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도시, 로마에 가다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①] '로마인이야기 독서평론대회' 수상자 역사탐방대
유준수 (laliberte)
로마문명사박물관
ⓒ 유준수
로마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 바이마르 대공국의 행정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작은 짐 가방 하나만을 들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길을 떠난다. 37세의 괴테는 이미 문학가이자 행정가로서 유럽에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명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여행의 길을 떠난다. 무엇 때문에? 이때의 기록을 남긴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북방에 있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지방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로마)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괴테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로마를 찾아가고자 하는 방문자의 심리는 이 당시의 괴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마'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주는 소망과 기대감, 그것은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는 고대에 천년 로마의 고도로, 로마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1천년 후에는르네상스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현대 이탈리아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로마는 과거에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영원의 도시다. 그 로마에 지금 가고자 하는 것이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를 향하여

팔라티노 언덕의 아우구스투스 황궁 앞에서. 수상자 11인과 안내자님이 함께.
ⓒ 한길사
로마

한길사 주최 '로마인 이야기 독서 평론대회' 수상자 11인과 인솔자 한 사람, 총 12인으로 구성된 역사탐방대가 인천발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지난 8월 15일 오후 1시 5분이었다. 이 때의 기대와 흥분감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로마에 내가 직접 가게 될 줄이야.

오후 2시에 이륙하여 로마의 관문 피우미치노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 10분(이탈리아는 서머타임 적용기간동안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 장장 11시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여러 나라들의 하늘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 벨라루시,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을 거쳐이탈리아에 도착한 것이다.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가 부하들과 함께 거주한 막사.
ⓒ 유준수
로마
포로 로마노 전경. 성당 앞에 있는 건물이 공화정 시대의 원로원 건물이다.
ⓒ 유준수
로마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뜨거운 이탈리아의 태양을 받으면서도 아직 로마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한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부푼 기대감과 설렘이 마침내 로마에 왔다는 반증이리라.

로마 답사의 첫 일정은 로마 문명사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됐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로마 문명사 박물관은 관광객이 흔히 찾아가는 방문지가 아니다. 그러나 로마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곳은 숨겨진 보물이다. 로마라는 도시의 탄생부터 제정 말기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부터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변천을 수많은 모형을 통하여 보여주고, 각 시대의 핵심적인 유물과 모형들이 각 방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진품을 모방한 가짜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 채기는 쉽지 않다. 장인 정신이라 할 만큼 정교하게 복원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라야누스 원주기둥의 수백장의 조각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한 가품은 가짜라고 전혀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 -훼손상태까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다.

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인의흔적


콜로세움.
ⓒ 유준수
로마

문명사 박물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 Forum Romanum)'다. 익히 알다시피 초기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번 답사는 이 언덕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유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포로 로마노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흔히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콜로세움이지만, 콜로세움은 후대(티투스 황제 시기)에 세워졌을 뿐더러 로마인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서 로마인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에는 수많은 유적이 공존한다. 공화정 시대의 원로원 건물 -로마 정치의 중심지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의외로 소박하다-, 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전들, 로마인의 삶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공회당(바실리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 티투스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그리고 기독교 시대의 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흔적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콜로세움(Colosseum)은 포로 로마노로부터 지척에 있다. 포로 로마노를 벗어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콜로세움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로마는 그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걷는 것만으로 수많은 유적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발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눈앞으로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로마다.

퀴리날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

콜로세움 내부의 모습. 십자가가 서 있는 자리가 황제가 앉아 검투사의 생사를 결정하던 자리라 한다.
ⓒ 유준수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 유준수
로마

팔라티노 언덕이 고대 로마의 중심지라면,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위치한 퀴리날레 언덕 부근은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의 중심지다. 길게 뻗은 이탈리아 대통령궁이 퀴리날레 언덕에 있으며 -그래서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궁을 '퀴리날레'라고 지칭한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행정부 건물이 산재해 있다(차창 밖으로본 노동청 건물의 외관이 미술관을 떠올릴만큼 아름답다. 이탈리아인의 센스라 할 수 있을까?). 또한 패션 강국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점들이 이 부근에 밀집해 있다. 더불어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를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가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라 할만하다.

이곳에 있는 관광명소에 큰 역사적 의미는 없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했다 하여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나, 그것과 관계없이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고전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앉았던 자리에서 젤라또를 먹으며 두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두 사람이 앉아있던 그 계단이 명당 자리인지, 자리가 빌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자리를 옮겨, '진실의 입' 앞에 가보면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역시 <로마의 휴일> 덕이다. 거짓말을 한 채로 입속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영화 속에서 브래들리가 손이 잘린 척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앤 공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워낙 사람들에게 인상이 깊었나 보다(사실 이것은 로마 시기에는 하수구 맨홀 뚜껑이었다). 식상한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본다.

역시 로마의 상징 중 하나, 아름다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본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동전을긁어모으기 위해만들어진 전설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한 편견과 달리 이 동전들은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이 위대한 도시에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로마에서의 첫일정을 마감했다.

스페인 광장의 분수.
ⓒ 유준수
로마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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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걔, 이게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야?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 (1)
유준수 (laliberte)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 바이마르 대공국의 행정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작은 짐 가방 하나만을 들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길을 떠난다. 37세의 괴테는 이미 문학가이자 행정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유럽의 명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여행의 길을 떠난다. 무엇 때문에? 이때의 기록을 남긴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북방에 있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지방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로마)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괴테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로마를 찾아가고자 하는 방문자의 심리는 이 당시의 괴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마'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주는 소망과 기대감, 그것은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는 고대에 천년 로마의 고도로, 로마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1천년이 지난 무렵에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현대 이탈리아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로마는 과거에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영원의 도시다. 그 로마에 지금 가고자 하는 것이다.

로마를 향하여

한길사 주최 '로마인 이야기 독서 평론대회' 수상자 11인과 인솔자 한 사람, 총 12인으로 구성된 역사탐방대가 인천발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지난 15일 오후 1시 5분이었다. 이때의 기대와 흥분감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후 2시에 이륙하여 로마의 관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 10분(현재 이탈리아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으로, 장장 11시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공간적으로 보아도 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여(한국으로부터 중국, 몽골,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의 하늘을 지나) 이탈리아에 도착한 것이다.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뜨거운 이탈리아의 태양을 받으면서도 아직 로마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한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부푼 기대감과 설렘이 마침내 로마에 왔다는 반증이리라.

로마 문명사 박물관

로마 답사의 첫 일정은 로마 문명사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됐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로마 문명사 박물관은 관광객이 흔히 찾아가는 방문지가 아니다. 그러나 로마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곳은 숨겨진 보물이다. 로마라는 도시의 탄생부터 제정 말기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부터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변천을 수많은 모형을 통하여 보여주고, 각 시대의 핵심적인 물건들이 각 방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진품을 모방한 가짜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 채기는 쉽지 않다. 장인 정신이라 할 만큼 정교하게 복원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라야누스 원주기둥의 수백장의 조각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한 가품은 가짜라고 전혀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훼손상태까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다.

로마인의 흔적,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

▲ 포로 로마노
ⓒ 한길사
박물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포로 로마노'다. 익히 알다시피 초기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번 답사는 이 언덕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유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포로 로마노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흔히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콜로세움이지만, 콜로세움은 후대(티투스 황제 시기)에 세워졌을 뿐더러 로마인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서 로마인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에는 수많은 유적이 공존한다. 공화정 시대의 원로원 건물(의외로 간소하다), 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전들, 로마인의 삶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공회당(바실리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 티투스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그리고 기독교 시대의 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흔적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콜로세움

▲ 콜로세움
ⓒ 한길사
콜로세움은 포로 로마노로부터 지척에 있다. 포로 로마노를 벗어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콜로세움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로마는 그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걷는 것만으로 수많은 유적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발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눈앞으로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로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로마의 랜드마크라 하면 역시 콜로세움이다. 그런 탓인지 콜로세움 앞에는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서 있다. 우리 일행은 베테랑 가이드분의 인도로 줄을 서지 않고 신속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 보던 콜로세움의 웅장한 모습과 달리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은 실망 그 자체.

사진 몇 장을 찍은 것을 제외하면 오래 있을 필요도 없을 만큼 특별히 감상할 것조차 없다. 오랜 줄을 서고 여기에 오른 관광객들은 분명 실망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검투전이나 모의해전이 열리던 과거의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 허나 실감이 나지 않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비로소 포로 로마노와 이 콜로세움에 왔을 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건물이 수많은 노예의 피땀으로 세워지고 잔인한 살육의 향연을 즐기던 공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다. 로마는 분명 세계사에 빛나는 위대한 문명이지만, 그 위대한 문명 로마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퀴리날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

팔라티노 언덕이 고대 로마의 중심지라면,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위치한 퀴리날레 언덕 부근은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의 중심지다. 길게 뻗은 이탈리아 대통령궁이 퀴리날레 언덕에 있으며(그래서 흔히 대통령궁을 '퀴리날레'라고 지칭한다), 대부분의 행정부 건물이 산재해 있다(행정을 보는 건물의 외관이 예술작품을 떠오르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이탈리아인의 센스라 할 수 있을까?) 또한 패션 강국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점들이 이 부근에 밀집해 있다. 더불어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를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가히 이탈리아의 중심지라 할만하다.

이곳에 있는 관광명소는 큰 역사적 의미는 없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했다 하여 스페인광장이라 불리나, 그것과 관계없이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앉았던 자리에서 젤라또를 먹으며 두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진실의 입'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역시 <로마의 휴일> 덕이다. 거짓말을 한 채로 입속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영화 속에서 브래들리가 손이 잘린 척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앤 공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워낙 사람들에게 인상이 깊었나 보다(사실 이것은 로마 시기에는 하수구 맨홀 뚜껑이었다). 식상한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본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져본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관광객 돈을 우려먹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이 동전들은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이 위대한 도시에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로마에서의 첫 일정을 마쳤다.

축구팬을 위한 덤

이탈리아는 축구(Calcio, 칼치오)의 나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지만 이탈리아처럼 광적으로 축구를 숭배하는 나라는 드물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면 북부의 유벤투스 토리노와 AC 밀란,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지만 이곳 로마를 대표하는 클럽은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는 두 라이벌, AS 로마와 SS 라치오이다.

이 두 팀간의 더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로마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클럽은 AS 로마인데, 이 클럽의 물품(레플리카, 모자, 티셔츠, 가방, 각종 팬시 등)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마 곳곳에 이러한 물건을 판매하는 AS 로마 공식 판매처가 존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려보는 것도. 참고로 가격은 만만치 않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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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걔, 이게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야?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 (1)
유준수(laliberte) 기자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 바이마르 대공국의 행정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작은 짐 가방 하나만을 들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길을 떠난다. 37세의 괴테는 이미 문학가이자 행정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유럽의 명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여행의 길을 떠난다. 무엇 때문에? 이때의 기록을 남긴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북방에 있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지방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로마)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괴테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로마를 찾아가고자 하는 방문자의 심리는 이 당시의 괴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마'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주는 소망과 기대감, 그것은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는 고대에 천년 로마의 고도로, 로마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1천년이 지난 무렵에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현대 이탈리아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로마는 과거에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영원의 도시다. 그 로마에 지금 가고자 하는 것이다.

로마를 향하여

한길사 주최 '로마인 이야기 독서 평론대회' 수상자 11인과 인솔자 한 사람, 총 12인으로 구성된 역사탐방대가 인천발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지난 15일 오후 1시 5분이었다. 이때의 기대와 흥분감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후 2시에 이륙하여 로마의 관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 10분(현재 이탈리아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으로, 장장 11시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공간적으로 보아도 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여(한국으로부터 중국, 몽골,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의 하늘을 지나) 이탈리아에 도착한 것이다.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뜨거운 이탈리아의 태양을 받으면서도 아직 로마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한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부푼 기대감과 설렘이 마침내 로마에 왔다는 반증이리라.

로마 문명사 박물관

로마 답사의 첫 일정은 로마 문명사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됐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로마 문명사 박물관은 관광객이 흔히 찾아가는 방문지가 아니다. 그러나 로마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곳은 숨겨진 보물이다. 로마라는 도시의 탄생부터 제정 말기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부터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변천을 수많은 모형을 통하여 보여주고, 각 시대의 핵심적인 물건들이 각 방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진품을 모방한 가짜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 채기는 쉽지 않다. 장인 정신이라 할 만큼 정교하게 복원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라야누스 원주기둥의 수백장의 조각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한 가품은 가짜라고 전혀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훼손상태까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다.

로마인의 흔적,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

▲ 포로 로마노
ⓒ 한길사
박물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포로 로마노'다. 익히 알다시피 초기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번 답사는 이 언덕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유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포로 로마노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흔히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콜로세움이지만, 콜로세움은 후대(티투스 황제 시기)에 세워졌을 뿐더러 로마인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서 로마인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에는 수많은 유적이 공존한다. 공화정 시대의 원로원 건물(의외로 간소하다), 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전들, 로마인의 삶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공회당(바실리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 티투스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그리고 기독교 시대의 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흔적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콜로세움

▲ 콜로세움
ⓒ 한길사
콜로세움은 포로 로마노로부터 지척에 있다. 포로 로마노를 벗어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콜로세움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로마는 그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걷는 것만으로 수많은 유적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발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눈앞으로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로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로마의 랜드마크라 하면 역시 콜로세움이다. 그런 탓인지 콜로세움 앞에는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서 있다. 우리 일행은 베테랑 가이드분의 인도로 줄을 서지 않고 신속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 보던 콜로세움의 웅장한 모습과 달리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은 실망 그 자체.

사진 몇 장을 찍은 것을 제외하면 오래 있을 필요도 없을 만큼 특별히 감상할 것조차 없다. 오랜 줄을 서고 여기에 오른 관광객들은 분명 실망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검투전이나 모의해전이 열리던 과거의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 허나 실감이 나지 않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비로소 포로 로마노와 이 콜로세움에 왔을 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건물이 수많은 노예의 피땀으로 세워지고 잔인한 살육의 향연을 즐기던 공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다. 로마는 분명 세계사에 빛나는 위대한 문명이지만, 그 위대한 문명 로마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퀴리날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

팔라티노 언덕이 고대 로마의 중심지라면,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위치한 퀴리날레 언덕 부근은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의 중심지다. 길게 뻗은 이탈리아 대통령궁이 퀴리날레 언덕에 있으며(그래서 흔히 대통령궁을 '퀴리날레'라고 지칭한다), 대부분의 행정부 건물이 산재해 있다(행정을 보는 건물의 외관이 예술작품을 떠오르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이탈리아인의 센스라 할 수 있을까?) 또한 패션 강국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점들이 이 부근에 밀집해 있다. 더불어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를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가히 이탈리아의 중심지라 할만하다.

이곳에 있는 관광명소는 큰 역사적 의미는 없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했다 하여 스페인광장이라 불리나, 그것과 관계없이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앉았던 자리에서 젤라또를 먹으며 두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진실의 입'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역시 <로마의 휴일> 덕이다. 거짓말을 한 채로 입속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영화 속에서 브래들리가 손이 잘린 척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앤 공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워낙 사람들에게 인상이 깊었나 보다(사실 이것은 로마 시기에는 하수구 맨홀 뚜껑이었다). 식상한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본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져본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관광객 돈을 우려먹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이 동전들은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이 위대한 도시에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로마에서의 첫 일정을 마쳤다.

축구팬을 위한 덤

이탈리아는 축구(Calcio, 칼치오)의 나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지만 이탈리아처럼 광적으로 축구를 숭배하는 나라는 드물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면 북부의 유벤투스 토리노와 AC 밀란,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지만 이곳 로마를 대표하는 클럽은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는 두 라이벌, AS 로마와 SS 라치오이다.

이 두 팀간의 더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로마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클럽은 AS 로마인데, 이 클럽의 물품(레플리카, 모자, 티셔츠, 가방, 각종 팬시 등)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마 곳곳에 이러한 물건을 판매하는 AS 로마 공식 판매처가 존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려보는 것도. 참고로 가격은 만만치 않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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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화려함의 집대성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에서 느끼는 종교의 위대함
이한철(jhjnews) 기자
▲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의 외관
ⓒ 이한철
세계 최대 규모의 미사가 열리는 곳

성 베드로 성당은 산 피에트로 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피에트로'는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베드로를 뜻한다. 성 베드로 성당은 세계 최대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성당으로 그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의 폭은 240m로 바로 이곳에서 최근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진행됐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펼쳐졌던 장례식의 모습을 TV를 통해 봤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텅 비어 있는 의자들만이 눈에 띄지만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미사가 열린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미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의 ‘성 베드로 상’(왼쪽)과 성인의 상(위), 그리고 광장의 풍경
ⓒ 이한철
베르니니와 미켈란젤로의 결정체

성 베드로 광장은 교황 알렉산드로 7세의 계획에 따라 베르니니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장에 나서게 되면 제일 먼저 높이 25m에 이르는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양 옆에는 분수 2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바로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굵고 강직한 도리아식 기둥 284개가 반으로 나뉘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예수가 인류를 향해 양팔을 벌려 감싸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 교황의 신변을 책임지는 스위스 출신의 용병들과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분수
ⓒ 이한철
특히 열주회랑 위에는 140개의 성인의 상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놓여있는데 이는 베르니니와 그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다. 십자가와 성격책 등을 든 성인의 모습은 하나 같이 성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돼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교황을 호위하는 '교황청 근위병'이라고 한다. 특히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그들의 복장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것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미켈란젤로의 활약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의 모습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기풍이 넘치지만 성 베드로 성당 내부와 비할 바는 아니다. 총 5개로 구성된 청동문을 지나 성당에 들어서게 되면 호화롭고 화려한 풍경에 한동안 멍한 기분과 함께 탄성이 절로 나온다.

▲ 성 베드로 성당의 입구(왼쪽)를 통해 베드로 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가 눈에 들어온다.
ⓒ 이한철
최대 길이가 211.5m에 달하고 평균 높이가 45m나 되는 이 거대한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기록돼 있다. 예술의 최대치를 한데 집결시켜놓은 이곳을 바라보며 이 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성당의 건축은 브라만테의 주도로 시작돼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물론, 세 사람이 다 만들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다른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겠지만 역사는 핵심 인물만을 기억하는 법이니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이해하는 수밖엔 없다.

▲ 베드로 성당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이처럼 돔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장관을 이룬다.
ⓒ 이한철
성당 안에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보존돼 있어 성당임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서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구 오른편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으며 베로니카상과 헬레나상, 론지누스 상 등 다양한 조각 작품과 모자이크화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하늘과 이어진다는 그 곳은?

▲ 청동 기둥 뒤쪽으로는 교황의 제단이 있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 이한철
특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동상의 발을 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동상이 다름 아닌 베드로의 청동상이다. 베드로의 발을 문지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당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베르니니가 만든 '발다키노'일 것이다. 성당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성당에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청동에 금을 입혔다는 '발다키노'는 하늘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뒤쪽에 있는 교황의 제단을 둘러싸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베드로의 유골이 묻혀 있는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유명하다. '발다키노' 뒤쪽 교황의 제단을 보면 돔 형태의 천장 창문으로 비친 햇빛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비치고 있다. 이것을 보며 천국으로 향하는 천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돔 형태의 천장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된 것인데 판테온의 돔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높이 있어 작아 보이기까지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라고 한다.

고스란히 담긴 가톨릭의 역사와 전통

성당 지하에는 역대 교황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교황의 묘실'이 있다. 교황 시신은 영구 보존하는 전통에 따라 방부 처리를 한 뒤 성당 지하에 묻게 되는데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를 비롯해 최근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에 묻혀 있다.

특이한 점은 교황 '성 비오 10세'의 유해는 지상에 공개돼 있다는 점이었다. 얼굴과 손은 가려져 있었지만 수정으로 된 관에 모셔져 있는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황 '성 비오 10세'는 제 257대 교황(1903~1914)으로 서기 1000년 이후 성자에 오른 5명의 교황 중 한명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교황의 본거지답게 가톨릭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본인의 종교에 따라 시각이 다르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교황 ‘성 비오 10세’의 유해
ⓒ 이한철


▲ 성수가 들어있는 통을 사이에 두고 있는 천사상의 모습이 이채롭다.
ⓒ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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