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의 명칭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은 산의 모습이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의 명칭을 놓고 보면 불교와 도교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명명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이름이 원래부터 불교나 도교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나타난 것은 아니다. 초기의 기록으로 우리는 [삼국유사]를 들 수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금강산의 이름은 주로 상악(霜岳), 개골(皆骨), 풍악(楓岳) 등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설화적인 측면에서는 불교적 이미지와 결합된 것이 많지만, 그것은 [삼국유사]라고 하는 책 자체가 가지는 불교적 성격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고려 중기 이전만 하더라도 금강산은 그 산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이미지, 즉 서릿발같이 흰 산이라는 의미의 상악(霜岳), 잎이 모두 떨어지면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온통 뼈만 보이는 산이라는 의미의 개골(豈骨), 단풍으로 아름다운 산이라는 의미의 풍악(楓岳)처럼 산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으로 산의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전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까지의 산 이름에는 관념적인 부분이 착색되어 나타나지는 않은 것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면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명칭도 도교적인 내용을 반영하는 것과 불교적인 것을 반영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봉래산(蓬萊山)은 동해 바다 한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는 섬 혹은 산이 셋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봉래산이라는 설화에서 채택된 이름이다. 이것은 신선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이름이 붙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선산(仙山)'이라는 표현 역시 도교적이다. 이 명칭은 고유명사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금강산을 지칭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문학적 표현이다. 신선이 사는 산이라는 의미인데, 이 산이 그만큼 도선적(道仙的)인 의미로 알려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가장 다양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이름은 불교적 명칭이다. 우선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강산'이라는 이름부터가 불교적이다. '금강(金剛)'이란 너무도 굳세고 단단하여 불변의 성질을 가지는 것을 지칭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굳은 마음, 혹은 불도를 구하기 위한 굳센 마음을 상징하면서 불교의 여기저기에 수식어로 붙는다.
석굴암 입구를 지키는 유명한 조각작품인 '금강역사(金剛力士)'에서처럼 강한 이미지로 불법을 수호하려는 뜻을 나타낸다든지, '금강경(金剛經)'에서와 같이 불경의 이름에 붙기도 한다. 이 말은 원래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산 이름을 그대로 빌어온 것이다. 부처가 살고 있는 동해 한가운데의 아름다운 산이 나오는데 그 산 이름이 금강산이었으므로, 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금강산으로 비정(比定)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 금강(金剛)은 바즈라(Vajra)라는 범어를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당나라 때의 스님인 징관(澄觀)은 동해 가까운 곳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는데, 위 아래 및 사방의 산 사이에 흐르는 물과 모래 중에 금이 있어서 멀리서 보면 금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한 금강산은 담무갈보살(법기보살이라고도 번역한다.
금강산에 법기봉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이라는 분이 그의 1만 2천 권속들과 함께 항상 머물면서 설법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그곳이 실제로 우리 나라의 금강산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외에도 기달이나 열반(涅槃), 중향성(衆香城) 등의 이름 역시 불교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이것은 금강산에 수많은 절과 암자가 들어서고 수행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산 이름 자체가 불교적 색채를 띤 것이 유행하게 되고, 나아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어 통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 몇 가지 이름으로 통일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계절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방식이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부르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