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의 내부는 크고 넓으며 아주 높다. 내부가 탁 트인 시원스러운 공간이다. 우리는 대성당 안의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냐고 물었으나 아쉽게도 한국어로 된 기계는 없다고 한다. 우리는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한 개만 빌려서 딸, 신영이 목에 걸어줬다. 내가 이 두오모에서 찾는 작품은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그 조각상은 두오모 내부 오른쪽 끝에 있었다. 성 바돌로메(St. Bartholomew) 입상. 그는 기독교 탄압 시기에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당하고 순교한 성인이다. 그의 벗겨진 가죽은 그의 순교형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 성 바돌로메 입상.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당하고 죽은 가톨릭 성인이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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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죽이 벗겨진 그는 자기의 가죽을 망토 매듯이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그의 발가락 껍질인 듯한 가죽이 들려 있고 피부가 벗겨진 얼굴 뒤편으로는 그의 머리카락과 코의 윤곽이 뚜렷한 얼굴 가죽이 늘어져서 걸려 있었다. 그의 몸은 배고픔에 앙상하게 마른 신체의 외부가 아니라 한 꺼풀 가죽을 벗겨낸 신체의 내부다. 나는 태어나서 이런 작품을 처음 보았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통 속에서도 결의에 찬 듯한 그의 표정이 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 나는 대리석 근육 하나하나의 생생함에 놀랐다. 그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혈관들이 가늘게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 ▲ 성 바돌로메 입상. 얼굴 뒤편으로 그의 머리카락과 코의 윤곽이 뚜렷한 가죽이 걸려 있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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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성스러운 성당에 왜 이렇듯 시야를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을 세워 놓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스럽지만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의 죽음을 강하게 기억하라는 의미인가? 성당 내외부에 수많은 조각상도 모두 사실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묘사하였지만 이처럼 표정이 충격적인 조각상은 없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성 바돌로메 입상을 지나 입상 뒤편 지하 예배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하 예배실 옆에는 성 유물실이 있었다. 이곳은 밀라노 두오모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유물실 전시관에는 상아, 금, 은으로 만든 식기류들도 보관되어 있다. 사람의 손이 오랫동안 닿지 않고 색이 닳은 유물들은 생기가 없었다. | ▲ 카를로 보로메오의 방 가톨릭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밀라노 주교의 죽음이 모셔져 있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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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물실에는 밀라노의 주교이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었던 성인, 카를로 보로메오(Carlo Borromeo)의 유물들이 남아 있다. 가톨릭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그의 유골은 카를로 보로메오의 방 안, 은제 납골단 안에 남아 있다. 죽은 이의 흔적을 성당 내부에 전시하듯이 남기는 전통은 참으로 이국적이다. 땅 속에 보이지 않게 시신을 묻는 동양과 달리 유럽은 매장 방식이 참으로 개방적이다. | ▲ 밀라노 두오모 스테인드 글라스. 밝고 화려한 햇빛이 성당 내부에 퍼지고 있었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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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꾸며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외부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밖에서는 분명히 새까만 유리가 성당 내부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신비스러운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고 그 그림들이 여행자들에게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요새 TV의 HD 화면같이 밝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상은 과연 15세기 당시에 그려진 그림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성당 내부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건지, 스테인드글라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성당 내부를 어둡게 했는지 헷갈릴 정도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은 성당 내부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아마도 해가 지는 시간에 보면 더욱 아름다움을 발할 것이다. 나는 다시 두오모 밖으로 나왔다. 흰 대리석의 거대한 대성당이 눈을 압박하고 온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첨탑의 이 대성당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 탄성을 지르거나 탄식을 내뱉는다. 과연 유럽 고딕 건축의 대표다운 건축물이다. 현대 고층건물의 규모와 높이에 단련된 사람이라도 이 대성당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성당 외부의 규모만 놓고 보면 밀라노 두오모는 세계 4위의 대성당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두오모의 등에 뾰족하게 하늘로 치솟은 135개의 첨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두오모는 성당 지붕의 둥근 돔에서 유래한 단어지만, 밀라노 두오모는 둥근 지붕이 없고 날카로운 첨탑으로만 장식되어 있다. 웅장한 밀라노 두오모를 다시 보자, 몇 년 전에 두오모 사진을 찍으며 계속 뒷걸음치던 생각이 났다. 사진기에 두오모 전경이 들어오지 않아 계속 뒷걸음쳤지만 웬만큼 후퇴하지 않고서는 두오모 전경을 찍기는 어려웠다. 과거에 보았던 두오모는 역사의 숨결과 세월의 때를 안고 있었지만 지금 보이는 두오모의 대리석 외벽은 완전히 새로 지은 듯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밀라노 두오모로 입장하는 곳에는 여행자들의 긴 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입장을 하려는 사람들이 복장 검사를 받고 있었다. 소매가 없는 옷을 입은 사람은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면의 문만 5개였다. 좌측 입구의 줄에 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오모의 가장 높은 첨탑에 밀라노를 수호하는 황금 마리아 상이 곡예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다. | ▲ 밀라노 두오모 성인상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상들의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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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외벽에 조각된 섬세하고 정교한 인물상들은 그 수가 몇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성당 정면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 등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지만 수많은 인물상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물상들은 각자 대리석의 색상이 조금씩 달라서 더욱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수많은 조각상들이 벽면에 붙어서 나를 보고 아우성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수없이 많은 성인 조각상들이 도열하듯이 하늘을 보고 있다는 두오모의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고 싶었다. 두오모의 옥상 테라스로 오르는 리프트는 성당 정면과는 정반대의 뒤쪽에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두오모 리프트 앞은 한산했다. 한 서양 아저씨가 리프트 관리인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리프트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리프트 관리인의 한심한 태도였다. 미국에서 온 듯 한 아저씨가 리프트 운항 안 하느냐고 묻자 리프트 관리인은 점심 먹으러 간다고 말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저씨가 또 물었다. "당신, 영어 할 줄 알아요?" 두모오 리프트 관리인은 영어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신경질적으로 이렇게 답변했다. "여기는 이탈리아고 나는 이탈리아어를 한다." | ▲ 두오모 리프트 입구 성당 옥상에 오르는 리프트는 점심시간에 운행을 하지 않는다. | ⓒ 노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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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미국 아저씨는 서로 얼굴을 보고 그냥 웃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이 이 관리인의 개인적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에서 관광차 온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전무했다. 그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주연으로 나온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와 얼굴까지 너무 닮아서 웃기기까지 했다. 밀라노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두오모의 옥상 테라스는 나의 여행일정과 인연이 없는 듯 했다. 여행 경험상 한번 지나치면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벌써 밀라노의 다양한 옷가게에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결국 나는 두오모의 옥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밀라노 두오모 옥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성인들은 지금도 밀라노의 하늘을 올려보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