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4구간] 덕유산 식생

깃대종 광릉요강꽃과 날개하늘나리를 살리자

백두대간 능선의 희귀식물 보전방안 찾아야

▲ 광릉요강꽃.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8종의 멸종위기식물 I급 가운데 하나로서 절멸위기에 처한 식물이며, 광릉, 화천 등 중부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같은 북방계 침엽수들이 한반도에서 차츰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기상학자들은 평균기온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겨울철 가장 낮은 온도는 간헐적으로 계속하여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100년 내에 충청 지방에 난대성 활엽수가 자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난대성 식물들이 겨울철 간헐적인 맹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물 분포는 기후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 산지 지역에서 기후는 그 산의 위도와 고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로 인해 산에 살고 있는 식물의 종류와 숫자가 달라진다. 한반도의 고산 거의 모두를 거느리고 있는 백두대간은 고도에 의한 식물 분포면에서 흥미로운 점들을 많이 제공한다.

날개하늘나리 분포의 남방한계선

지리산이나 덕유산처럼 저위도에 자리 잡은 산에서도 북부지방에나 분포할 만한 식물들이 자라는 것은 고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그만큼 기온이 낮기 때문에 북방계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식물들의 분포는 빙하기 잔존식물 이론으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빙하기 때 저위도 지방까지 내려와 자라던 북방계 식물들이 기온이 올라가면서 저지대에서는 살지 못하고 높은 산에서만 살아 남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덕유산 일대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백합과의 날개하늘나리가 그런 예에 딱 맞는다. 이 식물이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다. 백두산 등 북부 지방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식물은 남한에서는 태백 일대에서 발견된 적이 있을 뿐이었다. 꽃이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채취꾼들의 표적이 되어 발견되자마자 사라질 위험이 높은 정도이기 때문에 자생한다면 눈에 띄기 쉬운 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 다른 곳에서 자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식물을 조사한 적이 있는 국립수목원 이병천 박사로부터 이 식물이 덕유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1997년에 현장을 확인한 바 있다. 궂은 날씨였고, 꽃의 상태도 좋지 않아서 사진으로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슬라이드로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다.

금방망이라는 국화과 식물은 그 동안 한라산 정상에서만 살아남은 빙하기 잔존식물로 알려져 왔다. 이후 덕유산 능선과 태백산 일대에서 발견되었다. 덕유산에서는 필자 등이 1997년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최근 이 식물은 뜻밖에도 서해안 섬들에서 발견되어 식물지리학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한라산과 백두대간의 몇 산에만 매우 드물게 자라는 고산식물이 백령도 등 서해안 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저지대에, 그것도 비교적 흔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혹시 다른 종으로 분화하여 적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아직 이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러한 생각은 백두산 등지에서 자라는 삼잎방망이라는 식물이 금방망이와 매우 유사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삼잎방망이는 금방망이와 여러 특징이 비슷하고 잎 모양만 다른데, 그 잎 모양이라는 것이 연속적으로 변하여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금방망이가 속하는 국화과 식물들은 현재 가장 왕성하게 종분화를 하고 있는 식물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 백령도의 금방망이는 덕유산의 금방망이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앞으로의 연구가 주목된다.

날개하늘나리나 금방망이는 능선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저위도지만 고도 높은 백두대간이 이 식물들의 분포를 결정지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식물이 덕유산 일대에서 발견된다.

광릉요강꽃.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식물은 경기도 광릉에서 발견되어 우리말 이름을 얻었다. ‘요강’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에서 유래하였다. 다른 이름은 치마난초인데, 잎에 난 주름과 잎 모양이 치마를 연상하게 하므로 붙여졌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명지산, 천마산, 포천, 화천 등지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들 중부 지방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이곳 덕유산 일대에서 발견된 것은 1990년대였다. 원광대학교 길봉섭 교수가 처음 보고하였으며, 필자는 1997년 이후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해왔다.

원래 분포지에서 300km 떨어진 곳에 새 자생지

광릉요강꽃의 덕유산 분포는 빙하기 잔존 이론으로서는 해석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추운 곳에서만 사는 북방계 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빙하기 잔존식물이라면 불연속 분포를 하더라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경기와 강원 일대에서만 한정되어 분포하는 식물이 뚝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덕유산의 광릉요강꽃은 원래 분포지인 경기와 강원의 그것에 비해 더욱 큰 가치가 있다 하겠다. 즉, 보전에서 있어서도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덕유산 일대에서 비교적 흔하게 발견되는 흰참꽃이라는 진달래과의 떨기나무도 광릉요강꽃 못지않게 분포가 특이한 식물이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이 식물은 우리나라의 경우 지리산, 가야산, 남덕유산 정상 일대의 바위지대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홋카이도부터 큐슈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서 자라는 식물이 한반도에서는 일본과 가까운 동해안 지역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 지역에만 분포하는 것이 흥미롭다. 진달래나 철쭉나무와 같은 속에 속하는 식물이지만, 꽃이 흰 색으로서 매우 작으므로 쉽게 구별된다.

덕유산 국립공원 안에서는 남덕유산, 서봉 일대의 바위지대에서 발견된다. 남덕유산 일대의 고도가 조금 낮은 곳에 분포하는 노각나무도 분포 영역으로 볼 때 흰참꽃과 비슷하게 백두대간을 축으로 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만 자라서 특이하다. 6월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이 나무는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가야산 등지에 분포한다.

육십령에서 남덕유산을 거쳐 무룡산, 백암봉, 빼재에 이르는 백두대간 40여km 구간 가운데 고산식물 또는 북방계 식물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은 남덕유산 일대다. 특히 서봉과 남덕유산 일대의 암반이 발달한 지역에 많은 종류의 고산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등대시호, 솔나리, 땃두릅나무, 구름병아리난초, 가야산은분취, 참바위취, 큰앵초, 개회향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솔나리는 현재 환경부가 멸종위기식물 II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식물로서, 북방계 고산식물이다. 강원도에서는 설악산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남쪽에서는 몇몇 고산지역에서만 발견된다. 특히 남덕유산의 솔나리는 가야산 국립공원, 구미의 금오산과 함께 이 식물 분포의 남방한계선을 형성하는 지역에 자라는 것이므로 의미가 더욱 크다.

등대시호 역시 남덕유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이 여러해살이풀은 남한에서는 설악산과 소백산 도솔봉, 속리산 등지의 바위지대에만 한정 분포하는 식물로서 솔나리보다도 생육지나 개체수가 적은 식물이다. 도솔봉과 속리산 일대에는 몇몇 개체만이 자라고 있지만, 남덕유산 일대에서는 이보다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남덕유산에서 백암봉을 향해 북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선백미꽃을 꼽을 수 있다. 설악산 등 몇몇 곳에서만 알려져 있는 이 식물은 자생지가 드물고, 꽃 색깔이 노란 색 또는 갈색으로 변이가 있으므로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려운 종류다. 백두대간 덕유산 구간의 능선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곳 개체들은 6월에 노란 꽃이 핀다.

이밖에도 이곳 능선에는 북방계 희귀고산식물인 두메닥나무, 환경부 멸종위기식물 II급인 자주솜대, 갈퀴현호색, 고본, 가야산은분취, 참바위취, 애기앉은부채, 한라부추, 죽대, 산오이풀, 꽃며느리밥풀, 난장이바위솔, 모싯대, 털쥐손이, 지리바꽃, 개쑥부쟁이, 까치밥나무, 정령엉겅퀴 등이 자라고 있다. 덕유산을 대표하는 식물로서 원추리 군락을 드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뿐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식물들이 덕유산 능선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조금 비껴나 앉은 덕유산 상봉 향적봉 일대에서도 북방계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일대의 주목 군락이 특징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속에 두메닥나무, 선좁쌀풀, 나도바람꽃, 족도리풀, 덩굴개별꽃, 꿩의다리, 모데미풀, 동의나물 등이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덕유산 일대에서는 꽃 색깔이 다른 등 일반적인 종류들과 다른 특징을 보이는 변이체들도 발견된다. 보라색 계통의 꽃이 피는 벌깨덩굴, 처녀치마, 동자꽃, 한라부추, 꼬리풀, 속단 가운데에 흰 꽃을 피우는 흰벌깨덩굴, 흰처녀치마, 흰동자꽃, 흰한라부추, 흰꼬리풀, 흰속단 등이 발견되었고, 노란 열매를 다는 겨우살이와 달리 붉은 열매가 달리는 붉은겨우살이도 자라고 있다.

이들은 학술적으로는 품종 정도로 구분하여 그리 특별하게 다루지 않지만, 사진의 피사체로서는 호감이 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생태학적으로는 이처럼 변이체를 많이 키워낸다는 것은 그만큼 백두대간 덕유산 일대의 생태적 환경이 다양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귀한 식물 많지만 다양성 위협 요인도 날로 늘어

덕유산 숲속에서 발견되는 식물 가운데 특기할 만 것으로는 모데미풀, 꼬마은난초, 남부승마, 나도제비란, 미치광이풀, 수정란풀, 가지더부살이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데미풀은 남덕유에서 북덕유를 향해 북으로 달려오던 백두대간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리는 백암봉~비봉 능선의 북쪽 수계가 이루는 숲속에서 발견된다. 개체수가 많을 뿐더러 생육 상태도 좋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태백산, 점봉산, 설악산 등지에 분포하는 이 식물은 현재 소백산 일대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고, 한라산과 설악산이 각각 분포의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이 되고 있다.

한라산, 강원도 광덕산 등 백두대간이 아닌 몇몇 산에서도 자라고 있지만, 주로 백두대간 상의 산들에서 발견된다. 이 때문에 필자는 남한의 백두대간을 대표하는 풀꽃을 꼽으라면 조심스레 이 식물을 추천하고 싶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속 식물이며,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에 꽃이 핀다.

꼬마은난초는 주로 따뜻한 곳에 자라는 식물이다. 제주도, 울릉도 등지에 자라는데, 덕유산 일대에서는 적상산에서 발견되었다. 이른 봄 숲속에서 가냘프게 피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발견할 수 있는 꽃이다.

남부승마는 최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현우 박사가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발표한 식물로서 아직까지 식물도감에도 기록되지 않은 종이다. 남부승마라는 우리말 이름은 필자가 처음 쓰기 시작하였는데, ‘남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의 숲속에서 자라며, 꽃은 7~9월에 핀다.

지난 2월부터 발효된 야생동식물보호법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과 식물을 멸종위기식물 I급과 II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64종의 식물을 멸종위기식물 I급 및 II급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가운데 덕유산에 분포하는 식물은 멸종위기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을 비롯하여, 멸종위기식물 II급인 솔나리, 가시오갈피, 자주솜대 등이다. 가시오갈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덕유산 일대에 가장 많은 숫자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덕유산은 이렇듯 귀한 식물들을 키워내고 있지만, 날로 식물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한 원로식물분류학자 이영노 박사는 사범대학을 갓 졸업하고 20대에 덕유산 자락의 안성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덕유산 식물을 조사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향적봉 부근에서 설앵초라는 희귀고산식물을 발견하여 채집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필자의 조사를 포함한 이후의 어떤 조사에서도 이 식물은 다시 발견되지 않고 있다.

덕유산 구간은 높이와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거리가 길다는 것은 산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넓고 높은 산이 덕유산인 셈인데, 이런 덕에 덕유산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러 식물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 삿갓재대피소가 지어질 때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적이 있다. 북덕유와 남덕유를 하루에 종주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주 탐방객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백두대간 덕유산 구간의 많은 희귀식물들이 보전될 수 있었는데, 중간에 산장을 지으면 종주 등산객을 유입하는 결과를 낳고, 이는 결국 덕유산의 희귀고산식물과 고산생태계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탐방객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립공원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삿갓재대피소를 짓는다는 명분이 지금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 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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