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2006)...........'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06.06.22 자매의 유럽여행기 (스위스)
  2. 2006.06.22 자매의 유럽여행기 (프랑스)
  3. 2006.06.22 자매의 유럽여행기 (영국)
  4. 2006.06.22 로마 콜로세움에도 꽃은 피어난다

Ⅸ 안기고 싶은 자연 스위스

<스위스로 가는 길><자연의 품에 안기고 픈 하이킹 코스><트륌멜바흐폭포>

<케이브카로 다가가는 쉴트호른><꽃밭에 홀려 길을 잃다>

<식빵을 퐁듀에 퐁당 빠트리면...><역시 어려운 bar 문화>


<스위스로 가는 길>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해서 10시간을 달려가야 스위스가 나온단다.

끝없이 펼쳐지는 플랑드르 평야가 부러울 정도이다. 이런 풍요가 뒷받침되었기에 파리의 문화예술이 꽃필 수 있었다는 게 절로 이해가 된다.

휴게소에서 또 간이의자를 펼쳐놓고 짧은 점심을 먹었는데, 빵에 발라먹으라고 나온 소머리가 그려진 삼각형치즈가 입맛에 맞았다. 오랜만에 나온 밥도 반가웠다. 물론 우리네 밥과는 다른 밥샐러드에 가까운 요리였지만.

입맛에 맞는 소머리표치즈(진짜이름은 따로 있겠지만 소머리가 그려져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차 안 이동시간이 길다보니 외국애들은 대부분 잠을 자는데, 심심할까봐 그러는지 가끔 가이드가 깨워서 이것저것 시킨다. 이번에는 우리 여행의 주제가를 정하란다. 알 수 없는 팝송 대여섯개를 들려주고는 투표를 하라는데, 애쓰는 모습은 고맙지만 조용히 좀 가게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장시간 운전을 하는 운전사를 위해 차 전체에 언제나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놓는데, 평소에도 아주 작게 음악을 듣는 편인 나에게는 거의 고문에 가깝다. 이렇게 듣다간 고막이 상할 것 같은데 모두들 태연하다. 나만 너무 민감한가. 녹음해온 노래들도 모두 조용한 노래들이라 이어폰을 껴봐도 소용이 없다. 운전사가 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참아봐야겠다.

프랑스 마지막 휴게실이라며 남은 돈을 쓰라고 한다. 싸고 부드러운 베개가 있어서 사고 싶었는데 전화하느라고 못 샀다.

웬 베개인가 하면, 이런 식으로 여행의 절반 이상이 버스이동인 줄 미리 알았는지, 몇몇 외국애들은 자기 집에서 늘 쓰는 것임이 분명한 커다란 곰인형만한 베개를 버스 안에 안고 타는데, 그게 너무 편해보여서 지현이와 우리도 하나 살까 생각 중이었던 차에 발견된 베개라서였다. 하지만 단체여행이 끝나면 오히려 짐만 될 게 뻔하므로 못 산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어라, 요리사가 츄파춥스를 한 통 가득 들고 들어온다. 한 개씩 돌리는 걸 보니 앞으로도 심심할 때마다 주려나보다. 단 것을 물고 있으니 기분이 좀 좋아진다.

<드디어 스위스>

스위스에 점점 가까워지니, 방금 지나온 플랑드르랑 비슷한 풍경이 뒤로 조금씩 더 높은 산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간에 잠깐 환전소에 내려준다. 우리야 다 해왔지만 다른 사람들 하는 걸 보니, 도시의 환전소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어도 불어도 잘 안통하고 아주 고생을 한다. 창구 앞의 환율표는 몽땅 다 낯선 언어라 눈에 잘 안 들어온다. 환율표를 안 만들어 왔으면 많이 헤맬 뻔했다.

이제 눈앞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스위스의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몇 시간 차이로 이렇게 풍광이 달라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라흐터브루넨의 우리 숙소까지 굽이굽이 계곡을 끼고 호숫가를 지나가는 산길의 경치가 한순간도 놓치기 아깝다.


스위스의 만년설을 인 봉우리


숙소앞에서 팔벌리고 심호흡하는 정현

드디어 10시간 반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통나무 숙소 바로 옆이 깎아지른 듯한 산이고 빙하 폭포도 눈앞에 있다. 여행 떠나서 처음으로 정말 내가 한 번도 안 딛어 본 땅에 왔다는 게 실감난다. 꿈속에서나 보던 풍경이라고나 할까. 인공물이 아닌 자연이 주는 감동에 벅차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특히 숙소 앞에 떨어지는 긴 빙하폭포는 옆으로 퍼지는 물안개가 너무 환상적이라서, 재우와 영국인 Nick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게 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뿌려놓은 드라이아이스라고 오해하고 우길 정도이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요리도우미들은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지현이도 이번엔 뭔가를 해야할텐데. 식사준비를하는 모습들의 배경에 하얀 알프스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서 묘한 운치를 더한다. 무슨 고기인가를 굽는 모양인데, 요리도우미인데도 한번도 안 나타난다고 지현이가 투덜거리던 멕시코인 마르코가 연기를 맡으며 고생한다.


산을 배경으로 고기를 굽는 마르코


식사배급하는 지현

식사준비가 끝나고 지현이가 배급을 준다. 통나무의자에 앉아 만년설을 보며 스프를 떠먹는 기분이 참 묘하다. 경치에 취해서 그 다음에는 뭘 먹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그냥 먹어도 되는 스위스 물이라는 물맛도 보고, 해질 때까지 목을 빼고 숙소근처 풍광을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4인실이다. 민혜와 엘러지와 함께 쓰는데, 지현이와 셋이서 샤워하고 같이 세탁기를 돌린다고 나갔다. 여기숙소는 샤워도 세탁도 모두 동전이 필요하다. 4분 정도 더운물이 나오는데 1/25스위스 프랑(330원)정도이다. 원래 여행 와서 매일 목욕할 생각은 없었는데, 외국애들하고 같아 다니다 보니 어째 얘네들과 생활습관도 닮게 되나 보다. 그리고 장시간 버스여행을 하다보니 피로가 쌓이고 땀도 많이차서 꼭 씻고 자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라흐터브루넨의 통나무 숙소


사진 나무로된 축구게임

하루도 예외없이 외국애들이 하는 것은 샤워뿐만이 아니다. 바(BAR)에서 밤새 술마시는 것. 얘네들에게 맥주정도는 술도 아닌지 매일 밤 마셔대고도 차안에서 한잠 자고나면 멀쩡하다. 여행 초반이라 며칠동안은 몸을 사렸지만, 장소도 장소이니 만큼 맑은 공기에서 맥주한잔은 괜찮겠지 싶어서 바에 가 보았다.

흑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분위기를 살폈지만 아무래도 우리 한국인들이 밍밍한 맥주를 마시며 밤새 시끄러운 음악 틀어놓고 영어로 떠드는 분위기에 동참하기는 무리였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리끼리 뭉쳐지고, 옆에 있는 손으로 돌리는 축구게임에만 계속 붙어있게 된다.

이 놀이기구는 "일포스티노"라는 아름다운 영화에서 주인공인 순박한 우편배달부와 멋진 아가씨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하던 게임기구인데, 영화에서 볼 때는 무슨 재미에서 하나 했는데 실제로 해 보니 내가 차거나, 상대편이 찬 공이 내가 돌리는 나무인형에 닿는 느낌이 손에 전해지는 참 신나는 놀이기구였다. 스타크레프트에 열광하는 요즘아이들은 이런 놀이기구의 재미를 알까.

맘먹고 바에 갔지만 저금통처럼 동전을 먹어대는 축구게임만 밤새 할 수는 없는일. 군대가기 전에 영어의 바다 속에서라도 원 없이 즐기다 가고 싶다는 용감한 재우만 빼고, 우리는 모두 일찍 들어와서 자고 말았다.


<자연의 품에 안기고 픈 하이킹 코스>

다들 인터라켄 꼭대기에 오르는 오늘 아침 식사는 6시 반이었다. 오 부지런한 요리사여. 우리들 점심 샌드위치 재료까지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히 먹고 또 재빠르게(재빠르지 않으면 늘 뭔가 빠진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길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스위스여행준비를 할 때부터 웬지 인터라켄보다는 쉴터호른 봉우리 쪽에 더 마음이 갔다. 인터라켄은 다들 좋다기는 하는데 TV에서도 몇 번 봤고, 여기저기서 얘기도 많이 들어서 오히려 신비감이 떨어졌다. 대신에 사람들이 덜 찾는다는 쉴터호른쪽에는 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는 폭포도 있고, 걸어서 가는 길의 경치도 아름답다고 하여 같이 갈 사람만 생기면 그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이드는 인터라켄만 안내해 준다지만 다행히 일행 중 윤석 오라버니도 쉴터호른쪽이 맘에 든다고 해서 지현이와 나 이렇게 세 명은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출발시간 7시 반. 우선 TRUMMELBACH 폭포를 찾아나섰다. 숙소 앞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한다고 그냥 가려고하셨는데 우리가 찾는 곳을 써서 보여드리며 하이킹을 원한다고 하자, 아하 하면서 친절히 알려주셨다. "저쪽길로 가다가 소목장이 이면 오른쪽으로 돌고......"독어도 영어도 아닌 할아버지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신기하다. 아마도 바디랭귀지 덕분이겠지.


사진 하이킹코스를 걷는
지현과 윤석


소목장옆의 지현과 윤석

한걸음 걸을 때마다 감탄이 나와서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고, 사진기를 닫을 새가 없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이 연인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촬영감독이나 된 것처럼, 굽이굽이마다 영화의 장면 같아서 셔터를 눌러댄다.

"필름 좀 아껴. 언니 지금 흥분했어" 맞는 얘기다.

그림같은 풍경에 흥분해서 가슴이 막 뛰고 모든 게 좋아 보인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에 두고 온 사람이 떠오른다. 나중에 꼭 함께 오고싶은 곳이다.

사진만으로는 이 느낌을 다 담을 수 없어, 소방울 소리며 폭포소리를 테이프에 담으려는데, 아, 이번여행의 징크스. 필요하면 없다. 오늘 따라 공테이프를 안 가지고 왔다. 어쩌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마음에 담아가는 수밖에.


길 옆 우물과 꽃밭 뒤로 본보이는 설산

하이킹 코스 길가에서 보이는 빙하 폭포들


<트륌멜바흐폭포>

부지런히 걸었더니 8시 20분쯤엔 트륌멜바흐폭포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너무 서둘렀는지 매표소도 닫혀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트륌멜바흐폭포의 위용을 제대로 보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폭포 내부로 뚫어놓은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나보다.

다시 입구로 나와 앉아서 길가의 수선화와 함께 사진도 몇 장 찍고, 점심으로 싸간 빵도 한 개씩 먹었다. 화장실은 공사중인지 푸세식(?) 임시화장실이 있었다.


트륌멜바흐폭포입구의 간이화장실


수선화와 함께한 정현

9시쯤 되자 숲 속의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나타나는 일본이 젊은이 2명. 정말 칼같이 문여는 시간에 온다. 5분쯤 있으니 역시 나이 지긋하신 일본인 관광객 서너 분이 가이드와 함께 오신다. 이렇게 일찍 움직인 걸 보니 아마 이들도 우리처럼 오늘 스위스의 명소 두 군데를 보려고 하는가 보다. 그래도 무대뽀로 일찍 나선 우리와 달리 정확히 시간을 맞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케이블카는 10스위스프랑(6600원)으로 비싼 편이다. 빵을 다 먹고 천천히 올라갔는데도 아까 그 나이 드신 일본인 일행과 같은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일단 문이 닫히자 무서운 속도로 올라간다. 몇 분만에 금방 내리기는 했지만 단숨에 컴컴한 동굴 속의 몇십m 위로 올라오니 아찔하다


케이블카의 속도감


트륌멜바흐폭포앞의 지현

이제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위아래로 층층이 펼쳐진 폭포를 감상하면 되는데, 낮은 조명과 굉음 때문에 조금은 으시시하다. 폭포를 밖에서 구경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안에 들어와서 곁에서 구경한 적은 없어서 참 새롭다.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올려다만 보다가 위나 옆에서 보며 물보라를 맞아보니 어지러운 것도 같고 물속에 있는 것도 같고 그렇다

폭포 안에 들어와 보니 왜 시인들이 폭포를 남성에 비유한 시를 많이 썼는지 알 것 같다. 칼라보다는 흑백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커다란 소리 속에 고독과 외로움을 감춘 채로 굵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는 가까이서 보면, 실은 수많은 물보라가 모여서 된 것이다. 자잘한 물방울만큼이나 여린 감성들을 숨긴 사람처럼, 폭포는 가까이 있어도 참 손대기 어려운 대상인 것 같다. 웬지 모를 두려움에 눈앞에 있는 그 먹빛 물줄기에 손 한 번 못 담궈봤다.

구비구비 특색 있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폭포들 앞에서 물방울을 피해가며 사진찍는 것도 힘들었지만 재미였다.

폭포를 구경하며 내려오다 보니 한쪽으로 아까 그 일본인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안타고 걸어 올라오는 길이 있었나? 알 수 없는 일이다.

동굴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는 꼭 동화책의 주인공이 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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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륌멜바흐폭포사진

내려오는 길에 엽서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진짜 에델바이스 가 들어있는 목걸이가 참 예뻐보였지만 셋 다 선물로 살까 망설이다가 큰 숨 한번 쉬고 돌아섰다.


트륌멜바흐폭포 팜플렛의 멋진 흑백사진

<케이브카로 다가가는 쉴트호른>

한 시간 정도 트륌멜바흐폭포를 만나고 나와, 표지판을 보고 역시 아름다운 경치사이로 40분쯤 걸으니 쉴트호른케이블카 입구가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연결되어있는 케이블카의 모습은 아래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안에 자전거도 넣을 수 있는 큼직한 케이블카가 왕복 66스위스프랑(4만4천원)으로 인터라켄 보다 싸다지만 현지 여행경비 중 가장 큰 지출이 아닐 수 없다. 학생증과 유레일을 다 내밀어 봤는데 끄덕끄덕 하는 게 할인이 된 가격이라는 건지 안 된 가격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빨간 케이블카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모두 창가에 붙어서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중간에 작은 마을에서 몇 번 정차하기도 했는데, 길가의 경치가 너무 예쁜 그 마을까지도 하이킹코스가 나 있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올라올 수 있었나보다. 노란 꽃이 군데군데 핀 작은 산간 마을들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빙설로 가득한 날카로운 산들로 바뀐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주변의 눈덮힌 산들이 모두 보인다.

케이블카안에서 미현이라는 혼자 자유배낭 왔다는 여학생을 만났다. 사근사근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귀여운 아이인데, 씩씩하게도 그 위험한 스페인까지 다 혼자 다닌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케이블카의 불안함을 달랬다.

15분 오르니 드디어 현대식으로 생긴 납작한 모양의 쉴트호른 전망대가 나타났다. 얼음으로 뒤덮힌 뾰족한 산 꼭대기에 어떻게 이런 건물과 케이블카를 만들어 놓았는지 새삼 스위스사람들의 관광개발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쉴트호른 케이블카지도


케이블카에서 본 쉴트호른전망대

전망대에는 넓은 영화 상영홀이 있었는데 여행책자에선 본 대로 중앙의 기둥에 있는 버튼을 눌렀더니 홀 안의 모든 창문에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쳐지면서 쉴트호른을 배경으로 한 007영화가 일부가 나왔다.

밖으로 나가려고 2층으로 가려다보니, 나이드신 한국인 아주머니를 모시고온 가이드가 고산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천천히 올라야 한다며, 한계단 한계단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뛰어다녔는데, 그래서 인지 일행 중 몇 명은 멀미가 나고 자꾸 눈이 감긴다고 한다. 고산병과 증세가 비슷하기는 한데 젊다는 것 하나 믿고 그냥 버텼다.

드디어 하늘아래 구름과 나뿐인 정상 바깥으로 나섰다. 내 발로 걸어 올라온 게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와서인지 이렇게 높은 곳에 와 있다는 게 잘 실감이 안났다. 하늘이 정말 파랗게 맑은 날이라서 융프라우까지 다 보였다. 지금 민혜와 일행들은 저기서 야호를 외치고 있겠지.

생각보다 바람도 별로 안 불고 춥지도 않았다. 산위 기온은 날씨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쉴트호른 전망대의 정현


쉴트호른 전망대의 지현

다들 눈이 부셔서 경치를 너무 오래 바라보지는 못하고 식사를 하러 회전 전망대로 들어갔다.

그냥 샌드위치를 꺼내서 먹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경치에 취한 사람들의 다수의견에 밀려 힘을 못썼다.

중앙의 요리실과 바깥을 향한 통유리 말고는,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도 통로도 모두 한꺼번에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지현이 말에 의하면 남산타워에도 이런 데가 있다는데, 나는 처음이라서 너무 신기했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가족들은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데, 메뉴도 낯선데다가 주머니사정도 넉넉치못한 우리 네명은 한참을 고민해서 늘 그렇듯 오늘의 요리(special daily)하나와(19스위스프랑=1만3천원정도) pork sausage하나(19.9sf) 헝가리안 굴라쉬스프하나(9.8sf) 그리고 스파게티하나를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스파게티를 선택했던 미현이는 한국보다 면을 덜 익힌 것 같다고 하는데 우리 top deck요리사의 스파게티 셀러드도 그랬던걸 보면 유럽사람들은 면을 약간 덜 익힌 듯 먹나보다.

음식도 문화라는데 고산병 비슷한 증상 때문인지, 네 명 모두 스위스의 유명한 음식이 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바람에 엉뚱한 음식만 먹은 것 같다.

어질어질 식사를 마치고, 쉴트호른의 경치를 담은 포스터도 한 장 사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온 길을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중간에, 올라올 때는 다른 쪽에서 올아왔던 미현이의 표 때문에 검표원과 잠시 실랑이가 있었지만, 미현이의 미소와 간절한 부탁에 잠시 난감해하던 순박한 산골청년이 무사 통과시켜주었다.


무사히 내려온 미현이와 폭포앞에서


하얀 꽃나무 앞의 지현

미현이에게 트륌멜바흐폭포에 가보라고 권했는데, 미현이는 흑백필름만 가져왔다고 해서, 오히려 흑백으로 찍은 멋진 팜플릿을 보여주며에, 거기 있는 것처럼 폭포사진을 잘 찍어보라고 얘기해 줬다. 그런데 가는 길의 풍경도 너무 예뻐서 흑백필름만 가져온 미현이가 안타까워 함께 또 여러장 사진을 찍었다. 어디에서도 그대로 다 그림같은 배경이라 골라 찍기 어려웠다.

길가의 집들도 하나같이 다 꽃 아니면 인형들로 장식을 해 놓았는데, 민박을 하는 집도 있고, 소 키우는 집, 목공소하는 집 등 드문드문 개성있는 장식을 자랑하는 집들이 많았다. 빨래줄에 나란히 날리는 아이와 어른의 낡은 청바지가. 한가로운 이곳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다. 이런데 살면 나쁜 마음을 갖고 싶어도 다 자연 속이 묻혀버릴 것만 같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왜 그렇게 맑고 밝았는지 알 것 같다.

아까부터 여기 아이들과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하던 윤석오빠가 드디어 아이들을 발견했다. 집앞에서 그네를 타고있던 아이들인데, 잘 놀다가 우리가 다가가니 엄마치마 뒤로 숨어 버린다.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단다. 엄마는 사진찍는 걸 허락했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함께 찍으려면 아이들의 경계를 풀어야겠다.

다행히 가방을 뒤져보니 냉장고에 붙이는 한복 입은 컬러찰흙인형이 있다. 한 개씩 받고 나서야 겨우 우리 옆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수줍음 많은 아이들과 함께


<꽃밭에 홀려 길을 잃다>

미현이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는 좀 힘이 든다. 버스를 탈까도 했지만 시간도 안 맞고, 경치도 오래 보고 싶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의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미현이는 스위스에서는 히치하이킹도 좋았다는데, 우리는 셋이라 그런지 차들이 좀 경계하는 눈치이다.

올 때 분명히 봐 뒀던 건물이 가도 가도 안나온다. 왼쪽의 빙하 폭포는 하나 뿐인 줄 알았는데 가다보니 자꾸 나와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나보다.

한참을 가다보니 낯선 마을이 나오는데 올 때 지나쳤던 마을이 아니다. 모르는 역도 나오고. 오늘따라 늘 챙기던 숙소 주소도 놓고 나왔는데, 조금씩 걱정이 된다. 그 와중에도 지현이는 예쁘게 꾸며놓은 묘지가 있다며 구경하고 있다.


꽃으로 예쁘게 꾸민 마을 공동묘지


길가에 가득한 야생화들

이 길인가 싶어 가보면 개인주택 앞마당이고, 또 그 건물 뒤고, 아무래도 되짚어가서 찾아야겠다.

그렇게 얼마를 찾다가. 캠핑같이 보이는 곳이 있어서 뛰어 가보니, 인터라켄에 갔던, 우리 일행들이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창피해서 길 안 잃어버린 척 태연히 인사했다.

헤매는 바람에 가려던 우체국에 못 가나 했더니 늦게까지 우체국이 연다고 한다. 우리가 다닐 나라 중 가장 추운 곳인스위스가 이렇게 더우니 스웨터를 서울로 보내버리고, 영국 테이트 겔러리에서 산 무거운 그림들도 보내버리기로 했다. 보내는 비용이 너무 들면 우리보다 보름 넘게 빨리 한국으로 가는 윤석 오빠가 가져가 주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이곳의의 우편요금은 한국으로 보내는 게 우리나라 국내요금 정도였고, 보내는 수속도 간단했다. 하지만 비쌀까봐 등기우편 같은 걸 신청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니 무사히 집에 도착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골마을이라 가게가 몇 개 없지만 시계점이 보여서, 선물로 스위스시계를 살까해서 들어가 보았다. 가격은 한국 가격의 1/3도 안 되서 확실히 싸기는 한데, 다들 만지작 만지작 망설이기만 하다가, 하나도 안 사고 그냥 나왔다. 물건을 살때는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데, 물건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우리 일행은 너무 신중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

숙소에 와보니 마르코라는 멕시코애가 시계를 두 개나 샀다고 소문나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일거수 일투족 서로 다 아는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줄줄이 새 시계를 차고 왔다면 애들이 뭐라고 했을까. 아까 값도 싸고, 금속이 아닌 돌로 본체가 만들어져 몸에 좋을 것 같아 맘에 드는 시계가 있었는데 사지 않은 게 다행인 것도 같고........아 눈에 밟히는 돌시계.


<식빵을 퐁듀에 퐁당 빠트리면...>

오늘 저녁은 허리 아픈 낚시의자에 앉아서 모기 뜯기며 먹는 게 아니라, 특별히 현시식을 먹어보는 날로 캠프장 내의 바에서 퐁듀 라는 스위스 전통음식을 먹는다.

테이블에서 우리나라 뚝배기 같이 생긴 그릇에 보글보글 치즈를 끓인 뒤 기다란 포크로 무언가를 넣어 찍어먹는 유명한 음식인데. 문제는 그 무언가가 뭐였냐에 있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비프퐁듀, 야채퐁듀, 해산물퐁듀등 다양한 퐁듀가 있는데 우리가 먹은 것은 식빵퐁듀였다. 거창한 치즈 그릇에 달랑 빵만 나오길래 우리는 이건 준비고 뭔가 더 나오겠지 기대했지만, 역시 학생들 여행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대신 레이첼이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치즈그릇에 식빵을 찍다가 빠뜨린 사람은 일행 모두에게 뽀뽀를 해야하는 요상한 게임이었다. 우리정서로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게임이라 한국인은 다들 황당해 하고 있는데, 게임은 진행되고 젖은 빵을 치즈그릇에 안 빠트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신경을 곤두세운 우리 한국인들 말고는 줄줄이 걸려서 뽀뽀를 하러 돌아다닌다. 윤석오빠는 뉴질랜드 롹가수 아니 롹가수처럼 터프한 간호사언니의 뽀뽀를 받고 얼굴이 빨개진다. 우리 테이블은 빠뜨려도 서로 말하지 않기로 하고 묵묵히 치즈만 노려봤다. 이런 게 문화체험이라는 건가. 밤늦도록바에 있던 애들은 더한 게임도 많이 목격했다던데 이제 상상이 간다.

<역시 어려운 bar 문화>

오늘 저녁에도 식사 후에 다들 바에 모여 노는데 우리만 방에 들어와 있을 수도 없어서 bar에 가보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말이 통하는 한국인들끼리 모이게 되고, 여자들은 술도 다들 안 좋아하니 주스잔만 홀작거리고 있다.

혼자와서 약간 아웃사이더인 노르마라는 멕시코 아가씨와 영국에서 민혜의 룸메이트였다는 엘러디가 우리와 함께 있는데 더블잭인가 뭔가 하는 카드게임을 힙겹게들 하고 있다. 내가 카드를 안하고 멀둥멀뚱 있었더니, 다른 게임을 하자고 얘기가 나와 외국인들에게도 이해가 쉬운 엄지손가락 들어 숫자맞추기게임을 했다. 여러사람이 동시에 들어 그 숫자를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건데, 맞춘 사람이 그 숫자 만큼 손가락으로 나머지 사람 전부의 손목을 때리는 고전적(?)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이해가 된 듯, 안된 듯 따라오던 노르마가 웬지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이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봐주면서 살살 때려서는 안되는게 암묵적 룰이라, 평소에는 착해보이던 우리들이 그렇게 세게(사실 한국에서 게임하던 것에 비하면 아주 살살 때린건데) 때리자 뭐 이런 게임이 있나 싶어 황당했나보다. 그래서 어렵게 뭉친 이 자리도 금방 파장되었는데, 외국인에게 가르쳐줄 쉬운 전통놀이 하나 정도 생각해 오지 못한 게 좀 후회됐다. 그래도 때리기게임은 너무 심했나?

어쨌든 방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게네들의 bar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써 온 며칠간의 우리들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났다. 여행이라는 게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고 다녀야 하는 건데,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위축되어 있던 우리가, 너무 게네들의 여행 패턴에 우리를 맞취야 한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렵사리 떠난, 어쩌면 평생의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유럽여행이라 될 수 있는 한 많이 보고 느끼는 게 목적이다. 반면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네들은 다음 휴가 때도 오고, 그 다음에도 또 오고 할테니까 우리처럼 여행책자를 보며 골머리 썪지도 않고, 보려던 것 못보고 갈까봐 마음 급하지도 않고, 그냥 즐기고 마시며 지낸다. 이런 것을 우리가 따라할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그리고 진짜 외국 친구가 사귀고 싶었다면 영어공부를 더 많이 해와서 당당하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일이었다.

그런데 신경 쓰느라 진짜 나의 여행목적인 글모이 얻기나 기공 동작 개발하기는 뒷전이었던 것도 억울하다. 내일부터는 우리의 여행목적에 맞게 행동하기로 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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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국적배낭 첫날-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떨리는 외국인들과의 생활><페리안에서의 점심> <수학여행인지 다국적배낭인지>

<규모로 압도하는 개선문과 에펠탑><아 멋진 파리의 야경>


<떨리는 외국인들과의 생활>

4시 반에 일어났는데도 짐 싸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늦을까봐 허둥지둥 earl's court의 집합장소로 향했다. 투어버스를 놓치면 프랑스까지 우리가 배타고 가야하는데 그건 생각만 해도 너무 막막했다.

지영이와 혜진언니가 주고 간 계란으로 허기만 면하고 지하철에서도 마구 뛰었다.

우리나라는 어떤 단체이든 모이라는 시간에 정시 출발하는 경우가 없는데,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다더니, 6시 50분 출발시간 10분전인데도, 정말 우리 빼고는 다 와있다.

버스에 타서 둘러보니 모두 20명 정도로 생각보다 인원이 많지 않은데 그 중 한국인이 6명이나 된다. 아무래도 1개 군단을 형성할 것 같다.운전사와 요리사(요리를 공부하는 학생이란다.)그리고 투어가이드를 빼면 더 적어진다.

다양한 외국 친구들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는데 좀 실망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많아서 맘이 놓인다. 특히 미국에서 1년 간 교환학생으로 있다가 귀국하는 길에 여행을 한다는 민혜가 앞으로 우리의 통역을 맡아서 해줄 생각을 하니 쫑긋 세웠던 귀의 힘도 빠지고 긴장이 다 풀린다.

프랑스로 가는 페리호를 타러 버스로 이동중이다. 레이첼이라는 오스트리아출신 가이드아가씨는 참 건강하고 명랑해 보인다. 나보다 어린 것도 같고, 나이가 잘 감이 안 온다. 아까부터 영어로 계속 주의사항과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곳의 설명을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서 만났던 외국인들은 모두 우리를 배려해서 느리고 또박또박한 영어를 구사하느라 애썼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우리 빼고는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로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출신이라서 다들 여유롭다. 영어공부하러 온 사람이면 딱인 여행이다. 생존을 위해 하루종일 영어에 긴장해야하는 여행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은 우리는 민혜를 하늘이 주신 여행선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에펠탑 야경엽서

배가 고파 가방을 뒤져본다. 다행히 어제 산 과자가 맛이 좋다. mcvitie's라는 과자인데 한국의 다이제스티브 안에 포도말린 것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과자이다. 어제 영국 아가씨가 사는걸 보고 산건데

"역시 현지인들이 사는 걸 따라 사는 게 좋아"하며 지현이도 만족해한다.

창밖으로 끝없는 유채꽃밭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김포평야의 논처럼 노란 꽃밭이 펼쳐지는데 이걸로 향수원료도 만들고 식용기름도 짠단다. 영어가 조금씩 들리는 것도 같고......


저녁에 버스투어 한 파리의 개선문

<아 멋진 파리의 야경>

오늘 일정은 이렇게 끝나려나 했더니 빠리 야경을 보러간다고 8시까지 버스 앞에 모이란다. 시간에 딱 맞취 갔더니 우리 빼고는 다 미리 와있다. 정말 칼 같은 시간관념이다.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

고속도로로 얼마를 달리니 빠리 시내가 나온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닫은 셔터마다 다양한 스프레이낙서가 재미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어떤 가게는 그 낙서를 피해 아예 유리문 안에 셔터를 넣어놓았다.

버스에서 보는 파리의 거리는 영국의 거리와는 다른 어떤 운치가 있었다.

눈부신 네온사인으로 거리의 경관을 해치는 간판은 거의 없다. 오히려 특이한 필기체의 작은 글씨로 된 간판들이 눈에 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잠시 내렸는데 지현이는 시계를 보더니

"9시 30분인데 아직도 환해"하며 신기해했다.

언덕위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까지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 일행은 당연히 모두 걸어서 올라갔다.

파리시내가 쫙 펼쳐지는 성당앞에서 가이드 레이첼의 설명을 들으며 모여있는데, 성당 계단에 껄렁하게 모여있던 흑인 청년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mother go home!" 우리쪽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걸 보면 가이드와 함께 단체여행을 온 사람은 모두 사치성여행객으로 아는가보다. 어린 우리 가이드 레이첼이 마음 상했을 것 같아 함께 사진 찍자고 했다. "our mammy"라는 말과 함께.


몽마르뜨 언덕에서 가이드 레이첼과


몽마르뜨언덕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

30분간 언덕 위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을 둘러보고 저 아래서 다시 모이란다.

성당 안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듣던 대로 어디선가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이 나타나 "곤니찌와"를 외쳐댄다.

휴 이제 시작이겠지. 저소리 듣기 싫어서 한국 문양티도 가져왔는데, 앞으로 어딜 가나 저 소리를 듣겠지. 담담해져야 할 텐데도 열을 받는다.

그래도 말은 해주고 가야지. 우린 한국인이야!


<규모로 압도하는 개선문과 에펠탑>

다시 투어버스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파리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레이첼이 열심히 설명해 준다. 역사적 배경과 함께. 내일 각자 돌아다닐 곳을 생각해두라는 배려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을 택한 외국 애들은 우리와 달리 별 준비 없이 가볍게 온 것 같다. 우리처럼 들여다보는 여행책자도 없고. 갑자기 버스 안에 신나는 음악이 크게 나오면서 버스가 돌기 시작한다. 뭔가 싶어 창밖을 보니 조명을 받은 웅장한 개선문이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한바퀴 두바퀴 개선문을 돌며 조각품을 감상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내일이 있으니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다음에 시간이 없다며 5분만의 사진찍을 시간을 준 곳은 바로 에펠탑. 역시 에펠탑이었다. 어느 방향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멋있는 선이 돋보였다.

상상했던 것 보다 엄청난 규모에도 다시한번 놀랐다. 나는 탑이라고 해서 전망대도 있다길래, 우리나라 무슨 무슨 탑 보다 좀 큰 탑이겠거니 했는데 웬만한 빌딩보다도 훨씬 컸다.

파리의 야경을 가득 담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8 조용한 신도시 라데빵스

<숲속에서의 아침><하얀대문집을 찾아서><향수냄가 가득한 화장실을 찾아서>

<눈 씻고 봐도 자동차가 안보이는 신도시 라데빵스><에펠탑을 헤매다>

<유람선에서 보는 세느강 야경>


<숲 속에서의 아침>

새벽에 잠을 깨서 아침 산책을 했다. 캠핑장 저쪽 끝에는 호수가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커다란 나무들은 크기에 비해서 기감(氣感)이 세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숲의 느낌은 부드럽고 괜찮았다.

지현이는 늦잠을 잔다. 어제 저녁 우리팀 한국인과 이미 34일 짜리 투어를 끝낸 다른팀 한국인들과 맥주를 한잔씩하고 들어오더니 피곤한 가보다.

산책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캠핑장내 슈퍼에서 오렌지주스 큰 것과 yop을 하나씩 샀다. 가격이 휴게실의 1/4이다.

카운터를 보는 아주머니께 영수증을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간단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생각해 내서 "receipt please" 라고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차 여기는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지. 그러면 프랑스어로 영수증이 뭐더라. 급한 김에 그냥 영수증을 손으로 짚어서 받기는 했는데, 이거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회화책을 뒤지니 아하 레뀌(re u)라는 낯익은 단어가 나타난다. 앞으로는 꼭 써먹어야지.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파리를 향해 버스로 출발했다.

어제 밤 파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새로운 가이드와 30명 정도의 광란의 여행객들이 합류해서 잠시 긴장했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 다니게 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다행히 투어 마지막날인 같은 회사 여행객들인데 헤어지기 전날이라고 너무 늦게까지 놀다가 자기네 버스를 놓쳐서 우리 차에 잠시 탔던 거란다.

그쪽 가이드가 우리를 보더니 자기네도"two korean"이 있다며 소개시켜 주었는데, 그분들도 처음에는 언어장벽 때문에 가이드와도 안통하고 다른 일행들과도 소외되어서 포기하고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드의 친절한 나머지교육(?)과 한국인 특유의 뱃심으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시간을 잘 지키라는 등 몇 가지 주의점도 얘기해 주었다


꽁고드광광의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이 훔쳐왔다는
오벨리스크 앞의 일행

그 분들은 파리에서 이틀 더 있다가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우리 차에 함께 타고 파리시내로 동행하게 되었다.둘이서 우리가 뽑아온 민박집리스트를 빌려서 열심히 적으며 어디로 갈지 연구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3주 후 다국적 배낭을 끝내고 다시 파리로 왔을 때는 성수기에 가까울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예약도 할 수 있으면 하고, 그 때 무거운 짐을 들고 민박집을 찾아 헤매는 것 보다 몸 가벼울 때 확인해 두는 게 나을 것도 같아서 함께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짜피 우리는 나중에 일주일 정도 파리에 다시 오니까 파리의 다른 관광지들은 아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얀대문집을 찾아서>

꽁고드 광장에 내려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먼저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거는 일도 수월치는 않았다. 카드를 넣고 그냥 걸려니까 잘 걸리지 않아서 다시 조사해간 수첩을 펴들고 decrocher라는 글자가 뜨면 수화기를 들고 patienter에 기다리고 numeroter라는 글자가 나오면 번호를 눌려서 겨우 통화가 되었다.(하얀대문집01-4656-17841 찾아가기 전에 예약이나 확인요)

다음은 지하철표 사는 일. 10매짜리 carnet를 사서 나눠가지고 노선도에서 우리가 갈 13호선 하늘색라인의 남쪽 종점 바로 전 역인malakoff r. tienne dolet역으로 향했다. 노선도만 봐서는 중심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어 가는데 한참 걸릴 줄 알았더니 금방 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역과 역 사이가 정말 가까워서 깜빡 졸면 영 엉뚱한 곳에 가서 내릴 위험이 있다.

전철역에서 나올 때는 표는 필요 없는, 좀 위험스럽게 확확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으로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엄청난 벌금이 기다리는 불심검문에 걸릴 지 모르므로 표는 전철역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전철역을 나와서 옆의 굴다리를 등지고 빵집 옆길로 10M정도 가면 나타나는 첫 번째 4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돌면 금방 하얀대문집 간판이 나타난다" 무슨 지령같지만 오기전 통신상의 여행기에서 뽑아온 길 안내문은 그러했다. 두리번거리며 이대로 찾아가고 있는데 웬 삐죽하게 키 큰 프랑스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너희 하얀집(WHITE HOUSE) 찾아가는 거 맞지. 저쪽이야" 다른 말은 다 못 알아 듣겠어도 하얀집은 들린다.

여기쯤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하얀대문집 간판이 안 보인다.

그렇다면 일단 하얀 대문을 찾아볼까. 앗 찾았다. 정말 이렇게 앙증맞게 이름이 써있을 줄은 몰랐다. 길가에 있기는 하지만 하얀문 한 귀퉁이에 한 뼘도 안되게 갈색 스텐실로 찍어놓은 하얀대문집 간판은, 밤에 왔으면 정말 찾기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전철역까지 마중 온다고 하신거구나.

얀대문집의 정말 엄청 큰 간판

예약 없이 찾아간거라 오라버니들은 다락방에 짐을 풀고, 우리는 20일 뒤에 다시 온다는 예약을 하려 했더니 그때는 성수기가 아니니 그냥 오면 된다고 하신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셔서 염치 불구하고 김치와 미역국을 싹싹 비웠다. 우리도 일주일만에 보는 김치가 반가운데 한달 만에 보는 두 분은 얼마나 반가울까. 입이 귀에 걸리게 좋아하며 식사를 한다.

< 향수냄새 가득한 화장실찾기>

민박집도 확인했고 이제 6시30분 에펠탑 앞의 집합시간 까지 파리관광을 하면 된다. 한나절 동안 어디를 구경할까 하다가 두분이 건축전공이라고 하시길래 우리도 관심있었던 신도시 라데빵스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먼저 타이항공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에 내렸다. 두분은 비행기 재예약을 해야하고 우리도 샹젤리제거리를 구경해보고 싶어서였다.

숨어있는 듯 찾기 어려운 타이항공에서 볼일을 끝내고 대형 향수전문점인 SEPHORA를 구경했다. 우리나라 대형 슈퍼 만한 크기의 매장의 벽면 전체에 향수가 진열되어 있고. 향수의 사돈의 팔촌에 해당하는 각종 샤워코롱이나 화장품들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화장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전부터 멀미나는 향수냄새보다는 땀 냄새가 낫다고 생각해온 지라 시큰둥하게 들어갔는데, 수백종의 향수를 마음대로 뿌려 보며 맡아 볼 수 있고, 화장품의 경우 직접 발라 볼 수도 있는 이 매장은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지현이가 흥분할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향수 값이 별로 싸지는 않다면서 뿌려보는 걸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매장에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 안 보였다. 향수와 화장실이 너무 안 어울려서 숨겨놓았나 싶어 구석구석을 찾아 봤지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의 실수를 교훈 삼아 매장언니에게 불어로 물어보았다. "EXCOUSEZ MOI OU EST LA TOILETTE ?"내 서툰 불어를 알아들을까?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웃으면서 안내해 주었다. 안내해 준 화장실은 아무도 문이라 생각지 못하는 매장 뒷면의 검은 대리석 벽을 밀면 나오는 직원용 화장실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에선 나프탈렌 냄새가 아닌 향수냄새가 가득했다.

향수가게를 나와서 신도시 라데빵스로 가는 전철역을 찾아 걸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계획대로 가로정비가 된 거리라서 그런지 넓고 쭉 뻗은 대로였다. 눈길을 끈 것은 도로 사이사이에 있는 꽃밭이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억지로 태극 무늬라든가 꽃시계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마치 한적한 시골 길가의 들꽃무더기처럼 자연스럽게 자라게 한 것이 오히려 딱딱한 도시에 아련한 느낌을 주어보기 좋았다.


샹젤리제의 자연스러운 꽃밭


어느 전철역


<눈 씻고 봐도 자동차가 안보이는 신도시 라데빵스>

지하철 노란선 1호선 왼쪽 끝 라데빵스역에 내려서 지상으로 오르니 거대한 "GRANDE ARCHE"가 우리를 압도한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이 대형 아취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안에서 세계적인 행사와 각종 비즈니스 모임을 행할 수 있을 만큼 내부의 규모도 크고, 첨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그랑아취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씩 찍어두려는데 이런 아무리 뒤로 물러나서 찍어도 그랑아취의 발치밖에 앵글에 안 들어온다.

"얼마나 큰 거야 이거" 날도 더운데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서보라고 하고서 정작 안나온다고 하니 지현이의 참을성이 한도에 도달했음이 보인다.


라데빵스의 그랑아취-별로안커보인다구요?
아래사진을 보세요.사람들이 개미같죠.


라데빵스의 그랑아취 아래를 지나는
마녀키키같은 지현

유료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랑아취 위로 꼭 올라가 봐야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우선 앞에 보이는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더위를 식히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에 요리사가 준비해준 재료로 각자 싼 도시락 비닐봉지를 열어 딱딱한 바게트샌드위치와 사과를 함께 먹고 성준,형규 오라버니는 주스를 마셨다. 두 분 다 피부가 까매서 원래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다국적배낭34일 코스에는 그리스 섬에서 요트로 항해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 때 배 안에서 해를 피할 곳이 전혀 없어서 다 탔다고 한다.


라데빵스야경엽서-
어디서 잡으면 이렇게 다 나올까?

라데빵스의 현대식건물들과 차없는 거리

도로대신 공원이 넉넉하게 들어서 있고, 차들이 경쟁적으로 주차되어있을 공간에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나무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에 차 없는 아파트를 짓는다고 선전하던데, 이렇게 신도시 차원에서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라데빵스공원의 입벌린 개구리조각


측면 개구리


사진을 삐뚤게 찍었다두요? 아닙니다.
건축전공인 오라버니들이 열광한 기울어진 기둥

지현이가 열광한 무지개굴뚝

개성있는 건물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현이는 무지개빛 줄무늬의 건물이 예쁘다고 찍고있고, 나는 나무덩굴을 가득 그려 넣은 환기구 같아 보이는 굴뚝이 맘에 들었다.

토목을 전공하셨다는 두 분은 이직 짓고 있는 건물 중에 기둥을 비스듬히 한 건물이 볼만하다고 하신다. 건물의 하중 때문에 저렇게 설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단다. 한쪽에 언제 봐도 즐거운 미로의 조각품도 보인다.

나무줄기굴뚝 확대

정현이 열광한 멋진 그림이 그려진 굴뚝

웬지 위압적인 신개선문 그랑아취를 등지고, 개선문쪽을 향해 걷다보니 정말 신 개선문은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과 꽁꼬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의 까루젤개선문과 일직선으로 위치한 것이 한눈에 보였다.

해가 너무 쨍 하다고 툴툴댔더니, 맑은 날만 볼 수 있다는 이런 모습을 직접 보는 행운도 기다리고 있었다.


라데빵스의 미로조각

조금 더 걷다보니 바람에 움직이는 조명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는, 사각형의 인공연못이 나타났다. 스크류처럼 길게 꼬인 조형물에 조명이 달려있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밤에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 본다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물가에 앉아 한가로운 현지인들 틈에 섞여 있었다. 물에 첨벙 뛰어드는 큰 개도 있었고 소풍 온 유치원아이들도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우리가 신기한지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는 길에서 외국인을 보면 도망가거나 놀리곤 했는데, 순진한 아이들의 모습은 똑같았다.

여행 초입인 우리와 달리, 긴 여행의 끝인 두 오라버니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으신지 자꾸 먼 곳만 쳐다보셨다. 몇 시간 뒤면 바삐 따라다녀야 할 단체여행이 기다리는 우리도 잠시나마 저 멀리 개선문을 바라보며 덩달아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데빵스의 조명조각분수


<에펠탑을 헤매다>

모이기로 한 에펠탑 아래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오라버니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분명 일찌감치 모여있을 우리팀 외국애들과 top deck 버스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바퀴 두바퀴 에펠탑 남쪽을 몇바퀴나 돌아도 일행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분명 아침에 에펠탑의 남쪽 면 앞 도로를 지나면서 창밖을 가리키며 여기서 모이라고 했는데.

지현이와 나는 에펠탑 앞 공원을 얼굴이 빨개지도록 뛰어다녔다. 차를 못 찾으면 저녁도 못 먹고 외곽의 숙소까지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데 그건 생각만으로도 참 답답한 일이었다.

30분을 헤매다가 다시 에펠탑아래에 와보니, 아까 헤어진 오라버니들이 그대로 앉아 계셨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시더니 아마 저기 일꺼라고, 우리가 갔다가 돌아온 곳을 말해주신다.

다시 뛰어가보니 저쪽 길건너에 우리차 비슷한 게 보인다. 찾았다! 어쩌면 우리만 빼고 외국애들은 여유롭게 공놀이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들 헤매지 않고 찾아 왔는지.

다들 모였고 한국인 중에 윤석오빠만 안 와서 가이드가 우리에게 묻는다. 아침에 따로 숙소로 온다고 한 것도 같고, 남자니까 가이드도 큰 걱정은 안 하는 것 같다. 음식을 덜며 식사를 시작하는데 헐레벌떡 윤석오빠가 온다. 오빠는 우리보다 한술 더 떠서, 그냥 에펠탑 앞에 모이는 줄만 알았지 에펠탑 어느 쪽에서 모이는 지도 몰랐다고 한다. 하긴 차안에서 보기엔 에펠탑 사방에 이렇게 큰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지는 몰랐으니까. 어쨌든 다 모였으니 마음 편히 식사를 했다.

좀 있으려니 아까 헤매다 만난 오라버니들이 왔다. 우리가 걱정 되서 오셨단다. 참 고맙고도 미안했다. 한국인끼리 저녁을 나눠 먹고 공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고나서, 다시 인사를 했다. 또 헤매다 다시 오지 말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 창피해라.

에펠탑아래의 일행들

유람선 안에서 본 불켜진 에펠탑

<유람선에서 보는 세느강야경>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단체로 세느강 유람선인 bateaux parisiens를 타러 갔다. 단체여행비 안에 요금이 포함되어 있어서 별도로 내는 돈은 없었지만, 몇몇 애들은 식사시간에 별도로 저렴한 샴페인 한 병씩을 주문해서 들고 탔다.

앞을 보며 갈 수 있는 배의 한가운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온 어른 단체관광객들의 자리이고, 우리는 2등석에 해당하는 배의 측면 그러니까 물이 찰랑찰랑하는 곳에 앉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더 재미있는 것 같았다.

파리 세느강의 야경은 우리 한강의 야경과는 많이 달랐다. 한강야경은 강변의 아파트와 여의도 빌딩들의 불빛들, 새로 만든 현대식 다리들의 조형미가 볼거리라면, 세느강은 강변을 따라 늘어선 예술적인 조명을 한 옛 건물들과 조각품들, 이끼 낀 돌다리들이 볼거리였다.

그 역사 깊은 다리마다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정다운 모습으로 앉아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평화로운 모습도, 자살소동이 끊이지 않는 도시적 외로움의 상징인 한강다리와 대조적이었다.

불 밝힌 루브르와 오르세미술관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에 흠뻑 취하고, 세느강을 한바퀴 돌아서 오는 동안 에펠탑의 조명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에펠탑은 밤에 보아야 더 멋지다. 장식전구를 저렇게 수없이 밝혀 놓았는데도 낭비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있는 것은, 늦은밤 오히려 멋지게 빛나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이 낭만과 멋을 찾아 파리에 온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때문이리라.

세느강변야경

19 다시 찾은 파리

<파리로 가는 길><외제화장품의 거품을 보다><유럽에서 조개를 날로 먹다>

<일요일에 보는 파리의 진풍경><민박집"외가집"에 놀러가서><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파리로 가는 길>

남은 벨기에 동전으로 부드러운 벨기에 고디바 쵸컬릿을 몇 알 사먹고, 일행과 만나 너무나 slow하게 나오는 "qick time 햄버거"도 사서 역 한가운데 털퍼덕 앉아 나눠먹었다. 여러명이 모이니 이렇게 행동이 조금은 자유롭다.

영희와 우리들은 열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는데 아직 시간이 남은 성식 오라버니는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든다.

수십 일을 거의 한국사람 구경 못하고 여행하시다가, 이렇게 며칠 조잘대는 여인네들 속에서 지내고 나니 앞으로는 더 외로울 것 같다고 하시더니, 정말 플랫폼에 혼자 서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유럽여행이 끝나면 이어서 누님이 있는 미국까지 날아가서 또 여행하는 긴 일정이 남았으니, 좋은 여행친구들을 또 만나시길 바란다.


1사진 벨기에에서 프랑스 가는 기차표. voiture7 이 7번 칸이란 얘기고, p1 042가 좌석 번호이다.

번호를 잦아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우리는 non fumer 금연석 표를 끊었는데 이 칸 앞에는 흡연가능 그림이 그려져 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두리번거려 보니 아무래도 번호만 보고 칸을 잘못 탄 것 같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칸 숫자는 밖에 적혀있는 모양인데, 안에서는 어디에 적혀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담배연기를 맡으면 메스껍고 멀미가 나는 우리들이 1시간 반 동안 흡연석에서 담배연기를 맡을 생각을 하니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짐을 들고 일단 옆 칸으로 옮겼다.

다행히 빈자리가 많아서 앉아 가는데, 중간에 웬 건장한 흑인 아저씨 두 명이 와서 자기네 자리라고 한다. 잠시 흡연석에 담배 피러 갔던 거다. 비켜주려는 몸짓을 하는데, 이미 자리잡은 우리들의 만만찮은 짐을 보더니 됐다며 자기네 짐을 내려서 다른 자리에 가서 앉겠단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지현이는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일본인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제 말문이 좀 트이려나.

<하얀집 찾아가는 길 >

한 3주만에 다시 파리에 돌아왔다. 파리 북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우선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지난번에 여유가 있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가 확인하고 영희를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했다.

정신없이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데, 함께 내린 옆자리의 일본인이 파리지하철이니 여기서부터는 가방을 주의하라고 충고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 모두 모아놓은 가방에는 신경을 안 쓰고 각자 지도와 수첩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슬쩍 큰 가방하나 들고 가도 모를 뻔했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곳이고 영어보다 불어가 통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갑자기 딴나라에 떨어지니 정신이 없다. 동생들은 불어선택이 아니라서 낯선 표지판들에 더 혼란스러워한다.

하얀대문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럴 수가, 아줌마가 방이 다 찼다고 미안해하신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지난번에 미리 찾아가서 확인까지 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사실 불안해서 한국에서 20개도 넘는 민박집 주소를 알아 가지고 오긴 했지만, 강행군으로 나도 힘든데다가, 지친 동생들을 데리고 다른 민박집을 찾으려니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방의 구조를 떠올리며, 일단 하루라도, 침대가 다 찼으면 그냥 바닥에서 이불 깔고라도 자면 안되겠냐고 우겨보았다.

아줌마가 미안해하시며 일단 와보라고 하셔서, 얼른 10매 짜리 까르네 전철권을 사고 복잡한 북역을 떠났다. 이동하면서 보니 우리처럼 무거운 짐을 배낭으로 맨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들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쉽게 간다. 우리도 저런걸 갖고 올 걸 그랬나.

하얀대문집이있는 13호선 하늘색라인의 malakoff r. tienne dolet 역에 가려면, 몽빠르나스montparnasse역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지하철은 만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나라도 환승 구간이 길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많지만 몽빠르나스역은 정도가 심해서, 아예 역 밖으로 나와서 한참 사람들을 따라 걸어서 다른 건물로 들어가야 13호선이 나온다. 아 고달파라.

힘들게 하얀대문집에 도착하니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진다. 우리 자료들을 한국에 갖다주기로 한 윤석 오빠가 우리와 약속한 대로 이 숙소에 전화를 했는데, 자리가 없다고 다른 숙소로 보냈다고 한다. 아줌마가 이산가족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보낸숙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시며 연락이 닿게 해주시긴 했지만 이거 여러 모로 불편해진다.

그래도 일단 한국인만 가득한 집에 오니 여행 떠나서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인다. 짐 잃어버릴까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말도 통하고.

아주머니가 끓여주시는 일본라면을 김과 빨간무로 담근 물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고 샤워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시가 다 되간다. 침대사이에 담요를 깔고 전기장판까지 깔아주셨는데, 세 명이 자기엔 좀 비좁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바닥에 누우니 침대보다 훨씬 좋다. 집 생각도 나고.

<외제화장품의 거품을 보다>

어제 밤에 "외가집"이라는 민박집에 있는 윤석오빠와 연락이 되어서 아침 9시에 에펠탑 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 번 파리에 왔을 때처럼 입고 나섰더니 이거 바람이 너무 차갑다. 아줌마가 지난번 왔을 때 "너희들 이렇게 입고 다니니?"하며 놀라시던 게 생각난다. 하나도 안 춥다고 했더니 그 날은 이상하게 덥다시더니 그 밀 뜻을 알 것 같다. 오히려 여름이 가까워지는데 진짜 평소의 파리의 날씨는 이렇게 추운가보다.

좀 늦게 나와서 에펠탑근처 역에서 내려 에펠탑을 향해 뛰려고 찾으니, 파리 어디에서나 보인다던 에펠탑이 오히려 안 보인다.

일요일이라 거리에 사람도 없고 날은 추워 뼛속까지 바람은 스미는데,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고 참 불쌍해진다.

그래도 뛰다보니 에펠탑이 저 멀리 보이기는 보인다. 그런데 사방이 뚫린 철골 구조물 에펠탑 아래 서 있으려니 바람이 더 거세게 불어닥친다. 좀 늦었다고 갔나?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려고 하니 저쪽에서 나타난다.

너무 추워하던 지현이가 윤석오빠의 남방을 하나 뺏어 입고 파리관광에 나섰다.

아니 오늘은 관광이라기보다는 선물 사는 날로 정했다. 윤석오빠 엄마와 누나, 여자친구 화장품 선물을 사는 걸 지현이가 도와주기로 했고, 지현이도 자기화장품을 좀 사겠단다. 나는 화장을 안 하니 그런 쇼핑이 재미없기는 하겠지만, 여행자수표가 내 이름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니 같이 다니기로 했다.

benrux라는 루브르 뒤에 있는 면세점이 한국점원이 있어 편리하고 값도 싸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듣던 데로 한국점원도 여러 명되고, 중국 일본등 각 나라 말을 하는 점원들이 손님들의 선택을 돕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화장품 가격이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외제 화장품들의 가격은 다 이곳 가격에서 3배 이상 뻥튀기 된 것이었다. 한국아저씨들이 부인이 신신당부했다면서 한보다리씩 사가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환산해보면 한국의 슈퍼에서 파는 식물나라나 중간정도의 품질의 화장품과 같은 가격이었는데, 그 동안 백화점 등에서 그렇게 비싸게 팔아왔다는 걸 알고 나니 참 어이가 없었다.

어디선가 한국의 여성들은 외국여성과 달리 생필품 격인 화장품을 너무 비싼 걸로만 쓰고 고급만 쓴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화장품은 슈퍼에서 팔 정도의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쓰는 문화가 정착되어야지 이렇게 거품 가득한 외제화장품을 고급이라고 믿고 쓰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리나라 화장품의 품질도 이 가격에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얼른 올라서야 민감한 한국 여성들이 외제화장품을 찾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해질녁의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엽서)

<유럽에서 조개를 날로 먹다>

면세점을 나와서는 우리가 점심을 사기로 했다. 윤석오빠를 고장난 우리 사진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귀찮게 했고, 너무 많은 짐을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이다.

맛있게 생긴 식당을 고르려니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진열장에 싱싱한 해물이 놓여있는 식당이 보여서 그리로 들어갔다.(식당이름"la taverne de maitre kanter" 주소 16,rue coquilliere 75001 paris)

일단 들어가긴 했는데, 메뉴판을 보니 또 난감해진다. 불어로 된 요리명이 빽빽하니 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저쪽에 진열된 해물을 보고 들어왔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3인이 먹을 수 있다는 중간크기의 모듬해물요리를 시켰다. 자글자글 맛있는 해물구이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떡 벌어진 모듬해물이 나오기는 했는데, 으악 석쇠 위에 나오는 게 아니라 얼음 위에 나오는 게 아닌가.

유럽사람들도 회를 먹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한국에서도 회를 거의 안 먹는 우리 앞에 이게 뭐란 말인가. 더욱이 한국에선 회로 안 먹는 홍합에 국 끓여먹는 모시조개, 쬐그만 새우에 , 또랑에서 잡힐 것 같은 작은 가제까지 굴말고는 날로 먹어본 적이 없는 해산물들만의 총 집합이었다. 더욱이 익혀먹으면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게까지 얼음 위에 있었으니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이걸 익혀달라고 말하면 안될까. 잠시 고민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시켰는지 먹음직스럽고 다양한 익힌 음식들을 맛있게도 먹는다. 아, 프랑스 음식이름도 좀 자세히 알아올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된 거 이것도 프랑스 요리이니 경험 삼아 한 번 먹어보자 하고 웨이터를 불러서 도대체 이 요리를 어떻게 먹는 건지 물어보았다. 친절한 웨이터가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작은 새우는 손으로 집어 껍질 채로 소스에 찍어먹고, 조개와 굴도 포크로 꺼내서 날로 먹고, 가제와 게는 옆에 준 망치 겸 가위로 껍질을 깨서 먹는 거란다. 어렵지는 않은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만만한 굴부터 손을 댔다. 레몬을 뿌려서 먹으니 우리나라에서 먹던 굴과는 좀 달랐지만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다음은 홍합. 역시 많이 봐온 조개이지만 날로는 처음이다. 역시 먹지 말 걸 그랬다. 모시조게 닮은 조개는 한 개먹고 다시는 잡지 않았다.

포도주로 입을 씻고 딸려 나오는 빵으로 입맛을 진정시켜가며 다음은 손으로 집어서 찍어먹는 잔새우. 다행히 이건 입맛에 맞았다. 소스로 찍어먹는 조미된 버터가 날새우의 느낌을 많이 죽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선한 해물을 쓰는지 새우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맛도 났다.

게를 집어든 지현이 조심스레 먹어보더니 "이건 익힌 거야" 반가운 소리를 한다. 게장도 아니고 날 게를 어찌 먹나 했더니, 다행히 게만은 익혀서 나왔다.

다음은 작은 가제를 깨뜨려 볼 차례, 집게가위로 버벅대는 우리를 보다못한 웨이터가 와서 그러지 말고 두드리면 쉽다고 손짓을 한다. 두드리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까봐 삼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테이블이 나무가 아니라 딱딱하고 자잘한 타일로 되어있다. 뜨거운걸 막 놔도 좋고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먹고있긴 하지만 자꾸 다른 사람들의 익힌 음식에 눈길이 간다. "저건 뭘까" "저것도 참 맛있게 생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서서 기다릴 정도로 식당 가득 사람이 찬걸 보니 맛좋기로 유명한 식당이긴 한 것 같은데 우린 왜이리 엉뚱한 음식을 시키고 말았는지. 아이스크림과 샤베트, 시럽 얹은 딸기를 디저트로 나눠먹으며 다음 갈 곳을 계획했다.

익혀서 나오지 않은 해물 앞에 난감한 정현


익얼음쟁반 위에 나온 해물

<일요일에 보는 파리의 진풍경>

아무래도 박물관보다 상점구경을 좀 하고싶다는 지현이와 윤석오빠의 의견에 따라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요일이라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조금 구경하다가 우리 민박집에 가서 한국까지 들어다줄 짐을 갖고 윤석오빠네 민박집으로 가서 짐 줄이기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방에 와서 면세점 영수증을 확인하니 오빠가 산 물건값이 얼마쯤 더 청구되어 있었다.

면세다 할인이다 복잡해서 계산을 맡겨두었더니 이런 실수가 생겼다. 부랴부랴 루브르 뒷길로 다시 갔더니 벤룩스 앞이 시끌시끌하다.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 경비아저씨가 더 이상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는데, 일요일이라 문 연 곳이 별로 없자 소문 듣고 이리로들 온 관광객들이 안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안 들여보내 준다고 항의하고 있던 거다.

우리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걸, 영수증을 들어보이며 잘못된 게 있어서 그런다며 몸싸움 끝에, 치사하게도 아무 것도 더 사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통과했다.

오늘 아니면 파리를 다시 못 올 사람들은 들어가게 해달라고 거의 데모라도 할 분위기이고, 세상에, 물건 사겠다는 손님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상점도 있나. 업무시간 준수가 철저한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아까의 한국인 점원이 있어서 영수증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일요일의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민박집"외가집"에 놀러가서>

7호선 villejif leo lagrange역에있는 젊은 유학생 부부가 사는"외가집(전화:01-43909170)"이 윤석오빠가 하얀대문집에서 소개받은 민박집이었다. "외가집"에는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내일 니스로 간다는 여행객 부부의 아이 둘과 주인집 여자아이 한 명이다.

그런데 온화한 표정의 두 아기와 달리, 주인집 아기는 낯선 사람에게 좀 예민한 편이었다. 늘 어디선가 낯선 사람들이 오면 엄마의 관심을 뺏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거였다. 그래서 뭔가 요구할 때도 엄마가 금방 와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떼쓰는 버릇이 생겨버린 거라고 하는데, 젊은 아이엄마도 그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만 3살 짜리 아이가 학교에서 불어를 꽤 오래 배운 나보다 불어를 더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점이었다. 싫을 때는 non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달라는 음식도 거침없이 불어로 말한다. 3살 미만의 유아만 다니는 현지인들 다니는 유아원에 보냈더니 갑자기 불어를 하더란다. 참 아무래도 언어는 생활 속에서 익혀야하는 거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하는 부부는 참 좋아 보여서 부럽다고 했더니, 고생이라며 한번 해보라고 한다.

아이들이 순하기는 한데 둘째가 침을 많이 흘려서 늘 턱받이가 젖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분장파티 대비용으로 사두었던 턱받이 두 개가 생각나서, 아기에게 주고 가기로 했다. 아기엄마는 다섯 개도 넘는 턱받이가 있는데도 마를 새가 없었다면서 고마워하시니 준 사람도 기분이 좋다.

그 집에서 한국라면을 끓여서 김치와 함께 먹고 다른 분이 사오셨다는 불고기도 얻어먹고서 윤석 오빠가 봐두었다는 동네 재즈바를 찾아 나섰다.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도심과 달리 외곽지대라서 그런지 파리인데도 참 거리가 칙칙하다. 10시 반인데, 해는 밤 11시가 지나야 지므로 아직 많이 어둡지는 않지만 혼자라면 괜히 겁날만한 거리다.

윤석오빠가 어제 멋진 음악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는 재즈바는 알고 보니 음악학교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딱 레스토랑분위기인데 너무 조용해서 잘 살펴보니 음악학교 문패가 보였다.

계획을 수정해서 여행책자에 나온 재즈바를 찾아갈까 하다가 돌아오는 교통도 걱정되고 해서 다시 우리민박집근처로 가서 맥주나 한잔씩 하기로 했다.

다시 우리 전철역 근처로 왔는데 문을 연 바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을 살짝 열어두긴 했는데, 단골 손님이나 동네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라 우리가 낄만한 곳이 못되었다.

한 30분간 우리동네를 빙빙 도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참 난감한 순간이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해서 그냥 헤어지기로 하고 못 마신 맥주는 서울 가서 먹기로 했다. 이래저래 미안한 일만 이어진다.

24 끝이 안보이는 베르사이유궁전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며?><재즈바 찾아가는 길><NEW MORNING이 격조있는 재즈바라고?>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며?>

전철역에서 받는 가까운 파리근교지도인 2번 지도와, 넓은 파리근교가 나오는 3번 지도를 연구하면, 베르사이유궁전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민박집에 적혀있는 대로 민박집에서 가까운 국철역인 vanves malakoff역에 가서 유레일을 내밀고, 공짜 교외선 RER 표 두 장씩을 받아 타고 가기로 했다. 가다가 한번 갈아타고 VERSAILLES CHANTIER까지 한 30분 걸려서 갔는데 기차마다 직행이 있고, 아닌 것이 있어 베르사이유까지 여러번 물어보아야 했다.

베르사이유 역에서 나와 보니 한 방향을 향해 유난히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역 앞에 버스도 있지만 걷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도 걷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걷는데 거리가 꽤 된다.

드디어 궁전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원이 보이지도 않는 궁전 앞만 해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옛날 왕족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다지만 우리는 걸어가자니 죽을 맛이다.

듣던 대로 궁전 앞에는 관람표의 종류별로 A,B,C,D 깃발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보려는 가장 싼 표인,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는 자유관람 A깃발 앞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뙤약볕 아래 1시간 가량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또 줄이다.

드디어 내부관람에 나섰는데 싼 표라서 그런지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 그래도 워낙에 넓고 호화로워서다 보고 나오니 지친다. 궁전을 이렇게 꾸며대느라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구나 싶다. 이에 비하면 우리네 궁궐문화는 참 소박한 것이었다. 국력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서도 말이다.


궁전앞에 줄서있는 모습


높고 화려한 궁전 내부의 문

교외라서 그런지, 오늘이 특별히 그런지 퍼붓는 햇살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다. 내가 썬글라스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지현이의 썬글라스를 한 번 써봤지만 그래도 어질어질한 더위는 마찬가지이다.

겨우 찾은 건물 구석의 그늘에서 쭈그리고 앉아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면하고 이제 본격적인 정원 구경에 나섰다.

그늘을 벗어나 궁전 바로 앞의 정원 꽃밭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어질어질 만사가 귀찮다. 일사병 초기증상인가 보다.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하는데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단 2개 밖에 없다는 끔찍한 소문을 들어서 오렌지만으로 버티려 했더니 안 되나보다. 그 2개도 요즘 지은 것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커다란 궁전에서 사람들이 화장실 없이 지냈을까. 왕도 왕비도 일은 봐야 했을 텐데.

풍속사가들에 의하면 그 시절에는 똥오줌을 끔찍스럽게 여겨서 베르사이유같은 아름다운 공간에 화장실 같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은 급할 땐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으슥한 곳을 찾아 실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왕립 요강공장이 설치될 정도로 고급 요강문화도 생겨났다고 하니 그 허영에 찬 우스운 모습이 상상이 간다.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해도 저 멀리 끝이 안 보이는 운하를 보니 갔다가 돌아올 엄두가 안 난다.

노인 관광객들을 위해서 엠블란스까지 대기하고 있다. 어제 운하 끝까지 갔다 온 민박집의 한 아이는 정원 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그냥 한바퀴 도는 것도 힘이 들었다는데, 한참을 바라보며 망설이다가 저기를 갔다가는 우린 오늘 병날 것 같아서 멀리서 그냥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화려함의 극치 거울의방


호화로운 침대

돌아가는 길에 또 방향을 잘못 잡아서 헤매기는 했지만 노점에서 그 동안 꼭 필요하던 튼튼한 빗을 샀다. 그런데 그 좌판 위에 그 동안의 메모와 모든 정보가 있는 수첩을 놓고 온 것이 건널목 앞에서 생각나서 뛰어 돌아가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없어지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아름답게 꽃을 가꿔놓은 정원


끝이 안보이는 운하와 정원

<재즈바 찾아가는 길>

파리에 돌아오니 4시 반. 정원구경을 제대로 안하고 왔더니 아직 초저녁도 안됐다. 어제 개선문 근처에 있는 찾기 힘든 인포센터를 물어 물어 찾아가서, 파리에서 며칠 내에 하는 좋은 공연 좀 안내해 달랬더니, 가판대에 가서 3프랑 짜리 PARISCOPE를 사라고 했다.

처음에는 불친절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좀 나빴지만 각 분야별로 정말 파리의 일주일간 모든 문화 예술 정보가 실려있는 책을 보고 나니, 왜 파리에 온 첫날에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나 후회가 됐다.(단 프랑스어 약자로 되어있는 요일을 잘 보고 그날이 마지막이면 기다렸다가 사는걸 주의해야 한다.)

오후에는 지현이가 어제부터 열심히 PARISCOPE를 뒤져서 알아낸 NEW MORNING이라는 재즈바를 찾아가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하숙을 한다는 음악공부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은 다 한 번씩 공연하는 역사 깊은 곳이란다.

지하철을 탔는데 만원전철이라 앞사람이 자꾸 발을 밟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 옆에선 빨간 옷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줌마는 노란 머리라서 할머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앉아서 가지만 서야 할지 갈등된다. 지현이는 자꾸 콧물을 훌쩍댄다. 지하철에서 가야금 비슷한 현악기를 두들겨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흥겨운 민속 음악이다.

<NEW MORNING이 격조있는 재즈바라고?>

4호선 CHATEAU D'EAU 역에 있는 콘서트장을 힘들게 찾았다. 1달 전에 미리 예매를 안 하면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숨이 턱에 닿게 뛰어가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취소된 표 사는 줄이 길면 암표라도 사야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 앞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서성댄다. 혹시 줄? 이 줄이 맞는지 물어봐야 할텐데 줄이 불어로 뭐더라. 동네가 좀 지저분하고, 이상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아서 겁이 또 난다. 여자 애들한테 물어보니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란다.

문을 지키는 건장한 흑인 기도들을 통과해 들어가니 어째 음악이 좀 시끄럽다. 재즈가 아닌 하드롹이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소리는 딱 질색인 나는 좀 망설여졌는데, 주위에 롹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공연도 즐겨 찾아가는 지현이는 신나서 들어가잔다.

90프랑 씩 내고 표를 끊으니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표파는 아가씨가 숫자를 헛갈려하며 말하는 영어가 맞다면, 2시간 반 동안 있을 수 있는 표시란다. 아니라면 나갈 때 혹 실랑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첫 팀은 어린 소녀팬이 많은 그룹이었다. 플랭카드를 들고 설레는 눈으로 가수를 보는 프랑스 소녀들이 우리나라 소녀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가수는 검은 가죽바지에 웃통을 벗고, 문신한 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가며 무대와 객석을 누비며 열창했다. 앞줄의 소녀들은 가수의 가죽 바지위로 (요즘 유행인지는 모르지만) 속옷이 보일 때마다 플랭카드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좋아한다.

두 번째 팀이 나왔다. 옷차림이 단정한 걸 보니 롹발라드 팀이 아닐까. 기대도 잠시. 웬 걸. 맨 앞줄에 서서 방방 뛰고있던 지현이가 사람들의 난동을 피해 스피커 뒤의 내 옆에 피해 앉을 정도로 열성 팬들이 뛰며 서로 부딪치고 난리다. 가수는 각종 피리와 하모니카로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다가 갑자기 먼저 방방 뛰는데, 마치 마술피리를 불면 따라오는 동화 속의 쥐들처럼 그가 피리를 빨리 불면 열성 팬들이 난리가 난다. 무대 앞의 정리해두었던 의자까지 다 튀어나와서 위험한 지경인데 아랑곳 않는다.

평소에는 저 의자를 놓고 재즈 공연을 하겠지만 오늘은 좌석은 하나도 없이 다들 서서 구경한다. 우리는 무대 바로 앞 측면 계단에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리듬이 좀 느껴지는데, 듣기 좋은 음악은 아니지만 그래도 왔는데 그간 운동부족을 만회할 겸 그럼 고개도 좀 흔들어 보고 몸 좀 풀어볼까.

다음 팀이 나왔다. 스스로 무대에 꽃을 장식하는데 좀 부드러운 음악을 들려주려나.

가만있자, 주위를 둘러보니 현지의 열성 팬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처럼 책을 보고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관광객은 대개 두세 명이 일행인데, 그중 한 명은 시끄러운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고 얼굴 붉히며 좋아하는데 함께 온 나머지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와 준 게 역력하다.

열광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신기한 초등학생 아들, 손녀 때문에 따라와 내 옆에 앉아있는 외할머니, 무대에서 눈을 데지 않는 딸과 온 아버지 등 나처럼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개중에는 우리처럼 함께 들을 수 있는 재즈공연을 기대하고 나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팀은 별 특징이 없는데, 어린 미소년인 기타리스트가 한 곡 끝날 때마다 객석에 추파춥스 사탕을 하나씩 던져주는데 한 여자애는 그걸 받으려고 안달이다. 참 별난 팬 관리 방법도 다 있다.

나이든 사진기사 한 분은 아까부터 내 옆에서 무대사진 찍기에 바쁘더니 이젠 정면사진을 찍느라 열심이다. 반백의 머리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서 낡은 사진기를 열심히 눌러대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이 팀의 드러머는 드럼을 아는 사람같다. 드럼소리가 가슴에 팍팍 꽂힌다.

앞줄에 딸 따라 온 듯한 아주머니가 땀흘리는 보컬 미소년에게 자꾸 물휴지를 건내주려고 애쓰는데 그가 못 본다. 받아서 땀을 닦은 미소년은 그 땀 닦은 휴지를 돌려줄까요? 하는 재스츄어를 보인다. 쑥스러워서 웃는 아줌마. 그 아줌마가 딸만큼 젊었을 때는 당연히 받았을 텐데. 그 광경을 본 주변사람은 모두 미소짓는다.

무대 바로 앞 스피커 뒷자리는 글쓰며 음악감상하기에 딱 좋다. 등뒤의 복대는 무사히 있겠지. 한번 만져본다.

"옆의 아줌마도 서는데 우리도 이제 다시 서는 게 어때"

첫 팀이후 광란의 객석을 피해 계속 앉아있던 지현이가 이제 좀이 쑤시나보다.

그런데 이 곳에 동양인은 우리뿐인가 보다. 뮤지션들도 팬도 온통 백인이다. 이럴 수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백인 롹밴드들만 공연하는 날인가보다. 이곳의 청소년 문화도 인종별로 나뉘어져 있나 싶어 조금 씁쓸해진다.

그런데 한 팀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거인처럼 무서운 얼굴로 옆에서 무대와 객석을 번갈아 지켜보던 양복 입은 아저씨가 나와서 뭐라고 하면 관객들이 앞다투어 손을 번쩍 들고 그 숫자를 그와 그의 보조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세어서 발표한다. 인기투표인가. 프랑스에서 다양한 직업을 많이 보았지만(거리에 개똥 치우는 청소차 운전수, 기차 문 열릴 때마다. 사람들 잘 탔나 보는 사람 등) 저 아저씨의 직업은 알 수 없다.

다음 팀의 여자 보컬은 노래가 영 딸리는데 안되니까 가슴을 막 흔들어댄다. 그래도 매 팀의 드러머들의 실력이 정말 탁월하다. 드럼을 좋아하는 사람이 왔으면 정말 배우는 게 많았을 공연이었다.

귀도 너무 아프고 지하철시간도 걱정되고 해서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을 때 바를 나와야 했다.

유명한 재즈바에서 들은 롹 콘서트라. 기억에 남긴 할 것 같다.

26 엄청난 약탈의 역사 루브르

<루브르 쉽게 들어가기><프랑스인들이 도둑놈이란 욕이 절로 나오는 고대관>

<어디서부터 봐도 끝을 볼 수 없는 미술관>

<루브르 쉽게 들어가기>

오늘은 6월의 첫째 일요일로 루브르 박물관이 무료 입장인 날이다. 평소에도 줄이 긴 루브르를 오늘 같은 날 어떻게 들어가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제 와보고 좋아서 다시 오는 아이가 있어서 지하철과 연결된 통로를 찾아 쉽게 들어왔다.

지하철 통로가 아니라도 루브르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도 피라미드로 가지 말고 찻길에 바로 있는 건물 le carrousel de louvre라는 현수막이 걸린 지하 상점가 통로로 들어오면 바로 지하의 루브르 매표소와 통한다.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루브르의 상징인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라 길게 벌을 서고 있다.

예술품 상점가를 지나 피라미드 아래에 이르니 미술관지도가 각국 언어로 진열되어 있다. 역시나 중국어 일본어는 있는데 우리말은 없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데 이렇게 어딜 가나 우리말 안내서는 없는지. 씩씩한 복실이 언니가 다음부터는 한국어판도 준비해 놓으라고 한마디 해줬다. 자꾸 이렇게 해야 변한다는데 우리는 마음으로는 잘 흥분하면서도 좀 덜 씩씩하다.

루브르의 피라미드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


루브르 뒷길의 전철역 입구

<프랑스인들이 도둑놈이란 욕이 절로 나오는 고대관>

직접 루브르를 와서 보기 전에는, 루브르를 다녀와서 쓴 여행기들에 하나같이 프랑스 사람들이 도둑놈이라고 욕해놓은 걸보고

"다들 좋은 예술품 잘 보고 와서 왜들 그러지. 괜히 샘 나니까 그러는 거 아냐?"하며 갸우뚱 했었는데 직접 보고 있자니

"고고학자들이 아니라 도둑놈들 아냐!" 하며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정말 고고학이란 미명아래 수많은 정복지의 미술품들을 뜯어다 모아놓았다. 그림이나 조각품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아름다운 예술품이 있으면 갖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니까. 그런데 생 기둥은 왜 뽑아왔으며 건물 바닥은 왜 뜯어왔을까. 물론 그 속에는 예술적 모자이크나 조각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뜯겨나간 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그리스 로마관도 그렇지만 이집트관도 피라미드에서 꺼내온 물건들로 다닥다닥 전시를 해놓았다. 더욱이 이게 다도 아닐 것이다. 창고에는 더 많은 미술품들이 있겠지. 지현이는 전부터 피라미드를 보러 이집트에 꼭 가보고 싶어했는데 대영 박물관에 이어 루브르의 이집트관을 보더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단다. 가봐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일텐데 뭐하러 가냐면서.

우리도 이렇게 분한데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이들이 얼마나 미울까. 이렇게 한 달에 한번 무료개방 하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강력하게 반환을 요구하는 작품은 각국에 돌려주거나 나눠주고, 이곳은 좀 한적하게 꾸며도 루브르 그 명성에 금이 가지는 않을텐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쉴리관과 드농관 사이를 지키고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도 이탈리아에서 훔쳐왔음이 분명한데 그 과정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어도 여기저기가 떨어져 나갔다. 남은 부분만으로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제자리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싶다.

낑낑거리며 옮겨온 프랑스인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그대로 뒀더라면 다른 야만인 정복자들에게 가루로 변했을 거라고 변명하겠지..


사모토라케의 승리의 날개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는 역시 환상적이었다. 무릎에서 한 번 꺾어지고 다시 허리에서 한번 목에서 살짝 한 번 꺾어진 묘한 포즈는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현대 톱 모델의 그 어떤 포즈로도 절제된 관능미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봐도 끝을 볼 수 없는 미술관>

이제 그림들을 좀 봐야 하는데 전시관이 세 개이다 보니 헛갈려서 자꾸 니케상 주변만 맴돌 뿐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이러다가 꼭 보고 싶던 그림도 못 보겠다 싶어서 모나리자부터 유명한 그림들 중심으로 눈도장을 찍으며 다니기로 했다.

골목마다 사진까지 붙어 화살표가 되어있어 모나리자 찾기는 쉬울 줄 알았는데 워낙에 넓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돌고 돌아 드디어 모나리자상 앞에 섰다. 방탄유리 안에 들어있어도 그녀는 도판보다 훨씬 날씬하고 미소는 더 부드러웠다. 달력 그림이나 미술책의 모나리자를 보면서 이 미소를 왜들 그리 추앙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전 세계의 사람들을 그 미소 앞에 끌어 모으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책에서 볼 때는 미소도 그렇고 그녀의 성격자체가 상당히 딱딱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직접 니 전혀 그렇지 않고 부드럽고 푸근하면서도 묘한 베일에 둘러싸인 인상을 주는, 내가 남자라면 마음속으로 숭배하고픈 여인의 모습이었다.

금지되어 있음에도 끊임없이 터져 반사되는 사진기의 플레쉬만 아니었더라면 더 오래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아쉽다.

다빈치 모나리자

다빈치dame de la cour de milan


들라크르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직접 보니 대작이기도 하지만 자유의 여신 옆의 쌍권총 든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림에서 여신의 가슴이 꼭 그렇게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이 그림이 더 유명해 지지는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도 한참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는데 쇼파에 길게 누운 청순한 여인의 자태가 너무 고와서였다.

역시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10M가 넘는 대작이었는데 그렇게 큰 그림을 통일적으로 유지하는 안정된 구도도 놀라웠지만, 나폴레옹이 교황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나서, 조세핀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상황을 보는 서로 다른 지위의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성격묘사가 더 경이로웠다.

나폴레옹이 교황이 씌워주려는 왕관을 자기 손으로 받아 머리에 쓰자 허탈한 교황의 표정과, "저런 저런"하는 화난 추기경들의 얼굴, 이런 어른들의 일에는 관심 없는 소년 사제들, 조세핀을 감히 질투하지는 못하고 부러워만 하는 다른 여인들까지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되어있었다. 다비드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참 뛰어난 영화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림 속의 조세핀의 옷의 밍크털 한 올, 금박 하나도 섬세하게 묘사하여 황후라는 귀한 신분에 도달한 조세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옛날에 TV를 통해 보던 찰스 황태자비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다이아나비의 결혼식 장면 생각이 불현듯 나는 건 왜일까.


나폴레옹의 대관식

나퐁레옹 대관식의 조세핀 부분 확대


거대한 벽화와 색색가지 돌의 모자이크바닥이 있는 곳을 지난다. 참 많이 걷게되는데 좋고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힘든 줄 모르고 정신없이 다닌다.

리쉘리외관에는 나폴레옹의 방도 있다. 화려하기가 베르사이유 못지 않다. 사치스러운 황금장식의 거울도 보인다.


바닥 모자이크

화려한 화장대 앞의 지현과 정현


루벤스-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마리아 데 메디치


커다란 방의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루벤스의 연작 <마리아 데 메디치의 일생>도 대단하다.

그녀는 그녀의 섭정에 대항하는 그녀의 아들 루이 13세를 도와 절대왕정의 기틀을 닦은 재상 리셜리외를 축출하려다 실패하였는데,

그를 기리는 루브르의 리셜리외관에 자신의 생애를 그린 연작이 안착하게 된다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녀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방마다 아름다운 여체를 그린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런 불멸의 작품들의 모델이 되기 위해 기꺼이 화가나 조각가 앞에 옷을 벗었을 그리스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있다.

모델지망생들이 넘치는 화가의 아뜰리에의 풍경을 그린 그림

마지막으로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있는 방을 돌았다.

만년의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마치 자신의 그림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갈 미래를 예견한 듯, 우리를 응시하는 대가의 시선 앞에 이 불성실한 관람자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램브란트 자화상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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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낯선 땅 낯선 공기-영국도착첫날

<여행지에서의 만남> <드디어 영국 히드로공항> <영국땅에 내딛는 첫걸음>

<그리스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대영박물관> <주마간산으로 본 이집트미술>

<런던에서 지하철타기> <영국에 피클은 없다? > <워털루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여행지에서의 만남>

여행중의 만남은 짧은 만남이라도 중요한 많은 것을 잃거나 얻게 해주는 것 같다. 시간이든 정이든 힘이든. 미아(?)지영이가 만난 일행은 통신에서 여행 준비하다 의기투합했다는데, 지영이가 그렇게 못만나면 큰일이라고 걱정하던 게 이해될 만큼 활기차고 재미있는 마치 born to travel인 것 같은 남녀였다.

나와 지현이는 지영이에게 어떤 여행동료로 보였을까? 지현이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는 "썰렁한" 사람들이었단다. 나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을 만나고 보니 우리는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스타일의 여행객은 아닌 것 같다. 여행의 잔재미를 부딪쳐가며 찾는 그들에 비해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아니면 겁을 내고, 미술관 관람을 주로 하러 왔다고 말하는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라도 좀 더 밝고 열린 태도로 여행해야겠다. CHEER UP!


<드디어 영국 히드로 공항>

5월 5일 아침 현지시간 아침 7시 53분. 드디어 영국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5일만에 처음으로 좀 잤더니 몸이 한결 좋아지고 정신도 좀 든다. 여행준비를 너무 후반부에 내쳐서 한 게 후회된다. 마지막 일주일은 쉬면서 몸을 좀 만들어서 와야 하는 것을.

짐싸면서 두사람 중 한사람의 배낭이 공항에서 사라져 버리는 사고를 너무 많이 생각했다. 왜 종종 그런 사고가 있다지 않는가. 그래서 약품과 같은 중요한 것들은 양쪽에 한 개씩 넣었는데 무사히 모든 짐이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짐부치기 직전에 두터운 스카치 테이프로 미라 감듯 감아놓길 잘한 것 같다.곱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여러 번 묶어놓았던 침낭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여러 번 여며놓지 않았으면 이것저것 분실될 뻔했다.

우리 둘과 지영이네 세 명 해서 모두 다섯 명은 모두 만만치 않은 배낭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추영호라는 사진을 한다는 학생은 사진장비와 100만원 어치나 된다는 각종 필름들로 가득 채워 온 산타할아버지 같은 망태기를 번쩍 들고 앞장을 선다. 우리도 큰 숨을 한번 쉬고 당당히 배낭을 매려는데 휘청, 꽁꽁 눌러싼 배낭의 무게가 주체하기 어렵다. 우리자매보다 더 큰 짐을 짊어맨 자그한 체구의 한혜진이라는 언니는 담담히 지하철을 찾아 가는데, 나와 지현이는 앞으로 이걸 매고 어찌 다니나 앞이 깜깜하다. 뺄 건 다 뺐는데 왜이리 무거운지.

그때 구원군처럼 눈앞에 보이는 공항용 카트. 지하철역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 지 모르지만 일단 공항 벗어날 때까지는 싣고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팜플릿이 잔뜩 꽂혀있는 곳이 있어 버스노선도 등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추려 골랐다. 한글이 하나도 없는 팜플릿을 보니, 영국에 온 게 실감난다.

한참을 표지판 따라 걷고 무빙벨트도 타고 해서 지하철표 사는 입구까지 왔다. 요금표를 보니 우리나라 전철의 구역에 해당하는 ZONE이라는게 있나보다. 어떤 표를 사는 게 가장 이익일까. 고심 끝에 출근시간 끝나기를 기다려 버스와 경전철도 탈 수 있는 6존 ONE DAY TICKET을 끊었다.

그런데 지하철 타는 입구를 잘 몰라서 다시 공항방면으로 가는 무빙벨트에 잘못 올라서고 말았다. 한 5미터 정도 실려 가다가 일행이 모두 배낭을 매고 벨트위에서 만화에서처럼 거꾸로 뛰어오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드디어 민박집이 있는 lambeth north역을 향한 전철에 올랐다. 반대편 줄 사람과 무릎이 거의 닿을 정도로 마주보고 앉게 되는 전철은 얼마간 바깥 풍경도 보이고 참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철이었다. 회색의 나라 라더니 창 밖으로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날씨도 의외로 맑아 기분까지 따라서 좋아지는 듯 하다.

지하철 안이 밝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았다. 손잡이 대신 있는 가로봉과 세로봉이 유치원 교실처럼 파란색과 노란색의 원색이고 좌석의 팔걸이와 창문 손잡이는 빨간색이었다. 좌석 시트도 단색이 아니라 잔 체크무늬가 있었다. 노선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게 곳곳에 붙어 있었다. 큼지막하게.

우리나라 지하철 안은 왜 회색과 초록 일색인지.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하철 관계자들에게 세계 지하철 탐방을 한 번 시켜보면 좋겠다.


<영국 땅에 내딛는 첫걸음>

드디어 빨간 이층버스가 오가는 영국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시원한 바람과 고상한 건물들. 예쁜 성당이 우리를 맞아준다.

성당 옆 커다란 광고전광판에 누드에 가까운 보그 사이트 광고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어 예술의 자유를 우리보다 넓게 인정하고 있는 유럽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우리가 예약을 해 두었던 워털루 하우스라는 민박집으로 지영이네 일행도 함께 가기로 했다.

china walk라는 거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생전처음 맡아보는 고양이오줌 냄새로 가득해서 민박집 안 상황까지 염려스러웠는데 다행히 두 명의 유학생 남자분들이 깔끔하게 관리하고 계셨다.

간단히 런던의 볼만한 곳과 길에 대한 안내를 듣고 짐을 푼 뒤 첫 목적지인 대영박물관을 향해 길을 나섰다.


누드광고아래서 수줍은 일행 지영


<그리스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대영박물관>

tottenham court road 전철역에 내려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1시쯤 대영박물관에 들어섰다. 상설전시관 입장은 무료이지만 특별은 유료였다.

우리가 간 날은 Burma미술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입구의 포스터가 상당히 볼만해 보였고 학생할인도 된다고 해서 2파운드씩 내고 일단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썰렁해도 썰렁해도 이렇게 썰렁 할 수 있을까. 명색이 대영박물관에서하는 특별전이면 규모 면에서나 전시품의 질 면에서나 이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손바닥만한 전시관에 겨우 스물 몇 개의 전시품뿐이고, 서구인들의 눈에는 불상이나 항아리의 문양이 신기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미술품에서 익히 보던 것들이라 새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기네 나라 사람을 닮아 코가 큰 불상과 섬세한 문양의 그릇들은 볼만했고, 온통 황금빛 세공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불단을 보며 어느 나라나 종교가 참뜻을 잃고 변질되면 사치의 극으로 치닫는 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멋진 BURMA특별전 포스터
-속지 말자 화장발!

전시 방법에 있어서 좋았던 점은, 미술품 사이사이 바리를 들고 일렬로 걸어가는 붉은 승복의 승려들 등 그 지방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사진을 걸어두어, 그들의 정서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허탈해하며 특별전을 보고 나와 상설 전시물들이나 잘 보자며 미술관 안내 지도를 찾아나섰다. 입구 왼쪽의 서점에는 한글 안내책자도 보였지만 비싸고 별로 볼게 없어서 카운터의 아줌마에게 무료 지도 FREE MAP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인상을 쓴다.


화려한 불단-이런 걸 만드는 동안
서민들의 허리는 휘었을 터


처음 만나는 불친절에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 다니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아줌마 앞의 1파운드짜리 지도를 샀다.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오기 전에 이주헌의<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찍어놓았던 대로 고대 그리스 미술품들이 있는 1번 방부터 차례차례 보기 시작했다.

대영박물관 유료지도
-무료지도와 별차이없데~요

고대 그리스의 흙인형 중에는 아프리카인형과 비슷한 풍만한 형태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조금만 넘어가도 도자기의 그림 속 선에서도 그리스인들의 자유분방함이 철철 넘쳤다.

손톱 만한 흙이나 브론즈의 동물인형, 신화 속 인물이 그려진 단추들을 보면 웬지 자꾸만 즐거워지고 미소짓게 된다.

어디선가 그리스의 공기가 흘러들어오는 듯 하다. 그들의 향연에 드디어 우리가 정식으로 초대되려나보다.


암포라엽서

고요한 고대미술실에 앉아 옷주름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조각상을 사이에 두고 지현이와 마

주보고 앉아, 유리천창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을 따라 시선을 풀어 놓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에 빠져들 수 있었다.

입안에선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에니메이션 <천공의성 라퓨타>의 주제음악이 맴돌았다.

그리스인들의 인체조각 중 옷의 묘사를 왜 그리 칭찬하나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정말 입이 안 다물어지는 실력이었다. 어떻게 돌을 가지고 투명해 보이는 옷을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름 모를 장인의 신기에 가까운 손길이 느껴진다.정적을 깨는 지현이의 질문

"그런데 왜 다들 목이 잘렸어? 다 있으면 훨씬 아름다울 텐데 사진 찍기도 그렇고. 신경질 나"


날아갈 듯한 여신상

건 신경질 낼 일이 아니라 슬퍼하거나 분노할 일이다

전쟁통에 침략자들에 의해서 목이 잘려나가고, 또 어떤 정복자들은 예술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조각품뿐만 아니라 생 건물기둥까지 통째로 뽑아다가 배에 실어 자기네 나라로 가져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상하고 망가진 채 그 후손들의 놀라운 복원기술로 다시 땜질 되어 서 있는 게 바로 이런 작품들이다.

이건 또 뭔가.

그게바로 그 유명한 판테온의 기둥이란다.

굵기가 경복궁의 가장 두꺼운 대들보의 10배가 넘으니 그 웅장했을 판테온의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판테온기둥하나-기둥아래
메모하는 정현이 보이시나요



판테온 페디먼트에 있던 부서진 포세이돈-부분만 남아있어도 느껴지는 이 놀라운 덩어리감

이런 거대한 석상들을 만들던 조각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지위가 무척 낮았다는데, 그래도 어슴프레한 달밤이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신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 술취한 제우스로 아폴론으로 행복했을 꺼다.

그리스 여신상의 포즈는 현대의 모델들의 포즈에 절대 뒤지지 않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특히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태는 순결하면서도 섹시했다.

고개 돌린 아프로디테-그녀 앞에서 누가 멈출 수 있었겠는가

특이한 포즈로는 <발가락의 가시를 빼는 소년> 만한 것이 없는데 그런 순간적인 정황을 어떻게 잡아낼 생각을 했는지 예술가의 관찰력이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달의 요정 사이렌을 주인으로 둔 지친 말의 표정도 너무 생생해서 측은할 정도였다.

발가락의 가시를 빼는 소년


<사자의 울음소리로 가득 찬 앗시리아 미술>

살아있는 듯한 조각품들에 취해 그리스 로마실을 돌아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나보다. 폐관시간이 2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는 미술관 전체의 반의 반도 못 돌아보았으니 욕심 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대표적인 군국주의 미술인 앗시리아 미술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했던 그리스 미술과는 달리 창과 활이 빠지지 않는 늠름하거나 잔인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잔인한 사자사냥

특히 사자사냥연작이 있는 방은 웬 사지를 그리도 많이 잡았는지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혀 죽어 가는 2500년도 더 지난 사건 속의 사자의 고통에 내내 이마가 찌푸려질 정도로 묘사가 뛰어났다. 지현이는 옆방에도 사자사냥이 이어지자 "또 사자잡이야. 잘났어 정말"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외면하며 옆방으로 가버렸다.

역시 힘을 숭배하는 이들은 단순한 것, 직선을 아름답게 느끼는 미의식을 지녔던 모양이다.

부조 속의 나무는 모두 다 큰 기둥에서 같은 굵기의 중간 가지가 10개정도 뭉텅이로 솟아 나와, 역시 같은 모양과 크기의 나뭇잎 몇 개로 뒤덮이게 똑같이 그렸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의 수염은 꼬불꼬불하게 나다가 다시 쭉 뻗고 다시 꼬불꼬불 하다가 쭉 뻗는 희한한 묘사를 했다.

<주마간산으로 본 이집트미술>

지현이는 예전부터 이집트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앗시리아 방들까지 돌아보고 나니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그리스미술을 너무 오래 봤어" 2층으로 오르는 지현이의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난 이대로 나가도 후회 없어. 너무 좋았잖아"

정말 힘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거라는 예상과 달리 차분하게 푹 빠져서 본 그리스 로마실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나는 차라리 이 기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냥 나가고도 싶었다.

사람들이 왜이리 적나 했더니 다들 2층에 올라와 있었던 모양이다. 대영박물관이 자랑하는 컬렉션인 만큼 이집트실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영화 미이라에서 보았던 풍뎅이 장식도 있고(풍뎅이를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수컷만 있다고 생각하여 강한 남성의 상징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진짜 미이라도 있었다.

안팎을 온통 섬세한 그림들로 채워 놓은 관도 있고 소머리장식의 하프도 있었다.그러나 밝음의 미술이었던 그리스미술과 달리 부장품에서 느껴지는 웬지 모를 서늘한 기운에 겁 많은 나는 얼른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공포나 괴기영화를 좋아하는 지현이는 땅속에 웅크린채 죽은 미라를 보면서

"어허 리얼하다"하며 좋아하고, 이집트 실을 보는 내내 오싹오싹했던 나는 자꾸만 부장품 가까이 나를 데려가려는 지현이를 당기며

"싫어, 기분이 참 이상해 싫다니까"를 연발하며 도망 다녔다.

좋아하던 이집트 미술품 앞에선 지현-그러나 지쳐있다


<불친절의 도를 넘은 감시원들>

한참 이집트관을 보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전시실의 불을 끄며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우리를 쫓아낸다. 시계를 보니 아직 4시 50분. 폐관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자기는 경찰복 같은 제복을 벗고 퇴근하려고 평복으로 갈아입고서 관람객들을 개 쫒듯이 몰아낸다. 대영박물관 지키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자기네 나라를 찾아온 손님들한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쉽게 마음상하는 나는 심장이 다 벌렁벌렁 뛴다. 10분일 찍 나가래서가 아니라 그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놀란 것이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는 우황청심환을 먹을까 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에 맘고생 하며 다닌다면 앞으로 여행은 어떻게 다닐까 싶어 스스로 진정하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쫓겨 나와 미술관 앞 커다란 기둥 앞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혔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온 젊은 엄마는 뭔가 좋은 일이 있는지 아기를 어르며 싱글벙글 이다. 잠시 후 엄마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아기가 왜인지 까르르 자지러진다.

곧이어 아빠인 듯한 사람이 등장하고 아기를 안아 올린다. 상황을 보니 아빠가 퇴근하는 걸 기다린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칼같이 5시. 우리를 4시 50분에 쫓아내야 자기들이 5시에 퇴근하나보다.

상황을 보니 아빠가 퇴근하는 걸 기다린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칼같이 5시. 우리를 4시 50분에 쫓아내야 자기들이 5시에 퇴근하나보다. 한국에선 어떤 부인도 5시에 회사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밤 늦은 하교길에 전철역에서 이제나 저제나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엄마는 여러 번 보았다.

선진국의 올바른 노동문화라 칭찬해야할지. 아까 우리가 받은 대접이 있는 지라 곱게 봐야 할 것에도 고운시선이 안 간다.


대영박물관 앞의 정현

대영박물관 기둥 옆에서 혼자 온 이순한이라는 한국여학생을 만났다. 혼자 오면 다 좋은데 사진 찍고 싶은 순간을 많이 놓치는 게 안타깝다고 해서 함께 몇 장 찍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까이에 런던대학이 있다고 보러간다고 해서, 이제 저녁 먹는 것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우리도 함께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길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 내가 고맙다며 자꾸 고개를 숙이자, 캐나다에서 유학한 순한이가, 외국애들은 그런 모습을 참 이상하게 본다면서 그냥 고맙다고 가볍게 말만해도 된다고 가르쳐 준다. 하지만 오랜 습관을 어떻게 순식간에 고치랴. 특히 나이 많은 할머니가 길을 가르쳐 주시면 나도 모르게 허리까지 굽히게 된다. 지현이가 계속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은 탓도 있다. 고개 숙인 인사는 친절을 베푼 사람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된다. 우습게 보는 외국 사람이 있더라도 계속 내 방식대로 인사하며 다니고 싶다.

런던대학은 우리네 캠퍼스 같은 넓은 곳이 아니었다. 달랑 건물 몇개와 잔디밭 뿐 이었다. 의외로 동양인 유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런던대학 오른쪽에 오래된 성당 같은 건물이 있어 뭔가 하고 들어가 보려고 살폈더니, 옛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였다. 우리 같으면 다 밀어버리고 용적률 높게 새 건물을 지었을 텐데. 법으로 막고 있는 건지 스스로들 그러는 건지 런던시내에는 빌딩보다 옛 건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런던에서 지하철타기>

런던 지하철1구간은 길기도 하고 엄청 짧기도 하다. 그래서 지도상으로는 멀리 가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지나가는 역 이름을 잘 보고 있어 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전철역을 물을 때는 지하철 지도를 펴놓고 물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보다 지하철 역과 역사이가 가까운 편이라서 엉뚱한 노선의 다른 역을 가르쳐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아주 바쁠 때는 꼭 두 번 이상 물어보라. 우리도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는 한참 있다가 거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며 미안해하는 것처럼 그들도 실수는 한다. 그것도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자주.

지하철 표는 넙적하게 생겼는데 하루권 3일권 7일권등 종류가 다양해서 명칭을 잘 확인해야한다. 트래블카드는 9시 30분 이후에 이용할 수 있는데 버스도 탈 수 있다. 그리고 1부터 6Zone구분이 있는데 대개 2 Zone이면 된다.


전철표 2존 1day 트래블카드 (왼쪽) 6존 1day 트래블카드(오른쪽)
비교해보니 zone표시가 어디있는지 아시겠죠?

지하철역에서 표를 살 때는 발음에 웬만큼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원하는 표의 이름과 Zone을 적어서 내미는 게 좋다. 한국식 발음은 못 알아 듣고 예를 들면 "워털루" 라는 발음은 "워~럴루~~" 이런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수업시간에 그렇게 발음했다가는 왕따 당하는 혀 꼬부라진 발음을 해줘야한다. 괜히 바쁜 시간에 안 되는 발음으로 우기고 있으면 직원이 답답해한다. 사려는 표 가격과 거스름돈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승강장으로는 특정한 노선의 전철만 들어오는데 런던은 여러 가지 선의 전철이 한 승강장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처럼 전철노선에 고유색이 있기는 한데, 이름은 우리처럼 1호선 2호선이 아니라 노란선은 circle line 붉은선은 central line 이런 식으로 노선 성격에 따라 붙여놓았다.

또 하나 런던 지하철노선도는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는데 전철역에서 주는 손바닥 보다 작게 접혀진 지도가 뒷면에 지명보고 쉽게 위치 찾을 수 있는 색인과 XY좌표식 표시가 되어있어 가장 편리하다.

<영국에 피클은 없다? >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5시간을 계속 걸은 셈이니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온다. 그렇다고 물가가 엄청나다는 영국에서 아무식당이나 들어가자니 맛도 믿을 수 없고 가격도 걱정된다.

그래서 여행 100배 즐기기 책에 소개된 "chelsea kitchen"을 찾아 나섰다. 지하철 노란 선인 circle 라인과 녹색라인이 모두 지나가는 sloane square역에 내려서 kings riad 98번지를 찾았다. 우선 kings road를 물어서 가라는 방향으로 왼쪽길로 쭉 따라 가는데 칙칙한 런던에 이런 거리도 있나 싶게 화려한 옷가게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반대편 길도 살피면서 5분쯤 걸었는데, 옷가게가 끝날 때쯤엔 어느새 kings road는 끝나버리고 다른 이름의 번지수가 시작되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식당인가 보다 하고 반쯤 포기하고, 다시 현지인을 따라 무단횡단을 하여 반대편 길로 전철역쪽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오다보니 어느 식당 노천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셔서 우리도 여기서 먹을 수 있나하고 간판을 앗 허름하고 조명도 없는 간판에"chelsea kitchen"이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큰길가에 있기는 하지만 멀리서는 잘 안보이게 생겼다. 내부는 소박하고 여행책자에 "싸고 맛있게"를 표방한다고 적혀있듯 조용한 고급레스토랑의 분위기는 아니고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피크타임에는 지하의 좌석으로 내려가거나 등받이 없는 쇼파에 앉아야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바로 그랬다. 에고 허리야)

5.5파운드짜리 세트메뉴와 3.6파운드짜리 굴라쉬를 시켜놓고 기다리며 글쓰고 있는데, 음식 맛은 방금 나온 야채가 성글성글 들어간 붉은빛 도는 스프를 맛보고 지현이가

"음,익숙한 맛이야."하는 걸로 봐서 괜찮은 모양이다.

드디어 본 메뉴가 나왔다. 세트메뉴는 써있기는 soup+stake+mushroompie or jam pudding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stake 가 아니라 굴라쉬와 비슷한 맛의 소스로 양념된 듬성듬성 썰린 고기덩어리가 나온다.

그 말로만 듣던 굴라쉬라는 것은(여기는 헝가리가 아니니 정통 굴라쉬 인지는 확인할 바 없지만) 쌀밥 위에 정말 큼직하고 두툼한 고기 덩어리들과 양파 등을 매콤새콤하게 끓여서 덮은 덮밥형식의 음식인데 옆에 감자튀김과 야채가 함께 나왔다. 양도 많고(물론 식성 약간 좋은 여성기준) 맛은 한국인 입맛에 맞아 며칠동안 타이항공의 느끼한 기내식에 질린 우리들의 뱃속을 흐뭇하게 했다.

지현이가 먹는 동안 음식에는 손도 안 대고 글을 쓰고 있다가 굴라쉬도 한참 관찰한 다음에 비로소 포크를 들자 문가인 옆좌석에 앉아있던 지배인쯤 되어보이는 아저씨는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한입 먹어본 내 표정은 '음 괜찮군' 하는 표정이었으니 안심하고 다시 신문을 볼 수 있겠지. 아니었다. 내가 접시에 담긴 것을 골고루 하나씩 먹어보고 지현이 것까지 먹어볼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 거다. 아 어떻게 하겠는가. 맘약한 나는 약간의 오버를 섞어서 맛있다는 것을 온 얼굴로 표현하며 식사를 했다.

정말 굴라쉬도 맛있고 세트메뉴에 나오는 mushroom pie도 맛있다. 지현이도 처음에 자기가 기대한 스테이크가 나오지 않아 실망했지만 살코기가 엄마의 장조림고기 비슷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유럽 쌀은 누구 말대로 불면 날아갈 것 같아 진짜 불어봤는데 내 입김이 약했는지 날아가진 않고, 포크로 잘못 치면 튕겨 나가기는 했다. 물은 듣던 대로 주문해야 했는데 아뿔싸 주의를 요하던 gas물이 나왔다. 못 먹고 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설탕 뺀 사이다의 씁쓰름한 맛이란.....

그런데 식사 중반쯤 되자 타이항공 음식보다는 개운했지만 김치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뭔가 개운한 것이 필요했다. 피클이 혹시 없을까 하여 웨이터를 불러

"pickle please"를 열심히 외쳤는데 남, 여 웨이터 모두 그게 무슨 소리여?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오이가 뭐더라??? 당황하니 중학교 1학년단어도 생각이 안난다. 급히 한영사전을 뒤지니 cucumber가 나오는데 이번엔 마음이 급하니 발음이 안나온다"큐-쿰 아니 컴-........"도대체 왜 이러는 지. 웨이터 하나가 알아들은 표정을 짓고 주방에 갔는데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피클은 못 얻어먹었다.

나중에 슈퍼에서 보니 다양한 채소로 피클을 담아두었는데 피클 병에 적힌 것을 보니 오이피클은 pickled cucumber,양파피클은 pickled unions 하는 식으로 재료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콩글리쉬로

"절인 거 절인 거"하고 있던 샘이니 이거 창피해서 원.

<워털루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safe way라는 식당 앞의 슈퍼에서 물가조사를 하고 오늘과 같이 배고픈 상태로 돌아다니지 않게 쵸컬릿(75펜스=1320원)을 샀다. 지현이가 먹어보고 싶었다는 쵸코파이의 하얀 부분만 모아놓은 것 같은 머쉬멜로우 덩어리도 샀는데, 나는 자꾸 고스트버스터에 나오는 머쉬멜로우유령이 떠올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하철역에서는 흑인소녀들이 검표원 아저씨와 요금시비가 붙었는데 양쪽 다 만만치 않다. 아마도 그 복잡한 zone이 문제인 것 같은데, 우리같이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덤터기 벌금을 낼 것 같다.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동네 슈퍼에서 2차 물가조사를 했다. 아까 시내슈퍼는 우리나라 대형슈퍼와 별 다를게 없어서 재미없었는데 아랍인이 경영하는 동네슈퍼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량식품인 통에 담긴 젤리까지 있어서 구경하기는 더 좋았다. 가격은 물론 동네슈퍼가 더 쌌다. 우유(59p=1000원)와 오렌지주스 큰 것(99p=1700원), 쵸코칩과자(99p)를 사고 절대 안 된다는 지현이를 졸라 5펜스(85원)짜리 기다란 공룡 젤리를 하나 입에 물었다. 한입 준다는 데도 지현이는 끄떡을 안 한다. 젤리표면에 발라진 것이 설탕물만이 아닌 듯 자꾸 짜고 신맛이 난다. 여기 애들은 이런 맛을 좋아하나.

버튼을 눌러야 파란불로 바뀌는 건널목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아까는 낮이라 다니는 사람이 많아 몰랐는데 밤이라서 우리가 누르지 않으면 파란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 차들은 서행하는 편이고 사람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도심이 아니면 무단횡단이 보편화 된 것 같다.

5 영국 둘째날-꽉 채운 런던에서의 하루

<고요한 런던의 새벽공기><아직도 헤매는 전철표사기>

<또 특별전에 발목잡힌 네셔널 겔러리><트라팔가광장과 제임스 파크><런던의 피자헛>

<벼룩시장 찾아 허위허위><달리는 버스 타기><피자헛과 오페라의 유령>


<고요한 런던의 새벽공기>

어제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1시 반에야 잠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더 신기한 건 내가 눈뜨고 누워있는데 옆에서 지영이가 "아 배아퍼"하며 잠을 깨니, 저쪽에서 혜진언니가 "아직도?"하며 기척을 하고, 평소엔 늦게 자면 12시가 되어야 겨우 일어나는 지현이까지 "응가 안 해서 그런 거 아냐?"하며 우리를 웃기며 동시에 깨어나는 거였다.

여행지라서 긴장을 해서 그런 건지 선잠들을 자서 그랬는지. 어제 저녁에 모두 색깔만 다르고 똑같이 생긴 등산 모자를 가지고 온 것에 놀란 데 이어 두 번째로 놀랐다.

우린 혹 전생에 네 마리의 돌고래 자매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전쟁기념관 앞의 큰 나무


전쟁박물관앞 지현


갑자기 노크소리가 나서 문을 빼꼼이 열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영호가 부시시한 얼굴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산책들 안갈래요"하는게 아닌가.

다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아침공기를 마시러 나섰다. 민박집 근처에 미술관 같은 건물이 보여 들어가 보았더니 기다란 대포가 정면에 쭉 뻗은 전쟁 박물관(imperial war museum)이었는데 그 부속공원 꽃밭이 잘 가꿔져 있었다.

공원 안에 큰 나무가 있어 그 아래서 체조를 하며 기를 느껴보려 했는데 별 느낌이 없어 실망했다. 영국은 나무도 영어만 알아듣나.

박물관 옆에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들이 쭉 심어져 있었다. 아직 어린데도 굵직한 둥치가 묘한 매력을 주는 나무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다리하나가 없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셨다. 교통사고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참 안쓰러웠다. 우리가 몇 번 쓰다듬어 줬더니 신발을 핥고 난리다. 샌들을 신었던 나는 양말이 흠뻑 젖고 말았다.


바오밥나무밑의 정현

공원을 나서서는 뒷길로 조용한 런던주택가의 아침 정경을 즐겼다. 연립주택들이 밀집한 곳이었는데 길가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다 티코보다도 작은 차들이었다. 종류도 다양하고. 우리는 웬만하면 다들 중형차로 바꾸고 차 크기로 자존심 세우는 광고도 많은데, 각자 분수에 맞는 차를 사서, 애지중지 오래 타는 그들의 검약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작은 녹색 차 옆의 정현


만화가 그려진 차앞의 지현과 지영


<아직도 헤매는 전철표사기>

민박집에서 닭국물에 맛있게 아침을 먹고 네셔널 겔러리가 있는 피카델리 역으로 향했다.

아침에 전철역에서 weekend travel ticket을 사려다가 불친절한 흑인 표 파는 아저씨와 말이 잘 안통해서 그냥 하루권을 사고 말았다. 종이에 적어오지 않은 게 실수였다. 돈을 맡은 지현이는 거스름돈 얼마 받을 지를 늘 생각하고 내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큰돈부터 불쑥 내밀고, 돌아서서 잔돈을 계산하는 행태를 계속 보여서 나의 잔소리를 듣더니, 드디어 오늘 아침에는 원하는 표도 못산 데다가, 한참을 계산해보더니 잘못 받았다고 가서 한 번 말해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보는 앞에서 잘못 받은 것 따지기도 어려운데 뒤돌아서서 한참 있다가 온 사람을 누가 믿겠는가.

속상해서 불끈 쥔 주먹을 펴며 포기하고 그냥 전철을 타려는데

"앗, 여기있다!"

못 받은 줄 알았던 큰 단위 동전은 처음부터 지현이 주먹 속에 있었던거다. 아, 허탈해. 괜히 아침부터 신경을 썼더니 머리가 다 아프다.


<또 특별전에 발목잡힌 내셔널 겔러리>

피카딜리역에 9시 50분에 도착했는데도 10시 개관인 네셔널 겔러리앞에는 줄이 길다.

일단은 오늘 오후에 뮤지컬<the phantom of the opera>를 보러 올 her majesty's 극장을 찾아 한국 여행사에서 해준 예매가 잘 되어 있나를 확인하고 다시 네셔널 겔러리로 향했다.

건물 밖에 줄서있던 사람들은 벌써 들어가고 이젠 건물 안에만 줄이 이어져 있다. 줄서서 10분쯤 있다보니, 2층으로 그냥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1뭔가 싶어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우리가 줄 선 것은 또 유료인 특별전이었다. 예수특별전(seeing salvatino - the image of christ)이라고 그림 속의 예수의 모습들만 모아놓은 전시라서 그렇게 나이 드신 외국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와서 줄을 섰나보다.

종교가 없는 우리는 별 관심 없는 분야이긴 하지만 유럽미술에서 종교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기에, 또 줄 서있던 시간도 아깝고 하여 한 번 기대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30분이나 줄서서 들어간 지하의 특별전은 너무 사람이 많아서 떠밀려 다니기에 바빴고, 포스터의 달리 그림과, 고문 후의 예수를 그린 벨라스케스의 그림 말고는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도 없었다.

괜히 지쳐서 투덜대며 상설 전시 그림들을 보러 올라갔다.


예수특별전 포스터-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1260년부터 1510년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이 있는 세인트베리 관에는 주로 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같은 성서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의 그림들로 가득했다. 지현이는 방 하나를 보더니 종교화는 지겹다고 현대작품들이 있는 동관 east wing부터 보겠다고 했고, 나는 시대 순으로 세인트버리관 saintbury wing부터 보고 1시에 만나기로 했다.

500년도 더 지난 중세의 그림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당시를 표현하고 있는 세인트버리관에서 우첼로의 만화적 그림과 라파엘로 그림의 밝은 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옛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과 영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스 홀바인 elder <jorg fischer부인의 초상>1512
(뭔헨 쿤스뮤지엄에서 잠시빌림

마치 한사람 한사람과 찻잔을 들고 가까이 마주보고 앉았다가 아쉽게 일어나 듯 수백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과 눈에서 눈으로 교감하는 기분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여태까지 초상화는 몇몇 작품 빼고는 "돈 많은 사람들을 주로 그린 지루한 그림" 쯤으로 여겼는데, 이름 없는 작가의 초상화부터 유명한 초상화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을 그렇게 짧은 순간에 만나보는 경험은 참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모로니의 초상화.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수도승은 무슨 내용이기에 저런 표정인지.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채로운 영혼을 가진 듯 보이는 여인들의 초상.

모자에 앉은 파리까지 표현한 초상화는 세밀하게 그렸다는 것을 자랑하려 함일까? 모델을 두고두고 모독하려함일까?

초상화들을 보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미술관 마루를 둥실 떠다니듯 누비고 다녔다.


얀 반 아이크<붉은 터번을 쓴 남자>1433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그림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마리아의 얼굴이 아닌 좀더 어리거나 나이 들거나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한 다양한 마리아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하긴 화가들은 그 시대의 어머니 상을 마리아에 투영하고자 했을 테니까 그렇게 다양한 것도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 걸려있는 마리아 상이 르네상스식 마리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현대의 교회미술가들을 게으르다고 해야할까 창조력이 부족하다고 해야할까.


마사초,<마돈나와 예수>1426

세인트베리관을 다 돌아보고, 다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를 보니 왜 수많은 그 시대 작가들 중에서도 그들을 대가중의 대가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느낌이 들지만 빛을 받는 부분의 표현을 강조하면서도, 그 경계가 어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느껴지며,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의 얼굴에는 고뇌와 고난을 겪어낸 자들의 미소가 들어있다.

이에 비해 밝음과 평화로움이 돋보이는 라파엘로의 인물들은 그 전까지의 그림들에서 마치 하나의 장막을 걷어놓은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다빈치 <암굴의 성모>1508

본격적으로 르네상스미슬이 모여있는 서관에는 유명한 브론지노의 <비너스와 큐피트의 알레고리>가 있었다.

이주헌의 책에서 읽은 그림의 숨은 뜻을 확인해 보려고 그림을 꼼꼼히 살피려는데 그림이 생각보다 너무 크고 (가로116cm 세로140cm)생생해서 자꾸 낯이 뜨거워진다.

황금사과를 손에든 것은 비너스가 맞고 그녀를 몸을 배배 꼰 자세로 안고 있는 것은 날개와 화살로 보아 큐피트가 맞는 것 같은데, 장미꽃을 던지는 아기는 또 무어고 뒷 배경인 푸른 천을 벗겨 내려는 심술궂은 할아범은 또 무언가. 이 와중에 무표정도 표정인양 인어 같은 몸통과 뱀의 꼬리를 하고 그림 속으로 고개를 들이민 소녀는 또 뭔지.

각각 어리석은 쾌락과 시간과 속임의 상징이라는데, 그래서 이 그림의 주제는 어리석은 쾌락의 추구를 훈계하는 것이라는데.

내 눈에는 그저 그저 예쁜 색과 살아있는 듯한 표현만 눈에 들어온다.


브론지노 <비너스와 큐피트의 알레고리>1540-50

에라스무스의 초상 등 한스 홀바인의 그림은 참 묘사가 뛰어나다. 소매의 밍크털 하나 하나까지 자세히 그려내다니

단체로 왔는지 의자에 엎드려 자기가 맘에 드는 그림 앞에서 연필로 그림 모사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참 진지해 보였다.


한스 홀바인younger<대사들>153

사실 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도 중학교 때 방학마다 숙제로 미술관 관람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런데 단 하나 아쉬운 것은, 그때는 왜 그냥 팜플릿을 내라고만 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렇게 하나만 골라서 그려 오거나 감상문을 써오라고 해도 좋았을 것을.

하긴 요즘도 인사동에 가면 주말에는 화랑 입구마다 팜플릿을 달라는 아이들로 붐빈다. 그렇게 라도 그림에 익숙해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지현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반도 다 못 봤다.

급히 보아도 터너의 그림 속 해는 정말로 뜨고 지는 듯 보였다.


터너 <전함테르메르호>1839


앵그르 <마담무아테시에>1856


렘브란트 <목욕하는 여인>1654

북관에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너무 급히 보아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현대 작품들이 있는 동관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만나기로 한 로비에 잠깐 앉아있으니 지현이가 나타난다. 자기는 동관만 자세히 보고 나머지는 보고 싶은 그림만 골라서 봤단다.

렘브란트는 정말 좋았다면서 시간이 남아서 아트샵도 봤는데 별 게 없다고 한다. 시간을 좀 더 달라니까 동관에는 별 볼게 없단다. 고흐의 해바라기도 가짜고. 볼 게 없다는 말 믿어도 될까.

한국에 돌아와서 지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난 거기서 좋은 거 많이 봤는데 넌 못 봤지"


<트라팔가광장과 제임스 파크>

네셔널 겔러리 바로 앞이 트라팔가광장이다. 넬슨제독의 트라팔가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50m의 기념비 아래 많은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 쉬고 있었다. 분수대 옆의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비둘기들과 거리의 초상화가들이 넘치고, 아이스크림 장수는 기본이다.

넓고 넓어라. 서울에도 이렇게 넓은 광장이 도심에 있었으면 숨통이 좀 트이련만. 땅만 생기면 빌딩 아니면 아파트가 들어서니 이런 공공을 위한 공간이 생길 리가 있나. 있던 여의도 광장도 애매해진 판인데. 독지가들은 대학에다 몇억씩 장학금만 기부할게 아니라 공원이나 광장하나 만들 생각은 왜 못할까.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두고두고 혜택을 받을텐데.

넬슨기념비 앞의 지현-너무 높아서 뒤로 가도 가도 안 잡힌다.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깊고 장중한 소리를 자랑하는 큰 종이 달려있다는'big ben'이라는 시계탑이 있는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빅벤앞의 정현

아침부터 걷기만 했더니 배가고프다. 길을 건너 제임스공원에 가서 좀 쉬기로 했다. 햇살은 따가운데 공원은 어쩌면 이리 넓은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 공원보다 더 큰 하이드 공원이나 리젠드 공원은 그럼 얼마나 크다는 건지 상상이 안 된다. 공원 안에 커다란 강이 흐르는 듯 한데 알고 보니 연못이란다.

오리와 이름 모를 백조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유유히 노니는 풍경은 참 평화로웠다.

제임스파크의 비둘기화 한 오리들

공원 안에 오두막 같은 야외 음식점이 있어서 가격을 보니 만만치 않아서, 그냥 걷다가 노점의 1.5파운드(2650원)짜리 아이스크림과 2.5프랑(4420원)짜리 핫도그를 한 개씩만 사서 반씩 나눠먹고 때우기로 했다. 공원이라서 그런지영국의 비싼 물가가 실감났다

제임스파크 안에 있는 호수-공원이 얼마나 큰지 아시겠죠

1시간쯤 공원에서 쉬다가 다시 런던관광에 나섰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쪽으로 나와 사원 앞 잔디밭에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했다. 그런데 사원건물이 너무 커서 뒤로 서너 번을 다시 물러나 찍어야 했다. 외국에 나오니 그림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고 규모 면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것 같다.

한쪽에 커다란 돌 벤치가 있어서 가보니 바로 템즈 강이 보이는 강변이었다. 독서를 하는 대학생도 있었고 겹쳐 앉은 연인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뻘쭘하게 있다가 벼룩시장을 구경하기로 하고 얼른 일어섰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의 지현

<벼룩시장찾아 허위허위>

우리가 산 전철 트래블패스는 버스도 맘대로 탈 수 있는 표이므로, 이번에는 한번 버스로 이동하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구해온 버스노선도를 뚫어지게 바라본 결과 12번 버스를 타면 벼룩시장이 있다는 notting hill gate전철역까지 한번에 간다는 결론을 얻었다. 빅벤 옆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비싸 보이는 사설 투어버스는 많이 오는데 12번 버스는 영 오지 않는다. 그나마 한 대 온 버스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세우지 않았더니 한참 뒤에 뛰어오던 할머니 앞에 서서 그 할머니만 태우고 간다.

다시 기다려 다음 버스를 세워서 타고 한눈으로는 지도를 확인하고 한눈으로는 경치를 구경하며 반쯤은 잘 온 것 같은데, 갑자기 다 내리는 분위기다. 역시 작은 노선도 만으로는 정확한 노선파악을 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우물 본 김에 쉬어간다고 이곳이 옥스퍼드스트리트라는 위치만 일단 파악하고 슈퍼에 들려 아까부터 꼬르륵거리던 배에 뭘 좀 넣어야겠다.

버스정류장 앞 슈퍼에서 요구르트 4개(1.55파운드=2740원)와 바나나우유 큰걸(61펜스=1037원)사서 노팅힐에 간다는 94번 버스를 기다리며 둘이서 거의 다 먹었다. 밥을 못 먹은 데다 여행지라서 계속 걸어서 그런지 마셔도 마셔도 배가고픈 것 같다.

옥스퍼드거리는 쇼핑가인 모양이다. 94번 버스로 한참을 가도 옷이며 구둣가게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옥스퍼드거리가 끝나니 이번에는 옆으로 하이드 파크가 펼쳐진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도시 한복판에 있다니. 차로 몇 정거장을 달리고 있는데도 잔디밭이 계속이다. 녹색의 공원이 끝나면 딱 내려야 하는데 너무 안 끝나니 불안해진다. 이러다가 지나치면 안 되는데. 가뜩이나 내리는 벨 누르는 사람도 없고 해서 이제쯤 끝나겠지 싶은 곳에서 그냥 내렸다.

내려서 멋진 영국 여성에게 길을 물었더니 친절한 답변이 돌아온다. 여기서 한참 걸어야 한다고. 그리고 벼룩시장 문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아차 그 생각을 못했네. 지금이 5시니까. 종종걸음으로 가면 볼 수 있겠다 싶어 봉지를 든 사람들이 오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골동품상점들과 제과점 문방구 등이 있다.

야채로 만든 차 과일 차 등 다양한 각국 차tea만 모아서 파는 가게도 있고,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 모를 옷들을 파는 옷가게도 있다.

포크를 이리저리 휘어서 모빌처럼 만들어놓고 좌판 가득 내놓고 파는 사람도 있어 사진을 한 장 찍었더니 옆 좌판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벼룩시장의 포크예술가.

자 드디어 벼룩시장에 도착했는데, 어라, 파장 분위기다. 급한 마음에 쭉쭉 길을 따라 내려가 보는데, 몇몇 느긋한 장사꾼들은 그대로 좌판을 벌려놓고 있지만, 벌써 자리를 걷고 떠난 주인들도 꽤 보인다. 어제 대영 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쫓겨나는 분위기다. 알고 보니 금요일까지는 아침부터 6시경까지 하는데 토요일은 원래 1시 30분이면 파장이란다. 일요일은 쉬고.

그래도 장사꾼들은 마지막 손님까지 잡으려 하는 법. 35펜스(595원)짜리 호박하고,연꽃봉우리로 보이는 야채를 샀다. 연꽃 봉우리는 이우일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도대체 뭐 길래 그렇게 그림까지 자세히 그리며, 연꽃 받침의 특정부위가 묘한 맛이라고강조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민박집에 가서 삶아 먹어 봐야지.

<달리는 버스타기>

버스노선도-길따라 검은 숫자가 버스길을 표시

야채트럭들이 끝나니 벼룩시장도 끝이 났다.

이제 뮤지컬을 보러 피카디리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몇 번 버스를 타나. 정류장에는 동네 할머니들 뿐이다. 그 중 한 분을 잡고 물어보니 거기계신 모든 분들에게 물어봐 주신다.

그분들이 태워주시는 대로 몇 번인지도 모르고 탔다. 중간에 갈아타야 했으므로 edgware roads정류장에서 내려서 정류장에 붙은 자세한 노선도를 보니 23번 버스를 타면 된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버스 안내도가 자세히 붙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앗 그런데 23번 버스가 우리 앞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가 못타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버스 뒤의 검표원이 "All right" 하면서 타라는 표시를 한다.

어제 현지 젊은이들이 달리는 버스에 뛰어 타는 걸보고 "저럴 수가"했던 우리는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봤지만 어느새 지현이는 버스에 타고있고, 나도 따라 버스 뒷문 옆의 봉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All right"은 아닌 것이. 휴, 오페라 때문에 입은 치마 찢어질 뻔했다.

런던의 거리는 온통 빨간 버스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도 거의 안 보인다. 10대에 1대 꼴 정도. 그래서 인지 한낮에는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시민들은 뭘 타고 다니나? 버스나 전철을 그렇게 많이 이용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런던의 거리는 온통 빨간 버스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도 거의 안보인다. 10대에 1대꼴 정도. 그래서 인지 한낮에는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시민들은 뭘 타고 다니나? 버스나 전철을 그렇게 많이 이용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사진 이층 버스 앞 지현)

<런던의 피자헛과 오페라의 유령>

피카디리 역까지 잘 찾아왔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뮤지컬을 볼 때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끼를 부실하게 먹으니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진 것이 느껴진다. 지현이는 한 끼만 안 먹어도 현기증이 나는 이상한 체질인데다가(비축해둔 지방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허리가 아프다고 아까 산 감자며, 호박이며 혼자 짊어지고 다니느라 입이 한자는 나와 있어서, 저녁은 지현이가 좋아하는 걸로 사먹기로 했다.

"앗, 피자헛이다. 가격도 괜찮아" 한국에서도 피자면 환장을 하는 지현의 눈빛이 빛난다. 배불리 먹고 남긴 세 쪽은 싸달라고 할 정도로 큰 수퍼 슈프림피자(10.55파운드)와 콜라 두 잔(2.9파운드)을 맛있게 먹었다.

단 지현이는 thin 피자를 시켰는데 그게 우리나라처럼 두껍지가 않고 pan처럼 얇다고 약간 불만이다. 나는 thin하고 pan이 무슨 차인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뮤지컬 아는 만큼 보인다>

지현이가 전부터 꼭 보고 싶다고 했던 팬텀 어브 오페라(THE PHANTOM OF THE OPERA)는, 원래 오래된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근래에 연출자이자 작곡인 엔드류 웨버가 부인이었던 사라브라이트만을 주인공으로 생각해 두고 쓴 뮤지컬이다.

오페라라고 발표하려다가 정통 오페라와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에 비난이 두려워 뮤지컬로 발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라브라이트만의 모습과 맑은 음성은 이제 이 극장에서 들을 수 없다. 둘의 이혼과 함께 사라는 떠나고 다른 배우들이 무대를 채웠기 때문이다.

사라브라이트만의 공연모습(CD속에 있는 그림)

나는 영국 하면 뮤지컬 "CATS"나 "레미제라블" 생각은 했는데 "팬텀어브오페라"는 몰랐었다. 그런데 지현이가 여행준비를 하면서 이 뮤지컬에 푹 빠져서, 여행 막판에는 아예 나눠 맡은 여행준비도 제껴 두고, 영어대본을 독파하고 사라브라이트만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외우기까지 했다. 내용을 좀 얘기해 달랬더니 나에게도 대본을 던져주고 읽고 가야 비싼 입장료가 안 아깝다나.

나도 읽고 싶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을 맡았던 나는 할수록 여행준비 할게 늘어나서 손도 못 대고 있다가 여행 떠나기 얼마전 EBS교육방송에서 아주 옛날 흑백무성영화를 해주길래 힘들게 보고(대사 대신 한 장면 지나가면 영어 자막이 나왔다.)내용을 파악했다.

유명한 오페라 작곡자가 사고로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오페라극장(지금도 파리에 가면 이 극장이 있다.)지하에 숨어서 유령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언젠가부터 극장에는 사고가 이어지고 유령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를 극장매니저에게 보내서 조연에 불과한 크리스틴에게 주역을 맡기라고 협박한다.

펜텀어브오페라 포스터

이름 모를 벽 속의 스승에게서 노래수업을 받은 크리스틴은 드디어 주인공이 되지만, 이 모습을 보고 나타난 어릴 적 친구 라울과 오페라의 유령 사이에서 갈등한다. 분노한 오페라의 유령은 그녀를 납치하고 라울은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그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으로 유명한 이 뮤지컬을 보러 세계각국의 관광객들이 허 마제스티 극장에 몰려든다.

허마제스티극장

그런데 대 극장일 줄 알았는데, 우리네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는 달리 좌석도 협소한 중간 크기의 옛 건물이었다. 그래서 신경쓰지 않으면 무심코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러나 그리 넓지 않은 무대에서 어쩌면 그렇게 역동적인 무대전환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희들이 뛰어다니던 마루가 금새 배가 다니는 지하 수로로 변하고 강물에서 반딧불 같은 신비로운 불빛이 새어나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그 불빛들은 무수한 촛대 위의 촛불로 바뀌어 무대를 밝혔다.

극중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샹들리에는 가는 철끈에 매달려 주인공을 태운 채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1막 끝에는 극중 무대와 연결된 1층 관객들 머리위로 추락하기까지 한다.

주인공인 팬텀의 애끓는 노래도 감동을 주지만, 개개인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조연들의 노래도 듣는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펜텀어브오페라의 팜플릿

단 사라의 그늘이 너무 커서인지, 여주인공의 노래나 카리스마가 너무 약해서 전체적인 집중도는 떨어졌다.

이번 여행의 징크스도 이날 생겼다. 이날을 위해 지현이는 종로바닥을 뒤져 자랑스럽게 쌍안경을 사왔는데 아침에 허둥대다가 놓고 오고 말았다. 뭐든 필요하면 없다. 이게 우리여행의 징크스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좌석마다 앞에 2파운드를 넣으면 쓸 수 있는 플라스틱 쌍안경이 있었는데, 우리가 동전을 넣으니 돈만 먹고 뽑히지가 않아서 옆자리의 프랑스 할아버지가 힘으로 빼내주셨다.

그분 내외는 팜플릿도 서로 읽어주고 아주 다정해 보였는데, 고마워서 1막 쉬는 시간에 콜라를 드리려고 했더니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사양하신단다. 나이 들어서 여행하는 것에도 고충은 있구나 싶었다. 행복한 노년을 생각한다면 젊어서부터 건강을 지키며 생활해야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앞자리의 다른 프랑스 단체 관광객들 중 한 아주머니가 주인공의 키스신을 보고 나서 나도 키스하고싶다고 하자 동행인 파바로티 닮은 어떤 아저씨가 기꺼이 키스를 해주신다.

지현이는 대사와 노래가 다 귀에 들어온다며 너무 좋아서 붕 떠있다. 나는 환상적인 무대장치에 취해있고, 아름다운 밤이다.

펜텀어브오페라의 한장면


***오페라의 유령 원본 대본을 읽고 가면 너무 귀에 잘 들어와요 . [대본 받기] 클릭하세요.***

6 영국셋째날-아! 연꽃이여

<earl's court 찾아가는 길><웬지 산만한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

<테이트겔러리가는 길><슬픔이 선연한 그림들이 숨어있는 테이트겔러리>


<earl's court 찾아가는 길>


오늘은 먼저 내일 아침 일찍 모여야할 다국적 배낭여행의 집합장소인 earl's court의 top deck 사무실을 확인해 놓고 미술관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잠시 여기가 외국이라는 것을 잊었었다. 한국과 비슷한 지하철의 진동과 광고들 때문이었나 보다. 어느 것에 대해서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타성이 생기게 되나보다.

earl's court 전철역은 참 큰 역이었다. 검표 원에게 사무소를 물었더니 반대편 입구로 가라고 해서 한참을 돌아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역의 사무원인 듯 한 흑인아저씨가 분명히 저쪽이라며 우리가 온 쪽을 가리킨다. 다시 돌아가서 이번에는 우리가 받아온 예약 표를 보여주며 다시 물으니 아까 그 검표 원이 미안하다며 우리가 earl's court를 찾는 줄 알았다나. 우리발음이 top deck과 earl's court도 구별 못 할 정도로 안 좋나. 실망이다.

역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역과는 달리 옆 앞의 길은 아담한 소로다. 지도를 보고 쉽게 사무실을 확인한 뒤 점심을 먹으러 역 앞에 있는 ben jus 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today special이 가장 저렴해 보여서 그중 sirloin steak와 lamb chops을 시켰다. 신선한 삶은 콩과 감자칩이 함께 나오는데 나는 맛있게 먹는데 지현이는 자꾸

"나는 맛없는 걸 먹으면 화가나" 하며 바꿔 먹자고 한다. 지현이가 먹던 것을 먹어보니 세상에, 일부러 아무런 조미도 안하고 굽기만 한 채로 요리해서, 자기 입맛대로 소금이나 후추, 조미식초를 뿌려서 먹으라는 건데, 여태까지 밍밍하게 그냥 먹고는 맛없다고 투털 대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니 12시 30분. C1이라는 버스를 타고 가까이 있는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웬지 산만한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

프랑스나 스페인에 비해 별로 기대를 안 했었는데 영국의 미술관들도 그 규모와 소장품의 양이 상상을 넘어섰다. 한 미술관을 일주일을 봐도 다 못 본다는 말은 보통사람에게는 좀 과정 섞인 말일지라도, 한 미술관을 하루 이틀에 다 볼 수 없다는 말은 맞다.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은 빅토리아여왕이 남편이 엘버트공의 권유로 만들게 되어서 그렇게 긴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데, 미술 공예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미술관으로 꼽힌다고 한다. 하긴 안에서 3번이나 길을 잃을 정도였으니.


빅토리아엘버트뮤지엄 전경


빅토리아엘버트뮤지엄 입구의
플라스틱조형물1


빅토리아엘버트뮤지엄의
입구플라스틱조형물2


들어서자마자 기괴한 조형물이 우리를 맞는다. 플라스틱 같기도 하고 비닐 같기도한 길쭉한 덩어리들을 색색가지로 얽어 높이 세워놓았다. 외계생명체 같기도 한 요상한 모양새가, 우리네 어른들이 보시면 딱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시게 생겼다.

옛스러운 미술관 로비 한가운데서 그런 현대적 작품이 들어설 수 있는 그네들의 예술적 관용이 부럽다. 우리의 국립박물관이나 경복궁미술관에도 이런 전시물이 입구를 장식할 수 있을까.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르누보포스터

고양이포스터

매표소를 찾아보니 여기도 어김없이 특별전이 한참이다. ART NOUVEAU 1890-1914 라는 제목으로 아르누보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기분 좋게도 학생할인이 되어서 원래 7.5파운드의 요금을 2.5파운드에 특별전까지 볼 수 있었다. 애써서 학생증을 만들어간 보람이 있었다.

아르누보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건축, 공예, 회화등의 새로운 예술사조인데, 덩굴풀등 현실의 속의 자연의 곡선을 즐겨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잠자리보석 전체


잠자리보석 부분

여기저기서 아르누보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중요 작품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보니 그들의 예술관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장식품도, 가구도 도자기도 단순한 곡선과 은은한 색으로 자연 속에서 주워온 것처럼 만들면서도 귀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별전을 잘 보고 나오니 드넓은 이 박물관의 어디를 먼저 보아야 할지가 막막했다. 대영박물관처럼 특별히 공부를 해온 것도 아니고. 우선 유명하다는 스테인드글래스와 건축장식품들을 먼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지도를 보고도 찾아가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몇 번을 헤맨 끝에 스테인드글래스가 모여있는 곳에 도달했지만 명성만큼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이 창문들이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처음 있던 성당 등의 제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컬렉션은 40번 "dress"의 방으로 유럽 복식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때를 잘 맞춰 가면 고대 조각상 옆에서 펼쳐지는 패션쇼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엽서로만 볼 수 있었다.


아르누보 스테인드글라스 엽서

6층도 넘는 이 뮤지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방은 1층의 46번 방과 50번 방이었다. 각각 "plaster casts" 와"sculpture& architecture" 라는 방의 제목대로 건물 안에 있기에는 너무 거대한 비석이나 석고 주조물들이 가득했다. 물론 모작도 있겠지만 이 많은 조각과 묘비등을 뜯어온 그리스나 로마의 자리는 얼마나 허할까 싶었다.

그 옆 47G번 방은 한국 미술실인데 삼성에서 지원해서 만들어서인지 한복과 도자기 틈에 한국의 풍물이 나오는 삼성 텔레비젼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관에 비해 너무 소장품도 적고 시시해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위치도 마치 통로 한쪽을 빌려쓰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했다. 박물관끼리 소장품 교류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안되면 백제 금동향로 모작이라도 하나 만들어다 놨으면 좋겠다.


옛 조각상과 함께 하는 패션모델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에는 무척 많은 그림, 조각, 수공예품이 있었다. 하지만 대영박물관 처럼 그 시대를 느끼도록 잘 정리되어 전시되어있지 않고, 종류별로나 나라별로만 다닥다닥 모아놓아서 마치 뭐든 끌어 모으기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정리함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테이트겔러리가는 길>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을 나오니 2시 50분이었다. 하루에 미술관 2개 보는 건 좀 무리가 있지만, 비행기표 때문에 영국 일정이 너무 짧아진데다, 내일 단체여행을 시작해서 프랑스로 떠나는 상황에서 영국의 근 현대 미술품이 총집합 되어있는 테이트겔러리를 오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철역으로 급히 가는 중에도 특이한 건물은 눈에 띄는 법. 창문이 유난am히 좁고 긴 세련된 건물을 발견했다. 도서관인지 병원인지, 뭐 하는 건물인지 가보고 싶었지만 지현이는 건널목도 건너 이미 저만큼 뛰어가고 있다.


빅토리아 엘버트가는길에 있는
창이 좁은 특이한 건물


빅토리아엘버트 뮤지엄에서 제일 가까운 south kensington역에는 걸어서 지나가야하는 긴 지하터널이 있다.

그런데 그 터널에는 거리의 악사가 있어서 구슬프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온 터널 안을 울리고 있었다. 영국에 지하철이나 거리의 악사는 많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는 처음이었다. 아마 그는 수많은 지하철 역의 통로 중에서 가장 울림이 아름다운 지점을 찾아내느라 온 역사를 뒤졌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하철역의 무용공연 포스터들과 함께 일렁이며 기춤을 추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또 시작이다. 뭐해 빨리 와. 시간 얼마 없어" 지현이가 옷깃을 당기고 마침 전철도 오는 바람에 동전 한 닢 못 놓고 왔지만, 나는 잠시 거리의 악사 옆에서 춤을 추며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참동안 바이올린 소리의 여운에서 못 깨어나는 나에게 지현이가 던지는 소리.

"아까 그 사람 조용히 연주하다가 우리 지나가니까 더 크게 연주하더라, 그게 다 돈 버는 방법이야" 산통을 깬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다시 영국에 오면 꼭 이 역에 다시 와서 아름다운 음악에 젖어 지칠 때까지 춤을 추리라 다짐했다. 그때 지현이는 꼭 떼 놓고 와야지.

<슬픔이 선연한 그림들이 숨어있는 테이트겔러리>

첫날 대영박물관에서 고대미술에 취하고, 둘째날 국립미술관에서 중세 미술에 취하고, 오늘은 드디어 근현대 미술과 만나는 날이다.

pimlico역에서부터 뛰어오느라 과열된 머리속을 정리하고 우리는 1시간 반 동안 각 자 보고싶은 것을 보고 만나 홈페이지를 위한 그림엽서를 좀 사기로 했다.

1시간 반이라. 무슨 전쟁도 아니고, 이 아름다운 그림들 앞을 경보를 하며 돌아야 하다니, 한국식 배낭여행의 한계가 새삼 느껴졌다.

'여기서 하루종일 있어도 모자라 모자라'

를 입안으로 웅얼거리면서도 발걸음은 멈출 수 없는 이 비애.

한 30분은 그렇게 돌다가 "다 보려고 욕심부리려 하지 말고 반만 보고와"라는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테이트겔러리전경

터너의 그림은 참 아련한 느낌을 준다, 그에게 세상은 늘 이런 모습으로 보였는지 궁금해진다. 담배나 술 혹 이 두 친구가 항상 함께 해서 세상이 아련했던건 아닌지.

반면 러스킨의 풍경화들에서는 동양화적 선과 느낌이 보인다. 유화인데도 마치 수묵 담채화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터너의 그림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은 워터홀스의 "the lady of shalotte"였다. 주제별로 작품을 전시한 이 미술관의 <word&image>실에 있다.

물위에 뜬 배 위에 꺾어질 듯 앉아 있는 소녀의 처연한 표정이 너무도 절절한 그림이었는데, 화가는 감정을 전하는데 주가 되는 표정만 정성껏 그린 게 아니라, 풀숲에 꺾어진 풀줄기하나,

물위에 썩어 가는 꽃잎하나까지 섬세하게 엮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서서 보다가 너무 마음에 끌려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았다.


워터홀스 the lady of shalotte

유명한 오필리어 역시 슬픔의 아름다움을 넘치게 담은 작품이었다.

창백한 오필리어의 피부와 짙푸른 물색의 대비.

그위로 너무나 선연한 색색의 잔꽃들의 흩뿌려짐은 너무 아려서 외면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밀레이 -오필리어

현대의 그림으로 넘어와서는 chirl ofili의 "no woman no cry"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흑인여인이 주인공인 그림이었다. 중세 이전의 그림 속의 흑인은 모두 노예로만 표현되었고 그 이후에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현대의 그림 속에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당당한 주인공으로.

커다란 화면 속의 여인은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다. 여인의 앞에는 마치 갖가지 유리구슬로 만든 듯 하기고 하고, 여인의 눈물로 만든 것 같기고 한 그물 같은 망이 가로막고 있다.

여인은 전통문양의 목걸이와 머리장식을 했는데 그 화려한 장식이 여인을 더 슬퍼 보이게 한다.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쯤 되어보이는 꼬마여자아이가 그림 속의 여인과 비슷한 땋은 머리를 하고 그림을 관심있게 쳐다본다.


chirl ofili "no woman no cry"

아마도 이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보는 자기를 닮은 그림에 놀랐나 보다. "no woman no cry" .

이 아이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는 얼마나 울며 생을 살아 갔을까. 그림의 제목처럼 이제 이 세상에서 유리그물에 갖혀 눈물흘리는 여성이 없기를 기원해본다.

빨리그린 그림은 빨리보아도 그 느낌이 포착되는 반면 오랜시간이 걸려서 그린 옛 그림은 천천히 보아야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현대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은 덜하다.

중앙홀을 따라 오른쪽방에 전시되있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고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이 완전히 인간을 위한 미술일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소재와 자유로운 색, 선. 인간은 드디어 그리고 싶은 것을 맘껏 그리게 되었다.


콕스- A WINDY DAY 1850

미술은 이렇게 자유로운 것인데 내가 받은 미술교육은 대부분 금지와 강요의 연속이었다. 유치원 때는 크레파스화를 그릴 때 검은 선으로 사물의 테두리를 그리면 안 된다고 했다. 또 화면에 조금이라도 흰 도화지를 남겨서도 안 된다고 했다. 미술교육인지 절약교육인지. 국민학교에 가서 수채화를 배웠을 때 꼭 연필로 선을 그리고 색칠을 해야했고 사물은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쭉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심지어 고등학교때는 1년내내 미술시간마다 붓글씨만 써야한 적도 있다.

그랬으니 그림이란, 미술이란 자유로운 거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못한 채 정물이든 풍경이든 똑같이 그리기를 못하는 나를 답답히 여기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도 내 죄는 아니다.


템즈강변 벤취의 정현

다행히 중학교때 의욕적인 미술선생님들이 계셔서 매주 다른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미술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이렇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행운이랄까.

대학에 와서 미학오디세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학문도 있었구나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또 예술 속의 아름다움이란게 이렇게 다양한지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미학론은 톨스토이의 도덕론적 미학론일 뿐이지 그게 미학의 다가 아니었다는 것도.


템즈강변에서 보이는 웨스터민스터와 빅벤

한국의 미술교사들에게 유럽연수를 좀 보냈으면 좋겠다. 그냥 이렇게 방대한 미술관에서 다양한 작품들과 만나고 가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똑같이 그려내라는 강요는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벌써 그러고 있나? 모를 일이다.

요즘아이들은 스케치북에 피카츄나 그려대고 있는 건 아닌지. 그건 더 무서운 독재다.

런던아이


<아! 연꽃이여>


민박집의 일행들과 페루라는 아르바이트생

민박집에 돌아와서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준비를 하고, 지현이는 저녁밥을 지었다. 그런데 중간에 땀범벅이 되어 돌아온 지현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하는 말 "얼른 와. 밤늦게 부엌 이용하면 안된다고 눈치줘" 10시면 늦긴 늦었다.

게다가 아까 사온 연꽃까지 한쪽에서 삶노라니 부엌이 찜통이다. 먹는 연꽃은 생전 처음 보는 거라서 아직까지도 이게 맞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리고 이우일의 여행기에 적힌 대로 삶고 있기는 한데 얼마나 삶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부엌에서 선 채로 볶은밥은 먹고, 연꽃은 들킬까봐 방으로 가져왔다. 맛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나눠먹겠는데, 알 수 없으니 일단 방으로 철수했다


처참해빈 연꽃

갑옷같이 딱딱한 껍질을 벗겨보니 연꽃이 맞기는 맞는 듯 한데, 희한한 맛이라는 꽃받침의 아랫부분은 눈치보느라 덜 익혀서 그런지 밤과 도토리의 중간 맛 정도인 것도 같고 별 맛이 없다. 그 난리를 쳐서 기대했던 맛이 안나오니 허탈해하는 지현이의 표정이란. 내가 더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하숙집생활을 그래도 몇 년 해서 공동 화장실과 남의 집살이(?)의 눈치에 조금은 익숙한데(처음에는 많이도 울었다), 지현이는 이것저것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가보다. 나보다 더 적응이 빠른 성격이니까 곧 익숙해 지겠지.

짐을 싸면서 지영이와 혜진언니에게 비상약과 샴푸를 조금씩 나눠 주었다. 그때는 잠잠하던 지현이가 나중에 하는 말

"그만 좀 퍼줘. 나, 무거워서 약상자하나 언니 몰래 집에 두고 왔단 말이야" 앞으로 또 어떤 고백을 듣게 되려나.


덜 익은 연꽃을 앞에 두고
허탈해하는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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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여행기]로마 콜로세움에도 꽃은 피어난다
푸른깨비의 포토 유럽여행기 하나
최형국(bluekb) 기자
유럽 여행의 첫번째 장소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잠들어 있는 이탈리아 로마입니다. 오월의 햇살을 받아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과 어우러져 한편의 영화처럼 다가온 도시였습니다. 그 기나긴 역사 속으로 잠시 들어가 봅니다.

▲ 콜로세움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오랜 유적과 함께 피고 지며 세월의 고즈넉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외곽에서 봤을 때 웅장한 모습은 수많은 노예들의 피땀을 연상시킵니다. 콜로세움 안쪽에서 피어난 꽃들에서 지나간 옛 로마의 아스라한 영화로움이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콜로세움 바닥에도 고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문화유적을 관리하는 그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동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이라면 어떻게 관리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 속을 잠시 스쳐갑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오른편 멀리 콜로세움이 보이는 포로 로마노에서도 옛 로마의 향취를 느껴봅니다. 로마인들은 구릉 위쪽이 아닌 저지대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숱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만든 개선문들이 즐비합니다. 몇백 년된 건물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시내 건물들 중에도 천 년이 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유적의 도시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로마의 가로수는 우산처럼 생긴 소나무입니다. 신기하게도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듯 그 모양이 하나같이 우산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로마시내 전 지역에는 이처럼 재미있는 모양의 소나무들이 가득합니다. 소나무를 보니 갑자기 한국이 생각납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푸른깨비 최형국


▲ 비토리아노 에마누엘 2세 기념관 앞을 누비고 다니는 관광 마차입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대 유적을 파괴해 원성이 자자했던 기념관이지요. 아무튼 마차들이 자동차들과 함께 관광지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물론 말 배설물도 여기저기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교회의 내부 모습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마음으로 진실의 입에다 잠시 손을 넣고 교회 내부로 들어오면 마음이 금방 차분해집니다. 촛불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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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피돌리오 앞에서 고대 로마인의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저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신기한 눈망울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청동 기마상이 있는데, 발 부위에 등자가 있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말의 등자 또한 역사를 이해하는 작은 창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트레비 분수의 해마와 바다의 신 모습입니다. 여행 다니는 동안에도 말밖에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직업병의 연장인 듯합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저마다 소원을 빌며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하마터면 신부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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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비 분수 옆 아이스크림 가게입니다. 트레비 분수에 오면 동전을 던지고 꼭 주변의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드셔보세요. 그 맛이 일품입니다. 가격은 2유로에서 4유로 사이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로마 시내에서 처음 본 2인용 승용차의 모습입니다. 티코보다 더 작은 차들이 시내에 가득하더군요. 물론 기름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의 절약 정신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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