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경보로 다녀야했던 피렌체

<아쉬운 스위스><드디어 이탈리아><이탈리아 화물 운전사 휴게소>

<휴양을 위한 최고의 명당자리 피렌체 숙소> <진짜 이탈리아피자는 빵이 아니다>

<3시간의 피렌체 주마간산기>


<아쉬운 스위스>

늘 그렇듯 7시에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8시에 피렌체를 향한 10시간 반 버스여행길에 나섰다. 창밖으로 그림 같은 풍경의 스위스가 지나간다. 이런 곳을 하루만에 지나치다니 너무 아쉽다.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좀 더 여유 있게 여행하고 싶다.

구비구비 대관령 고갯길 같은 산길을 돌아가는데 갑자기 차가 멈추더니 한참동안 가질 않는다. 알고 보니 저 앞에 차 사고가 났는데, 치우려면 몇 시간 걸린단다. 가이드와 운전사가 잠시 상의하더니, 길에서 이러고 있느니 돌아가서 인터라켄 마을 구경이나 하고 있다가 오자고 한다.

그런데 이 덩치 큰 차를 아슬아슬한 고갯길에서 어떻게 돌리나 했더니, 다들 자고 있어서인지 내리라고도 안하고 그냥 돌린다. 30cm만 삐끗해도 천길 낭떠러지인데, 후진하는 동안 겁 많은 나만 깨어서 맘졸인다. 운전사 matt를 믿어도 되는 거겠지.

쾅. 이크. 무리다 싶더니만 길 옆 난간에 차 뒤를 박고 말았다. 부시시 깨어나는 사람들. 모르는 게 낫지. 이번엔 모두들 긴장해서 창 밖을 내다보는 상태에서 조심조심 차를 돌린다. 나는 아얘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보기엔 이런 아슬아슬한 비탈길에서 후진을 한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데, 다행히도 한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마법처럼 차를 돌려낸다. 환호하는 아이들. 휴 십년감수했다.

인터라켄 아래의 마을은 라흐터브루넨 보다 훨신 크고 관광지 냄새가 물씬 났다. 우선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베개를 안고 다니는 귀여운 미국인 kimberley가 관광안내소를 찾아 물어봐줬다.

지현이는 한국에서 갖고 온 싸구려 전자시계가 불편하다며, 전부터 사고싶던 메탈벤드의 시계를 하나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만 결국 세일하는 현대적 디자인의 시계를 하나 골라서 찼다.

구비구비 돌아나오는 스위스의 산


그리고 이동 할 때마다 짐을 우겨 넣느라고 꽁꽁 싸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스트레스 받아서, 가방가게 앞에 기획상품으로 진열된 29sf(1만9천원)짜리 커다란 옆으로 드는 헝겊가방을 샀다. 바퀴 달린 배낭을 사고도 싶었지만 우리가 산 가방과 너무 가격차이가 나서 망설이다가 말았다.

차에 전지가 얼마 안 남았다고 에어콘을 꺼버렸다. 전지가 나가면 브레이크랑도 상관 있어서 위험하다는데, 그래서 전지가 있을만한 다른 마을에 가서 matt가 1시간동안 찾아 볼 동안 인터넷까페가 되는 휴게실에 내려줬다. 오늘 안에 가기는 하는 건지.

차를 고치지 못해 다시 또 다른 휴게소다. 휴게소에 여러 번 머무니 자꾸 군것질만 늘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는 군것질을 거의 안 하는 편이라 껌 한 통도 안 사고 1년을 보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가만히 버스 안에 앉아 가는데도 왜이리 배가 고픈지. 다들 슈퍼에서 머문다. 정말 인체 기관 중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뇌라는 것을 실감하겠다.

과자를 사는 것은 늘 모험이라서 일단 사서 한 입 베어 물면 성패가 드러나는데, 우리나라 "캬라멜콘과 땅콩"같이 생겨서 산 과자는 달지 않고 짜서 실패이고, 나눠먹으려고 종류별로 산 요플레는 석류와 호두는 괜찮은데 커피 요플레가 참 맛이 뭐하다는 반응들이다.

승진언니가 산 비스킷은 무난한 맛이라 성공이고 여러 가지 과일 말린 것은 어중간하게 말려지고 너무 시큼해서 다들 하나 먹어보더니 손이 안 간다.

가장 실패작은 물 대신 산 빛깔이 너무 예쁜 산딸기 주스인데, 한 입 먹어보니, 으악 뱉지도 못하겠고 원액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물에 타면 맛이 괜찮나 하면 그도 아닌 것이, 술에 타 먹는 건지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걸 사고 말았다.


<드디어 이탈리아>

힘들게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예정과 달리 피렌체까지는 또 밤늦도록 달려야 한다니, 가뜩이나 관광시간이 적어 불만이었는데 저녁의 도시 버스투어도 물 건너 가버리고 답답할 뿐이다. 함께 가는 한국사람들이 없었다면 더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들 지루해하며 조는데 사탕을 돌리며 깨우더니, 마니또에게 편지를 쓰라고 한다. 물론 영어로. 한국인들은 다들 재우의 전자수첩을 찾으며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를 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마음들이다.


<이탈리아 화물 운전사 휴게소>

버스 배터리가 나가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배터리가 나가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달리다 말고

차가 갑자기 서버리는 위험한 경우도 있어서, 그전에 다음 휴게소에 도착하려고 그랬다는데 차가 꼭 하늘에 뜬 것 같았다.여지껏 지나온 관광객용 휴게실과 달리, 부품을 구하러 온 여기는 현지 화물차 운전사들이 많이 모이는 휴게소인가보다. 화물운전사들은 동양인을 별로 본 적이 없는지 우리 일행을 아주 신기하게 본다.

우리버스 바로 옆에 주차된, 기차처럼 길게 연결된 화물트럭 운전사아저씨는 잠시 쉬어 가시는지 트럭 안의 소형TV룰 보시며 연신 노래를 불러대는데, 듣기 좋은 목소리다. 길만 나서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가수라는 이탈리아로 들어온 걸 깜빡했다.

지현이는 마니또인 운전사를 위해 과일사탕 한 통을 챙긴다.

차가 고쳐질 것을 기대하며 한시간, 두시간, 날은 저물고 한 귀퉁이를 잘라내야 쓸 수 있는 이탈리아 전화카드로 전화를 걸다 걸다 실패하고 차안에 앉아있다. 화장실도 유료라 동전이 쏠쏠하게 든다.

주차장 보도블록 사이로 귀여운 도마뱀 한마리가 나오려고 눈치를 보다 우리가 있으니 망설인다. 그러나 어디론가 꼭 갈 일이 있었는지 쪼로로 옆 구멍으로 이동한다. 그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마리 두 마리, 우와 다섯 마리의 도마뱀가족이있다. 사람을 겁내지 않아서 조금 있으니 다들 왔다 갔다 한참을 재롱을 부렸다.


한귀퉁이를 요렇게 잘라내야 쓸 수 있는
이탈리아 전화카드

마침내 TOP DECK에서 보낸 수리차가 오기는 왔는데, 또 1시간을 들여다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서 맞는 부품이 없나보다. 레이첼이 들어와서 하는 말. 아까 스위스에서 새로 간 전지가 속아서 산 고장난 전지였고 차에 다른 문제도 있으니 오늘은 더 이상 갈 수 없고, 버스 안에서 노숙을 해야 한단다.

여행 초반부에는 안전하고 변수가 적은 여행을 하려고 다국적 배낭을 택했는데도 이런 예상못한 상황도 생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외국애들은 아무도 이 상황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는 피렌체 일정이 어떻게 되는 건지, 로마까지 밀리는 건 아닌지 중요한 걸 제대로 못 볼까봐 화가 나 있는데 외국애들은 별 불만없이 차안에서 잘 준비를 한다.


버스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행

시간이 돈인데 길에서 버린 우리의 하루는 보상해 줄 건지, 영어가 좀 되는 민혜와 윤석이 따지고 있는데, 별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하고 본사에 연락해 보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피렌체는 로마에 가기 전에 오전에 들리면 된다고 했다니. 그 볼 것 많은 피렌체를 반나절만에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등 꼬부리고 자는 잠자리도 불편하고, 분해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다.


<휴양을 위한 최고의 명당자리 피렌체 숙소>

도마뱀가족의 단잠을 깨우며 길에서 아침을 먹고, 임시로 달려온 새 버스에 타고 피렌체 숙소로 향했다. 아이들 사이에 들리는 소리가 피렌체 숙소가 우리가 묵을 숙소 중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아까워라 하루를 길에서 자다니.

피렌체의 아름다운 엽서

1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관광을 안나가고 그냥 숙소에서 쉬는 일정이란다. 마음이 급한 우리들만 개인적으로라도 나갈 수 없냐고 했지만, 우리 생각과는 달리 숙소가 피렌체 시와 꽤 떨어져 있어서 지금 나가서는 마지막 기차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래서 관광은 포기하고 우물 본 김에 쉬어간다고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했다. 하긴 우리가 쉬지 않으려 해도 여기는 서있기만 해도, 절로 쉬고 싶어지고 기분이 나른해지는 희한한 지형적 특성을 지닌 작은 분지였다.

숙소는 듣던 대로 만물상 같은 슈퍼에, 수영장에, 레스토랑에, 바에, 디스코텍에 없는 것이 없었다. 특이했던 것은 이 휴양지 안에 있는 모든 시설을 이용할 때는 미리 원하는 액수만큼 숙소카드를 만들어서 거기서 전자식으로 돈을 빼나가는 부대시걸 이용방식이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별로 돈 쓸 일이 없어 보여서 작은 단위카드를 만들었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예쁜 엽서와 아름다운 우표를 만나는 바람에 더 충전해서 썼다.

한국까지 가는 우표를 달라니까 준 1000리라 짜리 국제 우표가 나를 흥분시켰다. 유명한 그림인 듯 한데 작가는 알 수 없는 이 우표는 아련한 여인의 옆모습이 나체로 그려진 명화우표인데 야하다는 느낌보다 아름답다는 느낌으로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런 게 바로 예술과 외설의 차이인데 맨날 판단이 왔다갔다하는 우리나라 검사들이나 영화등급 매기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 우표를 붙여서 엽서를 보냈다간 엽서가 친구 손에 들어가기 한참 전에 엽서가 통째로 우표에 반한 누군가에게 납치 당할 것 같아서 다 쓴 엽서를 로마까지 가지고 가기로 했다.


피렌체 숙소의 재미있는 음식엽서

다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썬탠을 한다고 난리인데, 한국 여인네들만 옷을 첩첩 껴입고 숙소를 배회하고 있다. 남 앞에서 훌러덩 옷 못 벗는 버릇은 물건너와도 여전하다. 수영하는 남정네들과 외국친구들 사진 몇 장 찍어주고서, 슈퍼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러 갔다.

슈퍼에 없는 없다. 식료품은 물론이고 개밥에 바가지부터 여성용품까지, 맨몸으로 휴양 온 사람도 돈만 있으면 편안히 쉬고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우리야 빨래용 비누를 사고나서 늘 그렇듯 물대신 먹는 요쿠르트를 찾았다. 이번에는 카카오 요쿠르트다. 무슨 맛일까. 성공해야할텐데.

하얀 그네의자에 앉아 야쿠르트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우리 배낭여행 온 거 맞어. 이렇게 다니다가 어떻게 배낭 매고 낑낑대고 숙소 찾고 길 찾아다닐지 조금은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지내며 느끼는 것도 있다. 바로 유럽의 휴양문화이다. 노년층이 절대다수인 유럽의 휴양문화는 젊어서부터 노년생활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온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 같다. 커다란 개를 한 마리씩 끌고, 혹은 손주나 자녀들과 함께 여유롭게 휴양지를 누비는 유럽의 노인들 모습 위로, 굽은 허리로 유모차를 끌며 찌들어 지내는 한국의 도시 노인들이 자꾸 오버랩 된다.


하얀 그네의자에 앉아 신선놀음하는 정현과 지현


<진짜 이탈리아피자는 빵이 아니다>

늦어진 하루일정을 보상하는 의미에서, 원래는 따로 요금을 내는 피렌체 숙소의 레스토랑 특별식을 top deck에서 내기로 했다. 긴 테이블에 쭉 둘러앉아 뭐가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포도주를 쭉 돌리더니 처음에는 덜어먹는 마카로니 스파게티 같은 것이 나오고, 이어서 기대하던 피자를 한사람 앞에 한 판씩 올려놓는다.

우리나라의 체인식 피자점의 피자와는 맛과 모양이 판이하게 달랐는데, 우선 밑판이 빵이 아니라 얇은 과자에 가까운 바삭하게 구운 밀가루 판이었다. 또 위에 얹은 것도 우리나라처럼 양념을 많이 한 고기와 야채를 치즈범벅아래 섞어 놓는 게 아니라, 얇게 썬 햄과 버섯, 피망 등을 올려놓고 살짝 구워서 신선한 재료 각각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고급피자는 아닌 것 같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딱 이어서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포도주를 따라놓고 목빠지게
음식을 기다리는 일행들


커다란 피자를 한판 씩 앞에놓고.
맛은 어떨까.

멕시코인 노르마와 나란히 앉게되어 식사 끝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던 노르마가 이탈리아 포도주가 맘에 들었는지 계속 따라달라고 하며 이것 저것 물어 본다.

멕시코에서 유아원 보모를 한다는 그녀는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아버지와 남자친구의 반대를 한참동안 설득해서 왔다며, 대부분 어린 학생인 한국인들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왔는지를 가장 궁금해했다. 아르바이트를 한 학생이 대부분이고 부모님의 반대는 거의 없었다니까 의아해 한다. 여동생이 옥스퍼드에서 공부한다는데 이 여행이 끝나면 동생에게 들릴꺼라고 한다.

친절하고 귀여운 미국 소녀 kimberley도 포도주에 약간 취했는지 우리보고 이따가 디스코텍에 꼭 온다고 약속하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kimberley하고는 조금 친해지고 싶은데, 나는 술자리에도 잘 안가고 무엇보다 말이 안 통하니 방법이 없다. 영어공부 좀 더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역시 식사 후에는 bar에서들 모여서 논다. 휴양지에 어울리는 시원하게 파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외국인 아가씨가 일행들의 환영을 받는다. 돌아보니 우리 top deck 일행들은 다들 수수하고, 그 중에서도 우리들은 티셔츠에 점퍼차림인데, 아무리 배낭여행 중이라지만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을 차려 입어 보는 것도, 자신과 일행의 기분전환을 위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생각 뿐 한국에서 안 하던 짓을 어떻게 여기 와서 하겠는가. 용감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이름 모를 외국 아가씨가 부러울 따름이다.


피렌체숙소에서 산
토스카나 지방 풍경엽서

10시 반이 넘어서니 캠프장내 디스코택이 문을 열었다고 다들 그리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는 요즘 테크노 바람이 한창이라는데, 여기서 트는 음악은 시끄럽기만 하고 잡동사니를 섞어 놓은 듯 해서 어떻게 춤을 춰야 할 지 모르겠다. 하긴 어떤 음악이 나와도 나는 허우적거리는 춤(나는 기춤이라고 주장하는)을 추니까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제각각의 춤을 추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하긴 어딜 가나 술 취한 사람들이 추는 춤은 막춤이다. 하지만 함께 춤출 마음이 맞는 사람 없이 낯선 사람 들 많은데서 춤추는 건 그리 즐겁지 못하다. 더욱이 동양인을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복대가 든 가방도 신경 쓰여 제대로 즐길 수도 없다.

정말 즐기려면 모든 걸 잊고 술이나 음악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데 나는 낯선 곳에서 그게 잘 안 된다.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엊그제 결심을 하고도 또 얘네들의 리듬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나 싶어서 번쩍 정신이 든다. 하긴 오늘은 아까 kimberley와의 약속 때문에 남았지만, 우리는 또 한국인 끼리 있고 kimberley는 저기서 웬 털보 아저씨와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어중간한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웬지 씁쓸해 진다. 샤워나 하고, 내일을 위해 가서 자야겠다.


<3시간의 피렌체 주마간산기>

숙소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피렌체 시가 있었다. 시 중심가 까지 버스가 들어갈 수는 없다며 약간 떨어진 아르노(arno)강가에 버스를 세워두고 3시까지 돌아오란다. 이렇게 보고 싶은 것 많았던 곳을 잘려나간 한나절에 보고오라니. 조급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레이첼이 시가 지도를 주고 일단 우리를 피렌체의 특산품을 생산하는 오래된 가죽공장으로 안내한다. 지도만 보고 피렌체시는 광장히 크고 복잡한 곳이 줄 알았는데 길도 좁고 건물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금방금방 다른 골목이 나타났다.

leonardo's 라는 이 가죽공장은 borgo del greci라는 좁은 골목길에 있는데, 옛날 메디치가에서 썼다는 낡은 가죽상자를 예로 들며, 손이 많이 가는 전통 가죽제품 제조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여러 공정 중에 완성된 제품을 파라핀으로 광을 내는 과정이 특이했다.

가짜 가죽제품 구별법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바느질 부분 안쪽을 살펴보아 안에 헝겊을 덧댄 것은 가짜자죽이거나 가죽이라도 전통적 방법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거리의 상인들이 가짜 핸드백 등을 라이터로 태워보이며 가짜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지만 약한 불로 그렇게 잠깐 지나가게 해서는 가짜도 타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다. 설명 후에는 상점을 돌아보며 사고 싶은 물건을 고르는 시간이었는데, 자꾸 줄어드는 관광시간에 마음도 급하고 가죽옷에 관심도 없는 우리는 얼른 나와서 중심가로 향했다.

가끔, 아니 너무 자주 필요이상의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앰블란스 말고는 거리에 별로 차가 없다. 차가 다니기에는 길이 너무 좁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도를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어디서 본 듯한 조각상들이 마치 뻥튀기를 해놓은 것처럼 거대하게 서있는 광장이 나타난다.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등 르네상스시대의 유명 작품들의 모조품이라는데, 인체의 조각을 저렇게 정확하고 크게 만들어 놓으니 마주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조각상 저쪽이 우리가 꼭 보고 싶던 우피치 미술관인 모양인데 사람들 줄이 길어 보인다.


광광객들로 바글거리는
시뇨리아광장의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산지오반니 세례당 옆
벽의 녹색 대리석

일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로 더 북적대는 광장을 지나, 일단 가장 유명하다는 두오모성당부터 찾았다.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더 북적대는 거리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바로 두오모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요일은 개관을 안 해, 짧은 시간을 쪼개어 성당 안의 꾸뽈라 전망대를 오를까 말까하는 갈등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옆에는 지오또의 종탑이 있었는데 두오모 성당과 함께 녹색대리석, 분홍대리석, 크림색대리석 등이 어우러진 벽면이 경이로웠다. 재우는 "녹색대리석도 있어?" 하며 신기해했지만, 나도 색 대리석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다양한 색의 대리석으로 이렇게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몰랐다.


황금의 문 - 사람들이 많아서 다가가기도 힘들다


다양한 문양의 대리석 창문

지오또의 종탑에 올라가려다가 화장실도 가고 싶고 우피치 개관시간도 알아볼 겸 인포메이션센터를 먼저 찾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의 모니터가 있어서 반가웠던 인포에서 알려준 public 화장실은 힘들게 찾아갔더니 일요일이라 닫았고, 현지인에게 물으니 화장실은 bar에 가서나 쓸 수 있다고 한다.

포기하고 일단 점심으로 싸온 바게뜨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앉을 곳을 찾다가 지나치게 된 벼룩시장처럼 보이는 뒷골목 시장은 허술한 물건들로 가득해서 꼭 80년대의 남대문시장 같았다.

경치좋은 벤치도 많았는데 어떻게 앉다보니 시장 한구석 돌벤치에 앉아 딱딱한 빵을 뜯고있게 됐다. 제발 부드러운 빵 좀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면서도, 오늘같이 바쁜 날은 이렇게 도시락 쌀 수 있게 해주는 게 좋다고 느껴진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우피치로 가는 길을 찾으러 경찰에게 물으니 이거 뒷골목경찰은 우피치도 모르나 한참을 버벅거리고 옆에 있던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대신 가르쳐 주신다.

들어가 보지 못한 두오모를 아쉽게 바라보며 다시 우피치에 도착하니 아침보다 10배나 길어진 줄에 한번에 들여보내는 사람도 몇 안 된다. 그래도 우피치를 보려면 하는 수 없어 우리도 줄 뒤로 가서 선다.

미술관 앞에 홀로 발레동작인지 현대무용인지를 공연하는 무용수가 보인다. 작은 돗자리를 깔고,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웅장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음악과 춤이 피렌체의 위인들을 쭉 세워놓은 조각상이 있는 길가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사람들의 박수를 많이 받는다.


죠또 종탑


BATTISTRERO 세례당

위험하다는 소문과 달리 경찰이 소매치기보다 많고, 경찰보다 많은 거리의 노점상들은 단속을 피해서 재빠르게 짐을 싸고 걷는다.

우피치 앞은 더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재고품을 덤핑했거나, 동남아에서 온 것 같은 싸구려 스카프나 인조가죽 핸드백 등이 멋모르는 관광객들에게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특히 어수룩한 한국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마누라 선물을 고르는지, 동대문에서 몇 년 전에 본 듯한 비닐가방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걸 볼 때는. 달려가서 여기 물건이 아니라고, 가짜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갑자기 지루하게 줄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인다. 한 쌍의 신혼부부가 오래된 건물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나보다. 심플한 흰 드레스로 바닥을 쓸며 행복한 미소로 걷는 신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좀 더 지켜보니, 우리나라 야외촬영처럼 친구들이 동원되고 사진사가 비슷한 포즈를 주문하여 연출하여 찍는 게 아니라, 그냥 행복한 여행지의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신랑신부는 유적지를 돌고 그런 부부를 비디오기사 한사람이 마치 영화촬영을 하듯 찍으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1482


보티첼리-봄1482

일요일이라 많은 건물들과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많아서 줄서서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줄이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 다른 곳이 다 닫아서 다들 여기서 시간을 보내나 보다.

1시간만에 건물 안에 들어서서도 또 30분 가량을 줄을 서서 표를 끊어야 자유로운 겔러리 입장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아까부터 못 간 화장실을 찾아 급히 계단을 오르다 치마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지현이는 돌계단에 카메라를 패대기쳐서 고장을 내고, 도대체 시간이 촉박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줄서서 기다린 시간이 예상보다 너무 길어져서, 모이라는 시간까지 버스에 도착하려면 지금부터 20분 후에는 미술관 문을 나서야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현이와 헤어져 각자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림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실망시키지 않았다. 20분 동안 우피치를 다 봐야하는 조급한 나와는 달리 수백년을 그 자리에 있어온 그림 속의 여인들은 평화롭고 느긋한 미소를 내게 보내고 있었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오늘따라 닫혀있는 방에 있어서 아쉽게도 못 보았다.


아쉽게 못 본 라파엘로 -자화상 1506

도판만으로도 강렬한 이미지를 주던 여성화가 아르테미지아 겐틸레스키의 "유티드와 홀로페르네스"는 막상 보니 199cm×162.5cm라는 커다란 작품인데다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피가 칼자루를 쥔 유티드의 가슴팍뿐만 아니라 화면 밖까지 튀어나올 것만 같이 생생하여 원하던 만큼 오래 지켜보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발을 가진 르네상스 조각품들도 발길을 붙잡았지만 천천히 눈에 담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아르테미지아 겐틸레스키의

"유티드와 홀로페르네스"

지현이를 다시 만나 15분이나 더 보는 바람에 늦을까 걱정이 되어, 우르노 강변 풍경을 곁눈으로 감상하며 버스를 찾아 뛰었다.

모이는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도착했더니 레이첼은 우리가 늦을까봐 불안했는지 한참 앞에 나와 두리번거리고 있다. 이런 우리를 정말로 허탈하게 한 것은 헉헉거리며 달려온 한국인들과는 달리 관광은 언제 했는지, 하긴 한 건지 여유롭게 잔디밭에 누워 쉬고 있는 외국애들의 모습이었다. 모범생 민혜가 모처럼 늦었다. 맘에드는 가죽지갑을 찾다가 그랬단다. 윤석 오빠도 길을 잘 못 찾았다며 헐레벌떡 들어온다. 우리에게 여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

11.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로마를 누비다.

<한적한 로마 숙소><기운으로 충만한 로마의 유적지들> <발바닥이 부르트게 다닌 로마시>


<눈앞에서 발길을 돌려야한 트레비분수> <해물스파게티가 맛있는 로마의 노천카페>


<한적한 로마 숙소>

그렇게 누가 쫓아오듯 피렌체를 보게 하더니, 로마 숙소에 3시간도 안 걸려서 5시 48분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우면 볼 것 많은 피렌체나 좀 더 보게 하지, 입이 이만큼 나온다.

짐 싣고 내리는 조는 식사준비용 텐트를 치느라 바쁘고, 우리는 2인용 숙소에 빨래줄을 매느라 바쁘다. 거의 매일 이동을 하니 빨래 마를 새가 없다. 윤석 오빠처럼 15개의 헌 양말과 속옷들을 골라 와서 입고 버리는 것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인 것 같다.

로마숙소에는 좀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제일 한적하다. 옆에서는 다른 top deck 사람들이 식사중인데, 웬 동양인 여학생이 보여서 한국사람인 것 같다 아니다 우기고 있었는데 우리말을 알아듣고 온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 팀에 한국인은 자기 혼자라서 맘고생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처음에 자기소개 할 때 영어를 잘 못한다고 했더니 애들이 말도 안 걸고 가이드도 자기에게 한마디도 안 한단다. 무시를 하는 건지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를 한 건지 여린 성격의 소녀였는데, 우리를 만나니 거의 울 것 같이 반가워한다. 그동안 말을 못해서인지 봇물 터지듯 불만을 얘기한다.

듣던 데로 다국적 배낭은 변수가 많은 것 같다. 다행히 우리팀은 운전사나 요리사도 쾌활하고, 특히 우리 가이드는 늘 웃으며 우리를 챙겨주는데, 그들이 새삼 고마워진다. 게다가 6명이 한국인이라 외로워질 새가 없어서 다들 해외여행이 아니라 수학여행 온 것 같다며 투덜대던 우리는 한편으로는 참 행운아인 것 같다. 긴 얘기는 이따가 bar에서 다시 만나 하기로 했다.

로마 캠프장 bar의 일행들 지현이 옆이 외로운 소녀

로마전철표-75분 제한시간 표시가 선명하다

저녁 먹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씻고 편지 쓰고, 기공도 조금 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문 두들기는 소리. bar에 갔던 지현이가 왔나보다. 캠프장 문은 안팎 모두 열쇠로만 열 수 있는데, 이번에는 열쇠는 돌아가는데 문이 안 열린단다. 둘이서 낑낑대다가 윤석 오빠도 와서 열어봤지만 아무리 해도 여는 법을 모르겠다. 밝을 때 연습을 좀 해둘 걸. 결국 자긴 자야하니까 지현이가 높은 창문을 넘어 들어오다가, 별로 술취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중심을 못 잡고 침대에 부딪쳐서 종아리에 손바닥만한 보라색 멍이 들고 말았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에는 우리에 갇힌 원숭이처럼 구조요청을 하게 생겼다. "help me!"

<기운으로 충만한 로마의 유적지들>

잠긴 문은 운전사 matt가 와서 쉽게 열어주었는데 문제는 열쇠를 두 번 돌린다는데 있었다. 캠핑장의 문들은 도난방지를 위해 돌리는 방향이나 횟수가 다양해서 늘 몇 번씩 익히고 나가곤 했는데, 한바퀴 반 돌리는 건 봤어도 두바퀴 돌려야 열리는 열쇠는 처음 보았다. 쑥스럽게 나와서 8시에 준비된 아침을 먹고 로마행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나눠주는 표를 들고 기차에 타니 기차 안에 표를 넣고 시간을 찍는 기계가 있다. 여기도 기차와 기차역에는 온통 예술과 낙서에 경계에 있는 스프레이낙서가 어지럽다. 옆에 흑인 아저씨가 탔는데 특유의 체취가 견디기가 어려워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스레 자리를 피했다. 한국인의 마늘 냄새도 이렇게 온몸에서 나와 외국인들을 괴롭힐까. 향수를 싫어하는 나이지만,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유럽에서 안 뿌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로마시의 북쪽인 flaminio역에 내려서 모이는 시간을 듣고, 레이첼과 함께 다닐 사람들과 헤어졌다. 바티칸 미술관을 먼저 보고싶은 지현이와 윤석오빠와 함께 바티칸에서 가장 가까운 octtaviano-san pietro 역으로 향했다. 레이첼이 따로 표 끊을 필요 없이 아까 표를 그대로 내면 된다고 해서 전철을 타려는데 표검사를 하던 아저씨가 우리만 잡는다. 이탈리아에서는 관광객을 봉으로 알아서 관광객중심으로 표검사를 해서 바가지요금을 뜯는 수도 있다는 걸 들은지라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안 통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산 표로 탈 수 있는 시간인 75분이 초과되지 않았음을 우겨보았더니 두 명이 자세히 살피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보내주었다.

전철역에 내려서 바티칸 박물관을 물어 물어 갔더니 10시 30분인데 담 밖을 빙 돌아 이어진 줄이 길다. 들어가서도 한참 줄을 서서 1/3이나 할인되는 학생표를 끊고 박물관 구경에 나섰다.


바티칸 박불관 금빛 벽화로 장식된 천장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

로마의 기운은 다른 도시와 달리 참 강했다. 역사가 깊은 도시인데다가 세계각지에서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가는 곳이라서 그럴 것이다. 모두 각자 조금씩 기공 수련을 했던 경험이 있는 우리 셋은 이 기운이 신기해서 절로 손이 움직였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했을 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수첩을 들지 않은 한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기를 느끼며 걸었다.

교황의 세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실감이 간다. 호사스럽다 못해 사치의 극을 달리는 각종 교회의 물품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종교를 위한 공간인 교회를 장식하는데 커다란 황금꽃병에 황금장미가 웬 말인지. 가난한 민중들은 이런 교회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속이 다 답답해진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화려한 테피스트리와 천장화로 장식된 복도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바티칸박물관을 찾은 사람이 대부분이므로 가는 길부터 파도처럼 사람이 밀려간다.

드디어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 예배당에 도착했다. 예배당을 가득 매운 사람들은 선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느라 모두들 목을 잔뜩 뒤로 꺾고 있다. 옆에는 역시 유명한 최후의 심판이 있으니 뭘 먼저 봐야할지 망설여진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심판


라오쿤

몇십 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아픈데 노인의 몸으로 몇 년간 어떻게 천장에 매달려 작업을 했을까. 새삼 후세에 길이 남는 훌륭한 예술가는 천재성 보다 땀과 노력으로 작품을 빚어낸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이제 보고싶던 라파엘로 아테네학당만 찾아보면 되는데, 요소 요소에 배치된 제복입은 안내원들이 영 사람을 놀려댄다. 이리가시오 해서 이리가면 아니라고 저리가시오 하고. 또 알려준 데로 가면 엉뚱한 곳이고. 안내원들이 길을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지. 다음부터는 비싸도 미술관지도를 꼭 사야겠다. "사요나라" 하고 인사하는 안내원에게 대꾸도 하기 싫다. 그렇게 드넓은 박물관을 몇 바퀴 빙빙 돌다가 지쳐버려서 포기하고 그냥 나왔다.

우리도 지쳤지만 특히 천지창조말고는 미술관에 특별히 관심없던 윤석오빠는 시간을 낭비하게되어 더 신경질이 난 눈치이다. 원래 미술관 보다 거리를 주로 보는 사람인데 사진기를 고장낸 우리와 오늘 함께 다녀주기로 해서 미술관부터 온 거라 참 미안한다. 그래서 나오는 출구 바로 앞에 우체국이 있었는데 꼭 보고싶던 바티칸우표도 보고 써놓은 엽서도 보내자는 말도 못 꺼냈다. 사진기를 고장낸 지현이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지현이도 내게 불만이 많겠지.


찾다찾다 못찾아간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싼 삐에뜨로사원 돔내부


<발바닥이 부르트게 다닌 로마시>

미술관을 나와 싼 삐에뜨로 광장의 열주 옆에 앉아 점심도시락을 먹는다. 듣던 대로 역시 로마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느낄 수 있던 고대의 향기가 발 딛는 바닥돌 하나에서도 느껴지는 듯 하다. 그 잘 닦인 길 위로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간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러 싼 삐에뜨로사원에 가야하는데 셋 다 바티칸박물관에 너무 지쳐서, 또 줄서서는 곳이라면 어떤 건물 안으로도 들어가기가 싫다.


피아차광장 정면과 후면 그리고 베르니니의 조각들

그래서 집으로 전화나 한 통씩 하고 천천히 걸으며 마차길을 따라 바티칸을 빠져나왔다. 한여름도 아닌데 햇빛에 달궈진 돌길을 걷다보니 어질어질 해진다. 이탈리아에도 왜 씨에스타가 있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 쭉 걷다보니 싼탄젤로 성 앞에 인포메이션센터가 있다. 지도를 구하고 테베레강을 건너 본격적인 로마구경에 나선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고 옛 건물들만 즐비하니 마치 우리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공사를 하고 있는 건물도 많은데 신기한 것은 건물 외관은 그대로 두고 조심조심 속만 파내서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싼 삐에뜨로광장의 열주앞의 정현


아직도 발굴중인 유적지. 로마 곳곳에 이런 곳이 많다

시내 한복판에 아직도 발굴중인 유적지에는 검은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고, 그런 폐허와 호텔이 공존하는 수풀사이로 끊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늙은 광인과, 쪽쪽 소리가 들리도록 입맞추는 연인이 보인다.

11사진 아직도 발굴중인 유적지. 로마 곳곳에 이런 곳이 많다

로마시대에 깔았다는 검고 반듯한 바둑판같은 돌 길 위로 아직도 차와 마차가 함께 다닌다. 좀 더 걸으니 베네치아광장이 나온다. 잔디밭에서 쉬는 유럽 젊은이들을 보며 우리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깜삐돌리오 언덕은 예상 밖의 날씨 탓에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서 오르려다 그만두고, 까라깔라 목욕장을 향해 걸었다. 도시 곳곳이 발굴중인 유적지이다. 폐허만 남아 삭막해 보일 수도 있는데 누군가 꽃씨를 뿌려 놓았는지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삭막하기보다는 쓸쓸한 느낌이 든다.

가는 길에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이 있다는데 안내판이 나올 때쯤 됐는데 안 보인다. 더위에 탈진할 지경이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건물의 쇠창살 벽안에서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보니 바로 진실의 입. 유치하기는 하지만 다들 하는 대로 입에다가 손을 넣고 사진을 찍으며 한마디 해보았다. 스위스에서 만난 미현이가 오해한대로 "지현과 윤석은 신혼부부다" 외쳐보니. 어 안 잘리네. 신혼부부 맞나? 그러면 한국의 애인들은 어쩌나.


베네치아광장 옆의 지현


진실에 입에 손을 넣고 즐거워하는 지현

지도상으로는 걸을만 해 보였는데 걸어도 걸어도 까라깔라(caracalla) 욕장이 안나온다. 고대 마차경주장이었던 곳에서 지금은 관광객들과 팔자좋은 개들만이 노닐고 있다. 땀을 많이 흘려 탈수증에 걸릴 지경이라 물을 사먹으려 마차경주장(circo massimo) 옆 노점상에게 물으니 작은 병이3000리라(1600원)란다. 그냥 사먹었으면 싶은데 아깝다고 다른 데서 사먹자고들 한다.

지도상으로는 걸을 만 해 보였는데 걸어도 걸어도 까라깔라(caracalla) 욕장이 안나온다. 고대 마차경주장이었던 곳에서 지금은 관광객들과 팔자 좋은 개들만이 노닐고 있다. 땀을 많이 흘려 탈수증에 걸릴 지경이라 물을 사먹으려 마차경주장(circo massimo) 옆 노점상에게 물으니 작은 병이3000리라(1600원)란다. 그냥 사먹었으면 싶은데 아깝다고 다른 데서 사먹자고들 한다.

드디어 까라깔라 표지판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내서 언덕을 올라가 보았더니 아뿔싸 다른 날은 7시까지 하는데 일요일과 월요일은 2시까지밖에 안 한단다. 무슨 종로 보령약국도 아니고 일요일에다가 월요일까지 쉴 게 뭐람. 나란히 하늘 높이 삐죽 자란 소나무들 사이로 고양이만 자유로이 드나들 뿐이었다.

한번에 1500명 이상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체육관, 도서실, 사교장, 예술전시실까지 있었다는 호화로운 목욕탕이 폐허로 변한 모습을 보며 과거를 상상해 보고 싶었는데 밖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카라칼라는 놀아도 노점상은 놀지 않았다. 도저히 목이 말라서 안되겠어서 3000리라주고 그냥 물을 사먹었다.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마차경주장 옆에서


입구에서 돌아선
카라칼라 욕장

이번엔 콜로세움을 향해 전진이다. 여행책자에 로마시내는 충분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크기라고 적혀 있어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때는 겨울이었나보다. 아니면 우리가 하루에 보느라고 이렇게 힘든가. 괜히 여행책자를 원망하는지도 모른다. 쉬엄쉬엄 보다 쉬다 한다면 덜 힘들 수도 있겠지.

그래도 지도를 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콜로세움(colosseo)이 눈앞에 있기는 하다. 입장이 무료라고 알고 왔는데 우리나라 지하철역 같은 통과기가 있다. 괜히 들어가기 싫어져서 벽 사이로 살짝이 보고 밖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도 말이 끄는 마차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 한옆에서는 유료로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청동 투구를 쓴 병정과 금빛 옷을 입은 시저복장을 한 광대들이 땀을 뻘뻘 흘린다. 이 더운 날에 말도 병정도 고역이다.

콜로세움을 지나서 조금 가다보니 시대별로 로마의 영토의 변화를 표시해 놓은 지도가 벽면 가득 있다. 가장 광대했을 때의 로마는 아프리카대륙에도 뻗어있고 프랑스를 넘어 영국까지 넘어가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이여.

조금 더 걷다가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위에서 보고 저녁식사를 할 곳을 찾아 중심가로 향했다.


콜로세움 앞의 정현


로마영토변화지도 앞의정현


포로 로마노


로마 뒷골목을 헤매다 만난
바르베르니궁전 국립회화관의 포스터


<해물스파게티가 맛있는 로마의 노천카페>

세 명 다 꼭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고집도 없었는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마땅한 음식점을 찾아 로마의 뒷골목을 1시간 넘게 헤매고 다녔다. 거리마다 피자집은 넘치는데 엊그제 피자는 먹었고 발에 채이게 많은 중국음식점도 내키지 않고, 그러다가 트리토네(fontana del tritone) 분수가 있는 barberini역까지 왔다. 분수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이 있는걸 보니 유명한 분수이긴 한 것 같은데 배가 고프고 힘이 들어 자세히 보고싶은 생각도 안 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옛말이 꼭 맞다.

분수 주변에 노천까페들이 즐비하긴 한데 식사를 하는 곳은 별로 없다. via vittorio veneto 거리를 따라 허위허위 올라가다 보니 Alex cafe라는 유리온실같이 만들어 놓은 거리의 카페에서 동양인 유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하얀 옷을 입은 웨이터들이 지키고 있어서 아주 비싼 곳이라 생각하고 겁먹었는데, 특별한 날인 것 같긴 하지만 수수한 옷을 입은 젊은 연인들이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으니 아주 고급식당은 아닌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트리토네분수


트리토네분수 근처의
알렉스카페

메뉴판을 보기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은 그대로인데, 싸지는 않지만 다행히 주머니의 현금으로 해결되는 액수였다. 문제는 맛인데, 뭘 시켜야하나 이탈리아어로 적힌 메뉴를 봐도 잘 모르겠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해물스파게티를 지현이는 크림스파게티를 시켰다. 양은 정말 적었는데, 커다란 새우가 함께 나오는 해물스파게티의 맛은 조개와 새우, 스파게티의 맛이 모두 각각 살아있으면서 어우러지는, 입맛에 딱 맞는 맛이었다. 한국에서 해물 스파게티를 언젠가 먹어 본 기억이 나는데, 학교앞 싼 집이기는 했지만 모든 재료를 한데 섞어서 크림에 묻힌 잡탕의 해물맛을 내서 별 미식가도 아닌 나를 실망시켰었던 기억이다. 윤석오빠가 시킨 스테이크도 양도 많고 맛있다.

흰 양복을 입은 지배인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다. 지현이가 화장실에 가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 하자 팔을 내밀어 에스코트를 해 주신다. 화장실의 세면대 물을 어떻게 나오게 하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알고 보니 저 밑의 발판을 밟는 식이었다.


<눈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 트레비분수>

식사가 끝났으니, 물이 새는 배를 본뜬 바르카치오 분수를 보러 스페인광장으로 떠날 차례다. 보르게세공원 담벼락을 타고 빙 돌아 스페인 광장에 도착하니 과연 젊음의 광장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동화 소재를 얻기 위해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을 좀 오래 관찰하고 싶었는데, 9시 모이는 시간까지 1시간도 채 안 남아 급히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렸다. 계단에 앉아 여유로이 로마의 저녁시간을 즐기고있던 외국애들의 눈에는 뭐에 쫓기듯 뛰어가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참 이상해보였을 것이다.


스페인 광장의 지현


뜨레비분수

이제 트레비분수(FONTANA TREVI)만 보면 로마의 마침표를 찍는 건데, 아, 여행책자의 안내대로 걸어도 얼른 트레비가 나오지 않는 거다. 표지판도 저기 보이는데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트레비를 무리해서 보고 일행을 놓치고, 당연히 그러면 교외선 지하철 막차도 끊기니 비싼 택시비를 물고 숙소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방향을 돌려 약속장소로 향할 것인가.

소심한 우리는 물론 후자를 택했다. 지도로는 가까운데 어둠이 내리자 FLAMINIO역까지 찾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포폴로 광장도 지나고 아까 분명히 여기라고 한 것 같은데 일행들이 안 보인다. 로마에 흔한 오토바이폭주족 한 쌍에게 물어보고 있는 순간 일행을 찾았단다. 역시 다들 기다리고 있다.

레이첼을 따라 오전 관광을 했던 민혜와 승진언니는 오히려 오후 늦게 바티칸 미술관에 갔더니 사람도 별로 없어서 좋았고, 더욱이 우리를 헤매게 한 안내원도 친절하게 관심을 보이며 박물관 뱃지를 선물했다고 하니 참 샘이 난다. 그리고 우리가 지쳐서 포기한 산 피에트로대사원의 미켈란젤로의 삐에타가 참 인상적이었고, 우연히 듣게된 저녁미사의 파이프오르간 소리도 감동이었다고 한다. 부지런한 아침관광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FLAMINIO역 앞에 모여있는 일행

그런데 늘 모범생이던 노르마가 안 보인다. 같이 다니던 일행과 중간에 헤어졌다는데 위험한 로마의 밤거리를 헤매면 어쩌나 다들 걱정이다. 하지만 막차시간이 다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다들 걱정인데 같은 나라 사람인 마르코만 중간역에서 전철문이 열리자 철없이 "노르마 너 거기 있니?"하며 농담을 해대서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다행히 노르마는 우리보다 먼저 기차역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와 있었다. 어떤 이탈리아 청년이 자꾸 따라와서 무서워서 미리 버스로 돌아왔단다.

로마의 야경을 못 봐서 아쉽다. 버스고장만 없었으면 전날 원래 볼 수 있는 건데. 인포에서 받은 팜플릿의 사진만 보며 입맛 다시고 있다.


아쉽게도 못 본 로마의 멋진 야경

12 물반 사람반 베네치아의 풍경

<바닷가의 숙소><물반 사람반의 베니스풍경>

<용감한 자는 오라 리도섬><아 옛날이여 아카데미아미술관>.


<바닷가의 숙소>

아침부터 7시간을 달려 베네치아 숙소에 오후 4시쯤 도착했다. 주위에 공장 같은 시설도 보이고 큰배도 보이는 나른한 바다냄새가 나는 숙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짐을 풀고 숙소주의를 둘러보니 캠핑장 바로 옆이 바다였다. 눈앞에 베네치아시가 보이는데 마지막 배가 7시 정도에 끊긴다고 오늘은 숙소에서 쉬란다.

외국애들은 어느새 맥주병을 하나씩 들고 바닷가에 앉았는데 우리는 뭐 볼게 없을까하여 숙소 밖으로도 나가보고 일없이 방황하고 있다. 결국 바다 말고는 별 볼일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모기에 뜯겨가며 수다를 떨었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일행을 잃어버려서 저녁도 못 얻어먹을 뻔했다. fugina캠핑장 bar에서 준비해준 특별식은 닭다리와 돼지고기 바비큐였다. 이렇게 양념 없이 담백하게 나온 음식이 오히려 입맛에 맞았다.

운전사 matt와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27살이란다. 그런데 어떻게 애가 둘일까. 그런데 나중에 내가 신기해하니 다들 농담인 줄 알고 안 믿었는데 나만 그 말을 믿고 있었다고 놀린다. 뉴질랜드 사람인데 이런 생활이 적성에 맞나보다. 42일짜리 여행과 38일짜리 여행도 운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숙소가 제법 넓다보니 몇 명의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탈 그림이 그려진 티셔스를 입고있는 여핵생이 있어서 물어보니, 콘티키라는 우리와 비슷한 다국적여행을 하는 아이였다. 혼자 왔다는데, 지난 번 영국에서 만난 여학생과는 달리 40명 가까운 외국인 틈에서 씩씩하고 명랑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비결은? 아예 혼자하는 여행이겠거니 하고 마음을 비우고 여행한단다. 확실히 환경에 잘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는 법을 아는 사람은 따로 있나보다. 나 같으면 그 많은 냉정한 외국인 틈에서 외롭고 스트레스 받아서 잔뜩 의기소침해 있었을 텐데. 참 장해보였다.


베네치아 거리의 포스터 앞의 정현


베네치아 광장 산마르코 성당 앞의 지현

저녁에는 또 두 명의 다른팀 한국인들 만나, 한국인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정보를 교환했는데, 그 팀은 30일 넘는 긴 여행이라서 우리처럼 방갈로가 아닌 텐트생활을 하느라 고생해서 한사람은 목이 완전히 쉬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긴 코스를 택하려다가 텐트가 걱정되어서 관뒀는데 그러길 잘한 것 같다.

다국적 배낭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조금씩 생각이 달랐다. 이동으로 버리는 낮 시간 아깝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고, 언어의 장벽과 놀이 문화의 차이가 커서 여행사에서 직접 직원이 경험해 보고 추천했어야 했다는 불만도 많았다. 우리처럼 한국인이 많은 케이스는 드물지만, 편한 대신 낯선 여행지의 느낌보다 수학여행 온 기분이라, 이럴 거면 국내여행과 별다르지 않아 오히려 별로 라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복잡한 생각 없이 좀 쉬고싶어서 온 사람의 경우, 영어만 좀 된다면 푹 재워주고 먹여주고, 이동방법 고민 안하고 괜찮은 여행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얘기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할 때, 웬 레슬링선수의 풍채를 가진 외국여자아이가 와서 영어로 말을 건다. 말을 받아줄 수 있는 건 민혜 뿐. 한국어로 대화하던 술자리가 순간 아무 소리도 없이 쐐~~해진다. 우리가 뭐 유럽에서는 꼭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애가 왔는데 우리끼리 한국어로 얘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어로 하기도 힘들고 다들 난처해진다.

나는 괜히 답답해져서 슬쩍 일어나서 허우적 허우적 나무사이로 기춤이나 추며 한바퀴 돌고 온다. 몇 분 있다가 그 여자애가 분위기파악하고 갔겠거니, 하고 돌아와 보니 웬걸 처음 보는 팔뚝에 잔뜩 문신을 새긴 분위기가 이상한 남자애까지 끼어들 태세다. 사실 게네들이 이상한 건 아니다. 이런 다국적 여행을 온 사람들은 다양한 이국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고, 알고 싶은 사람들이고 우리도 이런 여행을 하는 이상 그렇다고 생각할 테니까 다가오는 건데, 영어에 약하고 용감하지 못한 우리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뿐이다. 안타까워도 어쩌겠는가. 어렵게 마련된 술자리는 파장되고 말았다.


<물반 사람반의 베니스풍경>

숙소 앞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베니스로 향했다. 오랜만에 배를 타보니 약간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파도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하고, 멀리 보이는 베니스의 이국적 풍경들에 눈길을 뺏기다보니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이따가 저녁에 각자 돌아와야 하는 선착장의 위치를 잘 기억해두고, 일단은 레이첼을 따라 산마르코광장으로 향했다. 길을 잃기 쉽다더니 정말 골목골목을 돌아 목적지까지 갔다. 예술의 도시답게 좁은 길에도 곳곳이 특색있는 유리제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산 마르코광장의 비죽 솟은 막대


산 마르코성당의 정면


베네치아 명화 소장 지도

산마르코사원은 아름다운 내부의 벽화로 유명하지만 줄을 서서 들어가야하는 것 같아 먼저 인포를 찾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여행책자에 두깔레궁전 맞은편이 행정부 신관이고 바다를 면한 그 옆에 인포가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 보았는데 허름한 공원은 나오는데 우리가 찾는 I자 마크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고 나오려다, 공원 구성에 웬 망한 것 같은 주인없는 상점 가판대가 보이고 그 위에 무슨 팜플릿들이 놓여있어서 가 보았더니 거기에 지도가 있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반가워서 애들것까지 덥석 집었더니 어디선가 지키는 청년이 나와 "우노우노"하며 한 장만 가져가란다. 저기 있는 친구들 줄 꺼라고 말해봐도 점점 표정이 험악해질 뿐이었다.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지도를 물로 찍어내는 것도 아니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것도 같아 그냥 돌아서서 레이첼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곤돌라를 타는 곳으로 안내하는데, 저렇게 좁은 수로로 곤돌라뿐만 아니라 모터보트도 다니고 하는데 어떻게 안 부딪치고 잘 가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인지. 곤돌라를 타기 위해 1시간은 기다리는 것 같다.

곤돌라를 모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바지에 줄무늬셔츠를 입었다. 베네치아시에서는 마음대로 곤돌라를 몰 수 없는데, 대게 대를 물려 기술을 익힌다고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이 탄 배에는 악사가 함께 탄 경우도 있는데 아코디언의 흥겨운 선율에 맞춰 힘차게 노래하는 선상가수의 목소리가 운치 있는 베네치아의 뒷골목과 참 잘 어울린다.


곤돌라를 탄 일행


운하를 낀 풍경

다음에는 레이스 공장보러 간다는데 또 한참을 줄서서 기다린다. 피렌체에서 보았던 과일이 듬성듬성 섞인 GELATI 아이스크림대신, 가까이 보이는 대로 색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기다리다가 들어간 레이스가게에는 별게 없었다. 다음에는 유리공장이라는데 우리는 그냥 각자 다니겠다고 레이첼에게 말하고 일찍 나왔다.


레이스가게


유리세공가게의 진열대


<용감한 자는 오라 리도섬>

민혜가 리도섬에 가려고 한단다. 우리도 생각은 있었지만 섬 하면 너무 멀리 있을 것 같아서, 베네치아를 하루만에 다 봐야하는 우리로서는 무리 같아 일정에서 뺐었는데 그다지 멀지 않다니 한 번 가보고도 싶어진다.

수상버스인 VAPORETTO 표를 끊고 몇 번을 물어보아서 드디어 리도행 버스 아니 배에 올랐다. 인포에서 받은 노선도를 보니 우리나라 버스처럼 여러 번호의 버스들이 섬과 섬 사이를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배도 리도섬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서서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하면서 리도섬까지 갔다.

15분 정도 있으니 리도섬에 다 왔단다. 이렇게 가까운걸 안 왔더라면 후회할 뻔했다. 생각해보니 베네치아 자체도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인데 가까운 게 오히려 당연하다. 오긴 왔는데 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우리들. 어디로 갈 지 막막하다. 일단 벤치에 앉이 도시락 바게트를 먹고, 선착장의 커다란 지도를 확인한 뒤 그 유명하다는 리도해안을 보러 나섰다.

배와 사람이 뒤섞여 바글바글한 베네치아시내와 달리 리도섬은 사람이 거의 안보이는 한적한 섬이었다. 하지만 흙냄새 풀풀 나는 섬이 아니라 도시보다도 더 깨끗하게 도로가 닦여있고, 고급상점과 호텔들이 즐비한 세계적인 휴양지였다. 이탈리아에서 신발을 하나 사고 싶다던 윤석오빠는 로마에서 실패한 꿈을 여기서 이뤄보려했으나, 여기는 대부분의 상점이 부유한 노인들을 위한 상점이라 다자인도 가격도 맘에 들지 않아 하는게 당연했다.


한적한 리도섬 바닷가

슬슬 바닷가처럼 보이는 풍경이 나타나는데, 개인 별장이나 호텔로 막혀있어 바닷가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다. 다행히 공사중인 쪽이 있어서 그리로 들어갔다. 드디어 바다다. 듣던 대로 파란 바다와 고운 모래는 마음을 붕 띄우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이렇게 고운 모래만 모여있는지 발가락사이로 모래가 물처럼 새어나간다.

햇살이 사방에서 눈을 찔러 눈을 뜰 수가 없다. 왜 이탈리아 썬글라스가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지 이 햇살 속에 있으니 이해가 된다. 날씨는 뜨거웠지만 우리나라 여름과 달리 건조한 공기 덕분에 쾌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신기했다.

비수기라서 넓은 바닷가에 사람은 두세명 밖에 안 보인다. 삼각 수영복을 입은 웬 건장한 할아버지가 몸매를 과시하며 해안가를 걷고 있고, 방파제에는 용감한 아가씨가 비키니도 벗어던지고 선 채로 썬탠을 한다. 그 뒤로 옷을 첩첩 껴입은 우리가 두리번 거리며 지나가는 풍경은 누가 봐도 참 컬트했을 것이다.

바다가 부르는 소리를 누가 거역하랴. 나를 뺀 일행들은 모두 하나둘 누가 빠뜨리지도 않았는데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으로 뛰어든다. 짐 지키며 사진만 찍어주는 나. 아 아쉬워라. 평소에는 바다만 보면 사죽을 못써서 밤바다는 물론 겨울바다에도 뛰어드는 나인데, 오늘은 영 몸이 안 좋아서 참아야만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물놀이를 한판하고 나온 일행은 이제 옷을 말리며 모래밭에 앉아 바다를 보고있다.. 아 나른해라.

모래 가득 묻은 청바지를 끌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우는 자꾸 시원한 맥주한잔이 그립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노상카페에 들려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버스 아니 배를 탔다.


성수기의 리도섬


<아 옛날이여 아카데미아미술관>

누나와 매형에게 선물할 썬글라스를 사러간다는 윤석오빠를 빼고 우리는 계속 배를 타고 아카데미아역까지 갔다.

단정한 건물의 아카데미아는 낮에는 자연채광을 하고 있었는데 날이 저무니 해의 방향에 따라 천창의 블라인드의 각도를 바꿔서 조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한창때의 베네치아를 그린 그림이 많았는데, 지금은 관광도시 일 뿐인 베네치아가,과거 이탈리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모든 것이 넘쳐날 때의 빛나는 영화를 그린 그림들을 보니, 지금과는 다른 활기로 넘칠 베네치아의 옛모습이 상상되고도 남았다.

특히 산마르코광장에서 열리는 종교 행사등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아까 산마르코광장에 삐죽삐죽 솟은 막대들이 뭘 하는 걸까 했더니, 그림 속에서 보니 예전에는 황금깃발이 걸려 너풀대던 깃대였다.


한창 때의 산마르코광장의 황금깃발

베를리니의 그림들은 섬세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하녀인 듯한 노파를 주인공으로 한 지오르지오네의 그림은 성화들로 가득한 미술관 안에서 그림에 대한 또 다른 화가의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지오반니 베를리니의 성모자


지오르지오네의 노파


hans memlinc memling 의 젊은이의 초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도는 30CM 밖에 안 되서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미술관을 나와 엽서를 부친 뒤 골목골목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선착장에 모였다. 그런데 들고있던 그림통을 놓쳐서 재우의 다리에 상처를 입혔다. 톱니같은 모서리에 찍혀서 피까지 났다.

여행지에서 다치면 참 불편하고 짜증스러운데 어떻게 하나.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라도 사주려고 잠시 근처의 가게를 기웃거렸는데, 그 사이에 배가 왔는지 사람들이 말없이 사라진 나 때문에 마음 졸였단다.

문제아가 되고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다 몸이 안 좋은 탓으로 돌려야 내마음이 편하지.


아카데미아미술관앞에서


포스터앞의 정현

숙소 바에서는 오늘밤도 광란의 술잔치이다. 다른 버스 여행객들까지 바글바글해서 탁자 위에 올라가 춤추고 난리이다. 소음에 약한 내가 5분 이상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아 구경만 하고 숙소에 돌아와 짐을 싸고 엽서를 썼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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