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9구간 / 대관령] 풍수

붉은 악마의 치우천왕은 고대 동이족 전쟁영웅
화이족 헌원황제는 삼황오제의 한 인물…지남철 역사도 이때 시작

▲ 대관령 표석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이 투혼을 불사르며 승리를 위하여 선전분투하고 있다.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대규모 길거리 응원도 동시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붉은 악마(Red Devils)’의 조직적인 응원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붉은 악마는 1995년에 결성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클럽이지만 이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붉은 악마 중에 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붉은 악마의 유래는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한 우리나라 축구팀은 예상외로 4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당시 외국 언론들이 우리 대표팀을 붉은 악령(Red Furies)으로 호칭하였는데, 이 표현이 ‘붉은 악마’로 번역되면서 영문으로는 쉬운 단어인 ‘Red Devils’ 로 수정한 것이다.

이후에 붉은 악마는 그 역사와 정통성을 상고시대의 전쟁과 승리의 신인 치우천왕(蚩尤天王)에서 찾게 된다. 그동안 역사적 인물인 치우천왕에 대하여 관심부족과 사료부족, 그리고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중화사관 등으로 인하여 상고사에 대한 인식과 연구가 미흡하였는데, 붉은 악마의 탄생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 치우천왕을 비롯하여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치우천왕은 누구이고 탁록대전의 진실은?

▲ 중국 하남성 탁록현 사당에 모셔진 치우천왕상.
판소리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를 보면 소위 ‘탈 승(乘) 자 노래’라는 대목이 있다. 내용인즉 이도령과 춘향이의 진한 농도의 사랑노름을 하는 대목 중에 치우(蚩尤)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헌원씨(軒轅氏) 습용간과(習用干戈) 능작대무(能作大霧) 치우(蚩尤) 탁록야( 鹿野)에 사로잡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지남거(指南車)를 높이 타고…’
판소리 가사의 내용처럼 황제는 습용간과(방패와 창을 다루는 법을 익힘)에 능하였고, 동이족인 치우는 능작대무(능히 짙은 안개를 만듦)하는 재주를 가졌다. 황제는 치우와의 전투 중 탁록(중국 하북성 탁록현으로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120㎞쯤 떨어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중국 각종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蚩尤作亂不用帝命於是黃帝乃徵師諸侯與蚩尤戰於 鹿之野遂禽殺蚩尤 而諸侯咸尊軒轅爲天子代神農氏是爲黃帝(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을 듣지 않으니, 이에 황제는 모든 제후들을 불러 탁록 벌판에서 치우와 싸웠다.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이에 모든 제후들이 황제헌원을 천자로 모시어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니 바로 황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헌원은 고대 중국의 제왕으로 황제의 이름으로 삼황오제(三皇=수인씨 燧人氏·복희씨 伏羲氏·신농씨 神農氏, 五帝=황제 皇帝·전욱 頊·제곡 帝 ·요 堯·순 舜)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중국 호남성 마왕퇴에서 출토한 백서 십육경(十六經)에 의하면 황제가 탁록전쟁에서 승리한 뒤 치우의 가죽을 벗겨 화살의 과녁을 만들고 머리카락으로 매달아 놓았으며 몸을 잘게 다져 육장(肉醬)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황제가 이 전쟁 초기에 패배한 이유는 치우가 전투할 때에는 항상 짙은 안개를 만든 상태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는 하늘에 기도를 하였더니 구천현녀(九天玄女)가 내려와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 그리고 지남거(指南車·현재의 나침반) 제작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탁록전투에서 지남거를 활용하여 치우를 물리치고 승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측 사료에는 대부분 치우천왕을 패배자로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산해경(山海經·고대 중국 및 국외의 지리를 다룬 지리서)에 나오는 치우의 형상은 목이 잘린 모습을 그려 놓을 정도다.


전쟁과 승리의 화신 치우천왕

그러나 한단고기(桓檀古記) 등 우리나라 역사서에 의하면 치우천왕은 단군조선 이전의 고대국가인 배달국(BC 3898-2333) 14대왕(재위기간 BC 2706-2598)이다. 치우천황은 도읍을 청구(靑邱·현 중국 산동성)로 옮기고 중국의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을 대통일한 인물이다.

치우천왕 즉위 당시의 배달국 국력이 약화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신병기 즉 철제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치우와 그의 부하장군을 보고 당시 미개인이던 중국인들은 동두철액(銅頭鐵額·구리 머리에 쇠 이마)이라고 표현하였다.

당시에 황제헌원은 치우천왕에게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켜 73회의 전투를 하였으나 모두 패했다. 마지막 전투인 74번째 탁록대전에서 지남거(指南車)라는 도구를 만들어 배달국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치우천왕에게 패배하여 항복하고 신시(神市)의 규범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하였다고 하였는데, 중국측 기록에는 지남거 등의 도구를 전쟁에 사용하여 탁록대전에서 승리를 하였다고 한다.

중국측 사료엔 모두 치우천왕을 패배자이며 나쁘게 묘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 중국 장수들이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 치우천왕에게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치우천왕이 황제에게 패배하였다면 중국 제왕들이 국가의 존폐가 달려있는 중대한 전쟁에 앞서 치우천왕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겠는가! 이런 점에서 중국측의 역사서는 근본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치우천왕의 묘를 복원하고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 황제는 화이족(華夷族·지금의 漢族)이고 치우천왕은 동이족(東夷族)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만 아쉬운 사실은 붉은 악마는 사천만이 넘는데 치우천왕의 사당은 아직 우리나라에 한 곳도 없다. 다만 황제가 전쟁에서 사용하였다는 지남거는 중대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안개 속의 대관령. 나침반은 정확한 방위와 지도를 판독하는 데 가장 편리한 도구다.

지남철은 누구 만들었는가??

백두대간 구간 중 대관령을 지나가는데 장시간 안개와 비가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방위개념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이런 때 필요한 등산장비 중 하나가 바로 나침반이다. 지금은 나침반이 없어도 위성을 이용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라는 첨단장비가 개발되어 나침반의 용도가 과거에 비하여 떨어졌지만, 중국의 4대 발명품인 나침반, 종이, 화약, 인쇄술 중 하나로 꼽는 것으로 보아도 당시 나침반의 발명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탐험가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에게는 생명과 같은 장비다.

과거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나침반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나침반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중국 동한(東漢)시대에 왕충(王充·27-100?)이 서기 85년경에 저술한 논형(論衡)이란 문헌에 ‘사남의 자루를 땅에 던지면 숟가락의 손잡이 부분이 남쪽을 향한다(司南之杓,投之於地,其 南)’라는 기록에 있다. 사남(司南)라는 숟가락 모양의 자성(磁性)를 가진 기구로 당시에 점복(占卜)도구로 사용하였다.

▲ 붉은 악마의 트레이드마크는 동이족이며 배달국의 14대왕인 치우천왕상이다(왼쪽), 고대 나침반인 사남(司南)의 복원모형도(오른쪽)
나침반이 가르키는 북쪽은 자북(磁北·magnetic north)이라고 하며, 도북(圖北·grid north)이나 진북(眞北·true north)과는 차이가 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북과 지구의 자전축에 따른 실제 북극인 진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북과 진북 사이는 도편각(圖偏角)이라고 하여 차이가 아주 적어 무시할 정도다. 그러나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여 정확한 방위를 사용하기 위하여 도자각(圖磁角·자북과 도북간의 차이)만큼 정치(定置)를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5도에서 10도 사이의 편차각이 되는데, 동해바다쪽으로 갈수록 편차각이 늘어나고 서해바다쪽으로 갈수록 편차각이 줄어든다.

11세기에 송의 과학자 심괄(沈括·1031-1095)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 1088년 저술) 24권 잡지(雜誌)편에 ‘方家以磁石磨針鋒, 則能指南, 然常微偏東, 不全南也. 水浮多蕩, 指爪及唇上皆可爲之, 運轉尤速, 但堅滑易墜,不若縷懸爲最善. 其法取新中獨縷, 以芥子許蠟, 綴于針腰, 無風處懸之 則針常指南. 其中有磨而指北者, 予家指南北者皆有之. 磁石之指南, 猶栢之指西, 莫可原其理(방술가는 자석으로 바늘 끝을 갈아 남쪽을 가리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정남이 아니다.

물에 뜨게 하면 많이 흔들려 움직이고, 손톱 위에서나 그릇의 가장자리 위에서도 모두 가능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빠르면 단단하고 미끄러워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실로 매다는 것이 제일 좋다. 이 방법은 새 명주실 한 올에 겨자씨 크기의 밀랍으로 바늘 허리와 같이 붙이고 바람이 없는 곳에 매달아 놓으면 바늘은 언제나 남쪽을 가리키게 된다.

바늘 중에는 마찰에 따라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도 있는데, 나의 집에는 남쪽과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이 모두 있다. 자석이 남쪽을 가리키는 것은 마치 잣나무가 서쪽을 가리키는 것과 같지만, 근원적인 이치를 알 수가 없다)’라는 기록이 있다. 즉 자석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지만, 진북(眞北)과 자북(磁北)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미 기술되어 있다. 자북과 진북 차이를 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자북점은 캐나다 허드슨만 북동부에 있으며, 또한 자남극도 역시 지리적 남극과 일치하지 않는다. 즉 자북극과 자남극은 서로 지리적으로 정확한 지구 반대편 지점이 아니며, 자극점이 최근 4~5년간은 매년 40km 정도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등산가들이 휴대용 GPS기기를 애용하여 나침반이 고전적인 장비로 생각하기 쉽지만, GPS는 방위측정 오차가 약 3도지만, 성능 좋은 나침반의 오차는 0.5도 이내로 정확성은 오히려 나침반의 성능이 뛰어나다. 그리고 나침반은 자성을 띤 나침을 이용하기 때문에 방위를 측정할 때 주변에 자침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있으면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GPS기기는 나침을 이용하지 않고 위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변에 자력이 있는 물질이 있어도 방위측정에 영향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GPS기기도 나침반처럼 영향을 받는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침반은 인류의 역사마저 바꿀 정도로 그동안 지대한 공로가 있었으며, 지금도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풍수지리에서는 중요한 필수품으로 방위를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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