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국적배낭 첫날-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떨리는 외국인들과의 생활><페리안에서의 점심> <수학여행인지 다국적배낭인지>

<규모로 압도하는 개선문과 에펠탑><아 멋진 파리의 야경>


<떨리는 외국인들과의 생활>

4시 반에 일어났는데도 짐 싸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늦을까봐 허둥지둥 earl's court의 집합장소로 향했다. 투어버스를 놓치면 프랑스까지 우리가 배타고 가야하는데 그건 생각만 해도 너무 막막했다.

지영이와 혜진언니가 주고 간 계란으로 허기만 면하고 지하철에서도 마구 뛰었다.

우리나라는 어떤 단체이든 모이라는 시간에 정시 출발하는 경우가 없는데,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다더니, 6시 50분 출발시간 10분전인데도, 정말 우리 빼고는 다 와있다.

버스에 타서 둘러보니 모두 20명 정도로 생각보다 인원이 많지 않은데 그 중 한국인이 6명이나 된다. 아무래도 1개 군단을 형성할 것 같다.운전사와 요리사(요리를 공부하는 학생이란다.)그리고 투어가이드를 빼면 더 적어진다.

다양한 외국 친구들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는데 좀 실망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많아서 맘이 놓인다. 특히 미국에서 1년 간 교환학생으로 있다가 귀국하는 길에 여행을 한다는 민혜가 앞으로 우리의 통역을 맡아서 해줄 생각을 하니 쫑긋 세웠던 귀의 힘도 빠지고 긴장이 다 풀린다.

프랑스로 가는 페리호를 타러 버스로 이동중이다. 레이첼이라는 오스트리아출신 가이드아가씨는 참 건강하고 명랑해 보인다. 나보다 어린 것도 같고, 나이가 잘 감이 안 온다. 아까부터 영어로 계속 주의사항과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곳의 설명을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서 만났던 외국인들은 모두 우리를 배려해서 느리고 또박또박한 영어를 구사하느라 애썼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우리 빼고는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로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출신이라서 다들 여유롭다. 영어공부하러 온 사람이면 딱인 여행이다. 생존을 위해 하루종일 영어에 긴장해야하는 여행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은 우리는 민혜를 하늘이 주신 여행선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에펠탑 야경엽서

배가 고파 가방을 뒤져본다. 다행히 어제 산 과자가 맛이 좋다. mcvitie's라는 과자인데 한국의 다이제스티브 안에 포도말린 것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과자이다. 어제 영국 아가씨가 사는걸 보고 산건데

"역시 현지인들이 사는 걸 따라 사는 게 좋아"하며 지현이도 만족해한다.

창밖으로 끝없는 유채꽃밭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김포평야의 논처럼 노란 꽃밭이 펼쳐지는데 이걸로 향수원료도 만들고 식용기름도 짠단다. 영어가 조금씩 들리는 것도 같고......


저녁에 버스투어 한 파리의 개선문

<아 멋진 파리의 야경>

오늘 일정은 이렇게 끝나려나 했더니 빠리 야경을 보러간다고 8시까지 버스 앞에 모이란다. 시간에 딱 맞취 갔더니 우리 빼고는 다 미리 와있다. 정말 칼 같은 시간관념이다.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

고속도로로 얼마를 달리니 빠리 시내가 나온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닫은 셔터마다 다양한 스프레이낙서가 재미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어떤 가게는 그 낙서를 피해 아예 유리문 안에 셔터를 넣어놓았다.

버스에서 보는 파리의 거리는 영국의 거리와는 다른 어떤 운치가 있었다.

눈부신 네온사인으로 거리의 경관을 해치는 간판은 거의 없다. 오히려 특이한 필기체의 작은 글씨로 된 간판들이 눈에 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잠시 내렸는데 지현이는 시계를 보더니

"9시 30분인데 아직도 환해"하며 신기해했다.

언덕위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까지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 일행은 당연히 모두 걸어서 올라갔다.

파리시내가 쫙 펼쳐지는 성당앞에서 가이드 레이첼의 설명을 들으며 모여있는데, 성당 계단에 껄렁하게 모여있던 흑인 청년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mother go home!" 우리쪽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걸 보면 가이드와 함께 단체여행을 온 사람은 모두 사치성여행객으로 아는가보다. 어린 우리 가이드 레이첼이 마음 상했을 것 같아 함께 사진 찍자고 했다. "our mammy"라는 말과 함께.


몽마르뜨 언덕에서 가이드 레이첼과


몽마르뜨언덕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

30분간 언덕 위의 사크레 꾀르 대성당을 둘러보고 저 아래서 다시 모이란다.

성당 안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듣던 대로 어디선가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이 나타나 "곤니찌와"를 외쳐댄다.

휴 이제 시작이겠지. 저소리 듣기 싫어서 한국 문양티도 가져왔는데, 앞으로 어딜 가나 저 소리를 듣겠지. 담담해져야 할 텐데도 열을 받는다.

그래도 말은 해주고 가야지. 우린 한국인이야!


<규모로 압도하는 개선문과 에펠탑>

다시 투어버스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파리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레이첼이 열심히 설명해 준다. 역사적 배경과 함께. 내일 각자 돌아다닐 곳을 생각해두라는 배려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을 택한 외국 애들은 우리와 달리 별 준비 없이 가볍게 온 것 같다. 우리처럼 들여다보는 여행책자도 없고. 갑자기 버스 안에 신나는 음악이 크게 나오면서 버스가 돌기 시작한다. 뭔가 싶어 창밖을 보니 조명을 받은 웅장한 개선문이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한바퀴 두바퀴 개선문을 돌며 조각품을 감상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내일이 있으니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다음에 시간이 없다며 5분만의 사진찍을 시간을 준 곳은 바로 에펠탑. 역시 에펠탑이었다. 어느 방향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멋있는 선이 돋보였다.

상상했던 것 보다 엄청난 규모에도 다시한번 놀랐다. 나는 탑이라고 해서 전망대도 있다길래, 우리나라 무슨 무슨 탑 보다 좀 큰 탑이겠거니 했는데 웬만한 빌딩보다도 훨씬 컸다.

파리의 야경을 가득 담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8 조용한 신도시 라데빵스

<숲속에서의 아침><하얀대문집을 찾아서><향수냄가 가득한 화장실을 찾아서>

<눈 씻고 봐도 자동차가 안보이는 신도시 라데빵스><에펠탑을 헤매다>

<유람선에서 보는 세느강 야경>


<숲 속에서의 아침>

새벽에 잠을 깨서 아침 산책을 했다. 캠핑장 저쪽 끝에는 호수가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커다란 나무들은 크기에 비해서 기감(氣感)이 세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숲의 느낌은 부드럽고 괜찮았다.

지현이는 늦잠을 잔다. 어제 저녁 우리팀 한국인과 이미 34일 짜리 투어를 끝낸 다른팀 한국인들과 맥주를 한잔씩하고 들어오더니 피곤한 가보다.

산책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캠핑장내 슈퍼에서 오렌지주스 큰 것과 yop을 하나씩 샀다. 가격이 휴게실의 1/4이다.

카운터를 보는 아주머니께 영수증을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간단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생각해 내서 "receipt please" 라고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차 여기는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지. 그러면 프랑스어로 영수증이 뭐더라. 급한 김에 그냥 영수증을 손으로 짚어서 받기는 했는데, 이거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회화책을 뒤지니 아하 레뀌(re u)라는 낯익은 단어가 나타난다. 앞으로는 꼭 써먹어야지.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파리를 향해 버스로 출발했다.

어제 밤 파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새로운 가이드와 30명 정도의 광란의 여행객들이 합류해서 잠시 긴장했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 다니게 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다행히 투어 마지막날인 같은 회사 여행객들인데 헤어지기 전날이라고 너무 늦게까지 놀다가 자기네 버스를 놓쳐서 우리 차에 잠시 탔던 거란다.

그쪽 가이드가 우리를 보더니 자기네도"two korean"이 있다며 소개시켜 주었는데, 그분들도 처음에는 언어장벽 때문에 가이드와도 안통하고 다른 일행들과도 소외되어서 포기하고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드의 친절한 나머지교육(?)과 한국인 특유의 뱃심으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시간을 잘 지키라는 등 몇 가지 주의점도 얘기해 주었다


꽁고드광광의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이 훔쳐왔다는
오벨리스크 앞의 일행

그 분들은 파리에서 이틀 더 있다가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우리 차에 함께 타고 파리시내로 동행하게 되었다.둘이서 우리가 뽑아온 민박집리스트를 빌려서 열심히 적으며 어디로 갈지 연구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3주 후 다국적 배낭을 끝내고 다시 파리로 왔을 때는 성수기에 가까울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예약도 할 수 있으면 하고, 그 때 무거운 짐을 들고 민박집을 찾아 헤매는 것 보다 몸 가벼울 때 확인해 두는 게 나을 것도 같아서 함께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짜피 우리는 나중에 일주일 정도 파리에 다시 오니까 파리의 다른 관광지들은 아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얀대문집을 찾아서>

꽁고드 광장에 내려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먼저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거는 일도 수월치는 않았다. 카드를 넣고 그냥 걸려니까 잘 걸리지 않아서 다시 조사해간 수첩을 펴들고 decrocher라는 글자가 뜨면 수화기를 들고 patienter에 기다리고 numeroter라는 글자가 나오면 번호를 눌려서 겨우 통화가 되었다.(하얀대문집01-4656-17841 찾아가기 전에 예약이나 확인요)

다음은 지하철표 사는 일. 10매짜리 carnet를 사서 나눠가지고 노선도에서 우리가 갈 13호선 하늘색라인의 남쪽 종점 바로 전 역인malakoff r. tienne dolet역으로 향했다. 노선도만 봐서는 중심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어 가는데 한참 걸릴 줄 알았더니 금방 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역과 역 사이가 정말 가까워서 깜빡 졸면 영 엉뚱한 곳에 가서 내릴 위험이 있다.

전철역에서 나올 때는 표는 필요 없는, 좀 위험스럽게 확확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으로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엄청난 벌금이 기다리는 불심검문에 걸릴 지 모르므로 표는 전철역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전철역을 나와서 옆의 굴다리를 등지고 빵집 옆길로 10M정도 가면 나타나는 첫 번째 4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돌면 금방 하얀대문집 간판이 나타난다" 무슨 지령같지만 오기전 통신상의 여행기에서 뽑아온 길 안내문은 그러했다. 두리번거리며 이대로 찾아가고 있는데 웬 삐죽하게 키 큰 프랑스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너희 하얀집(WHITE HOUSE) 찾아가는 거 맞지. 저쪽이야" 다른 말은 다 못 알아 듣겠어도 하얀집은 들린다.

여기쯤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하얀대문집 간판이 안 보인다.

그렇다면 일단 하얀 대문을 찾아볼까. 앗 찾았다. 정말 이렇게 앙증맞게 이름이 써있을 줄은 몰랐다. 길가에 있기는 하지만 하얀문 한 귀퉁이에 한 뼘도 안되게 갈색 스텐실로 찍어놓은 하얀대문집 간판은, 밤에 왔으면 정말 찾기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전철역까지 마중 온다고 하신거구나.

얀대문집의 정말 엄청 큰 간판

예약 없이 찾아간거라 오라버니들은 다락방에 짐을 풀고, 우리는 20일 뒤에 다시 온다는 예약을 하려 했더니 그때는 성수기가 아니니 그냥 오면 된다고 하신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셔서 염치 불구하고 김치와 미역국을 싹싹 비웠다. 우리도 일주일만에 보는 김치가 반가운데 한달 만에 보는 두 분은 얼마나 반가울까. 입이 귀에 걸리게 좋아하며 식사를 한다.

< 향수냄새 가득한 화장실찾기>

민박집도 확인했고 이제 6시30분 에펠탑 앞의 집합시간 까지 파리관광을 하면 된다. 한나절 동안 어디를 구경할까 하다가 두분이 건축전공이라고 하시길래 우리도 관심있었던 신도시 라데빵스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먼저 타이항공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에 내렸다. 두분은 비행기 재예약을 해야하고 우리도 샹젤리제거리를 구경해보고 싶어서였다.

숨어있는 듯 찾기 어려운 타이항공에서 볼일을 끝내고 대형 향수전문점인 SEPHORA를 구경했다. 우리나라 대형 슈퍼 만한 크기의 매장의 벽면 전체에 향수가 진열되어 있고. 향수의 사돈의 팔촌에 해당하는 각종 샤워코롱이나 화장품들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화장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전부터 멀미나는 향수냄새보다는 땀 냄새가 낫다고 생각해온 지라 시큰둥하게 들어갔는데, 수백종의 향수를 마음대로 뿌려 보며 맡아 볼 수 있고, 화장품의 경우 직접 발라 볼 수도 있는 이 매장은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지현이가 흥분할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향수 값이 별로 싸지는 않다면서 뿌려보는 걸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매장에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 안 보였다. 향수와 화장실이 너무 안 어울려서 숨겨놓았나 싶어 구석구석을 찾아 봤지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의 실수를 교훈 삼아 매장언니에게 불어로 물어보았다. "EXCOUSEZ MOI OU EST LA TOILETTE ?"내 서툰 불어를 알아들을까?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웃으면서 안내해 주었다. 안내해 준 화장실은 아무도 문이라 생각지 못하는 매장 뒷면의 검은 대리석 벽을 밀면 나오는 직원용 화장실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에선 나프탈렌 냄새가 아닌 향수냄새가 가득했다.

향수가게를 나와서 신도시 라데빵스로 가는 전철역을 찾아 걸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계획대로 가로정비가 된 거리라서 그런지 넓고 쭉 뻗은 대로였다. 눈길을 끈 것은 도로 사이사이에 있는 꽃밭이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억지로 태극 무늬라든가 꽃시계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마치 한적한 시골 길가의 들꽃무더기처럼 자연스럽게 자라게 한 것이 오히려 딱딱한 도시에 아련한 느낌을 주어보기 좋았다.


샹젤리제의 자연스러운 꽃밭


어느 전철역


<눈 씻고 봐도 자동차가 안보이는 신도시 라데빵스>

지하철 노란선 1호선 왼쪽 끝 라데빵스역에 내려서 지상으로 오르니 거대한 "GRANDE ARCHE"가 우리를 압도한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이 대형 아취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안에서 세계적인 행사와 각종 비즈니스 모임을 행할 수 있을 만큼 내부의 규모도 크고, 첨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그랑아취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씩 찍어두려는데 이런 아무리 뒤로 물러나서 찍어도 그랑아취의 발치밖에 앵글에 안 들어온다.

"얼마나 큰 거야 이거" 날도 더운데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서보라고 하고서 정작 안나온다고 하니 지현이의 참을성이 한도에 도달했음이 보인다.


라데빵스의 그랑아취-별로안커보인다구요?
아래사진을 보세요.사람들이 개미같죠.


라데빵스의 그랑아취 아래를 지나는
마녀키키같은 지현

유료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랑아취 위로 꼭 올라가 봐야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우선 앞에 보이는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더위를 식히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에 요리사가 준비해준 재료로 각자 싼 도시락 비닐봉지를 열어 딱딱한 바게트샌드위치와 사과를 함께 먹고 성준,형규 오라버니는 주스를 마셨다. 두 분 다 피부가 까매서 원래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다국적배낭34일 코스에는 그리스 섬에서 요트로 항해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 때 배 안에서 해를 피할 곳이 전혀 없어서 다 탔다고 한다.


라데빵스야경엽서-
어디서 잡으면 이렇게 다 나올까?

라데빵스의 현대식건물들과 차없는 거리

도로대신 공원이 넉넉하게 들어서 있고, 차들이 경쟁적으로 주차되어있을 공간에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나무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에 차 없는 아파트를 짓는다고 선전하던데, 이렇게 신도시 차원에서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라데빵스공원의 입벌린 개구리조각


측면 개구리


사진을 삐뚤게 찍었다두요? 아닙니다.
건축전공인 오라버니들이 열광한 기울어진 기둥

지현이가 열광한 무지개굴뚝

개성있는 건물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현이는 무지개빛 줄무늬의 건물이 예쁘다고 찍고있고, 나는 나무덩굴을 가득 그려 넣은 환기구 같아 보이는 굴뚝이 맘에 들었다.

토목을 전공하셨다는 두 분은 이직 짓고 있는 건물 중에 기둥을 비스듬히 한 건물이 볼만하다고 하신다. 건물의 하중 때문에 저렇게 설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단다. 한쪽에 언제 봐도 즐거운 미로의 조각품도 보인다.

나무줄기굴뚝 확대

정현이 열광한 멋진 그림이 그려진 굴뚝

웬지 위압적인 신개선문 그랑아취를 등지고, 개선문쪽을 향해 걷다보니 정말 신 개선문은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과 꽁꼬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의 까루젤개선문과 일직선으로 위치한 것이 한눈에 보였다.

해가 너무 쨍 하다고 툴툴댔더니, 맑은 날만 볼 수 있다는 이런 모습을 직접 보는 행운도 기다리고 있었다.


라데빵스의 미로조각

조금 더 걷다보니 바람에 움직이는 조명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는, 사각형의 인공연못이 나타났다. 스크류처럼 길게 꼬인 조형물에 조명이 달려있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밤에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 본다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물가에 앉아 한가로운 현지인들 틈에 섞여 있었다. 물에 첨벙 뛰어드는 큰 개도 있었고 소풍 온 유치원아이들도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우리가 신기한지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는 길에서 외국인을 보면 도망가거나 놀리곤 했는데, 순진한 아이들의 모습은 똑같았다.

여행 초입인 우리와 달리, 긴 여행의 끝인 두 오라버니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으신지 자꾸 먼 곳만 쳐다보셨다. 몇 시간 뒤면 바삐 따라다녀야 할 단체여행이 기다리는 우리도 잠시나마 저 멀리 개선문을 바라보며 덩달아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데빵스의 조명조각분수


<에펠탑을 헤매다>

모이기로 한 에펠탑 아래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오라버니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분명 일찌감치 모여있을 우리팀 외국애들과 top deck 버스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바퀴 두바퀴 에펠탑 남쪽을 몇바퀴나 돌아도 일행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분명 아침에 에펠탑의 남쪽 면 앞 도로를 지나면서 창밖을 가리키며 여기서 모이라고 했는데.

지현이와 나는 에펠탑 앞 공원을 얼굴이 빨개지도록 뛰어다녔다. 차를 못 찾으면 저녁도 못 먹고 외곽의 숙소까지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데 그건 생각만으로도 참 답답한 일이었다.

30분을 헤매다가 다시 에펠탑아래에 와보니, 아까 헤어진 오라버니들이 그대로 앉아 계셨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시더니 아마 저기 일꺼라고, 우리가 갔다가 돌아온 곳을 말해주신다.

다시 뛰어가보니 저쪽 길건너에 우리차 비슷한 게 보인다. 찾았다! 어쩌면 우리만 빼고 외국애들은 여유롭게 공놀이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들 헤매지 않고 찾아 왔는지.

다들 모였고 한국인 중에 윤석오빠만 안 와서 가이드가 우리에게 묻는다. 아침에 따로 숙소로 온다고 한 것도 같고, 남자니까 가이드도 큰 걱정은 안 하는 것 같다. 음식을 덜며 식사를 시작하는데 헐레벌떡 윤석오빠가 온다. 오빠는 우리보다 한술 더 떠서, 그냥 에펠탑 앞에 모이는 줄만 알았지 에펠탑 어느 쪽에서 모이는 지도 몰랐다고 한다. 하긴 차안에서 보기엔 에펠탑 사방에 이렇게 큰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지는 몰랐으니까. 어쨌든 다 모였으니 마음 편히 식사를 했다.

좀 있으려니 아까 헤매다 만난 오라버니들이 왔다. 우리가 걱정 되서 오셨단다. 참 고맙고도 미안했다. 한국인끼리 저녁을 나눠 먹고 공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고나서, 다시 인사를 했다. 또 헤매다 다시 오지 말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 창피해라.

에펠탑아래의 일행들

유람선 안에서 본 불켜진 에펠탑

<유람선에서 보는 세느강야경>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단체로 세느강 유람선인 bateaux parisiens를 타러 갔다. 단체여행비 안에 요금이 포함되어 있어서 별도로 내는 돈은 없었지만, 몇몇 애들은 식사시간에 별도로 저렴한 샴페인 한 병씩을 주문해서 들고 탔다.

앞을 보며 갈 수 있는 배의 한가운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온 어른 단체관광객들의 자리이고, 우리는 2등석에 해당하는 배의 측면 그러니까 물이 찰랑찰랑하는 곳에 앉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더 재미있는 것 같았다.

파리 세느강의 야경은 우리 한강의 야경과는 많이 달랐다. 한강야경은 강변의 아파트와 여의도 빌딩들의 불빛들, 새로 만든 현대식 다리들의 조형미가 볼거리라면, 세느강은 강변을 따라 늘어선 예술적인 조명을 한 옛 건물들과 조각품들, 이끼 낀 돌다리들이 볼거리였다.

그 역사 깊은 다리마다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정다운 모습으로 앉아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평화로운 모습도, 자살소동이 끊이지 않는 도시적 외로움의 상징인 한강다리와 대조적이었다.

불 밝힌 루브르와 오르세미술관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에 흠뻑 취하고, 세느강을 한바퀴 돌아서 오는 동안 에펠탑의 조명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에펠탑은 밤에 보아야 더 멋지다. 장식전구를 저렇게 수없이 밝혀 놓았는데도 낭비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있는 것은, 늦은밤 오히려 멋지게 빛나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이 낭만과 멋을 찾아 파리에 온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때문이리라.

세느강변야경

19 다시 찾은 파리

<파리로 가는 길><외제화장품의 거품을 보다><유럽에서 조개를 날로 먹다>

<일요일에 보는 파리의 진풍경><민박집"외가집"에 놀러가서><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파리로 가는 길>

남은 벨기에 동전으로 부드러운 벨기에 고디바 쵸컬릿을 몇 알 사먹고, 일행과 만나 너무나 slow하게 나오는 "qick time 햄버거"도 사서 역 한가운데 털퍼덕 앉아 나눠먹었다. 여러명이 모이니 이렇게 행동이 조금은 자유롭다.

영희와 우리들은 열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는데 아직 시간이 남은 성식 오라버니는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든다.

수십 일을 거의 한국사람 구경 못하고 여행하시다가, 이렇게 며칠 조잘대는 여인네들 속에서 지내고 나니 앞으로는 더 외로울 것 같다고 하시더니, 정말 플랫폼에 혼자 서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유럽여행이 끝나면 이어서 누님이 있는 미국까지 날아가서 또 여행하는 긴 일정이 남았으니, 좋은 여행친구들을 또 만나시길 바란다.


1사진 벨기에에서 프랑스 가는 기차표. voiture7 이 7번 칸이란 얘기고, p1 042가 좌석 번호이다.

번호를 잦아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우리는 non fumer 금연석 표를 끊었는데 이 칸 앞에는 흡연가능 그림이 그려져 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두리번거려 보니 아무래도 번호만 보고 칸을 잘못 탄 것 같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칸 숫자는 밖에 적혀있는 모양인데, 안에서는 어디에 적혀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담배연기를 맡으면 메스껍고 멀미가 나는 우리들이 1시간 반 동안 흡연석에서 담배연기를 맡을 생각을 하니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짐을 들고 일단 옆 칸으로 옮겼다.

다행히 빈자리가 많아서 앉아 가는데, 중간에 웬 건장한 흑인 아저씨 두 명이 와서 자기네 자리라고 한다. 잠시 흡연석에 담배 피러 갔던 거다. 비켜주려는 몸짓을 하는데, 이미 자리잡은 우리들의 만만찮은 짐을 보더니 됐다며 자기네 짐을 내려서 다른 자리에 가서 앉겠단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지현이는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일본인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제 말문이 좀 트이려나.

<하얀집 찾아가는 길 >

한 3주만에 다시 파리에 돌아왔다. 파리 북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우선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지난번에 여유가 있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가 확인하고 영희를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했다.

정신없이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데, 함께 내린 옆자리의 일본인이 파리지하철이니 여기서부터는 가방을 주의하라고 충고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 모두 모아놓은 가방에는 신경을 안 쓰고 각자 지도와 수첩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슬쩍 큰 가방하나 들고 가도 모를 뻔했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곳이고 영어보다 불어가 통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갑자기 딴나라에 떨어지니 정신이 없다. 동생들은 불어선택이 아니라서 낯선 표지판들에 더 혼란스러워한다.

하얀대문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럴 수가, 아줌마가 방이 다 찼다고 미안해하신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지난번에 미리 찾아가서 확인까지 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사실 불안해서 한국에서 20개도 넘는 민박집 주소를 알아 가지고 오긴 했지만, 강행군으로 나도 힘든데다가, 지친 동생들을 데리고 다른 민박집을 찾으려니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방의 구조를 떠올리며, 일단 하루라도, 침대가 다 찼으면 그냥 바닥에서 이불 깔고라도 자면 안되겠냐고 우겨보았다.

아줌마가 미안해하시며 일단 와보라고 하셔서, 얼른 10매 짜리 까르네 전철권을 사고 복잡한 북역을 떠났다. 이동하면서 보니 우리처럼 무거운 짐을 배낭으로 맨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들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쉽게 간다. 우리도 저런걸 갖고 올 걸 그랬나.

하얀대문집이있는 13호선 하늘색라인의 malakoff r. tienne dolet 역에 가려면, 몽빠르나스montparnasse역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지하철은 만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나라도 환승 구간이 길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많지만 몽빠르나스역은 정도가 심해서, 아예 역 밖으로 나와서 한참 사람들을 따라 걸어서 다른 건물로 들어가야 13호선이 나온다. 아 고달파라.

힘들게 하얀대문집에 도착하니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진다. 우리 자료들을 한국에 갖다주기로 한 윤석 오빠가 우리와 약속한 대로 이 숙소에 전화를 했는데, 자리가 없다고 다른 숙소로 보냈다고 한다. 아줌마가 이산가족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보낸숙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시며 연락이 닿게 해주시긴 했지만 이거 여러 모로 불편해진다.

그래도 일단 한국인만 가득한 집에 오니 여행 떠나서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인다. 짐 잃어버릴까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말도 통하고.

아주머니가 끓여주시는 일본라면을 김과 빨간무로 담근 물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고 샤워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시가 다 되간다. 침대사이에 담요를 깔고 전기장판까지 깔아주셨는데, 세 명이 자기엔 좀 비좁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바닥에 누우니 침대보다 훨씬 좋다. 집 생각도 나고.

<외제화장품의 거품을 보다>

어제 밤에 "외가집"이라는 민박집에 있는 윤석오빠와 연락이 되어서 아침 9시에 에펠탑 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 번 파리에 왔을 때처럼 입고 나섰더니 이거 바람이 너무 차갑다. 아줌마가 지난번 왔을 때 "너희들 이렇게 입고 다니니?"하며 놀라시던 게 생각난다. 하나도 안 춥다고 했더니 그 날은 이상하게 덥다시더니 그 밀 뜻을 알 것 같다. 오히려 여름이 가까워지는데 진짜 평소의 파리의 날씨는 이렇게 추운가보다.

좀 늦게 나와서 에펠탑근처 역에서 내려 에펠탑을 향해 뛰려고 찾으니, 파리 어디에서나 보인다던 에펠탑이 오히려 안 보인다.

일요일이라 거리에 사람도 없고 날은 추워 뼛속까지 바람은 스미는데,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고 참 불쌍해진다.

그래도 뛰다보니 에펠탑이 저 멀리 보이기는 보인다. 그런데 사방이 뚫린 철골 구조물 에펠탑 아래 서 있으려니 바람이 더 거세게 불어닥친다. 좀 늦었다고 갔나?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려고 하니 저쪽에서 나타난다.

너무 추워하던 지현이가 윤석오빠의 남방을 하나 뺏어 입고 파리관광에 나섰다.

아니 오늘은 관광이라기보다는 선물 사는 날로 정했다. 윤석오빠 엄마와 누나, 여자친구 화장품 선물을 사는 걸 지현이가 도와주기로 했고, 지현이도 자기화장품을 좀 사겠단다. 나는 화장을 안 하니 그런 쇼핑이 재미없기는 하겠지만, 여행자수표가 내 이름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니 같이 다니기로 했다.

benrux라는 루브르 뒤에 있는 면세점이 한국점원이 있어 편리하고 값도 싸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듣던 데로 한국점원도 여러 명되고, 중국 일본등 각 나라 말을 하는 점원들이 손님들의 선택을 돕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화장품 가격이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외제 화장품들의 가격은 다 이곳 가격에서 3배 이상 뻥튀기 된 것이었다. 한국아저씨들이 부인이 신신당부했다면서 한보다리씩 사가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환산해보면 한국의 슈퍼에서 파는 식물나라나 중간정도의 품질의 화장품과 같은 가격이었는데, 그 동안 백화점 등에서 그렇게 비싸게 팔아왔다는 걸 알고 나니 참 어이가 없었다.

어디선가 한국의 여성들은 외국여성과 달리 생필품 격인 화장품을 너무 비싼 걸로만 쓰고 고급만 쓴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화장품은 슈퍼에서 팔 정도의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쓰는 문화가 정착되어야지 이렇게 거품 가득한 외제화장품을 고급이라고 믿고 쓰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리나라 화장품의 품질도 이 가격에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얼른 올라서야 민감한 한국 여성들이 외제화장품을 찾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해질녁의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엽서)

<유럽에서 조개를 날로 먹다>

면세점을 나와서는 우리가 점심을 사기로 했다. 윤석오빠를 고장난 우리 사진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귀찮게 했고, 너무 많은 짐을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이다.

맛있게 생긴 식당을 고르려니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진열장에 싱싱한 해물이 놓여있는 식당이 보여서 그리로 들어갔다.(식당이름"la taverne de maitre kanter" 주소 16,rue coquilliere 75001 paris)

일단 들어가긴 했는데, 메뉴판을 보니 또 난감해진다. 불어로 된 요리명이 빽빽하니 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저쪽에 진열된 해물을 보고 들어왔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3인이 먹을 수 있다는 중간크기의 모듬해물요리를 시켰다. 자글자글 맛있는 해물구이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떡 벌어진 모듬해물이 나오기는 했는데, 으악 석쇠 위에 나오는 게 아니라 얼음 위에 나오는 게 아닌가.

유럽사람들도 회를 먹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한국에서도 회를 거의 안 먹는 우리 앞에 이게 뭐란 말인가. 더욱이 한국에선 회로 안 먹는 홍합에 국 끓여먹는 모시조개, 쬐그만 새우에 , 또랑에서 잡힐 것 같은 작은 가제까지 굴말고는 날로 먹어본 적이 없는 해산물들만의 총 집합이었다. 더욱이 익혀먹으면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게까지 얼음 위에 있었으니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이걸 익혀달라고 말하면 안될까. 잠시 고민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시켰는지 먹음직스럽고 다양한 익힌 음식들을 맛있게도 먹는다. 아, 프랑스 음식이름도 좀 자세히 알아올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된 거 이것도 프랑스 요리이니 경험 삼아 한 번 먹어보자 하고 웨이터를 불러서 도대체 이 요리를 어떻게 먹는 건지 물어보았다. 친절한 웨이터가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작은 새우는 손으로 집어 껍질 채로 소스에 찍어먹고, 조개와 굴도 포크로 꺼내서 날로 먹고, 가제와 게는 옆에 준 망치 겸 가위로 껍질을 깨서 먹는 거란다. 어렵지는 않은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만만한 굴부터 손을 댔다. 레몬을 뿌려서 먹으니 우리나라에서 먹던 굴과는 좀 달랐지만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다음은 홍합. 역시 많이 봐온 조개이지만 날로는 처음이다. 역시 먹지 말 걸 그랬다. 모시조게 닮은 조개는 한 개먹고 다시는 잡지 않았다.

포도주로 입을 씻고 딸려 나오는 빵으로 입맛을 진정시켜가며 다음은 손으로 집어서 찍어먹는 잔새우. 다행히 이건 입맛에 맞았다. 소스로 찍어먹는 조미된 버터가 날새우의 느낌을 많이 죽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선한 해물을 쓰는지 새우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맛도 났다.

게를 집어든 지현이 조심스레 먹어보더니 "이건 익힌 거야" 반가운 소리를 한다. 게장도 아니고 날 게를 어찌 먹나 했더니, 다행히 게만은 익혀서 나왔다.

다음은 작은 가제를 깨뜨려 볼 차례, 집게가위로 버벅대는 우리를 보다못한 웨이터가 와서 그러지 말고 두드리면 쉽다고 손짓을 한다. 두드리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까봐 삼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테이블이 나무가 아니라 딱딱하고 자잘한 타일로 되어있다. 뜨거운걸 막 놔도 좋고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먹고있긴 하지만 자꾸 다른 사람들의 익힌 음식에 눈길이 간다. "저건 뭘까" "저것도 참 맛있게 생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서서 기다릴 정도로 식당 가득 사람이 찬걸 보니 맛좋기로 유명한 식당이긴 한 것 같은데 우린 왜이리 엉뚱한 음식을 시키고 말았는지. 아이스크림과 샤베트, 시럽 얹은 딸기를 디저트로 나눠먹으며 다음 갈 곳을 계획했다.

익혀서 나오지 않은 해물 앞에 난감한 정현


익얼음쟁반 위에 나온 해물

<일요일에 보는 파리의 진풍경>

아무래도 박물관보다 상점구경을 좀 하고싶다는 지현이와 윤석오빠의 의견에 따라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요일이라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조금 구경하다가 우리 민박집에 가서 한국까지 들어다줄 짐을 갖고 윤석오빠네 민박집으로 가서 짐 줄이기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방에 와서 면세점 영수증을 확인하니 오빠가 산 물건값이 얼마쯤 더 청구되어 있었다.

면세다 할인이다 복잡해서 계산을 맡겨두었더니 이런 실수가 생겼다. 부랴부랴 루브르 뒷길로 다시 갔더니 벤룩스 앞이 시끌시끌하다.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 경비아저씨가 더 이상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는데, 일요일이라 문 연 곳이 별로 없자 소문 듣고 이리로들 온 관광객들이 안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안 들여보내 준다고 항의하고 있던 거다.

우리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걸, 영수증을 들어보이며 잘못된 게 있어서 그런다며 몸싸움 끝에, 치사하게도 아무 것도 더 사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통과했다.

오늘 아니면 파리를 다시 못 올 사람들은 들어가게 해달라고 거의 데모라도 할 분위기이고, 세상에, 물건 사겠다는 손님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상점도 있나. 업무시간 준수가 철저한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아까의 한국인 점원이 있어서 영수증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일요일의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민박집"외가집"에 놀러가서>

7호선 villejif leo lagrange역에있는 젊은 유학생 부부가 사는"외가집(전화:01-43909170)"이 윤석오빠가 하얀대문집에서 소개받은 민박집이었다. "외가집"에는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내일 니스로 간다는 여행객 부부의 아이 둘과 주인집 여자아이 한 명이다.

그런데 온화한 표정의 두 아기와 달리, 주인집 아기는 낯선 사람에게 좀 예민한 편이었다. 늘 어디선가 낯선 사람들이 오면 엄마의 관심을 뺏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거였다. 그래서 뭔가 요구할 때도 엄마가 금방 와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떼쓰는 버릇이 생겨버린 거라고 하는데, 젊은 아이엄마도 그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만 3살 짜리 아이가 학교에서 불어를 꽤 오래 배운 나보다 불어를 더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점이었다. 싫을 때는 non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달라는 음식도 거침없이 불어로 말한다. 3살 미만의 유아만 다니는 현지인들 다니는 유아원에 보냈더니 갑자기 불어를 하더란다. 참 아무래도 언어는 생활 속에서 익혀야하는 거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하는 부부는 참 좋아 보여서 부럽다고 했더니, 고생이라며 한번 해보라고 한다.

아이들이 순하기는 한데 둘째가 침을 많이 흘려서 늘 턱받이가 젖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분장파티 대비용으로 사두었던 턱받이 두 개가 생각나서, 아기에게 주고 가기로 했다. 아기엄마는 다섯 개도 넘는 턱받이가 있는데도 마를 새가 없었다면서 고마워하시니 준 사람도 기분이 좋다.

그 집에서 한국라면을 끓여서 김치와 함께 먹고 다른 분이 사오셨다는 불고기도 얻어먹고서 윤석 오빠가 봐두었다는 동네 재즈바를 찾아 나섰다.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도심과 달리 외곽지대라서 그런지 파리인데도 참 거리가 칙칙하다. 10시 반인데, 해는 밤 11시가 지나야 지므로 아직 많이 어둡지는 않지만 혼자라면 괜히 겁날만한 거리다.

윤석오빠가 어제 멋진 음악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는 재즈바는 알고 보니 음악학교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딱 레스토랑분위기인데 너무 조용해서 잘 살펴보니 음악학교 문패가 보였다.

계획을 수정해서 여행책자에 나온 재즈바를 찾아갈까 하다가 돌아오는 교통도 걱정되고 해서 다시 우리민박집근처로 가서 맥주나 한잔씩 하기로 했다.

다시 우리 전철역 근처로 왔는데 문을 연 바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을 살짝 열어두긴 했는데, 단골 손님이나 동네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라 우리가 낄만한 곳이 못되었다.

한 30분간 우리동네를 빙빙 도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참 난감한 순간이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해서 그냥 헤어지기로 하고 못 마신 맥주는 서울 가서 먹기로 했다. 이래저래 미안한 일만 이어진다.

24 끝이 안보이는 베르사이유궁전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며?><재즈바 찾아가는 길><NEW MORNING이 격조있는 재즈바라고?>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며?>

전철역에서 받는 가까운 파리근교지도인 2번 지도와, 넓은 파리근교가 나오는 3번 지도를 연구하면, 베르사이유궁전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민박집에 적혀있는 대로 민박집에서 가까운 국철역인 vanves malakoff역에 가서 유레일을 내밀고, 공짜 교외선 RER 표 두 장씩을 받아 타고 가기로 했다. 가다가 한번 갈아타고 VERSAILLES CHANTIER까지 한 30분 걸려서 갔는데 기차마다 직행이 있고, 아닌 것이 있어 베르사이유까지 여러번 물어보아야 했다.

베르사이유 역에서 나와 보니 한 방향을 향해 유난히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역 앞에 버스도 있지만 걷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도 걷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걷는데 거리가 꽤 된다.

드디어 궁전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원이 보이지도 않는 궁전 앞만 해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옛날 왕족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다지만 우리는 걸어가자니 죽을 맛이다.

듣던 대로 궁전 앞에는 관람표의 종류별로 A,B,C,D 깃발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보려는 가장 싼 표인,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는 자유관람 A깃발 앞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뙤약볕 아래 1시간 가량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또 줄이다.

드디어 내부관람에 나섰는데 싼 표라서 그런지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 그래도 워낙에 넓고 호화로워서다 보고 나오니 지친다. 궁전을 이렇게 꾸며대느라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구나 싶다. 이에 비하면 우리네 궁궐문화는 참 소박한 것이었다. 국력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서도 말이다.


궁전앞에 줄서있는 모습


높고 화려한 궁전 내부의 문

교외라서 그런지, 오늘이 특별히 그런지 퍼붓는 햇살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다. 내가 썬글라스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지현이의 썬글라스를 한 번 써봤지만 그래도 어질어질한 더위는 마찬가지이다.

겨우 찾은 건물 구석의 그늘에서 쭈그리고 앉아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면하고 이제 본격적인 정원 구경에 나섰다.

그늘을 벗어나 궁전 바로 앞의 정원 꽃밭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어질어질 만사가 귀찮다. 일사병 초기증상인가 보다.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하는데 베르사이유에는 화장실이 단 2개 밖에 없다는 끔찍한 소문을 들어서 오렌지만으로 버티려 했더니 안 되나보다. 그 2개도 요즘 지은 것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커다란 궁전에서 사람들이 화장실 없이 지냈을까. 왕도 왕비도 일은 봐야 했을 텐데.

풍속사가들에 의하면 그 시절에는 똥오줌을 끔찍스럽게 여겨서 베르사이유같은 아름다운 공간에 화장실 같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은 급할 땐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으슥한 곳을 찾아 실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왕립 요강공장이 설치될 정도로 고급 요강문화도 생겨났다고 하니 그 허영에 찬 우스운 모습이 상상이 간다.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해도 저 멀리 끝이 안 보이는 운하를 보니 갔다가 돌아올 엄두가 안 난다.

노인 관광객들을 위해서 엠블란스까지 대기하고 있다. 어제 운하 끝까지 갔다 온 민박집의 한 아이는 정원 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그냥 한바퀴 도는 것도 힘이 들었다는데, 한참을 바라보며 망설이다가 저기를 갔다가는 우린 오늘 병날 것 같아서 멀리서 그냥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화려함의 극치 거울의방


호화로운 침대

돌아가는 길에 또 방향을 잘못 잡아서 헤매기는 했지만 노점에서 그 동안 꼭 필요하던 튼튼한 빗을 샀다. 그런데 그 좌판 위에 그 동안의 메모와 모든 정보가 있는 수첩을 놓고 온 것이 건널목 앞에서 생각나서 뛰어 돌아가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없어지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아름답게 꽃을 가꿔놓은 정원


끝이 안보이는 운하와 정원

<재즈바 찾아가는 길>

파리에 돌아오니 4시 반. 정원구경을 제대로 안하고 왔더니 아직 초저녁도 안됐다. 어제 개선문 근처에 있는 찾기 힘든 인포센터를 물어 물어 찾아가서, 파리에서 며칠 내에 하는 좋은 공연 좀 안내해 달랬더니, 가판대에 가서 3프랑 짜리 PARISCOPE를 사라고 했다.

처음에는 불친절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좀 나빴지만 각 분야별로 정말 파리의 일주일간 모든 문화 예술 정보가 실려있는 책을 보고 나니, 왜 파리에 온 첫날에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나 후회가 됐다.(단 프랑스어 약자로 되어있는 요일을 잘 보고 그날이 마지막이면 기다렸다가 사는걸 주의해야 한다.)

오후에는 지현이가 어제부터 열심히 PARISCOPE를 뒤져서 알아낸 NEW MORNING이라는 재즈바를 찾아가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하숙을 한다는 음악공부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은 다 한 번씩 공연하는 역사 깊은 곳이란다.

지하철을 탔는데 만원전철이라 앞사람이 자꾸 발을 밟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 옆에선 빨간 옷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줌마는 노란 머리라서 할머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앉아서 가지만 서야 할지 갈등된다. 지현이는 자꾸 콧물을 훌쩍댄다. 지하철에서 가야금 비슷한 현악기를 두들겨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흥겨운 민속 음악이다.

<NEW MORNING이 격조있는 재즈바라고?>

4호선 CHATEAU D'EAU 역에 있는 콘서트장을 힘들게 찾았다. 1달 전에 미리 예매를 안 하면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숨이 턱에 닿게 뛰어가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취소된 표 사는 줄이 길면 암표라도 사야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 앞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서성댄다. 혹시 줄? 이 줄이 맞는지 물어봐야 할텐데 줄이 불어로 뭐더라. 동네가 좀 지저분하고, 이상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아서 겁이 또 난다. 여자 애들한테 물어보니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란다.

문을 지키는 건장한 흑인 기도들을 통과해 들어가니 어째 음악이 좀 시끄럽다. 재즈가 아닌 하드롹이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소리는 딱 질색인 나는 좀 망설여졌는데, 주위에 롹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공연도 즐겨 찾아가는 지현이는 신나서 들어가잔다.

90프랑 씩 내고 표를 끊으니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표파는 아가씨가 숫자를 헛갈려하며 말하는 영어가 맞다면, 2시간 반 동안 있을 수 있는 표시란다. 아니라면 나갈 때 혹 실랑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첫 팀은 어린 소녀팬이 많은 그룹이었다. 플랭카드를 들고 설레는 눈으로 가수를 보는 프랑스 소녀들이 우리나라 소녀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가수는 검은 가죽바지에 웃통을 벗고, 문신한 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가며 무대와 객석을 누비며 열창했다. 앞줄의 소녀들은 가수의 가죽 바지위로 (요즘 유행인지는 모르지만) 속옷이 보일 때마다 플랭카드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좋아한다.

두 번째 팀이 나왔다. 옷차림이 단정한 걸 보니 롹발라드 팀이 아닐까. 기대도 잠시. 웬 걸. 맨 앞줄에 서서 방방 뛰고있던 지현이가 사람들의 난동을 피해 스피커 뒤의 내 옆에 피해 앉을 정도로 열성 팬들이 뛰며 서로 부딪치고 난리다. 가수는 각종 피리와 하모니카로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다가 갑자기 먼저 방방 뛰는데, 마치 마술피리를 불면 따라오는 동화 속의 쥐들처럼 그가 피리를 빨리 불면 열성 팬들이 난리가 난다. 무대 앞의 정리해두었던 의자까지 다 튀어나와서 위험한 지경인데 아랑곳 않는다.

평소에는 저 의자를 놓고 재즈 공연을 하겠지만 오늘은 좌석은 하나도 없이 다들 서서 구경한다. 우리는 무대 바로 앞 측면 계단에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리듬이 좀 느껴지는데, 듣기 좋은 음악은 아니지만 그래도 왔는데 그간 운동부족을 만회할 겸 그럼 고개도 좀 흔들어 보고 몸 좀 풀어볼까.

다음 팀이 나왔다. 스스로 무대에 꽃을 장식하는데 좀 부드러운 음악을 들려주려나.

가만있자, 주위를 둘러보니 현지의 열성 팬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처럼 책을 보고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관광객은 대개 두세 명이 일행인데, 그중 한 명은 시끄러운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고 얼굴 붉히며 좋아하는데 함께 온 나머지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와 준 게 역력하다.

열광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신기한 초등학생 아들, 손녀 때문에 따라와 내 옆에 앉아있는 외할머니, 무대에서 눈을 데지 않는 딸과 온 아버지 등 나처럼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개중에는 우리처럼 함께 들을 수 있는 재즈공연을 기대하고 나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팀은 별 특징이 없는데, 어린 미소년인 기타리스트가 한 곡 끝날 때마다 객석에 추파춥스 사탕을 하나씩 던져주는데 한 여자애는 그걸 받으려고 안달이다. 참 별난 팬 관리 방법도 다 있다.

나이든 사진기사 한 분은 아까부터 내 옆에서 무대사진 찍기에 바쁘더니 이젠 정면사진을 찍느라 열심이다. 반백의 머리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서 낡은 사진기를 열심히 눌러대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이 팀의 드러머는 드럼을 아는 사람같다. 드럼소리가 가슴에 팍팍 꽂힌다.

앞줄에 딸 따라 온 듯한 아주머니가 땀흘리는 보컬 미소년에게 자꾸 물휴지를 건내주려고 애쓰는데 그가 못 본다. 받아서 땀을 닦은 미소년은 그 땀 닦은 휴지를 돌려줄까요? 하는 재스츄어를 보인다. 쑥스러워서 웃는 아줌마. 그 아줌마가 딸만큼 젊었을 때는 당연히 받았을 텐데. 그 광경을 본 주변사람은 모두 미소짓는다.

무대 바로 앞 스피커 뒷자리는 글쓰며 음악감상하기에 딱 좋다. 등뒤의 복대는 무사히 있겠지. 한번 만져본다.

"옆의 아줌마도 서는데 우리도 이제 다시 서는 게 어때"

첫 팀이후 광란의 객석을 피해 계속 앉아있던 지현이가 이제 좀이 쑤시나보다.

그런데 이 곳에 동양인은 우리뿐인가 보다. 뮤지션들도 팬도 온통 백인이다. 이럴 수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백인 롹밴드들만 공연하는 날인가보다. 이곳의 청소년 문화도 인종별로 나뉘어져 있나 싶어 조금 씁쓸해진다.

그런데 한 팀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거인처럼 무서운 얼굴로 옆에서 무대와 객석을 번갈아 지켜보던 양복 입은 아저씨가 나와서 뭐라고 하면 관객들이 앞다투어 손을 번쩍 들고 그 숫자를 그와 그의 보조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세어서 발표한다. 인기투표인가. 프랑스에서 다양한 직업을 많이 보았지만(거리에 개똥 치우는 청소차 운전수, 기차 문 열릴 때마다. 사람들 잘 탔나 보는 사람 등) 저 아저씨의 직업은 알 수 없다.

다음 팀의 여자 보컬은 노래가 영 딸리는데 안되니까 가슴을 막 흔들어댄다. 그래도 매 팀의 드러머들의 실력이 정말 탁월하다. 드럼을 좋아하는 사람이 왔으면 정말 배우는 게 많았을 공연이었다.

귀도 너무 아프고 지하철시간도 걱정되고 해서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을 때 바를 나와야 했다.

유명한 재즈바에서 들은 롹 콘서트라. 기억에 남긴 할 것 같다.

26 엄청난 약탈의 역사 루브르

<루브르 쉽게 들어가기><프랑스인들이 도둑놈이란 욕이 절로 나오는 고대관>

<어디서부터 봐도 끝을 볼 수 없는 미술관>

<루브르 쉽게 들어가기>

오늘은 6월의 첫째 일요일로 루브르 박물관이 무료 입장인 날이다. 평소에도 줄이 긴 루브르를 오늘 같은 날 어떻게 들어가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제 와보고 좋아서 다시 오는 아이가 있어서 지하철과 연결된 통로를 찾아 쉽게 들어왔다.

지하철 통로가 아니라도 루브르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도 피라미드로 가지 말고 찻길에 바로 있는 건물 le carrousel de louvre라는 현수막이 걸린 지하 상점가 통로로 들어오면 바로 지하의 루브르 매표소와 통한다.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루브르의 상징인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라 길게 벌을 서고 있다.

예술품 상점가를 지나 피라미드 아래에 이르니 미술관지도가 각국 언어로 진열되어 있다. 역시나 중국어 일본어는 있는데 우리말은 없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데 이렇게 어딜 가나 우리말 안내서는 없는지. 씩씩한 복실이 언니가 다음부터는 한국어판도 준비해 놓으라고 한마디 해줬다. 자꾸 이렇게 해야 변한다는데 우리는 마음으로는 잘 흥분하면서도 좀 덜 씩씩하다.

루브르의 피라미드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


루브르 뒷길의 전철역 입구

<프랑스인들이 도둑놈이란 욕이 절로 나오는 고대관>

직접 루브르를 와서 보기 전에는, 루브르를 다녀와서 쓴 여행기들에 하나같이 프랑스 사람들이 도둑놈이라고 욕해놓은 걸보고

"다들 좋은 예술품 잘 보고 와서 왜들 그러지. 괜히 샘 나니까 그러는 거 아냐?"하며 갸우뚱 했었는데 직접 보고 있자니

"고고학자들이 아니라 도둑놈들 아냐!" 하며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정말 고고학이란 미명아래 수많은 정복지의 미술품들을 뜯어다 모아놓았다. 그림이나 조각품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아름다운 예술품이 있으면 갖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니까. 그런데 생 기둥은 왜 뽑아왔으며 건물 바닥은 왜 뜯어왔을까. 물론 그 속에는 예술적 모자이크나 조각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뜯겨나간 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그리스 로마관도 그렇지만 이집트관도 피라미드에서 꺼내온 물건들로 다닥다닥 전시를 해놓았다. 더욱이 이게 다도 아닐 것이다. 창고에는 더 많은 미술품들이 있겠지. 지현이는 전부터 피라미드를 보러 이집트에 꼭 가보고 싶어했는데 대영 박물관에 이어 루브르의 이집트관을 보더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단다. 가봐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일텐데 뭐하러 가냐면서.

우리도 이렇게 분한데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이들이 얼마나 미울까. 이렇게 한 달에 한번 무료개방 하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강력하게 반환을 요구하는 작품은 각국에 돌려주거나 나눠주고, 이곳은 좀 한적하게 꾸며도 루브르 그 명성에 금이 가지는 않을텐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쉴리관과 드농관 사이를 지키고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도 이탈리아에서 훔쳐왔음이 분명한데 그 과정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어도 여기저기가 떨어져 나갔다. 남은 부분만으로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제자리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싶다.

낑낑거리며 옮겨온 프랑스인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그대로 뒀더라면 다른 야만인 정복자들에게 가루로 변했을 거라고 변명하겠지..


사모토라케의 승리의 날개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는 역시 환상적이었다. 무릎에서 한 번 꺾어지고 다시 허리에서 한번 목에서 살짝 한 번 꺾어진 묘한 포즈는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현대 톱 모델의 그 어떤 포즈로도 절제된 관능미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봐도 끝을 볼 수 없는 미술관>

이제 그림들을 좀 봐야 하는데 전시관이 세 개이다 보니 헛갈려서 자꾸 니케상 주변만 맴돌 뿐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이러다가 꼭 보고 싶던 그림도 못 보겠다 싶어서 모나리자부터 유명한 그림들 중심으로 눈도장을 찍으며 다니기로 했다.

골목마다 사진까지 붙어 화살표가 되어있어 모나리자 찾기는 쉬울 줄 알았는데 워낙에 넓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돌고 돌아 드디어 모나리자상 앞에 섰다. 방탄유리 안에 들어있어도 그녀는 도판보다 훨씬 날씬하고 미소는 더 부드러웠다. 달력 그림이나 미술책의 모나리자를 보면서 이 미소를 왜들 그리 추앙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전 세계의 사람들을 그 미소 앞에 끌어 모으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책에서 볼 때는 미소도 그렇고 그녀의 성격자체가 상당히 딱딱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직접 니 전혀 그렇지 않고 부드럽고 푸근하면서도 묘한 베일에 둘러싸인 인상을 주는, 내가 남자라면 마음속으로 숭배하고픈 여인의 모습이었다.

금지되어 있음에도 끊임없이 터져 반사되는 사진기의 플레쉬만 아니었더라면 더 오래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아쉽다.

다빈치 모나리자

다빈치dame de la cour de milan


들라크르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직접 보니 대작이기도 하지만 자유의 여신 옆의 쌍권총 든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림에서 여신의 가슴이 꼭 그렇게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이 그림이 더 유명해 지지는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도 한참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는데 쇼파에 길게 누운 청순한 여인의 자태가 너무 고와서였다.

역시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10M가 넘는 대작이었는데 그렇게 큰 그림을 통일적으로 유지하는 안정된 구도도 놀라웠지만, 나폴레옹이 교황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나서, 조세핀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상황을 보는 서로 다른 지위의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성격묘사가 더 경이로웠다.

나폴레옹이 교황이 씌워주려는 왕관을 자기 손으로 받아 머리에 쓰자 허탈한 교황의 표정과, "저런 저런"하는 화난 추기경들의 얼굴, 이런 어른들의 일에는 관심 없는 소년 사제들, 조세핀을 감히 질투하지는 못하고 부러워만 하는 다른 여인들까지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되어있었다. 다비드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참 뛰어난 영화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림 속의 조세핀의 옷의 밍크털 한 올, 금박 하나도 섬세하게 묘사하여 황후라는 귀한 신분에 도달한 조세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옛날에 TV를 통해 보던 찰스 황태자비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다이아나비의 결혼식 장면 생각이 불현듯 나는 건 왜일까.


나폴레옹의 대관식

나퐁레옹 대관식의 조세핀 부분 확대


거대한 벽화와 색색가지 돌의 모자이크바닥이 있는 곳을 지난다. 참 많이 걷게되는데 좋고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힘든 줄 모르고 정신없이 다닌다.

리쉘리외관에는 나폴레옹의 방도 있다. 화려하기가 베르사이유 못지 않다. 사치스러운 황금장식의 거울도 보인다.


바닥 모자이크

화려한 화장대 앞의 지현과 정현


루벤스-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마리아 데 메디치


커다란 방의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루벤스의 연작 <마리아 데 메디치의 일생>도 대단하다.

그녀는 그녀의 섭정에 대항하는 그녀의 아들 루이 13세를 도와 절대왕정의 기틀을 닦은 재상 리셜리외를 축출하려다 실패하였는데,

그를 기리는 루브르의 리셜리외관에 자신의 생애를 그린 연작이 안착하게 된다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녀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방마다 아름다운 여체를 그린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런 불멸의 작품들의 모델이 되기 위해 기꺼이 화가나 조각가 앞에 옷을 벗었을 그리스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있다.

모델지망생들이 넘치는 화가의 아뜰리에의 풍경을 그린 그림

마지막으로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있는 방을 돌았다.

만년의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마치 자신의 그림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갈 미래를 예견한 듯, 우리를 응시하는 대가의 시선 앞에 이 불성실한 관람자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램브란트 자화상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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