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9구간 / 대관령] 르포

고즈넉한 고랭지 채소밭에
뻐꾸기 울음소리 나른하다
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구간

대관령 휴양림에서 아침을 맞는다. 안개로 하여 원근감이 지워진 소나무숲이 가까이 다가선다. 솔향기 머금은 바람이 몸속으로 숲을 옮겨준다. 지난 밤, 뜻밖의 비가 오는 바람에 닭목재에서 야영하기로 한 계획을 접었다. 한밤중에 무작정 휴양림을 찾았다. 다행히 빈 산막이 있었다. 예정에 없던 호사가 아침까지 계속된다.

이번 구간 닭목재에서 대관령까지는 실거리 약 13km로 운행 시간은 개인차를 고려했을 때 6~8시간 정도다. 따라서 대부분 구간 종주자들은 닭목재~대관령보다는 백봉령~삽당령, 삽당령~대관령으로 구간을 나눈다. 그러나 우리는 백봉령에서 삽당령까지를 한 구간으로 설정하여 조금 더 걷고, 이번 구간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보너스로 삼기로 했다. 다음 대관령 구간은 중간에 끊기가 애매하다는 점도 이번 구간을 최대한 짧게 설정하도록 했다.

애초의 계획은 닭목재 근처에서 야영하며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에도 없던 대관령 휴양림의 밤도 즐거웠다. 어쩌면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수많은 뜻밖’이 합쳐져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관령에 승용차 한 대를 옮긴 다음 닭목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비는 멎었다. 닭목재는 해발고도 680m로 제법 높은 고개다. 하지만 수직적 상승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일대가 높은 지대이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입간판에 쓰인 ‘전국 최고 감자 채종포 마을’이니 ‘청정 고랭지 채소 마을’이니 하는 말들이 이를 증명한다. 과거 겨울 폭설기면 고립되는 마을이었지만 요즘은 이러한 자연 조건이 오히려 마을을 살리고 있다. 고랭지 채소 재배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웰빙’이라는 시절 인연이 강원도 산골 마을을 활짝 열린 마을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산행 들머리는 산신각 오른쪽으로 난 농로다. 10분쯤 걸어 오르자, 이제는 모든 잎을 다 내놓은 낙엽송숲이 나타난다. 오른쪽 기슭으로 자작나무가 눈길을 끈다. 숲으로 든다. 어둑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녹음이 짙다. 잎사귀를 헤집고 간신히 땅으로 내려온 햇빛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잠시 후 숲을 빠져나오자 길과 맞닿은 두둑에 두릅을 심어 놓은 고랭지 채소밭이 나타난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나른하다.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기슭 전체가 풀밭으로 바뀐 능선 위에 몸을 세운다. 맹덕목장을 지나는 길이다. 5년 전 이 길을 지날 때는 한가로이 풀을 뜯던 한우와 양들을 봤었는데 지금은 그림자조차 없다. 멀리 보이는 축사에도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955.6m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휘돌자 고랭지 채소단지가 나타난다. 오른쪽의 서득봉(1,052.6m)은 안개에 갇혀 있다.

▲ 고루포기산과 능경봉 사이 대간 등성마루에서 바라본 옛 영동고속도로와 횡계 일대.
고루포기산을 향하는 길은 꾸준히 키를 높이지만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군데군데 쉼터를 만들어 벤치까지 놓아두어서 자주 쉬어가게 한다. 취재팀 모두의 발걸음은 거의 예비군 수준이다.

지난 취재 때 수줍게 곱던 얼레지는 어느 새 씨앗을 달고 있고, 화사한 꽃그늘을 드리우던 철쭉 잎도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원추리는 꽃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계절은 초록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경구도 이런 숲길에서는 공연한 잔소리다. 나무들은 마치 익명성을 즐기기라도 하듯 숲이라는 한 몸으로 동화되어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늘로 곧추 설 수 없는 다래덩굴과 자신의 몸을 빌려준 참나무가 형제애를 나누는 관계인지 그 반대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인간관계의 상호의존성도 이와 다르지 않을 텐데, 인간사는 왜 이리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일까?

초여름 숲길을 걸을 때는 나무도 보고 숲도 봐야 한다. 갈참나무 잎과 굴참나무 잎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는 일도 즐겁다. 그런데 왜 이 나무들을 우리는 참나무로 싸잡아 부르는 것일까? 숲이 아름다운 건 전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숲은 나무라는 개별자를 배제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그저 제 본성에 충실하며 저마다 빛나는 숲의 구성원이 된다. 굳이 이런 의식을 하지 않아도 숲은 우리의 심신을 정화한다.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숲길을 걷는 사람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를 통해서 나의 힘과 정신성을 발견한다”고 말한 사람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나는 소로의 이 말을 신뢰한다. 그가 살았던 월든 호수가의 숲이 그에게 들려준 말이기 때문이다.

맹덕목장을 벗어나서 두 시간쯤 키를 높이자 고루포기산(1,238.3m) 정상이다. 고압송전탑이 지나는 정상의 분위기는 볼썽사납지만 조망은 빼어나다. 북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황병산에서부터 대관령, 능경봉에 이르는 대간의 근골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대관령 고원 초지의 이국적 풍광에는 풍력발전기가 더해져서 더 이채롭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과학기술에 더 의존해야 하는 현실을 어둡게만 보고 싶지 않다. 언제 바람 좋은 날을 잡아서 아이와 바람개비를 돌려 봐야겠다. 물론 제 것은 제 스스로 만들어서.

▲ 폭염과 폭풍우를 앞둔 초여름의 정적을 머금고 있는 민들레 홀씨.

고루포기산을 내려서는 길은 경쾌하게 미끄러진다. 참나무 무성한 편안한 능선 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으로 대충 모양을 낸 주먹밥이다. ‘기갈이 감식’이라지만 마른 밥이 매끄럽게 뱃속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취재팀 가운데 최고령이자 가장 도회적(?)인 이동민 형이 취나물 몇 잎을 뜯어온다. 시장에서라면 참나물과 미나리도 구분하지 못 할 것 같은 손이 용하게도 취나물을 찾았다. 이것이 숲의 교수(敎授) 능력이다.

점심을 마친 다음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이름 하여 ‘산상 시낭송회!’ 그 동안 봄가을에 몇 번을 별렀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그동안은 무리였던 것이 사실이다. 갈 길은 멀고 다리는 무거운데 누가 시를 읽고 들을 것인가. 시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것이 전부인 시대에.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넉넉한 시간과 편안한 길이라는 든든한 후견자가 있지 않은가.


취재팀 모두에게 프린트한 시를 나누어 준 다음 김석우씨의 목소리를 빌렸다. 영화감독답게 낭송 솜씨가 훌륭했다.

메아리도 오지 않는 산 아래 앉아
그리운 이름 하나 불러 봅니다.
먼 산이 물소리에 잠길 때까지
입속말로 입속말로 불러봅니다.
내 귀가 산보다 더 깊어집니다.
슬픈 귀만 자꾸만 자라납니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귀 기울이면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귓속말로 귓속말로 들려옵니다.
내 눈이 어둠보다 밝아집니다.

박정만, ‘내 귀가 산보다’ 전문

▲ 이제는 구실을 잃어버린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 재생에너지 전시관과 연구용 풍력발전기가 들어서 있다.

나는 산을 찾는 일과 시를 가까이 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 한 편 쓴 적이 없어도 이미 시인이라고 믿는다. 또한 시인은 가슴 속에 늘 산을 품고 산다고 믿는다. 우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5공 군부의 고문) 시인의 요절을 애도하며 다시 한 번 시를 읽은 다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고루포기산에서 능경봉까지 대간 마루는 길게 허리를 낮추었다가 또 그만큼 허리를 든다. 물론 잔물결 같은 높낮이는 계속된다. 왼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 조망처에서 횡계와 옛 영동고속도로를 내려다보며 땀을 식힌다.

능경봉을 앞둔 지점에 제법 규모가 큰 둥근 돌탑이 서 있다. 근년에 만든 것 같은데 ‘행운의 돌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대간 종주자들을 위한 일종의 성황이겠다. 앞으로 이 돌탑은 오가는 대간꾼들이 올려놓는 돌로 하여 더 높아질 것이다. 그 높이와 무게만큼, 세상사 짐스러운 것들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돌탑에서 능경경봉으로 오르는 길은 돌탑과 같은 재질의 얇은 돌이 깔려 있다. 순례의 길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의식하며 능경봉을 오른다. 제법 가풀막이다.

▲ 고루포기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금강송.

능경봉(1,123m)은 기품 넘치는 봉우리다. 올려다볼 때는 그저 평범한 봉우리 같지만 정상에 서 보면 도저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능경봉은 ‘강릉을 굽어보는(陵景)’ 봉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국립지리정보원 지도에는 한자 표기가 없지만, 날씨만 좋으면 강릉 시내는 물론 경포호와 동해도 눈에 넣을 수 있다.

누구나 높은 봉우리에서 세상을 보면 관조적 자세가 될 것이다. 아등바등하는 현실이 한바탕 꿈 같기도, 작은 일에 목숨 걸듯 하는 세간사가 가소롭기도 할 것이다. 능경봉은 옛부터 영동 지역의 사람들에게 호연을 가르친 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능경봉에서 대관령까지는 30분 남짓 편안한 내리막이다. 대관령 마루의 옛 영동고속도로 휴게소는 재생에너지전시관으로 바뀌어 있다. 고갯마루에 선 풍력발전기는 연구용이라고 한다.

대관령은 이제 고개로서의 쓸모를 거의 잃어 버렸다. 터널이 뚫리면서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관문으로서의 기능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길을 버리는 것은 길이다. 가깝게, 빨리, 직선을 지향하는 길의 속성은 모든 길을 옛길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흔아홉 번 산주름을 굽이돌았다는 대관령 옛길 초입에는 애절하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신사임당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산 첩첩 내 고향 천리이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지락모지락
언제나 내 고향 돌아갈거나.

만약 신사암당이 다시 살아난다면 오늘의 대관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꿈결에도 달려가고 싶었던 고향이 가까워져 기뻐할까? 아니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가슴을 쓸어내릴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아니,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산을 오르고 자연을 가까이 하며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모른 체한다.


대간 고샅의 명소
대관령 소나무숲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신앙에 가깝다. 소나무 외에는 잡목으로 여기는 태도를 문제 삼아야 할 정도로. 소나무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도 하늘로 곧게 뻗은 금강송을 보면 감탄 이상으로 숙연함마저 느낀다. 강직과 운치와 푸른 기상 등 나무의 미덕을 사철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온 산을 덮은 금강송을 만나고 싶으면 대관령 소나무숲으로 갈 일이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에서 강릉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관령 옛길’이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이 산길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을 만날 수 있다. 강원도 강릉시 어흘리 일대로 그 면적은 400ha에 이른다. 산림청 기록에 따르면 1922년부터 1928년 사이에 사람이 일일이 씨를 뿌려 가꾼 숲이고, 소나무의 평균 연령은 약 80년이라고 한다.

한때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림의 60% 이상이었으나 지금은 26% 정도다. 만약 재선충이나 솔잎혹파리로부터 지켜내지 못하면 이 땅에서 소나무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천이의 결과가 아니라 병충에 의한 것이라면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관령의 소나무숲은 특별하다. 그곳의 소나무를 보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