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안기고 싶은 자연 스위스

<스위스로 가는 길><자연의 품에 안기고 픈 하이킹 코스><트륌멜바흐폭포>

<케이브카로 다가가는 쉴트호른><꽃밭에 홀려 길을 잃다>

<식빵을 퐁듀에 퐁당 빠트리면...><역시 어려운 bar 문화>


<스위스로 가는 길>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해서 10시간을 달려가야 스위스가 나온단다.

끝없이 펼쳐지는 플랑드르 평야가 부러울 정도이다. 이런 풍요가 뒷받침되었기에 파리의 문화예술이 꽃필 수 있었다는 게 절로 이해가 된다.

휴게소에서 또 간이의자를 펼쳐놓고 짧은 점심을 먹었는데, 빵에 발라먹으라고 나온 소머리가 그려진 삼각형치즈가 입맛에 맞았다. 오랜만에 나온 밥도 반가웠다. 물론 우리네 밥과는 다른 밥샐러드에 가까운 요리였지만.

입맛에 맞는 소머리표치즈(진짜이름은 따로 있겠지만 소머리가 그려져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차 안 이동시간이 길다보니 외국애들은 대부분 잠을 자는데, 심심할까봐 그러는지 가끔 가이드가 깨워서 이것저것 시킨다. 이번에는 우리 여행의 주제가를 정하란다. 알 수 없는 팝송 대여섯개를 들려주고는 투표를 하라는데, 애쓰는 모습은 고맙지만 조용히 좀 가게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장시간 운전을 하는 운전사를 위해 차 전체에 언제나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놓는데, 평소에도 아주 작게 음악을 듣는 편인 나에게는 거의 고문에 가깝다. 이렇게 듣다간 고막이 상할 것 같은데 모두들 태연하다. 나만 너무 민감한가. 녹음해온 노래들도 모두 조용한 노래들이라 이어폰을 껴봐도 소용이 없다. 운전사가 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참아봐야겠다.

프랑스 마지막 휴게실이라며 남은 돈을 쓰라고 한다. 싸고 부드러운 베개가 있어서 사고 싶었는데 전화하느라고 못 샀다.

웬 베개인가 하면, 이런 식으로 여행의 절반 이상이 버스이동인 줄 미리 알았는지, 몇몇 외국애들은 자기 집에서 늘 쓰는 것임이 분명한 커다란 곰인형만한 베개를 버스 안에 안고 타는데, 그게 너무 편해보여서 지현이와 우리도 하나 살까 생각 중이었던 차에 발견된 베개라서였다. 하지만 단체여행이 끝나면 오히려 짐만 될 게 뻔하므로 못 산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어라, 요리사가 츄파춥스를 한 통 가득 들고 들어온다. 한 개씩 돌리는 걸 보니 앞으로도 심심할 때마다 주려나보다. 단 것을 물고 있으니 기분이 좀 좋아진다.

<드디어 스위스>

스위스에 점점 가까워지니, 방금 지나온 플랑드르랑 비슷한 풍경이 뒤로 조금씩 더 높은 산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간에 잠깐 환전소에 내려준다. 우리야 다 해왔지만 다른 사람들 하는 걸 보니, 도시의 환전소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어도 불어도 잘 안통하고 아주 고생을 한다. 창구 앞의 환율표는 몽땅 다 낯선 언어라 눈에 잘 안 들어온다. 환율표를 안 만들어 왔으면 많이 헤맬 뻔했다.

이제 눈앞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스위스의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몇 시간 차이로 이렇게 풍광이 달라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라흐터브루넨의 우리 숙소까지 굽이굽이 계곡을 끼고 호숫가를 지나가는 산길의 경치가 한순간도 놓치기 아깝다.


스위스의 만년설을 인 봉우리


숙소앞에서 팔벌리고 심호흡하는 정현

드디어 10시간 반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통나무 숙소 바로 옆이 깎아지른 듯한 산이고 빙하 폭포도 눈앞에 있다. 여행 떠나서 처음으로 정말 내가 한 번도 안 딛어 본 땅에 왔다는 게 실감난다. 꿈속에서나 보던 풍경이라고나 할까. 인공물이 아닌 자연이 주는 감동에 벅차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특히 숙소 앞에 떨어지는 긴 빙하폭포는 옆으로 퍼지는 물안개가 너무 환상적이라서, 재우와 영국인 Nick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게 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뿌려놓은 드라이아이스라고 오해하고 우길 정도이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요리도우미들은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지현이도 이번엔 뭔가를 해야할텐데. 식사준비를하는 모습들의 배경에 하얀 알프스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서 묘한 운치를 더한다. 무슨 고기인가를 굽는 모양인데, 요리도우미인데도 한번도 안 나타난다고 지현이가 투덜거리던 멕시코인 마르코가 연기를 맡으며 고생한다.


산을 배경으로 고기를 굽는 마르코


식사배급하는 지현

식사준비가 끝나고 지현이가 배급을 준다. 통나무의자에 앉아 만년설을 보며 스프를 떠먹는 기분이 참 묘하다. 경치에 취해서 그 다음에는 뭘 먹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그냥 먹어도 되는 스위스 물이라는 물맛도 보고, 해질 때까지 목을 빼고 숙소근처 풍광을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4인실이다. 민혜와 엘러지와 함께 쓰는데, 지현이와 셋이서 샤워하고 같이 세탁기를 돌린다고 나갔다. 여기숙소는 샤워도 세탁도 모두 동전이 필요하다. 4분 정도 더운물이 나오는데 1/25스위스 프랑(330원)정도이다. 원래 여행 와서 매일 목욕할 생각은 없었는데, 외국애들하고 같아 다니다 보니 어째 얘네들과 생활습관도 닮게 되나 보다. 그리고 장시간 버스여행을 하다보니 피로가 쌓이고 땀도 많이차서 꼭 씻고 자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라흐터브루넨의 통나무 숙소


사진 나무로된 축구게임

하루도 예외없이 외국애들이 하는 것은 샤워뿐만이 아니다. 바(BAR)에서 밤새 술마시는 것. 얘네들에게 맥주정도는 술도 아닌지 매일 밤 마셔대고도 차안에서 한잠 자고나면 멀쩡하다. 여행 초반이라 며칠동안은 몸을 사렸지만, 장소도 장소이니 만큼 맑은 공기에서 맥주한잔은 괜찮겠지 싶어서 바에 가 보았다.

흑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분위기를 살폈지만 아무래도 우리 한국인들이 밍밍한 맥주를 마시며 밤새 시끄러운 음악 틀어놓고 영어로 떠드는 분위기에 동참하기는 무리였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리끼리 뭉쳐지고, 옆에 있는 손으로 돌리는 축구게임에만 계속 붙어있게 된다.

이 놀이기구는 "일포스티노"라는 아름다운 영화에서 주인공인 순박한 우편배달부와 멋진 아가씨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하던 게임기구인데, 영화에서 볼 때는 무슨 재미에서 하나 했는데 실제로 해 보니 내가 차거나, 상대편이 찬 공이 내가 돌리는 나무인형에 닿는 느낌이 손에 전해지는 참 신나는 놀이기구였다. 스타크레프트에 열광하는 요즘아이들은 이런 놀이기구의 재미를 알까.

맘먹고 바에 갔지만 저금통처럼 동전을 먹어대는 축구게임만 밤새 할 수는 없는일. 군대가기 전에 영어의 바다 속에서라도 원 없이 즐기다 가고 싶다는 용감한 재우만 빼고, 우리는 모두 일찍 들어와서 자고 말았다.


<자연의 품에 안기고 픈 하이킹 코스>

다들 인터라켄 꼭대기에 오르는 오늘 아침 식사는 6시 반이었다. 오 부지런한 요리사여. 우리들 점심 샌드위치 재료까지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히 먹고 또 재빠르게(재빠르지 않으면 늘 뭔가 빠진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길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스위스여행준비를 할 때부터 웬지 인터라켄보다는 쉴터호른 봉우리 쪽에 더 마음이 갔다. 인터라켄은 다들 좋다기는 하는데 TV에서도 몇 번 봤고, 여기저기서 얘기도 많이 들어서 오히려 신비감이 떨어졌다. 대신에 사람들이 덜 찾는다는 쉴터호른쪽에는 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는 폭포도 있고, 걸어서 가는 길의 경치도 아름답다고 하여 같이 갈 사람만 생기면 그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이드는 인터라켄만 안내해 준다지만 다행히 일행 중 윤석 오라버니도 쉴터호른쪽이 맘에 든다고 해서 지현이와 나 이렇게 세 명은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출발시간 7시 반. 우선 TRUMMELBACH 폭포를 찾아나섰다. 숙소 앞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한다고 그냥 가려고하셨는데 우리가 찾는 곳을 써서 보여드리며 하이킹을 원한다고 하자, 아하 하면서 친절히 알려주셨다. "저쪽길로 가다가 소목장이 이면 오른쪽으로 돌고......"독어도 영어도 아닌 할아버지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신기하다. 아마도 바디랭귀지 덕분이겠지.


사진 하이킹코스를 걷는
지현과 윤석


소목장옆의 지현과 윤석

한걸음 걸을 때마다 감탄이 나와서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고, 사진기를 닫을 새가 없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이 연인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촬영감독이나 된 것처럼, 굽이굽이마다 영화의 장면 같아서 셔터를 눌러댄다.

"필름 좀 아껴. 언니 지금 흥분했어" 맞는 얘기다.

그림같은 풍경에 흥분해서 가슴이 막 뛰고 모든 게 좋아 보인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에 두고 온 사람이 떠오른다. 나중에 꼭 함께 오고싶은 곳이다.

사진만으로는 이 느낌을 다 담을 수 없어, 소방울 소리며 폭포소리를 테이프에 담으려는데, 아, 이번여행의 징크스. 필요하면 없다. 오늘 따라 공테이프를 안 가지고 왔다. 어쩌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마음에 담아가는 수밖에.


길 옆 우물과 꽃밭 뒤로 본보이는 설산

하이킹 코스 길가에서 보이는 빙하 폭포들


<트륌멜바흐폭포>

부지런히 걸었더니 8시 20분쯤엔 트륌멜바흐폭포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너무 서둘렀는지 매표소도 닫혀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트륌멜바흐폭포의 위용을 제대로 보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폭포 내부로 뚫어놓은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나보다.

다시 입구로 나와 앉아서 길가의 수선화와 함께 사진도 몇 장 찍고, 점심으로 싸간 빵도 한 개씩 먹었다. 화장실은 공사중인지 푸세식(?) 임시화장실이 있었다.


트륌멜바흐폭포입구의 간이화장실


수선화와 함께한 정현

9시쯤 되자 숲 속의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나타나는 일본이 젊은이 2명. 정말 칼같이 문여는 시간에 온다. 5분쯤 있으니 역시 나이 지긋하신 일본인 관광객 서너 분이 가이드와 함께 오신다. 이렇게 일찍 움직인 걸 보니 아마 이들도 우리처럼 오늘 스위스의 명소 두 군데를 보려고 하는가 보다. 그래도 무대뽀로 일찍 나선 우리와 달리 정확히 시간을 맞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케이블카는 10스위스프랑(6600원)으로 비싼 편이다. 빵을 다 먹고 천천히 올라갔는데도 아까 그 나이 드신 일본인 일행과 같은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일단 문이 닫히자 무서운 속도로 올라간다. 몇 분만에 금방 내리기는 했지만 단숨에 컴컴한 동굴 속의 몇십m 위로 올라오니 아찔하다


케이블카의 속도감


트륌멜바흐폭포앞의 지현

이제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위아래로 층층이 펼쳐진 폭포를 감상하면 되는데, 낮은 조명과 굉음 때문에 조금은 으시시하다. 폭포를 밖에서 구경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안에 들어와서 곁에서 구경한 적은 없어서 참 새롭다.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올려다만 보다가 위나 옆에서 보며 물보라를 맞아보니 어지러운 것도 같고 물속에 있는 것도 같고 그렇다

폭포 안에 들어와 보니 왜 시인들이 폭포를 남성에 비유한 시를 많이 썼는지 알 것 같다. 칼라보다는 흑백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커다란 소리 속에 고독과 외로움을 감춘 채로 굵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는 가까이서 보면, 실은 수많은 물보라가 모여서 된 것이다. 자잘한 물방울만큼이나 여린 감성들을 숨긴 사람처럼, 폭포는 가까이 있어도 참 손대기 어려운 대상인 것 같다. 웬지 모를 두려움에 눈앞에 있는 그 먹빛 물줄기에 손 한 번 못 담궈봤다.

구비구비 특색 있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폭포들 앞에서 물방울을 피해가며 사진찍는 것도 힘들었지만 재미였다.

폭포를 구경하며 내려오다 보니 한쪽으로 아까 그 일본인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안타고 걸어 올라오는 길이 있었나? 알 수 없는 일이다.

동굴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는 꼭 동화책의 주인공이 살 것만 같다.

.


트륌멜바흐폭포사진

내려오는 길에 엽서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진짜 에델바이스 가 들어있는 목걸이가 참 예뻐보였지만 셋 다 선물로 살까 망설이다가 큰 숨 한번 쉬고 돌아섰다.


트륌멜바흐폭포 팜플렛의 멋진 흑백사진

<케이브카로 다가가는 쉴트호른>

한 시간 정도 트륌멜바흐폭포를 만나고 나와, 표지판을 보고 역시 아름다운 경치사이로 40분쯤 걸으니 쉴트호른케이블카 입구가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연결되어있는 케이블카의 모습은 아래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안에 자전거도 넣을 수 있는 큼직한 케이블카가 왕복 66스위스프랑(4만4천원)으로 인터라켄 보다 싸다지만 현지 여행경비 중 가장 큰 지출이 아닐 수 없다. 학생증과 유레일을 다 내밀어 봤는데 끄덕끄덕 하는 게 할인이 된 가격이라는 건지 안 된 가격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빨간 케이블카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모두 창가에 붙어서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중간에 작은 마을에서 몇 번 정차하기도 했는데, 길가의 경치가 너무 예쁜 그 마을까지도 하이킹코스가 나 있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올라올 수 있었나보다. 노란 꽃이 군데군데 핀 작은 산간 마을들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빙설로 가득한 날카로운 산들로 바뀐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주변의 눈덮힌 산들이 모두 보인다.

케이블카안에서 미현이라는 혼자 자유배낭 왔다는 여학생을 만났다. 사근사근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귀여운 아이인데, 씩씩하게도 그 위험한 스페인까지 다 혼자 다닌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케이블카의 불안함을 달랬다.

15분 오르니 드디어 현대식으로 생긴 납작한 모양의 쉴트호른 전망대가 나타났다. 얼음으로 뒤덮힌 뾰족한 산 꼭대기에 어떻게 이런 건물과 케이블카를 만들어 놓았는지 새삼 스위스사람들의 관광개발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쉴트호른 케이블카지도


케이블카에서 본 쉴트호른전망대

전망대에는 넓은 영화 상영홀이 있었는데 여행책자에선 본 대로 중앙의 기둥에 있는 버튼을 눌렀더니 홀 안의 모든 창문에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쳐지면서 쉴트호른을 배경으로 한 007영화가 일부가 나왔다.

밖으로 나가려고 2층으로 가려다보니, 나이드신 한국인 아주머니를 모시고온 가이드가 고산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천천히 올라야 한다며, 한계단 한계단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뛰어다녔는데, 그래서 인지 일행 중 몇 명은 멀미가 나고 자꾸 눈이 감긴다고 한다. 고산병과 증세가 비슷하기는 한데 젊다는 것 하나 믿고 그냥 버텼다.

드디어 하늘아래 구름과 나뿐인 정상 바깥으로 나섰다. 내 발로 걸어 올라온 게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와서인지 이렇게 높은 곳에 와 있다는 게 잘 실감이 안났다. 하늘이 정말 파랗게 맑은 날이라서 융프라우까지 다 보였다. 지금 민혜와 일행들은 저기서 야호를 외치고 있겠지.

생각보다 바람도 별로 안 불고 춥지도 않았다. 산위 기온은 날씨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쉴트호른 전망대의 정현


쉴트호른 전망대의 지현

다들 눈이 부셔서 경치를 너무 오래 바라보지는 못하고 식사를 하러 회전 전망대로 들어갔다.

그냥 샌드위치를 꺼내서 먹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경치에 취한 사람들의 다수의견에 밀려 힘을 못썼다.

중앙의 요리실과 바깥을 향한 통유리 말고는,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도 통로도 모두 한꺼번에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지현이 말에 의하면 남산타워에도 이런 데가 있다는데, 나는 처음이라서 너무 신기했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가족들은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데, 메뉴도 낯선데다가 주머니사정도 넉넉치못한 우리 네명은 한참을 고민해서 늘 그렇듯 오늘의 요리(special daily)하나와(19스위스프랑=1만3천원정도) pork sausage하나(19.9sf) 헝가리안 굴라쉬스프하나(9.8sf) 그리고 스파게티하나를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스파게티를 선택했던 미현이는 한국보다 면을 덜 익힌 것 같다고 하는데 우리 top deck요리사의 스파게티 셀러드도 그랬던걸 보면 유럽사람들은 면을 약간 덜 익힌 듯 먹나보다.

음식도 문화라는데 고산병 비슷한 증상 때문인지, 네 명 모두 스위스의 유명한 음식이 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바람에 엉뚱한 음식만 먹은 것 같다.

어질어질 식사를 마치고, 쉴트호른의 경치를 담은 포스터도 한 장 사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온 길을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중간에, 올라올 때는 다른 쪽에서 올아왔던 미현이의 표 때문에 검표원과 잠시 실랑이가 있었지만, 미현이의 미소와 간절한 부탁에 잠시 난감해하던 순박한 산골청년이 무사 통과시켜주었다.


무사히 내려온 미현이와 폭포앞에서


하얀 꽃나무 앞의 지현

미현이에게 트륌멜바흐폭포에 가보라고 권했는데, 미현이는 흑백필름만 가져왔다고 해서, 오히려 흑백으로 찍은 멋진 팜플릿을 보여주며에, 거기 있는 것처럼 폭포사진을 잘 찍어보라고 얘기해 줬다. 그런데 가는 길의 풍경도 너무 예뻐서 흑백필름만 가져온 미현이가 안타까워 함께 또 여러장 사진을 찍었다. 어디에서도 그대로 다 그림같은 배경이라 골라 찍기 어려웠다.

길가의 집들도 하나같이 다 꽃 아니면 인형들로 장식을 해 놓았는데, 민박을 하는 집도 있고, 소 키우는 집, 목공소하는 집 등 드문드문 개성있는 장식을 자랑하는 집들이 많았다. 빨래줄에 나란히 날리는 아이와 어른의 낡은 청바지가. 한가로운 이곳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다. 이런데 살면 나쁜 마음을 갖고 싶어도 다 자연 속이 묻혀버릴 것만 같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왜 그렇게 맑고 밝았는지 알 것 같다.

아까부터 여기 아이들과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하던 윤석오빠가 드디어 아이들을 발견했다. 집앞에서 그네를 타고있던 아이들인데, 잘 놀다가 우리가 다가가니 엄마치마 뒤로 숨어 버린다.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단다. 엄마는 사진찍는 걸 허락했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함께 찍으려면 아이들의 경계를 풀어야겠다.

다행히 가방을 뒤져보니 냉장고에 붙이는 한복 입은 컬러찰흙인형이 있다. 한 개씩 받고 나서야 겨우 우리 옆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수줍음 많은 아이들과 함께


<꽃밭에 홀려 길을 잃다>

미현이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는 좀 힘이 든다. 버스를 탈까도 했지만 시간도 안 맞고, 경치도 오래 보고 싶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의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미현이는 스위스에서는 히치하이킹도 좋았다는데, 우리는 셋이라 그런지 차들이 좀 경계하는 눈치이다.

올 때 분명히 봐 뒀던 건물이 가도 가도 안나온다. 왼쪽의 빙하 폭포는 하나 뿐인 줄 알았는데 가다보니 자꾸 나와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나보다.

한참을 가다보니 낯선 마을이 나오는데 올 때 지나쳤던 마을이 아니다. 모르는 역도 나오고. 오늘따라 늘 챙기던 숙소 주소도 놓고 나왔는데, 조금씩 걱정이 된다. 그 와중에도 지현이는 예쁘게 꾸며놓은 묘지가 있다며 구경하고 있다.


꽃으로 예쁘게 꾸민 마을 공동묘지


길가에 가득한 야생화들

이 길인가 싶어 가보면 개인주택 앞마당이고, 또 그 건물 뒤고, 아무래도 되짚어가서 찾아야겠다.

그렇게 얼마를 찾다가. 캠핑같이 보이는 곳이 있어서 뛰어 가보니, 인터라켄에 갔던, 우리 일행들이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창피해서 길 안 잃어버린 척 태연히 인사했다.

헤매는 바람에 가려던 우체국에 못 가나 했더니 늦게까지 우체국이 연다고 한다. 우리가 다닐 나라 중 가장 추운 곳인스위스가 이렇게 더우니 스웨터를 서울로 보내버리고, 영국 테이트 겔러리에서 산 무거운 그림들도 보내버리기로 했다. 보내는 비용이 너무 들면 우리보다 보름 넘게 빨리 한국으로 가는 윤석 오빠가 가져가 주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이곳의의 우편요금은 한국으로 보내는 게 우리나라 국내요금 정도였고, 보내는 수속도 간단했다. 하지만 비쌀까봐 등기우편 같은 걸 신청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니 무사히 집에 도착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골마을이라 가게가 몇 개 없지만 시계점이 보여서, 선물로 스위스시계를 살까해서 들어가 보았다. 가격은 한국 가격의 1/3도 안 되서 확실히 싸기는 한데, 다들 만지작 만지작 망설이기만 하다가, 하나도 안 사고 그냥 나왔다. 물건을 살때는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데, 물건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우리 일행은 너무 신중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

숙소에 와보니 마르코라는 멕시코애가 시계를 두 개나 샀다고 소문나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일거수 일투족 서로 다 아는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줄줄이 새 시계를 차고 왔다면 애들이 뭐라고 했을까. 아까 값도 싸고, 금속이 아닌 돌로 본체가 만들어져 몸에 좋을 것 같아 맘에 드는 시계가 있었는데 사지 않은 게 다행인 것도 같고........아 눈에 밟히는 돌시계.


<식빵을 퐁듀에 퐁당 빠트리면...>

오늘 저녁은 허리 아픈 낚시의자에 앉아서 모기 뜯기며 먹는 게 아니라, 특별히 현시식을 먹어보는 날로 캠프장 내의 바에서 퐁듀 라는 스위스 전통음식을 먹는다.

테이블에서 우리나라 뚝배기 같이 생긴 그릇에 보글보글 치즈를 끓인 뒤 기다란 포크로 무언가를 넣어 찍어먹는 유명한 음식인데. 문제는 그 무언가가 뭐였냐에 있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비프퐁듀, 야채퐁듀, 해산물퐁듀등 다양한 퐁듀가 있는데 우리가 먹은 것은 식빵퐁듀였다. 거창한 치즈 그릇에 달랑 빵만 나오길래 우리는 이건 준비고 뭔가 더 나오겠지 기대했지만, 역시 학생들 여행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대신 레이첼이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치즈그릇에 식빵을 찍다가 빠뜨린 사람은 일행 모두에게 뽀뽀를 해야하는 요상한 게임이었다. 우리정서로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게임이라 한국인은 다들 황당해 하고 있는데, 게임은 진행되고 젖은 빵을 치즈그릇에 안 빠트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신경을 곤두세운 우리 한국인들 말고는 줄줄이 걸려서 뽀뽀를 하러 돌아다닌다. 윤석오빠는 뉴질랜드 롹가수 아니 롹가수처럼 터프한 간호사언니의 뽀뽀를 받고 얼굴이 빨개진다. 우리 테이블은 빠뜨려도 서로 말하지 않기로 하고 묵묵히 치즈만 노려봤다. 이런 게 문화체험이라는 건가. 밤늦도록바에 있던 애들은 더한 게임도 많이 목격했다던데 이제 상상이 간다.

<역시 어려운 bar 문화>

오늘 저녁에도 식사 후에 다들 바에 모여 노는데 우리만 방에 들어와 있을 수도 없어서 bar에 가보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말이 통하는 한국인들끼리 모이게 되고, 여자들은 술도 다들 안 좋아하니 주스잔만 홀작거리고 있다.

혼자와서 약간 아웃사이더인 노르마라는 멕시코 아가씨와 영국에서 민혜의 룸메이트였다는 엘러디가 우리와 함께 있는데 더블잭인가 뭔가 하는 카드게임을 힙겹게들 하고 있다. 내가 카드를 안하고 멀둥멀뚱 있었더니, 다른 게임을 하자고 얘기가 나와 외국인들에게도 이해가 쉬운 엄지손가락 들어 숫자맞추기게임을 했다. 여러사람이 동시에 들어 그 숫자를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건데, 맞춘 사람이 그 숫자 만큼 손가락으로 나머지 사람 전부의 손목을 때리는 고전적(?)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이해가 된 듯, 안된 듯 따라오던 노르마가 웬지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이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봐주면서 살살 때려서는 안되는게 암묵적 룰이라, 평소에는 착해보이던 우리들이 그렇게 세게(사실 한국에서 게임하던 것에 비하면 아주 살살 때린건데) 때리자 뭐 이런 게임이 있나 싶어 황당했나보다. 그래서 어렵게 뭉친 이 자리도 금방 파장되었는데, 외국인에게 가르쳐줄 쉬운 전통놀이 하나 정도 생각해 오지 못한 게 좀 후회됐다. 그래도 때리기게임은 너무 심했나?

어쨌든 방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게네들의 bar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써 온 며칠간의 우리들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났다. 여행이라는 게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고 다녀야 하는 건데,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위축되어 있던 우리가, 너무 게네들의 여행 패턴에 우리를 맞취야 한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렵사리 떠난, 어쩌면 평생의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유럽여행이라 될 수 있는 한 많이 보고 느끼는 게 목적이다. 반면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네들은 다음 휴가 때도 오고, 그 다음에도 또 오고 할테니까 우리처럼 여행책자를 보며 골머리 썪지도 않고, 보려던 것 못보고 갈까봐 마음 급하지도 않고, 그냥 즐기고 마시며 지낸다. 이런 것을 우리가 따라할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그리고 진짜 외국 친구가 사귀고 싶었다면 영어공부를 더 많이 해와서 당당하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일이었다.

그런데 신경 쓰느라 진짜 나의 여행목적인 글모이 얻기나 기공 동작 개발하기는 뒷전이었던 것도 억울하다. 내일부터는 우리의 여행목적에 맞게 행동하기로 했다.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