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④] 주도하는 탐험길
4. 출정 전야
오창학(ohmadang) 기자
▲ 백구와 파라곤
ⓒ 오창학

2006년 7월 18일 화요일. 지난 15일, 톈진 탕고에 내린 이래 벌써 나흘째.

16일은 일요일이었던 지라 17일이 되어서야 해관에서 통관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녹녹치 않다. 또 여기서 무슨 일이 꼬이는 일이 아닌가 싶어 마음을 졸인다. 그러나 어쩌랴. 미리 걱정한다고 되고 안 되고 할 일이 아닌 것을. 어차피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어서 관세사 J에게 맡겨 놓고 느긋이 기다린다.

통관이 지연되는 덕분에(?) 출발점인 톈진과 당고를 마음껏 훑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톈진에 오시면 꺼부리 빠오즈(拘不里 包子)에 들러보시길. 천진 특산 음식이다.

1854년 14세 때 음식점에서 일하다 독립한 구불리가 길거리에서 만들어 팔던 만두가 이토록 인기를 끌게 되었다지. 하도 바쁜 나머지 누가와도 쳐다볼 겨를이 없어 ‘개도 안 쳐다본다’는 ‘구불리’로 통했다는 이야기. 현재는 유명한 체인점이 되었고 북경 전인대회장에 들어가는 유일한 밀가루 음식이라는데….

내친 김에 베이징 나들이. GPS(중국 네비게이션)를 얻으러 간다. 에릭님의 지인에게 얻기로 되어 있는데 빌리는 주제에 이쪽으로 가져 오라 하는 노릇.

2001년에 보았던 베이징의 면모는 찾을 길 없다. 그 엄청난 자전거 인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차선을 지키는 자동차란 어인 가당찮은 풍모냐. 호텔마다 회사마다 지키고 서 있던 국방코트의 경비들과 거리의 우마차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택시도 전부 현대 ‘엘란트라’와 ‘EF소나타’로 교체된 시점이어서 도시 분위기가 흡사 한국의 서울을 연상케 한다. 중국은 2008 올림픽에 정말 올인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거리에서 신호를 지키라고?

▲ 베이징 후통 거리. 박제화 된 과거가 아닌 삶의 공간. 철저한 현지인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포.
ⓒ 오창학

경제성장의 음지인 700년 전통의 *후통. 어떤 이는 이곳에서 골목의 매력을 발견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엿본다 하지만 나는 가난의 냄새를 짙게 맡는다.

누구에겐 생활의 공간이고 또 누구에겐 구경거리가 되는 이곳 후통. 무수한 삼륜 자전거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헤집는 이곳은 베이징 도심 면적의 1/3을 차지하고 200만 인구가 머무는 삶의 공간이다. 박제가 아닌 삶의 공간. 때문에 그 모습을 엿보고 싶어 나 역시 카메라를 메고 들어섰지만 왠지 주민들과 눈 마주치기가 부담스럽다.

자포님은 ‘철저한 현지화’를 내걸고 웃통을 반 걷어 올렸다. 대개의 한족들은 윗옷을 벗고 여름을 난다. 그러나 현재의 올림픽 캠페인이 성공한다면 중국 사람들 윗옷 벗고 지내는 광경도 이젠 옛 이야기가 되리라. 흡사 88년 한국의 ‘개고기’캠페인 같은 풍경이다.

문화도 기준치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베이징에선 그 기준치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침 뱉지 않기, 웃통 벗지 않기, 교통질서 지키기 등을 외치며 세계표준화에 부합하는 관습의 창출을 위해 애쓰고 있다.

오늘 오후,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6개월간의 파견근무를 마친 황인덕 교수님께서 톈진으로 내려와 일행과 합류했다. 이로써 며칠 후 시안에서 합류할 ‘마님’을 제외하곤 5명의 구성원이 모두 모인 셈이다. 이 때에 맞추기라도 하듯 중국 측 허가업무를 대행해 주었던 L 총경리(사장)가 도로교통국 업무를 잘 해결하고 손님들을 달고 왔다.

도로교통국 공안들이 숙소로 방문해 임시운전면허증과 임시 번호판을 전달하고, 간단한 주의사항과 안전운전을 위한 당부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묻는 말.“중국의 도로 표지와 신호체계를 아는가?”나의 대답. “안다. 도로지도 뒷면의 표를 보고 외웠다.” 그러나 며칠 천진의 교통 상황을 지켜본 내 속에선 전혀 다른 음성이 고개를 든다.

도대체 저렇게 운전할 거면 표지판 기호와 교통 신호를 무엇 때문에 알아야 한담? 방향지시등을 조작할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남보다 먼저 범퍼를 들이밀고, 앞차가 막힌다 싶으면 중앙선을 넘고, 차든 보행자든 가로막는 존재가 있으면 신경질적인 경음기로 대처하면 될 것 이어늘.

이로써 운전면허, 번호판, 자동차보험, 운행허가서. 모든 서류의 준비도 끝났다. 내일 오전 중에 차를 항구에서 인수해가라는 연락도 받았다. 통관이 이틀이나 걸려서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후련하다. 참 오래 기다렸다. 지난 준비기간 만큼이나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 끝났다. 이젠 달릴 수 있다.

2대의 스포츠카와 여섯 남자와 한 여자

▲ 돌쇠 오창학(왼쪽) 마님 이은주
ⓒ 오창학

백구(白拘·흰강아지): 무쏘 스포츠 2005년 8월식. 배기량 2900cc, 자동기어, 기존 주행거리 2만7999km. 강성스프링과 쇽업쇼바로 1인치 업, 아이솔레이터(전력분산장치), 추가 축전지, 토우바와 윈치 장착, AT타이어 장착. 지붕에 루프텐트 얹음. 여행기간 동안 1호차로 명명.

파라곤(백마를 키우던 실크로드상의 지명): 무쏘 2000년 6월식. 배기량 2900cc, 수동기어, 기존 주행거리 8만9000Km. 강성스프링과 쇽업쇼바로 1인치 업, 전후륜 에어락커 장착, AT타이어 장착. 지붕에 루프텐트 얹음. 여행기간 동안 2호차로 명명.

돌쇠 오창학(남·35): 교사. 팀 인솔자. 1호차 주 운전자. 길 떠남에 두려움이 없고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남자. 문무를 겸비한 재기발랄 우직 남.

마님 이은주(여·33): 교사. 돌쇠의 아내. 팀 일정기록 및 재정관리. 1호차 보조운전자. 돌쇠의 꿈을 존중하는 여자.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감이 있긴 하나 밝고 명랑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

▲ 에릭 이은권(왼쪽) 자포 박재익
ⓒ 오창학

교수님 황인덕(남·52): 구비문학 전공 교수, 돌쇠의 은사, 1호차 예비운전자. 실크로드 관련 구비문학 자료 수집을 목표로 하는 연구자. 학문에 대한 열정과 문화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진 뚝심 남.

에릭 이은권(남·46): 외국어학원장, 2호차 주운전자. 촬영담당. 대만 유학파로 실크로드의 문화와 역사에 지대한 관심.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문화에도 밝음은 물론 등산, 마라톤, 차, 와인을 즐기며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다재다능 세심 남.

▲ 교수님 황인덕(왼쪽) 나리 박종일
ⓒ 오창학

자포 박재익(남·46): 전 사업가. 현 대학원생. 정비담당, 에릭의 중학 동창. 2호차 보조운전자. 오로지 일만 알며 살다가 평생의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때에 초유의 여행을 기획하는 중년. 천성이 이과생 성향이면서도 시인 등단을 앞두고 있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나리 박종일(남·45): 사업가. 에릭의 고교 후배. 2호차 예비운전자. 분주한 사업의 와중에도 사막의 별을 그리워하던 순수 남. 일본유학과 영국 체류, 미국 거주의 경력을 가진 국제인으로 출중한 언어 감각과 재치로 좌중을 압도하는 분위기 창출자.

가이드 유철봉(남·32): 조선족 교포, 두 아이의 아버지. 흑룡강성 치치알에서 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6년 전 쓰촨(사천)성에서 여행가이드로 전환한 성격 좋고 무던한 사내.(중국 내 외국차량의 운행은 관련공무원, 또는 중국인 안내원의 동행을 전제로 허가된다. 여행의 진행은 중국 정부측에 사전 허가 신청한 노선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데 가이드는 안내와 더불어 이를 책임지고 지도 감독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가이드 철봉씨 힘내세요

▲ 가이드 류철봉
ⓒ 오창학
흑룡강성 하얼빈에서도 4시간을 더 들어가는 곳이 고향이라는 철봉씨는 충청도 할아버지의 손자이지만 경상도가 고향인 마을 사람들의 말을 쓴다. 사범학교를 나와 소학교 교원을 했다던 그는 나이 스물 여섯에 쓰촨(사천)성으로 넘어가 자신의 누나처럼 가이드가 되었다.

우리가 가려는 노선을 돌아 본 적이 없는 철봉씨는, 아니 쓰촨을 떠나 여행한 적이 없는 이 양반은 길도 모르고 운전도 못 하는 사람을 차에 태우고 다니며 우리가 누굴 관광시켜 줄 일 있냐며 아연해하는 우리 반응에 기가 죽었다. 그 먼 길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찾아 돌아야 한다는 말인가.

L경리에게 항의의 말을 전할까 하다가 철봉씨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생각해 보면 국내에 이런 식의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질 않은데 중국 서부 끝까지 자동차로 여행한 ‘조선족’을 찾는다는 게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계획은 ‘모험’으로 해 놓고 진행은 ‘여행서비스’로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 여행이 조금이라도 ‘모험’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건 ‘알 수 없음’‘미지수’‘불확실’때문이다. 잘 하지 않았던 방식, 혹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하여 내 눈앞에 어떤 길이 놓여 있고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긴장감. 난 그걸 위해 길을 떠난 것 아니냐.

철봉씨 힘내! 난 당신이 ‘초짜’라 고마워.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여행을 할 뻔했잖아. 명색이 탐험대인데, 다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알고 있는 길로만 나를 이끈다면 나는 운전수에 불과한 사람 아니겠어. 정말이지 당신이 그 길을 안 가 본 사람이라 고마워.
*후통: ‘우물’이라는 Ent의 몽골어 ‘후툭(Xuttuck)’에서 유래. 물이 귀한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이 우물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던 전통에 따라 원왕조의 베이징 천도 이래 왕성 주변에 ‘후통’을 이루게 된 것이 연원.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 라이프( http://rvlife.co.kr)'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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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③] 사나이의 로망 '4WD'
3. 톈진항에 닿다
오창학(ohmadang) 기자
2005년 8월. 차량을 준비했다. 무쏘 스포츠(2005년 8월식. 2900cc). 커먼레일이니 VGT니 하는 최신의 엔진을 탑재한 사륜구동(굳이 분류하자면 '사륜구동'이라기 보다 '도시형 SUV')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마당에 굳이 출시된 지 13년이 지난 구형라인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모델을 새 차로 뽑겠다는 우리 부부의 태도에 몇몇 지인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백구의 심장. 속이 꽉찬 녀석의 엔진룸을 보고 있노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 오창학
허나 그들이 어찌 알랴. 한 사내의 로망을. 88년식 프라이드를 몰던 98년 언저리. 무쏘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 길에서 그 놈을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한참을 넋 놓고 따라가던 한 사내의 동경을…. 하여 근 10여년이 지난 즈음 먼 길을 동행할 동반자를 선택함에 그녀석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 아파트 앞의 백구. 적재할 대략의 짐들.
ⓒ 오창학
더구나 적재함이 분리되어 있는 화물이어서 짐 싣는 양이 많고 예비연료의 적재로 인한 냄새가 차내로 흘러들지 않기에 장거리 운행에 최적의 차라 생각했다.(다만 2열좌석의 등받이가 거의 직벽에 가까우므로 뒷좌석에 앉는 사람은 장시간의 착석이 고통스럽겠지만)

▲ 2006.1월 경기도 앵자산 눈길. 순정상태 그대로 참 바쁘게 돌아다녔다. 앵자산 오르는 길에 눈길에 미끄러지며
ⓒ 오창학
때마침 무쏘를 응용한 픽업인 '무쏘 스포츠'가 화물차 적재함 기준 논란으로 단종을 예고한 즈음이어서 연내에 차량을 준비하기로 했고, 떠나기 전 차와 적응할 시간을 1년으로 잡았기에 8월에 준비했다. 그리곤 참 분주하게 국내의 오지와 *오프로드를 찾아 쏘다녔다.

▲ 화성 형도의 채석장을 기어 오르는 백구
ⓒ 오창학

▲ 한탄강에서.
ⓒ 오창학
2005년 9월. 막대한 허가비용(중국 내 외국자동차 운행 허가)과 사막 구간에서의 안전상 이유로(내몽고 고비사막과 돈황에서 하미까지의 막하연적 사막을 무보급 횡단할 계획이므로 단독주행시 차량고장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동행할 차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륜구동의 차주이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고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거기에 사서 고생하겠다는 모험심을 겸비한 사람과 인연이 닿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다 에릭님을 만났다. 실크로드 여행을 찾아 내가 운영자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카페에서. 외국어 학원의 원장으로 이번 여행을 위해 2000년 6월식 무쏘를 장만하고 전격 합류. 생전 처음 사륜구동을 접하는 양반이 전후륜 락커를 장착하고 모래뻘과 돌산을 오르내리며 수련의 세월을 함께했다.

▲ 사자평에 선 백구와 파라곤
ⓒ 오창학

▲ 골탕을 빠져 나오는 파라곤. 파라곤엔 전후륜 에어 락커가 장착되어 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만이라도 땅에 닿아 있다면 진행이 가능하다.
ⓒ 오창학
2006년 3월. 돌쇠(필자), 마님(필자의 아내), 에릭님, 그리고 그의 친구 자포님 등 4인과 사륜구동 2대로 이루어진 팀 구성. 이후 준비과정에서 중국에 연구교수로 6개월 간 파견 중이시던 황인덕 교수님, 에릭님의 후배 나리님이 전격 합류해 6인으로 구성된 '2006 실크로드 역사 탐험대'를 발족시켰다. 어렵사리 시도하는 긴 여행이 단순한 '기행'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 속에 남겨진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자는 거창한, 그러면서도 가슴 뿌듯한 주제와 함께.

▲ 내몽고 마지막 여정지에서의 한 장면.
ⓒ 오창학
선조의 흔적이 배인 역사의 길을 더듬는 한 무리 *카라반이 된 것이다. 비록 낙타 대신 자동차를 타고 해와 별 대신 GPS로 방향을 잡겠지만 마음만은 1300여 년 전 순례자가 되어 고선지와 혜초도 만나고 한락연의 흔적도 찾아보게 되리다.

▲ 대전 유성나들목 만남의 광장에서의 출정식. 돌쇠(필자), 자포, 에릭. 나리는 인천에서 합류키로 한 탓에 또 사진에서 누락. 이들 4인이 선발로 선편을 통해 톈진가는 천인호에 동행한 무리. 교수님은 톈진에서 합류. 마님(필자의 아내)는 방학 일정상 시안(서안)에서 비행기로 합류.
ⓒ 오창학
겨우 25시간이지만 나름대로 긴(?) 항해를 마치고 배는 톈진 당고 외항에 이르렀다. 들고나는 선박이 빈번한 관계로 정박 허가를 받기 위해 또 선내에서 3시간을 더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뭐 어떠랴 지난 1년 반의 기다림도 견뎌냈거늘 그깟 3시간쯤이야.

▲ 톈진 당고항 외항에 들어서며.
ⓒ 오창학
하선 방송을 기다리며 자못 설레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중국에서의 통관은 잘 될까? 사고 없이 운행할 수 있을까? 38일 뒤엔 예정대로 이 장소에 돌아올 수 있을까?

밤 11시. 드디어 하선. 식품류는 통관이 어려운 품목인고로 차량 적재품목에서 빼내어 배에 들고 탄 탓에 한 가득이 된 짐들을 동여 메며 내 마음 한 자락도 챙겼다. 기원전부터 동서 문명교류의 역사적 장이었던 실크로드 상에서 한반도와 연관성을 찾고 한민족이 동서문화교류사의 주변인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자는 거창한 우리 의도보다 더 빛나는 자동차 대륙여행의 꿈이 담긴 부푼 마음을.

여행 차량 선정을 위한 조언

장기간 여행을 위한, 그리고 비포장과 산악지역, 사막 등 험준한 자연을 극복해야할 자동차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요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사륜구동(네 바퀴 굴림)일 것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현재 중국의 실크로드 구간의 대부분은 포장도로화 되어 있습니다. 포장도로가 아니라면 비포장으로나마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동차 여행’이라는 주제를 잡고 길을 떠난다면 승용차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길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륜구동(두 바퀴 굴림) SUV는? 지상고가 높다는 점에서 승용차보다는 낫겠지만 ‘도진개진’입니다. ‘갈 수 있는 길’만 찾아 ‘길’로만 다닐 나섰다 해도 중국 서부구간의 도로가 온통 공사 중이거니와 지형이 다른 곳 같지 않아 운전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필자가 이동한 동일구간 일주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고자 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기 위해 스스로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라면 사륜구동은 필수이고 4H뿐 아니라 4L기능이 가능한 차량을 선택해야 합니다. 통과하는 노선에 사막지역이나 험준한 산악지형이 있다면 에어락커나 LSD 등의 부가 장치가 되어 있다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2. 짐과 장비의 적재 공간이 넉넉할 것

수십 일 간 사용할 의류와 생필품, 소모품, 자동차 공구, 예비 부품, 비상식량, 취사도구, 야영장비, 촬영도구, 물, 예비연료(필수품은 아니고 여행의 성격에 따라 필요) 등을 적재할 것을 생각한다면 짐의 수납성이 용이하고 적재공간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짐들을 감당할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요.

3. 출력에 여유가 있을 것

효율적 여행을 위해서라면 경비 문제 때문에 1차량 3인 이상이 탑승할 것이고 그 세 사람이 수십일 간 먹고 쓸 짐과 운행과 야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싣노라면 2번에서 언급했듯 차량의 적재중량이 매우 증가하게 됩니다. 더구나 산맥 지대를 넘거나 긴 언덕을 무시로 오르내리는 처지라면 최소 12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차가 적당하겠습니다.

4. 해외에서 부품공급이 용이한 차량일 것

중국에도 국산 사륜구동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는 보기 귀하고 주종을 이루는 것이 테라칸 구형 싼타페 등의 현대차입니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중국 내에서 국산 차량의 부품 수급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5. 연식이 짧은 차일 것

차량의 고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장이 안 날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최선의 답은 '싱싱한 엔진'과 '젊은 차체'를 가진 녀석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소한 차량의 고장도 정비소를 찾기 어렵거나 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선 여행을 망치는 치명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고장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준비하기 보다는 연식이 깨끗한 차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대개 4년 이내의 차량이 '깨끗한 차'에 속하고 6년 내외의 차량도 떠나기 전 완벽한 손질을 한다면 기준 안에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완벽한 손질’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6. 차량의 연료

겨울철을 택하거나 극지를 가는 차량이라면 당연히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엔진 차량을 피하고, 설사 사용하더라도 어는점이 높은 경유를 공급할 방법을 모색해야겠지만 그 외의 계절이나 사막지역이라면 경유와 휘발유 어느 연료를 사용하는 차든 무방합니다. 또 중국은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거의 동일하거나 지역에 따라 오히려 경유가 비싼 경우도 있으므로 굳이 경유차를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국산 사륜구동은 대개 경유차로 출시되므로 그냥 가져갈 뿐이지요.

7. 그 외 부가적 기능 고려

차량에 루프텐트, 실외 적재함(루프렉) 장착, 윈치, 트레일러 등 여러 가지 부가적 기능을 추가하고 싶을 때 차량이 그에 합당한가를 살피는 것도 필요합니다. 참고로 쌍용 계열의 차가 아니면 차동기어에 락커 설치는 불가능하며 LSD의 장착만 가능합니다.

이상의 요건을 종합해보면 국내 차종으로는 대략 다음의 차량이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갤로퍼 7인승, 테라칸, 렉스턴, 무쏘, 무쏘 스포츠. 카이런, 액티언 스포츠, 소렌토(적재공간이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하면 산타페, 뉴산타페, 윈스톰 같은 근간의 도시형 SUV들도 해당 차종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스포티지나 투싼은 승용형․도시형 사륜은 지상고와 짐 수납에 너무 여유가 없어서 부적절하고, 액티언은 출력 넘치고 지상고도 여유가 있지만 4L이 안 되는데다 적재공간이 고작 아이스박스 하나 들어갈 공간도 나오질 않으니 장거리 험지 여행용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막이라도 길을 따라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야영장비나 부가장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상기 열거한 차종들도 괜찮은 동행자가 될 듯싶습니다.

구형코란도 롱바디(9인승)도 투어링 차량으로서는 외관이 미려하고 적재 편의성도 좋으며, 험로 주파성도 좋으나… 76마력 엔진은 제 몸 하나 끌기도 버거우며 13년이 넘은 늙은 심장은 언제 멈출지 몰라 걱정이고, 트랜스미션도 심심찮게 말썽을 부리는 기종이어서 해외 원정용으로는 부적격입니다.

팀을 이루어 여행을 떠날 경우라면 부품의 호환성을 고려하여 동종의 차종으로 차량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최소한 휠과 타이어만이라도 같은 규격으로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 오창학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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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②] 백구 앞 유리가 깨지다
2. 출항
오창학(ohmadang) 기자
▲ 천인호 비지니스칸 선실
ⓒ 오창학
텐진(天津)으로 가는 진천호 선실은 아늑하다. 겨우 사람 하나 누울 침대에 커튼을 드리운 구조이지만 지친 몸 누이고 머릿속을 정리하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살다보면 사람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할 일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한다. 그러면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는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신념이 객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꿈을 쫓는 사람은 어느새 그 꿈을 닮아가는 법이니까. 오늘의 일이 그 같은 맥락이리라.

이번 여행의 한국 쪽 업무를 도맡아 주었던 K사장과 인천 제3부두에서 만났을 땐 이미 오후 4시 40분. 오후 7시 출항인데 이제야 닿았다. 대전에서 인천에 닿자마자 베이스캠프인 '마스타 지프'에서 타이어교체와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을 서둘렀으나 일이 끝났을 땐 이미 오후 4시.

▲ 선적 대기중인 1호차 백구(뒤)와 2호차 파라곤(앞)
ⓒ 오창학
태어나 처음 하는 통관이라 K사장이나 나나 잔뜩 얼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느긋하다. 일단 일행을 여객터미널로 보냈다. K사장과 함께 부두 출입증을 받아 차를 몰고 우련통운에 도착하니 세관 승인서류를 요구한다.

"아…" 이 얼마나 우매한 백성이냐. 통운의 선적 과정에서 통관절차를 거치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 들어오기 전 통관부터 했어야 한다니. 문제는 시간이다. 통운을 찾는데 부두를 뱅뱅 돌아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 이마가 깨진 백구. 보닛 오른쪽에 서류를 얹고 작성하고 있었으니 바로 내 머리를 넘겨 백구를 친 것이다.
ⓒ 오창학
백구의 보닛 우측에 통관서류를 얹어 놓고 허겁지겁 기입하는 찰라, 배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트레일러들 사이에서 '팍'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 바퀴를 고정하는 고임목 하나가 튀었다. 서류를 작성하는 와중에도 근 20여 미터 거리를 단숨에 날아드는 두툼한 나무토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느꼈다 싶은 순간, 백구의 앞유리 우측에서 유리 으깨지는 소리가 난다.

"으와아아!" 미친놈처럼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 여행을 어떻게 준비했는데… 그깟 유리 때문에… 하늘이 노랗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내게 생기는가. 굉음을 내며 이리저리 분주한 트레일러들을 향해 고래고래 목청을 높였지만 이미 유리는 깨어져 있다. 이대로 차를 싣는다면 톈진에서 이 유리가 수입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터. 안 싣고 수리한다 해도 나흘 뒤 출항하는 배에 실어야 하는데 기간도 문제이거니와 이 모든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다.

▲ 서해를 넘는 천인호. 원래의 실크로드 노선대로라면 육로로 평양을 거쳐 산해관으로 들어가 베이징, 뤄양(낙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제 노선을 밟지 못하고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면서 조국의 분단 상황에 가슴이 미어졌다
ⓒ 오창학
벌써 시간은 5시 40분. 절망으로 가슴을 쥐어뜯다가 정신을 차리니 K사장이 다친 데 없냐며 걱정이다. 그래 목숨 건진 게 어디냐. 저 고임목이 부순 게 내 머리가 아니고 유리인 게 얼마나 다행이냐. 보닛 위에 서류 얹고 작성하는 사람의 머리를 피해 유리만 깨기가 어디 쉬우냐. 그래 난 행운아다 살 길은 있다.

▲ 나와 백구가 몸을 얹은 천인호. 내가 탄 배를 내가 찍을 순 없었고 선 내에 게시된 사진을 찍은 것이다.
ⓒ 오창학
차를 뺐다. 바로 일단 3부두 정문 앞에 있는 세관으로 가서 통관신청을 해 놓고 세관주차장에서 '마스터 지프'에 연락해 유리를 기다리는데 에릭님의 전화. "배 출항이 2시간 지연된답니다" 말했잖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다행히 6시가 넘은 시간에 세관에서도 퇴근하지 않고 차대번호, 엔진번호 조회와 휴대품 검사를 마쳐줬다. 검사 와중에도 유리 작업은 진행되어 말끔히 교체. 시간에 쫓기고 절차에 어두워 진땀 흘리고 유리까지 깨지는 횡액을 맞은 하루가 그렇게 갔다. 백구를 입고 시켜놓고 여객 터미널로 돌아오니 힘이 쑥 빠진다. 그래도 일행이 보내는 격려는 안도가 탈진으로 변하는 걸 막는다.

여전히 배는 잔잔한 물살을 가른다. 서해는 호수만큼이나 평온하다. 인천에서 톈진까지 25시간의 인내가 필요한데 승선 직전까지의 숨 가쁜 일정들을 돌이켜보고 이제 시작될 여행들에 대한 기대와 구상들을 정리하다 보면 굳이 인내랄 것도 없다.


▲ 공부. 콘센트가 있는 선내 라운지에서 실크로드 DVD 감상. 먹고, 자고, 생각하고, DVD보고, 25시간이 부족하다.
ⓒ 오창학
내 차를 가지고 중국에 가는 것. 선적료 지불하고 배에 차 실으면 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사륜구동을 준비하고 장거리 여행에 맞게 차량을 개조하는 일. 중국 내 차량운행에 필요한 면허와 임시번호판, 그리고 공안부, 국가여유국, 인민해방군 작전부 공동부처의 운행허가서 발급에 필요한 제반 준비, 임시수출입통관 절차… 녹록치 않은 준비과정과 기간. 출발 당일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절차들. 막대한 경비. 낯설고 험한 지역에서의 운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가 방학 내내 자리를 비운다는 것. 보충수업 부담을 다른 분께 전가하고 학급의 아이들을 남겨둔다는 것은 송구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복잡함, 생활, 현실, 굳이 지금이어야 하나? 조금 더 안정적인 지위를 가졌을 때, 조금 더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그런 때 하면 안 되나? 그런 고민 사이에서 질척일 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인생에서 서른다섯의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현실의 벽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이 배 안에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아내의 격려와 의지 덕이다.

실크로드 1만4000Km 답사 계획 노선

▲ 예정노선

제1일: 인천항
제2일: 천진(톈진天津) 당고(塘沽)항 도착
제3일: 톈진-바오딩(保定)- 타이원(太原) - 린펀-허우마(후마)-윈청(運城)- 싼먼사(三門峽)
제4일: 싼먼사(삼문협) - 시안(西安)
제5일: 시안(西安 )
제6일: 시안-센양(咸陽) -바오지(玉鷄)-톈수이(天水)
제7일:톈수이-통위(통웨이通渭)-정서(딩시定西)-난주(란저우蘭州)
제8일: 란저우-융덩(永登)-구랑-우에이(武威)
제9일: 우에이(무위)-진창(金昌)-아라사여우치(阿拉善右旗-바단지린사막巴丹吉林 沙漠)
제10일: 바단지린사막-바단지린 사막
제11일: 바단지린사막- 주취안(酒泉)-자위관(嘉峪關)
제12일: 자위관(嘉峪關)-안시(安西)-둔황(敦煌)
제13일: 둔황(敦煌)
제14일: 둔황-고비사막-하미(合密) 방향으로 이동
제15일: 고비사막-하미
제16일: 하미-싼싼(선선)-투루판
제17일: 투루판-쿠얼러 캠핑
제18일: 쿠얼러-룬타이- 쿠차
제19일: 쿠차-악수(아커스)-카스
제20일: 카스
제21일: 카스-피산- 호탄(허티엔)
제22일: 호탄-우전(위톈)-민펑
제23일: 민펑- 치에모-노챵(뤄챵)
제24일: 노챵- 망암 캠핑
제25일: 망암 - 더링하(德令合)
제26일: 더링하-우란- 칭하이(靑海)호수
제27일: 청해호수 - 시닝(西寧) - 평안 - 란저우
제28일: 란저우 -바이인(白銀)- 은촨(銀川)
제29일: 은촨
제30일: 은촨-우하이(烏海)-린허(臨河)-우위안(五原)-바오터우(包頭)
제31일: 바오터우-후허하오터(呼和浩特)-청수이허(淸水河)-다둥(大同)
제32일: 다둥(大同)-톈진(天津)
제33일: 천진
제34일: 천진 출발
제35일: 인천항 도착
/ 오창학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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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①] 사막에 가고 싶었다
1. 프롤로그
오창학(ohmadang) 기자
▲ 8.10일 타클라마칸을 뒤로하고 아얼진 산을 향해 나가던 날
ⓒ 오창학
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
돌들에게 말을 걸고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
죽는 법을 배워 두라.
빗속을 나체로 달려 보라.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
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라.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 엘렌 코트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 오창학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오아시스를 하나씩 담고 산다. 때론 모래 언덕 하나만 넘으면 오아시스에 닿으리라 생각하고 오늘을 넘기면 희망찬 내일이 기다릴 것이라 자위하며 힘든 하루의 땡볕을 견딘다. '인생'이란 황무지에서 역설적이게도 타클라마칸 사막은 내게 오아시스였다.

살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키메라'(Chimera)를 많이 떠올렸다.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용의 엉덩이와 꼬리를 지닌 그처럼, 하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영혼을 담고 사는 나는 인간 키메라였다.

삶의 구심력을 놓칠세라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나와, 원심력에 편승해 자꾸만 삶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나. 허나 사람의 허울을 쓰고 숨쉬는 자, 키메라 아닌 이 그 누구랴. 누군들 현실 반대의 공간에 머물고 싶지 않았으랴. 그런데도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문제였다. 최선과 차선, 그 최선 안에서의 또 다른 최선과 차선. 위태위태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엔가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업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늘 하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또 다시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떠남을 택하기엔 동기 요인이 너무 미약하다. 누구처럼 일생일대의 변환을 꾀할 시기에 직면한 것도 아니며 직업이나 인간관계가 떠남을 강요할 어떤 처지에 놓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백 가지 이유로도 막지 못할 큰 핑계가 있었다.

'떠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 타클라마칸
ⓒ 오창학
사막에 가고 싶었다. 1박2일짜리 낙타 사막패키지 말고 전인미답의 모래더미 속에 홀로 있고 싶었다. 입 속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연신 '타클라마칸'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길을 떠나고 싶었다.

한두 시간에 닿는 그런 길 말고, 검고 찐득한 타르가 곧게 깔린 그런 길이 아닌 오직 바람과 시간만이 동행해 주는 그런 먼 길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부터 '실크로드'란 단어가 맴돌았다. 때로 '비단길'이라 고쳐 불러 봐도 다시 '실·크·로·드'라 되뇌게 되는 그 길이 가고 싶어졌다.

역사 위에 길을 내고 사람의 삶과 문화와 문명이 소통했던 그 곳은 더 이상 캬라반 행렬이 이어지는 몽환의 길이 아님을, 사막과 고봉준령으로 막아서며 인간의 발길을 막아서던 과거의 길이 아님을 안다.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 고속도로와 철로가 뚫려 유적이란 유적엔 관광객이 들끓고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조차 석유를 파먹기 위한 직선 종단도로가 뻥하니 뚫린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 둔황의 무명 봉수대
ⓒ 오창학
그러나 내 의식 속의 실크로드는 여전히 대상들의 낙타 방울 소리가 은은하고 먼지 폴폴 날리는 그런 길이었다. 변화한 21세기 실크로드에서 천 년 전, 혹은 이천 년 전 흙내음을 맡아보고 싶어졌다.

▲ 7.14일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길을 나서다.
ⓒ 오창학
2006년 7월 14일.

2만6000톤 육중한 '천인호'가 천천히 인천항 부두를 밀어낸다. 녀석의 선실엔 내가, 배 아래 선적칸에 '백구(白狗)'가 실려 있다. 1만6200마력 엔진의 두툼한 진동 사이로 백구도 120마력 작은 심장을 고르며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2.4톤 작은 몸에 우릴 태우고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

백구! 긴장하라. 드디어 우린 길을 나선 것이다.
2006년 7.14~8.21까지 중국 내 실크로드 구간 14000km를 국산 사륜구동 2대로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2년여 가까이 계속해 오던 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의 연재마저 보류한 채 많은 시간을 이 여행의 준비에 매달렸고 결국은 실행에 옮겨 연재를 시작합니다.

중국 내에서 외국차가 운행하기까지 공안국이나 국가여유국, 인민해방군 작전부 등 여러 부처의 승인을 얻고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비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작년에 한·중 간 자동차 여행 자유화를 위해 산동성 일부구간 시범 운행이 있었고, 향후 적용 지역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라 하니 이 연재가 끝날 때쯤이면 자동차 여행이 훨씬 수월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모험과 역사, 그리고 대자연을 동경하여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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