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폭포의 힘찬 기세여...

어제 늦게까지 마셨음에도 5시가 되어서 눈이 떠진다. 아무래도 긴장이 덜 풀려서 그런가보다. 답사집 한번 읽어보고 북한 물로 샤워한번 하고 모놀식구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빨리 일어나셔요..일출 좀 보세요."

그제서야 눈이 번쩍 떠지는가 보다. 현대가 운영하는 근처 횟집에 가서 아침식사를 했고, 모든 여행의 출발지인 온정각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매바위가 보이고 온갖 구호가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그 넓은 바리봉마져 김모씨의 글자가 새겨져있다. 글자 하나의 크기가 20미터에 이르고 깊이만 1.5미터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수 백년 후 우리 후손들은 저 글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북한 주민이 다니는 길과 관광버스가 다니는 길은 구분되어 있다. 철조망 사이로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장전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땔감을 지고 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애타게 손을 흔들었건만 민간인 역시 무표정이다. 북한의 권력층들은 어떻게 이들을 설득했을까? 김정숙 휴양소 옆에 붙어 있는 붉을 글씨가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가는길 험해도 웃으며 살자."

정몽헌공원

잠시 시간이 남아 온정각 앞에 있는 '정몽헌 공원'에 들렀다. 실은 난 그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현대의 퍼주기식 경영 때문에 그룹자체의 존립마져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손가락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북한땅을 밟아보니 그가 참 큰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질시와 수모를 참아가며 일관되게 대북사업을 진행했고 아버지 정주영의 유지를 가장 잘 따랐을 것이다. 그도 사업성이 희박한 이곳에 돈을 쏟아 붓고 싶었겠는가? 민족의 미래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기에 힘든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 곳에 와서야 그가 양심있는 기업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나보다. 가위 조를 것 같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여기 조선땅의 숨결이 맥동치는 곳 금강에 고이 잠들다.<br>아버지 아산 정주영의 유훈을 이어 세계사의 모든 갈등을 한몸에 사르며 남북화해의 새로운 마당을 열다. 그의 혼과 백 영원히 하나된 민족의 동산에서 춤추리<br>....2003. 8. 4. 도올 짓고 쓰다."

북한은 금강산이 보이는 곳 양지바른 곳에 그의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도올의 말처럼 그의 혼과 백은 금강산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구룡연 가는 길

온정각에 도열된 버스 역시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남한사람들의 통일의 열정을 보여주었다고 해고 과언은 아니다. 눈 덮힌 금강산과 버스는 잘 어울린다. 저 앞에 보이는 하얀 건물은 김정숙 휴양소다. 한때 남북 이산가족상봉할 때 이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온정각 근처에 이산가족 상봉소를 만들고 있다.

온정각에서 20여분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구룡연입구가 나온다. 그 20여분동안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었다. 날씬하게 뻗은 금강송이 하늘을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태백산이나 주왕산에서 이런 적송을 본 적이 있다. 나무 전문가들이 이 나무를 보더니 한그루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단다.

소나무사이로 신계사터가 나타났다. 문화유산 답사를 하기 때문에 신계사는 꼭 가보고 싶었던 폐사지다. 내려서 한번 거닐었으면 원이 없겠다 .근세기 선승이 요람인 이곳은 석두스님과 효봉스님의 주석처이기도 하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근세기 대선사의 정신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 온전한 기둥돌과 삼층석탑을 보고 일렁이는 흥분을 억제할 길이 없다. 목이 쭉 내밀어지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 옆에 배밭이 하나 있다. 김일성이 이 곳에 들렀다가 배맛을 보고 감탄하여 '금강산을 찾는 이는 꼭 이 배맛을 보라' 라는 말을 했기에 지금은 사람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얼마나 맛있길래....은근히 배가 먹고 싶다. 양지바른 곳에 힘 께나 쓸 만한 토종닭도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닭도 먹고 싶다...하하 ...개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산행

구룡연 입구에 도착했다. 구룡폭포에 화장실이 있지만 작은 일을 보는데 1불, 큰 일보는 것과 여자들은 4불이다. 입석과 좌석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따졌다. 여자들은 작은 일만 보면 되는데...4불은 너무 비싸지 않는가?

"쪼그려서 앉아 있는데 큰 일 보는지, 작은 일 보는지 어떻게 압네까?"

어쨌든 그 오물들을 일일이 등짐을 지고 하산 한다고 하니 그 수고의 값을 치룬다고 생각하자. 담배피면 100불, 쓰레기를 버려도 벌금,....그 덕인지 몰라도 금강산은 정말 맑고 깨끗하다.

구룡연 입구에서 전체사진을 찍었는데..몇 명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1불인지 4불이지 달러 아낄려고 화장실로 달려간 것이다.

이제 출발이다.

"모놀 파이팅....출발 야!!" 힘찬 구호와 함께 금강산으로 향한다.

목란관

구룡연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목란관이 나온다.. 봄이 되면 이곳에 화사한 목란이 만개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지녔다고 한다. 이곳에서 북한 음식을 직접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파전과 막걸리가 4불이란다. 우리 일행이 하산할 때 금강의 감동에 못이겨 이 곳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화가 무궁화라면 북한의 국화는 목란이란다. 나는 여태 진달래인 줄 알았다.

수려한 산세가 이어지고 있고 맑은 물이 흐른다. 쉬엄쉬엄 자연과 벗삼아 걸으면 그만이다. 우리 선조들은 바랭을 메고 짚신을 신고 금강산 유람에 나섰을 것이다.

앙지대

목란관에서 900여미터 가면 앙지대라는 평평한 바위가 나온다. 이 곳에 이르면 반드시 발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 본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이 절벽으로 가로 막히고 유난히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거의 한글인데 이곳만은 '지원'이라는 한자표시가 있었다. 김일성주석이 어렸을 때 김형직이 큰 뜻을 가지라고 지원이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김형직 사후 60돌을 기념하여 새긴 것이란다. 바위틈에서 간신히 뿌리 내린 소나무를 눈여겨보라.

앙지대의 전설

아주 먼 옛날 금강산이 천하절경이라는 소문을 듣고 갖가지 수많은 동물들이 금강산을 찾았다. 그 중에 코끼리, 거북이, 도마뱀, 악어가 있었는데, 금강산의 절경을 보자면 비로봉에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서, 동물들은 각자의 힘과 재주를 가지고 비로봉에 먼저오르기 시합을 하고,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 각자 비로봉에 오르던 동물들은 이 앙지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동물들은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며 앙지대의 황홀한 자연경치에 취해 더 이상 오르기를 멈추고 각자 자기 모양의 바위로 굳어지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삼록수

"위대산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물에는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고 하시어 '삼록수'란 이름을 주시었다."

올라갈 때 한모금 마시면 10년이 젊어지고 내려올 때 한모금 마시면 다시 10년이 젊어지고 욕심을 부려 한모금 더 마시면 어머님 뱃속으로 되돌아간다는 물이다. 산삼이 녹아서 그런지 약간 씁쓸한 맛을 낸다고 하는데 둔한 내 혀는 그걸 느끼지 못한다. 조그만 패트병에 고이담았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조장이 물을 달라고 해도 난 모른척 했다. 서울로 돌아가서 어머님 앞에 이 물을 내 놓았다.

"보약도 못해드렸는데...좋은 물이나 드셔요."

금강문

어처구니 없는 붉은 글자를 읽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김일성의 말은 성경과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79. 8. 19. 몸소 여기 금강문을 지나시며 <이 금강문을 지나야 금강산의 맛이 납니다.> 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성경처럼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천연 돌에 새겨놓아 분통이 터진다. 어떤 약수터에는 '김일성 수령동지께서는 이 물을 마시고 참 좋다고 하셨음' 이란 글도 본 적이 있다.

금강문 개울 건너 전설속의 청년이 무술을 연마하다가 새긴 발자국이 보인다. 그걸 보고 금강문에 들어서자.

저주받은 토끼

금강문 아래 휴식장에서 세존봉 능선을 향해 왼쪽으로 마주 바라보이는 세존봉의 절벽은 마치 장수가 차곡차곡 포개 쌓아놓은 돌성을 방불케하는 성벽암이 나타난다. 그 위에 머리는 토끼 같고 몸통은 거북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형상을 따라 토끼바위 또는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겨 벌을 받아 바위로 변했다는 토끼에 관한 전설이 담겨있다. <BR>

달새님이 고드름을 깨서 내게 건내준다. 가뜩이나 목이 탔는데 한 입 깨물고 나니 시원하다. 고르름을 자세히 보니 수정처럼 맑고깨끗하다.

옥류동

금강문을 벗어나면 시원스런 장면이 펼쳐진다. 큼직한 기암괴석과 옥류같은 물이 만들어낸 비경이다. 산 자락 한굽이 꺾어들면 앞이 환히 트이면서 아름다운 옥류동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예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린다 하여 불러오는 이름이다.<BR><BR>

옥류동 골짜기는 산 봉우리들로 둘러쳐 있다.

무대바위다. 여러 시인 묵객들이 이 너른 바위에 걸터 앉아 금강예찬을 했던 곳이다. 춘원 이광수도 이 물을 백옥이라고 불렀고, 육당 최남선은 '최고의 경지'라고 불렀던 곳이다.

그래서 근처 바위에는 묵객들의 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화공들도 이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붓을 놀렸을 것이다.

수정을 녹여서 쏟아 부은 듯한 소(沼)가 옥류담이며 고운 흰 비단을 편 듯 수정같이 맑은 물이 구슬같이 흐르는 폭포가 옥류폭포이다. 담은 630평방미터고 깊이는 6미터란다. 금강산의 수많은 소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뒤에 보이는 옥류폭포는 50미터에 이른다.

물과 돌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낸 자태다.

연주담

옥류동의 절경을 지나 잇달아 등장하는 절경은 금강산의 비취색 물빛을 대표하는 연주담과 연주폭포가 등장한다. 물 색깔이 비취색을 띄고 있다.

연주담은 그 옛날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실수로 두 알의 구슬을 흘리고 간 흔적이라는 전설처럼 파란 구슬 두 개를 꿰어논 듯하다. <BR>위의 작은 소는 너비 6미터, 길이 10미터, 깊이 6미터 가량되고, 아래의 큰 소는 너비 9미터, 길이 30미터, 깊이 9미터 가량된다.<BR>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푸른물이 들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연주담 위에는 네모 반듯한 한 장의 바위가 돌다리를 놓은 듯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연주폭포가 그 바위 위를 타고 넘는다고 한다.

비봉폭포

비봉폭포는 꽝꽝 얼어붙었다. 그 높이가 139미터나 되며 금강산의 4대 명폭가운데 하나다. 비봉폭포는 세존봉에서 샘솟아 벼랑을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절벽이 안으로 오므라든 데를 만나면 갈래갈래 비단실로 되어 감길 듯 말 듯 흘러내리며 물안개로 변하기도 하는 모습이 압권이란다. 꽁꽁 얼어붙어 그걸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류가 봉황의 꽁지깃처럼 흩어지고 있어 비봉폭포라고 불리운 것이다.

마음속으로 하늘을 나는 봉황을 상상해본다.

깔딱고개에 서서 이름 그대로 숨을 몰아쳤다. 좌측 5분정도 올라가면 구룡연이 나오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길로 올라가면 상팔담이 나온다.

구룡폭포가는 길이 예쁘게 보인다. 저기 있는 관폭정에 올라서서 구룡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왼쪽의 작은 건물이 돈 받는 화장실이다.

구룡폭포

"아" 외마디만 튀어 나온다. 구룡폭포가 한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폭포중에 하나로 이 폭포를 보는 것만으로 큰 영광으로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단원 김홍도도 이 폭포를 화폭에 담았을 정도다.

폭포벽의 높이 150미터, 폭포 높이 74미터, 폭 4미터다. 폭포와 소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며, 거센 물줄기로 패어 자연 형성된 구룡연의 깊이만 13미터란다. 옛날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해강 김규진이 1919년 새긴 '彌勒佛'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폭포와 어우러져 힘이 넘치고 있다. 佛자의 마짐막 획을 길게 내렸는데 기 길이가 호수의 깊이와 일치한다고 한다.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관폭정이라는 정자를 새로 복원해 놓았다. 북쪽사람들의 문화재 복원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인데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문양도 색다르다. 문화재 복원 일을 하시는 안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어느 정도 맞는 것이 있어야 비교해서 설명하지."

상팔담 가는 길

상팔담은 깔딱고개에서 다리를 건너 30여분 올라가야 한다. 대다수의 관람객들이 구룡폭포만 둘러보고 그냥 하산한다.하지만 상팔담을 보지 않고 금강산을 보고 왔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계단은 급경사이고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다.힘이 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은 보장받을 수 있다. 힐끗 뒤를 바라보면 산세와 계곡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진정 금강의 맛이 느껴지는 곳이다.

관폭정이 한가로이 자리잡고 있다.

달새님과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바위에 새겨진 꽃문양을 보게 되었다.

"와...이곳에 무궁화가 새겨져 있네."

그 순간 이곳을 지키는 북한안내원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향기야님이 북한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저 꽃이 무슨 꽃입니까?"

"저런 꽃 처음 봅네까?"

바로 북한의 국화인 목란이었다. 북한 안내원들은 대개 친절하고 늘 따뜻한 미소를 보여준다. 대신 표지석이나 바위의 글자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할머니가 표석이 새겨진 바위에 걸터 앉았다가 혼쭐이 난 것도 보았다. 오죽했으면 김장군의 글 앞에서 재채기했다가 벌금 30불을 물려겠는가? 그들의 문화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안타깝다.

상팔담

상팔담에 올라 가장 먼저 본 것이 하늘이었다. 가끔 영화속에 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이 곳에서 그걸 보게 될줄은 몰랐다. 떼지어 금강산을 넘어가는 구름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아-금강'

구룡대라고 불리우는 절벽에 목을 내어 빼꼼히 내려다 보면 8개의 환상적인 담소가 이어진다. 구룡연 윗 골짜기에 있다하여 上八潭이라고 한다. 이렇게 굽이 돌아서 맨 아래쪽에 있는 담소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구룡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의 내용처럼 구룡대에는 두레박이 설치되어 있어서 상팔담의 맑은 물을 떠 먹을 수 있다. 담소들로부터 구룡대까지의 높이가 150m이며, 상팔담은 북측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소의 주인은 금강산에서 목욕하는 팔선녀들이 아닐까?

구룡대에서 바라본 금강의 비경들이다. 세존봉 천화대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준다. 신이 혼자서만 볼려고 몰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북쪽으로는 옥녀봉과 관음연봉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멋진 곳에서..모놀식구들은 하나가 되었다.

"통일 만세"

우리가 가장 늦게 하산하는 바람에 북측 안내원들하고 여러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자주 만날수록 통일은 빨라지겠지.

금강산 온천

산행의 피로는 온천에서 풀 수 있다. 온정리라는 지명을 보듯 금강산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1천년전 마의태자도 금강산에 들어와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지하 203미터에서 용출되는 100% 천연온천수다. 원래 온도는 43도인데 이 곳까지 오는동안 파이프에서 3도가 줄어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천연온도의 물에 그대로 몸을 담글 수 있다. 무엇보다 신나는 곳은 야외온천탕이다. 이 곳에 앉으면 비로봉, 집선봉, 채화봉이 한 눈에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목욕탕이 또 있을까?

물이 너무 좋아 우리 일행중 한 분은 교예단 보는 것도 포기하고 3시간동안 목욕을 했을 정도니까...

온천 2층에 올라가면 북한미술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앞에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일일이 실로 이어만든 것이다. 어찌나 놀랬는지...작은 소라로 작품을 만든 것도 있고, 성모마리아, 예수님의 그림도 있어 놀라게 된다. 호랑이의 그림이 유난히 많다.

평양 모란봉 교예단

온천을 마치면 북한 교예관람이 기다리고 있다. 온정각옆 금강산 문화회관 건물에서 하루 한차례 공연이 있다. 교예는 연극, 무영,체조가 어루러진 종합예술이란다. 묘기만 보여주는 서커스와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악단까지 총 1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최고의 묘기를 현장에서 보게 되어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각종 국제대회의 입상작만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인민배우,공훈배우들의 묘기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줄넘기,널뛰기, 봉재주, 장대재주등...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모른다. 어린 학생들이 저런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겠는가?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마지막 휘날레를 장식하면서 청중과 다함께 박수를 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시 한번 금강산을 찾게 되면 교예단 때문일지도 모른다.

금강산 문화회관 내부전경

금강원

온정각에서 뷔페로 먹을 수 있지만 왠지 북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무려 25불이나 되지만 북한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북한인이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은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음식을 먹어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50불짜리도 기꺼이 먹을 수 있다.

메뉴는 도루묵튀김 3마리, 꿩만두 2개씩, 흑돼지불고기, 석죽(홍합죽), 냉면이 전부다. 반찬은 김치와 금강산 도라지,고사리가 나온다. 맛이나 값으로 따지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지만 북에서는 이것이 최고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고성앞바다에서 잡아왔다는 도루묵은 두툼한 알을 씹는 맛이 그만이며 꿩만두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흑돼지는 털을 잘 깍지 않아서그런지 돼지털도 함께 넘어간다.

서빙하는 아가씨에게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선생동무' 하고 외쳤다.

"혹시 이 돼지 흰돼지에 검은색 물감 칠한 것 아닙니까?"

농담 한 번 했더니..아주 정색을 한다.

"북에는 흰돼지가 별로 없어요, 까만돼지 맞습네다.

평양소주에 잔을 가득 채우고 통일을 기원한다.

"통일 만세"

해금강호텔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이다.그냥 잠자기에는 왠지 허전하다. 해금강호텔로 달려갔다. 바다위에 둥둥 떠있는 호텔의 야경이 참 좋다. 그 앞에 있는 장전항이 큰 항구임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전력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예이기도 하다. 철썩거리며 울리는 파도 소리는 남한의 바다와 전혀 틀리지 않는다.

로비에서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필리핀사람이 구성지게 한국 가요를 부르고 있다. 우리의 어깨도 들썩거렸다. 신명나는 금강산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3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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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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