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17구간] 두타산 식생

신갈나무숲에 금강초롱·대흥란 자란다
만병초, 두루미꽃, 산마늘 등 고산식물 생육…보춘화는 절멸상태

태백시 피재에서 낙동정맥을 가른 직후 백두대간은 줄곧 동경 129도선 오른쪽을 달려 올라간다. 피재에서 푯대봉(1,010m), 덕항산(1,071m), 황장산(1,059m), 댓재를 거쳐 두타산(1,353m)에 이르기까지 30여km를 북으로 달리는 동안 직선에 가까운 남북 방향의 산줄기를 형성한다. 이런 백두대간이 두타산에 이른 후에는 청옥산(1,404m)을 거쳐 고적대(1,353m)까지 북서쪽으로 똑바로 뻗어나간다. 이후 백두대간은 계속 서쪽으로 치우친 채 북진을 계속하게 되는데, 평안도에 이르면 동경 127도선까지 서진하게 된다.

동경 129도선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달림으로써 백두대간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 잡은 구간이 되는 건의령에서 두타산에 이르는 30여km 산줄기. 그 산줄기 가운데서 가장 높은 산이 두타산이다. 이 구간 최고봉인 두타산은 구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간의 맨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태백 일대에서 해발 1,500m대를 자랑하던 백두대간이 이 구간을 달리며 숨을 고른 후 다시 1,300~1,400m대의 고도를 유지하는 곳이 바로 두타산인 셈이다. 이렇게 다시 높아진 고도는 고적대를 기점으로 다시 낮아져서, 고루포기산(1,238m)에 이를 때까지 한참 동안이나 1,000m대 고도를 유지한다.

금강초롱꽃 남방한계선으로 추정돼

이렇게 높아진 산의 높이는 식물상에도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고도가 높은 태백산 근처에서 볼 수 있었던 분비나무, 털진달래, 만병초, 꽃개회나무, 털쥐손이, 두루미꽃, 산마늘 같은 북방계 고산식물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희귀식물로 꼽을 수 있는 미치광이풀, 도깨비부채, 등칡, 수정난풀, 왜우산풀, 털댕강나무, 청괴불나무, 게박쥐나물, 연령초 등이 분포함으로써 식물학적인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조건을 이룬다.

두타산의 주요 식물 가운데 하나인 수정난풀은 전국에 자라기는 하지만 드물어서 보기 어려운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전체가 흰 빛을 띠어 녹색 부분이 전혀 없는 식물이며, 엽록소가 없으므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주변의 부엽토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여 살아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초여름에 잠깐 나와서 꽃을 피운 후 지상부가 시들어 죽는다. 두타산 몇몇 곳에서 6월 초순에 꽃이 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저지대의 소나무숲에서도 살고 고도가 높은 낙엽활엽수림에서도 생육하고 있다.

설악산과 금강산 일대에 가장 많이 자라는 금강초롱꽃도 이곳에 나타나는데, 두타산은 이 식물 분포의 남쪽 경계선으로 추정되어 의의가 크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분포지역을 알 수 없는 식물이기도 하다. 북한지역을 답사할 수 없어서 아직 그 분포상태를 정확히 밝힐 수 없기 때문인데, 남한에서의 분포는 최근 거의 밝혀지고 있다. 즉, 동해쪽 남쪽으로는 이곳 두타산, 내륙쪽 남쪽으로는 원주 치악산, 남서쪽으로는 양평 용문산과 유명산 등을 경계선으로 하여 분포지도를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진달래과의 만병초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상록성 떨기나무지만 남방계 식물이 아니라 북방계 식물이다. 설악산 등 높은 산의 고지대 능선에 자라며, 남쪽으로는 지리산까지 내려와 분포하기는 하지만 지리산에서는 개체수가 많지 않고, 지리산 이후에는 태백산부터 다시 나타나기 시작해서 강원도의 높은 산들에서 자라고 있다. 두타산과 청옥산 일대의 해발 1,200m 이상의 능선에서 여러 개체가 발견된다.

백합과의 두루미꽃은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서 남한의 여러 산들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자생하는 곳이 모두 고산지역이다. 빙하기때 남하했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높은 산으로 피신하여 살아남은 대표적인 빙하기 잔존식물 가운데 하나다. 고산지역이 아니고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진정한 고산식물이라 할 수 있다.

두타산 일대는 동해쪽으로는 경사가 급하고, 내륙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는 피재 이후 백두대간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경동지괴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급경사를 이룬 동해쪽 북쪽은 삼화사를 품은 무릉계곡을 길게 형성하고 있으며, 백두대간과 두타산~쉰움산 능선으로 구획되는 지역은 넓은 분수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의 물은 삼척 오십천으로 유입된다. 또한, 경사가 완만한 두타산 서쪽과 남쪽에서는 골지천이 발원하여 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골지천이 발원하는 두타산의 남서쪽 사면에는 가슴둘레 지름이 80cm 이상 되는 신갈나무나 피나무 같은 오래된 낙엽활엽수가 많이 남아 있는 등 식생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군데군데 지름 1m가 넘는 소나무 고목들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드리 큰 소나무들이 붉은 줄기를 자랑하며 군락을 이루어 자라기도 한다. 계곡 주변에서는 황철나무와 갯버들 고목이 발견되며, 자연성이 높은 지역에 분포하는 양치식물 속새가 큰 무리를 지어 자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큰황새냉이, 선괭이눈, 박쥐나물, 도깨비부채, 곰취 등 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서쪽 사면의 식생을 살펴보면 900m 이하의 지역에는 신갈나무 군락과 소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고, 900m 이상의 지역에는 신갈나무 군락 외에 사시나무 군락, 잣나무 군락, 거제수나무 군락 등이 발달해 있다.

동쪽 자락은 대흥란 북방한계선

해발 900m 이하 지역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 외에도 물박달나무, 서어나무, 까치박달, 굴참나무, 당단풍나무, 피나무, 함박꽃나무,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등의 큰키나무와 생강나무, 철쭉나무, 진달래, 개옻나무, 조록싸리, 다래나무, 등칡, 고광나무, 물참대, 산수국 등의 떨기나무, 그리고 구실사리, 노루오줌, 수정난풀, 기름나물, 꽃며느리밥풀, 초롱꽃, 단풍취, 참취, 맑은대쑥, 대사초, 산거울 등의 풀이 자라고 있다.

해발 900~1,200m에는 신갈나무 군락, 사시나무 군락, 소나무 군락 등이 발달해 있는데, 잣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팥배나무, 고로쇠나무, 당마가목, 다릅나무 등의 큰키나무가 섞여 자라고 있다. 중간층에는 고광나무, 산앵도나무, 털진달래, 철쭉나무, 오갈피나무, 회나무, 괴불나무, 털댕강나무, 붉은병꽃나무, 쇠물푸레나무, 조릿대 등이 생육하고 있다. 숲 바닥에 자라는 풀로는 꿩고비, 산꿩의다리, 병조희풀, 도깨비부채, 노루오줌, 민눈양지꽃, 터리풀, 눈개승마, 애기괭이밥, 큰앵초, 벌깨덩굴, 쥐오줌풀, 참취, 풀솜대, 우산나물, 은방울꽃, 산거울, 은대난초, 감자난초 등이 있다.

이 지역에 분포하는 털댕강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떨기나무로 석회암지대 지표식물 가운데 하나다. 충청북도 단양, 음성, 강원도 영월, 정선, 평창, 태백, 삼척, 경기도 명지산 등지에 분포하며, 두타산의 중복 이상에서 자라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취급하기도 했으나, 고 김태진 박사의 최근 연구에서 중국에 분포하는 것과 같은 종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이 종은 황하 이북에서 만주, 우수리를 거쳐 중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울릉도에 분포하는 섬댕강나무도 같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어린줄기와 화관, 열매 등에 털이 많아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꽃은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5월까지 볼 수 있으며, 보통 2개씩 달리고, 꽃받침은 4갈래로 갈라진다.

해발 1,200m부터 정상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잣나무~주목 군락이 발견된다. 주목과 분비나무가 많고, 어린 잣나무도 관찰된다. 생열귀나무, 산앵도나무, 개회나무, 꽃개회나무 등의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로는 눈개승마가 대표적이며, 그밖에도 혹쐐기풀, 요강나물, 누른종덩굴, 털쥐손이, 둥근이질풀, 큰앵초, 개시호, 독활, 금강초롱꽃, 두루미꽃, 풀솜대 등이 눈에 띤다.

주목, 분비나무 등의 큰키나무와 생열귀나무, 산앵도나무, 꽃개회나무 등의 떨기나무는 모두 고산성 나무로 볼 수 있다. 분비나무는 일반적으로 침엽수로서 비슷하게 생긴 전나무보다 더욱 높은 고도에서 나타나는 수종으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성 침엽수 가운데 하나다. 꽃개회나무의 경우에도 지리산을 포함해서 전국적인 분포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생육장소가 모두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역이다. 이곳에 분포하는 풀들 가운데는 털쥐손이, 둥근이질풀, 두루미꽃 등이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확실한 고산식물들이다.

두타산 동쪽 지역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보춘화와 대흥란이 있다. 두 식물 모두 난초과에 속하는 희귀식물로서 관상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이들은 주로 남쪽 지방에 자라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해안을 따라 이곳까지 올라와 자라는 것이 그 가치를 더한다. 두 식물 모두 이 일대가 동해안의 최북단 자생지로 여겨지고 있다.

춘란이라고도 부르는 보춘화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도 잎이 상록성인 상태로 남아 있어서 잎과 꽃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자원식물이다. 이 때문에 채취의 표적이 되어 왔고, 분포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애초부터 개체수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절멸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과거에는 환경부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기도 했으나, 법률이 바뀌면서 보호종의 숫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남부 지방에는 흔하므로 국가적인 보호종에서 제외된다 하여도 문제가 없겠지만, 두타산 일대 등 강원 남부 지역은 이 식물분포의 북방한계 지역에 해당하므로, 강원도 보호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흥란은 현재 환경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법정보호종이다. 남방계 부생난초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해남 대둔산 대흥사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 드물게 자라고 있다. 꽃이 필 때까지는 녹색인 부분이 없어서 주변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부생식물의 습성을 보이지만, 늦여름 열매가 열릴 때가 되면 줄기와 열매가 녹색이 되어 광합성을 하는, 아주 특이한 생태를 보여주는 식물이기도 하다.

국가적인 법정보호종일 뿐만 아니라 두타산 일대가 북방한계선이기 때문에 보전은 더욱 중요한데, 보춘화의 경우에는 서해안을 따라 황해도까지 올라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흥란은 아직까지 그런 보고가 없으므로 이곳이 서해안과 동해안을 통틀어서 분포의 북방한계선이라 할 수 있다. 이 귀중한 대흥란 자생지는 몇 해 전 강릉대 이규송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다.

고산식물 포함 700여 종류 생육

강원대 이우철 교수 등에 의해 1999년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두타산 일대에는 100과 358속에 속하는 573종 95변종 18품종 등 686종류의 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이 자료에서는 두타산의 한국특산식물로 홀아비바람꽃, 누른종덩굴, 할미밀망, 터리풀, 노랑갈퀴, 금강제비꽃, 새며느리밥풀, 봉래꼬리풀, 병꽃나무, 금강초롱꽃, 고려엉겅퀴 등 30여 종류를 제시하고 있으며, 희귀식물로는 요강나물, 채고추나물, 참고추냉이, 생열귀나무, 금강제비꽃, 털댕강나무, 금강애기나리, 두루미꽃 등을 꼽은 바 있다.

또한, 다닥냉이, 붉은토끼풀, 겹달맞이꽃, 돼지풀, 미국가막사리, 망초, 서양민들레, 오리새 같은 귀화식물 20여 종류가 침입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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