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1 편)

(2006‘ 6, 17 ~ 6, 25)


이 여정 계획은 나의 도반 홍기익 사장(<주> 홍기산업 대표이사)과 4월 중순에 이미 잡은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실크로드가 아닌가. 홍 사장은 사업가답게 여러 여행사 상품을 비교 검토하는 세밀함을 더했다. 5월 중순 최종결론은 한진관광<주>을 택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리곤 동반자 모으기 작업에 들어갔다.

< 중략>

서해 갯벌 장엄한 낙조에 홀려

면세지역에서 홍 단장은 밸런타인 17년 산 세 병을 단장 자비로 샀다. 우루무치에서 돈황으로 가려면 밤 열차를 타야하기에 이 때 마실 별도의 술인 셈이다. 홍 단장과 룸메이트 이정길 사장(이조황실 제탕원)은 조그마한 백을 덤으로 받아 이 술을 챙겼다.

중국 우루무치 행 대한항공 KE 883편은 오후 8시 10분 이륙했다. 탑승하기 전 대합실에서 인천 갯벌 위에 벌어진 장엄한 해 내림을 봤다. 퍼뜩 권지예의 ‘꽃게 무덤’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넓은 갯벌엔 무리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하늘도 온통 함초 잎 빛깔이다. 해는 이미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은 갈치 빛으로 창백하게 반짝인다. 이글이글 불타는 생피 덩어리 같던 석양이 지고 난 후 수평선 언저리는 점점 검붉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랬다. 정말 그랬다. 갯벌에서의 일몰. 그간 서해에서 해 내림을 여러 번 봤다. 그 때엔 별 감흥이 없었다. 난 뭔가에 홀린 듯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덤으로 장엄한 갯벌 위 일몰을 보았다. “그래서 여행이란 할 만한 것이지~~~”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우루무치까지 비행시간은 네 시간 반가량 걸렸다. 세 시간을 넘겼을까? 창 쪽에 자리한 G교수님이 나에게 “와암 선생님!”하며 손짓한다. 중앙통로 쪽 좌석에 앉았던 난 창가로 다가갔다. “저 별 좀 보세요.”라고 왼쪽 하늘을 가리킨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밤하늘은 온통 별들로 현란했다. 별들이 쏟아낸 빛은 현연(泫然)했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줄줄 흘러내린 눈물자국처럼. 천산산맥 위일까? 아니면 곤륜산맥을 지나는 하늘일까? 상념은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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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에서 우리 일행이 묵은 현대식 건물인 은성대주점. 5성급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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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100m도 안떨어진 대로변이 이렇게 지저분하다. 만두를 찌는 솥에선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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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간단한 과일 등을 실어나르는 삼륜오토바이가 대로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이 없지만 그들의 표정만은 느긋해 보인다.)

우루무치 공항에 닿은 시간은 새벽 0시 30분경. 입국수속을 거치고 짐 찾아 대합실로 나서니 새벽 1시가 지났다. 현지 가이드와 미팅 후 숙소 은성대주점에 들어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2시가 훌쩍 지난 시각이다.

우루무치(烏魯木齊:오노목제, Urumqi). 중국 북서쪽 끝에 있는 성(省)급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신강유오이자치구, Xinjiang Uygur)의 주도(主都)다. 인구 2백 20만의 큰 도시다. 천산(天山)산맥의 북쪽 기슭 해발 915m의 고원에 위치했다.


(우선 신장웨이우얼자치구(Xinjiang Uygur)를 간략하게 적는다.

면적이 한반도의 여섯 배인 164만 6900㎢로 광활한 지방이다. 면적에 비해 인구는 2.000만 명에 불과하다.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인 산맥이나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발 평균 3.000m가 넘는 톈산(天山)산맥이 중앙을 동서로 뻗어 내려 남과 북으로 양분시켰다.

남부신장의 중앙지역엔 한반도의 2.3배에 가까운 50만㎢가 넘는 타림(塔里木)분지가 끝없이 펼쳐진데다 곤륜(崑崙)산맥,아얼진(阿爾金)산맥, 카라코람산맥 등이 첩첩이 둘렀다.

이 타림분지 중앙엔 한반도의 1.7배에 달하는 37만㎢의 타클라마칸사막(Takla Makan Des.)이 자리했다. 이 사막은 높이 100m 안팎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砂丘)으로 이뤄졌다. 이 모래언덕에 쌓인 모래는 톈산산맥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날려 인간은 물론 동물의 통행도 방해해왔다. 타클라마칸사막은 위구르어(語)로 “들어오면 나올 수 없다”라는 뜻을 가진단다. 즉 이 사막은 ‘죽음의 땅’이란 뜻일 게다. 겨울엔 혹한이, 여름엔 혹서로 이름난 곳이니깐.

이 사막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가장 낮은 지대(해발 760m)엔 제주도의 1.5배에 달하는 뤄부포호(羅布泊湖)가 자리한다. 뤄부포호는 큰 소금호수였으나 1964년부터 말라 소금밭(鹽灘)으로 뒤덮인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요즘은 지표면의 소금밭 면적이 경상북도 보다 더 넓은 2만㎢에 달한다고 한다. 이 부근에 중국의 핵연구시설과 실험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니 지금은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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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성 지도를 카페트에 새겼다. 참 멋스런 그림이 됐다.)

(

한편 북부신장의 중심부는 중가리아(準噶爾)분지로 사막과 초원지대다. 톈산산맥 여러 봉우리 사이엔 산림과 수초가 무성하다. 특히 투루판(吐魯蕃)분지에는 해면하(海面下) 154m인 아이딩호(愛丁湖)가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해발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한민족(漢民族)이 예로부터 ‘서역(西域)’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동서교통의 요충지다.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인데 북부신장은 연 강우량 150 ~ 350㎜, 남부신장은 100㎜이하이다. 기온의 연교차는 30°가 넘는다.

예부터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엔 도시국가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대부분 물과 목초를 찾아 떠돈 유목민족들이다. 청나라 때인 1884년 이후부터 신장성이 되었으나 1995년 위구르족이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넘기에 위구르족 자치구가 됐다. 위구르족 다음으론 한족, 카자흐 족이 차지한다. 그 외도 후이 족(回族), 키르기스 족, 몽골 족, 타지크 족, 우즈베크 족, 타타르 족, 시보 족, 다호르 족 등이 자치현을 형성하고 있다.

광물자원과 석유매장량도 많다. 광활한 초원으로 목축업이 큰 몫을 차지하며, 목화나 포도의 수확량도 엄청나다. 란신(蘭新)철도가 통과하며, 간쑤성(甘肅省), 칭하이성(靑海省), 네이멍구(內蒙古), 티베트를 연결하는 육로가 건설돼있다. 우루무치 투루판 등 몇 개 도시엔 공항도 있어 다른 도시와 이어진다.)


끊임없는 쟁탈대상지 우루무치

이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주도가 바로 우루무치다. 우루무치는 ‘투쟁’ 또는 ‘광대한 목초지’란 뜻을 지닌 말이다. 이곳은 중가르부(Jungar)라는 부족과 후이족(回族)이 예부터 뺏고 뺏기는 치열한 싸움을 벌려왔던 곳이라고 전한다. 7세기 무렵 중원을 통일한 당(唐)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쳐 북정도호부(北庭都護府)를 설치했다. 북정도호부가 톈산북로(天山北路)를 손아귀에 넣으면서 이곳을 정주(庭州)라 불렀다.

그 뒤 오랫동안 한족의 힘이 미치지 않자 몽골, 투르크계(系) 등 여러 유목부족들 간의 쟁탈대상지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 청(淸) 건륭제가 중가르부를 평정하고, 북쪽에 새로운 한성(漢城)을 건설해 디화(迪化)라고 불렀다. 1880년대 초엔 러시아 세력권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1882년 신장성이 설치되면서 성도(省都)가 됐다. 중공정권이 수립되면서 ‘이민족을 통치한다.’는 뜻이 내포된 ‘디화’란 이름을 없애고, 원래의 우루무치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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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에 올라 우루무치 시가지와 이를 둘러싼 천산산맥 눈 덮인 고봉들을 찍어봤다. 멀리 구름 아래흰눈을 인 고봉준령들이 보인다.)

자동차도로의 중심지이며, 란신철도로 룽하이선(隴海線)과 연결되어 중국 동안 롄윈항(連雲港)에 닿는다. 신장지구의 경제, 문화, 교통, 군사의 중심지다. 신장의과대학이 있다. 양모 피혁이 발달됐으나 요즘은 농작물 수확이 급증하고, 전력 면방직 시멘트 제분 강철 자동차수리공업 등이 발달한 도시다.


모닝콜 울리기 한 시간 반전인 아침 6시 30분에 눈이 떨어졌다. 룸메이트 권정웅 부장(한전 출신)을 두고 홀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구경도 했다. 도로는 넓고 시원스럽게 뚫렸다. 인근에 과일도매시장이 있었다. 이 도시 주변에서 생산된 과일들은 모두 이 시장의 경매를 통해서 팔렸다. 수박과 엄청나게 큰 멜론 등이 주종이다. 수박은 타원형이며, 멜론은 노랑빛깔이 났다. 농민들은 이들 과일을 자동차에 싣고 와 경매장에 넘겼다. 이른 아침이지만 농민들과 상인들로 경매장은 아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넓은 주차장도 만 차로 넘쳐났다.

돼지고기 없고 양 닭고기 판 쳐

시장 입구엔 사람을 태우는 삼륜오토바이 여러 대가 대기해 손님을 기다렸다. 운전자들에게서 지루하거나 초조한 표정은 찾을 수 없고, 말 그대로 느긋한 기다림을 즐기는 듯 했다. 길거리 음식점에선 만두를 찌는 듯 솥에선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그리고 한 편에선 삽을 어깨에 멘 노동자들이 줄지어 리어카 꾼을 앞세우고 작업장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또 호텔 앞 백화점엔 엄청난 수의 현수막이 건물을 가렸다. 현수막도 형형색색이다. 아마 바겐세일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지 않아 백화점 구경을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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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삽과 곡갱이를 어깨에 걸치고 노동현장으로 가고있다.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앞장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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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멜론이 과일시장에 출하되고 있다. 누렇게 익은 멜론 크기가 수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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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매시장 전경. 새벽인데도 농부와 상인들로 도매시장은 돗대기판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친구들도 정문입구로 나와 바깥구경 중이다. 호텔 객실 수가 많아 식당도 붐볐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몇 가지 음식만 골랐다. 맛을 보니깐 의외로 간이 맞았다. 중국의 독특한 향료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 음식이라면 먹을거리엔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위구르족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신 양고기와 닭고기 판이다. 아세아대륙에서 바다와 가장 먼 거리의 도시인지라 해물은 거의 찾을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생 다시마 무침이 찬으로 올랐다. 긴 올로 잘게 쪼개어 짭조름하게 무친 것이 참 별미다. 찰지지 않은 밥은 날아갈 것만 같아 손대지 않았다. 대신 쌀죽과 만두로 배를 채웠다.

우루무치 첫 날 일정은 오전 홍산 공원과 인민광장을 둘러보고, 오후엔 남산목장으로 가 말 타기 체험과 푸른 초원에서의 자유 시간을 가진다. 저녁을 먹곤 돈황으로 가는 밤 열차를 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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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공원의 표지석.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가꾸어놓았다.)

홍산(紅山)은 시내 중심지에 자리했다. 당나라 불교성지였으나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동서로 길게 뻗은 이 산은 주봉이 해발 1.391m로 해발 951m 고원지대에 건설된 도시의 사방을 둘러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아침과 저녁나절 암벽이 햇빛을 받으면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홍산 이라고 불린다. 또 산의 형세가 맹호가 엎드린 모양과 흡사해 호두산(虎 頭山) 또는 홍산취(紅山嘴)라고 한단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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