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금강산 구룡폭포와 상팔담 가는 길
정현순(jhs3376) 기자
▲ 구룡폭포를 향해 가는 사람들.
ⓒ 정현순
금강산 여행이 시작된 지난 27일 아침 8시. 구룡폭포와 상팔담 산행은 4시간 코스로 계획이 잡혔다. 숙소를 나설 때부터 등산화을 신고 가벼운 옷차림과 마음의 각오도 단단히 했다. 구룡코스는 아름다운 여성스럼움이 있는 코스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처음 출발은 수월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산행이 1시간을 넘기고 나니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게 좋다는 구룡폭포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가끔씩 쉬면서 그곳을 향했다.

▲ 흔들다리.
ⓒ 정현순
그곳은 이런 흔들다리가 몇 개나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사람들은 흔들다리가 더 많이 흔들리라고 마구 뛰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실향민인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임신한 언니와 형부가 흔들거리는 이 다리를 건널 때 임신한 언니가 걱정이 되어 형부가 언니를 안고 건넜다고 한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할머니의 장난기가 발동되어 다리가 더 흔들리라고 마구 뛰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훗날 이곳에 와서는 한가운데 주저앉아 언니 생각이 나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지만 끝내는 그 언니의 생사조차 모르는 채 그만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가깝고도 먼, 같은 지도상에 자리 잡은 남쪽과 북쪽이다. 이런 저런 사연이 있는 실향민은 또 얼마나 많을까?

▲ 금강문 입구.
ⓒ 정현순
▲ 물이 옥 색깔을 띈 옥류담.
ⓒ 정현순
물 색깔이 옥색깔이라해서 옥류담

구룡폭포가는 길이 힘들 때 가끔씩 보이는 가을꽃과 옥색깔의 물이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 관폭정을 오가는 사람들.
ⓒ 정현순
구룡폭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관폭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산행한 지 1시간40분 정도 지나니깐 구룡폭포가 보이는 관폭정이 보였다.나도 그곳으로 갔다.

▲ 구룡폭포.
ⓒ 정현순
드디어 용이 아홉 마리가 살았다는 구룡폭포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있는 관폭정에 올랐다. 구룡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의 대승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폭포 중에 하나라고 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구룡폭포에서 잠시 머물다 길을 다시 재촉했다. 산행을 시작하고 1시간은 족히 넘었을까? 구룡폭포를 가기 전 상팔담과의 갈림길에서 안내자가 지키고 있었다. 안내자는 상팔담은 구룡폭포를 갔다온 후 결정하라고 한다.

상팔담은 올라가는 곳은 경사가 무척 심하고 조금은 멀다고 했다. 노인들이나 가끔 지팡이를 짚고 산행을 하시는 분을 보면 안내자는 "그곳에 가시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하기도 했다. 구룡폭포에서 이곳 갈림길까지 오니 시간은 오전 10시10분 정도 되었다.

최종 모이는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평소 운동 부족이었는지 구룡폭포까지 가는 길에 무릎관절이 조금 아파 오는 듯했다. 하지만 구룡폭포에서 내려올 때 아프던 곳이 괜찮아지는 듯도 했다. 조금 망설이다 상팔담을 가기로 결정했다. 멀고 힘든 산행이 시작됐다.

▲ 오르는 철 계단.
ⓒ 정현순
상팔담 가는 길은 이렇게 높은 철다리와 돌계단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또 언덕도 많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이렇게 오르기 편하게 계단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 계단이 없었다면 나같은 사람은 감히 오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으리라.

어느 정도 올라가니 벌써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아직 멀었어요?"하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아니요 조금만 가시면 됩니다. 안 올라가면 후회합니다. 힘내세요"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조금만 남았다는 그 상팔담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난 그제야 그 길이 힘든 산행이기에, 또 그곳이 가 볼 만한 곳이기에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힘들어 도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다 나보다 연세가 더 많으신 부부가 그곳을 다녀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들도"이젠 정말 다왔습니다. 가보시면 좋을 겁니다"하며 내려간다. '그렇지 저들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었을 텐테.'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그럼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거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니까. 좋은 것을 보려면, 아름다운 것을 보려며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하며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또 만났다. 그들이"이젠 이런 계단 4~5개만 올라가면 나옵니다"한다.

그 말을 들으니 덜 힘든 것 같았다. 한숨을 깊게 내쉬고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올라갔다. 그보다 더 높고 더 심한 경사의 철계단, 돌계단, 언덕을 올라가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을 텐데. 하며 내려 갈 각오도 단단히 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들의 말처럼 몇 개의 계단을 지나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바로 그런 맛에 정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란 것을 새삼 알게했다. 이렇게 힘든 길을 마다 않고 가고 있는 것은 그 앞에 지금보다 더 좋은 그 무엇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으리라. 현재는 힘들지만 미래의 내 앞 날에 지금보다 더 좋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나뭇군과 선녀의 전설이 있는 상팔담을 내려다 봤다. 옥 색깔의 물로 이루어진 8개의 웅덩이. 물이 너무나 투명하고 깨끗해서 지금도 그곳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삼팔당.
ⓒ 정현순
경험자들의 말대로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앞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광경을 안 봤다면 설명을 한다 해도, 사진을 본다 해도, 직접 내가 체험한 것만큼이나 실감이 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하느님이 금강산을 만드는 데 일 주일 중 하루가 걸렸다고 하더니 가히 그럴 만하다는 공감이 갔다.

▲ 내려가는 돌 계단.
ⓒ 정현순
내려 가는 길이다. 그렇게 각오를 단단히 했건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길이 무척 힘들었던 만큼 내려가는 길도 힘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잠시 쉬노라면 다리가 저절로 흔들거렸다. 무릎 관절이 다시 아파왔다.

구룡폭포 갈림길에서 왕복 1시간 거리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에는 출발점까지 도착해야만 했다. 천천히 그러나 열심히 걸었다. 겨우 턱걸이로 출발점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가 걸어 온 멀고도 먼 그 길들을 되돌아봤다. 때로는 구불거리고, 때로는 커다란 돌고 있고, 나무도 있고, 언덕도 있고, 시냇물도 있고, 강도 있는 그 길을. 힘들었지만 무사히 잘 걸어왔다. 그길은 내가 살아 온 길이었다. 앞으로의 내 앞 날에는 내가 내려가야 할 일만 남아 있는 듯했다. 내 나이가, 내 젊음이, 내 열정이, 내 정열이, 내 사랑이....

▲ 실루엣을 걸친 듯한 하늘.
ⓒ 정현순
구름이 거치고 실루엣을 걸친 듯한 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이 보였다.그런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을 버린다면 이렇게 좋은 일도 안 생길 테니깐. 난 금세 새로운 희망을 가져본다. 내일은 나에게 또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그래서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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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그대는 우리들의 빛나는 속살
신령스런 봉래산 2박3일 여행기
고성혁(ko3661) 기자
산을 '스윽' 다녀왔다, 2박3일의 일정(7월 26일~28일)으로.

민족의 강고한 기운이 펄펄 넘치는 금강산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리오. 다만 그 향내, 장쾌한 기운, 아름다운 품위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느끼고 왔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금강산은 참으로 귀하고 거룩한 영산이었다고, 그리하여 늘 내 머리 안에 담긴 금강산을 어루만지며 삶의 고통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내 삶은 풍요로워졌다고.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린다는 금강산. 그래서 우리는 봉래산을 다녀온 셈이다. 전라도 촌사람들의 금강산행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한 버스가 북측사무소를 거쳐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반. 출입국에 대한 부담감과, 경비병의 눈초리로 인해 아무래도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들에게 온정각 주차장의 넓은 마당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래 '반갑습니다'의 감미로움은 다시금 평안을 되찾아주기에 충분했다.

객실에 여장을 풀자마자 서둘러 온천을 향했다. 온정리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5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솟구쳐 임금들도 찾았다는 온천물은 질감이나 피부가 느끼는 감촉에서 과연 최고였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홀랑 벗어부친 채 노천탕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금강산의 풍치는 남아있던 긴장감을 말끔히 없애주었을 뿐 아니라 평상에 누워 비를 맞는 호기마저 부리게 했다.

늦은 저녁 북측이 운영하고 있다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공연을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구경했다. 오래 전 우리의 가요가 그랬을 것이다. 정제된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연주에 몰입하는 연주자들. 특히 우리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코디언 소리를 들으며 잠시 회상에 젖기도 했다. 악단은 온통 아름다운 여인들로만 구성되었으며 그로 인해 신비스러움은 더해졌다.

▲ 아코디언 연주자의 모습
ⓒ 고성혁
이튿날은 구룡폭포와 상팔담을 올랐다. 그 기개와 장쾌함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올랐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비가 흩뿌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바라보는 금강산의 운치는 과연 선(仙의) 경지였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줄기와 바위틈새를 파고 뻗어 내린 아름드리 거목들. 가까이 있는 산세의 풍광에 감탄하다가 문득 바라다 보이는 건넛산 기암괴석의 기괴한 형용들에 더 큰 놀라움이 솟구쳤다. 비경에 대한 경외감이 가슴 가득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 산이여, 풍경이여, 금강산이여.

▲ 상팔담 광경
ⓒ 고성혁
▲ 바위틈의 금강송
ⓒ 고성혁
▲ 구룡폭포
ⓒ 고성혁
비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아내와 함께 구룡폭포를 사진에 담고 나서 상팔담을 향했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담긴 상팔담. 8개의 옥빛 보석처럼 빛나는 소(沼)가 빗속에서 둥두렷이 떠있고 그런 소를 중심으로 사방의 산세가 우리를 압박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운무는 산머리를 휘감아 유유자적 흐르고 눈과 코를 찌르는 청량감이 만산(滿山)에 가득했다. 산의 정기와 신령스러운 기운이 문득 몸 안을 휘돌아 묵고 낡은 폐기를 씻어내 이윽고 내 몸은 환골탈태되었다. 정말이다. 고백컨대 최소한 그런 변화의 느낌을 가졌다고 얘기할 수 있다.

▲ 상팔담의 아름다운 운무
ⓒ 고성혁
내려오는 길에 작은 복숭아 4개를 우리 돈 4,000원에 사서 나누어 먹었다. 작고 볼품은 없었지만 맛은 있었다. 북측 식당 목란각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북측 안내원 아가씨들이 입구에 서서 무언가를 얘기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아, 꽃다운 방년에는 풀잎 스치는 소리에도 웃는다더니, 그렇구나. 이곳 또한 조국의 강산이 분명하구나.

식당 유리문 한 편을 막고 '고정문'이라고 붙여 놓았기에 문득 내 성(姓)과 관련한 한 생각이 떠올라 안내원 아가씨에게 싱거운 유머를 건넸다.

"이 곳에 왜 제 동생이 이렇게 서 있습니까?"

영문을 모르는 아가씨들이 의아한 모습으로 재미있다는 듯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니, 제 동생 정문이가 왜 이렇게 종일 서있어야만 하냐고요."

그때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안내원들에게 이름표를 보여주며 재차 말했다.

"제가 고성혁입니다. 그러니 고정문이는 제 동생이지요. 제 동생을 이렇게 세워만 놓으니 제 기분이 좋지 않단 말입네다."

아가씨들이 발간 볼이 되며 웃어줬다. 그러면서 아무런 낯가림 없는 얼굴이 되어 남쪽의 내 조카들처럼 내 옆에서 재재거렸다. 나 또한 행복해졌고 이 모습을 본 일행들도 즐거운 낯빛이 되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6년의 세월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오후에는 바다가 막혀 호수가 되었다는 삼일포를 돌아봤다. 삼일포의 모습도 괜찮았지만 훼손이나 병충해의 피해가 전혀 없는 소나무들이 촉촉이 내리는 비와 함께 가뿐한 모습으로 서있어 더욱 좋았다.

금강산의 소나무들은 거개가 몸체에 엄격히 절제된 모양의 붉은 홍조를 띄고 있을 뿐 아니라 수령 또한 오랜 것들이어서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온 몸에 은은히 서려있다. 그래서인지 금강산의 소나무만을 '금강송'이라 하여 따로 부른다고 한다.

붉고 고귀한 모양의 소나무들에게서 넘쳐나는 높은 품격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황송(皇松)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몇 번이고 속삭였다.

"저 모양을 봐, 저건 임금님의 품격이야! 너무나 눈이 부셔!"

삼일포 관광에 이어진 교예공연의 관람은 그들의 기막힌 기예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그들이 살아왔을 삶의 고통에 대한 유추로 눈시울이 젖어 들게 했다. 얼마나 많은 훈련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그들이 가졌을 고통과 번민에 대해 동시대 부모로서의 짠한 마음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눈시울을 붉히다가 얼핏 아내를 돌아보니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교예공연은 환상적이었다. 더러는 명쾌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더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그들의 주장처럼 세계 최고수준이 틀림없었다. 특히 칼끝을 물고 하늘을 날며 온갖 재주를 보여주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저녁 전에 어제의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온천을 향했다. 그리고 고성항(장전항)에서 바다를 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식후에는 일행들과 함께 온정각에 자리 잡은 노래방에서 제각기의 짝꿍들과 남측노래를 마음껏 불러댔다..

이튿날 오전 만물상을 올랐다. 만 가지 형상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만물상이다. 북측 안내원이 귀엽고 아름다운 억양으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설명을 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 만물상을 오르는 길
ⓒ 고성혁
절부암, 곰, 도마뱀, 멧돼지의 군상들. 거의 직각에 가까운 낭떠러지를 타고 신선대를 올랐다.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는 절경이었다.

어찌하여 이런 광경이 있는 것인가. 사방을 둘러싼 기암괴석과 흩날리는 구름들. 요요한 신비로움이 가슴을 훑고 나면 금강의 그윽한 향취가 스치듯 지나가고 이어지는 높고 낮음의 낯선 공간감각. 구름 안에 갇힌 것인가. 아니면 내가 구름인 것인가. 사방이 짙은 푸르름으로 넘실대 나는 이미 말을 잃었다. 그랬다. 금강산의 절경은 내게 있어 이미 감상의 대상이 아닌 경배의 신역(神域)이었다.

▲ 금강이여.
ⓒ 고성혁
▲ 금강이여.
ⓒ 고성혁
▲ 금강이여.
ⓒ 고성혁
이른 점심을 끝으로 짧은 일정을 마치고 금강산을 출발했다. 올 때처럼 갈 때도 양 옆으로 넓은 벌판과 습지가 이어졌다. 왜 북한은 이곳을 개발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넓은 곳을 개발한다면 식량난도 얼마간 덜 수 있지 않을까. 개발 장비 부족 등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지만 어쨌든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 온정각에서
ⓒ 고성혁
올 때와 마찬가지로 드문드문 서 관광버스를 내려다보는 북측 군인들의 경직된 모습은 다시금 긴장감을 일깨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더운 날씨임에도 제복을 입고 무언가를 감시해야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곧 닥쳐올 내 아들의 군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너희도 내 아이들이다. 아들들아, 아무쪼록 탈없이 건강하게 군복무를 마치렴.'

남측사무실에서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니 오후 2시가 가까웠다. 버스에 올라 타 휴대폰을 켜니 익숙한 소리로 그동안에 쌓인 문자메시지가 떨어졌다. 그랬구나. 휴대폰이 없는 2박3일을 보냈구나. 아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 후 우리들의 여정을 궁금해 할 큰 아이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 대면의 금강산과 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금강의 목소리와 숨결을, 그 장쾌한 기개와 품격을.

오, 금강이여, 그대의 속살을 파고들어 영원으로 달리고 싶구나. 부디 잘 있으라.
금강을 어찌 필설로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경외할 뿐이지요. 짧은 글로서 금강산을 현혹했다고 너무 나무라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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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만나는 금강산 1만 2천봉
[문화콘텐츠를 찾아서 23] 이야기 설화 보물창고 ‘천하명산, 금강산’
최육상(run63) 기자
▲ <청화백자철채산형필세(靑華白磁鐵彩山形筆洗)> 조선 19세기, 높이 11.5㎝ 가로 2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강산의 험준한 산세를 묘사해 산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준다. 붓을 빠는 본래의 기능뿐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쓰인다.
ⓒ 국립중앙박물관

다음 중 금강산을 ‘겨울’에 부르는 이름은?
①금강산 ②봉래산 ③풍악산 ④개골산

학창시절 한 번쯤 접해 봤을 법한 문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가 없어 웃기지도 않는다. 도대체 사계절 이름을 외우는 것하고 금강산을 아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금강산을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뱃길과 육로 관광길이 열려 있어도 금강산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디지털콘텐츠로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애니메이션 등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위드프로젝트가 내놓은 ‘천하명산, 금강산’ 콘텐츠는 금강산을 한 눈에 보여준다.

▲ ‘강생’이 신선들의 바둑놀음을 구경하는 것(왼쪽)과,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를 나타난 삽화.
ⓒ (주)위드프로젝트

콘텐츠는 금강산에 담긴 설화를 한데 모았다. 지역(해금강, 외금강, 내금강 등)과 유형(봉우리, 계곡, 폭포 등) 그리고 내용(효성, 선악, 탐욕 등)에 따라 정리한 설화는 상팔담, 만물상, 구룡폭포, 명경대, 영원암, 장안사 등 금강산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관련 설화만도 수 백가지.

콘텐츠 개발을 지휘한 박수현 기획실장은 “문화산업 분야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창작소재를 제공하는 데 콘텐츠 개발의 의미가 있다”고 전제한 뒤, “금강산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해석한 결과물은 전통문화·고전문학·한문·지리 등 여러 분야에서 교육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 말대로 지식산업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만큼 좋은 창작소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강원대 김풍기 교수가 쓴 <조선시대 금강산유기> <한시로 떠나는 금강산기행>과 강원도청 문화예술과의 <강원의 설화 I,Ⅱ>, 70차례나 금강산에 오른 전문 사진작가 이정수의 <금강산의 사계> 등의 자료를 해석한 콘텐츠 가치는 크다.

상팔담, 만물상, 구룡폭포, 명경대... 금강산은 설화의 보물창고

▲ 선녀들이 귀신들의 방해 없이 만물상에 내려와 놀 수 있도록 신선들이 만들어 줬다는 ‘귀면암’의 여름 사진.
ⓒ 이정수
콘텐츠 메뉴는 설화를 한데 모은 ‘설화데이터베이스’, 금강산의 절경을 보여주는 ‘갤러리 및 박물관’, 시나리오와 2D 3D 캐릭터로 구성된 ‘콘텐츠', 설화를 플래시애니메이션과 설화지도로 보여주는 ‘시작품’ 등으로 구분해 금강산을 다양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본다.

‘상팔담’은 외금강 구룡폭포 위에 있는 크고 작은 여덟 개의 소(沼)를 말하는데 옛날에 금강산 팔선녀의 목욕터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상팔담은 구룡폭포로 흘러내리는 물길의 폭이 좁고 깊게 패인 폭호(瀑壺, 담·소·탕 등은 지형학 용어로 폭호에 해당)로 구룡동 윗골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만물상’은 온정령을 따라 오르다가 육화암을 지나면 나타나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귀면암, 삼선암, 절부암, 안심대, 망장천, 만물초, 하늘문, 천선대, 천녀화장호, 망양대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기암괴석과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만물상은 세상만물의 모형을 모두 한곳에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라 붙여졌다.

‘구룡연’과 ‘구룡폭포’에는 맹인, 앉은뱅이, 귀머거리 이야기가 전한다. 장애를 고치기 위해 금강산 신계사에서 불공을 드리던 이들은 어느 날 계곡을 오르다 지축을 울리면서 오색무지개를 걸치고 나타난 거대한 폭포를 만난다.

놀라운 광경에 감탄을 한 나머지 귀머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앉은뱅이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안타까워하던 맹인은 폭포가 궁금해 눈을 비볐더니 눈앞에 보였다. 장애인들을 완쾌시킬 만큼 구룡연과 폭포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는 이야기이다.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가 다 차서 못 간 ‘울산바위’

▲ 장애인들을 완쾌시킬 만큼 아름다웠던 ‘구룡폭포’의 여름 사진.
ⓒ 이정수
밝은 거울을 상징하는 ‘명경대’에는 부지런히 일만 하던 석봉만이 죄 없이 저승에 끌려갔다 온 이야기가 전한다. 열 명의 대왕이 명경을 앞에 놓고 석봉만의 일생을 본 후, “명부에 잘못 기재되어 잡혀왔으니 어서 인간 세계로 돌아가도록 하여라”고 해서 인간 세상에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명경대 앞이었다는 것이다.

‘영원암’은 영원 스님이 탐욕스러웠던 스승인 명학 스님을 옥동자로 환생시킨 후, 그 아이가 도를 깨우치도록 도우며 머물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장안사’에는 신라를 정벌한 고려의 낙랑공주와 나라를 잃은 신라 마의태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고, 장안사 북쪽 산마루에는 마의태자를 안심시켜 태조 왕건으로부터 목숨을 건져 준 낙랑공주를 기리는 ‘안심암’이라는 절이 남아 있다.

한편, 설악산의 ‘울산바위’ 등 여러 곳의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멈춘 이야기는 재미나다. 다름 아닌 금강산에 할당된 1만 2천 봉우리가 다 차 버렸기 때문. 이 이야기에는 금강산을 향한 민중들의 염원이 묻어있는데, 이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자연의 위대함과 조화를 이뤄 설화의 보물창고인 금강산을 만들어 냈다.

박 실장은 “금강산은 많은 신선과 선녀들이 산과 계곡에 내려와 노닐었고, 중국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구하기 위해 선남선녀를 보냈으며 각종 짐승들이 금강산에 빠져 돌로 변한 곳”이라며 “옥황상제조차도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잊고 금강산의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짐작하게 하고도 남는다”고 금강산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금강산을 알다 보면 통일의 디딤돌도 놓을 수 있다

▲ 팔선녀의 목욕터라는 설화가 전하는 ‘상팔담’의 여름 사진.
ⓒ 이정수

수많은 금강산 설화들이 손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가깝고도 먼 북한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실장은 이와 관련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휴전선을 거쳐 현지답사를 갔지만 북한에서의 체류기간과 촬영제한, 기타 자유롭지 못한 여건 때문에 북측의 금강산 관련 연구자료를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커요. 기회가 되면 남북이 함께 연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박 실장은 이어 “통일을 앞당기려면 우리가 북한의 사정을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세계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설화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북녘 땅을 밟는다면 통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콘텐츠로나마 금강산을 만나다 보면 통일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위드프로젝트는 현재 미국과 유럽시장 진출을 목표로 ‘선녀와 나뭇꾼’ 등 금강산 관련 설화를 각색해 10분 짜리 52편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캐릭터도 개발하고 있다. 힘들게 개발한 금강산 콘텐츠가 1만 2천 봉우리에 담긴 이야기를 세계에 알리는 나팔수 역할을 하길 바라본다.

▲ 세상만물의 모형을 모두 한곳에 옮겨 놓은 듯한 ‘만물상’의 겨울 사진.
ⓒ 이정수

금강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 <금강산십곡병풍(金剛山十曲屛風)> 필자미상, 19~20세기 초, 견본수묵담채, 각 폭 119.2×32.4㎝. 장면은 오른쪽부터 내금강 전경, 불정대, 장안사, 은선대, 보덕암, 환선정, 단발령망금강, 구룡연, 명연담, 만폭동 순.
ⓒ오죽헌시립박물관

봄 - 금강산(金剛山) 태양에 빛나는 아침이슬 모습이 보석인 금강석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 불교 경전 <화엄경>에 기록된 "이 세상 팔금강 중 하나가 해동조선에 출현했고, 그곳에 보살이 머문다"에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여름- 봉래산(蓬萊山) 계곡과 봉우리에 짙은 녹음이 깔려 신록의 경치를 볼 수 있다고 붙은 봉래산은 도교의 신선사상이 담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불린다. 금강산을 봉래산, 방장산(方丈山)을 지리산, 영주산(瀛州山)을 한라산이라 하여 삼신산에 비유했다.

가을 - 풍악산(楓嶽山) 산이 붉게 불탄다 해서 붙여진 풍악산은 봉우리와 단풍나무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색채미의 절정을 이룬다.

겨울 - 개골산(皆骨山)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나무와 바위의 구석구석을 뼈처럼 보여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다른 말로 눈 덮인 산, 설봉산(雪峰山)이라고도 불린다. / 최육상
㈜위드프로젝트의 ‘천하명산, 금강산’ 콘텐츠 자료 열람
http://gumgang.culturecontent.com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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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선착장 뒷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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