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4구간 / 설악산] 풍수
봉정암은 노승예불의 대명당
간(艮)방의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리산 천왕봉에서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 등산의 종착점은 백두산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를 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을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통일 이전까지는 보통 설악산이나 진부령에서 백두대간을 일단락 짓는다.

설악산에 이어 백두대간 상의 금강산 비로봉을 지나고, 익숙하지 않는 숱한 산과 고개도 넘고, 험하다고 잘 알려진 삼수갑산(三水甲山)도 지나고, 백두산 정상에 이르는 북쪽의 백두대간을 갈 수 있는, 즉 통일은 언제쯤이나 될까?


콩 심은 데 콩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풍수지리는 공간성과 관계가 깊은 학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공간에 시간을 배합하여야 비로소 진정한 풍수지리학이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공간개념인 토양에 따라 농산품의 수확량이나 품질에 차이가 난다. 여기에 또 시간개념을 추가하여 다시 생각해보면 콩을 심는다고 해서 항상 콩이 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난다면 콩이 난다는 말이지 반드시 난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적절한 시기에 파종하였다면 제대로 성장발육을 하지 못하게 되어 수확할 수 없게 된다.

중국에서 천 년이 넘도록 비전된 현공지리풍수법이 최근에 국내에도 전파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데, 현공풍수법은 기존의 풍수지리의 공간성에 시간성을 배합한 소위 ‘타이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풍수법이다. 이 현공풍수지리를 적용하면 통일이 되는 시기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간적인 위치상 간(艮·동북방)에 속하고, 시간적으로는 1∼9운에서도 8운(2003∼2024년)에 속한다. 이 이론의 근거는 주역의 팔괘 중에서 간(艮· )괘의 낙서수는 8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의 공간적인 위치는 간괘(艮卦)가 되는데, 마침 시간적으로도 간괘의 시점에 있게 되므로 간(艮)의 기운이 특별히 강하게 작용되는 시기에 있다.

간방에 속하는 곳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에게 영향력이 큰 이유는 간의 의미는 산인데,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이 많기 때문에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간은 오행 상으로는 토(土)에 해당되며, 변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국토에 대한 각종 변화가 아주 심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되는데, 그중에서도 남북한의 국토통일이 8운 기간 중에 된다고 예측할 수 있다.


주역의 간(艮)괘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역에서는 간(艮)에 대해 ‘艮, 其限’이라 하여, 사람이 걸어가다가 멈추므로 기본적인 의미는 정지, 제한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주는 쉬지 않고 항상 운행하므로 영원한 멈춤이란 본래부터 있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멈춤이란 일시적인 멈춤을 의미한다. 움직임이 절정에 이르면 잠시 멈추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지(止·멈춤)가 되며, 또한 멈춤의 의미에는 출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휴전이라는 멈춤에서 다시 통일이라는 출발의 의미가 있다.

낙서의 8간(艮)의 대표적인 형상으로 산이 되는 이유는 산은 정지하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남(少男)이 되어 몽매하고 유치하여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의미도 있다.

불가에 ‘종과득과 종두득두(種瓜得瓜 種豆得豆·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라고 하였는데,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간은 인과응보의 시대가 되어 자신이 지은 선악에 따라 그 갚음을 바로 받게 된다.

또한 간은 산이나 토석이 되므로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고궁, 여관, 종묘(宗廟) 등의 건축이 활성화 되고, 또한 개나 쥐가 되므로 명견이나 애완동물을 취미로 기르는 사람도 많게 된다.

그리고 방위로는 동북방이므로 요동(遼東), 한국, 몽고, 시베리아 동부, 일본의 북해도, 알래스카 등지가 이에 속한다. 이 지역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아직도 미개발지역이어서 장차 아시아의 주춧돌이 될 지역이다.

한편 하도(河圖)에 근거하면 3과 8은 오행으로 목(木)이 되므로 길상으로는 문재(文才)나 우수한 인물이 나오지만, 흉상으로는 젊은 사람이 상하게 되고 자살자가 많아지고 심지어는 절손이 되는 집안이 발생한다. 또한 낙서(洛書) 이론으로의 8간은 백토(白土)가 되고, 소남(少男)이 된다. 따라서 길하면 효의충량(孝義忠良)하고 부귀가 따르는데, 특히 젊은 세대나 삼남(三男)에게 유리하다. 흉하면 젊은 세대나 삼남이 피해를 보고 전병염이 발생하고 비만증환자가 발생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곧잘 사용하는 ‘성인도 여세추이(與世推移·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서 변함)’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래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데, 어부가 답답한 굴원(屈原)에게 한 마디 하기를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성인불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아, 세상과 더불어 변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도 어부 말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표〉의 간(艮)의 상의를 잘 살펴보면 미래에 대한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폄석정도 봉정암 사리탑에 족탈불급

▲ 중국의 절강성 소흥에 치수의 신으로 잘 알려진 우왕(禹王)의 묘인 폄석정( 石亭). 중국 최고의 대명당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설악산 봉정암의 사리탑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남쪽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에는 등산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설악산이 있다.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은 최고봉인 대청봉을 목표로 등산하지만, 불자들은 어김없이 백담사에서 출발하여 영시암, 오세암에 이어 봉정암으로 직행한다.

해발 1,244m에 위치한 봉정암(鳳頂庵)은 5대 적멸보궁에서도 최고 성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지금부터 1360여 년 전인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21일 동안의 기도를 마치고 문수보살에게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고 귀국하여 불사리를 봉안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어디에서인가 날아온 봉황새가 스님을 인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봉정암이라는 신비한 창건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자장율사는 봉정암 뒤편에 있는 부처님처럼 생긴 바위를 보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실 명당임을 알고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조그마한 암자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암자 뒤에는 불두암(佛頭岩)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인 가섭, 아난, 기린, 할미, 독성, 나한, 산신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 해발 1,244m에 위치한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은 5대 적멸보궁에서도 최고의 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봉정암 사리탑을 보고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동안 20년이 넘도록 풍수지리를 연구하면서 국내외의 명당 중에 중국의 절강성 소흥에 치수의 신으로 잘 알려진 우왕(禹王)의 묘인 폄석정( 石亭)이 천하의 대명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악산 봉정암의 사리탑에 비하면 족탈불급이었다.

봉정암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즉 비봉포란(飛鳳抱卵)의 명당이라고 하는데, 봉정암의 명칭은 봉황새가 인도하였다는 의미에서의 봉정암이고, 풍수지리 형국론으로는 봉정암의 불사리탑은 노승이 목탁을 치며 예불을 드리는 소위 노승예불(老僧禮佛)의 대명당이다. 이런 연유에서 불자들은 봉정암에 이르는 험한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리탑에는 불자들이 늦은 밤에도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역시 명불허전의 장소이다.

풍수지리 형국론에서 명당의 이름이 지을 때 산의 형상을 보고 적당히 짓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방식으로 산의 구성(九星)으로 구분하고, 다시 세분하여 명명하는 방법이 요금정(廖金精) 선생의 저서인 穴格(혈격)이라는 책에 나온다.

노승예불은 모양은 혈격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 성(星)의 뇌(腦)는 둥글거나 네모지며 신(身)은 곧고 면(面)은 평평하다. 모량은 다리를 벌려 유(乳)가 되므로 일명 현유고요(懸乳孤曜)이다’라고 하였다.


호남 최고의 명당은 무안의 노승예불

호남의 팔대명당에서도 최고 명당으로 손꼽는 명당이 전남 무안의 노승예불의 명당이 있는데, 발복이 무려 98대에 이른다고 하는 대명당이다. 그러나 무안의 노승예불도 봉정암의 노승예불에는 역부족이지만, 두 곳이 서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옥룡자유산록이라는 명당결에 있는 무안의 노승예불 대목을 보자.

‘그 날로 길을 떠나 무안으로 작로(作路)하니 / 산진수회(山盡水回)하는 곳에 대소명당 없을소냐(중략) / 사십사절(四十四節) 건해맥(乾亥脈)에 승달산(僧達山) 특립(特立)하니 / 금수병장(錦繡屛帳) 두른 곳에 우리 스승 계시도다 / 당국(當局)이 평순(平順)하여 규모가 광대하고 / 제좌기상(帝坐氣象)은 높았고 산수(山水)가 회동(會同)하였구나 / 천장지비(天藏地秘)한 혈(穴)을 저마다 구경하리 / 백천(百川)이 회조(回朝)하고 만산(萬山)이 폭주(輻輳)하니 / 갑산정기(甲山精氣) 모은 곳에 설법가사(說法袈娑) 벌였으니 / 아름다운 저 형상(形象)이 십이상좌(十二上佐) 분명하다 / 발우(鉢盂)는 동쪽에 있고 운암(雲岩)은 남쪽에 있도다 / 저 노승의 거동 보소 백팔염주 손에 쥐고 / 팔폭장삼 떨쳐입고 모든 제자 강(講)받을 제 / 그 중의 늙은 중이 스승께 문안할 제 / 염주 하나 떨어져서 수구원봉(水口圓峰) 되었고 / 간태금성(艮兌金星)이 충천하니 혈재방원개정처(穴在方圓蓋粘處)라 / 사륜석(四輪石)은 뒤에 있고 금어옥대(金魚玉帶)는 아래에 있고 / 팔백연화(八百煙花) 놓여있고 삼천분대(三千粉袋) 모였도다 / 건곤간손(乾坤艮巽)이 특립(特立)하니 왕자사부(王子師傅) 흔히 나고 / 병정손신(丙丁巽辛) 높았으니 장원급제 대대로다 / 호로산(葫蘆山) 나타나니 여작왕비(女作王妃) 할 것이요 / 운증국내(雲蒸局內)하였으니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라 / 토불토이작금(土不土而作金)하니 현목혹심(眩目惑心) 되리라 / 북신천주(北辰天柱) 높았으니 각우주지무궁(覺宇宙之無窮)이라 / 태극한문(太極햵旱門) 놓았으니 명진타방(名振他邦)하리로다 / 교쇄직결(交鎖織結)하는 모양은 사자(四字)가 분명하다 / 회천명개조화(回天命改造化)는 귀신이 조응(助應)하리라 / 금강(錦江)이 백리(百里)를 둘렀으니 어관대진(漁貫大陳) 되었구나 / 성현은 여덟이요 장상은 대대로다 / 이후 자손은 천억(千億)되어 만세만세 장구(長久)하리 / 이 산 운수(運數) 추술(推術)하니 구십팔대(九十八代代) 향화(香火)하리 / 주인 나서 찾으면 일야간(一夜間)에 영장(永葬)하리 / 칠척하(七尺下) 금반석(金盤石)은 귀신이 도우리라 / 걸음을 바삐 하여 죽전(竹田)으로 내려오니’
명당결에 의하면 노승예불의 명당은 현재 목포대학교 뒷산인 승달산(僧達山·318m)에 있는데, 도선국사는 이 명당을 찾아보고 죽전이라는 마을로 내려온다는 기록에 의거하면 대강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죽전은 무안군 몽탄면 감돈저수지 근처의 마을이다. 지금도 많은 풍수지리가들이 노승예불 명당을 찾기 위하여 승달산에 올라 찾아보지만, 아직도 천장비지(天藏秘地)하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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