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0구간 / 노인봉] 식생

북방계 고산식물 사스래나무와 분비나무 군락지
금강초롱꽃·참배암차즈기·누른종덩굴 등 특산식물 분포

대관령을 넘은 백두대간은 지척의 거리에 오대산(1,563m)을 일으켜 세운다. 설악산, 금강산으로 뻗어나가며 더 큰 산들을 품을 준비라도 하는 듯하다. 오대산 상봉인 비로봉은 정작 백두대간의 마루금에 서 있지 않고, 대간의 두로봉(1,422m)에서 6km 남짓 물러나 있다.

백두대간에서 오대산 주능선이 갈라지는 이 두로봉은 대관령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30km쯤 떨어져 있다. 대관령에서 출발해서 선자령(1,157m), 곤신봉(1,127m), 매봉(1,173m), 소황병산(1,328m), 노인봉(1,338m)을 거쳐 진고개에 이르며, 진고개 후에는 동대산(1,434m)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두로봉 남쪽의 동대산과 노인봉 경계에 진고개가 자리 잡아, 오대산과 노인봉 산군을 갈라놓고 있는 셈이다.


소금강 화강암반과 어우러진 소나무숲

대간에서 물러나 앉은 오대산이 대간의 두로봉과 동대산을 세력권 안에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노인봉은 언뜻 황병산(1,407m)에 속한 한 봉우리처럼 보인다.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 백두대간 주변에서 가장 높고, 대간에 솟아 있는 소황병산과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봉을 황병산에 속한 봉우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 마디로 황병산보다 노인봉이 더 유명하다. 노인봉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데다가 소금강이라는 이름 높은 계곡을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봉은 품고 있는 골짜기로 말한다면 이뿐만이 아니다. 대간의 서쪽, 정확히는 노인봉 정상에서 남서쪽으로는 안개자니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육산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는 깊고 깊은 이 골짜기는 6km쯤 흘러 진고개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만난 후에 다시 5km 남짓 흐른 뒤 오대산에서 흘러내리는 오대천에 합수된다.

소황병산을 경계로 하여 남쪽에는 대관령 습지를 이룬다면, 이후 북으로 올라가며 산세가 사뭇 달라진다. 대간 동쪽으로는 예의 급한 경사를 계속하여 이루지만, 서쪽으로는 펑퍼짐한 습지가 아니라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산사면과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간 서쪽의 숲과 계곡은 서쪽 멀리까지 이어져 계방산 생태계까지 아우르는 넓고 넓은 오대산 산군을 형성하게 된다. 서쪽의 골짜기 가운데 하나가 노인봉과 소황병산의 물을 받아 시작되는 안개자니계곡인 셈이다.

▲ 분비나무. 만주, 몽골, 우수리 등지에 분포하는 북방계 침엽수로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한의 높은 산 능선에 분포한다. 한라산부터 덕유산까지 분포하는 구상나무는 솔방울 모양이 조금 다르다.

노인봉에서 2시간쯤 거리에 있는 진고개 일대는 6번 국도, 고랭지 채소밭 등으로 자연성이 일부 훼손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노인봉 일대의 백두대간은 자연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노인봉만을 대상으로 하여 세밀하게 이루어진 식물조사는 없지만, 800여 종류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대의 식물조사는 국립공원 자연자원 조사의 일환으로 오대산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전나무, 잣나무, 분비나무 등의 침엽수가 많이 나타나는 특징은 이곳이 고도가 높은 산지임을 방증하는 것으로서, 이들 침엽수는 북방계 식물로서 이곳의 높은 고도가 분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침엽수들은 고도에 따라서 분포하는 종이 달라지는데, 낮은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소나무가 해발 1,100m까지 보이며, 이후에는 전나무와 잣나무가 섞여 자라고 있고,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는 잣나무와 분비나무가 섞여 있으며, 해발 1,200~1,300m가 되면 분비나무만이 자란다.


북방계 고산식물 분비나무 군락 이뤄

가장 높은 곳에 자라고 있는 분비나무는 노인봉 정상 북쪽 사면 일대에 작은 무리를 지어 생육하고 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높이 30m에 이르며,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백두대간을 따라 높은 산에만 분포한다. 구상나무와 매우 비슷하지만 솔방울의 열매조각이 수평으로 벌어질 뿐, 뒤로 젖혀지지는 않으므로 구분된다. 덕유산에 이르면 분비나무와 구상나무가 섞여 자라면서 열매조각의 특징도 둘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불분명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말 이름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분을 칠한 듯한 회색 나무껍질을 가진 나무라는 뜻에서 ‘분피(粉皮)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분비나무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 요강나물: 중부지방의 높은 산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5~6월에 핀다. 덩굴손이 없으므로 검종덩굴과 구분하지만 중간형이 관찰된다.

꼬리조팝나무: 계곡 주변 등 습기가 많은 곳에 자라는 장미과의 떨기나무로 꽃은 6~8월에 핀다.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며, 어린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노인봉 일대에 분포하는 떨기나무와 덩굴나무로는 할미밀망, 누른종덩굴, 민둥인가목, 생열귀나무, 꼬리조팝나무, 쉬땅나무, 산앵도나무, 철쭉나무, 미역줄나무, 꽃개회나무, 작살나무, 노린재나무 등을 꼽을 수 있다.

누른종덩굴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연약한 덩굴나무로서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한라산부터 북부 지방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숲 속에 분포한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데, 노란색이고 아래쪽 겉에 돌기가 나 있다. 중부 이북부터 만주 지역까지 분포하는 세잎종덩굴은 꽃이 자주색이고 꽃받침 겉에 돌기가 나지 않아서 다르지만, 다른 여러 특징이 이 식물과 비슷하다.

노인봉의 초본 즉 풀로는 투구꽃, 흰진교, 참꿩의다리, 선괭이눈, 수정란풀, 참좁쌀풀, 참배암차즈기, 광대수염, 오리방풍, 금마타리, 모싯대, 금강초롱꽃, 산민들레, 고려엉겅퀴, 은방울꽃, 금강애기나리, 연령초, 말나리 등이 주요 종이라 할 수 있다.

참배암차즈기는 경남 가야산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문경 조령산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화관이 위아래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특히, 화관의 윗입술에는 하얀 암술이 밖으로 길게 나와 있어서 뱀의 혀를 연상하게 한다.

▲ 동자꽃: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에 자라는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진한 붉은색 꽃이 여름철에 핀다. 동자승에 얽힌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꽃이다.

등칡: 경상도 이북의 산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쥐방울덩굴과의 덩굴나무로, 꽃은 5월에 핀다. 꽃은 U자형으로서 모양이 특이하며, 암꽃과 수꽃이 다른 그루에 달린다.

노인봉 일대의 숲은 크게 보아 소나무숲, 굴참나무숲, 신갈나무숲으로 나눌 수 있다. 해발고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데, 고도가 낮은 지역에 소나무숲, 중간 지역에 굴참나무숲, 백두대간 능선 등 높은 고도에 신갈나무숲이 발달해 있다.

소나무숲은 해발고도 250m에서부터 1,100m까지 나타나는데, 고도가 낮은 습한 계곡 부근, 건조한 바위지대, 건조한 산사면 등 여러 곳에 발달한다. 일부는 고도가 높은 백두대간과 지능선 상에도 생육하고 있는데, 이때는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금강계곡 주변의 바위지대 해발 500m쯤의 화강암 지역 등에서 군락으로 이뤄 자라고 있다. 소나무숲 속에서는 보통은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지만 철쭉나무와 싸리 같은 떨기나무, 맑은대쑥, 삽주, 큰기름새, 주름조개풀 같은 풀은 적응하여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 누른종덩굴: 중부 이남의 높은 산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나무로 꽃은 6~7월에 핀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사는 특산식물이다.

광대수염: 전국의 산 습기가 많은 곳에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5~6월에 핀다. 가늘게 갈라진 꽃받침 조각이 광대들이 얼굴에 그리는 수염을 닮았다.

소나무숲이 발달하는 저지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장미과의 개벚지나무가 있다. 산벚나무, 귀룽나무, 산개벚지나무 등과 함께 벚나무속에 속하는 이 큰키나무는 저지대 계곡 주변에서 생육한다. 지리산에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로 강원도 깊은 산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는 북방계 식물로서, 백두산을 비롯한 북부지방과 만주, 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필자는 가리왕산, 설악산 등지에서 관찰한 바 있다. 꽃은 5월에 피며, 총상꽃차례는 길이 5~7cm로 발달한다. 다른 벚나무속 식물들에 비해서 줄기껍질이 매우 독특한데, 황갈색으로 윤기가 나서 자작나무나 거제수나무의 줄기껍질과 비슷하게 생겼다.

중간 고도에는 굴참나무가 많이 자란다. 특히, 소금강의 산허리에 해당하는 지역 가운데 양지바른 곳에 무리를 지어 자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참나무의 한 종류인 굴참나무는 줄기껍질이 발달하여 굴피집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견딜 수 있어 수분 스트레스에 강한 나무 가운데 하나다. 노인봉 해발 300~600m에서 군락을 지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300~400m 지역에서는 소나무와 섞여 자라기도 하며, 600m 부근에서는 신갈나무와 섞여 자라는 모습도 관찰된다. 이 숲에서는 쪽동백나무, 조록싸리 등의 떨기나무가 중간층을 이루며, 다양한 풀들이 숲 바닥에서 자란다.

▲ 참배암차즈기: 중부 지방의 높은 산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꽃은 7~9월에 피며, 화관의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매발톱나무: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매자나무과의 떨기나무로 꽃은 4~6월에 핀다.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으며, 열매는 초가을에 붉게 익는다.

해발 1,000m가 넘는 지역에서는 신갈나무가 숲을 이룬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보다 낮은 고도에서도 신갈나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군락을 이루는 경우는 많지 않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군락을 이루어 자란다. 습도와 유기물 함량이 높아 비옥한 토양이 발달한 고지대에서는 어김없이 신갈나무가 극상림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신갈나무숲 속에는 쪽동백나무, 층층나무, 피나무 등이 섞여 자라며, 노린재나무, 국수나무, 조록싸리, 싸리나무 등의 떨기나무가 중간층을 이루고 있다. 숲 바닥에는 흰진교, 투구꽃, 송이풀, 모싯대, 금마타리, 미역취, 맑은대쑥, 곰취, 수리취 등의 여러해살이풀이 자라고 있다.

이밖에도 노인봉 일대에는 피나무, 고로쇠나무, 당단풍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당단풍나무는 해발 500m 지역, 고로쇠나무는 600~800m 지역, 피나무는 800~1,000m 지역에 무리 지어 자란다. 또한 서어나무는 250~1,000m 지역에서 자라고 있으며, 300~800m 지역에서는 졸참나무도 관찰된다. 백두대간 능선 부근에서는 사스래나무, 전나무, 분비나무의 무리를 볼 있다. 전나무는 노인봉에서 소황병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간간이 작은 군락을 지어 나타난다. 분비나무는 노인봉 정상 부근의 해발 1,200~1,330m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사스래나무는 1,100~1,300m 지역에서 나타난다.

▲ 산겨릅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단풍나무과의 작은키나무로서 꽃은 4~5월에 핀다. ‘벌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약재이며, 열매에 날개가 달려 있다.

말나리: 전국의 산 숲 속에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7~8월에 핀다. 줄기에 6~20장의 잎이 돌려나며, 줄기 끝에서 1~6개 꽃이 옆을 향해 핀다.

진고개 일대는 자연성 훼손

백두대간 진고개 일대는 화전에 의한 인위적인 생태계 훼손이 일어난 지역이다. 산림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 많으며, 신갈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서는 조릿대가 함께 자라고 있다. 이밖에도 떨기나무로 고광나무, 딱총나무, 국수나무, 산딸기나무, 산가막살나무, 노린재나무 등이 관찰된다. 풀로는 애기수영, 광릉갈퀴, 홀아비바람꽃, 미나리아재비, 큰뱀무, 금강제비꽃, 어수리, 광대수염, 산외, 노박덩굴, 초롱꽃, 마타리, 산민들레, 고려엉겅퀴, 은방울꽃, 금강아지풀 등을 볼 수 있다.

▲ 시닥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단풍나무과의 작은키나무로서 꽃은 5~7월에 핀다. 수술은 8개이며, 잎의 갈래에 끝까지 톱니가 난다.
산민들레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과거에는 마을 근처에도 매우 흔하게 자라는 토종식물이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화와 함께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민들레에 살 곳을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양민들레와는 달리 꽃차례를 받치고 있는 모인꽃싸개잎이 뒤로 젖혀지지 않으며, 민들레와는 달리 바깥쪽 잎의 끝 부분에 뿔처럼 생긴 돌기가 나지 않으므로 구분할 수 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에는 신갈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해발 1,000~1,200m 지역에서는 순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많다. 소나무, 분비나무, 노간주나무 등의 침엽수가 자라고 있고, 고산식물인 사스래나무도 보인다. 그밖에 함박꽃나무, 찰피나무, 당단풍나무 등의 교목, 참조팝나무, 미역줄나무, 노린재나무 등의 떨기나무, 관중, 일엽초, 동자꽃, 흰진교, 수정란풀, 졸방제비꽃, 송이풀, 개갈퀴, 금마타리, 쥐오줌풀, 모싯대, 산씀바귀, 산구절초, 단풍취, 천남성, 삿갓나물, 말나리, 둥굴레, 은대난초 등의 풀이 생육하고 있다.

소황병산 부근의 백두대간 숲에는 금강초롱꽃이 자라고 있다. 금강초롱꽃은 설악산 및 금강산 일대에 분포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서 남쪽으로 백두대간의 두타산까지 분포한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 소황병산 일대까지가 띠를 이루며 많은 개체가 생육하는 분포선으로 여겨진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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