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줄기가 좁은 골 지나 활짝 열린 곳 옛 문헌들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오대산(五臺山)’으로 쓴 것 외에 뒷음절 산을 뺀 오대로 쓴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즉, 대(臺) 자체를 그대로 산이란 말에 대신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대를 굴(窟), 덕(德)과 함께 산지 지명에 포함시켰다. 이 지도에서는 대가 무려 96개나 나온다. 산지에서 고원이나 대지(臺地)에 해당되는 지명이 바로 대와 덕이다. 즉, 대는 경포대(鏡浦臺·강릉), 강경대(江景臺·논산), 낙수대(落水臺·안동)와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을 뜻한다. 덕은 오늘날의 고원을 뜻한다. 고원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엔 별로 사용치 않았으므로 학자들은 덕을 고원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 대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차나 항공기, 기계 같은 것의 수를 세는 데 쓰는 말, ②수, 연수(年數), 액수 따위의 다음에 쓰여 그 대체의 범위를 나타내는 말, ③(흙, 돌 등으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 ④물건을 받치거나 올려놓는 물질의 통틀어 일컬음 등이다. 땅이름에서 대의 뜻은 ③에 해당할진대, 이것은 옛 사람들이 흔히 생각해 왔던 뜻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대(臺)의 한자는 형성문자로, 土(토)와 高(고)의 생략 글자인 至(지)가 합쳐진 것이다. 즉, 흙을 높이 쌓고,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로 보인다(台를 臺의 약자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오대산이란 이름에서의 대는 위의 자원(字源) 설명처럼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여말선초의 학자이며 문신인 권근(權近·1352-1409)은 오대산의 이름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강원도의 경계에 큰 산이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함께 우뚝하다. 크기가 비슷하면서 고리처럼 벌렸는데, 세상에서는 오대산(五臺山)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의 가운데 것은 지로(地爐), 동쪽은 만월(滿月), 남쪽은 기린(麒麟), 서쪽은 장령(長嶺)이라 하며, 북쪽은 상왕(象王)이라 한다. 드디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항상 머문다는 말이 있고 불가에서 성대히 칭송하지만, 우리 유가에서는 증거할 것이 없으므로 자세하게 적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오대산이란 이름은 다섯이라는 뜻과 산(봉우리)의 뜻인 대가 합쳐져 나온 이름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의 대는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사전적인 뜻처럼 꼭대기가 평탄해서이거나 야산의 뜻으로 대를 취한 것도 아니다. 편하게 말한다면, 오대산은 오봉(五峰)과 뜻이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오대산 일대의 고을 이름이 지산현(支山縣)으로 나온다. 즉, 지금의 강릉시 연곡면, 사천면, 주문진읍 일대를 그렇게 불렀는데, 이 이름은 고려시대에 와서 연곡현(連谷縣)으로 바뀐다. 즉, 지(支)가 연(連)으로 대역되었고, 산(山)이 곡(谷)으로 대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곡현은 뒤에 강릉(명주) 고을에 속한 연곡면으로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강릉시의 한 면이름으로 자리잡는다. 한자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삼국시대 이전에는 모든 고을이 거의 순 우리말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당시에 한글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를 제대로 표기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 조상들은 뒤에 이를 문자화할 때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빌어 표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토박이 땅이름들이 소리빌기(음차)나 뜻빌기(의차)의 한자 옷을 입고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한자 지명을 잘 뜯어 풀어나가 보면 그 원이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낼 수가 있다. 오대산 일대의 삼국시대 지명 지산과 고려시대의 지명 연곡을 결부시켜 보면 이곳의 원래 땅이름은 가라매 또는 갈매,갈메일 가능성이 짙다. 지(支)는 재의 음차로 쓰인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뒤에 연(連)이 지(支)에 바탕을 두었을 것으로 보아 ‘갈’ 또는 ‘가라’라는 원말을 유추할 수 있다. 갈은 갈라짐 또는 연달아 이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가라매(갈매)는 갈라져 나간 산, 또는 산이 이어져 나간 줄기(支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 지형을 보더라도 오대산 일대에서 큰 산줄기가 서쪽으로 크게 갈라져 나와 있다. 동해안쪽으로 이어져 내린 백두대간이 오대산 부근에 큰 산무리를 만들고, 여기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를 뻗혀 계방산, 태기산, 금물산, 용문산, 유명산 등의 봉우리를 솟구며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을 만들고 있음을 본다. 지산 또는 가라매라는 이름이 꼭 산줄기를 크게 가른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이 이름이 오대산의 지형과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지명
가라매 고을의 다섯 봉우리 오대
오대산의 대(臺)는 단순히 봉(峰)의 의미
굽이진 곳 백 길 높이 자리한 선원(禪院)
맑은 물엔 하얀 자갈 환히 보이고
오솔길엔 푸른 이끼 온통 뒤덮였구려
세상을 그냥 초월하면 그만인 것을
뭣 때문에 오대산을 굳이 가려 하시는고
동쪽 개울에 병들어 누운 거사님
한 해 쉬고 돌아올 그대를 기다림세
(江出峽門開 / 禪房百尺외 / 淸流分素礫 / 細逕入蒼苔 / 直可超三界 / 何須向五臺 / 東溪病居士 / 遲汝隔年回)
-이식(李植)의 택당집(澤堂集)에서(울암 鬱巖에서 노닐 적에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혜종 惠宗 선사에게 작별 선물로 준 시. 울암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 지정면 월송리의 한 지명)
문헌에 나타난 오대산의 이름 유래▲ 두로봉 동쪽 상공에서 본 오대산. 앞쪽 능선이 두로봉 부근의 백두대간 마루금이고, 그 뒤로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펼쳐졌다.
‘가라매’로 불렸을 오대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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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 10여 년 전 나는 회원들(한국땅이름학회 한강탐사반)과 함께 남한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에서부터 한강 줄기를 따라, 도보로 또는 고무보트를 타고 경기도 김포의 한강 하구까지 답사한 일이 있다. 물줄기만 따라 탐사했으므로, 즉 물의 흐름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가기만 했으므로 우리 일행이 작은 고개 하나라도 넘었을 리 없다. 그런데, 따라간 물줄기를 우리가 보통 보아온 지도로 보니 두 개의 산줄기를 넘은 것이 아닌가. 그 하나는 경기도 여주 부근에서의 차령산맥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리시와 광주땅을 잇는 광주산맥이었다. 분명히 지도상에서는 이 두 산줄기가 우리 일행이 지난 남한강 줄기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당시 살펴본 지도는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였다). 이 어찌 된 일인가? 지도가 이렇게 된 것은 지도 속에 표시된 산맥이 지형에 따라 그려진 것이 아님을 답사를 통해서도 확실히 알게 된 나는 우리 조상들이 그린, 산줄기를 평지에까지 올바르게 지형적으로 자세히 그려낸 옛 지도의 가치를 더욱 높이 사게 되었다. 2005년 1월14일 KBS 뉴스를 통해 ‘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이라는 제목으로 산맥지도에 관한 보도가 나간 일이 있었다. -앵커 : 최근 국토연구원이 새로 발표한 산맥지도가 논란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차령산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쓰여졌던 차령산맥이 왜 없다는 것일까요? 그 근거를 김태욱 기자가 추적해 봤습니다.
‘태백산맥은 힘찬 기세로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대관령,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데, 태백산맥이 대관령을 넘기 전에 곁가지 하나를 늘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차령산맥으로, 이 산맥은 치악산을 걸쳐 충청남북도를 관통해 서해의 대천 앞바다로 이어지는 성주산에서 마감한다. 태백산맥이 차령산맥으로 갈려나가는 지점, 즉 차령산맥의 발원지가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즉, 오대산에서 가지를 친 차령산맥이 서해안까지 직접 달려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주시의 한 농협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의 ‘차령’ 설명 내용. 위에서 언급한 성주산, 차령 등의 산과 고개가 있는 곳은 대동여지도 상에서 보면 금북정맥이다. 이 정맥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한 맥으로, 죽산(안성)의 칠현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안성, 충청도의 공주, 천안, 청양, 홍주, 덕산, 태안의 안흥진에 이어지는 금강 북쪽의 산줄기다. 즉,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왔다는 종래의 차령산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차령산맥에는 서운산(瑞雲山·547m)을 최고봉으로 500m 안팎의 산지가 솟아 있고, 이 산맥 중의 덕성산(德成山·519m)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칠현산(七賢山·516m), 칠장산(七長山·492m), 도덕산(道德山·366m) 등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지가 형성하는 능선을 따라 안성시는 동서 2개의 지형구로 나누어진다. 또한 북쪽 용인시 경계 부근에는 구봉산(九峰山·465m), 비봉산(飛鳳山), 쌍령산(雙嶺山) 등의 구릉성 산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군의 남서쪽과 북동쪽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데 특히 남서쪽의 안성평야는 넓고 비옥하다.’ 여행 관련의 한 홈피에서도 경기도 안성시 부분에서 이처럼 차령산맥을 설명하며 거기에 속한 여러 산들을 들고 있는데, 사실 이들 산이 모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에 있는 것이지, 오대산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한강을 넘어온다는, 실제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에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백두대간 중의 오대산은 산과 물의 관계에서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이 산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가 남한강과 북한강의 유역권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한강물의 발원지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실제, 물줄기의 길이로 보아서는 오대산에서 나온 물줄기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보기 어려우나, ‘큰 강은 명산(名山)에서 그 물줄기를 시작한다’는 옛 사람들 생각에 근거하여 보면 이 산은 분명히 한강의 상징적 발원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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