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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의 현벽장성과 암각화' 자위관을 나서 흑산(黑山)으로 나선다. 자위관에서 서쪽으로 6Km가량 떨어진 쉬안비창청(懸壁長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내게는 암각화가 있어 끌리는 곳이다. 그 암각화들 중 고깔모자를 쓴 사람들이 조련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이 고구려나 신라인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으니 직접 현지의 근·원경 사진을 촬영해 왔으면 좋겠다고 한 정형진 선생의 권고 때문에 꼭 가고 팠던 장소다. 현벽장성이면 어지간한 여행 안내서에 필히 등장하는 유명 장소인데 아직 도로는 정비 중이고 벌판에 난 길은 미세분자로 구성된 흙구덩이다. 이젠 먼지 속을 달리는 일은 인이 박혀 무감각한데 방금 전 세차를 마친 터라 속은 쓰리다.
이름도 거창한 '눈 덮인 화염산(雪蓋火焰山)' 요리의 실체는 바로 설탕 뿌린 토마토였던 것이다. 하여튼 중국 사람들의 음식 이름 짓는 재주는 알아줘야겠다. 뤄양의 닭발볶음 요리 '봉황의 발톱(鳳爪)'과 어떤 호텔의 푸성귀 음식 '사계풍성(四季豊盛)'에서도 느꼈지만 같은 음식이라도 작명에 따라 접하는 맛이 새삼 다르다. 암각화가 있는 장소는 여기서 흑산 골짜기로 들어가 4Km. 그리곤 도보로 다시 2Km를 걸어야 한단다. 그나마도 중요한 암각화엔 접근 허용이 안 된다는데, 안내인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위치라 하여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을 안내원으로 섭외했다.
천지사방이 평평한 사막이니 불도저로 쑥 밀면 길이 되기야 하겠지만 과적의 트럭들이 수없이 오가니 길이 길 꼴이 아니다. '휴게소에 대한 단상' "화장실 갈 분 계신가요?" 2호차에 무전을 보낸다. 오늘 길을 가는 방식이 참 단순하다. 한없이 간다. 마냥 간다. 배설할 땐 선다. 그리고 다시 간다. "예, 많습니다." 2호차의 답변. 사정은 1호차도 마찬가지. 오래들 참았다. "잠시 휴게소에 서겠습니다." '휴게소'라 말해 놓고 나도 멋쩍다. 휴게소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 화장실, 호두과자, 커피, 휴식…. 그런데 요즘은 이 단어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고 있다. 휴게소-차가 정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터. 상황이 허락하면 목숨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음식물 섭취도 가능함. 휴게소에 한 무리의 사람이 버스에서 내린다. 란저우로 가는 침대버스는 안시(安西)를 떠나온 지 12시간이 넘었다 한다. 지도상 거리로는 300Km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 거리를 그렇게 왔다면 도로상황이 대체 어떻단 말인가. 스스로 자위해 본다. 저 고물 버스와 우리 사륜구동이 같을 수 없다고. 우린 훨씬 빠른 시간에 안시를 거쳐 둔황에 이를 것이라고. 우리 일행 중 은근히 세바스찬인 나리님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나름대로 중국의 화장실에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그와 비례해서 갈수록 정도를 더해간다. 차마, 발 디딜 수 없는…. 아… 이쯤 하자. 나리님은 결국 옥수수밭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들도 제각각 나름의 장소로 흩어진다. 여행 전 아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화장실 문제였다. 그러나 걱정에 비해 잘 적응하고 있다. '성불(成佛)하세요'
도시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700위안. 농민의 일 년치 연봉이다. 짐승처럼 길에서 자고 못 먹는 한이 있어도 터전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야 한다. 먼 타지의 도로 공사 현장에 나서야 한다. 서쪽으로 갈수록 해가 길어지고 있다. 시간을 역류하여 나아간다는 미묘한 쾌감. 역류의 방편이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이어서 그 느낌은 더욱 특별하다. 이제 신장으로 들어가게 되면 베이징과는 꼬박 2시간의 시차가 생길 것이다. 밤. 이젠 해가 졌다. 우리의 진행로를 가로막으며 주행하는 화물차들의 꼬리등이 눈에 가득 찬다. 중국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 실크로드를 일주하고 돌아오겠다던 내 여행 계획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경탄의 말을 아끼지 않을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모르기는 중국에 도착하고 이날까지도 매 한 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지금, 자위관에서 둔황으로 향하는 비포장길에서 처절하게 깨닫는다. 앞범퍼가 땅에 박을 듯 처박혔다가 금세 목이 꺾이며 차 꽁무니를 땅에 대일 듯 튕겨 오를 때마다 내가 벌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짓인가를 뼈저리게 통감한다. 포탄에 패인 듯한 이 요철 구덩이 길에서 벌써 일곱 시간째. 아마 십칠만 칠천 번쯤 깨닫고 통감했을 텐데 아직도 요동은 여전하다. 이러다 성불하지 싶다. 바로 오른쪽에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막상 차가 다녀야 하는 길은 끔찍한 악몽의 길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과 길 듯 구를 듯 엉금거리는 대형화물차들. 끝없이 지속 되는 구덩이들. 길을 두텁게 덮고 바퀴를 삼키는 밀가루만큼이나 부드러운 흙먼지들. 어느 것 하나 녹녹하고 만만한 것이 없다. 대체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둔황으로 가는 길일까, 아님 이승을 떠나 연옥에 이르는 길일까.
이곳에서 묵을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고생하는 것, 내일 하루를 벌기 위해 예정대로 둔황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둔황까지의 80여km는 포장된 도로이니 무난할 터. 안시에서 둔황 가는 길에 들어서니 차체가 요동치지 않는다. 드디어 포장도로에 오른 것이다. 아… 차가 달리는데도 헤드뱅잉을 하지 않고 내장이 털럭거리지 않는다니. 이젠 그것이 이상하다. 시속 80∼90Km. 둔황으로 가는 길은 순탄… 하지 않다. 낮이었다면 이처럼 순탄한 길도 없겠지. 그러나 사위가 사막인 가운데 펼쳐진 외줄기 검은 도로는 가시거리 50m도 허용치 않는다. 오가는 차가 없어 안개등과 더불어 상향등까지 켜 보지만 반사체 없는 검은 허공이 빛을 먹어버리기는 매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이다. 빛은 어둠을 이기지 못한다. 가끔 있는 도로 위의 장애물들은 감으로 피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치라이트라도 달고 올걸. 지붕 위에 얹은 루프텐트 때문에 공간 확보가 쉽지 않아 그냥 떠나왔는데 지금은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새벽 3시 둔황 도착. 이젠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역사의 땅 둔황에 이르렀다는 감회를 상회한다. 이런 날의 잠은 달고 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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