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3 편)

(2006` 6, 17 ~ 6, 25)

12시간 달릴 4인 1실 밤 열차 타

우루무치 시내로 귀환해 저녁을 먹고 서둘러 역으로 갔다. 역사는 3층의 현대식 건물로 말끔했다. 우린 짐을 들고 침대칸 대합실로 갔다. 퍽 고급스러웠다. 일반대합실과는 격이 달랐다. 4인 1실 침대칸을 탔다. 짐은 포터에게 맡겼다. 침대칸까지 가져다 줬다. 우리 일행은 세 방에 분산됐다. 남성은 두 방에, 그리고 G교수와 송정화씨는 그 옆방에 다른 팀 여성 두 분과 들었다. 그 유명한 돈황(敦煌 : 둔황 : Dunhuang)으로 가기 위해 유원(柳圓)까지 12시간 열차를 타야했다.

우리가 탄 열차는 란신철도(蘭新鐵道 : 蘭州 ↔ 烏魯木齊(우루무치))다. 즉 우루무치에서 감숙성 성도 란주(蘭州)를 왕복하는 열차(거리 1.137km)다. 유원 역은 두 도시의 거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따라서 우루무치에서 유원까지는 600km 내외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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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 역사 전경. 멋진 현대식 건물이다. 역사 앞 광장엔 많은 차량과 인파들이 붐빈다. 신강 제일의 도시에 걸맞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방배분도 홍 단장 몫이다. 한 방엔 주류파 네 명이, 다른 방엔 조금 약한 네 명으로 나눴다. 주류파는 홍 단장, 주선 구자일 사장, 권정웅 부장, 제동식 사장이다. 난 술이 약한 쪽으로 분류돼 이정길 사장(이조황실제탕원 운영. 동기회 총무), 장준환 이사(전 한국자동차보험<주> 영남본부장), 곽청언 사장(대구 서문시장 상인연합회 회장)과 한 방에 들었다.

주류파 방에선 짐을 챙긴 것이 아니라 술좌석 마련이 바빴다. 물론 우리방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열차는 오후 9시에 출발했다. 아직도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


(중국 성(省)과 큰 도시가 포함된 지도)

사막의 시간과 공간 느낄 사이도 ~

시인 박청륭의 ‘사막’이란 시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날이 저물면서 어두워진 사막엔/

내려앉은 별빛뿐이었다/

흐르는 유성과 유성 사이/

어느 별빛은 굵고 가는 철골이 되었다/

칠흑의 어둠을 뚫고 소리하나가/

사막을 가로질러갔다/

소리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빛이었다/

이튿날 아침 사막 가운데/

알루미늄 빔으로 얽힌 은빛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시인의 글처럼 곧 사막엔 초롱초롱한 수많은 별빛들이 내려앉겠지. 그럴 것이다. 그 곳엔 오직 별빛뿐일 것이다. 그 별빛 보면서 기도하련다. 고난과 애증 질시, 떠남과 방황, 절망과 한숨, 눈물과 피, 울부짖음,...... 이들을 멀리 보내버리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막이라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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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일출이 시작됐다. 높은 모래산 위로 붉은 용광로가 불쑥 떠올라 주위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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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해돋이는 시시각각 사물을 변화시키는 듯 했다. 사막에 철로가 놓이면서전기를 공급하는 전선도 함께 깔렸다. 전선을 받드는 높은 철탑이 아침햇살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드릴 여유도 주지 않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두 방 모두 술판이 벌어졌다. 주류파 방에선 양주를 따놓고 마시면서 우리 방 친구를 불러댔다. 그 땐 우리 방에도 양주 몇 순배가 돈 뒤다. 주류파와 반 주류파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잔도 뒤섞인다. 폭탄주도 돌았다. 하긴 바깥은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아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으니 술 마실 일 뿐이었다.

송정화씨와 Y교수님도 우리 방으로 호출됐다. 그녀들도 권에 못 이겨 양주잔을 받아 마실 수밖엔. 두 방 인원이 뒤섞이면서 술판은 더욱 무르익어갔다. 침대칸을 모두 우리 일행들이 차지했으니깐 시끌벅적해도 큰 흉이 될 수 없었다. 술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여성 두 분과의 서먹함도 그만 사라져버렸다.


새벽으로 이어진 술판에 노래까지

얼큰하게 취기가 돌면 노래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먼저 불렀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이 곡은 얼큰해져 불러야 제 맛이 나지 않는가? 얼큰해야만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가슴이 찡해지는 것 아닌가? ‘조선 블로그’의 어느 분은 이 노래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한(恨) 서린 상복(喪服)색깔 밑 대궁이 안을 통과하는 듯한 목소리로 서럽게 부르는 그 노래”라고 말이다. 물꼬가 터지자 노래가 이어졌다. 끝내는 Y교수님도 늙은이들의 권유에 못 이겨 조용히 노래(제목이 기억나지 않음)를 불렀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술판은 새벽으로 이어졌다. 양주는 물론 소주도 엄청 비웠다. 곽 사장과 난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둘 다 몸집이 작아 오르내리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 사장과 장 이사는 180cm의 장신에다 체중도 키에 걸맞다. 난 이 둘에 비하면 왜소하다. 잠을 잔 시간이 몇 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모두가 취해야만 잘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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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사막을 비춘다. 기차의 속도에 따라 사막의 사구(沙丘) 모양도 자꾸 바뀐다.)

덜컹대는 열차의 움직임과 레일과의 마찰음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져 왔다. 목마름이 뒤따랐고. 베개 옆에 둔 물통을 열고 누운 채 몇 모금 마셨다. 취기가 잦아지는 듯 했다. 맞은 편 침대 위를 보니깐 그곳에 누워있어야 할 곽 사장 대신 장 이사가 누워있지 않은가. 장 이사를 깨워 “왜 위층으로 왔느냐?”고 물으니깐 “말도 말아라!”고 손사래 친다.

그럴수록 궁금증이 더 일수밖에. 자초지종은 이랬다. 장 이사, 그는 내 자리 아래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다리 위를 덮쳐 때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룸메이트 곽 사장이더란다. 그는 목이 말라 물 먹기 위해 2층에서 내려오다 굴러 떨어지면서 반대편 아래 침대를 덮쳤을 것이란 풀이다. 그 때까지 작취미성 상태라 그 자리에 눕혀놓고, 자신은 하는 수 없이 위층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붉은 해, 모래 달구는 용광로로

그리곤 그 때서야 “곽 사장 어디 부러진 곳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걱정했다. 어렴풋이 잠결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곽 사장 왈 “떨어지긴 했는데, 얼굴 만져보니 다친 데가 없어 그대로 잤다.”고 했다. 이 사장이 일어나 곽 사장의 사지를 만져보면서 아픈 곳을 물었다. 멀쩡했다. 옆구리가 조금 쑤신다고 했을 뿐이다.

참 천만다행이다. 골절상이라도 입었더라면 여행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돈황에는 의료시설도 형편없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했으니깐. 위층을 오르내리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곽 사장, 그는 키가 작으니깐 다리가 짧다. 맑은 정신에도 한 눈 팔면 헛발을 내디뎌 굴러 떨어질 수 있으니깐 말이다.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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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沙丘)의 모양이 바뀌는 건 바로 사막의 모양이 자꾸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사막의 모양도 천태만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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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공정이 시작된 모양이다. 목책을 둘렀고, 나무말뚝을 박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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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에 건설된 육로가 보인다. 그러나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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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모래산이 나타나고, 그 뒤론 바위산맥이 두르고 있다. 이 사막지대에 중국은 핵기지는 아니겠지만 또 다른 기지를 건설하는 모양이다. 작업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리고 있다.)

열차가 밤새 달린 길은 사막 위 철로다. 이 북새통 가운데 사막에는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평평한 모래밭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모래언덕(沙丘)으로 바뀌기를 거듭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구 위에 붉은 해가 돋기 시작했다. 사막에서의 일출,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꽃게 무덤’을 쓴 작가 권지혜라면 이 장관을 또 어떻게 묘사했을까? 난 글로 묘사할 능력이 없음에 통곡해야 했다. 마구 사진만 찍어댔다. 사막을 비추던 붉은 해는 이내 이글거리면서 모래를 달궈내는 용광로로 변했다. 복도엔 일행 중 여러 분이 나와 창문을 통해 이 장관을 놓칠세라 눈에 꼭꼭 담아 넣거나 아니면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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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역이 가까워 오자 일행은 침실 앞 복도에 짐을 내놓고 내릴 준비를 서둔다. 홍 단장(붉은 색 모자 쓴 분)은 단장답게 팀이 머문 방을 찾아 체크하고 있다.)

사막의 해오름이 끝나면서 우린 쓰린 속을 데워야했다. 사발라면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

시원한 국물을 마셔댔다. 그때도 취기는 다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도 술엔 도가 터인 모양이다. 모두 이순(耳順) 복판을 지난 나이란 걸 느낄 수 없을 만큼 찌든 얼굴이 아니라 웃음을 일게 했다. 이내 웃음꽃이 피었다. 열차는 시속 60km 이상을 달리는 듯 했다. 열기가 넘치는 모래밭과 사구는 끝없이 펼쳐졌다.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진다. 이날 나의 여행수첩엔 이렇게만 적혀있다. “계속 달린다. 끝없는 사막 위를 . . . . . ., 열차는 밤 세워 달렸고, 해가 떠도 또 달렸다.”라고.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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