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만으로 승부한다'...역발상으로 성공한 동물원
(호주의 골드 코스트 여행기 5) 커럼빈 야생동물원(Currmbin Wildlife Sanctuary)
정철용(ccypoet) 기자
대도시일수록 그럴듯한 동물원이 하나씩 있다. 자연을 접할 기회도, 자연 속의 야생동물들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도시인들에게 동물원은 매우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빼놓고는 평소에 동물을 제대로 구경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소나 닭, 너구리와 다람쥐 등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축과 산짐승까지도 신기한 구경거리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주목받는 동물들은 단연 이국에서 실어온 야생 동물들이다. 비싼 수송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원래의 서식환경이나 기후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동물들을 실어 나르는 것은, 바다 건너 온 동물들이야말로 도시인들의 이국취향을 만족시켜주기에 더 없이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오래 잡아 두는 것은 토종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동물원의 명성은 얼마나 많은 외래종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크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골드 코스트에 있는 '커럼빈 야생동물원(Currmbin Wildlife Sanctuary)'은 정반대의 접근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은 온통 호주의 토종 동물들로만 채워져 있다. 딩고, 태즈메이니아 데빌, 캥거루, 코알라, 악어 등이 바로 그러한 동물들이다.

▲ 개처럼 생겼지만 늑대처럼 울부짖는 딩고
ⓒ2005 정철용
원래 살던 곳과는 딴판인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분명 축복 받은 존재들이다. 비록 완벽한 야생의 환경을 갖추지는 못했기에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폐쇄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질적인 기후에 따른 스트레스는 전혀 느끼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동물원을 구경하다 보면 으레 느끼기 마련인 우리 속에 갇힌 동물들의 답답함이나 슬픔이 이곳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모습은 개를 꼭 닮았는데 주둥이를 쳐들며 울부짖는 소리는 늑대와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딩고(dingo), 몹시 살이 찐 커다란 쥐처럼 보이는 태즈메이니아 데빌(Tasmania Devil),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강철 가시들로 무장한 가시두더쥐(echidna), 어린 돼지와 토끼의 얼굴을 반반씩 섞어 넣은 듯한 순한 얼굴의 웜바트(wombat) 등 평범해 보이지만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토종 동물들을 우리는 흥미롭게 구경했다.

▲ 호주를 대표하는 귀여운 동물 코알라
ⓒ2005 정철용
하지만 '호주의 토종 동물'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코알라와 캥거루. 딸아이 동윤이는 코알라와 캥거루 무리 앞에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코알라 무리들은 대부분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질겅질겅 씹거나 느릿느릿 나무를 타고 다른 자리로 옮기는 놈들도 더러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도 이내 기면 발작증에 걸린 환자처럼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설명문에 따르면 코알라는 생애의 약 90%를 잠으로 보낸다고 한다. 코알라에게 삶은 곧 꿈인 셈이다.

코알라가 이렇게 잠꾸러기가 된 것은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 특이한 식성 때문이라고 한다. 코알라는 몸에 필수적인 수분조차도 오직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통해서만 섭취한다. 이러한 특이한 식습관이 이 동물에게 '코알라' 라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코알라'는 호주 원주민의 말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 코알라는 생애의 90퍼센트를 자면서 보낸다
ⓒ2005 정철용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으면서 섭취하는 열량은 제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형편없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코알라는 체력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거의 하루 종일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나마 나머지 10%의 시간조차도 코알라는 대부분 먹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먹고 자는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다니! 매일 아침마다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터지는 지뢰의 폭음처럼 들리고, 그 모자란 잠을 채우기 위하여 점심을 먹는 즐거움마저 단 10분으로 줄이고 그 나머지 시간은 노곤한 낮잠으로 채우는 도시의 직장인들은 이런 코알라의 팔자가 부러울지니! 다 큰 어른들조차도 코알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선망도 조금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코알라에 매혹되는 것은, 야생 동물에게서 흔히 연상되는 공격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귀엽고 평화로운 모습 때문이다. 코알라는 아이들이 꿈꾸는 장난감 나라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의 혼곤한 잠조차도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마법사가 걸어 놓은 잠의 저주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는 캥거루
ⓒ2005 정철용
이러한 코알라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호주의 토종이 바로 캥거루다. 캥거루는 언제나 껑충껑충 뛰어 다니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캥거루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안 된다. 둘 다 순한 얼굴이기는 해도 코알라는 미련곰탱이처럼 보이는 반면 캥거루는 날렵하고 명민해 보인다.

또 어린 새끼를 데리고 이동할 때 코알라는 등에 업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캥거루는 복부에 있는 육아낭에 안고 다니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조적이다.

우리는 먹이 주는 시간에 맞춰 캥거루가 떼지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전혀 피하는 기색이 없이 캥거루들이 몰려들었다. 캥거루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을 공손하게 모은 채, 동윤이의 손바닥에 놓인 과자 부스러기를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 캥거루 어미의 배에 달린 육아낭에서 새끼의 다리가 삐쭉 나와 있다
ⓒ2005 정철용
어미의 뱃속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었던 새끼는 이러한 풍경이 아직 낯선지 바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얼굴 대신 새끼의 새까만 다리가 삐쭉 삐져나와 덜렁거렸다. 좀 더 있다가 새끼가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고 가자는 동윤이를 재촉해, 우리는 다음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입장할 때 받은 동물원 안내 지도를 보면 이제 주요 볼거리는 모두 보았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남아 있는 그 볼거리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우리가 얻은 뜻밖의 기쁨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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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 끝난 나무 우듬지 산책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 4] 래밍턴 국립공원의 오레일리 고원에서
정철용(ccypoet) 기자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테마 파크 세 곳이 딸아이 동윤이의 선택이었다면 그 사이사이에 박아놓은 이틀간의 자연 탐사 일정은 나의 선택이었다. 동윤이의 선택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듯이 나의 선택 역시 절반의 성공이었다. 먼저 실패한 곳부터 말해보자.

'씨 월드'를 다녀온 다음 날인 4월 25일 월요일,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서 이곳 사람들이 '힌터랜드(Hinterland)'라고 부르는 내륙 쪽을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는 래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nal Park)내에 있는 '오레일리 고원(O'Reilly's Plateau)' 거기서 그 유명하다는 나무 우듬지 산책(treetop walk)을 즐기고 올 생각이었다.

▲ 오레일리 고원에 있는 나무 우듬지 산책길에서 포즈를 취한 딸아이
ⓒ2005 정철용
국립공원 입구의 마을인 카눙그라(Canungra)까지는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길이 그 마을을 지나자마자 구절양장 고갯길이 되었다. 그 길을 40여분 동안 힘겹게 운전하고 나니 마침내 꼭대기에 올랐는지 가파르게 오르기만 하던 길이 드디어 순해졌다. 나는 한숨을 놓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약 20분 정도는 대낮인데도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도로. 익숙한 길이었다면 분명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을 그 숲길을 초행 운전자인 나는 부릅뜬 눈에 전조등을 켠 채 잔뜩 긴장하고 달렸다.

11시쯤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런 오지에 마련된 주차장치고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월요일인데 웬 인파람? 아참, 그렇지, 오늘이 안작데이(ANZAC Day :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로서,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똑같이 기념하는 공휴일이다)지.

다른 곳으로 놀러가지 않고 하필이면 이곳으로 몰려온 사람들을 원망하며 주차장을 서너 바퀴 돌았지만 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빈 주차공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주차장 아래 쪽 도로로 내려서니 갓길에 주차해놓은 차량이 여러 대 눈에 띄었다. 나도 그들처럼 갓길에 주차를 하고 드디어 차에서 해방!

'부용 트랙'이라는 팻말이 붙은 울창한 숲길을 이젠 차를 버리고 걸어서 가노라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곳도 그 전날 갔던 '씨 월드' 못지 않게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숲 속 길가에 여러 그루 서 있는, 밑동 부근이 기기묘묘한 부용나무를 마음껏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정은 잔뜩 기대를 하고 갔던 '나무 우듬지 산책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 큰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에 나무판으로 된 현수교 9개를 놓아서 서로 연결한 이 이색적인 산책길은 다리에 걸리는 하중이 5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뒷사람이 의식되어 다리 위에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떠밀려서 걸어나오다 보니 그 우듬지 산책은 고작 10분에 불과했고, 동윤이와 아내의 사진 한두 장 찍어주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 나무 우듬지 산책길은 나무들 사이에 설치한 현수교를 연결한 것이다
ⓒ2005 정철용
호주에서 열대 우림 우듬지의 생태를 연구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 마거릿 D. 로우먼이 쓴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나는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나무 우듬지 산책'에 있을 거라며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와서 그 위를 걸어보니 참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120m에 불과한 산책길의 길이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를 걸어가면서도 새나 곤충은커녕 나무 잎사귀 하나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딸아이는 "에게, 이게 다야?"하고 내게 반문했고 아내는 "사기다!"라는 단 한 마디로 자신의 느낌을 토로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책을 다시 펼쳐보니, 마거릿은 1985년 오레일리 가족이 설치한 이 우듬지 통로 덕택에 자신의 연구를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를 아주 획기적인 창안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생태학자가 아니라 관광객으로 그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탓인지, '나무 우듬지 산책'은 실망스러운 기억으로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곳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을 터이다. 규모의 웅장함과 자극의 강렬함을 항상 따지는 스펙터클에 내 눈과 마음 역시 많이 물들어 있음을 아프게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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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시간 선택을 잘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의 한적한 시간이었다면 분명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들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만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지는군요. 오레일리 고원에는 숙박 시설도 있으니 자연을 좋아하는 이라면 하루쯤 머무르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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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에 배트카 껴줘도 "심심해!"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 ③] 영화 없는 '무비월드', 꿈 없는 '드림월드'
정철용(ccypoet) 기자
'씨월드'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흥미로웠던 반면 '무비월드'나 '드림월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시하고 규모도 매우 작아서, 머무르는 동안 내내 본전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특히 '무비월드'의 경우, 빤한 할리우드 영화들을 테마로 만들었으니 오죽할까 생각은 하면서도, 그 이름에서 북적거리는 영화 촬영 현장이나 잘 보존하고 꾸며놓은 영화 전시관을 연상했던 나로서는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 '무비월드'의 슈퍼스타들
ⓒ2005 정철용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추어 도착한 '무비월드'에는 평일인데도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가는 데만도 20여분이 걸렸고, 동윤이와 함께 둘이서 '스쿠비 두(Scooby-Doo)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오는 데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속도를 내는 놀이기구는 질색이라며, 혼자 밖에서 기다렸던 아내가 많이 무료했으리라.

뿐만 아니라 '폴리스 아카데미 스턴트 쇼'를 보기 위해서도 30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25분간 벌어진, 그 유명하다는 스턴트 쇼조차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3차원 영화를 한 편 보고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니, 구경한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점심시간. 대충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줄서서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 눈으로만 구경하면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올스타 퍼레이드'를 보는 것으로 '무비월드'에서의 하루를 마감하기로 했다. 퍼레이드는 예전에 잠실 '롯데월드'에서 보았던 퍼레이드보다도 훨씬 초라해서 푸푸 헛웃음이 나오게 했다.

▲ 올스타 퍼레이드에 등장한 배트맨과 배트카
ⓒ2005 정철용
'무비월드'가 이처럼 대작 할리우드 영화로 위장한 또 하나의 놀이동산에 불과해서 나의 실망감을 더했다고 한다면, 마지막 날 갔던 '드림월드'는 이런 위장술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 줄만 했다.

놀이동산이 으레 그렇듯이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공포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들에 충실했다. 게다가 한쪽에는 캥거루, 코알라, 악어, 호랑이 등의 야생동물도 볼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점수를 더 줄만 하다.

▲ '드림월드'에서 우리가 탄 쉬운 놀이기구 중 하나
ⓒ2005 정철용
우리는 '드림월드'에서 궤도를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와 기차, 한두 번 떨어지는 것이 고작인 '플룸 라이드' 등 쉬운 놀이기구들을 탔다.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우리 자식이 아니랄까봐 동윤이 역시 몹시 겁이 많아서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 최대 높이(120m)의 자이로 드롭이라는 '자이언트 드롭'이나 남반구 최대의 롤러코스터라고 하는 '싸이클론'과 같은 공포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들은 감히 탈 엄두를 못 냈다.

시시한 것들은 너무 시시해 보여서, 무서운 것들은 너무 무서워 보여서 눈으로만 구경하고 다니자니, 그럴 거라면 '드림월드'에 뭐 하러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인데도 나가자고 하는 아내의 말을 동윤이가 순순히 따른 것을 보면, 동윤이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테마 파크인 '레인보우 엔드(Rainbow's End)'와 비교해 볼 때 거의 비슷한 규모이고, '무비월드'와 '드림월드'를 함께 합쳐도 한국의 용인 '에버랜드'에 미치지 못할 정도의 규모와 내용이니, 잔뜩 기대를 하고 간 동윤이가 재미없어 할만도 했다.

▲ 미국 '디즈니랜드'에 가보기를 원하는 딸아이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까?
ⓒ2005 정철용
하지만 동윤이는 자신이 졸라서 이곳을 오게 됐으니 재미없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테마 파크 세 곳 중에서 '씨월드'가 제일 재미있었노라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꼭 가보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동윤이의 그 말에 어이가 없어 오금을 박았다. "이제 테마 파크는 다시는 안 가. 이번이 마지막이야. 정 가고 싶으면 네 돈으로 너 혼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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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월드'에서 만난 '핑구'와 '웨일 라이더'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 2] '씨월드'의 물개 쇼와 돌고래 쇼
정철용(ccypoet) 기자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은 6박 7일간의 일정이었다. 1주일이나 되니 제법 시간이 넉넉할 것 같지만, 저녁에 도착하고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편 때문에 쓸모 없게 된 이틀을 빼면 실제로 우리가 쓸 수 있는 날짜는 5일에 불과했다. 평소 같았으면 비싼 비행기 삯 치르고 바다를 건너 간 외국여행이니 이처럼 짧은 일정이 많이 아쉬웠을 터이다. 하지만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은 오히려 5일조차도 길게 느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첫눈에 그게 딱 들어맞은 꼴이었다.

하지만 동윤이의 소원대로 테마 파크 세 곳을 모두 구경하기로 약속했기에, 5일간의 일정을 '씨 월드', '무비 월드', '드림 월드'에 각각 하루씩 배당하고 그 사이에 '래밍턴 국립공원'과 '커럼빈 야생동물원'을 징검다리 놓듯이 하루씩 박아놓았다.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 징검다리 덕택에, 동윤이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이지만 나와 아내에게는 따분하기만 인공 낙원인 테마 파크들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 인공석호에 조성한 샤크 베이에는 상어가 유영하고 있다
ⓒ2005 정철용

▲ 귀여운 펭귄 무리들이 서로의 깃털을 쪼고 있다
ⓒ2005 정철용
그래도 첫 번째로 구경한 '씨 월드'는 제법 볼 만 했다. 해상뿐만 아니라 해저에서도 대형 유리를 통하여 상어와 갖가지 열대어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인공 석호에 조성한 샤크 베이(Shark Bay)에서 우리는 한참 머물렀다. 북극곰과 펭귄들의 재롱에도 눈을 맞추었고, 쉽게 볼 수 없는 바닷새인 펠리컨과 이곳 사람들이 '돼지(Pig)'라고 부르는 바다소도 만났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즐겁게 구경한 것은 하루에 한 두 차례 열리는 물개 쇼와 돌고래 쇼였다. 개장 시간인 10시 즈음부터 '씨 월드'에 들어와 있던 우리는 이 두 쇼를 놓치지 않았다.

물개 쇼를 먼저 보았는데, 조련사에게 뽀뽀를 하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고 둥근 공을 주둥이로 받기도 하는 등 익살스럽게 재롱을 떠는 물개의 묘기에 동윤이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작은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스톱워치 애니메이션인 '핑구' 시리즈에 나오는 핑구의 친구 물개 '로빈'을 보는 듯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동윤이도 물개 쇼를 보는 동안, 어렸을 때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핑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 물개 쇼에서 물개가 공을 주둥이로 받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2005 정철용
그런데 나는 거기에 덧붙여서 잊고 있었던 옛날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국민학교 3∼4학년쯤이었을 무렵으로 여겨지는데,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서 물개 쇼를 보았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이었고 어린 두 사촌 동생과 숙부님 내외분과 함께 나섰던 가족나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기억 속에 보이는 얼굴은 어머님(숙모님)뿐이다. 분명 손님들을 끌기 위한 판촉용 행사였을 테니, 그 규모나 내용이 시시했을 것인데도 동물원 구경도 제대로 못해 본 어린 내게는 몹시도 신기한 구경거리여서 어머님과 눈을 맞추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생각해 보니 동윤이도 TV로는 보았을지 모르지만 물개 쇼를 직접 현장에서 제 눈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니 저렇게 신기하고 재미있겠지.

▲ 물개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취해 꼬리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2005 정철용
그렇지만 단지 인간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하여 하나의 볼거리 쇼로 전락해버린 자연과 그 자연 속의 동물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인간이 자연을 그리고 그 자연 속의 동물들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동물원이고, 동물들을 조련시켜 펼치는 쇼기 때문이다.

물개 쇼나 돌고래 쇼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동물들을 조련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의 쇼나 코끼리 쇼에서 느껴지는 동물들의 수동적이고 절망스런 몸짓과 눈빛은 보이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돌고래의 경우에는 오히려 즐거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쇼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 돌고래 쇼에서 돌고래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2005 정철용
신이 나서 물살을 가르며 유영하고, 거꾸로 다이빙하듯이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수중발레하듯이 몸을 반쯤 수면 위로 내놓고 춤을 추기도 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은 즐거움과 기쁨에 넘친 자발적인 동작이었지, 조련사가 던져줄 먹이를 기대하며 마지못해 하는 몸짓이 결코 아니었다.

함께 쇼를 펼친 조련사조차도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 돌고래처럼 여겨져서, 여자 조련사가 두 마리 돌고래의 등에 올라타 선 채로 수상스키 타듯 질주하는 모습은 내게 참으로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모습은 이미 조련사와 동물이라는 관계, 즉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를 벗어나 있었다. 채찍의 위력도 아니고 먹이의 유혹도 아닌 방식으로 맺어진 관계. 내가 그 모습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는 우정의 방식까지도 조금 엿본 것 같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 조련사를 등에 태운 돌고래 두 마리가 수상스키 나아가듯 물결을 가르고 있다
ⓒ2005 정철용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뉴질랜드 영화 <웨일 라이더>를 떠올렸다. 해변에 좌초한 고래 떼를 구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들은 죽어나간다. 그런데 고래의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나이 어린 한 마오리 소녀가 모래밭에서 꼼짝도 않는 가장 몸집이 큰 우두머리 고래의 등에 올라타는 순간 고래는 눈을 번쩍 뜨고 마침내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푸른 바다 물살이 몸을 집어삼키는 데도 고래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는 소녀를 등에 싣고 우두머리 고래는 바다를 유영해 나간다.

그 감동적인 영화 속 장면은 돌고래들이 조련사를 자신의 등에 태우고 달리면서 연출해내는 수상스키 장면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마저도 단지 볼거리 쇼라고만 한다면 그 돌고래들의 기쁨을, 그리고 돌고래들과 맺은 조련사들의 우정을 모독하는 것처럼 여겨져 나는 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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