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에도 '천지'가 있네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실크로드 여행 22] 우루무치 - 천산
조수영(sy0707) 기자
해발 5천 미터에 자리 잡은 천지(天池)

▲ 해발 5천 미터에 자리 잡은 천지
ⓒ 조수영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아침 일찍 천산으로 출발했다. 천산 위에 자리 잡은 천지의 날씨는 춥고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겹겹이 따뜻한 옷을 입었다. 천산은 시내에서 190km 거리, 버스로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이곳 신강의 수원이 되는 천산산맥은 카스에서 우루무치로 이어진다. 백양나무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도로의 저편에는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쭉 뻗은 도로는 박격달봉(博格達峰: 보고타봉이라고도 부른다)으로 향한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초원은 사라지고 황량함이 더해간다. 한참을 달렸더니 맑은 시냇물이 나타났다. 초원에는 양떼들도 보인다. 멀리 눈 덮인 천산산맥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좀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서니 숲이 우거지고 이름모를 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우루무치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설산은 천산의 박격달봉이다. 해발 5445m의 이 봉우리에는 늘 만년설이 빛난다. 박격달봉의 아래 해발 1980m 되는 곳에 큰 호수가 하나 있다. 이 호수가 천지다. 우리 백두산 천지와 같은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천지는 3천 년 전 주나라 목왕이 여덟 필 준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 지방을 주유할 때 여신 서왕모가 성대한 환영연회를 베푼 장소라 한다. 백두산 천지와 같은 이름의 이곳의 천지는 면적은 그보다 작지만 두 곳 모두 성스러운 장소로 느끼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정상까지 이어진 케이블카

▲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 조수영
버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케이블카나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아침 일찍 서두른 덕분에 넓은 주차장이 한적하다. 그러나 여름철이 관광시즌이라 오후에는 자리가 없다고 한다.

천지의 입장료에는 왕복 버스요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케이블카를, 내려오는 길은 속도가 좀 더 빠른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두 명씩 차례로 케이블카를 타고 천지로 오른다. 약 200대의 케이블카가 차례로 오른다.

고도에 맞게 가문비나무 군락이 내려다보인다. 간혹 산등성으로 직접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우리를 감시하듯이 매가 주변을 빙빙 날고 있다.

케이블카에 내려서도 20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야 천지가 보인다. 그 사이에 상점과 식당이 있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낭을 굽는 사람들, 양고기를 손질하는 사람들, 국을 끓이는 사람들…. 갓 구운 낭의 냄새에 식욕을 참을 수 없다.

아침을 잔뜩 먹고도 낭을 또 산다. 금방 구워낸 빵의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깨를 살짝 뿌려 화덕에 구워 더욱 고소하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주체할 수 없는 고소함이 가득 찬다.

마지막 고개를 돌아서니 천지가 웅장하게 펼쳐졌다. 가슴이 뻥 뚫리고, 아름다운 남색의 물빛은 시선을 뗄 수 없게 한다. 정면에 중심을 잡고 있는 설산과 아름다운 능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맑은 물에 비친 설산의 모습은 마치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찍어낸 것 같다. 여름엔 허가받은 등산가들이 저 설산을 오른다고 한다. 겨울철엔 천지가 꽁꽁 어는데 5월에야 녹기 시작한다. 천지 주변에는 이미 도착한 관광객들이 많았다. 한여름인데도 시원한 최고의 피서지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빨려 들어갈 듯한 천지의 바닥

▲ 백두산의 천지와 그 이름이 같다.
ⓒ 조수영
▲ 유람선은 천지 위를 30분 정도 돈다.
ⓒ 조수영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청정을 고려해서 유람선은 모두 기름이 아닌 가스로 운행되고 그래서 천지에는 기름 한 방울 없다. 유람선은 중간에 도교사원 입구에서 잠깐 정차하고 천지 위를 30분 정도 유람한다. 차가운 물의 기운과 매서운 바람으로 배 위는 무지 춥다. 깊고 푸른 천지의 물은 마치 그 바닥으로 우리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가게 앞은 낭을 굽는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위구르 복장을 한 아가씨가 그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낭에 있는 무늬를 한번 찍어 보겠다니 선뜻 도장을 내어 준다.

겹쳐진 원모양의 도장으로 피자의 도우처럼 생긴 판 위를 꾹꾹 찍는다. 그 정도 힘으론 어림없다는 표정이다. 전력을 다해 구멍이 뚫릴 정도로 내리쳤더니 이번엔 아예 여기서 일하면서 살라고 한다. 갓 구운 낭을 모양대로 뜯어먹은 재미가 일품이다.

서부 대개발의 중심 우루무치

▲ 금방 구워낸 낭의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 조수영
▲ 겹쳐진 원모양의 도장으로 피자의 도우처럼 생긴 판 위를 찍어 화덕에 굽는다.
ⓒ 조수영
▲ 인기있는 점심 메뉴는 양고기탕
ⓒ 조수영
우루무치는 서역 최대의 공업도시이다.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의 수도) 까지 잇는 철도가 개통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항공로도 일찌감치 열렸다. 해마다 20조원 이상이 투자되는 서부대개발사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우루무치는 작년에 12%의 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미국과 일본 등 40여 개 나라 천여 개의 회사가 진출해 앞다투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야심 찬 구호는 '경제 실크로드의 선점'이다. 지금 과거의 대상들이 다녔던 그 길을 따라 새로운 실크로드가 생겨나고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이 길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관문으로 구축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 실크로드'의 태동이다.

다시 서안으로...

▲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루무치.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잇는 철도가 개통되고 있다.
ⓒ 조수영
우리는 이제 다시 서안으로 향한다. 서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우루무치는 작지만 잘 정리된 도시다. 홍산공원의 9층탑이 내려다보인다. 시내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치 우루무치를 엄호하듯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설산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물이 흐른 흔적이 있다. 기억되지 않는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은 만년설이 이곳 사람들과 같이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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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노르 호수와 함께 사라진 누란 왕국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실크로드 여행 21] 우루무치- 홍산공원, 신강성박물관
조수영(sy0707) 기자
서부 대개발의 중심, 우루무치(烏魯木齊)

꼬박 24시간을 달린 기차가 우루무치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돼서다. 역 광장에는 다민족상이 우뚝 서 있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오아시스 도시 우루무치는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다.

천산산맥 기슭 해발 900m에 위치하여 연평균 기온 7도, 가장 추운 1월은 영하 10℃이나 가장 더운 7월은 14℃ 밖에 되지 않는다. 선선한 날씨는 고원지대에 있다는 것을 단번에 짐작하게 했다. 이곳 사람들의 조상들은 아름다운 목장의 목초지에서 양과 말 등을 길렀겠지만, 지금은 원유의 개발, 발전소의 건립, 공장의 건설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초원과 사막을 떠나서 일하고 있다. 도시화의 결과이다.

▲ 카슈가르를 출발해 꼬박 24시간을 달린 기차는 우루무치역에 도착했다.
ⓒ 조수영

▲ 우루무치역 앞에 있는 다민족상
ⓒ 조수영
우루무치는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수도다. 그러나 도심에는 위구르인들의 비율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한족 이주정책 탓이다. 또한 이들이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심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쭉쭉 뻗는 도로와 고층의 아파트들이 실크로드의 여느 오아시스 도시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고대 실크로드의 자취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홍산공원으로 향했다.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높이 90m인 홍산은 작은 놀이동산도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였다. 붉은 언덕은 천산에서 날아온 홍학이 내려앉아 붉게 물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 정상에는 임칙서의 동상과 9층의 진룡탑(鎭龍塔)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 산에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 어느 날 그 용이 우루무치에 대홍수를 일게 하였다. 화가 난 여신 서왕모가 용의 머리 위에 이 탑을 세워 진압했다고 한다.

진룡탑 주위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변을 보니 자물쇠가 수도 없이 걸려있다. 일반적인 모양부터 하트모양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연인들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와서 자물쇠를 잠그곤 그 열쇠는 언덕 아래로 던져 버리는 풍습 때문이란다.

▲ 연인들의 자물쇠
ⓒ 조수영
누란의 미녀가 잠들어 있는 우루무치 박물관

도심에서는 전혀 실크로드의 자취를 느낄 수 없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우루무치 박물관은 실크로드 연구에 핵심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중요한 곳이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건물에는 두 층에 전시실이 있다.

▲ 우루무치에 있는 신강성박물관
ⓒ 조수영
1층은 근처에서 발굴된 유물과 이 근방에서 나는 광물을 전시하고 있고, 그 반대쪽은 각 소수 부족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복장, 악기,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었다. 동서교역을 이끌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국가들이 지금에 와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단장에 동원된 들러리 신세라는 생각이 든다.

▲ 박물관 내부
ⓒ 조수영
2층에는 이 박물관을 대표할 수 있는 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총 8개의 미라가 있는데 첫 번째 전시된 것이 '누란 미인의 미라'다. 미라의 모습을 기초로 당시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미모가 상당하다.

한족과는 아주 다른, 지금의 위구르족의 모습과도 좀 다른 완전한 서양 미인의 모습이다. 바짝 말라붙은 아스타나 고분의 것에 비해 실제 사람과 매우 비슷하다.

아기 미라의 눈감은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인은 거의 퇴색되지 않은 당시의 옷을 입고 있다. 시간이 지나 수축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족히 180cm는 넘었을 수염 기른 남자는 얼굴에 채색을 해서 보다 사실적이다. 벌떡 일어설 것만 같다. 순간 이 전시실에 나 혼자 남았음을 느끼고는 섬뜩하여 소름이 끼쳤다.

자연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이 미라들은 영생을 얻고자 한 이집트 왕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건조한 기후가 부패를 방지하고 이곳 토양의 약간의 염분기가 방부제 역할을 하여 그 색깔과 모양을 지금까지 유지시켜 준 것이다.

살아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썩지 않고 제 모양대로 남아있는 미라에게서 슬픔과 비애가 느껴진다. 소멸할 수 없음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멸은 우리가 사라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아닌가.

▲ 시간이 지나 수축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족히 180cm는 넘었을 수염 기른 남자는 얼굴에 채색을 해서 보다 사실적이다.
ⓒ 조수영

▲ 아기 미라의 눈감은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 조수영

▲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인은 거의 퇴색되지 않은 당시의 옷을 입고 있다.
ⓒ 조수영
로프노르 호수와 함께 사라진 왕국 누란(樓蘭)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누란>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잘 버무려 만들어낸 소설이다.

로프노르 호숫가에는 누란이라는 작은 오아시스 나라가 있었다. 누란 사람들은 소금호수인 로프노르에서 소금과 물고기를 얻어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팔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들은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서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왕의 아들 중 하나는 흉노에, 다른 하나는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란 왕이 죽게 되자, 흉노에 인질로 갔던 왕자인 안귀가 왕위에 올랐다. 안귀는 왕위에 오른 뒤 한나라를 멀리하고 흉노와 가까운 정책을 폈다. 그러자 화가 난 한나라는 안귀를 살해하고, 한나라에 인질로 가있던 안귀의 동생 위도기를 왕위에 앉힌다.

그러나 왕이 된 위도기는 한나라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로프노르에서 멀리 떨어진 선선이라는 곳으로 옮겨야 했다. 누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호수 로프노르를 떠나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 했다.

이주 며칠 전, 안귀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던 로프노르 호수가의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란 사람들은 부인의 시신을 로프노르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묻어준 뒤 누란의 땅을 떠났다.

세월이 오래 흘러 그동안 누란에 원래 살았던 사람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누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살아갔다. 그리고 누란이라는 나라는 모래 속에 묻힌 채 지상에서 사라져갔다.

누란이 없어지자, 누란 땅 옆에 있던 로프노르 호수도 점점 물이 마르더니,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누란과 로프노르는 영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되살아난 로프노르 호수

그로부터 천오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웬 헤딘은 누란의 유적을 찾아 나선다. 오랜 세월을 헤매도 찾을 수 없는 누란의 유적을 그리며 사막에 앉아있던 헤딘의 눈에 반짝이는 물줄기가 하나 들어왔다. 그 물줄기는 다시 살아난 로프노르 호수였다. 천오백년마다 물줄기를 바꾸는 이동하는 로프노르 호수가 마침내 다시 옛 누란의 땅으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헤딘은 돌아온 로프노르 호숫가에서 한 구의 미라를 발굴했다. 그는 그 미라가 로프노르 호수의 누란을 떠날 수 없었던 여인의 무덤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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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우루무치 버스터미널 모습

썰렁한 우루무치시 구 버스터미널 매표소

새로 건립된 신 대합실
중국에서 이슬람 신도수가 가장 많은 곳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시의 고속버스 터미널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첫 사진은 주로 단거리를 뛰는 구(Old) 버스터미널의 매표소 모습이고,
두번 째 사진은 중장거리를 뛰는 신(New) 버스터미널의 대합실 모습입니다.

첫 사진에서 우리의 예전 시골 기차역 및 버스 터미널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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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3 편)

(2006` 6, 17 ~ 6, 25)

12시간 달릴 4인 1실 밤 열차 타

우루무치 시내로 귀환해 저녁을 먹고 서둘러 역으로 갔다. 역사는 3층의 현대식 건물로 말끔했다. 우린 짐을 들고 침대칸 대합실로 갔다. 퍽 고급스러웠다. 일반대합실과는 격이 달랐다. 4인 1실 침대칸을 탔다. 짐은 포터에게 맡겼다. 침대칸까지 가져다 줬다. 우리 일행은 세 방에 분산됐다. 남성은 두 방에, 그리고 G교수와 송정화씨는 그 옆방에 다른 팀 여성 두 분과 들었다. 그 유명한 돈황(敦煌 : 둔황 : Dunhuang)으로 가기 위해 유원(柳圓)까지 12시간 열차를 타야했다.

우리가 탄 열차는 란신철도(蘭新鐵道 : 蘭州 ↔ 烏魯木齊(우루무치))다. 즉 우루무치에서 감숙성 성도 란주(蘭州)를 왕복하는 열차(거리 1.137km)다. 유원 역은 두 도시의 거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따라서 우루무치에서 유원까지는 600km 내외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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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 역사 전경. 멋진 현대식 건물이다. 역사 앞 광장엔 많은 차량과 인파들이 붐빈다. 신강 제일의 도시에 걸맞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방배분도 홍 단장 몫이다. 한 방엔 주류파 네 명이, 다른 방엔 조금 약한 네 명으로 나눴다. 주류파는 홍 단장, 주선 구자일 사장, 권정웅 부장, 제동식 사장이다. 난 술이 약한 쪽으로 분류돼 이정길 사장(이조황실제탕원 운영. 동기회 총무), 장준환 이사(전 한국자동차보험<주> 영남본부장), 곽청언 사장(대구 서문시장 상인연합회 회장)과 한 방에 들었다.

주류파 방에선 짐을 챙긴 것이 아니라 술좌석 마련이 바빴다. 물론 우리방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열차는 오후 9시에 출발했다. 아직도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


(중국 성(省)과 큰 도시가 포함된 지도)

사막의 시간과 공간 느낄 사이도 ~

시인 박청륭의 ‘사막’이란 시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날이 저물면서 어두워진 사막엔/

내려앉은 별빛뿐이었다/

흐르는 유성과 유성 사이/

어느 별빛은 굵고 가는 철골이 되었다/

칠흑의 어둠을 뚫고 소리하나가/

사막을 가로질러갔다/

소리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빛이었다/

이튿날 아침 사막 가운데/

알루미늄 빔으로 얽힌 은빛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시인의 글처럼 곧 사막엔 초롱초롱한 수많은 별빛들이 내려앉겠지. 그럴 것이다. 그 곳엔 오직 별빛뿐일 것이다. 그 별빛 보면서 기도하련다. 고난과 애증 질시, 떠남과 방황, 절망과 한숨, 눈물과 피, 울부짖음,...... 이들을 멀리 보내버리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막이라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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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일출이 시작됐다. 높은 모래산 위로 붉은 용광로가 불쑥 떠올라 주위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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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해돋이는 시시각각 사물을 변화시키는 듯 했다. 사막에 철로가 놓이면서전기를 공급하는 전선도 함께 깔렸다. 전선을 받드는 높은 철탑이 아침햇살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드릴 여유도 주지 않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두 방 모두 술판이 벌어졌다. 주류파 방에선 양주를 따놓고 마시면서 우리 방 친구를 불러댔다. 그 땐 우리 방에도 양주 몇 순배가 돈 뒤다. 주류파와 반 주류파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잔도 뒤섞인다. 폭탄주도 돌았다. 하긴 바깥은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아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으니 술 마실 일 뿐이었다.

송정화씨와 Y교수님도 우리 방으로 호출됐다. 그녀들도 권에 못 이겨 양주잔을 받아 마실 수밖엔. 두 방 인원이 뒤섞이면서 술판은 더욱 무르익어갔다. 침대칸을 모두 우리 일행들이 차지했으니깐 시끌벅적해도 큰 흉이 될 수 없었다. 술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여성 두 분과의 서먹함도 그만 사라져버렸다.


새벽으로 이어진 술판에 노래까지

얼큰하게 취기가 돌면 노래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먼저 불렀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이 곡은 얼큰해져 불러야 제 맛이 나지 않는가? 얼큰해야만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가슴이 찡해지는 것 아닌가? ‘조선 블로그’의 어느 분은 이 노래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한(恨) 서린 상복(喪服)색깔 밑 대궁이 안을 통과하는 듯한 목소리로 서럽게 부르는 그 노래”라고 말이다. 물꼬가 터지자 노래가 이어졌다. 끝내는 Y교수님도 늙은이들의 권유에 못 이겨 조용히 노래(제목이 기억나지 않음)를 불렀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술판은 새벽으로 이어졌다. 양주는 물론 소주도 엄청 비웠다. 곽 사장과 난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둘 다 몸집이 작아 오르내리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 사장과 장 이사는 180cm의 장신에다 체중도 키에 걸맞다. 난 이 둘에 비하면 왜소하다. 잠을 잔 시간이 몇 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모두가 취해야만 잘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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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사막을 비춘다. 기차의 속도에 따라 사막의 사구(沙丘) 모양도 자꾸 바뀐다.)

덜컹대는 열차의 움직임과 레일과의 마찰음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져 왔다. 목마름이 뒤따랐고. 베개 옆에 둔 물통을 열고 누운 채 몇 모금 마셨다. 취기가 잦아지는 듯 했다. 맞은 편 침대 위를 보니깐 그곳에 누워있어야 할 곽 사장 대신 장 이사가 누워있지 않은가. 장 이사를 깨워 “왜 위층으로 왔느냐?”고 물으니깐 “말도 말아라!”고 손사래 친다.

그럴수록 궁금증이 더 일수밖에. 자초지종은 이랬다. 장 이사, 그는 내 자리 아래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다리 위를 덮쳐 때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룸메이트 곽 사장이더란다. 그는 목이 말라 물 먹기 위해 2층에서 내려오다 굴러 떨어지면서 반대편 아래 침대를 덮쳤을 것이란 풀이다. 그 때까지 작취미성 상태라 그 자리에 눕혀놓고, 자신은 하는 수 없이 위층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붉은 해, 모래 달구는 용광로로

그리곤 그 때서야 “곽 사장 어디 부러진 곳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걱정했다. 어렴풋이 잠결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곽 사장 왈 “떨어지긴 했는데, 얼굴 만져보니 다친 데가 없어 그대로 잤다.”고 했다. 이 사장이 일어나 곽 사장의 사지를 만져보면서 아픈 곳을 물었다. 멀쩡했다. 옆구리가 조금 쑤신다고 했을 뿐이다.

참 천만다행이다. 골절상이라도 입었더라면 여행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돈황에는 의료시설도 형편없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했으니깐. 위층을 오르내리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곽 사장, 그는 키가 작으니깐 다리가 짧다. 맑은 정신에도 한 눈 팔면 헛발을 내디뎌 굴러 떨어질 수 있으니깐 말이다.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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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沙丘)의 모양이 바뀌는 건 바로 사막의 모양이 자꾸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사막의 모양도 천태만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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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공정이 시작된 모양이다. 목책을 둘렀고, 나무말뚝을 박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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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에 건설된 육로가 보인다. 그러나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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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모래산이 나타나고, 그 뒤론 바위산맥이 두르고 있다. 이 사막지대에 중국은 핵기지는 아니겠지만 또 다른 기지를 건설하는 모양이다. 작업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리고 있다.)

열차가 밤새 달린 길은 사막 위 철로다. 이 북새통 가운데 사막에는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평평한 모래밭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모래언덕(沙丘)으로 바뀌기를 거듭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구 위에 붉은 해가 돋기 시작했다. 사막에서의 일출,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꽃게 무덤’을 쓴 작가 권지혜라면 이 장관을 또 어떻게 묘사했을까? 난 글로 묘사할 능력이 없음에 통곡해야 했다. 마구 사진만 찍어댔다. 사막을 비추던 붉은 해는 이내 이글거리면서 모래를 달궈내는 용광로로 변했다. 복도엔 일행 중 여러 분이 나와 창문을 통해 이 장관을 놓칠세라 눈에 꼭꼭 담아 넣거나 아니면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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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역이 가까워 오자 일행은 침실 앞 복도에 짐을 내놓고 내릴 준비를 서둔다. 홍 단장(붉은 색 모자 쓴 분)은 단장답게 팀이 머문 방을 찾아 체크하고 있다.)

사막의 해오름이 끝나면서 우린 쓰린 속을 데워야했다. 사발라면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

시원한 국물을 마셔댔다. 그때도 취기는 다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도 술엔 도가 터인 모양이다. 모두 이순(耳順) 복판을 지난 나이란 걸 느낄 수 없을 만큼 찌든 얼굴이 아니라 웃음을 일게 했다. 이내 웃음꽃이 피었다. 열차는 시속 60km 이상을 달리는 듯 했다. 열기가 넘치는 모래밭과 사구는 끝없이 펼쳐졌다.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진다. 이날 나의 여행수첩엔 이렇게만 적혀있다. “계속 달린다. 끝없는 사막 위를 . . . . . ., 열차는 밤 세워 달렸고, 해가 떠도 또 달렸다.”라고.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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