중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곳이 바로 감숙성의 성도이자 황하강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란저우다.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곳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란저우사범대학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유학생. 이 곳에 한국인이 70~80명 정도 거주하는데 그 중 40명 정도가 유학생이며 나머지는 주로 여행사나 무역,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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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뗏목 타고 황하를 건너

란저우는 중국의 지도자 후진타오가 문화대혁명 때 감숙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있었던 곳으로, 인구의 반 이상이 문화대혁명 당시 하방(지식인들을 강제로 농촌으로 보낸 것) 때 란저우로 와서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다.

황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존공생의 도시 란저우는 물레방아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바로 수차(수레바퀴) 때문이다. 황하의 물을 퍼 올려 농업용수로 사용하게끔 만들어진 수차는 모양은 물레방아와 비슷하나 크기가 무척 크다. 명나라 때부터 만들어진 이 수차는 황하 양쪽으로 1952년까지 모두 252개가 세워졌으며, 이를 기념한 ‘물레방아 공원’에는 다양한 수차가 전시돼 물의 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란저우 황하 강변공원에는 그곳만의 재미있는 풍경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랜 옛날부터 사용해 왔다는 양가죽 뗏목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양고기를 즐겨먹는 회교도의 종교적 식습관 때문이었는지 뗏목에 사용된 것은 돼지가 아닌 양가죽이었다. 양을 잡아 칼집을 내지 않고 목 부분을 통해서 뒤집어 풍선처럼 부풀린 양가죽 뗏목은 지금은 관광객들의 인기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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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를 보려거든 백탑산(白塔山)으로...

란저우에서 황하를 건너려면 양가죽 뗏목 외에 1907년에 독일의 기술력으로 만든 중산교(中山橋)을 걷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독일인이 100년은 끄떡없을 거라 자신했던 중산교를 걸어 바로 앞에 보이는 백탑산 정상에 오르면 란저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보내고 내려와 실크로드의 다음 도시로 갈 채비를 한다.

-만리장성의 서쪽 출발점 ‘가욕관’

지금까지는 시간을 고려해 비행기로 이동을 했지만, 이제 기차와 버스로 우루무치까지 이동한다. 란저우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밤을 달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 가욕관. 군사적인 기점으로 명나라 때 세워진 가욕관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 세워진 성곽이다. 당시에는 2백~3백 명 정도의 군사가 거주했다고.

성곽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도 가욕관인데 도시 가욕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2년 착공된 란신철도(란저우~우루무치)가 이곳을 지나면서 인구가 많이 늘었고 60년대 새로 발전된 철강공업도시로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곳이다. 가욕관 성곽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면 저 멀리 눈 덮인 천산(天山)산맥이 이어져 척박한 땅 위로 만리장성의 시작점이 보인다. 북방의 유목민족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기에 이곳에까지 만리장성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가욕관에는 만리장성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장성박물관’도 자리했다.

가욕관에서 돈황으로 가는 길, 이채로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사막 위에 풍력발전소가 세워져 있고, 중간 중간 흙으로 쌓아올린 거의 다 무너져 내린 성벽들도 보인다. 가는 길 내내 고속도로 건설 현장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기 건설현장에서 돌을 나르는 사람들은 과거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들처럼 일반 서민들이리라. 그런 그들이 21세기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드는 주인공인 셈이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다 도시에 도착해 갈 때면 공통된 풍경이 익숙하다. 사막이 이어지다 물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면 도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물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돈황 막고굴 벽화에 그려진 것처럼 물이 있는 곳은 그들에게 천국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해본다.

둔황은 기원전 11년, 한 무제가 이곳 흉노를 물리치고 한족을 이주시켜 서역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렇게 개척된 실크로드는 명나라 때 해상로가 발달되기 전까지 천산 남북로가 만나는 실크로드의 정치, 경제적인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으로 어느 도시보다 영화를 누렸던 도시 돈황은 이름 자체도 ‘크게 번성하다’란 뜻을 지녔다. 그러나 그런 영화도 명나라 때 해로가 개발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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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문화박물관 돈황 막고굴

그렇게 잊혀져 가던 돈황이 다시 세상을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00년 막고굴이 발견되면서 부터다.

중국의 3대 불교석굴 중 하나인 막고굴은 서기 366년 악준이라는 승려가 처음 뚫기 시작했다. 자갈과 모래가 혼합된 사암에 촘촘히 굴을 뚫고 들어가 밀짚과 진흙으로 벽을 도배하고 횟가루를 덧칠한 후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만든 것이다. 원나라 때까지 1천여 년 동안 계속 뚫고 만들진 막고굴의 가치는 작품과 더불어 1000년이란 시간의 흐름 자체에 있다.

다시 나타난 막고굴에 남아있는 석굴만도 550여 개, 불상과 벽화가 있는 굴은 474개다. 이외에 불화와 불상 못지않게 17동에서 발견된 한문, 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몽골어 등 다양한 문자로 쓰인 문서들도 중요한 자료다. 잘 알려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 속에서 발견됐다.

가이드는 막고굴 끝 쪽으로 보면 강이 하나 흐르는데 그 옆으로 벌집처럼 굴들이 뚫려있다며, 그 속에서 안료 등이 발견돼 화공들의 주거지였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 시대의 천대받던 화공들의 손에서 빚어진 자연 속 화랑 막고굴이 있어 그 삭막한 사막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다니.

막고굴은 현재 작품의 훼손 등을 막기 위해 10여개 정도의 굴만 개방을 하고 있으며, 카메라를 포함한 짐은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현재 3명의 한국어 통역 가이드가 배치돼 있어 인민폐 50위안 정도면 한국어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돈황 벽화와 불상을 미리 만나보고 싶다면 중국 돈황연구원에서 만든 홈페이지
(http://www.dha.ac.cn./lvyoujiedai/main.htm)에 가면 멋진 사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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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사막 명사산, 사막 속 초승달 오아시스 월아천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돈황 명사산에 가면 요즘은 비록 관광객들의 유입과 인구의 증가로 물 사용량이 많아져 크기가 30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었지만 3000년 이상을 마른 적 없다는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이라는 호수가 있다.

월아천이 있는 명사산은 상상 그대로의 사막이다. 이 모래 사막의 모래가 한국에 까지 피해를 주는 황사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명사산의 고운 모래는 황사와는 상관이 없다. 황사바람은 사막화가 진행되는 신장 자치구의 땅의 건조한 미세 먼지가 강한 바람을 타고 오는 현상이기 때문. 문득 돈황이 아름다운 건 명사산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고, 그 명사산이 아름다운 건 보석처럼 빛나는 월아천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모래썰매와 낙타 그리고 저녁노을은 삶을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

+++++플러스 α+++++

★ 돈황고성 - 돈황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1987년 중-일 합작으로 만든 영화 <돈황>을 찍으면서 지은 세트장이 나온다. 송대 돈황 성곽과 거리를 제현한 이 영화세트장은 돈황에 왔다면 꼭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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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카를 가지고 여행할 때 - 중국을 여러 날 여행하다보면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늘 메모리 카드의 용량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이용해보길 권하는 곳이 바로 코닥 전문점. 코닥은 노란색 가판에 중국어가 쓰여 있어 찾기 쉽다. 그 중 규모가 제법 커 보이는 곳에 들어가면 대부분 메모리 카드에 찍은 사진을 들어가면 대부분 메모리 카드에 찍은 사진을 CD에 구워준다. 요금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CD 1장당 10~20위안 정도. 중국어로 '커루(刻錄)라고 발음하면 알아서 해준다.

글·사진=Travie writer 박임자 freebelt@naver.com
취재협조=상해항공 02-317-8899
테마중국여행 02-736-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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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실크로드 上 - 시안, 실크로드, 역사의 길목에서

-길을 따라 가는 여행…

매년 봄마다 중국 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
그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사람이 다니기 시작해 길이 새겨진지도 벌써 2000년이 넘었다.

길은 과연 인간에게, 그리고 인간의 삶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길에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수 천년이 흐른 후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돼 있을까?
길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실크로드 여행길이다.

때론 황사라는 것이, 지구 저편에도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의미의 ‘길’은 아닐까.


ⓒ 여행신문


끝없이 이어진 길이라 해도 처음은 있다. 중국 역사에서는 한무제 때 북의 흉노족을 막기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고행했던 장건이 걸었던 길을 실크로드의 한 갈래로 보고 있다. 길은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길을 탄행시켰으니, 바로 7000km를 훌쩍 넘는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는 중국 동쪽 시안(서안)을 출발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 로마로 이어지는 장대한 길이다.

우리에게는 비단길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 서방으로 가져간 무역품이 대부분 비단이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이들이 가져간 보따리에는 무역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불교와 이슬람교가 전해진 것. 이에 실크로드는 동서문명의 이동로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초기의 실크로드는 옥이 많이 나던 호탄을 끼고 천축(북인도)으로 이어지는 서역 남도가 유행했다. 그러다 7세기 사막화와 이민족의 침입으로 점차 왕래가 뜸해지다 사막 횡단 시 거리가 짧은 서역 북도로 몰리게 됐다. 이후 서역북도는 천산(天山)산맥을 기점으로 둔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이닝-카자흐스탄-터키-로마까지 이어지는 천산 북로와 둔황-투루판-쿠얼러-쿠처-카슈가르-파미르고원-이란-터키로 연결되는 천산 남로로 나뉘게 된다.

최근 서부대개발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실크로드는 아직도 길 위에 남아있을 동서양 문명의 흔적을 찾아가는 묘미에 많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는 실크로드가 시작하는 시안부터 우루무치(천산 북도)까지 길과 함께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시안

상해항공을 이용해 상하이를 거쳐 시안에 도착했다. 시안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양 옆, 봄 바람에 푸릇푸릇하게 자라는 벼들 사이로 황제의 무덤들이 즐비해 있다. 옛 시절 가장 부유한 땅이었을 시안, 아직도 2달에 한 번 가량은 유물이 출토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안은 서주(西周)에서 당나라까지 11개 왕조가 도읍지로 정했던 곳이다. 예전엔 장안(長安)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곳은 옛 시절 화려한 명성만큼 진 시황, 당 태종을 비롯해 제갈량, 사마천, 노자, 양귀비 등을 배출했다. 제왕과 명장, 사상가, 미인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이름만 늘어놓아도 하루 종일 걸릴 듯 하다. 이러니 시안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도 어찌 대단치 않을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당나라 시대의 공연을 보며 시안의 대표요리로 형형색색의 화려한 ‘만두’를 먹었다. 혼을 빼놓는 공연단의 춤사위는 인도를 연상시킨다. 궁정에서 쿠차 무용과 쿠차 음악이 연주했다더니,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이란풍 호선무를 가미한 이 쿠차 무용이 꽤나 인기를 끌었겠구나.


ⓒ 여행신문


시내 중심가에서는 밤늦도록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의 모습과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며 천문관측기를 가져다 놓은 장사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말 토성을 볼 수 있을까. 사실 진짜 토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양의 토성이 보인다.

고루(鼓樓) 뒤편으로 ‘이슬람 음식거리’의 불빛도 꺼질 줄 모른다. 여기까지 왔으면 양꼬치를 빼놓을 수 없다. 실크로드를 양꼬치로드라고 고쳐 부르고 싶을 만큼 가는 길 어디에서나 양꼬치가 있으며, 그 맛은 서쪽으로 갈수록 맛의 깊이가 더한다.

-시안의 ‘2남 1녀’를 만나보아라

다음 날, 길을 나서는 나에게 가이드가 재밌는 말을 건넨다. 시안에 오면 ‘2남 1녀’를 꼭 만나보고 가야 한다고. 대충 진시황이 그 1남 중 하나일 것이고 1녀는 양귀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상상을 해보는데 나머지 1남은 누구일까? 진시황을 만나려면 진시황릉으로 가면 되고, 양귀비를 만나려면 화청지(華淸池)로 가면 되는데 나머지 1남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나.

석류로 유명한 섬서성 임동현, 37살의 청년 ‘양지발’은 곡괭이질을 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는데, 이것이 진시황 병마용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진시황 병마용 상품코너 한 켠에서 직접 발간한 책에 사인을 해주며 평생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제 69세가 됐다. 이 노인네는 진시황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럼, 돈을 벌게 해준 사람이니 좋지!”라는 말로 답한다. 그가 바로 나머지 1남, 양지발씨다.

병마용갱은 3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다. 진시황 사후 3년째 되던 해, 진시황이 초나라를 짓밟았을 때 이에 대한 원한으로 항우가 병마용갱에 불을 질렀는데, 석 달이 넘도록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고 하니 지하 아방궁의 규모는 상상에 맡긴다. 참, 이 때 전리품으로 병마용 병사들이 갖고 있던 창과 방패를 가져가는 바람에 병마용갱의 병사들은 모두 무장해제 상태다. 지금은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병마용 하나하나에 모두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고. 1호갱은 당시 농민이 발견한 것인데 규모가 제일 크다. 아침 햇볕을 받고 있는 병마용을 보며 지킬 왕이 없어진 저 병사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병마용을 나와 진시황릉에 가서 1남 진시황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공사 중인 화청지에서 주마간산격으로 1녀 양귀비를 만났다. 다시 서안 시내로 돌아와 실크로드로 가기 위해 다시 그 출발점에 선다.


ⓒ 여행신문 / 섬서성에서 유명한 석류



+++++플러스 α+++++

-중국의 PC방


ⓒ 여행신문
2년전 만해도 ‘윈도우 98’이나 ‘윈도우 2000’이 깔려있었던 중국의 PC방. 규모나 수적인 면에서도 미흡했던 PC방은 2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놀랍게 변해있었다. 비단 서안뿐만이 아니라 실크로드 여행을 하는 내내 들른 다른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PC방은 ‘왕루오’나 ‘왕빠’라고 적고 있으며, XP가 깔려있는 PC방이면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보증금으로 인민폐 10위안을 미리 내고 요금은 시간당 2~3위안 정도. 이용을 마치면 보증금 10元에서 사용한 금액만큼을 제하고 돌려준다.

글·사진=Travie writer 박임자 freebelt@naver.com
취재협조=상해항공 02-317-8899
테마중국여행 02-736-8888


여행신문 tktt@traveltimes.co.kr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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