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제18구간] 석병산

남녘은 여름 문턱인데, 강원도 산골은 이제야 봄
백봉령~자병산~석병산~삽당령~화란봉~닭목재 구간

시간의 눈금은 공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남녘은 이미 여름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강원도 산골엔 이제야 봄이 한창이다. 온갖 들꽃으로 화사하다. 하지만 계절의 표정이 아예 지워져버린 곳도 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들여 놓게 될 자병산(紫屛山)이 바로 그렇다. ‘자줏빛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자태는 옛이야기가 돼 버렸고, 872.2m였던 높이는 지도에나 남아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석회석을 파먹으면서 산 하나가 송두리째 지워져버린 것이다. 문명의 그림자다. 그것은 분명 상처지만, 또한 반창고나 붕대 같은 것이다. 빚이 무겁다. 그렇지만 우리의 부채의식은 너무 가볍다.

백봉령을 가로지르는 대간길은 고갯마루 표지석 뒤로 쳐진 나무울타리 너머로 이어진다. 길은 대간 등성마루로 나아가지 못하고 42번 철탑에서 839m봉을 지나 44번 철탑에서 대간을 만난다. 이어서 45번 철탑을 지나 임도를 가로지르자 비로소 대간 품에 안긴 느낌이 든다. 백봉령에서 1시간쯤 걸은 다음이다. 이곳에서 다시 1시간30분쯤 아기자기한 산줄기를 따라 너울거리자 생계령(820m)이다.

할아버지 둘러맨 산나물 주머니는 한 편의 시(詩)

백봉령에서 생계령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왼쪽 기슭은 지리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임계 카르스트 지역이다. 기슭 곳곳에서 움푹 꺼진 곳을 보게 되는데, 돌리네라 불리는 함몰지다. 석회암이 녹아서 이루어진 침식 현상의 결과다. 석회암의 용해 침식작용은 중국의 석림(石林)처럼 송곳 모양의 지형을 거쳐 평평해져야 끝이 나는데, 이 과정을 카르스트 윤회라 부른다. 돌리네가 형성되는 시기는 유년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생계령에 이르러 우리는 푸르고 화사한 봄기운에 흠뻑 젖는다. 곤드래나 취 같은 산나물과 들꽃이 지천이다. 얼레지, 붓꽃, 둥굴레, 은방울꽃, 족두리풀, 산괴불주머니, 쥐오줌풀, 별꽃, 벌깨덩굴…, 그리고 내가 이름을 알 수 없어 불러주지 못하는 들꽃들이 저마다 빛난다. 어디 그뿐인가. 눈을 들면 연분홍 철쭉이 수줍게 곱고, 하늘을 우러르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참나무 잎이 또 꽃처럼 피어있다.

귓속으로도 봄이 흘러든다. 산꾼들이 흔히 그 울음의 색깔에 빗대어 ‘홀딱벗고새’라고 부르는 검은등뻐꾸기 소리다. 취재에 동참한 조점선씨는 그 소리에 대해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엇을 듣고 싶은지 잠깐 생각에 잠겨 본다.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지 못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설 때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한 말이 되살아난다. “다치지 마.” 7년 전 그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첫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종주를 마쳤을 때, 그 아이에게 백두대간은 아빠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연민과 사랑을 보낸다. 그래서 나는 조금 슬프다. 아이가 삶의 신산을 어렴풋 느끼는 같아서다. 산에 갈 때는 한껏 행복해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원고 마감에 쫓겨 허둥대는 모습이 아이의 눈에도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생계령에서 산나물을 뜯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친절하게도 석병산 가는 길을 일러준다. 우리가 대간 종주자들인지 모르시는 것 같다. 어디로 내려가냐고 물으시기에 닭목재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신다. 대간 등마루를 경계로 등을 맞대고 사는 동리(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고개 이름을 모르는 것이다. 평생을 산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으신 것 같다. 유목민처럼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몰골이 이 할아버지의 붙박이 삶으로 하여 아프게 각인된다. 할아버지에게도 버거운 삶이 왜 없을까만, 당신의 어깨에 걸친 산나물 주머니에서 나는 한 편의 시(詩)를 읽는다. 그 시는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완전하게 타 버리는 나무의 삶 같은 것이다.

짝짓기에 한창인 새들의 푸른 함성을 들으며 석병산을 향한다. 순한 오르막, 적당히 냉기를 머금은 바람. 산과 인간이 짝짓기하기에 이보다 좋을 때는 없을 것 같다. 1시간쯤 지나자 품격 높은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잠시 쉬어가라는 뜻이겠다. 썩 괜찮은 조망처다. 뒤로 자병산의 헐벗은 모습이 눈에 아프지만, 새살이 돋기 시작하는 산기슭은 하늘이 붓질한 천진의 화폭이다. 연두에서 암록까지, 세상 모든 초록이 그 속에 다 있다. 처지는 것도 도드라지는 것도 없다. 화엄의 바다다. 만다라다.

석병산 지나면서는 반드시 뒤돌아볼 것

노송 옆 조망처에서 또 1시간 남짓 나아가면 대간은 성큼 키를 높이며(922m봉) 북쪽으로 몸을 튼다. 이곳에서부터 석병산까지는 산책하는 듯한 느낌이다. 900m대 고도를 약간씩 오르내린다. 우리는 저마다 취향대로 산길을 즐긴다. 디카에 들꽃을 담기도 하고, 저녁에 먹을 취나물을 뜯기도 한다.

석병산을 1시간 정도 앞둔 헬기장에서 빵과 과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다음 신들메를 고친다. 헬기장에서 흘러내리는 길이 눈부시다. 짙푸른 조릿대숲 위로 이제 막 잎을 피우기 시작하는 신갈나무는 초록빛 물보라다. 드문드문 끼어든 낙엽송 여린 잎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곱다.

석병산 동쪽 기슭의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이 가까이 다가오자 대간은 또 한번 키를 높인다. 석병산(1,055.3m)에서 우리는 맘껏 바람을 들이킨다. 재킷을 입지 않고는 한기가 들 정도다. 땀방울은 금방 자취를 감춘다.

석병산 정상은 그리 크지 않은 세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암봉 아래에는 암굴이 있는데 돌로 막혀 있다. 치성을 드리느라 켜는 촛불이 염려스러운 때문인 듯하다. 암봉을 오르내리는 동안 진달래를 만난다. 짙붉다 못해 파리해 보인다. 강원도 산골의 늦은 봄은 나른할 겨를도 없이 철쪽과 함께 깊어간다.

석병산에서 두리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약간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정상에서 바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온 길을 약간 되짚어야 한다. 자동차 시험장의 T코스로 생각하면 된다. 정상에서 내쳐 가면 만덕봉으로 향하게 된다.

석병산에서 두리봉을 향할 때는 절대 앞만 보고 내달려서는 안 된다. 정상에서 내려선 첫 허리에서 몸을 돌려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왜 이 산이 돌 병풍 산[石屛山]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서쪽 기슭 전체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아주 운치 있는 암벽이다.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달리는 종주는 반쪽짜리다.

필시 석병산은 동남쪽의 자병산과 짝을 이룬 이름일 것이다. ‘자줏빛 병풍 산’과 ‘돌 병풍 산’이라는 이 둘의 관계는 이제 무너져 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먼 훗날 자병산의 앙가슴 위로 다시 풀이 돋아 새로운 모습을 볼 때, 석병산 자락에서 자병산을 떠올리며 상전벽해를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석병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진달래꽃과 철쭉이 함께 피어있는 풍광을 만난다. 이 두 꽃은 시기적으로 함께 피는 꽃이 아니다. 같은 진달래과지만 피는 시기도 모습도 느낌도 사뭇 다르다. 잎보다 꽃을 먼저 꽃을 터트리는 진달래가 지고 나서야 철쭉은 잎과 꽃을 함께 피워 올리기 시작한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지만, 그렇지 못한 철쭉은 ‘개꽃’이다. 아무리 먹을 것 귀한 시절이 만든 이름이지만 ‘개꽃’은 좀 그렇다.

진달래꽃과 철쭉의 다른 느낌을 나는 이렇게 표현해 본다. 비유컨대, 진달래꽃이 색동옷 입고 나선 천진난만한 여자 아이 같다면, 철쭉은 이제 막 부끄러움을 알기 시작한 소녀 같다. 하지만 그 소녀의 귀밑머리는 아직 여리다. 내가 그려본 그 소녀는 또 한 소녀를 불러낸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

봄날 우리가 산으로 드는 것은,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가 엿듣고 있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그 소리는 무엇일까. 그리워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일까? 산벚꽃 열리는 소리일까? 나비와 벌의 날갯짓 소리일까? 어쩌면 나는 영원히 그 처녀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필경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절망처럼 희망한다. 산에서든 지하철 안에서든, 내가 하는 그렇고 그런 짓들이 문설주에 귀대고 무언가를 듣고 있을 처녀의 귀를 많이는 어지럽히지는 않기를.

끝없이 이어지는 진달래와 철쭉 사이로 드물게 산벚꽃도 피어 있다. 참 좋은 때를 누리는 즐거움에 겨워 두리봉(1,034m)을 오른다. 이름 그대로 둥두렷한 형국인데 정상 언저리는 제법 가파르다. 두리봉에서 삽당령까지는 구불구불 휘어 돌긴 해도 길은 편하다. 조릿대와 다래 넝쿨에 맨팔을 맡겨야 하지만 그것도 즐길 만한 수준이다. 한 여름에 숲이 더 우거지면 제법 팔이 아릴 것 같다.

두리봉을 떠난 지 2시간 남짓 지나자 삽당령(670m)으로 내려서는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삽당령에 선다. 35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고갯마루 서쪽에 산신각이 서 있고, 그 아래 도로 위로는 생태이동통로가 놓여 있다.

삽당령 샘터 옆 임도 가에 하루 별장을 세우고 나자 어둠살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맑던 하늘이 무거워진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있는 옷 다 껴입고도 떨면서 저녁을 먹는다. 낮에 뜯은 취나물로 뱃속에 봄을 가득 채운다.

우람한 바위에 붙어사는 소나무 거목

밤새 살짝 비를 맞은 아침은 맑다. 게으르게 아침을 먹고 삽당령을 가로지른다. 트레일은 산불감시초소 맞은편 숲으로 나 있다. 참나무숲과 조릿대숲을 잇달아 지나자 임도가 나타난다. 소슬한 아침 기운 때문에 입었던 재킷을 벗고 다시 숲으로 든다. 진달래 만발한 순한 능선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삽당령을 떠난 지 1시간쯤 지나자 방화선으로 벌목한 능선이 나타난다. 두릅나무와 소나무를 제외한 풀과 관목들은 깨끗하게 베어져 있다. 불모지대에 가까운 방화선 위로 드문드문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이채롭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지극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해찰을 부리며 들미재를 지나 석두봉(991m)을 오른다. 석두봉은 말 그대로 바위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사람 서넛도 붙어 서기 힘들 정도로 좁다. 정상을 알려주는 표지목이 없다면 그냥 스쳐 지날 법하다.

석두봉에서 내려서면 곧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면 훤칠한 참나무가 선 구릉에 가까운 형국의 조릿대숲이다. 산죽밭과 관목이 빽빽한 숲을 차례로 지나면 대간은 서쪽으로 허리를 튼다. 이곳에서부터 화란봉(1,069.1m)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심하게 오르내리지는 않지만 정상 직전은 한참 곧추선다. 이번 구간 중 가장 센 오르막이다.

하지만 그곳에 오르면 선물이 기다린다. 난초꽃처럼 예쁜 봉우리는 아니지만 정상을 지나면 우람한 바위에 붙어 사는 대단한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흔히 바위벼랑에 붙어사는 소나무는 그리 크지 않은데, 이곳의 소나무는 바위에 붙어서도 거대하고도 기묘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단체 여행 온 학생들처럼 얌전하게 기념 촬영을 한다.

화란봉 아래 소나무에서 조금만 내려서도 사람의 기운이 짙게 느껴진다. 나무 사이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논밭들이 두 다리의 긴장을 풀어 놓는다. 잘 가꾼 금강송 군락을 지나자 닭목령이다. 취재팀 모두의 얼굴 가득 봄이다. 우리는 이 기운으로 또 한 달을 살아낼 것이다.


#백두대간 고샅의 명소 … 송천 따라 아우라지까지

이번 구간의 종점인 닭목령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그 반대편 길을 택할 경우, 송천(松川)을 끼고 노추산 계곡과 구절리를 거쳐 아우라지를 둘러볼 수 있다.

닭목재에서 남쪽 행로를 택해서 410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노추산 방향으로 들면 계속 송천을 따라 아우라지까지 갈 수 있다. 말 그대로 물길 옆에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송천은 황병산과 매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남한강 상류다.

노추산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에 걸쳐 있다. 신라의 설총과 조선의 율곡이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는데, 그런 연유로 중국 노 나라와 추 나라의 기풍을 찾아볼 수 있다 하여 노추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노추계곡에서 발을 담근 다음 구절리를 지나면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다. 송천과 정선군 임계면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로 불린다는 이곳은, 현재 채록된 가사만 4,000여 가지에 달한다는 정선 아리랑에 비극적 사랑의 노래 하나를 보탠 곳이기도 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로 시작되는 가사의 사연인즉,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량과 가구미(가금)에서 살던 처녀 총각이 함께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는데, 밤새 내린 폭우로 물이 불어 그 약속을 이룰 수 없자 그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것이라 한다.

노추계곡과 구절리, 아우라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일삼아 가볼 만한 곳이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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