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시내 황소 성기는 왜 움푹 패여 있을까

<유럽기행 72>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갤러리아
10.01.29 10:49 ㅣ최종 업데이트 10.01.29 10:49 노시경 (prolsk)

이탈리아 북부의 경제 도시 밀라노. 우리에게 패션의 도시로 알려진 밀라노는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 다르게 현대적이고 돈의 윤기가 흐른다. 나는 고대와 중세시대인 로마를 떠나 현대 도시로 시간여행을 와 있었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남부 이탈리아 젊은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옷도 세련되게 차려 입었다. 나이 어린 아가씨들이나 연로한 할아버지들도 옷을 입는 개성이 뚜렷했다. 이 멋쟁이들은 거리의 아기자기한 오렌지색 트램을 오르내리며 도시를 장식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에 서서 스칼라 극장 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복합상가의 아케이드 지붕이 밀라노의 하늘을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갤러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의 거리로 불리고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이 복합 건축물은 현대 서울에서 유행하는 쇼핑몰을 무려 130년 전에 이미 구현한 곳이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유럽 3대 갤러리아, 밀라노의 응접실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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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판매가격, 유행과 패션은 지구 스타일 선도

과거에 이 갤러리아 자리는 정치인들이 회합하는 건물이 있던 곳이었다. 갤러리아 건물은 1865년에서 1877년 사이에 지어졌으니 이탈리아가 통일되던 당시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아케이드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는 건축물 중에서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이다. 현재도 이 갤러리아는 유럽 3대 갤러리아 중 하나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갤러리아는 밀라노 중심의 두 축인 두오모 광장과 스칼라 극장 앞 광장을 이어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위풍당당한 쇼핑몰을 본 적이 없었다. 갤러리아는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가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갤러리아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 가게에 들어가기도 하고 밖에서 둘러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들거렸다. 갤러리아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천장 높은 갤러리아 내부에는 전통의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서점, 벤츠 멀티샵, 부띠끄와 함께 프라다 본사 같은 명품 브랜드 가게들이 한 공간씩 들어서 있다. 판매가격은 착하지 않은 편이라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곳의 화려한 거리와 가게들의 유행과 패션이 지구의 스타일을 선도하고 있었다. 이 거리는 '밀라노의 응접실'이었다.

건축물 입구에서부터 이 하나의 복합 건축물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갤러리아 건물의 각 부분은 서로 어울려 하나의 전체적인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3층의 현란한 건축물이 십자가 모양 회랑을 사이에 두고 블록을 이루고 있었다. 사거리를 이루는 건물들은 독립적으로 건축된 별개 건물이지만 한 건축물같이 보였다.

이 4개 블록 사이 길 위로 촘촘한 철제 프레임으로 연결된 아치형 유리 천장이 마치 지붕같이 덮여 있었다. 회랑 위에 지붕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지붕은 사람들에게 편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거리를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유리로 뒤덮인 천장 아래에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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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 하나 밖에 없는 백화점 리나센떼, 세련된 디스플레이

유리 천장은 비 오는 날 길 가는 사람들의 비를 피하게 할 것이다. 오늘같이 맑은 날은 밝은 태양이 아케이드의 길 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 때 당시에 이 높고 넓은 공간을 모두 유리로 덮으려고 한 생각은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이 유리 천장은시원하게 높아서 갤러리아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천장 유리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햇살이 들어오는 곳 가게 앞에는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이 구분되어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살아가는 이탈리아인들은 빛이 부리는 마술의 힘을 아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빛의 마술은 회랑 바닥 대리석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갤러리아가 두오모 광장을 면한 곳에는 밀라노에 하나 밖에 없는 백화점인 리나센떼(Rinascente) 백화점이 있었다. 백화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이탈리아에서는 신기하게 보이는 백화점이다. 윈도우 디스플레이가 과연 패션의 나라답게 컬러풀하고 세련되어 있었다. 밀라노의 문화와 유행을 선도하는 큰 가게, 리나센떼에서 아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활기가 넘쳤다. 아내는 내가 수영장에서 입을 수영복을 하나 샀다.

우리는 조금 쉬어가기 위해 백화점 7층의 푸드 마켓을 찾았다. 7층에는 레스토랑 외에도 차와 커피를 파는 카페, 와인 바, 초콜릿 바, 샌드위치 바, 모짜렐라 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물을 병에 넣어 파는 가게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 레스토랑 마이오. 리나센떼 백화점의 이름난 레스토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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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무려 47m인 중앙돔, 지구 상징

이 식당가는 이탈리아 정통 요리 외에도 다양한 스낵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레스토랑 마이오(MAIO)는 무척 세련되고 깔끔했고, 그 옆의 스시 바에서는 많은 밀라노 시민들이 앉아서 접시에 담긴 스시를 먹고 있었다. 이 7층 푸드 마켓 남쪽이 인기가 있는 것은 장엄한 밀라노 두오모의 외관을 바로 눈앞에서 꽉 차게 감상할 수 있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 앉을 자리는 전혀 빈 공간이 없었다. 나는 계획을 수정해서 갤러리아 입구 1층 푸드 코트로 내려갔다. 우리는 피자 큰 조각과 함께 올리브, 토마토가 들어간 볶음밥을 먹었다. 배가 부르고 다리가 편했다.

나와 나의 가족은 다시 갤러리아를 산보했다. 십자로 같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갤러리아 중앙에 서자 유리 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축물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는 중앙 유리 천장은 돔 형태로 되어 있었다. 높이가 무려 47m에 이르는 중앙 돔은 지구를 상징하고 있었다.

중앙 돔의 바로 아래 4 방향으로는 지구의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그려져 있다. 벽화의 그림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벽화 속 대륙이 있는 방향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결국 이탈리아 통일 당시에 그려진 이 벽화들은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들인 것이다.

▲ 돔 천장의 벽화 십자가 모양의 회랑으로 4개 대륙을 상징하는 여신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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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가게마저 전통 로고 포기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뤄

각 대륙 원주민들과 함께 묘사된 여신들은 농경, 공업, 과학, 예술과 같은 4가지 인간 활동을 상징하고 있다. 하늘에 붙은 벽화 곁에는 독수리상들이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고, 여신 조각상들은 벽화를 떠받치고 있다. 여신 조각상들은 유리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어두움도 머금고 있었다.

1층 회랑 가게들의 간판은 모두 도도한 검정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간판이 무질서하게 자신만을 보라고 소리치지 않고 가게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깔끔한 간판들로 인해 거리의 미관이 보존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게에 이름만 적힌 황금색 간판이 무척이나 명품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게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성을 가진 작품같이 빛난다.

이 회랑의 간판들은 황금색 간판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맥도날드 가게마저 자신들의 전통 로고를 포기하고 다른 간판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서민들의 패스트푸드인 맥도날드 가게가 명품인 척 하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아의 바닥도 놀랍다. 자세히 보면 이곳 바닥은 전체가 대리석과 타일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갈색, 푸른색의 잔잔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문양이 채색되어 있다. 모자이크 바닥은 흡사 거대 미술관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갤러리아 십자로 한 중앙 바닥에는 십자가 문양이 들어간 깃발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문양은 밀라노가 자리한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Lombardia) 주의 상징문양이다. 그리고 회랑 사거리의 4개 방향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4개 도시를 상징하는 모자이크들이 남아 있다.

▲ S.P.Q.R. 이탈리아 남부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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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로 모양 회랑 중 남쪽 방향에는 이탈리아 남쪽의 로마를 상징하는 모자이크가 있다. 여기에는 로마 시내 유적지마다 눈에 띄던 'S.P.Q.R.'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세나투스 포풀루스쿠에 로마누스(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약자로서 로마를 받치고 있던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을 뜻하고 있다. 그 위에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타일 조각이 그려져 있다. 쌍둥이 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서 테베레 강변의 언덕에 로마 역사상 최초의 나라를 세운 이들이다.

신영이에게 모자이크의 의미를 설명해 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여러 관광객들이 갤러리아 바닥의 모자이크 그림 주변에 둘러서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바닥에는 원형의 월계관과 방패 문양 속에 도약하는 모습의 황소가 그려져 있었다.

▲ 별자리 황소자리 문양. 수많은 관광객의 발꿈치에 황소의 성기가 닳아져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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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12궁도, 유독 황소 성기 부분만 움푹 패여

이 바닥에는 태양의 이동경로에 위치한 별자리 12궁도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었다. 황소(Taurus)는 그 별자리 중 일부였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별자리 이름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황소의 성기 부분만 유독 움푹 패여 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언젠가 책에서 이 황소자리에 대해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서 별점을 치듯이 소원을 비는 곳이었다. 황소의 성기 부분을 신발의 뒤꿈치로 찍고 돌면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면 몸이 건강해지고 왼쪽으로 돌면 자신이나 가족이 바라는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1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3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많은 관광객들이 구멍에 발을 넣고 돌리고 돌리고 계속 돌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돌고 돌아서 이 구멍은 일 년에 3차례 정도 보수공사를 한다고 한다. 이 갤러리아에 모인 관광객들의 행동을 보니 보수 후에도 황소의 성기는 바로 구멍이 나버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에 유래가 없는 기복신앙이었다. 태양이 지나는 길의 별자리들은 사람의 운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점성술일 뿐이다.

▲ 황소자리 문양과 금발의 어린이 이곳을 지나는 모든 여행자들이 황소의 성기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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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딸과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러나 밀라노까지 여행 와서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딸, 아내, 나까지 차례로 소원을 빌며 황소의 성기를 힘껏 밟았다. 그리고 한 바퀴씩 돌았다. 우리 뒤로도 금발의 어린 소녀가 성기를 짓밟으며 소원을 빌고 그 아빠는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어 황소 성기 난타 장면을 보고 웃으며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자이크 속 황소의 성기를 유린하고 있었다.

행운의 상징물이 닳아서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바티칸 성당의 베드로 상 같이 사람의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것이 아니라 형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앞발을 들고 도약하는 황소를 거세해 버렸으니 황소의 충격은 아주 클 것이다.

갤러리아를 나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거리(Cso Vittorio Emanuele II)를 끝까지 걸었다. 물론 아내의 눈에 특색 있어 보이는 가게들은 다 들어가 보았다. 가게의 인테리어가 예쁜 가게, 마네킹이 특이한 가게, 신영이가 좋아하는 인형이 있는 가게까지 모두 들어갔다. 고객들에게 온갖 좋은 말을 하며 꼬시는 것은 어느 가게나 비슷했다. 걷다보니 산 바빌라 광장(Piazza S. Babila)이 나왔다. 계속 걷다 보니 우리는 어느덧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Via monte Napoleone)까지 걷고 있었다.

이탈리아 패션의 첨단을 달리는 밀라노의 거리, 나는 아내와 딸과 계속 걷고 있었다. 우리는 갈 때와는 다른 길로 거슬러 갤러리아 방향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도 가게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갤러리아 안을 들여다보았다. 황소의 성기는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있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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