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2 편)

(2006` 6, 17 ~ 6, 25)

눈 인 천산산맥 연봉들 다가와

홍산 정상에 세워진 날아갈 듯한 누각 원조루(遠眺樓)에 오른다.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멋진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높이를 자랑한다. 또 이 고원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암반의 민둥산과 저 멀리 흰 눈을 머리에 가득 인 천산산맥의 연봉들이 맑은 하늘아래서 아련하게 다가든다. 그 옆 바위 위엔 1788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9층 진용탑(鎭龍塔)이 외로이 버텨 의연하게 품새를 뽐낸다. 그 아래쪽엔 아편전쟁의 영웅이며 수리시설의 귀재인 청조 임칙서(林則徐: 1785 ~ 1850)의 서있는 돌조각상이 자리 잡았다. 임칙서가 이곳의 수리시설에도 관여했기에 그 공로로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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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 정상부근에 서 있는 진용탑. 붉은 산에 붉은 벽돌로 세워진 9층 탑이다. 멀리 뒷편으론 붉은 민둥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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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에 세워진 아편전쟁의 영웅이며, 수리시설의 전문가 임칙서의 흰 돌조각상이 서있다.)

이 산은 암석이라 원래 벌거숭이다. 녹화사업으로 나무를 많이 심어 제법 짙푸름을 갖췄다. 누각이나 정자, 갖가지 조각상을 갖추고, 동물원 시설도 만들어 산기슭 일대를 시민들이 즐기는 공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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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 인민광장. 중국공산당을 기리는 높은 석조물이 우뚝 서있다. 이 광장 주위엔 고층빌딩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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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광장 한 쪽엔 부채춤으로 몸을 단련하는 여성들이모여 한창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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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광장의 또 다른 구석엔 여성들이 둘러앉아 포거놀음에 빠져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못했다. 드럼통을 의자 대용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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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가 함께 포거놀이를 즐긴다. 노소 동락 게임임을 대변해 주었다.)

우린 인민광장으로 옮겼다. 너른 광장 사방은 높은 빌딩들이 둘러쌌다. 광장엔 중국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별을 새긴 높은 비석모양의 돌조각이 자리했다. 일행은 촬영에 열중했다. 광장 주변 벤치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포커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부채춤으로 체력을 단련했다. 포거놀이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한 데 어울리거나 아니면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모여 배팅에 정신을 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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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카펫을 만들고 있다. 남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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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카펫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녀의 손놀림이 얼마나 재빠른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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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한 카펫을 진열해 관광객을 맞고있다. 고급품은 1천 5백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아직도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다. 우린 카펫과 실크를 짜 판매하는 상점으로 인도됐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카펫 짜는 현장을 봤다. 그리곤 상품을 소개받았다.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멋진 제품도 있다. 일행 중 한 분이 기백만 원하는 엄청 품격 높은 카펫 한 장을 구입했다. 그 분은 서울근교에 펜션 두 채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 분이 삼십 명의 체면을 세웠던 셈이다.


‘파오’에서 석양 붉은 불기둥을~

점심 먹곤 바로 남산목장(南山牧場: 난샨무창)으로 이동했다. 천산산맥 북쪽 자락에 펼쳐진 목장지대다. 우루무치에서 남쪽으로 75km 떨어졌다. 차량으로 한 시간을 좀 넘겼다. 도로 좌우 산야와 계곡엔 나무와 풀이 점점이 나있어 그렇게 삭막하진 않았다. 농가도 띄엄띄엄 보였다. 계곡엔 높은 산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농수로를 채웠다. 자갈밭에 심겨진 농작물은 이 물로 자랐다. 이름 모를 야생화도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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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목장 가는 길에 자리한 농가들. 흙벽돌 집이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지붕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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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된 농촌주택. 시멘트 건물이다.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천산의 눈 녹은 물을 관개수로로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높은 산들이 시야에 다가왔다. 산 한쪽 면은 전나무들이 푸른 숲을 이루고, 다른 쪽은 푸른 목초지다. 목초지 중간 중간에 카자흐 족 가옥 파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파오는 흰 천으로 둘러친 몽고의 겔과 흡사했다. 그 뒤편으론 말 떼가 풀 뜯기에 여념이 없다. 높은 봉우리는 암벽으로 이뤄진 산들이다. 암벽에도 전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란다. 참 별천지다. 마치 몽골 울란바토르 근교 국립공원 ‘테렐지’와 흡사해 그곳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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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목장의 푸른 목초지에 세워진 카자흐 족의 주택 '파오'. 몽골의 '겔'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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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가 핀 산기슭. 그 뒤쪽으론 천산산맥의 고봉들이 눈을 잔뜩 머리에 이고 있다.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를 듯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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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족이 마권을 파는 건물. 이곳에 말타기 체험을 위해 마권을 사 마부들과 함께 체험에 들어간다.)

이곳은 카자흐 족 집단부락이다. 카자흐 족은 위구르족과 마찬가지로 이목구비가 뚜렷해 외모로도 한족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곳 파오에서 하루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테렐지’ 겔에서 석양 붉은 불기둥을 보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이 언뜻 일었다. “여기서 해넘이를 봤으면~”하는 마음 간절했다. 일정에 쫓겨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소망은 더 간절해졌다.

그곳과는 기온이 달랐다. 다 같은 유월이면서도. 여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오싹했다. 점퍼를 빌려주는 상인들이 차량 주변에 몰려들었다. 준비한 옷이 없는 분은 두터운 점퍼를 빌려 입어야했다. 곧 말 타기 체험에 들어갔다.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나니 마부들이 나타나 자기 번호를 찾았다. 나의 마부는 30대 초입의 카자흐 여성이다. 얼굴에 기미가 끼었고, 가무잡잡했으며, 좀은 야위었지만 미인이다. 같은 값에 다홍치마라고 기분이 좋았다.


높새바람, 높은 산 맞아 비 뿌려

관광객을 말에 올려놓곤 그 뒷자리에 마부가 함께 타 산길을 오른다. 물살 센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돌무더기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말고삐는 마부가 잡았다. 내가 탄 말은 너무 야위었다. 오르막을 오를 땐 퍽 안쓰러웠다. 속도가 제대로 나올 리 만무했다. 카자흐 여성은 고삐를 움켜쥐고 채찍으로 후려친다. 그를수록 말이 더 안쓰러워졌다. 난 그녀에게 채찍을 뺏곤 대신 2달러를 손에 쥐어줬다. 그러자 마부는 뒤따라오던 다른 마부에게 뭔가 얘기를 나눴다. 뒤따라온 말엔 가이드 장진영양이 탔다. “쉼터에 가서 말을 바꾸기로 했다”고 통역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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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 모양의 철로 만든 다리. 그 위에 카자흐 족 모델 아가씨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뒷 편은 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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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암반의 모습이 여성의 둔부와 흡사하다. 엄청난 량의 눈 녹은 물이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25분정도 계곡으로 올라 쉼터에 닿았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천산산맥을 넘는 높새바람이 높은 산맥을 맞아 팬(fan)현상을 일으키며 비가 되어 대지를 자주 적셔주기도 한단다. 비를 뿌려버린 바람은 높은 산을 넘어선 건조해져버려 사막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이때도 높새바람이 후드득 비를 뿌린 것이다. 말에서 내려 도보로 계곡을 오른다.

폭포가 있단다. 꼴찌로 도착해 오르니 이미 먼저 도착했던 친구들은 폭포를 보고 내려오면서 마주친다. 폭포는 울창한 전나무 숲에 꼭꼭 숨어있다. 홍교처럼 만들어진 철로 만든 구름다리를 건너자 흰 포말과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폭포의 외관은 마치 여성의 가랑이를 연상시켰다. 수직으로 이뤄진 바위봉우리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내리 뻗친다. 물론 눈 녹은 물이다. 수량이 엄청 많았다. 폭포 높이는 20여m에 달했다.

이곳저곳에서 폭포를 찍었다. 아쉬웠다. 날이 맑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반드시 무지개가 피어올랐을 텐데. 영롱한 오색빛깔 대신 성긴 빗방울이 가끔씩 후드득 스친다. 그 때마다 몸이 오싹해진다. 좀은 을씨년스러웠다. 다시 쉼터에서 기다리던 말을 탔다. 바뀐 말이다. 살이 찌고, 힘이 좋았다. 내려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했다.


‘톤라’ 통해 별 헤일 수 있다면~

다 같은 말 타기 체험이지만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그 기분은 낼 수 없었다. 말 등에 올라 바라본 몽골의 초원은 정복의 대상이며, 질주하고픈 충동이 절로 인다. 탁 트인 평원은 저절로 말고삐를 당겨 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여긴 신강지방이 아닌가. 그 지방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을 수밖엔.

일행은 파오가 모여 있는 카자흐 족 주거지역을 찾았다. 한 파오에 들어가 봤다. 내부 또한 겔과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 하루 밤 묵으면서 톤라(천장의 숨구멍 통)를 통해 비쳐진 수많은 별들을 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다 잠이 들어 으스스한 어둑새벽을 맞을 순 없을까? 찬란한 아침 햇빛은 이 푸른 목초지를 어떤 모양으로 바꾸고 말까? 이런 환상에 젖다가 그만 카자흐 족이 권하는 말 젖술도 받아먹지 못하고 말았다. 또 그들의 생활상을 느껴본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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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구경하고 내려가면서 말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해 봤다. 주제넘은 표정이 역력해 몇 번 망설이다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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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족의 파오가 늘어선 지역에 들렀다. 파오 톤라를 통해 밤 하늘의 별을 헤어보는 상상에 빠지고 만다.)

장준환 이사는 몽골에서 말 타기로 아픈 허리를 고쳤다. 그 때 복띠를 허리에 두르고 억지로 말에 올랐으나 2시간 30분 동안 말을 타고나선 바로 복띠를 풀었다. 이번에도 말 타기에 앞서 자랑이 대단했다. “말은 이렇게, 저렇게, 타야한다”면서 많은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랑 끝에 쉬슨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그는 이 번 말 타기로 안상(鞍傷)을 입었다. 룸메이트 곽청언 사장이 그의 엉덩이에 약을 발라 주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스스로 약을 바를 수 없는 곳에 살갗이 헤어졌으니깐. 더운 날씨에 며칠 동안 단단히 고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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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1 편)

(2006‘ 6, 17 ~ 6, 25)


이 여정 계획은 나의 도반 홍기익 사장(<주> 홍기산업 대표이사)과 4월 중순에 이미 잡은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실크로드가 아닌가. 홍 사장은 사업가답게 여러 여행사 상품을 비교 검토하는 세밀함을 더했다. 5월 중순 최종결론은 한진관광<주>을 택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리곤 동반자 모으기 작업에 들어갔다.

< 중략>

서해 갯벌 장엄한 낙조에 홀려

면세지역에서 홍 단장은 밸런타인 17년 산 세 병을 단장 자비로 샀다. 우루무치에서 돈황으로 가려면 밤 열차를 타야하기에 이 때 마실 별도의 술인 셈이다. 홍 단장과 룸메이트 이정길 사장(이조황실 제탕원)은 조그마한 백을 덤으로 받아 이 술을 챙겼다.

중국 우루무치 행 대한항공 KE 883편은 오후 8시 10분 이륙했다. 탑승하기 전 대합실에서 인천 갯벌 위에 벌어진 장엄한 해 내림을 봤다. 퍼뜩 권지예의 ‘꽃게 무덤’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넓은 갯벌엔 무리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하늘도 온통 함초 잎 빛깔이다. 해는 이미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은 갈치 빛으로 창백하게 반짝인다. 이글이글 불타는 생피 덩어리 같던 석양이 지고 난 후 수평선 언저리는 점점 검붉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랬다. 정말 그랬다. 갯벌에서의 일몰. 그간 서해에서 해 내림을 여러 번 봤다. 그 때엔 별 감흥이 없었다. 난 뭔가에 홀린 듯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덤으로 장엄한 갯벌 위 일몰을 보았다. “그래서 여행이란 할 만한 것이지~~~”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우루무치까지 비행시간은 네 시간 반가량 걸렸다. 세 시간을 넘겼을까? 창 쪽에 자리한 G교수님이 나에게 “와암 선생님!”하며 손짓한다. 중앙통로 쪽 좌석에 앉았던 난 창가로 다가갔다. “저 별 좀 보세요.”라고 왼쪽 하늘을 가리킨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밤하늘은 온통 별들로 현란했다. 별들이 쏟아낸 빛은 현연(泫然)했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줄줄 흘러내린 눈물자국처럼. 천산산맥 위일까? 아니면 곤륜산맥을 지나는 하늘일까? 상념은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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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에서 우리 일행이 묵은 현대식 건물인 은성대주점. 5성급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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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100m도 안떨어진 대로변이 이렇게 지저분하다. 만두를 찌는 솥에선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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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간단한 과일 등을 실어나르는 삼륜오토바이가 대로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이 없지만 그들의 표정만은 느긋해 보인다.)

우루무치 공항에 닿은 시간은 새벽 0시 30분경. 입국수속을 거치고 짐 찾아 대합실로 나서니 새벽 1시가 지났다. 현지 가이드와 미팅 후 숙소 은성대주점에 들어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2시가 훌쩍 지난 시각이다.

우루무치(烏魯木齊:오노목제, Urumqi). 중국 북서쪽 끝에 있는 성(省)급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신강유오이자치구, Xinjiang Uygur)의 주도(主都)다. 인구 2백 20만의 큰 도시다. 천산(天山)산맥의 북쪽 기슭 해발 915m의 고원에 위치했다.


(우선 신장웨이우얼자치구(Xinjiang Uygur)를 간략하게 적는다.

면적이 한반도의 여섯 배인 164만 6900㎢로 광활한 지방이다. 면적에 비해 인구는 2.000만 명에 불과하다.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인 산맥이나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발 평균 3.000m가 넘는 톈산(天山)산맥이 중앙을 동서로 뻗어 내려 남과 북으로 양분시켰다.

남부신장의 중앙지역엔 한반도의 2.3배에 가까운 50만㎢가 넘는 타림(塔里木)분지가 끝없이 펼쳐진데다 곤륜(崑崙)산맥,아얼진(阿爾金)산맥, 카라코람산맥 등이 첩첩이 둘렀다.

이 타림분지 중앙엔 한반도의 1.7배에 달하는 37만㎢의 타클라마칸사막(Takla Makan Des.)이 자리했다. 이 사막은 높이 100m 안팎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砂丘)으로 이뤄졌다. 이 모래언덕에 쌓인 모래는 톈산산맥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날려 인간은 물론 동물의 통행도 방해해왔다. 타클라마칸사막은 위구르어(語)로 “들어오면 나올 수 없다”라는 뜻을 가진단다. 즉 이 사막은 ‘죽음의 땅’이란 뜻일 게다. 겨울엔 혹한이, 여름엔 혹서로 이름난 곳이니깐.

이 사막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가장 낮은 지대(해발 760m)엔 제주도의 1.5배에 달하는 뤄부포호(羅布泊湖)가 자리한다. 뤄부포호는 큰 소금호수였으나 1964년부터 말라 소금밭(鹽灘)으로 뒤덮인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요즘은 지표면의 소금밭 면적이 경상북도 보다 더 넓은 2만㎢에 달한다고 한다. 이 부근에 중국의 핵연구시설과 실험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니 지금은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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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성 지도를 카페트에 새겼다. 참 멋스런 그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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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부신장의 중심부는 중가리아(準噶爾)분지로 사막과 초원지대다. 톈산산맥 여러 봉우리 사이엔 산림과 수초가 무성하다. 특히 투루판(吐魯蕃)분지에는 해면하(海面下) 154m인 아이딩호(愛丁湖)가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해발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한민족(漢民族)이 예로부터 ‘서역(西域)’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동서교통의 요충지다.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인데 북부신장은 연 강우량 150 ~ 350㎜, 남부신장은 100㎜이하이다. 기온의 연교차는 30°가 넘는다.

예부터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엔 도시국가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대부분 물과 목초를 찾아 떠돈 유목민족들이다. 청나라 때인 1884년 이후부터 신장성이 되었으나 1995년 위구르족이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넘기에 위구르족 자치구가 됐다. 위구르족 다음으론 한족, 카자흐 족이 차지한다. 그 외도 후이 족(回族), 키르기스 족, 몽골 족, 타지크 족, 우즈베크 족, 타타르 족, 시보 족, 다호르 족 등이 자치현을 형성하고 있다.

광물자원과 석유매장량도 많다. 광활한 초원으로 목축업이 큰 몫을 차지하며, 목화나 포도의 수확량도 엄청나다. 란신(蘭新)철도가 통과하며, 간쑤성(甘肅省), 칭하이성(靑海省), 네이멍구(內蒙古), 티베트를 연결하는 육로가 건설돼있다. 우루무치 투루판 등 몇 개 도시엔 공항도 있어 다른 도시와 이어진다.)


끊임없는 쟁탈대상지 우루무치

이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주도가 바로 우루무치다. 우루무치는 ‘투쟁’ 또는 ‘광대한 목초지’란 뜻을 지닌 말이다. 이곳은 중가르부(Jungar)라는 부족과 후이족(回族)이 예부터 뺏고 뺏기는 치열한 싸움을 벌려왔던 곳이라고 전한다. 7세기 무렵 중원을 통일한 당(唐)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쳐 북정도호부(北庭都護府)를 설치했다. 북정도호부가 톈산북로(天山北路)를 손아귀에 넣으면서 이곳을 정주(庭州)라 불렀다.

그 뒤 오랫동안 한족의 힘이 미치지 않자 몽골, 투르크계(系) 등 여러 유목부족들 간의 쟁탈대상지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 청(淸) 건륭제가 중가르부를 평정하고, 북쪽에 새로운 한성(漢城)을 건설해 디화(迪化)라고 불렀다. 1880년대 초엔 러시아 세력권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1882년 신장성이 설치되면서 성도(省都)가 됐다. 중공정권이 수립되면서 ‘이민족을 통치한다.’는 뜻이 내포된 ‘디화’란 이름을 없애고, 원래의 우루무치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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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에 올라 우루무치 시가지와 이를 둘러싼 천산산맥 눈 덮인 고봉들을 찍어봤다. 멀리 구름 아래흰눈을 인 고봉준령들이 보인다.)

자동차도로의 중심지이며, 란신철도로 룽하이선(隴海線)과 연결되어 중국 동안 롄윈항(連雲港)에 닿는다. 신장지구의 경제, 문화, 교통, 군사의 중심지다. 신장의과대학이 있다. 양모 피혁이 발달됐으나 요즘은 농작물 수확이 급증하고, 전력 면방직 시멘트 제분 강철 자동차수리공업 등이 발달한 도시다.


모닝콜 울리기 한 시간 반전인 아침 6시 30분에 눈이 떨어졌다. 룸메이트 권정웅 부장(한전 출신)을 두고 홀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구경도 했다. 도로는 넓고 시원스럽게 뚫렸다. 인근에 과일도매시장이 있었다. 이 도시 주변에서 생산된 과일들은 모두 이 시장의 경매를 통해서 팔렸다. 수박과 엄청나게 큰 멜론 등이 주종이다. 수박은 타원형이며, 멜론은 노랑빛깔이 났다. 농민들은 이들 과일을 자동차에 싣고 와 경매장에 넘겼다. 이른 아침이지만 농민들과 상인들로 경매장은 아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넓은 주차장도 만 차로 넘쳐났다.

돼지고기 없고 양 닭고기 판 쳐

시장 입구엔 사람을 태우는 삼륜오토바이 여러 대가 대기해 손님을 기다렸다. 운전자들에게서 지루하거나 초조한 표정은 찾을 수 없고, 말 그대로 느긋한 기다림을 즐기는 듯 했다. 길거리 음식점에선 만두를 찌는 듯 솥에선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그리고 한 편에선 삽을 어깨에 멘 노동자들이 줄지어 리어카 꾼을 앞세우고 작업장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또 호텔 앞 백화점엔 엄청난 수의 현수막이 건물을 가렸다. 현수막도 형형색색이다. 아마 바겐세일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지 않아 백화점 구경을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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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삽과 곡갱이를 어깨에 걸치고 노동현장으로 가고있다.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앞장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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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멜론이 과일시장에 출하되고 있다. 누렇게 익은 멜론 크기가 수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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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매시장 전경. 새벽인데도 농부와 상인들로 도매시장은 돗대기판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친구들도 정문입구로 나와 바깥구경 중이다. 호텔 객실 수가 많아 식당도 붐볐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몇 가지 음식만 골랐다. 맛을 보니깐 의외로 간이 맞았다. 중국의 독특한 향료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 음식이라면 먹을거리엔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위구르족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신 양고기와 닭고기 판이다. 아세아대륙에서 바다와 가장 먼 거리의 도시인지라 해물은 거의 찾을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생 다시마 무침이 찬으로 올랐다. 긴 올로 잘게 쪼개어 짭조름하게 무친 것이 참 별미다. 찰지지 않은 밥은 날아갈 것만 같아 손대지 않았다. 대신 쌀죽과 만두로 배를 채웠다.

우루무치 첫 날 일정은 오전 홍산 공원과 인민광장을 둘러보고, 오후엔 남산목장으로 가 말 타기 체험과 푸른 초원에서의 자유 시간을 가진다. 저녁을 먹곤 돈황으로 가는 밤 열차를 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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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의 표지석.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가꾸어놓았다.)

홍산(紅山)은 시내 중심지에 자리했다. 당나라 불교성지였으나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동서로 길게 뻗은 이 산은 주봉이 해발 1.391m로 해발 951m 고원지대에 건설된 도시의 사방을 둘러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아침과 저녁나절 암벽이 햇빛을 받으면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홍산 이라고 불린다. 또 산의 형세가 맹호가 엎드린 모양과 흡사해 호두산(虎 頭山) 또는 홍산취(紅山嘴)라고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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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문화 탐방(1) : 우르무치 시(1)

현대적인 우르무치 시

현대적인 우르무치시

야시장

야시장

이슬람 사원 : 이곳은 대분의 사람들이 위그루 족으로 이슬람교를 믿음

주식인 낭 : 크기와 모양이 피자와 비슷하며 옥수수로 만들며 구수합니다.

낭굽는 화덕 : 밑에 석탄으로 불을 피워 옹기의 벅에서 굽습니다.

호박처럼 생겼으나 맛은 수박처럼 답니다.
실크로드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대부분이 사막이며 그 규모가 너무나 커서 전세 차량을 이용해서 전체적으로 간단히 보려고 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 될 것입니다.
나는 이곳을 우르므치에서 시작에서 돈황까지 약 일 주일 거쳐서 다녀왔습니다. 사진마을에 동참한다는 마음에서 가는 곳마다 풍경과 풍물을 작품성보다는 사실성에 접근하여 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찍을 수가 없었고, 어떤 사진은 그곳의 풍경이나 풍물을 제대로 담지 못했으며, 좋은 가이더를 만나지 못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따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국의 풍경과 풍물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가 설명하는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크로드는 천산산맥과 남으로는 곤륜산맥 사이에 타크라마칸 사막, 고비사막에 위치에 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라비아나 서양의 상인들이 향료나 보석 등을 가져와서 이 길을 통해서 서안에 가서 중국의 비단이나 도자기를 물물교환을 하던 길입니다.
이 길을 실크로드라고 부르게 된 것은 독일의 역사학자 이히트 호펜이 처음으로 실크로드라고 부르면서부터입니다.
이곳을 효과적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1. 사전에 기본적인 상식이 있어야 함(실크로드에 대한 간단한 개략서 정도는 읽고 가야 도움이 됨.보는 것의 대부문이 폐허입니다.)
2. 좋은 가이더를 만나야 함(설명을 잘해 주어야 함)
3. 여행사를 택할 경우 좋은 여행사를 택해함(여행사마다 관광하는 코스가 다를 수 있음)
4. 사막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되어함(장거리 차를 타야하므로 힘 듬 : 노약자는 절대 여행 금지)
5. 가는 곳 마다 다른 소수 민족이 살므로 그곳의 음식이나 풍습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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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문화 탐방(2) : 우르무치 시(2)

노천식당 : 규모가 매우 크며 식사를 하면서 우구르족의 전통 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우리차 : 자랑 스러웠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우리 차 : 자랑 스러웠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도 취해주고


사막은 끝없이 이어지고

저멀리 천산 산맥의 만년설이 보입니다.
우르무치 시는 신강 위그루 자치구의 수도이며 인구는 약 2백만입니다.
신장 위그루 자치구는 남쪽으로는 티벳, 서쪽으로는 구소련, 북으로는 몽고와 인접한 우리 남한의 약 16배가 되는 거대한 지역입니다.
이곳은 대부분이 사막 지역이며 오아시스의 규모에 따라서 도시나 촌락으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사막 지역이므로 기후는 더우나 건조 지역이므로 땀이 나지 않고 그늘에 가면 시원하며 해가 없으며 서늘합니다.사람들의 외모는 아랍인들과 비슷하며 친절합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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