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닐기'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6.09.19 전주/''060917
  2. 2006.09.11 여 수
  3. 2006.08.29 8월/보길도, 향일암, 땅끝, 돌산
  4. 2006.08.09 아차산에는 왜 두 개의 태양이 뜰까 1

전주/''060917

노닐기 2006. 9. 19. 16:43


텔레비전 사극 상도로 유명해진 계영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계영배는 잔이 가득 차면 술이 새는 잔입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술은 ‘제례’, ‘관례’, ‘혼례’, ‘상례’, ‘향음주례’등 전통 생활에서 늘 함께 해왔습니다. 생활을 주관하는 주요예법에서 술을 찾고, 술이 예법 사이로 스미는 과정이 반복 되어 왔던 것입니다. 무조건 취하고 보자는 술이 아니라, 술을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술의 의미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밖에 계영원에서는 전국에 있는 전통술이 전시되어 있고 전라북도 및 전국에서 유명한 이강주, 송화백일주, 송죽오곡주, 진도홍주 등 전통주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술들을 지도로 그린 전통술 분포도가 있어 한눈에 전통술들을 볼 수 있습니다.
술 빚는 과정을 꼼꼼히 배우다보면 그 정성과 지혜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세심한 배려와 풍성한 마음을 담아 만들어지는 술 생산과정을 바라보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화합으로 빚어지는 술의 의미를 자연스레 체득하게 됩니다.


양화당은 전통적인 술 빚기 과정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민족이 술을 담글 때 사용하던 도구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만화와 패널을 통해 전통술이 빚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주말에는 ‘연구사’ 또는 ‘수을사랑회’ 회원들이 전통술빚기를 활발하게 진행하여 잊혀지고 맥이 끊겨진 우리 전통가양주 빚기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화당’에서 빚은 술은 숙성실을 통해 숙성시키고 냉각후 발효실에서 2~4주정도 발효시킵니다. 발효실과 숙성실의 항아리속에서 감칠맛나게 익어가는 술들을 눈으로 확인해 보실수 있습니다.

“가득 채움을 경계하라”는 뜻을 갖고 있는 ‘계영배’는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리우며 70%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흘러내려 버리므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현대의 ‘탄탈로스의 접시’라는 화학실험기구와 그 원리가 비슷하며 한국에서는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하백원은 전라남도 화순 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년간 실학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 실학자. 성리학자였습니다. 그는 계영배를 비롯하여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와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집니다. 그 후 유명해진 우 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 상옥(林尙沃: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TV드라마 「상도」를 통해 유명해진 계영배를 술 박물관 계영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떠나 보자! 현장 체험 학습] 전주한옥마을
전통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

전주한옥마을 전경. 국내 최대의 한옥 밀집 지대로 기와 지붕의 곡선ㆍ처마ㆍ뒤 안ㆍ대청마루 등 조상들의 전통 주거 형태를 배울 수 있다.

전주는 조선 왕조의 뿌리를 간직한 도시다. 그 중심에 8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룬 ‘전주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한옥을 통해 조상의 전통 주거 형태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전ㆍ오목대 등 문화 유적지, 한방문화센터ㆍ한옥체험관처럼 우리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체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전주한옥마을(전주시 교동과 풍남동 일대)은 일제가 조선 시대 성곽을 헐고 상권을 침범하면서부터 이에 대한 반발로 1930년대 자연스레 형성됐다. 이후 1977년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묶여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한옥마을의 체험은 관광안내소(063-282-1330, 이하 지역 번호 생략)부터 시작된다. 이 곳에서 한옥마을 약도를 받은 뒤 안내원과 체험에 나서면 된다.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한 경기전.

한국 최초의 순교 터에 세워진 전동 성당.

고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입구의 ‘하마비’가 눈에 띈다. 하마비는 두 마리의 사자 조각을 받침돌로 삼아 비를 올린 것으로, 문화 해설사들은 “전국에서 가장 예쁜 하마비일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 맞은편에는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사적 제288호)로 불리는 전동 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섞인 독특한 구조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일컬어지는 성당이다.

이 곳 성당을 나와 1970년대 이발소와 점집 등을 지나 10 분을 걸으면 오목대에 이른다. 이성계가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에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승리를 자축한 곳으로, 한옥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목대 아래에는 전통한지연구소(232-6591)가 위치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제조 기술자들의 한지 공정 과정을 살펴본 뒤, 직접 종이 한 장을 떠 보고(만들고) 자기가 만든 종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지 제작 체험 후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 씨가 머물고 있는 승광재(284-2323)를 찾아보자. 황실의 사진과 당시의 의복을 감상한 뒤, 황실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장소다. 승광재 바로 맞은편 설예원에서는 다도 예절ㆍ다식 만들기ㆍ천염 염색 체험을 3000 원~5000 원씩에 해 볼 수 있다.

승광재를 나와 다시 오른쪽으로 50 보만 걸으면 최명희 문학관(284-0570)과 마주한다. 호남 지방의 세시 풍속과 생활사를 생생한 우리말로 복원해 ‘모국어의 보고’로 평가받은 대하소설 ‘혼불’을 남긴 최명희 선생의 삶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시실에는 고 최명희 씨의 약력과 사진, 친필 원고와 편지 글이 가득하다. 특히 ‘작가의 방’은 생전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다.

온 길을 되돌아 승광재를 지나고 왼쪽으로 30 걸음만 더 가면 전주전통술박물관(287-6305)을 만난다. 이 곳에서는 누룩 빚기 등 호남 지방의 전통 술 제조 비법을 보고 술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술 만드는 기구도 감상할 수 있다.

또 이 박물관에서 50 m 떨어진 곳에는 ‘전주한옥생활체험관’(287-6300)이 위치해 있다. 안채(단영원)와 사랑채(세화관)로 나뉘어져 있으며, 숙박을 할 경우 조선 시대 양반 생활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다 마당에서 윷을 놀고 투호를 던지고, 서예ㆍ판소리 등 한국 전통 생활 문화도 두루 접할 수 있다.

이 밖에 국내 유일의 한의학 박물관인 전주한방문화센터(232-2500)에서는 한의학적 진단을 통해 자신의 체질과 건강 상태를 알아 볼 수 있으며, 전주 공예품전시관(285-0002)에서는 다양한 공예에 대한 자료를 보고 광주리ㆍ조리 등 공예품을 제작해 볼 수도 있다. 한편 전주전통문화센터(280-7001~2)에서도 전주 비빔밥ㆍ김치ㆍ한과 등을 만들어 보고 기악ㆍ전통춤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 = 호남 고속 도로 전주 IC -> 남원 방향으로 직진 -> 전주시청 -> 남부 시장 -> 전주한옥마을

△KTX = 용산역에서 익산역 1 일 18 회 운행(1 시간 50 분 소요)

△고속 버스 = 서울에서 전주 10 분 간격 운행(2 시간 30 분 소요)

전통한지연구소에서 한지 만들기를 직접 체험해 보고 있는 어린이들.

설예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원장의 안내로 다도 체험을 하고 있다.

황손의 집 '승광재'. 조선 왕조의 역사를 사진 등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사진 오른쪽은 승광재를 찾은 어린이 관람객들.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고리걸기ㆍ굴렁쇠굴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최명희 문학관.


전주=글ㆍ사진 서원극 기자 wkseo@hk.co.kr

전주는 지금, 세계 소리 축제의 바다
오는 24일까지 ‘2006 전주세계소리축제’ 계속
권오성(kosmosos) 기자
▲ 개막식 공연.
ⓒ 권오성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2006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안숙선)가 지난 1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지금 한창이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치러지는 이번 축제의 주제는 ‘소리, 놀이’이고, 주제어는 ‘우리는 소리로 논다’라고. 9일 동안 모두 3부문 13개 분야 1000여개의 공연 및 행사가 펼쳐진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판소리를 매개로 시작한 축제로, 이제는 세계 각국의 소리와 음악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집중기획 판소리, 프로그래머의 눈, 전통과 전위(호주편), 월드 보이스 스페셜, 소리-워매드 페스티벌, 축제 속의 축제, 소리프린지페스티벌 등이다.

▲ 축제장 풍경.
ⓒ 권오성

▲ 김소희 명창 추모하는 전시회.
ⓒ 권오성

▲ 공연을 통해 여러 악기를 체험하는 '세계의 악기 기행'.
ⓒ 권오성

집중 조명 받는 ‘판소리’

소리축제 제대로 즐기려면

올해 축제는 예년과는 달리 새롭게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1일 입장권으로 모든 공연을

성인 기준 1만원 짜리 입장권을 구입하면 그날 하루는 모든 공연과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수익 확보와 축제의 저변 확대를 노린 것이다. 다만 실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2시간 전부터 좌석권을 발급 받아야 한다. 한편 야외의 놀이마당은 매표소 밖에 있어 입장권이 없이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세·중·굿 소리캠프

세마치·중모리·굿거리 등 우리의 장단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 소리와 놀이·교육이 어우러지는 축제 마니아들의 야영 행사이다. 참가비 2만5천 원을 내면 식사(3끼)·1일 입장권·텐트가 제공된다. 참가자들은 사물놀이·판소리·단가·단소 등에서 하나를 선택,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저녁에는 축제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밤에는 대동마당과 귀신 체험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20일부터는 ‘김제지평선축제’와도 연계해서 캠프에 참여할 수 있다.

소리-워매드 축제

1982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24개국 145차례 공연을 펼쳐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로 인정받고 있는 워매드(WOMAD·World of Music Arts and Dance)가 소리축제와 네트워크를 통해 22∼24일까지 치러진다. 스코틀랜드·프랑스·인도·카메룬·중국 등 11개국에서 정상급의 12개 아티스트·팀이 초청됐다. 소리 마니아들은 이번 주말을 놓치지 말 것. / 권오성
집중기획 판소리는 ‘판소리의 정수를 느끼고 시대변화에 따른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소개’하기 위해 제대로 작심하고 만든 행사이다. ‘바디(한 마당 전부를 다듬어 놓은 소리)별 명창홍보 흥보가’(17~21일)는 명창의 서로 다른 각 유파적 특성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다섯바탕 판소리’(20~24일)는 소리축제 고유의 정수를 보여주는 놓칠 수 없는 공연이다.

이밖에 유파별 산조의 밤(19~21일), 판소리 젊은 시선(22~24일), 대학 창극 축제(19~23일), 중요 무형문화재 초청(19~23일) 등의 다양한 공연이 전통과 창작의 변주 속에서 숨 가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만정 김소희 명창(1917~1995)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행사들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이미 16일 ‘하늘소리, 김소희’ 공연을 시작으로 해서 ‘만정의 생애와 예술 세계’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치러졌으며, 축제 기간 내내 전시장에서는 명창과 관련한 각종 자료와 참신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노년을 쓸쓸히 보낸 김소희 명창을 이제나마 차분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무척 다행이다.

변화를 모색하는 축제

국악과 클래식의 조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래머의 눈’(18~21일)은 모두 4개의 공연으로, 저녁 7시에 전당 연지홀에서 올린다. 금난새와 유라시안 스트링즈가 함께하는 ‘신동의 소리’, 국악팝스오케스트라 ‘여민’, 한·중 시각장애인 연주자의 ‘천상의 소리’, 전주시립국악단의 ‘어울림 콘서트’가 그것.

‘전통과 전위’는 매년 특정 지역의 국가를 선정하여 각 민족의 전통 음악이 현대의 대중과 소통·교류하고 미래의 음악으로 발돋움하는 현장을 소개하는 무대이다. 올해는 호주의 전통음악을 소개하는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월드 보이스 스페셜’은 세계의 정상급 목소리를 가진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무대이다. 아치와 루비(호주), 상트 페테르부르크(러시아), 아카펠라 칸타빌레(영국) 등의 공연이 치러지고 있다. 우리 소리가 어떻게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축제 속의 축제’와 ‘소리프린지페스티벌’은 가족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교육적 효과와 함께 소리축제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어린이 소리축제, 어린이 소리판, 어린이를 위한 야외공연, 소리 음식촌, 세·중·굿 소리 캠프 등의 행사와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공연 무대를 접할 수 있다.

▲ 17일에 열린 국제포럼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그 현황과 전망'.
ⓒ 권오성

▲ 월드 보이스 스페셜에 참가한 '아치와 루비' 공연.
ⓒ 권오성

▲ 어린이 소리판 공연.
ⓒ 권오성

▲ 축제장 풍경.
ⓒ 권오성

'노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길로 곧장 가면 / 강희창  (0) 2006.10.17
영주 부석사를 다녀와서 /''0510  (0) 2006.10.08
여 수  (0) 2006.09.11
8월/보길도, 향일암, 땅끝, 돌산  (0) 2006.08.29
아차산에는 왜 두 개의 태양이 뜰까  (1) 2006.08.09
Posted by 동봉
,

여 수

노닐기 2006. 9. 11. 10:33

[전남100경]동백꽃과 해돋이가 기다리는 '여수'
오동도, 향일암 등 볼만한 곳 많아
변종만(whda2002) 기자
오동도

여수하면 오동도, 오동도하면 동백꽃이 연상될 정도로 동백꽃으로 유명한 섬이다. 동백열차를 비롯한 유람선, 모터보트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람선과 모터보트는 오동도 입구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배를 타면 오동 일대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소라바위, 병풍바위, 용굴, 지붕바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섬의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인다.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오동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14㎞에 이르며 동백나무를 비롯한 참식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쥐똥나무 등의 희귀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 동백열차
ⓒ 변종만

▲ 상가주변 풍경
ⓒ 변종만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최초로 수군연병장을 만들었고 이곳의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육지와 연결된 768m의 방파제 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오동도에 도착한다.

오동도의 매력은 겨우내 황홀한 빛으로 붉게 물들다 3월 중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동백꽃이다.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섬 전체를 덮고 있으며 울창한 숲 속으로 호젓한 산책로가 거미줄처럼 뻗어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바닷가로 나가 바위에 부서지는 포말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고 종합상가 횟집에서 인근 남해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진남관

진남관은 조선시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하던 터에 1599년 삼도통제사였던 이시언이 건립한 75칸의 대규모 객사다.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워진 중심 건물이다. 중앙 정청 내부 북쪽 벽 앞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함을 두고 전패에 절하는 '향궐 망배' 의식을 거행하며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 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남쪽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 이름 붙였다.

▲ 진남관 전경
ⓒ 변종만

▲ 여수석인상
ⓒ 변종만
건물면적 240평의 대형 건물에 기둥 68개, 75칸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최대 규모다.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목조건물로 국보 제304호다. 충무공이 죽은 뒤 부하들이 충무공의 덕을 사모해 직접 만들어 세운 '고소대'라는 비가 있다.

돌산대교

돌산도는 여수시 남산동과 돌산읍 우두리를 잇는 길이 450m, 폭 11.7m의 돌산대교가 놓여 육지와 이어지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여수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돌산을 향하다 만나는 이 다리를 제대로 보려면 돌산공원에 올라야 한다. 돌산공원에 오르면 다도해와 여수항, 여수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그 중앙에 돌산대교가 멋스럽게 버티고 서있다. 야간에는 돌산대교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조명을 바라보면서 일상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라남도수산종합관, 무술목유원지, 방죽포해수욕장, 임포, 향일암 등 관광명소들이 기다린다. 또 돌산도의 해안도로 드라이브 길에 나서면 주변 섬들과 어촌마을의 풍경,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들을 만날 수 있어 여행의 재미를 새롭게 한다.

향일암

해돋이 장소로 유명해 누구나 한번쯤 다녀오고 싶어하는 곳이 향일암이다. 매년 새해 첫날에는 해맞이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백제 의자왕 19년(659)에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원통암이었다고 <여수군지>와 <여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오르는 길이 일반 사찰과 다르게 이채롭다. 집채만큼 거대한 바위 2개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석문을 통과한 후 계단을 올라 절 마당에 도착하면 금오산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대웅전이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다. 주변의 기암괴석과 아열대 활엽수림, 끝없이 펼쳐진 남해안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 대웅전
ⓒ 변종만

▲ 향일암의 일출
ⓒ 변종만
금오산은 거북산이란 뜻이다. 산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한 마리 금거북이 부처님 경전을 등에 모시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이다. 불경바위는 한 권의 불경을 펼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한번 흔드는 공덕이 부처님 경전을 한번 탐독한 공덕과 같음을 의미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색다른 볼거리다. 금오산에 있는 흔들바위는 기암괴석이 거북등 형상을 하고 있어 '영구암'이라 부른다.

향일암 좌측에는 남해의 보리암, 앞바다에는 세존도, 우측에는 미타도, 관음동굴이 있어 큰 세상의 도량이 보이는 남해바다의 보궁이라고 말한다. 사찰 내에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들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거문도와 백도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14.7km 떨어져 있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는 서해의 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백도가 이웃하고 있어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목을 끄는 다도해의 진주다. 거문도에는 동양 최대의 거문도등대,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수월산의 동백나무숲, 남해안최고의 절경이라는 백도 등 아름다운 관광지와 영국군 묘지, 조선시대 유학자로 유명했던 귤은 김유를 기리는 거문사, 유학자 만해 김양록을 기리는 서산사 등의 역사유적이 있다.

거문도의 본섬인 동도·서도·고도 등 3개의 섬은 바다 가운데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1백여 만평 정도의 천연적 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돼 있어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항구구실을 한다.

▲ 거문도
ⓒ 변종만

▲ 수월산의 거문도등대
ⓒ 변종만
거문리에서 삼호교 건너 거문도등대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유림해수욕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수월산에 있는 거문도등대는 동양 최대와 국내 최초를 자랑하며 프랑스에서 제작된 프리즘렌즈에 의해 적색과 백색의 섬광이 매 15초마다 교차한다.

길을 따라 늘어선 동백나무숲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산책로를 걷다보면 등대가 나타나는데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잔디가 고운 별장 같은 관사와 절벽 위 관백정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가 진풍경을 연출한다.

거문사는 동도에, 서산사는 서도에 있는데 김유와 김양록은 거문도를 침략한 러시아 함선에 올라 필담을 나눴던 학자들로 이곳의 지명이 거문도(巨文島: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사는 섬)로 불리게 한 장본인이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도는 39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로 이뤄져 있는 신비의 섬으로 북쪽에 위치한 섬들을 상백도, 남쪽에 위치한 섬들을 하백도라 한다.

백도(白島)라는 이름은 일찍이 섬의 봉우리가 백(百) 개에서 하나(一)가 모자라 흰 백자를 섰다거나 멀리서 바라보면 섬 전체가 흰빛을 띠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백도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은 그의 아들과 신하들이 돌로 변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 백도 풍경
ⓒ 변종만
푸른 융단에 옥돌을 수놓은 듯 희게 빛나는 섬, 백번을 봐야 섬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는 신비의 섬이 백도다. 옛날에는 상백도에 배를 대고 섬에 올라 국토 최남단 절해고도의 환상적인 기암괴석이 신비의 녹색바다에 떠있는 것을 새처럼 내려다봤다고 한다. 현재는 명승지와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유람선으로만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상백도 가장 북쪽에 병풍을 두른 듯이 서있는 병풍바위, 물개 두 마리가 헤엄치는 모습의 물개바위, 바다가 너무 좋아 옥황상제의 명을 거스르고 오르지 않았다는 신하 중 형제가 돌이 되었다는 형제여, 옥황상제 아들과 그 신하들이 노닐 때 한 신하가 새를 잡으려다가 그만 돌이 되었다는 매바위, 옥황상제의 아들이 장가들어 용왕 딸의 서방이 되었다는 서방바위 등 전설과 함께 절경 하나하나가 이야기 거리다. 자식을 못 낳는 사람들이 서방바위에 와서 소원을 빌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상백도에 있는 태양열 무인등대가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 오동도 찾아가는 방법
1. 호남고속국도 순천나들목 - 17번 국도 - 여수 - 여수 시외버스터미널 - 왼쪽길 충인로 - 여수역 - 오동도 입구 주차장
2. 전화(061-690-7301)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진남관 찾아가는 방법
1. 남해고속국도 순천나들목 - 여수 방면 17번 국도 - 여수 시외버스터미널 - 서교동로타리 - 중앙동로타리 - 진남관
2. 전화(061-690-7338)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돌산대교 찾아가는 방법
1. 호남고속국도 순천나들목 - 17번 국도 - 여수 - 돌산대교
2. 시청 관광마케팅과로 전화(061-690-2036)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향일암 찾아가는 방법
1. 남해고속국도 순천나들목 - 17번 국도 - 여수 - 돌산대교 - 17번 국도 - 죽포 - 7번 군도 - 임포 - 향일암
2. 전화(061-644-4742)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거문도와 백도 찾아가는 방법
1. 남해고속국도 순천나들목 - 17번 국도 - 여수항 - 거문도는 배로 2시간 소요, 백도는 유람선으로 해상관광
2. 시청 관광마케팅과(061-690-2036)나 면사무소(061-690-2607)로 전화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노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 부석사를 다녀와서 /''0510  (0) 2006.10.08
전주/''060917  (0) 2006.09.19
8월/보길도, 향일암, 땅끝, 돌산  (0) 2006.08.29
아차산에는 왜 두 개의 태양이 뜰까  (1) 2006.08.09
광진구 아차산생태공원  (0) 2006.08.06
Posted by 동봉
,

세연정(洗然亭)

우리나라 조경유적중 특이한 곳으로,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난다. 개울에 보를(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는 산중에 은둔하는 선비의 원림으로서 화려하고 규모가 크다. 어부사시사는 주로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세연정에 편액을 달았는데, 중앙에는 세연정, 남쪽에는 낙기란(樂飢欄), 서쪽에는 동하각(同何閣), 동쪽에는 호광루(呼光樓)라 하였다.
세연정은 1992년 12월 복원 되었다.(청별선착장에서 도보로 20분,차량소요시간 5분).민박시설 잘되있다.

확대 이미지

가는방법
청별선착장에서 3분,도보 15분 자전거 5분

숙박 및 먹거리

어부사시사 민박·식당·편의점

욕실완비(단체식사 가능)

☎ 553-5019

황원포 민박·식당(보길개인택시사)

관광가이드 전광록

hp: 011-641-6353

열녀각 민박

열녀각 옆

☎ 553-6964

▲ 세연정(洗然亭) 그림지도

판석보(板石洑·굴뚝다리)

우리나라 조원 유적중 유일한 석조보로 세연지의 저수위 조절을 위해 만들었다. 평소에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수면이 일정량을 유지하도록 했다.

확대 이미지

낙서재(樂書齋)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터이다.
초가로 집을 지었다가 나라에서 송금령(松禁令)으로 소나무를 못베게 하자 잡목은 베어 세간집을 지었다. 낙서재는 사방으로 퇴를 달아 매우 컸다. 낙서재 남쪽에 잠을 자는 무민당(無悶當)이라는 집을 짓고 편액도 달았다.

무민당 옆에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으며,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동와(東窩)와 西窩의 각한칸집을 지었다. 낙서재 뒷편에 소은병(小隱屛)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고산 윤선도는 엄동설한에도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지금은 낙서재, 무민당, 동와, 서와의 흔적만 남아 있고 귀암(龜岩)의 자리에 민묘 2기만 자리잡고 있다.

가는방법

청별선착장에서 10분,도보40분,자전거 20분

민박 및 먹거리

세연정 쪽 식당 숙박 이용

▲ 낙서재 명당지도

곡수당(曲水堂)

고산 윤선도의 자제 학관이 기거했던 곳이다.
지금은 논밭으로 변해버려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연정보다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자였다고 한다. 곡수(谷水)를 중심으로 초당(草堂), 석정(石井), 석가산(石伽山), 평대(坪臺), 연지(蓮池), 다리, 화계(花階)등이 좌우로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바로 위에 낙서재 터가 남아 있다.

(도보 청별선착장에서 50분,차량소요시간 10분)

가는방법

청별선착장에서 10분,도보37분,자전거 20분

민박 및 먹거리

동천석실민박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이라는 뜻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되고, 신선이 사는 곳도 되며, 하늘로 통한다는 뜻도 된다. 석실은 석조로 된 거실임은 물론이지만 산중에 은거하는 방이나 책을 잘 보존해 둔 곳이란 뜻도 된다.

1000여평되는 공간에 석제(石悌)와 석문(石門), 석담(石潭), 석천(石泉), 석폭(石瀑), 석대(石臺) 및 희황교(羲皇僑)유적이 있다. 고산 윤선도는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다. 그리고 해 저물녘에 차를 끊이는 연기가 선경 처럼 보였다하여 석실모연(石室募烟)이라하고, 부용동 8경이라 했다.

가는방법

청별선착장에서 8분(도보15분,등산))

,도보50분(10분등산 제함),
자전거 20분(도보15분,등산)

민박 및 먹거리

세연정 쪽 식당 숙박 이용

금거북이 경전을 싣고 오는 영구암
여수 향일암의 그 새로운 해석
정근영(wondam) 기자
태풍이 온다는데 여행이라니 간이 배 밖에라도 나왔다는 말인가. 일기예보는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혹시라도 여행을 취소한다는 통보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다. 서둘러서 집결장소인 세양병원 앞으로 가기는 했지만 병원에 전할 것이 있어 잠간 전하고 나오니 출발예정시간인 8시를 넘어섰다. 13인승 봉고 차는 벌써 손님으로 꽉 찼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태풍의 낌새도 보이지 않고 빗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차는 여수 향일암을 목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전해오는 소식으로는 부산에서는 비가 내린다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비가 안 오는 대신에 시원한 바람이 창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여행 날씨로는 짱이라며 만족한 얼굴이다.

▲ 향일암은 금거북이 등에 경전을 싣고 가는 모습이다. 대웅전 뒤 바위는 경전바위다.
ⓒ 정근영
향일암. 여러 번 가 본 곳이긴 하지만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사하문학회 문학기행으로 남해를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향일암을 가는 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향일암을 다시 가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남해안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렸다.

부산에서 여덟시를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대략 네 시간 가량은 달려온 셈이다. 전에 향일암에 갔을 적에는 절까지 차로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차는 주차장에 대놓고 셔틀버스로 가도록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가자니 시간은 좀 걸리지만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갯바람, 갯내음을 맡으며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향일암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향일암 가는 길을 모르는 선두에 선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서자 길거리 가게 주인이 바르게 일러 주어서 바른 길을 찾아갔다.

▲ 일주문의 용 무늬
ⓒ 정근영

▲ 향일암의 바위, 갑골문자를 보는 듯 하다
ⓒ 정근영

석재로 계단을 다듬어 놓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콘크리트 계단에다 돌을 덮어 놓거나 박아 놓는 것을 많이 보는데 향일암은 석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일주문의 육중한 돌기둥은 용무늬가 하늘로 오르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바윗돌이 뒤엉켜 굴을 이룬 그 굴속으로 들어간다. 바위틈새에 난 작은 길을 따라 굴속을 헤치고 들어단다. 바위틈새 그 길에서 사진을 찍어 보지만 너무 가까워서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아 낼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몇 장의 사진을 찍어보지만 향일암의 전모를 담기는 역부족이다.

향일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여기서 수도하는 도중에 관세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나라 고찰 가운데 원효, 아니면 의상대사가 짓지 않은 절이 몇이나 있을까.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도중에 묘지에서 해골의 물을 마시고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 향일암은 숲과 바위속에 숨어 있다.
ⓒ 정근영

▲ 관음전(용왕전)의 불상(용왕과 남순동자가 보처불이다.)
ⓒ 정근영

▲ 향일암은 바위들이 서로 기대며 굴을 만들고 그 굴속으로 길이 나있다.
ⓒ 정근영

원효대사는 요석공주를 만나 파계를 한 뒤 스스로 소성거사로 일컬으면서 절로는 돌아가지 않고 서민 대중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힘썼다고 하는데 이 나라 방방곡곡의 그 많은 절이 원효대사가 지은 것으로 믿어지지가 않는다. 절 직원에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믿을 만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고승을 그 절의 창건주로 근거 없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실제 그 절을 짓기 위해 땀 흘린 이름 없는 승려의 공덕이 고승의 공덕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 향일암에서 내 놓은 쪽지에 따르면 향일암은 1300년 전 신라 선덕왕 8년(659)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한 절이다. 고려 4대 광종 9년(958) 윤필대사가 금오암이라고 그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윤필대사는 낯선 인물인데 남해 보리암 좌선대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좌선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거사는 출가한 승려가 아닌 재가 신자다. 윤필이란 이름이 동일인 같아 보이는 데 향일암에서는 대사로 보리암에서는 거사로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향일암의 영구암이란 편액은 경봉 스님이 이곳에 주석할 적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경봉스님은 금오산 동쪽 기슭에 있던 암자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절 근처의 기암괴석들이 거북이 등의 욱각문형으로 새겨진 신기한 모습을 보고 영구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오해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향일암은 경봉스님이 중수 또는 만든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 관음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 정근영

▲ 삼성각
ⓒ 정근영

산 이름 금오산은 금거북이란 뜻으로 산의 형상이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상이 말세가 되어 불법이 망하게 되면 거북이가 불경을 짊어지고 용궁으로 옮겨 놓는다는 전설이 전한다. 왜 하필 불법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예상한 것일까. 이 역시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전설이다. 용궁에 간직해 놓았던 경전을 말법세 중생을 위하여 가져 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향일암에는 대웅전, 관음전, 또 다른 용왕전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관음전, 삼성각, 해수관세음보살, 경전 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다. 용왕전이나 해수 관세음보살은 몇 해 전에는 없던 시설이다. 향일암은 원효가 창건한 고찰로서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 모습이 더욱 갸륵해 보이는 절이다.

▲ 바위틈새에 제비집처럼 지어 놓은 향일암
ⓒ 정근영
여수 향일암, 신라의 고승 원효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향일암은 말세가 되어 금거북이가 경전을 싣고 용궁으오 옮겨 온전하게 보전하는 모습이라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말세가 되어 도덕이 희미해진 지금 용궁에 보관한 경전을 가지고 나와 중생을 건진다고.

'노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060917  (0) 2006.09.19
여 수  (0) 2006.09.11
아차산에는 왜 두 개의 태양이 뜰까  (1) 2006.08.09
광진구 아차산생태공원  (0) 2006.08.06
7월 /서해,동해 찍고 남해까지...  (0) 2006.07.27
Posted by 동봉
,

아차산에 가면 2개의 태양과 만날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기행38] 태양, 팔당댐 그리고 내가 1자로 선다면...
이정근(ensagas) 기자
▲ 하늘에도 태양, 물 위에도 태양이 있습니다.
ⓒ 이정근
'해도 하나, 달도 하나…'라는 흘러간 노랫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는 해도 하나, 달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달을 여러 개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강릉 경포대입니다.

'5개의 달'은 있는데…해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는 달 밝은 밤. 누각에 올라 사랑하는 여인과 술잔을 기울이면 달이 다섯개 보인다는 말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옵니다.

하늘에 하나, 경포 호수에 하나, 그리고 따라놓은 술잔 위에 하나. 나머지 두 개는 여인의 눈동자에 두 개의 달이 떠있다고 옛 선인들은 말해왔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표현입니다. 옛 선인들은 하나의 달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풍류를 부여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은데 두 개의 태양을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습니다.

▲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강 남북 도로에 가로등이 켜져 있습니다.
ⓒ 이정근
▲ 태양이 얼굴을 살짝 내 밀었습니다
ⓒ 이정근
일출이 멋지기로 이름난 곳들은 어떠냐고요? 우리나라에 일출의 명소가 많이 있긴 하지요.

'대한늬우스' 애국가에도 등장했던 동해안 추암 일출. 운해를 뚫고 불끈 솟아오르는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한 지리산 천왕봉 일출, 그리고 제주도 성산봉 일출 등 입니다.

모두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곳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개의 태양'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높은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태양은 운해를 거느리고 솟아오르기 때문에 두 개의 태양을 볼 수 없고 바다에서는 행운이 따라준다면 오메가를 볼 수 있지만 두 태양은 보기 어렵습니다. 태양은 솟아오름과 동시에 바다에 비치는 상이 파도에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태양은 솟아오름과 동시에 강렬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달리 두 개의 태양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 태양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습니다.
ⓒ 이정근
▲ 강물 위에도 또 하나의 태양이 만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 이정근
이렇게 어려운 두 개의 태양을 서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차산입니다. 하지만 절기를 잘 택해야 하고 날씨가 받쳐주어야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을 택하는 것은 기본이고 절기에 따라 해 뜨는 위치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7월말과 8월초에 접해 있는 요즈음이 최적기입니다.

요즘이 '두개의 태양' 보는 최적기

▲ 강동대교 아래에 태양이 걸쳐있습니다.
ⓒ 이정근
▲ 강물위에 떠있는 태양이 오메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이정근
두 개의 태양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하려면 절차가 있습니다.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 봤을 때 태양과 팔당댐 그리고 보는 사람이 일직선으로 서야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하늘에 태양이 하나, 한강물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떠있는 환상적인 해맞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6월 21일) 무렵. 아차산에서 바라보았을 때 팔당댐 북쪽에 있는 운봉산에서 떠오르던 태양이 날마다 조금씩 남한산성 쪽으로 이동합니다. 해가 짧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태양이 7월말부터 8월초 현재까지 팔당댐 부근에서 솟아오릅니다. 8월 중순이 지나면 두 개의 태양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 강물 위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떠 있습니다.
ⓒ 이정근
아차산은 서울 동쪽 끝. 경기도 구리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입니다. 아차산을 차지해야 한반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올 정도로 이 산은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아단산과 장한산으로 불렸던 아차산은 지금도 산성이 남아 있습니다. 아차산성입니다. 고구려 시대 군사유적 '보루'도 있습니다.

▲ 하늘에 태양, 강물위에 또 하나의 태양, 붉게 물 들은 강물. 자연이 빚어낸 환상적인 모습입니다
ⓒ 이정근
백제가 융성했을 때에는 아차산을 차지했고 쇠했을 때는 한강 이남으로 밀렸습니다. 고구려 군을 맞아 직접 전투를 지휘하던 백제 임금 개로왕이 전사한 곳이기도 합니다.

막강 고구려도 온달 장군이 신라군을 맞아 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곳이 아차산입니다. 만주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도 신라에 밀려 북으로 패주하면서 신라에 한반도의 주인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곳이 아차산입니다.

아차산에는 왜 두 개의 태양이 뜰까

▲ 아차산 표지석.
ⓒ 이정근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장신대역) 1번 출구로 나와 10분쯤 걸으면 아차산 공원 주차장이 나옵니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약수터가 나오고 경사 10도 정도의 언덕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구리시와 서울시의 경계 안내판이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해맞이 광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불과 30~40분 거리에 있는 아차산 해맞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탁 트인 공간에 눈부시도록 새파란 한강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멀리 북한강물과 남한강물이 합수되는 팔당댐이 아스라이 보이고 기다리던 태양이 동쪽 하늘을 열고 불끈 솟아오르며 찬란한 햇빛이 한강에 부딪힐 때 그 아름다움에 전율마저 느낍니다.

'노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060917  (0) 2006.09.19
여 수  (0) 2006.09.11
8월/보길도, 향일암, 땅끝, 돌산  (0) 2006.08.29
광진구 아차산생태공원  (0) 2006.08.06
7월 /서해,동해 찍고 남해까지...  (0) 2006.07.27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