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2006)'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7.11.16 아홉 마리 용과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2. 2007.07.04 ① 금강산 탐방기
  3. 2007.06.14 장전항
  4. 2007.06.10 금강산 구룡폭포와 상팔담

아홉 마리 용과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설악산에서 날개를 달아 금강산에서 펴다 ②
정도길 (fordharris)

17년의 잊힌 계절을 다시 찾은 감정을 뒤로 한 채, 11월의 첫날 새벽은 부산한 모습으로 움직여야 했다. 단체여행이라는 것이 시간에 맞춰야 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강원도 최전방 민통선을 통과하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금강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긴장감과 설렘이 한꺼번에 혼재해 있다.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를 조금 지나니 비무장지대다. 사십여 대의 버스는 휴전선을 통과하면서 북한 땅을 지나고 있다. 휴전선, 한국동란의 휴전협정으로 당시 그어 놓은 남북의 경계선으로서, 동서 155마일의 길이에, 50㎝ 높이의 노란색을 칠한 시멘트 말뚝을 200m 간격으로 땅에 박아 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다.


일행이 지나면서 본 말뚝은 동서 간 총 1292개 중 1290번째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 금강의 단풍 11월의 첫날, 금강의 단풍은 나를 찾아주는 이를 위해 애설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 정도길
금강산

처음, 두 눈을 통하여 보는 북녘의 땅은 서글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산야에는 푸름도 없고, 삭막하다.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산은 온통 바위뿐이고,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다. 도로변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북한 초병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응시하고 있다.


천막으로 설치된 북측출입사무소에서 검사를 마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행 단체별로 검사를 맡았다고 해도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객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온정리, 일박이일 머무를 숙소가 있는 곳이다. 금강산은 크게 내금강, 구룡연, 삼일포, 만물상 등 네 개의 여행 코스가 있다.


여장을 풀고 먼저 구룡연으로 향했다. 경쾌하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사시사철 푸른 담(潭)과 소(沼)를 감상할 수 있는 외금강을 대표하는 코스다. 목란관, 수림대, 앙지대, 상록수,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구룡폭포, 상팔담으로 이어지는 약 4.3㎞의 코스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에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다.


금강산 산행 시에는 주의 사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산행 시작 전에는 반드시 볼일을 보고 산행을 하라는 점이다. 산행 시 위생실(화장실)을 갈 때 서서 보는 일은 1달러, 앉아서 보는 일은 4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물상 산행 시 너무나 급해서 1달러를 내고 볼일을 봐야만 했다.

▲ 목란관 구룡연 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멀리 금강의 아름다움을 훔쳐 볼 수 있다
ⓒ 정도길
목란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본격 산행이 시작됐다. 1200여 명이 한꺼번에 오르는 탓에 비교적 넓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밀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목란관, 구룡연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 측에서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입구 다리에서 올려다본 금강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약 삼십 분을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었다. 햇살을 품은 단풍잎이 하늘거린다. 구룡폭포에 이르기 위해서는 총 8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화려한 단풍잎과 여행객의 등산복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 구룡연코스의 두번째 다리 구룡연 코스에는 총 여덟개의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두번째 다리로서 자연과 사람의 단풍색으로 물들여 놓고 있다.
ⓒ 정도길
금강산

금강산은 둥글고 뾰족한 바위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천태만상의 바위는 제각각 모습을 달리하고, 사이사이에 난 잡목은 분칠을 하듯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은빛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비봉폭포다.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꼬리를 휘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폭포로, 금강산 4대 명폭 중 하나이며, 139m의 높이다. 오른쪽에 있는 무봉폭포와 짝을 이룬다고 해서 둘을 부부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같이 가는 하얀 은빛의 물줄기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음달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떨어지고, 바람에 흩어져 날리며 물안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 금강의 암벽 금강산은 암벽으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이다.
ⓒ 정도길
금강암벽

이곳저곳을 보고 감상하느라 눈이 피곤하다. 금강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양에 따라 사진의 선명도가 달라진다. 실물보다 더는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아름답게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뒤처진다. 일행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한참을 걸었을까, 산골짝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하늘이 열리듯 앞이 확 트이면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이 장관을 이루고 현기증이 날 정도다.

▲ 비봉폭포 은실이 휘날리는 듯한 비봉폭포
ⓒ 정도길
비봉폭포

넓디넓은 바위 폭포를 하고 있는 옥류동 계곡이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옥류동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18호로서, 담소의 넓이는 630㎡, 깊이 6m, 길이 58m의 옥수를 담고 있다. 일필휘지 붓의 돌림일까, 절세미인의 치맛자락일까, 옥을 담아 놓은 보석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욕망이 인다.


금강산의 물은 흐르면 비단길이요, 모이면 담소요, 흩어지면 계곡이요, 떨어지면 폭포수요, 마시면 몸에 좋은 약수라 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계곡에 내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 옥수의 맛은 가슴 속 깊이 짜릿한 여운으로 오래 남는다.

▲ 옥류동 옥을 풀어 깔아 놓은 듯한 옥류동 계곡. 말로써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자연경관이다.
ⓒ 정도길
옥류동

구룡폭포(九龍瀑布)까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하다. 힘도 많이 든다. 지나온 다리를 세어보니 여덟 번째 다리를 지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정표가 5분 남았음을 표시한다. 은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일까, 학의 날개가 구름 위로 나르는 모습일까? 한 장의 큰 바위 덩어리에 옥수가 흘러내리는 구룡폭포. 북한의 명승지 제225호. 외금강 구룡동 골짜기에 있으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높이 74m, 너비 4m이다.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폭포 중의 하나이며, 십이폭포, 비봉폭포, 옥영폭포 등과 금강산 4대 폭포를 이룬다. 폭포의 벽과 바닥이 하나의 화강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옥녀봉의 아름다운 연봉을 배경으로 화강암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웅장하고 기세가 있다. 폭포 아래로 금강산을 지키던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13m 깊이의 구룡연이 있다.

▲ 구룡폭포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를 만들고 그 아래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 정도길
구룡폭포

구룡폭포 옆에는 김규진이 썼다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佛)자의 획 길이만도 30m가 된다고 한다.


최치원의 여덟 글자의 시가 구룡폭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일까?


천장백련 만휘진주(天丈白練 萬斛眞珠)
천 길 하얀 비단이 드리운 듯하고, 만 섬의 진주알을 뿌려 놓은 듯하구나!


아니면, 막걸리에 취한 김삿갓이 이 폭포를 보고 부른 노래일까?


수작은간춘절벽 운위옥척도청산(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度靑山)
월백운백천지백 산심수심객수심(月白雪白天地白 山深水深客愁深)

폭포수는 은으로 만든 절구가 돼 절벽을 내리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돼 청산을 재면서 흘러간다
달도 눈도 희니 온 천지가 모두 희고
산도 물도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구나


구룡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관폭정(북한의 보존유적 제1691호)에 홀로 앉아 술 한 잔 취하면서, 김삿갓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설픈 시라도 한 수 읊조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시 한 수도 노래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구룡연 마지막 다리를 건너 상팔담(上八潭)으로 가는 데는 아주 험난한 길로서, 평탄길이 없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는 느낌이다. 실제로 철 계단은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절벽에 붙어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먼저 내려오고 있다. 부산에서 왔다는 그 할머니는 81세라고 하는데,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코스는 17개의 철 계단에 312개의 계단 수가 말해 주듯, 젊은 사람도 힘든 코스로서, 특히, 직각에 가까운 철 계단을 오르내렸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 상팔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이야기인 상팔담.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에서 흩어져 하늘로 흩어진다.
ⓒ 정도길
상팔담
▲ 상팔담 햇살을 받은 옥빛의 담소는 그 휘황찬란한 보석빛을 반짝거리고 있다.
ⓒ 정도길
상팔담

숨을 몰아치며 힘들게 구룡대에 올랐다. 구룡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와 계곡과 물줄기와 담소들은 기이한 장관을 이룬다. 옥을 꿰어 만든 아름다운 여인의 목걸이가 연상되지만, 여인의 목걸이보다 더 아름답다. 옥이 있는 소에 햇살이 비치고 하얀 은빛이 영롱한 모습으로 보석보다 더 반짝거리고 있다.


태고의 신비스러움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 이 계곡에는 열 몇 개의 소가 있고 그중에서도 빼어난 여덟 개를 골라 팔담이라 하였으며, 구룡동 위쪽에 있다 하여 상팔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룡폭포가 떨어져 만든 구룡연과 상팔담을 합쳐 구담이라 하고, 이 아홉 개의 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 천화대와 세존봉의 암석들 구룡대에서 바라본 천화대와 금강의 암봉들. 금강산의 비경을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던가?
ⓒ 정도길
천화대

어릴 적에 들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은 서로 같이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지만, 북한의 상팔담에 얽힌 전설은 우리의 것과는 정반대이다. 옛날 금강산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살려주었다. 사슴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팔담에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다가 그에게 주었다.


팔선녀 중 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고, 총각은 선녀와 인연을 맺었다. 총각은 사슴의 뜻대로 아들딸 3형제를 본 다음에 선녀의 날개옷을 주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선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선녀는 금강산이 그리워 다시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후 부부는 아들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상팔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푸른 옥색의 담소에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 나무꾼이 되어 아름다운 저 선녀와 하늘나라로 가서 영원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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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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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땅에서 처음 내딛은 발은 어느 쪽?"
① 금강산 탐방기
조도춘(choon36) 기자
▲ 남측출입경사무소
ⓒ 조도춘
6월 26일. 드디어 금강산을 향해 출발했다. 2박3일 여정을 세워 간단한 짐을 꾸려 속초를 출발하여 남측출입경사무소와 북측출입경사무소에서 출입허가 승인을 얻어야 한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이야기 속에서나 가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금강산이다.

금강산을 처음 찾아가는 설렘이 앞서야 할 터인데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찹찹한 마음이 앞선다.

▲ 남측출입경사무소"짐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조도춘
장마 비가 그친 동해의 쪽빛 물결이 아름답다. 줄자로 밑줄을 그어 놓은 듯 멀리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금강산을 구경하기 북측으로 가는 사람들은 39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각 여행사를 통하여 모인 이들은 남북 출입경사무소를 같이 통과할 사람들이다. 북측으로 갈 수 있는 인원은 많을 때는 1000여명이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남측의 최북단마을 '명파리 마을'을 통과하였다. '끝 오징어 집'. 상점 간판이 재미있다. 상점도 남측의 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민통선입니다." 관광조장이 안내 방송을 하여준다. 마을 주민도 승인 없이 다닐 수 없는 곳이란다.

어느덧 남측 출입경사무소에 도착했다. 출입국 사무소가 아닌 출입경 사무소다. 남측과 북측은 유엔(UN)에서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만 북측 남측 자체에서는 통일이 되기까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잠정적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외교부가 관장하는 출입국 사무소가 아닌 통일부가 관장하는 출입경 사무소를 설치하여 여권이 아닌 관광증만으로 북측을 갈 수가 있다.

▲ 짐 검사를 마치고 남측 군사분계선을 넘어가지 전
ⓒ 조도춘
간단한 짐 검사를 마치고 북측을 여행할 수 있는 특수 버스(33인승)를 갈아 타고 북측출입경사무소로 출발하였다. 출발에 앞서 관장조장과 운전기사들은 버스앞쪽에 일렬 횡으로 줄을 선다. 그리고 각자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나눈 후 탑승객들을 향하여 인사를 한다. 이색적인 풍경에 조금은 어색하다. "북측을 여행하는 탑승객과 차량의 안전을 기원하는 인사"라고 관광조장은 설명하여 준다.

천천히 북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대의 버스는 꼬리를 물고 달렸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을 정해져 있다고 한다. 북측으로 갈 때는 15:30분, 남측으로 올 때는 14:10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단다. 이시간이 지나면 북측으로 남측으로 갈 수도 올 수도 없다고 한다.

남북 분단 이후 운행이 중단된 뒤 50년이 넘도록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MDL)에 막혀 운행이 허락되지 않았던 동해선. 지난 5월 17일 오전 11시30분 북측 금강산역을 출발하여 감호역,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25.5km를 달려 12시20분경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던 동해선이 길게 눈에 들어온다. 길 따라 노란 금계국 꽃이 곱게 피었다.

차창 밖으로 반세기를 넘긴 38선을 표시하는 시멘트 기둥이 기우뚱하게 서있다. 우리민족에게 비극과 고통을 안겨준 한 많은 경계선이다. 200m 간격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1292개로 남측과 북측을 표시한 기둥이란다.

북측 군사분계선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북측 군인을 볼 수가 있었다.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크게 보인 짙은 갈색의 둥근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키에 얼굴을 햇볕에 그을렸는지 까무잡잡하다.

북측으로 가는 버스 행렬이 잠시 멈추셨다. 남측으로 오는 차가 늦은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자 중장비를 실은 차량이 내려오고 있다. 북측 군인 지프차 다가가 차량을 멈추게 하여 뭔가 종이에 쓰게 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규칙을 조금이라고 어기면 '위반금'부과와 '반성문'을 써야한다고 한다. 관광조장이 설명하여 준다. 아마 '반성문'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몇 분을 더 가자 북측출입경사무소에 도착하였다. 많이 듣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반갑습니다~" 그러나 북측 군인의 눈초리는 전혀 반갑게 맞이하는 눈초리가 아니다. 무표정한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북녘의 땅을 밟을 수 있는 곳이 북측 출입경사무소다. 금강산을 관광하는 사람들은 북녘에 도착하여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어느 발로 첫발을 디뎠는지?'에도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모든 일에 처음 시작을 중요시 하는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으로 북녘의 땅을 밟는 순간이다. 북측 군인과의 눈인사와 짐 검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탑승했을 때는 북녘에 땅을 어느 쪽 발로 첫발을 먼저 디뎠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경직된 모양이다.

북측까지 가는 데 30여분이 소요된 것 같다. 정말 가까운 곳이다. 도로가에는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는 북측군인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군사 지대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모내기가 끝난 논들이 많이 보인다. 황새는 한가로이 어린 모 사이를 걷고 있다.

금강산 가는 도로에는 연둣빛 철망을 세워놓았다. 이 도로는 남쭉에서 오는 차들만 가는 길이란다. 멀리 마을을 따라 난 길이 있다. 북측 사람들이 사용하는 길이다. 도로는 한가하다. 가끔씩 농사철이라 트랙터와 주민들이 탄 트럭이 보인다.

트랙터를 따라가다 지친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렸을 적 우리들의 개구쟁이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의 동심을 아마 똑같은 모양이다. 금천리 마을을 지나 양지마을과 온정리 마을에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적 심정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붉은 글씨가 보인다.

들녘에는 옥수수, 감자, 콩 등이 심어져 있다. 온정리 마을을 지나자 마을집들이 가까이 보인다. 기와로 지은 집은 똑같은 방향으로 집모양이 모두 비슷하다.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도 똑같이 지운 모양이다. 남측에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 한 동이 보인다. 채소를 가꾸기 위해 만든 비닐하우스란다.

금강산이 저 멀리 보인다. 멀리서 보이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측출입경사무소 짐 검사와 북측 군인들의 감시눈초리에 굳었던 찹찹한 심정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첫날은 남측출입경사무소와 북측출입경사무소서 출입검사로 하루 일정이 짜여 있어 금강산 구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첫 금강산 구경이 허용되어 이용했던 육로정박지인 고성항을 들러 보기로 하였다.

▲ 고성항"뒷쪽으로 보이는 천불산이 보인다."
ⓒ 조도춘
고성항을 감싸고 있는 금강산의 지류인 천불산(654m)이 보인다. 천여개의 봉우리가 불상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보이는 천불산은 벌써 신비함을 자아내게 한다. 천불산이 감싸고 있는 고성항은 아늑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분단 반세기 동안 끊겼던 금강산 가는 바닷길을 열리면서 관광의 출입구의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 고성항횟집 메뉴판
ⓒ 조도춘
버스에 내리자 멀리 해상호텔인 '호텔해금강'이 보인다. 바다 위에 만들어진 해상호텔이란다. 북측봉사원들이 서비스를 한다는 고성항 횟집에 잠시 들렀다. 회를 먹기 보다는 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들었다.

▲ 고성항 횟집 내 벽에는 많은 낙서쪽지가 붙어있다.
ⓒ 조도춘
▲ 고성항횟집 "통일을 염원하는 쪽지들"
ⓒ 조도춘
"어서 오시라요."

북측 여성 접대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벽 쪽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남쪽 사람들의 낙서 쪽지들이 가득 붙어있다.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쪽지들이 많다. 털게찜, 세꼬시 등 벽에 붙어있는 메뉴도 재미있다.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이 더 넓어졌다. 1998년 11월에 북측관광이 허용되어 배를 이용하여 해로를 따라 4시간 정도 항해를 하면 북측 고성항에 정박할 수 있었단다. 2003년 하반기 육로가 허용된 이래 지난 6월 1일부터는 내금강까지 관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버스로 가는데 2시간이면 금강산 바라다 보이는 온정각에 도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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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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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항

금강산(2006) 2007. 6. 14. 17:12

"남한에선 사람도 자연산이라 합네까?"
[포토] 장전항
김민수(dach) 기자
▲ 장전항의 아침
ⓒ 김민수
온정리에서 숙소인 장전항 해금강호텔로 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녹슨 철로가 분단의 세월을 상징하는 듯했다. 초소가 많은 만큼 보초를 서는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간혹 한둘은 여유있는 웃음으로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 손을 흔들어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남과 북의 분단의 세월이 가져온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의 체제에 대한 우월감으로 바라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꼬마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자 혀를 쭉 내밀고 '메롱'으로 화답을 한다. 그 아이들은 금강산 관광객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분단의 세월이 남기는 상처가 끔찍해 보인다.

▲ 장전항에 있는 해금강호텔
ⓒ 김민수
비로봉이 보인다는 장전항, 숙소인 해금강호텔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붉지는 않지만 그 햇살과 그 별빛과 달빛들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식사 후 장전항 근처의 고성횟집에 들렀다. 아직 북한에서는 양식업이 발달하지 않아 완전 자연산만 취급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음식에 대해서 까탈스럽지도 않고 음식 맛도 잘 모르지만 고성횟집의 회맛은 그동안 접했던 자연산 회와는 달랐다. 더군다나 북한접대원들의 대접과 대화는 음식의 맛을 더해준다.

자연산 회에 대한 극찬을 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회 맛이 참 좋습니다. 자연산이라서 그렇지요? 북한 여성동무들도 참 예쁘네요. 남남북녀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북한 여성동무들도 꾸미지 않은 자연산이네요" 했다. 그러자 곧바로 날아오는 대답이 있었다.

"남한에서는 사람에게도 자연산이라고 합네까? 자연미갔지요?"

ⓒ 김민수
맨 처음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을 때에만 해도 경직되어서 피차간에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오고 가다 보니 서로에 대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 것이리라. 그렇게 오고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통일의 발걸음이면 좋겠다.

북한접대원 동무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장전항을 걷는다. 바람은 잔잔하고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빛난다. 저 별, 그래 남녘땅에서도 보던 그 별이다. 그 별과 달과 햇살과 바람과 공기, 같은 하늘 아래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 첫날 바라본 장전항의 노을빛
ⓒ 김민수
그들은 물었다.

문익환 목사님을 아느냐고, 문규현 신부는, 임수경은 아느냐고. 문익환 목사님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두 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통일의 꽃'으로 그들을 기억했고, 그때 우리도 마음으로 하나였다고 하니 너무 반가워한다.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사는 날,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을 꿈꾸었던 문익환 목사님은 이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꿈은 남아있다. 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지금 내가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전항에서 그 바다를 바라보면 고성횟집에서 북한접대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장전항의 밤
ⓒ 김민수
▲ 건물이 보이는 곳은 장전항 해수욕장이다.
ⓒ 김민수
그렇게 북녘땅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새 아침을 맞이했다. 새벽에 일어나 해금강호텔 맞은 편에 있는 금강산해수욕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물새소리, 바닷가 근처에 피어난 갯완두, 갯메꽃, 해당화, 도깨비사초, 조록싸리 등이 바람에 흔들린다.

눈에 많이 담아두자, 마음에 많이 담아두자. 저렇게 다르지 않은 꽃들 마음에 많이 담아주자. 그리고 통일, 그날이 오면 이 길을 다시 걸으며 가장 예쁜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을 담자고 했다. 지금 나에게는 그들을 한 컷 담는 것보다도 북녘땅을 한 걸음 더 걷는 것이 우선순위다.

여행길,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을 좋아했고 여전히 그런 걸음걸이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발자국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어서. 산책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남한에서는 사람에게도 자연산이라고 합네까? 자연미갔지요?"라는 딱 부러지는 북한 접대원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여오는 듯하여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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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만 되면 선녀 만나는 것은 쉽겠네?
[포토] 금강산 구룡폭포와 상팔담
김민수(dach) 기자
▲ 구룡폭포
ⓒ 김민수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금강산 여행일정이 잡힌 뒤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는 노래가 흥얼거렸다. 남측출입사무소에 도착한 후 수속을 밟고,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측출입사무소에서 북한군인들과 눈맞춤을 한 그 순간에야 내가 북녘땅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렇게 가까운 곳,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들과 같지 않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야 했는지…, 아프면서도 그나마 이렇게 제한된 공간이나마 왕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김민수
금강산, 그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들을 바라보면서 '혹시 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현실이었다.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금강산에 안기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구룡폭포'였다. 내가 이곳에 오기 일주일 전에 큰딸이 먼저 그곳을 수학여행차 다녀왔다. 산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가 구룡폭포에 다녀온 증거로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 나 그렇게 산이 예쁜 줄 몰랐어.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몰라"라고 호들갑을 떨 때에도 그런가 보다 했다.

ⓒ 김민수
구룡폭포까지 이르는 모든 길목에 피어있는 들꽃들과 소(沼)와 담(潭)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했다. 상팔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줄기가 되어 폭포를 이룬 구룡폭포는 경쾌하고, 단아하고도 시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조국의 산하를 걸어다니듯 아이들과 손잡고 담소를 나누며 올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상팔담 오르는 길에 바라본 관폭정
ⓒ 김민수
마음이 너무 먹먹해서 사진으로 담기 위해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걷고 보고 싶어 난생처음 산행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던 것 같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싶었다.

상팔담으로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본 관폭정, 사계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 생각하니 금강산에 안겨있으면서도 이별의 슬픔이 밀려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맘껏 볼 수 있으려면 어서 평화통일이 되어야 할 터인데 평화통일의 여정이 너무 길어 보였기 때문이다.

▲ 상팔담
ⓒ 김민수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은 걸음을 걸어왔다. 반공교육을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내가 살아생전 금강산을 밟아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어느새 현실이 되었으니 평화통일도 언젠가는 현실로 우리 앞에 펼쳐지겠지 하고 꿈을 꾼다.

북한 안내원들과 눈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었다. 맨 처음 출입국관리소에서만도 마치 이국땅을 밟은 듯하여 외국어로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만리장성을 쌓은 듯했다.

ⓒ 김민수
상팔담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철제계단을 몇 개를 올랐는지 잊을 즈음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근원지라는 비췻빛의 상팔담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바위산임에도 어디에서 저렇게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 맑은 물 한 모금이면 세속에 찌든 내 마음도 맑아질 것만 같다.

ⓒ 김민수
하늘이 맑고 햇볕이 따가워 등줄기에 땀이 흐를 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간의 피곤함을 다 빼앗아 다른 봉우리로 옮겨놓는다.

'그래, 피곤함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근심과 걱정 모두 저 올라갈 수 없는 기기묘묘한 봉우리들 위에 올려놓고 가자. 그러면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다시 가져올 수 없겠지.'

ⓒ 김민수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담(潭)과 소(沼)를 보니 금강산 나무꾼만 되면 선녀들을 만나는 것은 쉬울 것 같았다. 하늘 선녀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스쳐 지나갈 리 없을 테니까.

ⓒ 김민수
바라보는 곳마다 기암괴석이요, 그 척박한 곳에 기품있는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척박한 곳이기에 오랜 인내의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인내의 세월만큼 그들의 모습도 멋들어진 모습으로 그곳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무의 모양새 하나에도 인생의 깊이가 들어 있듯 불혹의 나이가 지난 후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 깊이가 묻어있을 터이다. 나는 내 나이에 걸맞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 김민수
이제 막 여름을 맞이한 금강산,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그곳은 지금 '봉래산'이다. 아직도 봄의 흔적을 간직하고 피어있는 금강애기봄맞이꽃은 불어오는 바람에 작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흔들리면 어떠랴, 그래도 이렇게 활짝 피어있는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평화통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열강들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평화통일의 그날이 도래하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안기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와서, 있고 싶은 만큼 머물면서 금강산 심산유곡에 피어난 갖가지 들꽃들과 조우하는 평화통일의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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