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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있어도 사막이 그립다 아침. 막하연적(莫賀延磧)을 관통해 이동하는 방법을 접고 둔황에서 류위안(柳園)까지 나가 312도로를 타고 하미(哈密)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어제 정비소에서 써머스텟을 손 봤지만 차량의 상태가 검증되지 않아 위험수를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오전 8시 30분. 숙소를 나서 류위안 가는 도로에 올랐다. 장장 120km에 달하는 사막 도로. 이 길에서 교수님이 백구의 운전대를 잡으셨다. 어제 포기했던 사막횡단을 생각하면 오늘 운전하고픈 의욕이 없다.
"오 대장이 저런 사막길을 달렸어야 하는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다. 어제 건너지 못한 막하연적은 오래도록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길 놔두고 꼭 사막으로 들어갈 필요 없잖소?" "좋은 길 놔두고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 이 길을 떠난 것입니다요." "그런데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몰라. 난 어제 좀 무섭더라고. 사막에서 차가 빠지면 어쩌나 싶어서…." "안 빠진다는 걸 보여드리지요."
류위안을 지나 312도로에 진입하다가 닝샤후이주(寧夏回族)자치구 출신의 청년을 태웠다. 진입로에서 음식봉지를 들고 차를 세우던 청년. 우루무치의 따반청에서 오던 중 화물차가 고장이 나 먹을 것을 사러 나왔단다. 일행들은 도로가에서 차를 고치는 중이라 하고.
내친김에 따반청에서 왔으니 '따반청 꾸냥(達坂城姑娘)'을 알겠다 물었더니 자신은 신장 노래는 하나도 모른다 한다. 그래서 철봉씨에게 아느냐 물었더니 아예 노래로 화답한다. "따반청 돌길은 단단하고 평탄해 수박은 크고 달아요 저기 가는 아가씨 머리칼은 길고 두 눈은 맑고 예쁘구나 그대여 시집 갈 땐 다른 사람 말고 부디 내게 오구려 백만금 재물과 혼수를 자지고 자매와 함께 마차를 타고 내게로 오구려" 물론 중국어로 불렀다. 내용이 이렇다는 것이고. 1950년대 하방(중국에서 당원과 국가공무원을 농촌과 공장에 보내 노동에 종사케 하고 도시의 학교 졸업생들을 변경지방에 배치하여 그곳에 정착케 함으로써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의 벽을 헐고 지식인집단으로 하여금 낙후된 변경지방의 농촌 근대화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운동)된 베이징 음악가 왕뤄빈(王洛賓1913-1996)이 작사·작곡한 민요로 지금은 신장성 제일의 민요가 되었다. '리'가 내렸다. 그와의 대화 그리고 철봉씨의 노래로 사막을 건너지 못해 굳었던 마음이 풀렸다. 그래 사람은 우울할 때 대화를 해야 해. 내겐 아직도 동투르키스탄인 신장웨이얼 자치주
중국 전체 면적의 1/6, 한반도의 크기의 7배가 되는 황무지 땅. 성도(省都)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민족인 위구르(웨이얼)족을 비롯해 47개 민족 1680만명이 살고 있는 곳. 만감이 교차한다. 내 머릿속에서 이 황무지는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이다. 그러나 현실은 신장웨이얼(新疆維吾爾) 자치주로 존재한다. 본시 투르키스탄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한 좁은 의미의 중앙아시아라 할 수 있는데 파미르 서편의 서투르키스탄은 구 소련의 붕괴로 여러 나라로 독립되어 있지만 파미르 동편의 동투르키스탄은 여전히 중국의 지배에 놓여있다. 새로 얻은 영토 '신강(新疆)'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지금도 위구르족 독립 운동의 기운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중국의 통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으며 이곳의 천연가스와 석유는 더더욱 중국이 동투르키스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동인이 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꾸준한 한족화 정책이 진행되어 한 때 75%를 넘던 위구르 족의 비중은 45%에도 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반목을 빗대어 위구르족은 이렇게 말한다. "위구르족은 어머니가 낳고 한족은 기차가 낳는다." 중국이 변경 지대를 향한 철도와 도로 확충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은 아닌가보다. 오후 2시. 둔황으로부터 400km를 달려 하미에 닿았다. 하미과의 본고장에 왔으니 하미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2.5위안짜리 하미과 한 통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한다. 원래 이곳에서 300여km 더 가야하는 싼싼(善善)현이 원산지이나 청대에 황궁에 진상품으로 올리면서 하미지역의 과일이라 '하미과'라 둘러댄 것이 이름의 유래다. 중국의 물가가 한국에 비해 많이 싸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음식, 특히 과일 먹을 땐 여실히 느낀다. 2호차 파라곤, 다시 멈춰서다
하미를 떠난 지 1시간. 얼푸(二堡) 요금소 지나 20km 지점, 그러니까 하미로부터 80km 지점을 지나는데 뒤의 2호차가 스르르 멈춘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정차인가? 거리가 멀어져 무전이 되지 않는다. 1호차를 돌려 2호차가 정차한 곳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엔진이 식기를 기다리는 일. 그 다음은? 하미로 다시 돌아가 정비를 할 것이냐, 아니면 싼싼까지 진행해 거기서 정비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온 길을 되짚어 가야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아직도 200km가 넘게 남은 싼싼보다는 80km의 하미가 더 가깝다. 도시의 규모로 봐도 하미쪽이 훨씬 크니 제대로 된 정비소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력운행은 엔진을 더 상하게 할 것 같아 견인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거리가 좀 있는지라 1호차에 견인줄을 걸어 운행하는 건 불편할 것 같아 아예 하미에서 견인차를 부르기로 했다. 어차피 하미에 도착해 정비소 찾는 시간도 줄일 수 있고. 다행히 휴대전화가 터진다. 사막을 가로질러 놓은 도로인지라 송신소 가까운 곳은 통화가 되는데 어떤 곳은 되지 않는다. 되다가도 도로 아래로 내려서면 통화가 끊기는 곳이 많다. 살을 꼬집는다고나 할까. 따끔따끔하게 때린다고나 할까. 햇살 아래 몇 분을 서 있으면 얼먹은 사람처럼 벙벙해진다. 온도계를 땅에 내려놓으니 지표면 온도가 62도까지 올라간다. 역시 신장의 햇살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불에 데인 듯 따가운 지경인데 정비담당인 자포님은 걱정이 깊어 아무 감각이 없다.
이걸 도대체 문화적 차이라고 해야 하나 황당무계라고 해야 하나. 저거에 끌려갈 마음이었으면 처음부터 1호차로 끌었지 이 뙤약볕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겠나 말이다. 소위 '레카차'를 요구한 것인데 기사 말에 의하면 하미 어디에도 그런 '레카차'는 없단다. 우리의 실망스런 시선을 몸으로 느꼈던지 '견인차'를 표방한 승용차 운전자가 말한다. "엔진을 힘 있는 것으로 바꿔서 문제없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다. 사막횡단과 오지탐험이라는 거창한 계획은 고사하고 포장도로조차 운행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젠 어찌해야하나… 기일을 정해놓고 길을 움직이는 게 이토록 부담스러울 줄이야. 여기서 구멍 나는 일정은 뒤 일정에 줄줄이 차질을 초래할 게다. 차량의 문제로 이제 얼마의 시간을 지체해야할지, 또 남은 타클라마칸 구간과 아얼진산, 그리고 고산지대인 칭하이성은 과연 무사히 지나게 될지….
중국인 기술자의 말대로 개스킷 문제였으면 좋겠다. 우루무치에 쌍용 엔진을 취급하는 부품업체가 있으니 그 쪽에서 조달하면 되고, 안 되면 만들어 쓰면 된다 한다. 제발 이번에는 2호차의 엔진 문제가 완전히 잡히기를.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데 걱정이 많다. 일어나 걸으라, 너의 뼈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으니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하미역 근처에 숙소를 잡아 들어왔다. 계산대에서 아침식사가 8시부터 10시까지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대개 6시부터 8시까지였는데 여긴 왜 이리 늦지? 그런데 가만 보니 퇴실시간도 오후 2시다. 다른 데 보다 2시간이나 늦다. 오호라! 생각해보니 여긴 신장이다. 신장은 베이징과 2시간의 시차가 나지만 중국은 원칙적으로 베이징 시간을 표준시로 정해 전국을 통일하여 쓰고 있으니 아침 시간대가 이렇게 늘어지는 것이다. 이런 표준시 정책에도 신장사람들은 신장 시간을 쓰기도 한다는데 시간표현에 유의할 일이다. 늦은 밤. 새벽 1시인데 저녁밥 먹은 지는 겨우 3시간이 지났다. 좀체 잠이 오질 않는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겐 이 여행이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아내와 내가 꾸어온 소중한 꿈이고 반드시 성취해야할 젊은날의 희망이므로. 그렇지만 안절부절할 건 없잖은가. 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다친 사람도 없고 그저 차 한 대의 엔진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뿐 아닌가. 아직 1호차가 남아있다. 내 누누이 사람들에게 이르지 않았던가. 사람을 죽이는 건 '죽음'이 아니라 '절망'이라고. 지금은 희망을 꿈꿀 때다.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대의 뼈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으니."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경구를 곱씹으며 잠을 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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