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풍수


유물은 제 자리에 있어야 제 구실 한다
삼재불입지처의 사고(史庫)와 비룡입수의 적멸보궁

▲ 사고 원경. 선조 39년(1606년)에 이 지역이 물, 불, 바람의 삼재(三災)를 피할 수 있는 길지라고 하여 사각과 선원보각을 건립하고, 왕조실록과 선원보략(璿源譜略·조선왕실 족보)을 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조실록을 동경대학 도서관으로 반출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더욱이 1923년에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도서관에 소장된 장서와 함께 조선왕조실록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만 대출되어 화재를 모면한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대(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편입되었고, 이번에 동경대학 도서관에 반납되었던 47책을 지난 7월 서울대학교에서 환수했다.

▲ 오대산 적멸보궁. 풍수지리 상으로는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 즉 비룡함주(飛龍含珠) 형국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종 13년(1413)에 태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세종 때에는 동활자로 4부를 인쇄하여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에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후 1부밖에 없는 왕조실록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1603년부터 3년에 걸쳐 전주사고본을 저본으로 실록을 인쇄하여 춘추관(1623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을 비롯하여 강화도의 정족산, 봉화의 태백산, 무주의 적상산, 평창의 오대산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분산하여 보관하였다.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본래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03)의 모든 분야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총 1,893권 888책의 방대한 역사서다. 최고의 통치자이며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임금도 열람할 수 없는 조선왕조실록은 위대한 우리 민족의 문화재로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적멸보궁 입수처. 적멸보궁 뒤편에는 용의 뿔에 해당되는 암석이 강력한 지기를 품고 있다.
왕조실록을 보관한 곳은 강화도의 정족산을 제외하고는 우연하게도 봉화의 태백산, 평창의 오대산, 무주의 적상산 세 곳이 백두대간 근처에 위치하였다. 이중 오대산 사고는 조선 선조 39년(1606년)에 이 지역이 물, 불, 바람의 삼재(三災)를 피할 수 있는 길지라고 하여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건립하고 왕조실록과 선원보략(璿源譜略·조선왕실 족보)을 이관하였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92년에 선원보각과 사각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왕조실록을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하겠다고 하여 월정사측과 시비가 일고 있는데, 문화재는 원래 있었던 자리에 있어야 역사적 가치도 빛나며 장소성의 의미도 있는 법이다.

태백산사고본은 국가기록원에서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고, 정족산사고본과 산엽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이며, 적상산사고본은 북한에서 보관중이다. 따라서 오대산사고만이라도 비록 왕조실록의 일부이지만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왕조실록 반환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오대산사고는 삼재불입지지

▲ 오대산 사고지 안내판.
선조실록 192권 38년(1605) 10월8일의 기록을 보면 강원감사와 정선군수가 동행하여 오대산사고의 안전성 확인과 함께 새로 인출한 실록을 사고에 봉안할 일로 실록청이 아뢰는 대목이 나온다.

‘강원감사 윤수민(尹壽民)이 치계하였다. 실록을 봉안할 곳의 지세를 살피는 일로 건각차사원(建閣差使員) 정선군수이여기(李汝機)를 거느리고 오대산에 들어가 간심(看審)하였는데, 금년 수재에 이 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 곳곳이 무너져 내렸으므로 평탄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직 상원사가 동구부터 30리에 위치하였는데 지세도 평탄하고 집이 정결하므로 임시 봉안하기에는 아마 편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막중한 선왕의 실록을 사찰에 소장하는 것이 또한 미안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해조(該曹)로 하여금 요량하여 결정하게 하소서.’

실록의 중요성 때문에 감사와 군수가 사고의 터를 직접 살핀 기록이 나온다. 사고의 위치선정에 있어 풍수지리적인 이론을 감안하여 적용하였을 것이다. 실로 오대산 사고는 깊은 산중 해발 817m에 자리 잡았으며,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사각 건물을 중심으로 전주작, 후현무, 좌청룡, 우백호가 사각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안전한 자리다.

그런데 사람에게 생노병사가 있고 풍수지리에도 생왕휴수(生旺休囚)가 있으므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지운이 끝나기 마련이다. 지운이 끝나는 시기를 현공풍수이론에서는 ‘입수(入囚)되었다’고 용어를 사용하는데, 입수가 되면 지기가 휴식상태가 되기 때문에 재정양패(財丁兩敗)가 되며, 그 피해의 정도가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최근에는 풍수지리를 실생활에 활용하여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을 한다. 그리고 좋은 명당을 찾기 위하여 수고도 아끼지 않지만, 지운이 언제 끝나며 지운이 끝나게 되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조상의 묘를 오랫동안 보존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울러 지운이 끝나는 시점이 되어 화장한다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공풍수의 대가인 중국의 우설행(尤雪行·1873-1957) 선생의 이택실험(二宅實驗)이라는 내용을 보면 화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화장할 경우 길흉화복의 유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화장하는 동시에 인체에 유전인자의 근본이 되는 DNA도 파괴되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화장하면 모든 것이 소멸되어 ‘무극(無極)’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길흉화복도 자연히 없을 뿐더러 풍수지리 이론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명당이 아닌, 즉 일반적인 땅의 경우 음택과 양택의 지운기간은 표와 같다. 표를 보면 24개 좌향 중에서 특히 술(戌), 건(乾), 해(亥) 3개 좌향은 어느 운에 용사(用事)하더라도 대개 160년이라는 장기간 지기가 지속되지만, 진(辰), 손(巽), 사(巳) 3개 좌향은 비교적 기간이 짧다.

지운기간표에서 하(下)는 1개 좌향의 범위인 15도 중 중앙의 9도 범위로 입향(立向)하였을 경우이고, ‘체(替)’는 15도 중 양변의 3도씩의 범위로 입향하였을 경우다. 그리고 운은 20년 주기이며, 현재 2006년은 8운(2004-2023년)에 속한다. 지운기간표의 숫자는 해당 운의 첫해에 용사하였을 때의 기간이다.

그리고 좌향에 따라 미치는 영향력과 발복하는 속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오대산사고의 건축시기인 1606년은 6운 3년차이며, 좌향은 해좌손향(하괘)이므로 지운기간은 160년이며 5운이 되면 입수가 된다. 즉 6운 3년차인 1606년부터 158년(160-2)이 지나 5운(1764-1783년)이 돌아오면 지기가 끝나지만 오대산사고는 좋은 명당이기 때문에 또 180년을 추가하여 338년(158+180)이 지나면 두번째 5운(1944-1963년)기간 중인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지운이 끝나게 된다.

▲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대학으로부터 환수받은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을 전시 중이다.

적멸보궁은 비룡함주의 명당

오대산에는 유명한 월정사가 있지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절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적멸보궁은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곳 적멸보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보궁 뒤편에 1m 높이의 석탑이 있을 뿐이다.

이 적멸보궁은 신라 고승인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오대산 중대사를 비롯하여 설악산 봉정암, 취서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5곳 명당에 나누어 모셨다. 자장율사는 오대산 중대를 문수진성의 주처라 생각하여 적멸보궁을 짓고 부처 사리를 봉안하였다.

비로봉(毘盧峰·1,563m)을 주산으로 좌청룡에는 상왕봉(象王峰·1,493m)과 우백호에는 호령봉(虎嶺峰·1,560m)을 양쪽에 두고 해발 1,168m의 높은 곳에 결혈(結穴)한 천하 대명당인 적멸보궁은 풍수지리상으로는 나는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 즉 비룡함주(飛龍含珠)의 형국이다.

그런데 1,168m의 높은 지대에도 명당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풍수지리에서는 결혈이 되는 모양과 위치에 따라 전통적으로 다섯 가지의 격으로 구분한다. 즉, 직룡입수(直龍入首), 횡룡입수(橫龍入首), 비룡입수(飛入龍首), 잠룡입수(潛龍入首), 회룡입수(回入龍首)가 있는데, 적멸보궁은 비룡입수에 해당된다.

풍수고서에 의하면 비룡입수는 높은 산중에 작은 평지를 이룬 곳으로 실제로 올라가서 보면 높은 줄을 모르며 뒤편에는 작게 솟은 곳이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곳 적멸보궁 뒤편에는 용의 뿔에 해당되는 암석이 강력한 지기를 품고 있다.

적멸보궁은 천하 명당인 관계로 언제나 기도하는 신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적멸보궁은 명당이기는 하지만 음택명당이 되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짧은 시간에 강한 지기를 받기 위한 기도처로 아주 적합한 곳이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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