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을 향한 '비둘기의 습격'
탄식이 아닌 감탄의 광장 ‘산 마르코’
이한철 (jhjnews)
▲ 베네치아 위에서 내려다 본 산 마르코 광장의 모습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광장의 주인은 ‘비둘기’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 좁을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산마르코 광장에 도달하게 된다. 탁 트인 광장은 두깔레 궁전, 산마르코 성당 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이하지만 정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이 아닌 비둘기였다.

어림잡아도 관광객들보다 10배는 더 많아 보이는 엄청난 수의 비둘기들은 산마르코 광장을 이미 접수(?)하고 관광객들로부터 먹이를 상납받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관광사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곳의 주인이었다.

먹을거리를 들고 있는 관광객이 있는 곳엔 수많은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몰려가 어깨와 머리 위에서 종종걸음을 하며 재촉하기 때문에 감히 음식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과자를 던져주면 비둘기들이 몰리긴 하지만 피동적인 자세에 불과할 뿐. 그러나 당당하고 적극적인 이곳의 비둘기들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집요함이 있었다.

▲ 베네치아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워하고 있는 관광객들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임시 보도로 거닐어 볼까요?

나폴레옹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격찬했다는 산마르코 광장. 이곳에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날씨였다. 야속하게 쏟아졌던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러나 비에 대한 원망은 산마르코 광장에 이르러 100% 사라지게 됐다.

산마르코 광장은 비로 침수될 때마다 보도 역할을 하는 판자를 연결해 그 위를 사람들이 다니게 하는데 바로 그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광장이 침수된 수준은 아니었지만 곳곳에 물이 고인 곳이 많아 판자를 연결해 놓은 것이다.

1년에 두 번 정도 침수된다는 광장. 맑은 날씨 탓에 볼 수 없거나 아니면 침수된 상태로 불편을 감수해야 볼 수 있는 광경을 큰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 베네치아 판자를 연결해 고인 물 위를 건너는 관광객들의 모습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의 웅장한 모습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광장의 역사와 관광 명소?

‘비둘기의 향연’이 인상적인 산마르코 광장은 여러 가지 신비로운 풍경과관광 명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2 사도 중 한 명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산마르코 성당, 그리고 두깔레 궁전, 탄식의 다리 등은 저마다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높이 솟은 시계탑 역시 이곳의 명물 중 하나. 귀엽게 생긴 인형 두 개가 매 시간 종을 치며 시간을 알린다. 이는 무려 5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다고 하니 그 기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명물 중 하나인 '시계탑'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광장 바다 건너편 ‘산 조르조 마죠레 성당’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가다보면 작은 다리 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촬영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사실 베네치아에서 그다지 눈에 띄는 풍경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이유는 그곳이 지닌 역사 때문.

그곳이 바로 죄수들이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한숨을 지었다는 ‘탄식의 다리’다. 이곳을 지난 죄수로는 플레이보이의 대명사 ‘카사노바’와 ‘실비오 펠리코’ 등이 있는데 그들이 저 좁은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둘기들의 요새처럼 느껴지면서도 독특한 역사와 의미를 간직한 곳 산 마르코. 그곳은 로마에 비해 한결 여유롭고 피렌체에 비해 한결 활기찼으며 빡빡한 일정에 지쳐 있던 내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필자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바포레또’에 몸을 실었다.

▲ 베네치아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 조르조 마죠레 성당'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 베네치아 이처럼 골목마다 작은 다리들로 연결돼 있다. (오른쪽은 ‘탄식의 다리’)
ⓒ 이한철
산 마르코 광장

Posted by 동봉
,

지도 없이 누비는 '수상도시' 베네치아
친근하고 소박하고 섬세한 도시
이한철 (jhjnews)

▲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중심으로 즐비하게 서있는 건물들
ⓒ 이한철
베네치아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관광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 이곳에서는 도통 자동차를 볼 수가 없다. 주요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섬과 섬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회색의 아스팔트가 아닌 녹색빛깔의 대운하이기 때문이다.

대운하 주변의 주요 섬에 가게 되면 승용차를 볼 수는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아 한적한 시골처럼 조용하고 여유가 넘친다. 자동차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바포레또, 친근하고 소박한 친구

주요 교통수단은 역시 ‘바포레또’와 곤돌라일 수밖에 없다. 이중 수상버스인 ‘바포레또’는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관광객의 발이 되어 줄 친구와 같은 존재다. 버스의 노선을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베네치아 수상버스 정류장 내부(왼쪽 아래)와 버스를 타고 바라본 풍경들
ⓒ 이한철
수상버스

베네치아의 주요 관광지와 인근 섬에 갈 때면 값비싼 택시 ‘곤돌라’ 보다는 수상버스 ‘바포레또’를 이용하기 마련. 국내에서 택시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하루하루 쪼들리는 여행경비 때문에 쉽사리 ‘곤돌라’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몸을 부대끼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재미가 쏠쏠하다. 간혹 ‘곤돌라’를 타고 손을 흔드는 관광객들을 보노라면 부럽기도 했지만 대운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모습 자체도 구경거리였다.

2006년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이탈리아답게 축구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들 역시 운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양이다. 익살스럽고 장난기 어린 아이들에겐 남다른 자부심 같은 것이 보여 한동안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의 모습
ⓒ 이한철
리알토 다리

또 하나의 상징, 리알토 다리

산타루치아 역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바포레또’에 몸을 실었다. 역 주변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한 베네치아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첫 행선지는 리알토 다리로 정했다. 이곳에 내려 싼 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여러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영화 ‘이탈리안잡’에서 봤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풍경을 바라보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도 운하가 넘치면 곧잘 잠길 정도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직접 확인한 베네치아는 평온하기만 했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상징인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를 가로지르는 대운하 중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에 놓인 다리라고 한다. 짧은 다리지만 가운데가 높게 솟아 있는 백색의 리알토 다리는 규모와 상관없이 웅장하고 기백이 넘쳐흘렀다.

▲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주변에서 맥주를 즐기는 관광객들
ⓒ 이한철
리알토 다리

다리 주변에는 많은 택시정거장이 즐비했고, 특히 강가 주변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특히 야외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친구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같이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도보로 즐기는 섬세한 관광

리알토 다리에서 싼마르코 광장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아무리 힘들고 지쳤다 해도 딱히 걸어가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계속해서 좁은 골목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으며 불과 3~4미터 떨어진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강물이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싼마르코 광장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거리는 수많은 명품들로 가득해 관광객들의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베네치아의 상징인 가면과 유리공예품들이 저마다 광채를 뽐내고 있다.

▲ 베네치아 좁은 골목 사이에도 이처럼 강물이 흐르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이한철
베네치아
▲ 베네치아 거리 곳곳에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가면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 이한철
가면

그 가격도 매우 다양한데 한 곳에서 비교적 싼 물건을 봐 두고 다른 곳에 가면 더 비싸고 화려한 물건이 유혹하는 식이다. 길을 지나칠수록 눈높이는 한없이 높아져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랄까.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필자는 결국 기념품 구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지도? 없어도 상관없어요!

이곳에서 재미난 것은 골목마다 붙어있는 이정표다. 사실 리알토 다리에 내린 순간부터 지도는 꺼낼 필요가 없었다. 어디 어느 곳에 가든 싼마르코 광장 방향과 리알토 다리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길로 빠져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결국엔 싼마르코 광장에 가게 되어 있으니 참으로 편하고 여유롭게 관광을 할 수 있었다.

15분 걸린다는 여행 안내책자와 달리 곳곳의 상점들을 구경하느라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곳에서 가장 주의 할 점은 역시 충동구매. 그러나 적당한 물건을 잘 골라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한다면 좋은 추억을 남기리라 확신한다.

▲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
ⓒ 이한철
싼마르코 광장

Posted by 동봉
,

천상의 나라, 지상에 내려오다
[<로마인 이야기> 역사탐방 (3)] 바티칸 미술관
유준수 (laliberte)
바티칸 미술관의 입구. 왼쪽이 미켈란젤로, 오른쪽이 라파엘로의 조각상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로마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날. 오늘의 일정은 바티칸시티와 로마 교외의 티볼리를 보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초점이 '고대의 로마'에 맞춰져 있었다면, 오늘은 '르네상스의 로마'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고대 로마보다는 르네상스의 로마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도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하였고, <로마인 이야기>는 말년의 저작이다) 이쪽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더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사실 난 그 어느 것보다 바티칸 미술관과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싶었다).


바티칸 미술관, 눈 돌릴 틈이 없다


트로이의 라오콘 상. 라오콘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뱀에 물려 죽는 모습을 너무나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바티칸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바티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제일 먼저 맞이에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끝이 안 보이는 줄일 것이다. 바티칸에 다녀오신 많은 분들이 이 줄에 대한 악몽이 있지만, 미리 예약이 되어있는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들어가게 되었다.


제일 먼저 거치게 되는 곳은 솔방울 정원. 베드로 성당에 있던 솔방울을 옮겨 정원에 배치한 것이 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안내판들이 있다.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 앞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탓에 여기서 미리 열심히 증거품(?)을 찍어둔다.


기원후 1세기에 제작된 아폴론 상. 화살을 쏘고 나서 확인하는 포즈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브라초 누오보에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좌상.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마침내 본격적으로 감상을 시작. 제일 먼저 조각상들을 감상한다. 피오-클레멘티노 회랑과 브라초 누오보에는 유명한 <라오콘> 상에서부터, 아폴론, 포세이돈,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화상의 인물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안티노와 같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특히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라오콘 상. 저 섬세한 근육 묘사와 리얼리티가 넘쳐나는 표정.


바티칸 미술관의 통로. 천장에도 이렇게 그림이 수없이 많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2층으로 올라가 회화관과 지도 전시관을 거쳐 라파엘로의 방으로 향한다. 하나하나가 명작들이라 눈 돌릴 틈이 없다. 사람이 너무나 많아 일행과 흩어질까 봐 두려워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자리를 움직인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모델이 된 고대 그리스의 석학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미술관에서 시스티나 성당까지도 쉴 틈 없이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맞이한다. 그리고 도착한 라파엘로의 방.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생각보다 더 거대한 그림이다. 카메라 하나로 제대로 잡기조차 어려울 만큼.


<아테네 학당>의 오른쪽 부분. 검은색 모자를 쓰고 보는 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이 라파엘로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플라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델), 그 옆의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미켈란젤로), 유클리드(브라만테), 디오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석학들이 나란히 등장하고 맨 오른쪽에는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이 소심할 만큼 구석에 그려져 있다. 마치 내가 어떻게 여기 끼겠느냐는 듯이.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라파엘로.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시선이 제각각임에 반면에 라파엘로만이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너무나 균형잡히고 뛰어난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며 그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여기서 감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 다음에는 다름 아닌 미켈란젤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미켈란젤로! 이게 정녕 인간의 솜씨란 말인가?


솔방울 정원에 있는 <최후의 심판>의 해설도. 사진은 찍지 않는게 원칙이기 때문에 눈으로밖에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마침내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 기대하고 기대하던 <최후의 심판> 앞에 선다. 그리고…… 경이라고 해야 할지, 경의를 표한다고 해야 할지, 경악해야 한다고 해야 할지.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감히 거장 미켈란젤로의 대작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모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처럼 그림 앞에서 두 손 잡고 눈물이라도 흘려야 했었나 싶다).


지금껏 예술작품을 봐오며 여러 차례 감탄을 한 적은 있었으나, 미켈란젤로의 이 그림들만큼 부동자세로 경이를 표할만한 것은 찾지 못했었다. 실로 무아지경. 이게 정녕 인간의 솜씨란 말인가. 홀로 이런 대작을 그려내다니…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천재성은 5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빛이 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사진 찍지 말라고 하는데도 꼭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있다) 이 작품을 본 것 자체만으로 행운이었다. 가능하다면 홀로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망일 것이다. 너무나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스티나 성당을 떠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 앞에서 다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천상의 나라, 지상에 내려오다


25년에 한번 문이 열린다는 성스러운 문.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25년에 한 번 문이 열린다는 성스러운 문에는 예수가 가장 신임한 두 제자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이 묘사되어 있다. 다음에 열릴 차례는 2025년. 그때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산 피에트로 대성당 내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 유준수
로마인이야기

다음 차례는 바티칸을 대표하는 성당,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만들었다는 <피에타> 이다. 너무나 섬세한 조각 표현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내부.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산 피에트로 성당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하다. 저 휘황찬란한 대리석들의 향연…. 교황 율리우스 2세(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후원자이기도 했지만, 교황청의 세속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임기 내내 전쟁과 외교에 주력한)는 어떤 생각으로 이 성당을 만들려 한 것일까? 후임 교황 레오 10세(지오반니 데 메디치)가 공사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것이 면죄부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고 이로 시작된 종교 개혁의 여파가 당시 기독교 세계의 절반이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교황청의 권위를 상징하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은 오늘날까지 화려하게 군림하는 것을 보면 과연 "흥망은 일순간이요, 예술은 영원"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가 보다. 그런 점에서 레오 10세는 과연 메디치 가의 사람답다.


베드로의 좌상. 베드로의 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가운데에 있는 성 베드로 좌상의 발은 이곳을 들리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만져보는 것이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반질반질하다. 성당 내부의 위압감과 긴 축(Navata)에 있는 수많은 장식과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장대함에 감탄이 끊어지지 않는다.


청동으로 만든 교황의 제단.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성당에서 나와 광장을 걷자 긴 회랑이 보인다. 위에는 수많은 성인들의 입상이 서 있다. 무려 284개의 도리아식 원주 위에 124명의 성인이 서 있다 한다. 광장 가운데에는 칼리쿨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양옆으로는 베르니니와 마데르노가 만들었다는 분수가 있다. 광장의 거대한 규모에 다시 한번 감탄. 이 날은 정말 하루종일 감탄만 연발한 듯하다.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 뒤로는 수많은 성인상들이 서있는 회랑이 보인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경을 다툴 때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 광장을 메웠는지, 그 넓이를 본 다음에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탈리아(아니 어쩌면 세계에서)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은 교황이라 하는데, 이 넓은 광장을 교황의 건강을 위하여 꽉 채웠다 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수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천상의 나라에 가고자 염원했다. 그리고 르네상스기의 교황들(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 이승에서 천상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마치 이곳 바티칸에서는, 그들의 뜻대로 천상의 나라가 지상에 내려온 듯하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모두 함께.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Posted by 동봉
,

로마인의 흔적을 찾아서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②] '로마인이야기 독서평론대회' 수상자 역사탐방대
유준수 (laliberte)

두번째 날의 일정은 고대 유적도시 폼페이와 그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오랫동안 화산재 속에 파묻혀있다가 근대에 이르서서야 발견된 도시다. 화산재 속에서 발굴된 폼페이는 고대 로마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대 로마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의 보고이다.

아침 일찍 로마의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미항으로 유명한 남부의 중심도시 나폴리를 지나 점심 무렵에야 폼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 동안 버스 안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산은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중해에 면한 아름다운 남이탈리아의 풍경을 바라보자니, 그때의 비극은 후대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폼페이의 비극

▲ 베수비오 화산 유적 너머로 멀리 보이는 것이 베수비오 화산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숨을 참으며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의 마부. 물론 저 앉아있는 자세는 오늘날 복원시킨 것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인해 면해있던 폼페이와 그 인근 도시는 화산재와 용암의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이때 폼페이 근교 스타비아에 머물다 간신히 화를 피했던젊은 플라니우스 -『박물지』로 유명한 유명한 외삼촌(이 때 질식사했다)과 구분하기 위해 소(小) 플라니우스라고도 불리운다 - 는 당대 최고의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때의 생생한 기록을 유일하게 남겼다.

…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여자들의 울부짖음과 아이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를 찾는 소리, 자식을 소리쳐부르는 소리, 남편이나 아내를 불러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이들도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덮친 운명을 한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죽도록 겁에 질린 사람들은 차라리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팔을 쳐들고 신들에게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신은 이제 어디에도 없고, 이 어둠은 영원히 계속되어 세상의 종말에 이를거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

마치 묵시록적인 종말의 현장을 지켜보는듯 한 묘사다.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천재지변을 겪으며,사신(死神)이눈 앞에서 죽음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무력한 인간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폼페이, 로마인의 흔적을 찾아

대부호 저택 바닥에 묘사된 <이수스 회전>의 모자이크. 저택의 넓이가 생각 이상으로 넓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공중 욕장의 욕탕. 고대 로마인들은 물의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했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폼페이에 도착하자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뜨겁게 작열하는 남이탈리아의 태양이 우리를 맞이했다. 폼페이는 2천년전에는 캄파냐 지방의 한 소도시였을 뿐이지만, 지금은 고대 로마에 관한한 이곳보다 많이, 그리고 잘 보존된 곳이 없다. 폼페이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혔기 때문에, 그 넓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다. 가이드분의 말씀으로는 대략 서울의 한 구(區) 정도의 넓이라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직도 많은 구역이 복원되지 않았다). 이 넓은 지역을 하루 안에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구역 몇 곳을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탈리아인 가이드 카르밀라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고대 로마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회랑(포룸)과 공중 욕장, 대부호의 저택, 제분소, 반원형 극장, 주점, 유곽, 각종 상점,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 살던 집들까지.

폼페이는 2천년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틀이 잘 잡혀있는 도시이다. 잘 정비된 도시 구획에서 일상적인 삶,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오락거리까지, 그 모든 것이 훌륭히 보존되어 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로마인들의 흔적을 찾아보니, 2천년 전의 고대 로마인들은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고느낄 수 있었다.

넓은 폼페이를 다 둘러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폼페이 유적을 벗어나자 길가에 서있는 노점상들이 "니 하오, 니 하오" "곤니찌와"등을 연발하며 호객행위를 한다. 대뜸"소 노 꼬레아노!" 라고 외치자 태도를 바꾸며 어설픈 발음으로 "Si,Si.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날 한국어로 주문을 받는 젤라또 가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새삼 동양 삼국에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을확인할 수 있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고대 로마인의 주식이었던 빵을 생산했던 곳. 곡물을 가는 절구와 화덕 등을 볼 수 있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유곽 '루파나레' 내부에 그려져 있는 프레스코화. 내부 곳곳에 이런 에로틱한 춘화가 걸려져있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폼페이 식당에서 이탈리아 식 스파게티와해산물을먹으며 점심을 맛나게 해결하고, 소렌토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폼페이에서 서남쪽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렌토 반도가 나타난다. 유명한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무대인 바로 그 곳이다.

비로소 시야에 소렌토 해변이 들어오자 감탄사가 연발로 터져나온다. 말로만 듣던 지중해를 처음 본 탓이기도 하겠지만,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을 사진에 담기는 했지만 사진으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지 못할것 같다.

지중해의 그 맑고 푸른 물이란! 이 곳은 그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피서지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라 전 유럽에서 몰려온 수많은 피서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저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로마 유적 탐방이 우선 과제이기에, 잠시 소렌토의 풍경을 만끽하는 선에서 만족했어야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소렌토로.

폼페이 중앙부에 있는 반원형 극장. 이곳에서 로마인들은 연극과 시 낭송 등을 감상했을 것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지중해의 푸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반대쪽 해안은 나폴리이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이탈리아인과 축구

이탈리아는 축구(Calcio, Serie A)의 나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지만 이탈리아처럼 광적으로 축구를 숭배하는 나라는 드물다. (그 다음날 축구와 관련해서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면 북부의 유벤투스 토리노와 AC 밀란,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지만 이곳 로마를 대표하는 클럽은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는 두 라이벌, AS 로마와 SS 라치오이다.

이 두 팀간의 더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로마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클럽은 AS 로마인데, 이 클럽의 물품 -레플리카, 모자, 티셔츠, 가방, 각종 팬시 등- 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마 곳곳에 이러한 물건을 판매하는 AS 로마 공식 판매처가 존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려보는 것도. 참고로 가격은 만만치 않다.

현재 AS 로마는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를 중심으로 하는 탄탄한 전력으로 연승을 거듭하며 7년만의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다. (00-01 시즌, 로마가 우승한 직후에 온 로마가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고 한다!) 5라운드가 경과한 지금, AS 로마는 무패 행진을 달리며 100주년을 맞이하는 인테르와 함께공동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변을 빼곡이 메운 피서객들. 소렌토 해변에는 이탈리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피서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소렌토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지 못할것 같다.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이탈리아의 신문들 - 라 레푸블리카, 라 가제타 스포르티바, 일 로마니스타
ⓒ 유준수
로마인 이야기

이탈리아의 신문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신문으로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공화국)>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re della Sera(석간)>가 있다. 머물렀던 호텔에서 매일 로비에 <라 레푸블리카>를 잔뜩 가져다 놓았기에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어라고는 고유명사밖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니 거의 그림책 수준이었지만, 1유로(한화 약 1300원)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올 컬러로 50면 분량을 탄탄한 내용으로 채워놓고 있다.

이외에도 스포츠 신문 <라 가제타 스포르티바La Gazzetta Sportiva> 와 AS 로마의 서포터들이발행하는일간지 <일 로마니스타 IL Romanista>를 구입해서 보았는데, 일요일 저녁에 있을 인테르와 AS 로마의 수페르 코파(Super Coppa)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곧 시작하는 세리에 A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대감을 살필 수 있었다.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