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구니 사이에 사탑을 세우는 남자들

[유럽기행 61] 이탈리아 피사(Pisa) 기행
09.11.24 10:41 ㅣ최종 업데이트 09.11.24 10:41 노시경 (prolsk)

내가 이탈리아의 피사(Pisa)를 찾아가는 이유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나는 기울기가 그렇게 심한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이 어떻게 무리 없이 서 있는지 의문이었다. 지반공사를 해서 기울어진 사탑을 억지로 붙들고 있겠지만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진 중세의 건축물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멋진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피사는 작은 도시다. 역에서 걸어 30분이면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까지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의 걷는 시간을 잘 고려해야 했다. 하루 종일 걷는 여행을 하는 다리가 지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앙역 앞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어쩐 일인지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시골 도시이고 관광지까지 너무 가깝기 때문인 모양이다.

▲ 피사의 버스 정류소. 역 앞에서 큰길을 건너면 피사의 사탑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가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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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사 중앙역에 다시 들어가서 버스 티켓 3장을 샀다. 버스 티켓은 내린 후 60분 이내에 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종이 티켓이었다. 나는 아내와 딸에게 버스 티켓을 나누어 주었다.

버스는 중앙역을 등지고 계속 직진하고 있었다. 이곳이 이탈리아의 유명한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피사의 주민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지 거리에는 사람 보기가 힘들고 길가의 가게들도 조용했다.

▲ 피사의 아르노 강. 이 강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지중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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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보았던 아르노(Arno) 강이 이곳 피사에도 흐르고 있었다. 피사가 피렌체보다 바다에 더 가까운 하류이기에 강폭은 더 넓었고 강물은 중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Toscana) 주를 적시고 있었다. 저 강의 끝에는 바다, 지중해가 나온다. 11세기 말 피사가 강력한 해상 공화국으로 번영했던 시절, 이곳은 바로 바닷가였다. 천년 동안의 아르노 강 퇴적작용으로 바다가 서쪽으로 10km쯤 이동하고 항구도시였던 피사는 내륙 도시가 되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시골 도시 피사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달리 적막에 싸여 있었다. 강변의 길가에는 지나가는 사람 없이 한적하기만 하다. 피사가 토스카나 공국에 속했을 당시에 대학과 문예도시로 유명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버스는 아르노 강을 건너고 얼마 가지 않아서 피사의 사탑 가는 길로 들어섰다. 버스 차창 너머로 한껏 기울어진 사탑의 백색 대리석 구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로 거짓말같이 피사의 사탑 주변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갑자기 인구폭발의 현장을 만난 것만 같이 여행자들은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순간, 오늘 피사의 여정을 내가 너무 잘못 짰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피사의 사탑만 얼른 보고 다시 피렌체에 가서 피렌체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는 계획. 그러나 푸른 잔디 광장이 펼쳐진 피사는 대성당과 세례당, 사탑이 어울리는 작지 않은 곳이었다. 여유 있게 둘러보다가 가고 싶은 생각이 절실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늘의 일정을 짤 때 이동시간, 관람시간 등을 철저하게 미리 계산하지 않았던 나의 실수가 현실화되는 시점이었다.

이미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서둘러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피사의 사탑 앞까지 걸어가면 나의 딸, 신영이는 피사의 사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자고 할 게 뻔했다. 과연 피사의 사탑을 오를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있을 것인가?

나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휴식을 취하러 온 자유여행인데 뭐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탑에 못 오르면 사탑 밑에서 사탑을 여유있게 즐기다가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행일정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억지스러운 자기 합리화도 좋은 방법이다.

▲ 피사의 성벽 입구. 피사의 보물들을 지키기 위한 성벽의 높이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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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은 성벽의 성문을 통과하게 된다. 성벽은 잘 보존된 모습이고 누구도 기어오를 수 없을 만큼 높은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성벽은 제노아 등 인근 도시국가와 치렀던 전쟁의 흔적이다. 성벽이 이다지도 높은 것은 외적의 침입이 극심했고 성벽 내부에 꼭 지키고 싶은 성당과 유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벽 외부에는 기념품을 파는 행상들이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특히 성문 주변에는 많은 흑인들이 짝퉁 가죽제품을 팔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 그 옆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다. 피사도 소매치기로 명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피사의 사탑까지 가는 길가에는 삐딱한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여행자들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온갖 인종의 여행객들이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아이와 아빠의 건강한 사진 찍기가 유쾌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여행자들이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정녕 이 사탑은 절대 기울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 피사의 사탑. 많은 여행자들이 온갖 포즈로 사탑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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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사진 포즈는 손으로 탑을 가볍게 받쳐서 들거나 등으로 사탑을 업고 있는 모습이다. 나의 딸 신영은 두 손으로 밀어서 사탑을 세웠고 아내는 등 뒤에 사탑을 들어올렸다. 가장 웃기는 포즈는 드러누운 채로 사타구니 사이에 사탑을 넣어 세우는 남자들이다. 그들을 보는 남자들과 알 건 아는 아줌마들이 한참을 웃고 지나간다.

피사의 대성당과 사탑 맞은편에는 신영이의 눈을 설레게 하는 온갖 기념품 가게가 줄을 잇고 있었다. 자꾸 옆으로 빠지려고 하는 신영이의 발길을 서둘러서 '기적의 광장(Piazza dei Miracoli)'이라고 불리는 피사의 대성당 광장에 도착했다.

역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대성당 옆 사탑 주변에 몰려 있다. 대성당 앞의 여행자들은 느리게 움직이거나 성당의 그늘에서 여행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늘에서 햇볕을 즐기는 서양 여행자들은 대부분 햇볕이 부족한 유럽국가에서 온 여행자들일 것이다.

▲ 피사의 대성당과 세례당 둥근 돔과 대리석 조각이 현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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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대성당과 사탑 주변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와 달리 주변에 민가나 현대식 건물이 없고 그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사의 사탑 뿐만 아니라 대성당, 세례당도 다 기울어져 있었다. 사탑도 아름답지만 세례당 돔의 붉은 지붕도 햇살 아래 장관이고 대성당 돌기둥의 현란한 조각과 푸른 청동문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대리석의 주산지인 피사의 명성대로 사탑과 대성당의 대리석은 어제 올린 듯이 깨끗하기만 했다. 한 마디로 중세의 운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행사진에서 수없이 보아온 이탈리아의 대표 건축물, 피사의 사탑. 실제 기울어진 사탑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무려 7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사탑은 2m 60cm, 5도 30분이나 기울어졌다고 한다. 물론 사탑의 한쪽 지반이 약해서 탑이 기울었지만 신의 뜻에 의해서 탑이 기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탑을 세운 사람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기우러진 미학이 피사의 사탑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탑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피사의 사탑은 미리 예약을 해야 오를 수 있는데 안내원을 동반하여 1시간마다 30명씩 밖에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사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사탑의 앞에는 이미 3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서까지 사탑에 올라갈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쫒기지 않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들어 높이가 50m를 넘는 사탑의 맨 상층부를 올려다보았다. 대성당의 종탑으로 지어졌던 저 사탑의 꼭대기 층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갈릴레이의 전설적인 이야기의 현장이 눈앞에 들어 왔다. 현대에 와서 갈릴레이가 진짜 이곳에서 낙하의 법칙과 관련된 실험을 했는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 사실은 나에게 상관이 없었다. 이 현장은 초등학교 시절 갈릴레이 위인전의 흑백 그림 속에서 내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던 현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을 직접 마주하고 서 있었다.

무게 차이가 나는 2개의 공을 동시에 낙하시키면 무게에 관계없이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는 사실. 아무리 단순한 사실이라도 이를 객관화하고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은 훌륭한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갈릴레이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한 곳이 피사의 사탑이 아닐 수도 있고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오히려 틀릴 수도 있다. 16세기 말의 상황을 정확히 밝혀내기는 현재로서는 힘든 일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주장의 논거를 내세우면서 단지 추측의 나래를 펼 뿐이다.

이 피사의 사탑에서는 실제로 5년에 한 번씩 낙하가 이뤄진다. 낙하하는 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날리면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탑은 자살을 막기 위해 예약제를 실시하고 안내원의 동행에 의해서만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대성당 뒤편의 화장실로 갔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이제 유럽의 여행지마다 한국인이 없는 곳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온 패키지 여행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이탈리아어, 영어 속에서 또렷이 들렸다. 여행 가이드가 시간의 압박으로 피사 사탑의 계단을 오르지는 못한다고 한 모양이다. 자유여행을 하는 나의 가족이나 패키지 여행을 온 한국여행자들이나 모두 시간이 부족해서 사탑을 오르지는 못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보는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 피사의 기념품 가게. 피사의 기념품들도 사탑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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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피해 화장실 옆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모든 기념품들이 피사의 사탑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1년에 1밀리미터씩 기운다는 피사의 사탑. 이제는 더 이상 눈에 띄게 기울지는 않는다는 사탑은 기념품 가게의 유리컵까지 기운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보여주는 사탑이 이탈리아 최고의 마케팅 콘텐츠가 되어 팔리고 있었다. 스토리가 무궁무진한 이 사탑 한 개로 인해 피사는 많은 여행자들을 세계로부터 불러오고 있었다.

잠시 휴식 속에서 피사 대성당과 세례당, 사탑의 전경을 감상하던 나의 가족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탑이 원래 종탑의 기능에 맞게 종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성문 밖까지 천천히 걸어갔고 피사 역까지 가는 버스가 곧 우리 앞에 와서 멎어섰다.

버스 티켓은 버스 검표기에 넣어 펀칭을 하고 타도록 되어 있었다. 아내와 딸이 버스 위에 먼저 올라타서 티켓에 펀칭을 했고 나도 따라서 검표기에 티켓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검표기 안에 들어간 내 종이티켓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 끝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도저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탈리아 아가씨가 나를 도와주다가 티켓이 나오지 않자 포기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운 없으면 만나게 된다는 버스티켓 검표원 아저씨 2명이 우리 버스에 올라탔다. 순간 내 마음에 긴장감이 돌았다. 버스 티켓이 없는 사람은 현장에서 수십 배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검표할 티켓이 없었고 버스 안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족 앞에서 일부러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내 티켓이 없어진 과정을 지켜 본 이탈리아 아가씨에게 눈짓을 보냈고 내 상황을 이 아저씨들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검표기를 가리켰다.

순간 이 아가씨는 당시 상황을 이탈리아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보고 웃었다.

"검표기가 지금 무척 배가 고팠던 게 틀림 없어!"

나와 아내, 딸, 그리고 검표원 아저씨, 친절하고 예쁜 이탈리아 아가씨, 그리고 버스 안의 승객들이 모두 함께 크게 웃었다. 버스는 피사 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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