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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열이 식기를 기다리는데 자전거를 탄 양을 치는 아저씨가 다가온다. 참 이 동네는 우리 기를 죽이는 사람이 많다. 아침의 오토바이 출현에 이어 이젠 자전거까지. 이 망막한 사막 어디에서 이들은 나타나는 것일까. 까만 얼굴에 금니를 한 아저씨의 배경 뒤로 점점이 흰 양떼가 보인다. "얼마나 키워요?" "많지 않아요. 겨우 100마리." 에릭님의 질문에 그가 답한다. 아마 이것이 그가 소유한 재산의 전부이리라. 사막의 가시를 먹여 키우는 양 100마리. 노숙을 한 것인지 그의 자전거엔 두꺼운 외투가 실려 있다. 양을 치는 아저씨의 출현으로 잠시 주의를 돌린 우리는 다시 엔진에 시선을 붙였다. 해결책 없는 고민에 빠진 사이 철없는 아내는 사탕봉지를 들고 양치기 아저씨와 사진을 찍느라 희희낙낙이다. 기계의 원리를 안다면 아내가 과연 저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 그래 모르면 뱃속은 편하지. 시간이 흐르는 사이 다행히 엔진 온도계가 정상치까지 내려왔다. 일단 출발해 본다. 부디 별 일 없기를 바라면서.
예비 연료통을 현창(縣倉;공중에 매단 곳간)에 얹었다. 백구 짐칸 위에 제작해 붙인 선반을 '현창'이라 명명했다. 고향 친구의 이름이다. 처음 여행 계획을 밝혔을 때 그도 함께 떠나고 싶어했다. 결국 삶으로부터 이만큼의 시간을 만들 수 없었던 현창은 후원금을 내 주며 여행의 성공을 빌어주었다. 고마운 건 그가 내민 현금이 아니었다. 내 여행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친구. 내 여행의 성공이 현실에 두 발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동경하는 생활인의 승리라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백구 등짝에 매달린 '현창'은 늘 내 궤적과 함께 한다. 아라싼여우치는 의외로 작다. 사막 한 복판에 있는 마을로는 상당한 규모이겠지만 지도에 크게 표기된 지역이라 가졌던 기대에 비하면 시골 소읍의 규모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몽골인 모습이 완연하다. 그러나 중국의 땅이다. 아직 관광객에게 개방을 허용하지 않은 지역이어서 인지 사람들이 관심이 많다. 길을 묻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차안을 구경한다. 먼지 피해 차에서 식사 해결
먼지 날리는 비포장길 100여km. 에어컨과 외부공기유입차단장치의 위대함에 새삼 고개를 숙이게 하는 구간이다. 간간이 트럭이 지나는데 대개는 창문을 열고 있다. 에어컨 없이 안개보다 자욱한 먼지를 뒤집어쓰는 중국 운전자의 인내는 더욱 위대하다. 장예(張掖)를 약 25Km 남겨 둔 비포장길에서 계란과 감자로 간단한 점심을 때웠다. 백양 나무 그늘과 수로가 있어 점심 장소로 삼았는데 그 길로 차가 한 대라도 지나칠 양이면 온통 분진 같은 먼지가 넓게 퍼진다. 식사시간마저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안에서 각자 해결해야만 한다. 오후 2시 20분. 2300m의 룽서우산(龍首山)을 넘었다. 드디어 마쭝산맥을 넘어 하서주랑으로 복귀한 것이다. 산을 넘자마자 다시 고속도로.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의 복도답게 탁 트인 전망이다. 오직 왼쪽의 치롄산맥이 우리와 함께 달린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맥은 흡사 수묵화의 정경이다. 이 교통로, 제국의 목구멍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길 위에 뿌려졌던가. 장건의 서역 파견 이후 서한은 흉노와 수 차례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기원전 127년 한무제는 장군 위청에게 3만 기병을 주어 내몽고 지역을 점령토록 했고 기원전 121년에는 곽거병에게 기병 1만을 주어 하서 지역을 점령했다. 200Km가 넘는 고속도로 구간은 탄탄대로였지만 2호차 과열을 막기 위해 시속 100Km로만 꾸준히 유지한다. 2호차 파라곤은 비포장 험로를 지나고 산을 넘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다행히 별 탈 없이 견뎌주고 있다.
오후 5시 54분. 주취안(酒泉) 근처 주유소에서 다시 주유. 하루에 가득 주유가 두 번이다. 주천. 곽거병이 흉노를 복속 시키고 성공적으로 하서주랑을 확보하자 한무제는 상으로 술 10통을 내렸다지. 허나 전 병사가 먹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정의의 곽거병이 제 입만 챙길 위인도 아니어서 그 술을 샘물에 부어 모든 병사가 나누어 마셨단다. 그래서 생긴 지명이 주천, 술의 샘이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때로 역사로 둔갑한다. 그 둔갑은 때로 우연에 의해, 때론 의도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오후7시. 자위관의 숙소에 도착. 정말 오래간만에 해를 보며 목적지에 입성했다. 오늘 이동거리 450Km. 속 불편한 남편을 위해 종일 운전대를 놓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
자위관은 만리장성의 서부종점이고, 고대둔사의 중요한 진이다. 개인적으로 꼭 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극(極)’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벽을 친 성곽 또한 묘한 끌림이 있다. 극에 위치한 성곽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발해만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르는 7200Km 장성(흔히는 6000Km라고도 한다). 동쪽 끝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한 장성은 중국 대륙을 둘로 나누며 숨가쁘게 달려 이곳 자위관에 닿는다.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믿기지 않는 소문도 있고 '세계최대의 무덤'이라는 악평도 있으나 인간이 이룩한 엄청난 흔적임은 사실이다. 그 장성의 끝자락에 섰다. 분단의 현실이 아니었던들 나와 백구는 배에 실려 바다를 넘지 않고 압록강을 넘어 산하이관을 거쳐 이곳에 이르렀을 것이다. 다음번 자동차 여행은 반드시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나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내 살아 생전에 중국땅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반드시 육로를 통해, 내 차로 그곳에 이를 것이다.
지금의 건축물은 명대에 세운 것으로 옹성이 둘러싸고 있는 광화문과 유원문을 중심으로 내성에 십 수 채의 누각이 있다. 성루 건물에 ‘천하웅관(天下雄關)’이란 현판이 눈길을 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 산하이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에서 시작한 장성은 이곳 천하웅관에서 끝을 맺는다. 결국 중화인들이 생각하는 ‘천하’는 여기까지였을까?’
햇살은 내려꽂히는데 모자조차 무겁게 느껴져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몸은 얼마나 천근만근이다. 얼마나 와 보고 싶었던 자위관인데···. 만리장성에서 떠올린 군대의 기억 조지훈의 시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병이 내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을 가르치느라 그런 줄은 알겠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이기에 병의 낮은 속삭임에 귀 기울일 수 없다. 잘 가라 친구. 생각 내키거든 다음에 찾아 주시게. 여정을 마친 후라면 그땐 부담 없이 자네를 대접할 터이니.
아래로 보이는 전경이 너무 낯익은 모습이다.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이 한 번은 느껴봤을 법한 풍경.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벽과 끝없이 펼쳐지는 무인지대의 땅. 그저 ‘삭막하다’는 감정 말고 왠지 눈물겨운 정서에 휩싸인다. 어떤 이유에서든 고향을 떠나 멀리 변방에서 선 병사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의 하루도 이러하였을까? “헌혈. 그 거무죽죽한 빛깔의 내용물이 비닐주머니에 담기는 걸 보며 여전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겉이야 군복을 입었거나 말거나 머리칼이 짧거나 길거나 속 안의 빛은 여전하다”-1993.8.16 일기 부분 “배가 부르다. 나는 이제 죽어도 좋으리라”-1993.8.20 일기 부분 “숟가락과 컵에 노란 테잎이 붙었다.‘눈병환자 전용’ 벌써 서너 명의 전염자가 나타나고 있다. B연병장 모퉁이 수도꼭지를 사용하는 나는 격리자다.”-1994.8.17 일기 전문 얼룩무늬 군복 속에 검게 그을린 피부 뿐 아니라 내면의 의식까지 변해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무렵, 헌혈하던 날의 기억과 화장실에 숨어 초코파이를 까먹던 날, 눈병이 걸려 단체 속에 있으면서도 격리의 생활을 해야 했던 기억들이 눈에 아린다. 지어낸 얘기처럼 누구나 안고 있는 ‘쵸코파이 한 상자’의 기억과 전역 후 꾸어 대던 ‘재입대의 악몽’처럼 수백 년 전 여기 수비병들도 공통의 기억들이 있었을까? 어딘들 없었으랴. '취해 사막에 눕다' 이곳 흙의 건축물 속에서 기법의 우아함과 인간 의지의 경이로움을 읽지 못하고 변방 수비병의 아픈 마음만 읽고 간다. 이것이 둔황의 양관과 옥문관을 꼭 가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취해 사막에 눕다. 전장에 살아 돌아온 이 몇이런가.'
葡萄美酒夜光杯 맛 좋은 포두주 야광배에 가득 담아 欲飮琵琶馬上催 마시려니 말 위의 비파소리 재촉한다 醉臥沙場君莫笑 내 취해 사막에 쓰러져도 그대여 비웃지 마라 古來征戰幾人回 예부터 전장에 나가 살아 돌아온 이 몇이더냐. '취와사장', 취해 사막에 눕다. 어쩐지 ‘체념’의 냄새가 아닌 ‘결의’의 냄새가 난다. 비장미. 저 마음을 알까? 전장에 나가 살아 돌아온 자 적으니 그냥 술이나 마시고 오늘 눕겠다는 저 마음을. 이곳에 서본 자는 안다. 오로지 그 바삭거리는 모래와 그 먼지 위에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서본 자만이 저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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